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할아버지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가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머리가 돌처럼 반들반들한 모습이다. 그는 모자를 쓰고, 큰 단추가 달린 레인코트를 입고 있다.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신발에 벨벳 원피스 차림이다. 계절은 가을, 그리고 나는 네 살이다. 할아버지의 손, 전차에서 나던 맑은 소리, 축축한 아침 공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언덕을 올라 성의 공원으로 걷던 일 같은 것 말이다. 할아버지의 윗옷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금색 표지에 속은 누르스름한 『정글 북』이 들어 있다. 할아버지는 내가 그 책을 들고 있는 걸 허락하지 않지만, 오후 내내 그걸 자신의 무릎 위에 펼쳐놓고 내게 읽어준다. 청진기를 끼지도 않고 가운을 입지도 않은 할아버지를 입구에 있는 매표소 직원은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다음엔 팝콘 수레가 나오고, 우산꽂이가 나오고, 엽서와 그림을 파는 작은 매점이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 눈매가 날카로운 올빼미들이 졸고 있는 새장을 지나고, 기다란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정원을 지난다. 이곳에는 한때 왕이 살았다. 술탄과 그의 근위병들이 살았다. 거리 쪽으로 난 창문들에는 미지근한 물이 담긴 물통들이 달려 있고 구부러진 새장 살은 오렌지색으로 녹슬어 있다. 할아버지는 한 손에 할머니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준 파란색 가방을 들고 있다. 그 안에는 하마에게 줄 엿새쯤 묵은 배추 꼬리, 양과 사슴과 왕사슴에게 줄 당근과 셀러리가 담겨 있다. 할아버지의 호주머니에는 공원 수레를 끄는 조랑말에게 줄 각설탕 몇 개도 숨겨져 있다. 이 모든 걸 기억하는 건 내가 감상적이라서가 아니다. 중요하기에 기억하는 것이다.
호랑이는 성채의 외곽에 산다. 우리는 성의 계단을 올라 물새들과 원숭이 우리의 후덥지근한 창문을 지나고, 겨울을 나기 위해 털갈이를 하는 늑대를 지난다. 수염독수리를 지나치고, 축축한 흙냄새를 풍기며 하루 종일 세상모르게 쿨쿨 자고 있는 곰들을 지나친다. 내가 호랑이들을 볼 수 있도록 할아버지는 내 몸을 들어올려 난간에 발을 딛게 해준다.
할아버지는 호랑이의 아내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다. 그는 내 몸에 팔을 두르고, 내 발은 난간에 닿아 있다. 할아버지가 말한다. “나는 한때 호랑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 호랑이가 된 한 소녀를 알았단다.” 나는 너무나 어렸고, 호랑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전적으로 할아버지 때문이었으니, 그가 나를 위해 지어낸 동화 속의 나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동화를 오랫동안 꿈꿀 수 있도록.
동물 우리는 뜰을 마주 보고 있다. 할아버지와 나는 계단을 내려가 우리에서 우리로 서서히 걸어간다. 윤기 흐르는 털에 반점이 있는 표범이 보인다. 졸린 눈을 하고 배가 부른 아프리카 사자도 보인다. 그런데 호랑이들은 깨어 있다. 적의를 띤 모습이 으스스하다. 줄무늬가 진 어깨를 출렁거리며 좁은 돌길을 나란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들에게서는 시큼하고 강렬한 냄새가 난다. 사방에 가득한 그 냄새는 하루 종일 내게 머물 것이다. 목욕을 하고 침대로 들어간 다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냄새는 아무 때나 돌아올 것이다. 학교에서도 친구의 생일파티에서도 심지어 몇 년 후 병리학 실험실에서도, 혹은 갈리나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다른 기억도 떠오른다. 몇몇 사람들이 호랑이 우리 주변에 몰려 있다. 앵무새 모양의 풍선을 든 소년, 보라색 외투를 입은 여자, 수염을 기르고 갈색 제복을 입은 동물원 직원.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있는 그 직원이 호랑이 우리와 바깥쪽 난간 사이를 걸어 다니며 주스 갑, 사탕 껍질, 사람들이 호랑이를 향해 던진 팝콘 조각 등을 쓸어 담고 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가 무슨 말인가를 하며 웃는다. 그가 갈색 머리인 그녀를 향해 미소로 화답한다. 걸음을 멈춘 그가 빗자루 손잡이에 몸을 기댄다. 그때, 커다란 호랑이가 지나가면서 빗장에 몸을 비빈다.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사육사가 빗장 사이로 한 손을 넣어 호랑이의 옆구리를 만진다. 잠시, 조용하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지는 대혼란.
호랑이가 그에게 달려든다.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갑자기 쓰레받기를 든 사람의 어깨가 빗장 사이에 끼여 있다. 그가 고개를 비틀어 바깥 난간을 잡으려고 한다. 뭔가를 붙들고 버티기 위해서다. 개가 큰 뼈를 물듯 호랑이가 쓰레받기를 든 남자의 팔을 물고 있다. 두 발로 팔을 잡고 손끝을 물어뜯는다. 아이들과 함께 옆에 서 있던 두 사내가 난간을 넘어가 그 남자의 허리와 허우적거리는 팔을 잡고 그를 잡아당긴다. 다른 한 사내가 빗장 사이로 우산을 넣어 호랑이의 갈비뼈를 계속 찌른다. 화가 난 호랑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고 뒷다리로 서서 쓰레받기를 든 남자의 팔을 잡고 로프를 잡아당기듯이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흔든다. 귀가 납작해져 있고, 기관차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가 호랑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얼굴이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쓰레받기를 든 남자는 이 일이 벌어지는 동안 숨소리도 내지 못한다.
그때 갑자기 그것이 더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호랑이가 물고 있던 팔을 놓는다. 세 사내가 뒤로 넘어진다. 피가 튄다. 호랑이가 꼬리를 흔든다. 쓰레받기를 든 남자가 바깥 난간 밑으로 기어나와 몸을 일으킨다.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는 사라지고 없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네 살이었던 나도 돌려세우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걸 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는 내가 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때, 그 남자가 자신의 팔을 찢어진 셔츠 조각으로 동여매며 할아버지와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온다. 병원으로 향하는 그의 얼굴은 화가 나서 새빨갛다. 당시, 나는 그것이 무서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것이 당황스러움과 수치심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흥분한 호랑이가 앞뒤로 날뛴다. 그 남자가 자갈 위에 검붉은 피를 흘린다. 그가 우리 옆을 지나칠 때, 할아버지가 말한다.
“세상에! 당신, 바보요?”
그 남자가 뭐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것이 옮겨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걸 안다.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있어서 용감해진 데다 반들반들한 구두를 신어 자신만만하기까지 한 내가 말한다.
“할아버지, 저 사람 바보 아니에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벌써 나를 끌고 그 남자의 뒤를 따르고 있다. 그 사람에게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며 거기 서라고 소리치면서.
1. 해안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개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군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했던 일들, 희망과 희열로 가득했던 일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소중한 기억들이 가득한 장소들을 둘러보리라는 걸 안다. 그러다 영혼이 너무 오랫동안 아주 먼 곳에 가 있게 되면 돌아오는 것 역시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이러한 까닭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해오던 의식을 중단하고 몸에서 풀려난 영혼을 환영하기 위해 청소를 하지도 않고 씻거나 정돈하지도 않고, 40일 동안 그 사람의 소지품들을 치우지도 않는다. 영혼이 미련과 그리움 때문에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어떤 메시지나 신호나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하는 것이다.
제대로 유혹하면, 영혼은 다시 돌아와 서랍을 뒤지고 찬장 안을 들여다보고 접시 걸이와 초인종과 전화기를 살펴보면서 그것의 편리함을 떠올리고는, 손으로 만져보기도 한다. 그 소리로 집안사람들에게 자신이 와 있다는 걸 알리며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할머니는 전화로 조용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내게 말하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다. 할머니에게 40일은 사실이자 상식이었으며, 이는 시부모와 친정부모, 언니, 사촌들과 고향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보내면서 물려받은 지식이었고, 그것은 특별히 신경을 쓴 환자를 할아버지가 잃을 때마다 할머니가 그를 위로하려고 되풀이했던 말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걸 미신이라고 했지만, 할머니가 나이 들어갈수록 그러한 생각이 더욱 굳어지자 그냥 용인했다.
할아버지의 명확하지 않은 죽음으로 40일이 37일이나 38일로 줄어들었다. 그는 집이 아니라 여행을 하다가 혼자 죽은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할머니는 화를 냈다. 그녀는 전날 그의 옷을 다릴 때도, 그날 아침 설거지를 할 때도,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국경 반대쪽에 있는 즈드레브코브라는 호젓한 도시의 병원에서 죽었다. 할머니는 즈드레브코브가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거기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으니까.
그녀가 말했다.
“넌 거짓말하고 있어.”
“아니에요, 할머니.”
“네 할아버지는 우리한테 너를 만나러 간다고 했어.”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그리고 내게도 거짓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일주일 전, 내가 국토 횡단 여행을 떠난 걸 알고 내가 떠난 직후, 버스를 타고 내게 간다고 했던 모양이다. 어떤 이유로 그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할아버지가 죽고, 즈드레브코브 병원 직원이 할머니를 찾아내 그의 죽음을 알리고, 시신을 운반하는 절차를 논의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할아버지의 시신은 그날 아침, 시립 영안실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벌써 집에서 6백 킬로미터 떨어진, 국경 앞에 있는 마지막 주유소의 화장실 공중전화기 앞에서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나는 바지 밑단을 말아서 올리고 손에는 샌들을 든 채 부서진 싱크대 밑에 있는 미끌미끌한 녹색 타일 위에 서 있었다.
굽어진 호스가 수도꼭지에 묶여 있었다. 호스는 주둥이를 아래로 향한 채 보일러 파이프에 매달려 바닥에 가느다란 물줄기를 뿜어냈다. 몇 시간 동안 그런 상태였던 게 분명했다. 타일의 홈과 변기 주변까지 온통 물난리였다. 현관 계단을 넘어 오두막 뒤의 마른 정원까지 물길이 번져 있었다. 그래도 화장실 담당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머리에 오렌지색 스카프를 두른 중년 여자는 구석에 있는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나는 지폐 몇 장을 들려 그녀를 화장실 밖으로 쫓아냈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할머니가 호출 신호를 일곱 번이나 보낸 것이 무슨 의미인지 두려워서였다.
나는 할아버지가 집을 나왔다는 얘기를 내게 하지 않았다며 할머니에게 화를 냈다.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나의 친선임무와 브레예비나 고아원에서의 예방접종에 관한 얘기를 하며 가서 도와줘야겠다고 둘러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지 않고 마냥 화만 낼 수는 없었다. 만약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내가 그녀에게 숨겼던 할아버지의 병에 대해 미리 알았더라면 그녀는 내게 얘기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녀가 얘기하는 대로 놔둔 채, 육군의과대학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 달 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그의 오랜 동료인 암 전문의를 찾아갔었다. 암 전문의는 할아버지에게 컴퓨터 단층촬영 사진을 보여줬다. 그때, 할아버지는 무릎에 모자를 내려놓으며 “젠장, 각다귀를 찾으러 나섰다가 당나귀를 찾은 꼴이네”라고 말했었다.
나는 동전을 두 개 더 넣었다. 전화기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 참새들이 화장실 벽 선반에서 내려오더니 내 발치에 있는 물에 내려앉았다. 참새들은 날갯짓으로 등에 물을 튀겼다. 이른 오후의 태양이 불같이 내리쬐며 모든 걸 고요하게 만들고 있었다. 안은 덥고 축축했고 길로 이어진 출입구는 번쩍거렸다. 국경통제소에 있는 차들이 반들반들한 아스팔트를 따라 일렬로 서 있었다. 얼마 전 트랙터에 부딪쳐 옆구리가 움푹 들어간 우리 차가 보였다. 조라는 문을 열어놓은 채 한쪽 다리를 땅에 대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세관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등 뒤로 점점 더 자주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지난밤에 그 사람들이 전화를 했더라. 나는 그들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확실해질 때까지 너에게 전화하지 않았던 거야. 그게 네 할아버지가 아니라면 괜히 너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잖니. 그런데 네 엄마가 오늘 아침 영안실에 갔다 왔어.”
그녀의 말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해가 안 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할머니, 저도 마찬가지예요.”
“네 할아버지는 분명 너를 만나러 간다고 했어.”
“저는 몰랐어요.”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녀는 내가 울지도 않고 히스테리도 부리지 않자, 나를 의심했다. 우리가 얘기를 시작했던 처음 10분 동안은 내가 침착한 이유가 임무를 띠고 외국 병원에 가 있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내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조라가 엿듣지 못하도록 화장실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녀는 훨씬 더 일찍 나를 추궁했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할 말 없니?”
“모르겠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왜 저를 보러 오신다고 거짓말을 하셨을까요?”
“너는 네 할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는지 어떤지도 묻지 않았어. 왜 그랬니?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안 물어?”
“저는 할아버지가 집에서 나오셨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요.”
“너는 울지도 않는구나.”
“할머니도 그렇잖아요.”
“네 엄마는 상심해하고 있어. 네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 사람들 말로는 네 할아버지가 몹시 아팠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알았을 게 틀림없지. 누군가에게 얘기했을 게 분명해. 그게 너 아니니?”
나는 내 말이 자신 있게 들리기를 바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그걸 아셨더라면 아무 데도 안 가셨겠죠. 그보다는 분별력이 있으셨을 테니까요.”
거울 위에 있는 금속 선반에 흰 수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닦았다. 수건 다섯 장을 다 쓸 때까지도 얼굴과 목에서 더러운 게 묻어나왔다. 수건들을 따로 담는 빨래바구니가 없어서 나는 그걸 싱크대에 그냥 뒀다.
내가 말했다.
“그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어디에서 찾았대요?”
“나도 모르겠다. 말해주지 않더구나. 어딘가에서 찾았겠지.”
“전문병원이었을지도 모르죠.”
“할아버지는 너를 보러 가는 길이었어.”
“편지를 남기셨나요?”
할아버지는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집을 나선 게 은퇴하기 싫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거동이 불편한 시외의 환자를 돌봤던 걸 연관 지은 듯했다. 사실 그 환자는 할아버지가 의사들의 주중 오찬시간을 이용해 암 전문의 친구를 찾아가 진통제 맞는 걸 숨기기 위해 우리가 꾸며낸 인물이었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사약 색깔이 참 화려하다고 말했다. 그 약이 식용물감을 탄 물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는 처음에는 오히려 건강해 보였다. 그것이 그의 병을 숨기는 걸 더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주사를 맞고 나오는 걸 보고 나서, 이제 그만 어머니에게 얘기하겠다고 할아버지를 윽박질렀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러기만 해봐라” 하고 도리어 나를 윽박질렀다. 그 문제는 그걸로 끝이었다.
할머니가 내게 묻고 있었다.
“너, 벌써 브레예비나에 도착한 거니?”
“아직 국경이에요. 배에서 막 내렸어요.”
밖을 보니, 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조라가 담배를 바닥에 던져 비벼 끄고는 다리를 다시 차 안에 넣고 문을 닫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갈길 옆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고 담배를 피워댔다. 그들은 자동차의 타이어를 점검하고, 샘으로 가서 물병에 물을 채우고, 기다란 줄을 조바심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숨겨서 들여가려고 했던 과자나 샌드위치를 버리고, 화장실 옆에다 소변을 누고는 이내 차에 올라탔다.
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전화기가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엄마는 며칠 후에 장례를 치르자고 하더구나. 조라 혼자 브레예비나에 갈 수는 없는 거니?”
내가 사실대로 얘기를 했더라면, 조라는 나더러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것이다. 내게 차를 넘겨주고 자기는 백신이 든 쿨러를 짊어진 채 남의 차를 얻어 타고 국경을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보낸 물품들을 위쪽 해안에 있는 브레예비나의 고아원에 전달했을 것이다.
“할머니, 저희는 거의 다 왔어요. 많은 아이들이 주사를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고요.”
할머니는 다시 그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장례식 날짜와 시간, 장소만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도시가 굽어다보이는 스트르미나 언덕에서 장례식이 거행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은 내 고조할머니가 묻힌 곳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끊자, 나는 팔꿈치로 수도꼭지를 돌려 물병에 물을 채웠다. 차에서 내릴 때, 물을 받아오겠다는 구실을 댔기 때문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신발을 신기 전에 자갈에 발을 닦았다. 조라는 시동을 걸어놓고 있다가 자기 차례라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나는 운전석에 올라타 내 키에 맞게 좌석을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면허증과 의약품 수입 서류가 계기판에 똑바른 순서로 정렬돼 있는지 확인했다. 우리 앞에는 두 대의 차가 있었다. 가슴에 달라붙는 녹색 셔츠를 입은 세관원이 장갑 낀 손으로 노부부의 차 해치백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고 여행 가방의 지퍼를 열고 있었다.
조라가 돌아왔을 때, 나는 할아버지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둘에게는 힘들었던 한 해였다. 나는 1월에 파업이 일어났을 때, 간호사들과 함께 병원을 나와버리는 실수를 범했다. 결국 나는 보이보드야 병원으로부터 정직을 당해 몇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건 축복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그런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옆에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도 그걸 좋아했다. 하지만 정직 당한 것을 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잘 속는 바보라며 나를 놀렸다. 그러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를 집에서 보는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는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며 내게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는 내가 옆에서 얼쩡거리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 걸 원치 않았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자신의 침대를 내려다보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도 원치 않는다 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면 할머니가 자신의 병을 눈치챌 것이라고, 우리가 아무 말 없이 있거나 무슨 얘기를 해도 의심하려 들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 사람은 은퇴를 하고 또 한 사람은 정직을 당했음에도 전보다 더 바쁘게 보이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내게 나의 전문 분야에 대해, 정직이 풀리면 뭘 할 것인지에 대해 더 생각해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나와 티격태격하며 지내던 생화학공학 교수인 스르드얀이 징계위원회에서 내게 유리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 나는 대학의 연합병원 프로그램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그건 전쟁이 끝난 이후로는 하지 않던 일이었다.
조라는 육군의과대학에서 징계받는 걸 피할 구실로 이 자원봉사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학위를 이수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다양한 외과적 처치방식을 접하게 되면 전문영역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아직도 외상치료 전문센터에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쇠장갑이라 불리는 외상센터 과장 밑에서 보냈다. 쇠장갑이라는 그의 별명은 산부인과 선임자 시절, 골반 검사를 할 때 팔목에 차고 있던 은팔찌를 빼지 않아서 생긴 것이었다. 조라는 원칙을 중시하고 공개적으로 무신론자임을 밝히고 살았다. 그녀는 열세 살 때, 목사가 그녀에게 동물은 영혼이 없다고 얘기하자, “엿이나 먹어라!” 하고 말하고 교회에서 나와버렸다고 했다. 4년 동안 쇠장갑을 머리로 받으며 살다, 조라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다. 검찰은 그녀에게 그 사건에 대해 함구하라고 했다. 그래서 조라는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나한테까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가 병원 복도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건 철도 근로자와 관련된 문제였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손가락을 절단해야 했는데, 술에 취했을 수도 있고 안 취했을 수도 있는 쇠장갑이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첫 번째 손가락을 깨물고 있으면, 두 번째 손가락이 빠지는 걸 바라보는 건 훨씬 쉬워지는 법이죠.”
당연히 소송은 진행 중이었다. 조라는 쇠장갑에 반박하는 증언을 하라고 소환을 당했다. 하지만 나쁜 평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의료계에 연줄이 많았다. 이제 조라는 자기가 몇 년 동안 경멸했던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과 이제 막 쌓아가기 시작한 경력과 명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녀에게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 최근 사귄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연합병원 본부에서 일주일 동안 상황 설명을 듣고 훈련을 받았다. 그 기간 내내 그녀는 계속되는 검사의 전화와 내 호기심에 침묵으로 맞섰다. 그런 그녀가 어제 내게 실토했다. 곤란한 일이긴 하지만, 돌아가자마자 할아버지에게 자문을 구해야겠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 한 달 동안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늙어버린 얼굴을,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세관 직원이 노부부에게서 조약돌이 든 병 두 개를 압수하는 걸 보았다. 그는 손을 흔들어 다음 차를 통과시켰다. 그는 우리에게 와서는 20분 동안 우리의 여권, 신분증, 대학에서 발행한 증명서를 살펴보았다. 그는 쿨러를 열고 꺼낸 약들을 아스팔트 위에 늘어놓았다. 조라는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보면 알겠지만, 그게 쿨러에 들어 있는 건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이에요. 시골 학교에서는 냉장에 관해 가르쳐주지도 않나요?”
모든 것이 흠 잡을 데 없고, 현실적으로 그가 우리에게 손을 댈 수 없다는 걸 알고 한 말이었다. 세관 직원은 이 얘기를 듣고 이후 30분 동안이나 무기나 밀항자, 조개나 공인되지 않은 애완동물이 없는지 차 안을 뒤졌다.
20년 전, 전쟁이 있기 전까지 브레예비나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국경은 형식적이었을 뿐 차나 비행기, 도보로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삼림지대를 통해서든, 물을 통해서든, 평원을 통해서든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세관 직원들에게 샌드위치나 고추절임 병을 건네곤 했었다. 아무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늘 그걸 염려했다. 이름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나는지 말이다. 브레예비나에서 우리가 할 일은 뭔가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우리 대학에서는 지방정부와 협력해 여러 개의 고아원을 세워주고, 젊은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이고 싶어했다. 그것이 우리 여행의 장기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라와 나는 우리 군인들이 고아로 만든 아이들의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폐렴이나 폐결핵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이가 옮지는 않았는지 검사하고, 그들에게 홍역, 이하선염, 풍진, 그리고 전쟁 중이나 전쟁 이후 궁핍하게 사는 동안 감염되었을 법한 다른 질병들에 대한 예방접종을 해주면 그만이었다. 우리가 접촉한 사람은 안툰이라는 이름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사였는데, 열정적이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늘 쾌활했다. 그는 지난 3년간 해안지대에 공식적인 첫 번째 고아원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싸웠고, 수사 20명을 수용할 목적으로 세운 수도원에 고아 60명을 수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의 여행에 장애물이 없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의 부모에게 우리를 소개시켰다.
20년지기 친구였던 조라와 나는 이후의 삶이 처음으로 우리를 갈라놓기 전에 이 여행을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는 근무 중이 아니었음에도 흰 가운을 입었다. 신뢰감과 동시에 불안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우리에게는 MMR-II, IPV 약병이 가득 든 쿨러 네 개, 예방주사를 맞을 때 틀림없이 울고불고 난리를 칠 아이들에게 줄 사탕 상자 등 짐이 많았다. 차 안에는 옛날 지도도 하나 있었다. 우리는 지도가 들어맞지 않게 된 몇 년 후까지 그걸 갖고 다니며, 여행할 때마다 사용했었다. 지도에 형광펜으로 휘갈겨 쓴 글씨가 보였다. 엑스표를 한 곳은 학회나 다른 모임에 갈 때 피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더 이상 우리나라 땅이 아니게 되었지만 우리가 좋아했던 리조트 위에는 스키를 들고 있는 남자가 거칠게 그려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즈드레브코브라는 곳을 그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브레예비나도 찾을 수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그곳이 빠져 있다는 걸 알고 미리 지도에 표시를 해놓았다. 브레예비나는 새 국경선 동쪽으로 4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마을은 바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우리는 지붕이 붉은 집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교회와 말 방목장, 보라색 초롱꽃들이 환하게 핀 가파른 평원을 지나고,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있는 반짝이는 폭포를 지났다. 숲이 자주 나타났다. 올리브 나무와 삼나무들이 군데군데 박힌 높다란 소나무 숲이었다. 숲이 비탈을 이루는 곳에서 바다가 칼처럼 반짝였다. 몇몇 도로는 포장이 잘되어 있었지만, 구멍이 패고 자갈이 깔린 채 몇 년 동안 방치된 곳도 많았다.
차가 도로 옆에 난 구멍을 통과하면서 덜커덩거렸다. 쿨러에 든 주사약 병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브레예비나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다다르자 펜션과 레스토랑, 관광지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에서 떨어진 섬 관광이 다시 서서히 활기를 띠는 모양이었다. 과일과 토속 음식을 파는 노점들도 보였다. 집에서 만든 과자, 포도나무 잎으로 만든 라키야 술, 꿀, 시큼한 버찌와 무화과 절임을 선전하는 간판들이 보였다. 그사이 할머니에게서 세 개의 호출메시지가 와 있었다. 조라에게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그녀가 있는 데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었다. 우리는 공중전화가 있는 다음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파란색 차일을 친 바비큐 노점과 인접한 들에 옥외화장실이 있었다.
바비큐를 파는 카운터에 군인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서 있었고, 노점 다른 쪽에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위장을 한 채였다. 내가 차에서 내려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가자, 그들이 모자로 부채질 하던 손을 흔들었다. 몇몇 집시 아이들이 브라츠에 새로 생긴 나이트클럽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유리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는 웃었다. 그러고는 우리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조라한테서 담배를 얻어 피우기 위해서였다.
나는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지저분한 방수포를 접은 군용트럭과 노점의 그릴이 내다보였다. 주인인 듯한 몸집 큰 남자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칼의 납작한 면으로 햄버거 패티와 송아지 어깨살과 소시지를 툭툭 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점 뒤에 있는 들에는 우습게 생긴 갈색 암소가 말뚝에 매여 있었다. 주인이 그 칼로 아무렇지 않게 암소를 잡고 햄버거 패티를 두드리고 빵을 자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자 카운터 옆에 서서 샌드위치에 잘게 썬 양파를 숟가락으로 퍼 얹고 있는 군인이 조금은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운전을 할 때는 머리가 아픈 걸 느끼지 못했던 나는 벨이 여섯 번 울리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두통이 느껴졌다. 그녀의 보청기에서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두개골 밑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보청기의 볼륨을 낮추자 그제야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어머니의 조용하지만 결연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조문하러 온 누군가와 얘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흥분해 있었다.
“네 할아버지의 유품들이 없어졌어.”
나는 그녀에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얘기해보라고 했다.
“네 할아버지의 유품들이 없어졌단 말이야! 네 엄마가 영안실에 가보니까 양복과 외투와 구두는 있는데, 다른 물건은 하나도 없더란다.”
“어떤 물건 말이죠?”
“세상에! 어떤 물건이라니?”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말 듣고 있니? 유품들이 없어졌단 말이야. 그 병원의 개자식들이 훔쳐간 거야. 모자도 훔쳐가고 우산도 훔쳐가고 지갑도 훔쳐갔어. 생각해봐. 믿어지니? 죽은 사람에게서 물건을 훔치다니!”
믿을 수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보통 죽은 사람이 신원미상일 경우 그런 일이 일어났고, 그에 따른 별다른 징계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때때로 그런 혼란이 생기곤 해요. 할머니, 그 병원은 그리 큰 병원은 아닐 거예요. 돌아오는 게 지체되고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우리한테 보내는 걸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요.”
“나탈리아, 네 할아버지의 시계도 없어졌어.”
“할머니, 진정하세요.”
나는 할아버지의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었을 『정글 북』을 떠올리고 그것도 없어졌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할머니는 아직 울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울게 만들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그 순간, 죽지 않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너무 요원한 생각이어서,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건 나중 일이었다.
“시계가 없어졌다니까.”
“병원 전화번호 아세요? 전화해보셨어요?”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는구나. 아무도 없어. 그들이 네 할아버지 물건들을 가져갔어. 얘야, 세상에! 안경도 없어졌어.”
나는 할아버지의 안경을 떠올렸다. 할아버지는 안경을 닦을 때면, 호주머니에 갖고 다니는 작은 실크 천으로 닦기 전에 입 속에 거의 안경 전체를 넣고 김을 불었다. 그걸 생각하자 옆구리가 차갑게 굳는 것 같았다.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이 대체 어떤 곳이니?”
하도 소리를 질러 쉬어버린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모르겠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을 떠나셨다는 걸 제가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나 네 할아버지나 거짓말을 했어. 늘 뭔가를 소곤거리고 말이야. 네 할아버지도 거짓말, 너도 거짓말.”
어머니가 그녀에게서 전화기를 빼앗으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있어라.”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나는 조라가 차에서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서서히 몸을 펴더니, 쿨러를 조수석 바닥에 내려놓고 차 문을 잠갔다. 집시 아이들이 뒤쪽 범퍼에 기대어 돌아가며 담배 하나를 나눠 피우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무슨 메모를 남기지 않으셨나요?”
할머니는 무슨 메모 말이냐고 되물었다.
“아무거나요. 전할 말씀이라도 있었나 해서요.”
“나는 몰라.”
“집에서 나가실 때 뭐라고 하셨죠?”
“너한테 간다고 하셨어.”
이제는 내가 의심할 차례였다. 누가 뭘 알았으며 아무도 모른 건 어느 정도까지였는지 가늠해봐야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익숙해진 패턴, 즉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느라 몸 상태와 행방에 대해 거짓말하는 습성에 의지하고 있었다. 가령 어머니가 베리모보에 있는 호수 옆 차고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집에 물난리가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늦어질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내가 베니스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휴가를 즐길 무렵, 할머니가 스트레코바츠에서 심장수술을 받았을 때도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전화해서 할머니를 데리고 예정에 없던 루제른 온천에 갔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사용한 전화기에서 잡음이 너무 많이 난 걸 보면 그는 집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 전화기가 아니면 그렇게 잡음이 많이 날 리 없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즈드레브코브에 있는 그 병원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할머니는 아직도 의심이 깃든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냥 알려주세요.”
나는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던 꾸깃꾸깃한 영수증 하나를 꺼내 유리에 댔다. 내가 갖고 있던 유일한 연필은 닳고 닳은 몽당연필이었다. 그런 몽당연필을 갖고 다니는 건 할아버지의 영향이었다. 할아버지는 연필이 더는 손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번호를 받아 적었다.
(프롤로그 전문,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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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테이아 오브레트 Téa Obreht
1985년 옛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997년 미국에 정착하기 전 어린 시절을 키프로스와 이집트에서 보냈다. 여덟 살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던 그녀는 남가주대에서 예술사와 창작을, 코넬대 대학원에서 창작을 공부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실제로 어릴 적 할아버지와 동물원 순례를 즐겼던 올해 스물다섯 살의 작가는 첫 장편소설 『호랑이의 아내』가 출간되자마자 ‘수년 만에 최고의 전율을 안겨준 문학적 발견’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상상력을 갖춘 대단한 재능의 작가’라는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뉴요커> 선정 ‘40세 이하 최고의 작가 20인’, 전미도서협회 선정 ‘35세 이하 최고의 작가 5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 소설로 2011년 역대 최연소 오렌지상 수상 작가가 되었다. 지금 뉴욕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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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이어하트 재단, 케이프타운 대학, 풀브라이트 재단의 펠로였고, 케이프타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객원교수를 지냈다. 『연을 쫓는 아이』『천 개의 찬란한 태양』『야만인을 기다리며』『마이클 K』『철의 시대』『추락』『니하오 미스터 빈』『카우보이 치킨』『호스 보이』『거짓의 날들』『낙천주의자의 딸』 등 30여 권을 번역했고, 『문학의 거장들』『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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