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엄마에게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엄마는 여자다. 그리고 아빠는 남자다. 엄마는 알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주신다. 여자는 머리카락이 길고 치마를 입으면 여자라고 한다. 그리고 남자는 머리카락이 짧고 바지를 입으면 남자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머리 길고 바지 입은 사람은?” 하고 물었다. 엄마는 생각하시다가 “그건 아무래도 여자가 맞겠지”라고 하셨다.
“거기 고양이 가져가.” 봉지솜사탕을 사러 슈퍼에 갔는데 귀엽게 생긴 고양이가 웅크리고 날 바라보고 있다. “가져가도 되나요?” “응, 며칠째 저러고 있네. 가져가서 뭐 좀 먹이거라.” 나는 “네” 하고 고양이를 안았다. 나는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양이를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 보고 고양이를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 보았다. 강아지들을 피해 고양이를 들고 집에 들어가니 엄마와 아빠는 저녁을 먹고 계셨다. 고양이를 본 엄마는 놀라시더니 당장 밖에 내놓고 오라고 했다. “밖엔 뽀삐가 있는데?” 아, 그래도 밖에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고양이를 밖에 내놓으려고 하는데 고양이는 나를 놓지 않으려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나를 여기저기 할퀴었다. “이따가 밥 먹고 내가 집 만들어줄게.” 얼마 후 밥을 모두 먹고 내가 마당에 갔을 땐 고양이가 여기저기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나는 엄마를 한 번 보고 뽀삐를 한 번 보았다. 나는 그곳에 먹었던 저녁을 모두 토했다.
아빠는 말이 없다. 가끔 말을 많이 하시는데 그럴 땐 너무 말을 많이 하셔서 도저히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빠가 거창한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아빠의 일은 거창하다. 그래서 집에 자주 없다. 그에 반해 엄마가 하는 일은 힘들다. 잘은 모르지만 엄마가 힘들다고 하니까. 운동회에도 오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일이니까. 일을 다녀오시면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잠이 드시니까. 아빠의 일은 거창한데 엄마의 일은 거창하지 않다. 아빠는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엄마는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여자지?” 엄마는 대답했다. “응.” 내가 물었다. “왜?” “여자니까.” “나는 남자지?” 엄마는 그렇지,라고 말했다. 나는 “왜?”라고 물었다. 엄마는 고추가 달리면 남자고 고추가 없으면 여자라고 했다. 나는 고추가 있다. 그래서 남자다. 그런데 왜 나는 고추가 달렸을까. 엄마는 아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엄마가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서울로 전학을 왔다. 선생님은 나에게 웃지 말라고 했다. 나의 이빨은 못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다. 내일은 학교 가기 싫다. 내가 웃으면 선생님이 웃지 말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학교가기 싫다. 그런데 내 친구 지호는 너무 웃긴다.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해도 웃긴다. 혼나도 웃긴다. 나는 지호를 보면서 입을 가리면서 웃고 지호는 선생님께 혼나면서 나를 웃긴다. 내일은 지호가 나를 웃겨서 선생님께 또 혼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가장 큰 걱정은 나의 못생긴 이빨이다.
학교에서 종이를 주었다. 그 종이는 가족에 대해 쓰는 거라고 했다. 아빠의 직업. 엄마의 직업. 나는 “엄마 어디 학교 나왔어?” 라고 물었다. 나는 엄마의 학교를 적기 위해 물었다. 엄마는, “서울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대’라고 썼다. 엄마는 종이를 가져가더니 종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연필을 가져가서 ‘국졸’이라고 썼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가서 설거지를 했다.
엄마는 검은 봉지를 들고 힘겹게 신발을 벗으셨다. 나는 엄마의 손에 들린 검은 봉지를 먼저 잡으며 엄마를 반겼고 엄마는 말없이 그 봉지를 내미셨다. 엄마가 씻고 화장을 지울 때까지 나는 엄마가 사온 음식을 먹으면서 엄마가 씻는 것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머리를 위로 올리곤 얼굴을 씻었고 그리고 이내 발을 씻으셨다. 엄마는 발을 유난히 깨끗하게 씻는다. 나는 발을 오래 안 씻는데. 엄마는 발을 오래 깨끗하게 씻는다. 그러고는 얼굴에 뭐를 바르시다 거울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셨다. “다 먹었니.” “응.” 거기 두고 이빨 닦고 와. 엄마가 치울게, 하시자마자 나는 이빨을 순식간에 씻고 왔다. 정말 빠르게. 엄마는 나를 보며 “남자는 그러면 안 된다” 하셨다. 나는 차가운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고 엄마가 곧바로 들어오셨다. 엄마가 들어오면 이불이 따뜻해진다.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고 한숨을 한번 크게 쉰 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코를 골았다. 나는 낮에 잠을 많이 자서 엄마처럼 빠르게 잠들 수 없었다. 나는 자고 있는 엄마를 한참 쳐다보았다.
나는 돈키호테를 보고 있다. 돈키호테가 풍차 앞에서 멋스럽게 서 있는 장면을 보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여기 돈키호테 좀 보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보지 않으셨다. 아빠에게 돈키호테 좀 보라고 했다. 아빠는 책을 한번 집어 드시더니 굉장히 빠르게 책장을 넘기셨다. 그러고 책을 턱, 덮으시곤 돈키호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설명하셨다. 아빠는 그 모습이 우습고 귀엽다고 하셨다. 결국 돈키호테가 잘못 생각하는 거라고 쉽게 결론 내어주셨다. 나는 돈키호테를 그만 보고 싶어졌다.
(본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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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글_김경원
돈워리컴퍼니(dontworryworry.com)에서
걱정이를 만들고 있다.
그림_독수공방 doksugongb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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