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미래를 향해 몽유병자처럼 걸어가는 사람들
심리학의 아버지인 카를 융은 “사람들은 너무 많은 진실을 견디지 못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지금부터 당신이 읽을 내용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세상에 살고 있느냐에 대하여, 특히 시간과 사건들이 우리를 어떤 종류의 세상으로 몰고 가느냐에 대하여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하나의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미 우리가 전인미답의 영역에 접어들어 고초를 겪기 시작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기술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생활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바뀔 만한 힘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지금까지 현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실을 이해한다는 게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인포테인먼트와 오락에 가까운 쇼핑, 강박적인 자동차 이용에만 몽매하니 취해 있었다. 특히 이 책의 상당 부분에 등장하게 될 미국인들의 경우,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펜타곤이 뚫린 2001년 9·11 사태 이후에도 여전히 미래를 향해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고 있다. 세계는 불타는 집을 막 나서서 벼랑 끝으로 가는 중이다. 벼랑 너머에는 지금껏 누구도 목격한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제적·정치적 혼란의 심연이 놓여 있다. 나는 다가오는 이 시기를 ‘장기 비상시대’(Long Emergency)라 부르려 한다.
지금부터 내가 서술할 내용들은 향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견해다. 이 책에서 나는 내가 보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 일어‘날’ 일, 또는 일어날 ‘듯한’ 일에 대해서 거론하려고 하며,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그 차이는 중요하다. 이를테면 내가 보기에 미국은, 다가올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이 직면할 엄청난 변화에 대처하기엔 연방 정부가 너무나 무능하고 무력하다. 그렇기에 한 나라로서는 의미 있게 살아남지 못하고 자율적인 지역들의 연합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쪼개지는 게 달갑지는 않지만, 이것이 미국인들이 대비해야만 할 그럴듯한 결과이다. 나는 주거 환경이 교외로 확대되는 추세가 미국 사회에 지극히 해롭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해 비판하는 책을 여러 권 쓴 바 있다. 나는 많은 이들이 지금과 다르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 생활 방식의 인프라의 가치와 기능이 상실될 때 사람들 개개인이 겪게 될 엄청난 고통을 반긴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머지않아 세계가 자원을 놓고 벌이는 무시무시한 국제적 군사 분쟁의 시대에 진입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의 전망이 반갑지도 않다.
내가 이 책 속에서 바라는 게 있다면, 많은 이들이 몽유병 행진에서 깨어나 인간 문명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신기원적인 단절의 시대가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균형 잡힌 지역 경제, 의미 있는 활동, 보다 건실한 문화를 기반 삼아, 진정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을 재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시민들이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특히 스트레스와 변화가 극심한 시대에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나는 이를 위한 전략을 뒤에 가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장기 비상시대’를 맞이하여 지금 사람들은 애처로울 정도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당신의 현실 점검부터
무엇보다, 그리고 당장, 세계는 값싼 화석연료시대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대 생활의 혜택으로 여기는 모든 것의 바탕이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생필품과 안락과 사치와 기적은 그 기원이나 존속을 어떤 식으로든 값싼 화석 연료에 빚지고 있다. 이를테면 중앙난방이나 에어컨, 자동차, 비행기, 전기 조명, 저렴한 의류, 녹음된 음악, 영화, 슈퍼마켓, 전동 공구, 인공 고관절 치환 수술, 국방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전부 그렇다. 심지어 원자력발전소라는 것도 건설이나 정비, 핵연료의 추출이나 가공의 모든 과정을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의 유혹은 너무나 강했고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이 준 그 기적의 선물들이 지닌 본질적 속성을 더 이상 눈여겨보지 않게 되었다. 즉 그것들이 유한하고 재생이 불가능하며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은 자원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석유의 군림하에 꾸준히 진행되어온 기술 진보의 경이로움에 현혹되어 우리가 일종의 ‘지미니 크리켓 증후군’을 앓게 되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여러 문화권에선, 보다 분별력 있어야 할 사람들조차도 앞으로 몇 년 뒤에 화석 연료가 추정상의 대체물(수소발전이나 태양광발전 등)로 매끄럽게 전환되기만을 열렬히 바라고 있다. 나는 그것이 위험한 공상이라는 점을 입증하고자 한다. 현실성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그런 기술들 중 일부가 수십 년 뒤에 개발될지도 모른다는 정도다. 이는 값싼 석유시대가 끝나고 그 다음에 어떤 시대가 오게 되건, 그 사이에 엄청난 혼란기가 예상된다는 뜻이다. 그보다 더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새로운 연료와 기술은 지금 세계가 화석 연료를 소비하고 있는 규모와 속도와 방식을 ‘결코’ 대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곤경에 대하여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선진세계는 석유와 가스가 실제로 고갈되기 오래전부터 이미 고통을 겪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인의 생활 방식(이제는 사실상 ‘교외’ 생활과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은 값싼 석유와 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가격이나 공급이 기존의 범위를 조금만 벗어나도 미국 경제는 붕괴될 것이며, 지금과 같은 일상생활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화석 연료는 세계 각지에 고르게 매장되어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그것은 해당 민족들이 전반적으로 서구인을, 특히 미국인을 싫어하는 곳에, 게다가 물리적으로 아주 먼 곳에, 미국인이 원한다고 해도 통제력을 행사하기 아주 어려운 곳에 대체로 집중되어 있다. 여러분은 곧 내가 장기 비상시대라 부르는 다가올 시기에 화석 연료의 가격과 공급이 요동치고 붕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화석 연료의 감소는 남아 있는 공급량을 차지하려는 나라들 간에 만성적인 분쟁을 촉발할 게 분명하다. 자원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는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될지도 모르며, 그로 인해 문명이 붕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초를 겪게 될지는 그들이 기존의 버릇과 관습과 가설을 얼마나 완고히 고수하고자 하느냐에(이를테면 미국인들이 더는 합리화할 수 없는 교외 생활 방식을 얼마나 악착같이 유지하려 드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지구촌의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됐음에도 이 문제에 대한 공적인 논의가 너무나 미진한 상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연방 정부 고위 인사 중에 누구도 21세기 중반이면 화석 연료가 고갈될 것이고, 아니 그보다 훨씬 앞서 시장이 심각하게 붕괴할 것이라는 발언을 과감히 한 적이 없다. 이 문제는 두렵게도 미국인들이 국가 차원으로 하고 있는 집단적 행동, 특히 오늘의 미국 경제가 교외 팽창을 야기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에 가망 없이 연루되어 있다는 우연 아닌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편 많은 나라들에서 에너지의 미래에 대한 공적 논의가 이처럼 미미한 가운데, 서로 크게 다른 두 입장이 두드러진다. 이른바 ‘낙관론자들’(cornucopians)은 인류의 입증된 기술적 천재성이 지질학적 현실을 극복할 것이라 주장한다(그런 점에서 이는 다수의 입장이 될 것이다). 낙관론자들 중에는 석유가 화석화된 자원, 즉 액화된 유기물이라기보다는 초콜릿캔디 속의 크림처럼 지구 심층에 무한정 존재하는 무기 광물질이라 믿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 기반이 산업 문명을 구해내지 못할 가능성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류의 전설적인 역사는 가히 경이로웠다. 인류는 엄청난 난관들을 극복해온 것이다. 특히 세계는 20세기 말에 엄청난 기술 진보를 경험했다(때문에 그것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 훨씬 덜 분명해졌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나라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에 대하여 어찌 신과 같은 자신감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컴퓨터는 만일 세계 역사 초기의 누군가가 본다면 대단히 충격받을 만한 놀라운 물건이다. 전기에 대한 초기의 이해를 증진하는 데 기여한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컴퓨터 발명의 근거가 마련된 해인 1780년 이후 일련의 발견과 발전은 엄청나게 길고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우리가 지금은 당연시하는 숱한 개념들(일례로 110볼트 가정용 교류 전류 같은 것)도 포함된다. 만약 프랭클린이 비디오를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소프트웨어는? 광대역통신망(broadband)은? 플라스틱은? 확대하자면, 미래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과학의 경이는 오늘의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인류는 정말 환상적인 기술, 이를테면 바다 위에 문명을 건설한다거나 나노 기술을 이용한 유기분자 기계를 만든다거나 우주의 ‘암흑 물질’(dark matter)을 이용한다거나 하는 환상적인 기술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적이 장기 비상시대라는 기슭 저편에서나 일어날지 모르는, 아니면 아예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화석 연료로 인한 풍요는 인류에게 딱 한 번만 허락된 사건일 뿐이다.
그런가 하면 낙관론자들만큼이나 극단적이면서 대척점에 있는 이들이 있으니, ‘소멸’(die-off)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지구의 수용 능력이 이미 ‘초과량’을 넘어섰으며, 우리가 인류의 임박한 멸종의 전조가 되는 묵시록적 시대에 이미 진입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인류가 문제를 극복할 신적인 천재성을 타고 났다는 낙관론자들의 믿음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순수 엔트로피4의 경제학을 신봉하며, 석유의 끝을 모든 것의 끝으로 본다. 그들의 세계관은 종말론적이며 비극적이다.
내 입장은 양 진영 사이쯤에 있는데 아마도 자연소멸 쪽으로 약간 더 기운 관점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21세기에 긴박하고 전례 없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 믿지만, 인류는 살아남을 것이며 미래에도 존속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사이에 인구나 기대수명, 생활수준, 지식과 기술의 유지, 품위 등의 측면에서 엄청난 상실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우리가 극적인 손실(die-back)을 겪긴 하겠지만 소멸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보기에 인간은 팽창과 수축, 성공과 실패, 빛과 어둠, 총명과 우매라는 기나긴 순환을 거듭하는 양상으로 존재해왔으며, 우리 시대가 모든 순환의 끝일 만큼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태도다(스스로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보는 것은 베이비 붐 세대 지식인들의 나르시시즘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비록 인류가 어둠의 통로를 지나겠지만 결국은 그것을 잘 극복하고 살아남으리라는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두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존속해왔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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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James Howard Kunstler
작가이자 사회비평가. 이 책 『장기 비상시대』(2005)로 가장 유명하며, 교외 팽창의 문제점을 다룬 『무소(無所)의 지리학』(1993)을 비롯해, 세 권의 논픽션 및 석유 생산 정점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손으로 만든 세상』(2008) 등 열 권의 소설을 펴냈다. <보스턴 피닉스> 기자 및 <롤링 스톤즈> 편집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1975년부터 전업 작가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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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한중
경영학을 공부한 후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빌더』『숨 쉬러 나가다』『리아의 나라』『나는 왜 쓰는가』『위건 부두로 가는 길』『글쓰기 생각쓰기』『인간 없는 세상』『울지 않는 늑대』『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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