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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9월 E. F. 슈마허가 사망하자 동료였던 바바라 바르트Barbara Ward는 슈마허야말로 인류의 생각을 바꾸도록 만든 매우 독창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설명했다. 슈마허의 생각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만으로도 매우 생생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프리츠 슈마허는 놀랍도록 창조적이고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투적인 생각이나 행동 양식을 파격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이다. 또한 인종, 나이, 계급, 정치적 입장과 종교적 신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지닐 정도로 보편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슈마허의 가장 특별한 점은 사람들을 실천으로 이끄는 비상한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사례가 바로 슈마허가 고안한 ‘중간기술’이다. 슈마허는 1962년 인도 정부를 위해 만든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경제개발에서 기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우리는 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슈마허와 함께 런던에서 <중간기술개발그룹>을 출범시켰다. 이 연구팀은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욕구와 자원에 적합한 기술, 가령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간단하며, 자본이 적게 들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고안된 기술들을 개발하고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오늘날에는 스무 개가 넘는 유사한 연구팀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운영될 뿐 아니라 유엔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여러 정부와 시민단체들까지도 슈마허의 중간기술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제는 가난한 나라만큼이나 부유한 나라들도 이 기술이 의미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슈마허와 지난 20년간 함께 일하며 우정을 나눴던 시절을 회상해보면 그가 현실의 방향을 바꾸는 일에 한결같이 매진해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직 30대였을 때 슈마허는 영국에서 잠시 농장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새로운 방안의 국제통화 지불결제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것은 즉각 케인스에 의해 채택되어 영국 정부의 공식제안서가 되었다. 몇 년 뒤 슈마허는 완전고용에 관한 유명한 「비버리지 보고서」에 주요 저자로 참여했다.
또한 영국 국립석탄위원회의 경제자문가로 활동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지나친 석유 의존이 갖는 위험과 원자력 의존이 갖는 훨씬 더 심각한 위험에 대해 매우 일찍부터 끊임없이 경고를 보냄으로써 정부 측에서 보자면 종종 달갑지 않은 인물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슈마허는 토양협회Soil Association 회장과 영국 공동소유기업의 선구자 격인 스콧 배더 공동회사Scott Bader Commonwealth의 국장, 그리고 중간기술그룹Intermediate Technology Group의 의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슈마허는 기술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가한 충격과 이런 기술을 뒷받침해온 사회구조를 지속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시작으로 기존 경제학과 기술, 그리고 이를 떠받쳐온 가치체제에 대한 맹렬한 공격에 착수했다. 하지만 단순히 공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지속가능한 삶으로 이끌 제대로 된 길을 정밀하게 탐색했다.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바로 그 결과 나온 지도인 셈인데, 여기에 담긴 철학적 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강조한 도덕적 가치에 누구나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굿 워크』는 슈마허가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묶은 책이다. 6만 명의 청중이 몰리기도 했던 슈마허의 강연 여정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책의 세 장은 예전에 쓴 글에 토대를 두고 있으나 ‘좋은 노동’이라는 주제와 연관이 깊어 여기에 실리게 되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점에서 예전에 출간된 슈마허의 생각을 다시 숙고하거나 확장한 것이다. 노동체제의 중심에는 어떤 가치관,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담겨 있다. 가령 노동을 청교도적 윤리라는 관점에서 보거나 아니면 좀 더 계몽적 관점에서 보아 노동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더 좋다는 식이 우리 시대 사이비 지식인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상투적인 태도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노동의 유일한 목적이 돈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 내가 아는 한 어떤 종교도 절대로 이렇게 설교하지는 않지만 - 무엇보다도 인간본성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고 천박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은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인간노동의 세 가지 목적에 대한 슈마허의 생각과 상반된다. 슈마허는 인간은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또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이들과 협력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고 보았다.
노동과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슈마허의 해석에 굳이 동의할 의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이 책을 좀 더 잘 음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굿 워크』는 기존의 기술과 가치체제가 정치, 경영, 사회, 경제 분야에 끼친 결과와 함께 슈마허가 말한 노동의 세 가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대안들이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모색하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책 전반에 걸쳐 기업경영과 소유권 문제, 중간기술과 같은 여러 대안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슈마허는 영국 국립석탄위원회, 중간기술개발그룹, 스콧 배더 회사, 토양협회에서뿐만 아니라 인도, 잠비아 등 세계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일하고 경험을 쌓아왔다.
이 책에 담긴 슈마허의 생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떤 기술을 선택할지는 가난한 나라건 부유한 나라건 상관없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가난한 나라의 경우 대다수 농민들이 노동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우선 이들의 필요와 자원에 적합한 중간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 반면 부유한 나라의 경우는 좀 더 작고, 좀 더 자본절약적이며, 천연자원을 좀 더 적게 쓰면서 자연환경에도 난폭하지 않는 그런 기술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가난한 나라가 인간다운 생활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선진국에 사는 우리 역시 좀 더 온순하고 비폭력적이며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국가와 국가들 간에, 그리고 한 국가 내에서 보다 넓은 차원의 평등으로 가는 길이다.
슈마허의 강연원고를 논문형식의 글로 편집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으나 되도록 손대지 않았다. 아마도 슈마허의 강연장에 왔던 6만 명의 청중은 그때 들었던 내용이 거의 편집되지 않은 채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리라 생각된다. 그 결과 독자들은 이 책에서 가난한 나라건 부유한 나라건 현재 똑같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인 누구나 만족스러우며 창조적인 노동을 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던 슈마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조지 케넌이 언급했듯이,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찾아낸 방식으로도 이 행성에서의 삶이 충분히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해 모색했고, 두 발로 서서 큰 소리로 대안을 외쳤고, 놀라운 정신력뿐만 아니라 창조적 에너지와 인간성까지도 모두 다 쏟아 부었던 슈마허의 생생한 모습을 독자들이 이 책에서 볼 수 있게 되었음은 실로 다행스러운 결실이라 하겠다.
조지 맥로비George Mcrobie
프롤로그
최근 런던의 <타임>지에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단테가 지옥의 모습을 그릴 때 노동자들이 공장 조립라인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겹도록 반복적인 일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넣었더라면 더 실감났을 것이다. 지금의 노동은 개인의 자발성을 파괴하고 두뇌를 썩게 만드는 일인데도 수백만 명의 영국 노동자들이 일생을 그런 노동에 바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기사는 예전에 나왔던 유사한 많은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전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열렬한 부인否認도, 고뇌에 찬 동의도,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옥의 모습’이나 ‘자발성을 파괴하고, 두뇌를 썩게 만든다’와 같은 거칠고 무시무시한 표현에 대해 거짓이자 허풍이라거나 혹은 무책임한 히스테리적인 과장이라거나 아니면, 전복적인 선전문구라는 식의 비난조차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독자들은 기사를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탄했겠지요. 그러면서 추측건대 다음 기사로 넘어갔겠지요. 생태주의자들이나 환경 보호주의자들, 또 환경파괴 감시자들조차도 이 기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약 인간이 만든 어떤 시설물이 수백만 마리의 새나 바다표범, 혹은 아프리카의 보호구역에 사는 야생동물들의 자발성을 파괴하고, 두뇌를 썩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면, 그런 주장은 적어도 심각한 문제로 반박을 받거나 아니면 최소한 사실이라는 시인이라도 나왔을 것입니다. 또 노동자들의 정신이나 두뇌가 아닌 신체가 훼손되었다고 했더라도 상당한 관심을 끌었을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안전규정을 살피고 조사관을 파견하고 손해배상청구 등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됩니다. 경영자는 노동자에게 위험한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신체적 건강상태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의무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두뇌와 정신, 영혼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 정부는 최근 스톡홀름학회에 「천연자원: 생존을 위한 동력」이라는 제목의 약식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분명 모든 천연자원 가운데 가장 으뜸은 인간이 지닌 자발성과 상상력, 그리고 지력知力입니다. 누구나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언제든 얼마든 소위 교육에 돈을 쏟아 부으려고 합니다. 진짜로 생존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자원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자원인 인간의 두뇌를 보호하거나 두뇌 개발에 필요한 논의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런 논의는 보고서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생존을 위한 동력」에는 미네랄, 에너지, 물과 같은 물질적 자원들은 모두 거론되었지만 자발성, 상상력, 지력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인간 삶의 중심에 노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등 관련 학문의 교재에는 모든 이론의 필수적 디딤돌로서 노동에 관한 이론이 담겨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노동에 쏟고 있을 뿐 아니라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 무엇을 소유하는지, 어디에 투표를 하는지보다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이나 성격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노동인데도 수업교재에서 노동에 관한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헛수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동자에게 노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거론조차 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노동이 요구하는 바에 - 그나마도 엄밀히 말하자면 주로 기계의 요구에 지나지 않는데 - 노동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자들의 욕구에 노동을 맞추는 것이 진짜 중요한 문제라는 점도 거론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 목적이나 목표와 인간의 노동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 단지 생존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노동을 해야 한다고 인류의 모든 가르침은 말합니다.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는 인간의 노동이 없다면 나올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여러분 각자가 어떤 재능을 받았든지 간에 마치 선한 청지기가 여러 방법으로 신의 은총을 나눠주듯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쓰시오”라는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런 일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의 세 가지 목적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 삶에 꼭 필요하고 유용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선한 청지기처럼 신이 주신 재능을 잘 발휘하여 타고난 각자의 재능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협력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가지 차원에서의 이런 역할을 통해 노동은 인간 삶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노동이 없는 인간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문, 프롤로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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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77
1911년 독일 본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궁핍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미래가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전운이 감돌던 독일로 귀국했다. 1934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지만 적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수감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복지정책의기초를 닦았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제안한 금융제도는 당시 ‘케인즈 플랜’에 반영되었다. 1950년부터 20여 년간 영국 국립석탄위원회 자문을 맡으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기반한 서구문명의 종언을 예고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1955년 경제 자문관으로 버마를 방문하면서 ‘불교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철학을 제시했다. 인도에서 처참한 빈곤을 목격하면서는 지역 규모에 알맞으며 사용하기 쉽고 생태적인 ‘중간기술’ 개념을 창조했다. 이는 기계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질적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 1965년 <중간기술개발그룹>을 발족해 전 세계에 중간기술을 보급하고, 제3세계를 돌며 자급경제를 지원했다. 1973년 첫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를 출간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단 한 문장은 시대의 상징이 되어 퍼져나갔다. 주요 저서로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 A Guide for the Perplexed』와 『내가 믿는 세상 This I Believe』이 있다. 『굿 워크』는 1977년 미 대륙을 횡단하며 펼친 강연을 묶은 것으로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말년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무의 잠재력을 연구했으나 1977년 강연 순회 도중 사망하면서 그 연구도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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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박혜영
인하대 영문과 교수. 영국의 낭만주의 시를 전공했다. 학문적 관심사는 산업혁명기의 영국역사와 문학, 여성, 생태 문제 등이다. 주요 번역서로는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가 있고, <한겨레>, <녹색평론>, <황해문화> 등에 글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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