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는 말
냄새가 먼저였다. 갈대 바구니. 그걸 열었을 때 확 끼친 것.
잠시 숨을 멈추었다. 매캐한 안개 같던 냄새가 옅어졌다. 시야가 걷히고 종이뭉치가 보였다. 백상지白上紙. 오래되어 고지藁紙처럼 누렜다.
색깔과 탄력을 모조리 잃은 종이뭉치는, 한 덩이 나무토막이었다. 그것을 담고 있던, 오래된 바구니 빛깔과 다르지 않았다. 한 장의 종이를 따로 들어 올리는 것마저 어려웠다. 다른 종이가 붙어 따라 올라왔다.
첫 장의 글자들은 희미하고 어지러웠다. 연필로 쓴 글씨였다.
첫 장에 적힌 글은 이랬다.
제기랄. 웃겨. 웃기지 맘. 모모와레逃割れ. 모모와레. 모모와레를 안다. 모모와레를 한다. 하고 싶다. 사람들 웃어. 웃습니다. 싫어. 한자 안 돼. 그린다. 그립니다. 열심히 그림이다. 그래도 모모와레는 합니다. 하고 싶다. 나는 열다섯 살입니다. 텐도 요코. 내 이름. 열다섯 살 모모와 레가 좋다.
사토 상은 마루마게丸髮를 좋아한다. 열세 살 마루마게를 좋아한다. 열세 살 때 그래놓고, 그따위 해놓고, 제기랄, 나를 매우 벗깁니다. 내 젖을 만지고 문다. 작은 젖은 아프다. 사토 상 고추. 그 가지 고추. 크고 꺼멓고 길어. 털. 부엌칼로 싹뚝 잘라서, 싹뚝 싹뚝 그걸 잘라서 싹뚝 싹뚝 죽인다. 사토 상 죽이고 싶다. 열세 살. 나는 만날 아프고 만날 숨이 찬다. 숨이 찼다. 막 찼다.
여기는 타케다武田 아파트アパ―ト. 가타카나가 쉬워. 아파트 가케안돈 懸行燈은 빨갛습니다. 나는 숨고 사토 상 이제 없다. 죽어버려, 사토 상. 가케안돈. 저녁 복도에 사람들 다닌다. 타케다 아파트. 한자 어렵고 가타카나 쉽다. 일본 사람 중국 사람 조선 사람. 아파트에는 백 명도 산다. 지겹다. 싫어, 다. 지금은 일흔일곱 명. 타케다 아파트. 긴 마루 복도. 다야마는 발소리가 크다. 교토제국대학 미친놈. 마루야마 목소리 크다. 구마모토 촌놈. 맨 뒤엔 소리 없다. 그 사람 히라누마. 맨 뒤, 말 없는 사람. 히라누마 성 괜찮은데 이름 짜증 나. 히라누마가 낫지. 낫다. 조선인이다. 그 사람 히라누마. 부르기 힘든 이름. 돈주.
두번째 종이는 잉크 글씨였다. 선명하고 가지런했다. 내용은 이랬다.
글을 늦게 배웠다. 말하는 것처럼 쓰지 못했다. 열다섯 살이었다. 열다섯에 처음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배우고, 조금씩 한자를 익혔다. 말은 그럭저럭 했으나 글은 말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읽고 있으면 바보 같았다. 그래도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저녁에 다다미에 엎드려 종이를 펴고, 연필에 침을 발라 썼다. 저녁 내 써도 종이 한 장 채우기 힘들었다. 오래 엎드려 있으면 허리가 아팠다. 종종 종이에 구멍이 났다. 쓰는 게 아니라 그리는 거였다. 히라가나든 가타카나든 한자든. 말이 글자가 된다는 게 신기했을 뿐이다. 바보 같아도 상관없었다. 열다섯 살이었다.
그때까지 누구도 나에게 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글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글을 못 쓰게 윽박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글을 배우지 않았고 그래서 쓰지 못했을 뿐이다.
글자를 알려 하지 않고, 서둘러 피했다. 모르는 건 막막하고 무서웠다. 나는 글자를 모른다…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글자들이 나를 무시하는 듯해서 내가 먼저 눈을 돌려 글자들을 무시했다. 여기저기서 글자들은 나를 노려봤다. 반사적으로 외면했다. 그때까지 글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다.
환갑이 넘도록 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사정을 나는 잘 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외면했기 때문이란 것을. 게을러서가 아니라 무서웠기 때문이란 것을.
나는 훨씬 더 늦게, 마흔이 넘은 나이에, 또 하나의 말과 글을 배웠다. 태어나 절로 익힌 입말과 열다섯에 깨친 글말과도 전혀 다른 말과 글. 지금 나는 그 말을 하고 그 글을 쓴다.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이타츠 푸리 카. 언어의 비단이란 뜻이다. 과분하다. 마쓰이 쓰네유키松井恒幸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글은 계속되었다.
이쯤에서 먼저 말해두어야겠다. 우선 나에 대해.
나는 이 글을 한글로 쓴다. 나는 한글을 몰랐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고 공부했다. 나는 일본인이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1996년, 열세 살 때 알았다. 이삼 초쯤 멍했다.
그러나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안 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 눈을 끔뻑거렸을 뿐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 때와 들었을 때, 그사이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삼 초쯤 멍했고, 눈을 두 번 끔뻑거린 뒤에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그 뒤로도 십 년 동안, 나는 이전의 십삼 년처럼 살았다. 넌 조선 사람이야. 낫도를 밥에 비비던 어머니가 그 말을 한 뒤에도 여전히 낫도를 비볐던 것처럼.
사는 데 특별히 불편한 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편한 거라곤 시도 때도 없이 비어져 나오는, 왼손 엄지손톱 가장자리의 거스러미뿐이다. 거스러미. 국적과도 언어와도 상관없는 것. 그뿐이다.
내 한국어 공부는 스물셋에 시작됐다. 지금은 스물일곱. 사 년 동안 열심히 배웠다. 배워서 쓸 줄 알게 되었다. 히토쓰바시 대학 이연숙 교수의 책을 읽으며 힘을 냈다. 일본에 뒤늦게 왔지만 일본어를 아주 빠르게 익혀 일본 사람보다 더 잘 말하고 쓰는 한국인 학자.
이 년 반 동안 한국에 유학했다.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민속학을 수학했다. 나에게 한국어 욕을 제대로 가르쳐준 동갑내기 태용이 놈, 떡볶이 도사 슬기, 스타크래프트의 제왕 현석이, 소주를 다섯 병이나 처먹는 진석이. 모두 그립다.
이 글을 쓰게 한 것이 위에 인용한 종이뭉치다. 부장품 냄새를 풍기는, 갈대 바구니 속 오래된 종이뭉치.
“글로 써야겠군.”
그걸 입수한 사정을 내비치자 일본인 친구 히토시가 말했다. 내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튀어나온 반응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은밀했다. 친구의 서늘한 음성이, 정말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순간적으로 먹게 했다. 신주쿠 어느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이었다.
“책 내줄 거야?”
친구에게 물었다. 출판사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였다.
“노력해볼게. 에이전시를 아니까.”
에이전시라니. 한국에서 출간하라는 얘기였다. 그냥 해본 소리란 걸 그제야 알았다. 언제 한번 보자. 그런 것과 비슷한 말.
두 주일 뒤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계약 의사를 밝혀왔다는 한국 출판사 이름을 알려줬다. 내게서 들은 얘기를 히토시가 시놉시스로 작성해 한국으로 발송했다는 말과 함께. 지나칠 만큼 꼼꼼하고 세세한 시놉시스였다고 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① 일본어로 쓴다. 한국의 누군가가 번역한다.
② 일본어로 쓰는 것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전부 내가 한다.
③ 직접 한국어로 쓴다.
한국어라면 기역 자도 읽고 쓰지 못했다. 그러면서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③이었다.
일본어는 문제없었다. 당연히 말하고 썼다. 글 쓰는 일도 남에게 특별히 뒤지지 않았다.
다만 내 글이 번역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한국어를 배워 직접 쓴다면 ‘바보’ 같을 게 분명했다. 일본어로 쓰고 그걸 내가 번역하면 어떨까. 바보 같지는 않겠지. 오래 망설였다. 그리고 결정했다. ③.
번역할 수 있다면 어찌하여 직접 못 쓸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보스러움을 개의치 않는다면. 더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자고 다짐했다.
한국어로 쓴다는 건 모든 걸 애당초 한국식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내가 쓰고 내가 번역하는 일일지라도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게 나의 계약 조건이었고, 못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게 한국 출판사의 응답이었다.
사 년이 걸렸다. 나는 지금 한글로 이 글을 쓴다. 벅차다. ‘확 끼친’ 같은 말을 쓰는 내가 신기하다.
한국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고지藁紙’라는 단어를 부득이하게 쓰기도 하지만 ‘가지런했다’ ‘끔뻑거리다’ ‘거스러미’ ‘처먹는’ 따위의 말을 쓸 때면 나도 모르게 전율한다. 이런 말까지 쓸 줄 알다니!
내가 여기에 적는 글은 히토시에게 했던 이야기다.
맥주 세 잔 마실 동안의 짧은 얘기를 부풀리고 있을 뿐이다. 부풀리는 게 아니라면, 히토시에게 술집에서 했던 말이 외려 지나치게 축약되었던 건지도.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그랬기에 히토시가 그토록 시놉시스를 훌륭하게 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지금 나는 부풀릴 것도 줄일 것도 없이, 쓰고 있을 뿐이다.
도입부에 인용한 글에 대해서도 말해둘 게 있다.
앞엣것은 희미하고 어지러운 연필 글씨, 뒤엣것은 선명하고 가지런한 펜글씨라는 점은 이미 얘기했다.
덧붙이자면, 그 두 글은 한 사람의 것이다.
앞엣것은 그녀가 열다섯에 막 글을 배우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고, 뒤엣것은 중년에 이르러 쓴 글이다. 필기도구와 필체는 물론 종이도 다르다. 텐도 요코, 이타츠 푸리 카. 이름마저 다르지만 둘은 분명 한 사람이다.
연필 글씨와 펜글씨가 번갈아 나온다. 연필 글씨가 본문이고 펜글씨가 각주라면, 각주가 훨씬 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주해본 같다.
두 글을 나란히 놓고 보자면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두 글 모두 번역된 데다 한국어 활자로 실리기 때문에 여기에선 구별이 안 된다. 번역은 그런 것이다.
연필 글씨는 미숙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그리고 획수가 정확치 않은 한자가 드문드문 섞였다.
펜글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 모두 로마자다. Tanpe anakne seta ne. 이런 식이다.
그녀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새로 배운 언어다. 열다섯의 어린 텐도 요코가 쓴 글은 일본어였기 때문에 내가 번역했다. 중년의 이타츠 푸리 카가 쓴 글은 그럴 수 없었다. 로마자로 쓰인 그녀의 글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되지 않았다.
지독한 고립어. 아이누어였다.
아이누어 연구가가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내가 한글로 중역重譯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글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걸 원치 않았다. 내가 번역하는 것도 싫었다. 직접 쓰고자 했다.
그랬으면서, 그녀의 글은 번역했고 번역을 의뢰했다.
그녀의 글들을 번역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랬다. 번역을 해도 원문은 남는다는 것. 이미 홋카이도 니부타니二風谷 아이누 문화자료관에서 그녀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 원문이 있어서 오역과 의역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언제든 대조가 가능하니까.
원문 없는 번역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원문이 소실되고 번역만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적어도 그녀의 글들은 그리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이 점이 번역 결정의 부담을 덜었다.
내 글을 일본어로 쓰고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그리고 원본이 남게 된다면, 남는 원본은 일본어일 수밖에 없다. 내 원본이 일본어로 남길 바라지 않았다. 나는 한국어 원본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이타츠 푸리 카는 마흔이 넘어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 ‘언어의 비단’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왜 그녀는 그래야만 했을까. 홋카이도 주민들도 다 일본어를 쓰고, 아이누어는 일상어가 아니며, 보존이 시급한 유물이나 유적 같은 것인데.
그녀보다 훨씬 이르게 나는 새 언어를 시작했다. 한국어 또한 고립어로 분류되나 엄연히 살아 있는 국가 공용어며 실용어며 일상어다.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어 능력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로또 당첨에 비유한다.
중요성. 그녀보다 내가 덜 절박하다 하여 그 언어의 중요성이 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사용인구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언어라는 것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언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어 나는 다소 긴 글을 쓰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말해야겠다. 다는 아니지만 매우 많은 분량의 글을 그녀는 ‘동주’에게 할애하고 있다는 점.
윤동주尹東柱. 한국 사람 중 이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본인 중에도 윤동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윤동주가 그런 윤동주이기 전에 그녀는 이미 ‘동주’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종 ‘동주’라고 썼다. 처음엔 성과 이름 모두 히라가나로 썼다.
히라누마ひらぬま 돈주どんじう.
히라누마는 윤동주의 창씨創氏인 ‘평소平沼’의 일본식 훈독訓讀이다. 이름을 일본식 음독音讀인 토-쮸-とうちゅう라 하지 않고 한국식 발음에 가까운 ‘돈주’라 한 것만 봐도 그녀가 시인의 이름과 표기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알 수 있다. 웬만큼 귀담아듣지 않고는 どんじう라 표기하기 어렵다.
한자가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東柱로만 썼다. 펜글씨에는 모두 Toncu다.
どんじう든 東柱든 Toncu든, 그녀가 알았거나 쓰거나 발음했던 동주는 지금 내가 발음하는 동주와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지금 완벽히, ‘동주’를 발음하고 쓴다. 동주. 동주.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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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구효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마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로 1994년 한국일보문학상, 「소금가마니」로 2005년 이효석문학상, 「명두」로 2006년 황순원문학상, 「시계가 걸렸던 자리」로 2007년 한무숙문학상,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으로 2007년 허균문학작가상, 『나가사키 파파』로 2008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 『노을은 다시 뜨는가』『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도라지꽃 누님』『시계가 걸렸던 자리』『저녁이 아름다운 집』, 장편소설 『전장의 겨울』『슬픈 바다』『늪을 건너는 법』『낯선 여름』『라디오 라디오』『남자의 서쪽』『내 목련 한 그루』『악당 임꺽정』『몌별』『노을』『비밀의 문』『나가사키 파파』,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인생은 깊어간다』, 동화 『부항소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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