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
이슬람 문명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성장한 나는 일찍이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세계사와는 꽤나 다른 세계사의 내러티브 속에서 자랐다. 그렇다고 당시에 그 내러티브가 내 사고의 틀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역사를 재미로 읽었고 페르시아어로 된 읽을거리는 지루한 교과서 말고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내 독서 수준에 맞는 괜찮은 읽을거리는 전부 영어로 된 책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장 좋아했던 책은 버질 힐라이어의 아주 재미있는 책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 Child’s History of the World』였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고서야 그 책이 얼마나 충격적일 정도로 유럽 중심적이며 인종차별투성이인지 깨달았다. 힐라이어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했기 때문에 어릴 때는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일 때 아널드 토인비가 여행 중에 라시카르가라는 조그마한 우리 동네를 지나갔는데, 역사를 좋아하고 책벌레인 아프간 꼬마가 거기에 산다고 누군가가 토인비에게 귀띔해줬다. 토인비는 흥미로워하며 함께 차를 마시자고 나를 초대했고, 그래서 나는 얼굴이 불그레하고 나이 지긋한 영국 신사와 마주 앉아서 그가 하는 상냥한 질문에 수줍게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 위대한 역사가에 대해 내가 알아차린 것이라고는 손수건을 소매에 넣어두는 기묘한 버릇뿐이었다.
하지만 헤어질 때 토인비는 내게 선물을 주었다. 헨드릭 빌렘 반 룬이 쓴 『인류 이야기 The Story of Mankind』였다. 제목만 들어도 두근거렸다. 전체 ‘인류’에게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니. 이럴 수가, 그럼 나도 ‘인류’에 속하니까 어떤 의미에선 내 이야기이기도 할 테고 아니면 적어도 모든 이가 공유하는 하나의 큰 이야기 속에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겠네! 나는 그 책을 단숨에 집어삼켰고 완전히 빠져들어서 그 뒤로 쭉 그 서구식 세계사 내러티브는 내 뼈대가 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읽은 역사책이나 역사 소설은 모두 그 뼈대에 살을 보탰다. 학교에서는 페르시아어로 된 고루한 역사 교과서로 배웠지만 교과서는 시험을 보려고 읽었을 뿐이어서 금세 잊어버렸다.
하지만 다른 그 내러티브도 희미한 메아리처럼 내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다 40년이 지난 2000년 가을, 내가 미국에서 교과서 편집자로 일할 때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해에 텍사스의 교과서 발행인이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일을 내게 맡겼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은 목차를 짜는 작업이었고 그러려면 우선 인간 역사의 전체 구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발행인이 요구한 조건은 책의 구조뿐이었다. 학기 체제에 맞추기 위해서 발행인은 교과서를 열 개 단원으로 나누고 각 단원마다 세 장씩 넣으라고 정했다.
하지만 열 단원을 (혹은 서른 장을) 어떻게 정해야 인간의 역사 전체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을까? 어쨌든 세계사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모조리 연대순으로 적은 목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만 취사 선택해서 배열한 역사의 궤적, 즉 중요한 사건들의 궤적이다.
나는 이 지적 퍼즐에 신나게 달려들었지만 내가 결정을 내린 뒤에 교육 과정 전문가, 역사 교사, 판매 관리직, 주 교육 공무원, 전문 연구자 등 여러 훌륭한 사람들을 포함하는 자문위원단의 검토를 거쳐야 했다. 이는 초등, 고등 교과서 출판에서 일반적인 절차이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교과서는 그 사회가 진실이라고 합의한 내용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문위원은 배심원단처럼 편집자의 결정을 검토해 최종 결과물이 현 교육 과정을 반영할 수 있게 돕는데, 그 과정 없이는 교과서를 판매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문위원들과 나 사이에 흥미로운 밀고 당기기가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거의 모든 내용에서 의견이 같았지만 한 가지가 달랐으니, 나는 자꾸 세계사에서 이슬람에 대한 내용을 더 넣고 싶어 했고 자문위원들은 그 내용을 빼거나 분량을 줄이거나 다른 주제를 다루는 단원에서 짤막한 부연 설명으로 넣고 싶어 했다. 우리 중 누구도 ‘우리의 문명’에 대한 편협한 지역주의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무도 이슬람 문명이 ‘서구’보다 낫다거나 못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는 인류의 이야기에서 어느 사건이 가장 중대한가를 두고 내린 최선의 판단을 표현할 뿐이었다.
내 의견은 정말 소수 의견인 나머지 진위를 가릴 수가 없었으니, 결국 우리는 서른 장 중에서 이슬람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장은 겨우 하나만 포함한 목차로 결론을 내렸다. 그 단원에 들어가는 나머지 두 개의 장은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문명’과 ‘아프리카의 고대 제국’이었다.
이것만 해도 분량이 늘어난 것이었다. 이전 교과서 중 가장 팔린 세계사책은 1997년판 『과거에 대한 전망 Perspectives on the Past』인데, 이 책은 서른일곱 장 중에 단 한 장에서만 이슬람을 다뤘으며 그나마도 그 장의 절반은 (‘중세 시대’ 단원에 포함된 장이었다) 비잔티움에 대한 내용이었다.
요컨대 2001년 9월 11일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은 그때, 전문가들이 합의를 본 의견은 이슬람 문명이 르네상스 한참 전에 영향력이 쇠해버린 별로 중요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든 교과서 목차만으로 판단한다면 여러분은 이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당시 나는 내 판단이 왜곡됐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어쨌든 나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는 이슬람에 심취해 있었으니까. 나는 무슬림 국가에서 성장했을 뿐 아니라, 한때 신앙심과 종교적 학식에 대한 명성만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의 성을 보면 안사르Ansars 혈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돕는 사람들’인 안사르는 메디나의 첫 이슬람 개종자들로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암살을 피해 도망칠 때 도와서 예언자가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여한 사람들이었다.
좀 더 가까운 세대로 내려와 보자면, 나의 할아버지의 증조부가 지역에서 존경받는 무슬림 신비주의자였고 그 무덤은 오늘날까지도 신도들이 수백 명씩 찾아오는 사원으로 남아 있으며, 그분이 남긴 전통이 내 아버지 세대까지 이어졌으니 우리 문중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이런 것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보편적으로 흘렀다. 나는 이슬람에 관한 이런저런 일화나 해설이나 견해를 들으며 자랐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기질로 자랐어도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이야기들은 내게도 일부 스며들었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로도 나는 여전히 비종교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슬림 세계에 살 때보다 더 이슬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슬람에 대한 내 관심은 1979년에 나의 남동생이 ‘근본주의’ 이슬람을 받아들인 뒤로 깊어졌다. 나는 에른스트 그루네바움이나 앨버트 후라니 같은 학자들이 서술한 이슬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파즐라 라만 칸이나 사이드 후세인 나스르의 책을 읽으며 이슬람 철학을 파고들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저 동생과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늠하고 싶어서였지만 내 동생의 경우에는 그곳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어쩌면 내가 이슬람의 중요성을 과대 평가했을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자꾸 의문이 들었다. 내가 순전히 객관적인 근거 없이 애초에 그렇게 판단했던 것일까? 각각 다른 시대의 이슬람 세계를 보여주는 다음의 지도 여섯 개를 살펴봐라.
내가 ‘이슬람 세계’라고 할 때는 무슬림이 인구 중 다수고/다수거나, 통치자가 무슬림인 사회를 의미한다. 물론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에 무슬림이 거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런던, 파리, 뉴욕이 이슬람 세계의 일부라고 말하면 오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에서 한정 지은 정의로 따져 봐도 여러 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는 지구상에서 지리적으로 비중이 제법 크지 않았던가? 오늘날까지도 하나로 남아 아시아?아프리카 대륙에 걸쳐 있으며,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에서 거대한 완충 지대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물리적으로 보자면 유럽과 미국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 이슬람 세계는 단일 정치 독립체였으며, 지금도 이슬람 세계가 하나이며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느끼는 무슬림 지도자들이 있다. 이 여섯 개의 지도를 보면, 어째서 9·11 이전에는 이슬람을 세계사 무대의 주요 선수로 생각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의아하다!
9·11 이후로 인식이 달라졌다. 서구의 비무슬림들은 이슬람이 무엇이며 무슬림은 어떤 사람들이며 이슬람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같은 질문이 내 귓가에도 예전과 다르게 급박한 문제로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그해 나는 38년 만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갔는데 런던의 헌책방에서 산, 맥길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의 종교학 교수였던 고故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책 『현대사의 이슬람 Islam in Modern History』을 갖고 갔다. 스미스가 그 책을 낸 해가 1957년이었으니 그가 말하는 ‘현대사’란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2002년에 펼쳐진 역사와 연관 지었을 때 내게 스미스의 분석은 놀랍게, 더 정확히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스미스는 내가 어린 시절에, 그리고 이후에 책에서 얻었던 정보들에 새로운 빛을 비춰줬다. 예를 들면 카불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나는 사이이드 자말루디니 아프간이라는 남자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그가 근대 이슬람 역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내게는 그저 빈약한 무슬림 쇼비니즘처럼 들렸던 ‘범이슬람주의’를 지지했다는 사실 이외에, 어떻게 해서 그가 그토록 높은 명성을 얻었는지 제대로 알아본 적이 솔직히 없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스미스의 책을 읽으며 ‘이슬람주의’의 기본 교의를, 2001년 우리 주변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던 정치적 이상주의를 이미 100년도 더 전에 이 지적인 ‘이슬람주의’의 칼 마르크스가 고안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의 이름이 대부분의 비무슬림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나는 더 이상 개인적인 정체성 찾기가 아니라 우리 시대 무슬림들에게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슬람 역사를 거슬러 가며 꾸준히 읽어나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 이란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 알제리의 저항 세력들, 필리핀과 또 다른 지역들, 중동에서 일어난 비행기 납치와 자살 폭탄 테러, 이슬람 정치 세력들의 갈수록 강화되는 극단주의, 이제는 탈레반의 출현까지. 분명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도대체 어찌하여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서 차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갔다. 내가 알게 된 것은 프랑스 역사나 몰타 역사, 남미 역사와 달리 ‘저 너머에’ 있는 이슬람 땅의 역사는 인류가 공유하는 세계사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차라리 이슬람에는 완전히 대안적인 세계 역사가 따로 있어서 텍사스의 그 발행인이 의뢰했던 세계사 교과서나 ‘이슬람 단원’만 내가 집필했던 맥두걸?리텔 출판사판 세계사와 경쟁하며, 거울처럼 비추기도 한다.
두 세계사는 같은 장소에서, 고대 이라크의 영토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출발했으며 지금은 다시 같은 장소에, 일견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주요 선수들인 듯 보이는 세계적인 싸움판에 도달했다. 하지만 출발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두 역사는 서로 다르기는 해도 기묘하게 평행하는 풍경들을 통과해왔다.
그렇다, 둘은 기묘하게 평행한다. 서구의 세계사라는 틀 안에서 돌아보면 고대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독보적이던 거대한 제국이 하나 보인다. 바로 로마 제국, 보편 국가라는 꿈이 태어난 곳이다.
이슬람 세계 어느 곳에서 돌아보더라도 절대적인 제국 하나가 보편 국가의 이상을 품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보이겠지만, 그 제국은 로마가 아니다. 이슬람 초기의 칼리프조다.
양쪽의 역사에서 모두, 위대한 고대 제국은 덩치가 너무 커져서 분열되었다. 썩어가는 제국으로 북쪽의 유목 야만족들이 침략해왔다. 이슬람 세계에서 ‘북쪽’이란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이며 침략해온 유목 야만 민족은 유럽의 게르만족이 아니라 튀르크족이었다. 양쪽 모두 침략자들이 거대한 제국을 분할해 작은 왕국으로 쪼갰는데, 그 왕국들에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 교의가 스며들어 있었으니 서쪽에는 가톨릭, 동쪽에는 수니 이슬람이었다.
세계사는 언제나 ‘우리’가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우리’가 누구를 의미하며 ‘지금 여기’가 무엇을 뜻하는가에 따라 역사를 서술하는 모양새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서구의 세계사는 ‘지금 여기’를 민주주의 산업 (그리고 탈산업) 문명으로 상정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에서는 세계사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국의 건국 이념을 이끌었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이 지구를 미래 사회로 이끄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는 역사의 방향을 잡아서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 어딘가에 목표점을 상정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인류 전체가 한 방향으로 향해 간다고 쉽게 간주해버리는데, 늦게 출발했거나 천천히 움직여서 흐름에 뒤처진 나라를 ‘개발도상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가 지향하는 목표점이 탈산업 시대 서구식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적인 미래라고 상정한다면, 현 시점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내러티브는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1. 문명의 탄생(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2. 고대(그리스와 로마)
3. 암흑 시대(그리스도교의 부상)
4. 부활: 르네상스와 개혁
5. 계몽(탐험과 과학)
6. 혁명(민주주의, 산업, 기술)
7. 민족국가의 부상: 제국을 향한 투쟁
8. 제1, 2차 세계대전
9. 냉전
10.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
하지만 이슬람의 눈으로 세계사를 보면 어떨까? 이슬람 세계는 스스로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의 다른 판본이라고, 같은 목표를 향해 발전해가긴 하지만 효과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예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역사 전체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기점이 다르다. 무슬림들에게 원년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해인 히즈라, 즉 무슬림 공동체가 생겨난 해를 의미해왔다. 이제껏 그 공동체가 ‘문명화’의 의미를 구현해왔으며 공동체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이 역사의 틀과 방향을 결정하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근래 몇 세기 동안 우리는 무언가가 흐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껴왔다. 이슬람 공동체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졌으며, 분열을 초래하는 역류, 즉 이슬람의 방향과 대립하는 역사의 다른 흐름이 우리를 침범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슬림 전통의 후계자들인 우리는 역사의 의미를 승리가 아닌 패배에서 찾도록 강요당해왔다. 그리하여 두 가지 추진력 사이에서 갈등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을 역사의 흐름에 맞게 수정하거나, 아니면 그 역사의 흐름과 싸워서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에 맞추느냐다.
지금 이슬람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위축된 현재를 세계사의 내러티브가 설명해야 할 현 시점이라고 상정한다면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2. 이슬람의 탄생
3. 칼리프조: 보편적 통일체를 향하여
4. 분열: 술탄 제국의 시대
5. 재앙: 침략자들과 몽골족
6. 부활: 3대 제국의 시대
7. 서양의 동양 침투
8. 개혁 운동
9. 세속 근대주의자들의 승리
10. 이슬람주의의 반발
문예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주장에 따르면, 수 세기에 걸쳐 서구는 이슬람 세계를 두고 ‘오리엔탈’ 판타지를 구축했으며 그 판타지 속에는 불길한 의미의 ‘다름’과 질투심을 일으키는 퇴폐적인 풍요의 이미지가 뒤섞였다. 그렇다, 서구의 상상 속에 있는 이슬람은 그 정도로 묘사되어왔다.
하지만 내게 더 흥미로운 경우는 상대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을 때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독보적인 세계 권력이 이슬람 제국 세 곳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무슬림은 모두 어디 갔나? 보이지 않는다. 무어인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당신은 그 사실을 『오셀로』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다.
여기 거대한 세계 둘이 나란히 존재한다. 놀라운 점은 두 세계가 서로를 얼마나 모르는가다. 만일 서구와 이슬람 세계가 사람 두 명이었다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억압의 징후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둘이 한때 연인이었나? 예전에 학대를 당한 이력이 있어?”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보다 덜 선정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현재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와 서구는 서로 따로 존재하는 두 개의 우주 같았다. 각자 내부의 문제들로만 바빴고 각자 자신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라고 여기며 각자의 흐름대로 살아오다가 17세기 후반에야 두 내러티브가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둘은 서로를 거스르는 물결이었기 때문에, 한쪽이 물러나야만 했다. 그런데 서구가 더 강력했으므로 서구의 물결이 이슬람을 압도하고 휘저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를 빼앗겼다 해도 이슬람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역조처럼 수면 아래에서 계속 흘러왔으며 지금도 흐르고 있다. 현재 세계 분쟁 지역의 지도를 그려보면-카슈미르, 이라크, 체체니아, 발칸 반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라크-공식적인 지도에서는 사라졌어도 죽지 않으려고 여전히 몸부림치는 독립체들의 경계선을 표시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지금부터 전하려는 이야기이며, 나는 ‘이야기’를 강조하려 한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역사 교과서나 학술 논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카페에서 만나 당신이 내게 “평행 세계사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린가요?”라고 물을 때 내가 당신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다. 여기서 내가 펼치는 주장은 지금 대학 도서관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학술적인 표현이나 각주에 개의치 않는다면 그 책들을 읽어봐라. 하지만 이야기의 궤적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1) 나는 학자가 아니지만 사료를 엄밀히 조사해서 결론을 도출해온 학자들의 연구, 학구적 연구자들이 내놓은 작업을 조사해서 메타 분석의 결론들을 도출한 학계의 연구를 참고했다.
몇 천 년에 걸친 역사 중에서 나는 오래전의 짧은 반세기에 어찌 보면 과도한 지면을 할애했는데, 거기에 오래 머무른 이유는 그 시기가 예언자 무함마드와 최초의 계승자 네 명의 일생을, 즉 이슬람의 창시 내러티브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친근한 인생극으로 전달할 텐데 그것이 바로 무슬림들이 그 이야기를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그 이야기에는 회의적으로 접근하고 무슬림의 서술은 덜 객관적이라고 여기는 반면, 비무슬림이 내놓은 자료는 더 신뢰한다. 그들이 주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파헤치는 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랜 세월 무슬림을 움직여온 이야기이며, 그것을 알아야 세계사 안에서 무슬림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슬람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한 가지 확실하게 달아두려고 한다. 유대교, 불교, 힌두교, 그리스도교 등 이슬람보다 더 오래된 여타 종교와 다르게, 무슬림들은 그들의 역사를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바로 수집해서 기억하고 암송하고 보존했다. 역사를 단지 보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일화마다 자료의 출처들을 기록하고, 각 사건의 목격자 이름을 적어 넣고, 그 이야기를 최초로 기록한 사람에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이어 전달해온 사람들의 이름까지 전부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은 법정에서 증거물이 효력을 지니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연계보관성 같은 역할을 한다.
이는 이슬람의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우화로 접근하는 것은 적합하지 못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우화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밝힐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건 우화의 요점이 아니다. 우리는 우화의 이야기가 진실인가 여부에는 신경 쓰지 않으며, 다만 그 우화가 전하는 교훈이 진실하기만을 기대한다. 이슬람의 이야기들에는 우화 같은 교훈이 담겨 있지 않다. 이건 이상 세계에 사는 이상적인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실제 역사의 진흙탕과 암흑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씨름하는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는 우리가 뽑아내야 한다.
이슬람의 이야기들이 우화적이라거나 어떤 이야기는 만들어졌다거나, 많은 이야기 혹은 모든 이야기가 전달 과정에서 화자나 그 시대의 의도에 맞게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무슬림은 역사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그들 종교의 창시 내러티브를 전달해왔으며, 그 안의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고대 로마 때 술라와 마리우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알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역사와 신화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생극을 벗겨내고 전달한다면 그 이야기가 무슬림들에게 지닌 의미가 변질되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수 세기에 걸쳐 해온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그 이야기를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와 함께 갈 마음이 있다면 안전벨트를 매고 이제 출발해보자.
(저자서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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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타밈 안사리 Tamim Ansary
타임 안사리는 1948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유서 깊은 이슬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카불 대학교의 교수였고, 어머니는 아프간 남자와 결혼해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었다. 1964년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편집자로 일했고, 잡지 칼럼과 소설, 어린이책 등을 쓰고 있다. 안사리는 무슬림 가문에서 자라면서도 줄곧 종교와는 거리를 두었지만, 1979년 남동생이 ‘근본주의 이슬람’에 심취한 이후로 이슬람의 역사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9·11 사태가 일어난 직후,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시의 상황이 자신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말했고, 그 편지가 인터넷상에서 급속도로 퍼진 것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회고록 『카불의 서쪽, 뉴욕의 동쪽 West of Kabul, East of New York』과 역사소설 『과부의 남편 The Widow's Husband』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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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류한원
국어교육을 공부한 뒤 <GEO> <모닝캄> <판타스틱> <루엘> 등 여러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소설만 읽고 지내던 청소년기부터 번역이 1차 창작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잡지사를 그만두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내 번역하기로 인생의 방향을 수정했다. 현재는 ‘바른번역’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위드아웃유』『나부터 바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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