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더 많이 요구하라, 그러면 더 많이 얻을 것이니
1. 290만 달러짜리 커피
81세의 할머니가 엄청난 보상금을 받은 비결
1994년 미국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의 배심원들은 펄펄 끓는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은 스텔라 리베크에게 맥도날드가 29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리베크는 3도의 화상을 입었지만, 그 대신 전 미국인들의 동정을 살 수 있었다. 심야 토크쇼와 출퇴근 시간대의 라디오에서는 리베크 이야기를 화제로 삼았다. 라디오 토크쇼에 나온 전문가들은 이 소송을 미국 법률체계의 맹점을 보여주는 넘버원 사건으로 보았다. 시트콤 <사인펠드>에서는 크라머(<사인벨트>에서 주인공 앞집에 사는 멀대같이 키가 크고, 아주 이기적인 인물)가 커피를 쏟은 후 소송을 거는 이야기를 다뤘고, 사법체계를 엉뚱하게 곡해한 사건들에 대해 ‘얼간이 상’을 주는 ‘스텔라 시상식’이라는 웹사이트도 생겼다.
물론 리베크가 입은 화상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사고 당시 그녀는 손자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맥도날드의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창문에서 커피를 샀고, 손자는 리베크가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넣을 수 있도록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녀가 다리 사이에 컵을 고정시키고 뚜껑을 열려던 순간, 커피를 쏟았다. 리베크는 사타구니 부위와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에 피부이식수술을 받아야 했고, 여기에 1만 1,000달러를 썼다. 여기서 골치 아픈 문제는 맥도날드를 상대로 한 그녀의 소송이 얼마짜리일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리베크는 맥도날드에 2만 달러를 청구했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이 요구를 거절했고, 대신 그녀에게 800달러를 주고 입막음하려 했다.
리베크의 변호를 맡은 인물은 뉴올리언스 출신의 S. 리드 모건이라는 변호사였는데, 그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을 맡은 경험이 있었다. 1986년 휴스턴에 사는 한 여성이 맥도날드에서 산 커피를 쏟아 3도 화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소송을 맡은 사람이 모건이었다. 그 당시 모건은 남부 억양이 섞인 매력적인 바리톤 음색으로 맥도날드의 커피는 너무 뜨겁기 때문에 ‘결함이 있다’는 법적으로 아주 기발한 의견을 내놓았다. 맥도날드 품질관리 직원들이 커피는 약 82~87도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온도는 다른 체인점에서 제공하는 커피보다 더 뜨거운 온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휴스턴에서의 소송은 2만 7,500달러를 배상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모건은 휴스턴 소송 이후 커피 화상을 둘러싸고 제기된 소송들을 면밀히 검토했고, 1990년 캘리포니아에서 한 여성이 맥도날드 커피로 화상을 입고 소송을 걸어 23만 달러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리베크 사건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캘리포니아소송 건에서는 커피를 쏟은 사람이 맥도날드 직원이었다는 점이었다.
리베크는 본인이 커피를 쏟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볼 때 23만 달러를 받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모건은 이전 판례를 무시하고,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심리학적 테크닉을 사용해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였다. 그가 사용했던 테크닉에 대해서는 잠시 후 이야기하도록 하자. 당분간 그가 사용한 테크닉을 달러 표시로 표현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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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용한 테크닉은 성공적이었다. 배심원들은 리베크에게 자그마치 29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배상금을 판결했다. 화상 피해에 대해 16만 달러,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27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배심원들이 이 결정을 하는 데까지는 네 시간이 걸렸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960만 달러의 배상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심원들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로버트 스콧 판사는 배심원들의 판결이 너무 과하다고 여겨(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했을 테지만) 금액을 48만 달러로 대폭 삭감했다.
물론 맥도날드는 이 삭감된 금액조차 납득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81세의 리베크가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해서 조금도 더 젊어질 리는 없었다. 정확한 금액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맥도날드와 6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으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홈런을 쳤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기회는 평생 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최근에 스키피 땅콩버터는 플라스틱 용기의 디자인을 바꾸었다.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소재한 시몬-커처 앤 파트너스SKP, Simon-Kucher & Partners 사의 컨설턴트인 프랭크 루비Frank Luby에 따르면 “이 용기의 바닥은 원래 평평했는데 지금처럼 바닥을 움푹 들어가게 만들어 약 2온스 정도의 땅콩버터를 덜 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 용기에는 버터를 18온스 담을 수 있었는데 새로운 용기에는 16.3온스가 들어간다. 물론 스키피 사는 땅콩버터를 이전과 똑같은 가격으로 팔고 있다.
이 땅콩버터 용기의 모양은 심리학 문헌에서 일관된 자의성coherent arbitrariness이라고 소개된 새로운 가격 설정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자신이 사려는 물건의 가격이 실제로 얼마여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슈퍼마켓 진열대로 멍하게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신호cue들을 받고,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신호인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로부터 가격을 판단해버린다. 일관된 자의성이란 상대성과 관련된 이론이다. 구매자들은 상품의 절대적 가격보다 상대적인 가격 차이에 더욱 민감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키피 버터 용기 모양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10퍼센트 정도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는데, 만일 스키피 사가 가격을 실제로 10퍼센트 올렸다면(예를 들어 3.39달러가 되었다면) 가격 인상을 눈치챈 소비자들은 다른 회사 제품으로 옮겨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일관된 자의성 이론에 따르면 용량이 줄어들어도 실제로는 가격이 인상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불만 없이 구입한다는 것이다.
루비는 시카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가격 컨설턴트가 된 뒤 그는 종종 마술사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마치 마술사처럼 구매자들이 무엇을 인식하고 무엇을 기억할지를 조종해달라는 요구를 받곤 하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스키피 땅콩버터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구매한 가격을 기억하고 있다. 컨설턴트들은 이런 종류의 상품은 포장을 이용해 “눈에 띄지 않도록” 교묘히 속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2008년 여름에 캘로그 사에서는 코코아 크리스피스Cocoa Krispies, 프루트 룹스Froot Loops, 콘 팝스Corn Pops, 애플 잭스Apple Jacks, 그리고 허니 스맥스Honey Smacks 시리얼 상자의 앞뒤 폭을 단계적으로 조금씩 얇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대부분 구매자들은 선반에 놓여 있는 상자의 정면 가로와 세로 길이만 보고 구매 결정을 하고, 그 후에는 곧바로 다른 생각에 빠지기 마련이다.
제스트 사는 레몬 바의 모양을 약간 바꿈으로써 중량을 1/2온스 가량 줄였다. 그러나 포장박스의 크기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퀄티드 노던Quilted Northern 사는 울트라 플러시Ultra Plush라는 화장실용 휴지의 폭을 0.5인치 줄였다. 티슈 제조업자들은 티슈 한 장의 세로 길이를 8.6인치에서 8.4인치로 줄였다. 하지만 티슈 박스의 크기는 예전과 동일하게 가로 9.5인치로 그대로 두었고, 가격도 그대로 두었다. 대신 박스 내부의 숨겨진 빈 공간은 공기로 채워놓았다. 하지만 입구가 가운데 있어서 구매자들은 이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예전의 티슈와 새것을 직접 비교해보지 않는 이상 이 속임수를 알아챌 수 없다.
물론 이런 속임수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이 방식을 계속 쓰면 시리얼 박스는 마분지 봉투만큼 얇아질지도 모르고, 땅콩버터 용기는 텅 빈 플라스틱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결국 언젠가는 누구나 눈치챌 수밖에 없는 변화를 가져와야만 하는 시점에 도달하고 만다. 이때가 바로 경제적 용량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포장박스가 등장하는 시점이다. 다만 크기, 모양, 디자인을 한꺼번에 모두 바꿔버림으로써, 눈으로는 이전 포장박스와 용량을 쉽게 비교할 수 없게 만든다. 소비자는 새롭게 포장된 제품을 새로운 가격에 사는 게 이전보다 이득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길이 없어, 고민하다가 상품을 그냥 카트에 던져 넣고 만다. 이렇게 포장박스의 크기를 줄이고 바꾸는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사기라고 생각하는가? 맞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사기는 너무 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빤한 속임수라는 걸 알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돈을 더 내고 예전 용량을 사는 게 낫겠다고 불평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사람들은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용량표를 꼭 비교해서 1온스당 가격이 얼마인지 확인한 후 사야겠다고 맹세하고, 이제는 절대 바보처럼 속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가격 컨설턴트들은 소비자들이 실제로는 그들의 말처럼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가격에 대한 기억은 짧고, 상자와 포장에 대한 기억은 더 짧다.
경제원론 시간에 배운 수요곡선에 따라 아무런 전략적 고려도 하지 않고 상품의 가격을 매겼던 시절이 있었다. 20~30년 전 보스턴 컨설팅Boston Consulting, 로랜드 버거Roland Berger, 리바이오닉스Revionics, 어텐가Atenga 같은 기업들은 가격에 얽힌 놀랍도록 복잡한 심리를 경영자들에게 컨설팅해주는 것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SKP는 선두 주자였다. 이 기업은 독일인 경영학 교수인 헤르만 시몬Hermann Simon이 두 명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1985년 독일의 본에서 창립한 회사다. SKP는 현재 미국의 케임브리지, 뉴욕,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전 세계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약 5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상당수의 물리학자들이 포함된 60명의 박사 연구원들을 비롯해, 가격 설정 분야에서 뜨기 시작한 신예 과학자들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기업은 스타트렉식 다국적 다인종의 세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연구소에는 인도, 한국, 독일, 스위스, 스페인 출신 직원들이 섞여 일하고 있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직원들에게는 각 지사를 오가며 순환근무를 하게 하고 있다. SKP는 매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직원들을 라인 강 인근의 성으로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곤 한다.
SKP는 우리가 지불하는 대부분의 가격에 관여하고 있지만 관여하는 분야가 너무 다양해서인지 그 강력한 영향력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른 종류의 컨설턴트에는 잘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 가격 설정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동일한 광고 대행사가 코카콜라와 펩시를 동시에 고객으로 갖는 경우는 없다(그러나 SKP는 그렇게 한다). SKP는 많은 산업에서 대여섯 개의 선도 기업들에게 동시에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프록터 앤 갬블, 네슬레,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모바일, 보다폰, 노키아, 소니 에릭슨, 하니웰, 타이센크럽, 워너뮤직, 베텔스만, 머크, 바이엘, 존슨 앤 존슨, UBS, 바클레이즈, HSBC, 골드만 삭스, 다우 존스, 힐튼, 브리티쉬 항공, 루프트한자, 에미레이츠 항공, BMW, 메르세데스, 폭스바겐, 토요타, 제너럴 모터스, 볼보, 캐터필러, 아디다스 그리고 메이저리그 구단인 토론토 블루 제이스가 고객들이다. 동일한 심리학적 트릭이 문자메시지에 얼마의 가격을 매길 것인지의 문제뿐 아니라 화장실 휴지나 항공기 티켓의 가격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모두 적용된다. SKP의 컨설턴트들에게 가격이란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숨은 설득자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복잡한 감정의 집합을 만들어낸다. 이 감정의 집합은 이제 뇌 스캔을 통해서 눈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상황만 달라지면 똑같은 가격이 할인된 가격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바가지요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격의 변화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포장 용기를 작게 만드는 것, 가격의 끝자리를 9로 맞춰 눈속임을 하는 것 등의 트릭들은 오래전부터 애용되어 왔다. 이제 가격 컨설턴팅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판촉술의 마지막 장에나 나올 법한 수법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최근 심리학에서 아주 중요하고 혁신적인 연구 결과들이 도입되고 있다. 가격을 매긴다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 우리는 마음속의 욕망을 숫자라는 대중의 언어로 바꾼다. 이제 이런 전환이 놀랄 만큼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과정임이 밝혀질 것이다.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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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윌리엄 파운드스톤 William Poundstone
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저명한 논픽션 작가. <뉴욕타임스> <에스콰이어> <이코노미스>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열 권이 넘는 논픽션을 썼다 지은 책으로 『머니 사이언스』『칼 세이건』『죄수의 딜레마』『패러독스의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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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최정규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제도와 규범, 그리고 인간의 행동을 미시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타적 인간의 출현』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승자의 저주』 등이 있다.
하승아
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승자의 저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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