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당신 몸속 시계는 몇 시인가
이 책은 시계에 대한 이야기다. 돈 주고 사서 손목에 차고 다니거나 벽에 걸어놓는 시계가 아니라, 우리 신체 안에서 똑딱거리는 시계에 관한 이야기다. 체내 시계(body clock)는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뒤늦게 고안된 산물이 아니다. 인간뿐 아니라 포유류에서 단세포생물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체내 시계를 가지고 있다. 체내 시계가 없거나 체내 시계를 거슬러 사는 동물은 일찌감치 잡아먹히든지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이는 체내의 생체 시계(biological clock)가 지구상 생물들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체내 시계를 거스르는 것은 또한 건강을 해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체내 시계에 맞춰 살기가 매우 힘들다. 어떤 사람은 여행길에 올라 단숨에 여러 시간대를 횡단하고, 어떤 사람(산업국가 노동인구의 약 20퍼센트)은 교대 근무를 한다. 시차증으로 고생해본 사람이라면 체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 몸에 얼마나 무리를 주는지 알 것이다. 하지만 교대 근무를 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여러 시간대를 횡단하지 않는 사람도 만성 시차증에 시달릴 수 있다. 그것을 ‘사회적 시차증(social jetlag)’이라 한다.
이 책은 시계에 관한 책이므로 당연히 시간을 다룰 것이다. 그러나 체내 시계의 시간은 직장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제시간에 기차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저녁 뉴스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시간(social time)과는 좀 다르다. 사회적 시간은 인간의 사회생활에 기준이 되는 시간이다. 19세기에 사회적 시간과 태양을 기준으로 한 현지 시간(local sun time, 즉 local time)은 서로 일치했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을 때가 정오였다. 수백 년간 이런 식으로 시간이 정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간 규정은 철도가 발명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단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태양을 기준으로 지역마다 시간이 다른 것을 상당히 불편하게 여겼다. 여행자들이 거의 모든 역마다 시계를 새로 맞춰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각국은 1884년 표준시간대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런던 근처 그리니치 천문대를 통과하는 영도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여 세계를 24시간대로 분할한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사회적 시간을 정하기 위해 24시간대 안의 어느 시간대를 활용해도 무방하다. 그 지역민이 동의한다면 말이다(가령 중국은 그렇게 넓은 면적을 포괄하면서도 베이징 시간에 맞춘 단일 시간대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다양한 시간 체계, 즉 태양시(sun time), 사회적 시간, 개인적인 체내 시간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독자들은 각자의 체내 시계가 만들어내는 개개인의 체내 시간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체내 시간은 몸집, 눈 색깔, 성격처럼 사람마다 다르며 태양시 및 사회적 시간과 연관된다. 우리 각자에게 태양시나 사회적 시간보다 체내 시간이 훨씬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껏 체내 시계에 별 관심 없이 살아왔다. 우리는 매일 16시간 정도 깨어서 움직이고 생각하다가 ‘수면’이라는 ‘무의식’과 비슷한 상태로 옮아간다. 이러한 매일의 변화는 아주 당연하게 여겨져서, 그 토대가 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오랫동안 연구 대상으로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동물들은 태양이 뜨고 짐과 더불어 깨어나고 잠들며, 꽃들은 봉오리를 열고 닫고, 플랑크톤은 물기둥 안에서 올라오고 내려간다. 24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지구의 하루를 모델링하는 생체 시계가 이 모든 리듬을 조절한다. 그러나 잠과 깸의 교대가 하루 한 번 종잇장 뒤집듯 바뀌는 두 가지 존재 상태만은 아니다. 의식의 이 두 가지 상태는 유전자의 켜짐과 꺼짐, 신체 조직에서 호르몬과 전달물질의 조합이 계속 바뀌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신체 기능에서 진행되는 변화를 반영한다.
나는 수십 년 동안 단세포와 균류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생물을 대상으로 체내 시계의 토대가 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해왔다. 연구는 빛, 온도, 영양 같은 환경 요인을 조절할 수 있는 실험실뿐 아니라 공장 같은 실제 세계에서도 진행되었다. 나는 다양한 변수를 측정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루의 시간과 관련한 설문 조사를 하기도 했다.
(…)
체내 시계를 연구하면 할수록 나는 이런 연구가 우리 모두의 실생활에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점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체내 시계에 대해 공개 강연을 할 때마다 예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현상들에 매력을 느끼고 호기심을 보이는 청중을 발견했다. 생체 시계를 이해하면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며, 수면 패턴에 대한 선입견이 만들어낸 마음의 짐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가령 아침 7시에 가뿐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하거나, 밤 10시에 도저히 친구들과 외출할 기분(또는 기운)이 나지 않는 자신을 지루한 사람으로 치부하곤 했던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체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각 장의 짧은 이야기들은 체내 시계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의 각 장은 사례와 해설로 나뉘어 있다. 사례는 다양한 이야기 형식을 취한 학습 소재라 할 수 있다. 몇몇 사례는 약간의 문학성을 띠고 있고, 몇몇 사례는 다큐멘터리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례의 기본이 되는 소재는 학문적으로 정확한 것들이다. 많은 사례에서 나는 허구를 동원했다. 예컨대 나는 18세기의 천문학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체내 시계 현상을 발견했는지 구체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그 후 그 현상은 거의 250년간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글에 기초하여 그의 생각들을 유추했고, 그의 주변 세계가 어땠을지 상상력을 발휘했다. 몇몇 사례는 최근의 새로운 학문적 발견들에 관한 것이다. 나는 독자들로 하여금 특정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학자들이 어떻게 그런 발견에 이르렀는지 독자들이 더 잘 실감할 수 있도록 그런 사례를 고안했다. 앞에서 말했듯 이런 사례의 많은 부분은 정확히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 어떤 부분(가령 학자가 실험실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등등)은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하기 위해 픽션으로 처리했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내가 지어냈지만, 필요한 경우 각주에 이름을 밝혀놓았다. 몇몇 사례는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나는 모든 사실을 다 밝히지 않음으로써 독자들 스스로 추측하거나, 해설에서 비로소 의문을 풀 수 있도록 했다.
사례를 통해 나는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일깨우고 싶다. 사례를 읽은 뒤 곧장 해설로 넘어가지 말고 사례의 내용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가? 경험상 알고는 있지만,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내용은 어떤 것인가? 각 장의 후반부, 즉 해설에서는 각 사례의 토대가 되는 사실을 다룰 것이다. 부디 독자들의 궁금증이 해결되고, 체내 시계에 대한 지식이 독자들의 삶에 적용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그냥 마음 편하게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례를 고안하여 독자들이 최대한 쉽고 흥미롭게 학문적 주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사례를 읽은 후 곰곰이 그 내용을 생각해보라.
해설은 사례보다는 약간 까다로울 것이다. 해설을 통해 체내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며, 체내 시계가 어떻게 생물학적 기능에 중요한 체내 시간을 만들어내는지 학문적 설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체내 시간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세세한 학술 정보는 생략했다. 역사적 배경도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너무 많은 학자들 이름으로 독자들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체내 시계의 생물학을 이해하려면 최소한의 생물학은 이해해야 한다. 나는 생물학적 설명들을 가능하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체내 시간 시스템이 생물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내용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이런 설명들을 자제해왔다. 학자들마저 여전히 체내 시계를 중요시하지 않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뮌헨 대학 의학부에 출근한 첫날, 나는 인사차 동료 교수들을 방문했다. 그들은 모두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었으나, 체내 시계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숨기지 못했다. 한 사람은 “그 모든 것은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체내 시계는 기껏해야 아주 민감한 사람들에게나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책에서 생물학적 설명과 함께 체내 시간이 생물학적 현상이며, 시간생물학자들이 분자학적·유전학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체내 시계의 기능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매번 다른 측면에 집중하며 이 책을 여러 번 읽어도 좋을 것이다. 나의 목표는 독자들이 체내 시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으로 무장시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이 우리 일상에 체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는 것은 내게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내가 누렸던 즐거움을 독자들도 책을 읽는 가운데 누리기를 바란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흥미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재미있게 읽은 내용은 기억에 절로 들어온다.
(서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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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틸 뢰네베르크 Till Roenneberg
뮌헨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시간생물학계’ 삼대 거장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위르겐 아쇼프 교수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과학도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에서 전공으로 물리학과 의학을 택해보았지만, 인간에 대한 끊이지 않는 호기심 때문에 진화·유전·심리·생태를 탐구할 수 있는 생물학으로 전향했다. 뮌헨 대학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광생물학·신경생리학·뇌과학을 거쳐 시간생물학으로 복귀해 하버드 대학에서 다년간 연구했다. 현재 뮌헨의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 소속 의학심리 연구소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간의 시간유형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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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유영미
학부와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 게임』『감정사용설명서』『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몸의 행복』『땡전 한 푼 없이 떠난 세계 여행』 등이 있다.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로 2001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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