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04년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성탄절이 지난 화창한 겨울날이었다. 나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천체 물리학자인 사울 펄뮤터Saul Perlmutter를 기다리며 섀턱과 시더의 모퉁이에 있는 카페 밖에 있었다. 교정은 버클리 시의 경계에 불쑥 솟아오른 나무가 우거진 언덕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로렌스 버클리 국립 도서관Lawrence Berkeley National Library은 그 언덕에서 약 1,000피트(305미터) 위에 있었다. 1990년대 놀라움 심지어는 불안하기까지 한 반향을 일으킨 실험 결과를 동시에, 하지만 독립적으로 발견한 두 그룹의 천문학자 여러 명이 캘리포니아 대학교 캠퍼스와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발견이었다.
펄뮤터는 이 중 한 팀의 리더였다. 뒤로 벗겨진 머리 때문에 훤해진 이마와 두꺼운 안경에 강조된 열정적이고 동그랗게 뜬 눈은 우디 앨런(미국의 배우이자 희극 영화 감독―옮긴이)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사실, 펄뮤터는 그들의 발견이 우주론에 위기를 불러왔노라고 시인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초신성에 대한 두 팀의 연구는 1929년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이 처음으로 발견한 우주의 팽창이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던 것처럼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가속되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 주었다. 마치 미지의 에너지가 중력에 대항해 척력repulsive force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에너지의 정확한 성질을 확신하지 못하는 우주론자들은 이것을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암흑 에너지가 우주의 총 에너지와 물질 중에서 4분의 3을 차지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론자들이 직면한 최근의 가장 어려운 퍼즐로, 수십 년간 이들을 괴롭혀 온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는 또 다른 수수께끼에 추가된 난제였다. 은하 질량의 거의 90퍼센트는 보이지도 알려지지도 않은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암흑 물질의 중력이 만들어 내는 인력이 없었더라면 은하들은 이미 흩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암흑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펄뮤터는 물리학자들, 그중에서도 우주론자들이 고작 우주의 4퍼센트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지적했다. 물질세계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겨우 우주의 작은 일부만을 밝혀 왔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수수께끼들이 있다. 질량의 기원은 무엇일까? 빅뱅 이후 물질과 함께 생성되었던 반물질antimatter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양자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을 이용해 우리 세계를 설명하는 데 놀라운 성공을 거뒀던 지난 1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은 겨우 작은 언덕에 올랐을 뿐이다. 펄뮤터가 말한 대로 물리학자들은 이제 정상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으로 우주의 새로운 이해를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려 하고 있다.
이런 초인적인 노력 중 일부에는 양자 역학을 일반 상대성 이론과 조화시켜 양자 중력 이론theory of quantum gravity을 만드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두 이론이 충돌하는 상황에서―블랙홀이나 빅뱅에서처럼 거대한 중력이 미세한 부피 안에 우겨 넣어지는 경우―이 이론들은 함께 작용하지 않는다. 사실, 이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 이론을 하나로 모으려는 가장 야심 찬 시도 중 하나는 끈 이론string theory이라고 부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수학 체계다. 끈 이론의 열렬한 신봉자들은 끈 이론이 단지 양자 중력뿐 아니라 만물 이론에 이르러 단지 몇 개의 우아한 방정식만으로 우주의 모든 면을 기술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한다. 하지만 암흑 에너지의 발견과 끈 이론의 최근 연구에 의해 이론 자체가 혼란에 빠져 있다. 펄뮤터를 만난 지 2년이 훌쩍 넘은 어느 겨울날, 나는 물리학에 있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얼마나 심각한 일들이 있어 왔는지를 직접 맛보게 되었다.
2007년 2월 하순의 오후였다. 샌프란시스코 힐튼 호텔의 컨퍼런스 룸은 미국 과학 발전 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의 연례 회의로 만원을 이뤘다. 세 명의 물리학자들이 암흑 에너지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물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질문 중 일부인 “왜 우주는 현재와 같은 형태인가”,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 우주는 미세 조정이 돼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과 “암흑 에너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암흑 에너지는 단순히 신비로운 것만이 아니었다. 암흑 에너지는 별과 은하들의 생성에 적합한 값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암흑 에너지가 존재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암흑 에너지가 왜 그토록 작은가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이론 물리학 펠릭스 블로흐Felix Bloch 교수이자, 끈 이론의 공동 창안자인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는 힐튼 호텔에서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적인 표현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존재의 칼날 위에 서 있다는 사실, 즉 암흑 에너지가 조금만 컸더라면 우리가 여기 이렇게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 바로 미스터리입니다.”
최근까지 끈 이론이 이를 설명할 것이라는 희망, 즉 왜 양성자의 질량이 전자의 질량보다 2,000배 가까이 무거운지, 왜 중력은 전자기력보다 약한지, 보다 근본적으로 왜 자연의 기본 상수들은 현재의 값을 갖는지와 같은 다른 난해한 문제의 해답뿐 아니라 암흑 에너지의 값 역시 끈 이론 방정식의 해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암흑 에너지에 대한 질문은 이런 의문들에 대한 상징적인 질문이다. 물리 법칙은 왜 우리 우주의 수많은 값이 지금의 값을 갖고 있는지 전혀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 값들은 생명 유지가 가능한 우주를 생성할 수 있도록 놀랄 만큼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물리학자들을 끝없이 괴롭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끈 이론이 원하던 대단원은 그 기미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부 물리학자들의 경우, 점점 우주의 모든 것을 몇 개의 방정식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있다. 서스킨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의 발표 제목은 “왜 쥐들은 배를 떠나고 있는가?”였다. 하지만 환원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끈 이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완전히 그 반대다. 놀랄만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서스킨드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수학적인 영광 속에서 끈 이론을 포용하고 있다. 현재 끈 이론의 가장 특이한 내용 중 하나는 다중우주multiverse의 존재다. 다중우주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우리 우주는 가능한 10500개(이보다 많지 않다면)의 우주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특이한 시나리오 안에는 왜 암흑 에너지와 다른 기본 상수들이 현재의 값을 갖는가라는 난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다중우주에서는 암흑 에너지와 기본 상수들이 어떤 값이라도 가질 수 있다. 사실 물리 법칙조차도 우주마다 다를 수 있다(가장 근본적인 물리 법칙은 동일하지만 우리가 느끼게 되는 4차원 물리 법칙은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옮긴이). 우리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미세 조정이나 수정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현재의 값을 갖는 우리 우주가 무작위로 나타날 수 있는, 작지만 유한한 확률이 존재한다. 우주를 지배하는 이 법칙들은 별과 은하, 행성, 그리고 “왜 우주는 지금과 같은 모습인가?”라고 묻는 물리학자를 포함하는 지적인 생명체를 생성한다.
이것이 바로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부르는 원리다. 간단히 설명하면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묻고 있기 때문에, 즉 우리 우주가 현재와 달랐다면 우주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는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우주는 현재의 상태라는 것이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책임 회피라고 생각했다. 이 아이디어대로라면 물리학자들은 제1원리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연사는 서스킨드의 스탠퍼드 동료이자 우주론자인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였다. 그는 20여 년 전 시카고 외곽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Fermi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 통칭 페르미 연구소 혹은 페르미 랩Fermilab이라고도 한다―옮긴이)에서 물리학자들에게 인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겪었던 어려움을 회고했다. 린데는 인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계란 세례를 받을 거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페르미 연구소 사람들이 강연 중간에 세이프웨이(미국의 슈퍼마켓 체인 이름―옮긴이)에 가서 계란을 사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거라고 가정하고, 인류 원리와는 완전히 다른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인류 원리로 주제를 바꿨다.
끈 이론이 다중우주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인류 원리는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끈 이론 자체는 실험적으로 증명되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진지하게 끈 이론의 효과를 고려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에 있던 로런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가 그날 오후 세 번째 연사로 나서 반대 의견을 정리했다. “나는 여러분이 다중우주가 과학이 되는 이론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론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우주에서 관측하는 많은 것들을 예측하는 진짜 이론은 우리가 실험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예측할 뿐 아니라 우리가 실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도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우리 대부분이 우리가 실험할 수 없는 것─다중우주의 존재와 같은 것─을 믿는다고 이야기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스킨드는 이때 크라우스를 뚫어질 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세션 말미 서스킨드의 침울한 말투는 그의 비판을 반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암시했다.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현재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끈 이론입니다. 끈 이론으로 관측 가능한 과학을 만들 수 있을까요?”
세 연사는 한 가지 사실에는 모두 동의했다. “오직 실험만이 이 막다른 골목을 뚫고 나갈 것이다”라는 사실 말이다.
물리학의 위대한 발전은 이론이 실험과 보조를 맞췄을 때 이뤄졌다. 때로 이론이 먼저 나오기도 했고, 때로는 그 반대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1887년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운동과 무관하다는 앨버트 마이컬슨Albert Michelson과 에드워드 몰리Edward Morley의 실험은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수식에 영향을 미쳤다. 10년 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지만, 이 이론은 1919년의 실험에 의해 일반 상대성 이론의 흥미로운 결과―태양의 중력에 의한 빛의 휘어짐―가 입증된 뒤에야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실험 물리학자들과 이론 물리학자들은 19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양자 역학을 만들어 가면서 서로 경쟁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이론과 실험이 공동 연구를 펼쳤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두 분야 모두에 풍요로운 때였다. 이때 입자 물리학자들은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들과 힘을 이론화했고, 실험 물리학자들은 놀라운 정밀도로 이론상의 예측을 검증했다. 하지만 활기찼던 이 상호 작용은 현재 고착 상태에 머물러 있다. 현재로서는 실패로 끝난 힉스 보손(Higgs boson, 기본 입자들에게 질량을 준다고 생각되는 입자)의 실험과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의 발견으로 이론 물리학자들은 현재 무제한의 자유가 허락된 상태다. 아이디어는 넘쳐나고 어림짐작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다. 우주론과 입자 물리학의 다음 세대 실험이 이론을 현실에 정박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답을 얻기 위한 도전이다. 이 모험은 나를 삶의 터전이었던 런던에서 지구의 먼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이론의 늪에 빠진 물리학을 건져 줄 것 같은 최신의 실험을 찾아 불모의 사막에서 폐광의 깊은 굴속으로, 산 정상에서 세계의 바닥까지 여행했다. 내가 만났던 많은 실험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는 쌍둥이 미스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미스터리 외에도 반물질, 힉스 보손, 뉴트리노(neutrino, 중성미자라고도 한다─옮긴이)를 찾고 있는 망원경과 검출기를 보기 위한 여행도 추가되었다. 이들 입자는 우주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검출되지 않는 아원자 입자subatomic particle들이다. 뉴트리노는 입자와 상호 작용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주를 통과한다. 그리고 다른 입자들은 불가능한 방식으로 먼 곳에 있는 우주에 대한 정보를 운반한다. 이 모든 실험은 펄뮤터가 이야기한 은유적인 계단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의 여행 역시 하나의 은유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지식의 최종 한계점, 즉 물리학의 최전선에까지 뻗어 있는 과학자들의 여행에 대한 은유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윌슨 산에 있는 100인치(2.5미터) 망원경을 향한 순례로부터 시작한다. 이곳에서 허블은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결과 빅뱅 이론과 현대 우주론에 대한 실험적인 토대가 마련되었다. 100인치 망원경은 당대에 망원경 제작에 대한 기술적인 지평을 넓혀 주었지만, 현재 밤하늘을 주사走査하고 있는 현대의 망원경은 이미 오래전에 이 망원경의 성능을 앞질렀다. 매일 밤 윌슨 산 천문대는 거대한 돔을 열고 우주의 절반 이상을 살펴보며 빛을 모은다. 때로는 한 번에 광자photon 하나를 관측하기도 한다. 이 빛을 분석하는 장비 역시 강력한데, 무게 8.6톤의 분광기는 천문학자들이 믿을 수 없는 정확도로 우주를 한 겹 한 겹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 아이스하키 퍽 크기만 한 조그만 실리콘-게르마늄 검출기는 예술 작품 다루듯 다뤄야 할 정도로 굉장히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이 검출기들은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끈기 있게 암흑 물질에 대한 미세한 단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실험들은 원시 반물질을 탐사하고, 우주 배경 복사(빅뱅에서 남겨진 복사 에너지) 연구를 위한 실험을 위해 성층권에 떠 있는 거대한 기구에 비하면 왜소하다.
실험 물리학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입자 충돌기인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LHC에서는 무게가 수천 톤에 이르는 기계들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확도로 아원자 입자들의 궤적을 모니터하고 있다. 이 입자들은 각각 400톤의 기차가 시속 15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에너지를 갖고 이동하는 양성자 빔의 충돌에 의해 발생한다. 먼 우주보다 낮은 온도의 초전도 자석은 이 빔들이 27킬로미터 길이의 지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 양성자 충돌이라는 가마솥 속에서 튀어나오는 새로운 입자들 중에는 힉스 보손에서부터 여분 차원에 대한 최초의 단서가 되는 암흑 물질에까지 이르는 입자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거대한 망원경과 검출기들은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 이런 비현실적인 환경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속에서 드물게 그 진가가 알려지거나 종종 간과된 채 찬양받지 못할 것이다. 한 자락의 풀잎도 자라지 않는 칠레 안데스 산맥 고지의 아타카마 사막 상공의 차고 마른 공기는 수십 억 년을 이동해 온 별빛이 마지막 단계에서 수증기 같은 일상적인 요소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망원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물론 허블 우주 망원경처럼 우주에 세워진 장비들은 빛에 미치는 대기의 유해한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수정처럼 맑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는 최첨단 수중 뉴트리노 망원경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러시아 물리학자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참아가며 얼어붙은 호수 위에 캠프를 차리고 수중 장비로 실험을 하고 있다.
지구 표면 아래로 내려가는 데에는 이와 유사한 장점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미네소타의 버려진 철광 깊은 곳에서 800미터 두께의 바위로 무질서한 우주선cosmic ray으로부터 검출기를 차폐시킨 채 암흑 물질을 쫓고 있다. 드릴과 대형 망치로만 이 광산을 파느라 땀에 흠뻑 젖었던 광부들은 오늘날 그들이 팠던 광산에서 우리 우주의 성질을 해독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남아프리카 내륙의 거대하고 건조한 땅―인적이 끊긴 이 광대한 황무지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장비들보다 빠르게 우주를 크게 훑을 수 있는 3,000개의 안테나를 갖춘 세계에서 가장 큰 라디오 망원경의 후보지로 제시되었다.
극한의 목적지를 따져 본다면, 평균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가장 건조하며, 가장 고도가 높은 대륙으론 남극 대륙에 비견될 만한 곳이 없다. 이곳은 날카로운 들숨이 폐를 화끈거리게 할 정도로 추운 땅이다. 습기를 머금은 날숨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한순간의 방심으로 눈 덮인 크레바스의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주론자들은 얇고 건조하며, 안정적이고 오염되지 않은 대기 때문에 남극 대륙의 고원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은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할 수 없는 정도의 정확도로 우주 배경 복사를 탐사하기 위해 거대한 망원경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남극 대륙의 대기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또 수 킬로미터 두께에 달하는 남극점의 얼음을 뉴트리노 검출기로 바꾸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발견하기 힘든 입자를 연구하는 데 쓰일 수 있을 만큼, 이처럼 거대하고 투명하며 단단한 물질은 다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얼어붙은 황무지는 우리를 양자 중력의 정확한 이론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실험 우주론의 핵심인 외딴 곳들에 대한 찬가이다. 칠레의 어두운 밤하늘에 흩어져 있는 은하수든 히말라야의 8,000미터 봉우리들로 세계와 격리되어 있는 티베트 고원의 외딴 구석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계곡이든, 이들은 놀라운 솜씨로 우리를 감탄케 한다. 여러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장소들은 심오한 미니멀리즘을 공유한다. 이곳에는 외부의 간섭도 잡음도 현대 사회의 방해도 없다. 남극 대륙에서 만났던 한 빙하학자는 너무나 극심해서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눈보라만 마주칠 뿐인 그곳에서, 그가 느꼈던 “절대적인 고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면 이런 장소가 우주론에 필요할 것이다.
(프롤로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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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아닐 아난타스와미 Anil Ananthaswamy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나는 인도의 산맥을 배경으로 하는 물리학과 우주론에 관한 소설을 쓰다가 글이 풀리지 않아 산꼭대기에 있는 천문대로의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다 우연히 201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사울 펄뮤터를 만나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꼭대기만이 아니라 광산 깊숙한 곳과 사막 등 극한의 환경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곳에서 물리학, 특히 우주의 기원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글로 쓴다면 어떨까. 그날부터 내 관심은 소설에서 여행기로 바뀌었고, 4년의 시간에 걸쳐 마침내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누구나 우주를 떠올리면 그 광활함에 압도되어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주를 하나하나 알아가며 일상 속에 갇힌 시야를 넓혀간다면, 우리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닿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감히 이 책이 인류의 여정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도 최고 권위의 대학인 인도 공과대학과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전자 공학과 전기·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그 후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으며, UC 산타크루즈에서 과학 저널리스트 과정을 밟았다. <뉴사이언티스트>의 편집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뉴스>의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www.edgeofphys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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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연중
“이 책을 번역하기 전까지 물리학은 숫자에 불과했다. 학생 시절 노트 위에 쉽게 써내려 갔던 그 숫자들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달까.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일상 뒤에 감춰진 물리학의 세계를 탐험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물리학 전공으로 인해 멀어졌던 대중 과학에 대한 관심이 두 번째 번역으로 고취되었으며, 다음에는 내 책을 써야지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초끈 이론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영상 처리 알고리즘과 행복한 가정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번역서로는 『숨겨진 우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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