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THE
LONG SUMMER
1장 긴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 눈앞의 미래
우리는 미래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다줄 넓은 고속도로처럼 항상 앞으로 곧게 뻗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구 전역에서 극적으로 펼쳐지는 물리적인 변화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면서 이제 미래는 갑자기 긴박한 고민거리가 되고 말았다. 다음 세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이제껏 익숙하게 상상했던 한층 나아진 미래가 평탄하게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것은 이것뿐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위험을 인식하면, 아마 우리는 결국 인류의 향배(向背)가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행성 수준의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비상사태는 단순히 기후 변화라는 긴박한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부터 사무실 문 앞에 붙여놓은 스티커에는 이제까지 그 누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진실이 담겨 있다. 파란 향유고래 만화가 그려진 그 스티커에는 ‘인간을 구하라’고 적혀 있다. 다른 어떤 생명체가 위험에 처했든 이 위기의 일차적인 대상은 인류와 근대 문명이다. 더욱이 우리는 그 언젠가 태어날 관념 속의 후속 세대를 향한 모호한 위험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위협은 바로 오늘 태어난 아이에게 가해지는 구체적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은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하에 구멍을 뚫어 빙핵(氷核)을 추출했다. 이중 어떤 것은 길이가 약 3.2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오래된 과거의 기포(氣泡)가 들어 있어서 이 기포를 가지고 약 80만 년의 유구한 지구 역사를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깊은 곳에 있는 얼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데, 그중에서도 현재의 상황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인간의 활동은 놀라운 속도로 지구의 대기에 있는 기체들의 균형을 정상 범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둘째, 농업·문명·고밀도의 인구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세상은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은혜로운 기후의 시기에 출현한 것이다. 이 은혜로운 ‘긴 여름’은 지난 1만 1700년 가운데 유례없는 안정기다. 그러나 인류가 이 행성 전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이제 이 온후한 시기는 끝나가고 있다.
오늘날 산업자본주의의 지나친 성장과 인구 증가에서 비롯된 부담은 그 파괴력에서 지구의 역사를 뒤바꾸어놓았던 소행성 충돌과 빙하기에 비견될 만한‘행성 수준의’힘을 구성하고 있다. 1970년에 처음으로 가졌던 지구의 날 행사와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국제환경회의 이후로 지구상의 모든 인간 활동이 지역 생태계를 지탱하는 재생력을 침해한다는 사실에 대한 경고가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새로운 질서 전반의 위험을 예고하는 불길한 사건들을 보 고하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근대 산업 문명의 무분별한 팽창은 지구의 필수적인 생명 유지체계를 보이지 않게 구성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순환구조를 손상시키기 시작했다. 인간의 활동은 지구의 근원적인 물질대사를 맡은 부분들을 침해할 수 있는 위태로운‘전 지구적’ 변화를 일으킬 만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위험한 문명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했다고 해서 이와 동시에 근대를 이끌어온 진보의 신화가 약속했던 자연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관한 초기 출판물의 저자가 한탄한 것처럼, ‘자연의 종말’이 도래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이 인류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행위자로 중심 지위에 다시 복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인류의 미래를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당장에 시급한 문제는 이런 변화에 맞닥뜨린 상태에서 지구가 복잡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 전 지구적인 문명을, 나아가 인간의 생명을 부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20년간은 오존층 파괴, 기후 변화, 세계적인 규모의 종의 상실, 해양에 대한 위협의 증가, 지구의 모든 곳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먹이사슬에 대한 화학적인 오염 등과 같이 인류에 의한 전 세계적인 규모의 환경 파괴 중에서도 특정 증세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더 폭넓은 행성 수준의 고통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특정 증세 이상의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긴 여름의 끝』은 인간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앞으로 그리고 위로만 내달리는 근대 사회의 진보 서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설명 방식을 취한다. 희망의 근원은 인간은 지배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지구에서 힘겹게 번창해온 강인한 종족이라는 이미 증명된 사실 속에 있다. 선조들은 기후의 역습과 재난에 가까운 변화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이 책은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대에 맞닥뜨리는, 우리 선조들이 그 진화 과정에서 꾸준히 대면했던 것과 같은 생의 도전과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인내의 의무’다. 생물학자인 장 로스탕은 우리 생보다 더 긴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그의 글은 많은 공감을 불러와 그 유명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도 인용된 바 있다(“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그의 말은 우리의 앞 세대와 다음 세대를 넘나들며 삶이라는 일종의 약속 안에서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처한 딜레마를 정확하게 보고,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 위험 속에서 어떻게 나아갈지를 현명하게 판단하려면 우리가 무엇에 맞서야 하는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언론인으로 일하던 25년여의 세월을 위기에 처한 자연의 최전선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대 인류의 활동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직접 보았다.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동시에, 이 위기가 1970년 최초의 지구의 날에 확인했던 수질 오염과 대기 오염에 대한 우려보다 훨씬 높아져 지구라는 행성의 시스템 전반이 악화되고 불안정해진 오늘날의 위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경고를 꾸준히 전달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점점 늘어만 가는 스트레스 증세를 치유하려는 사람들은 가속화되는 위기의 쳇바퀴에 갇혀 더욱더 빠르게 달리면서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이런 식으로 증세를 치유하는 것은 작은 산불을 끄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결국 방화범을 잡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다.
우리의 딜레마는 ‘환경 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근대의 세기는 급진적인 문화 실험과 같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단기간에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큰 부와 안락함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누리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에는 위험한 도박이 뒤따른다. 오늘날 지배적인 전 지구적 문명은 좀 더 길게 인류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생활양식에서 근본적으로 멀어져버렸다.
이런 행성 수준의 시급함을 해결하고자 할 때는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이런 긴박함에 기름을 끼얹었으며, 동시에 어떻게 우리가 이런 긴박한 결과에 점점 더 취약해졌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까지 유지하는 해묵은 유산들이 오늘날의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이 새로운 역사적 경관 속에서 우리는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통해 물리적인 위기를 꾸준히 강화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는 낡고 위험하기까지 한 세계관을 가지고 우리가 처한 딜레마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세계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폭넓은 인류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근대 산업 문명의 역량은 최근 들어 이 행성의 핵심적인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꾸준히 경악스런 사건들을 일으키고 있다. 한 예로, 남극의 오존 구멍은 우리 문명의 세계관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인간의 힘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인류의 장소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이 쏟아져나왔다. 이런 전반적인 위기는 과학적 연구를 더 많이 한다거나 단기적인 기술 대책을 수립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 지도는 갈가리 찢어져 믿을 만한 길잡이로 삼으려면 대대적인 수리를 해야 한다. 지구상에서 인류라는 존재와 인류가 파괴하는 자연, 이 두 가지 모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는 단순히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 해야 할 실질적인 결정들과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인간의 활동을 좀 더 안전한 경로로 조정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장기적 변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지난 400년 동안 근대 문명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이 자연에 대한 부정확한 관점에 기대고 있었다거나 우리의 문화 지도가 핵심적인 정보를 빠뜨렸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측 불가능성
기후 변화는 우리가 아주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있고, 미래가 우리 손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불편한 사실을 보여준다. 전 유엔 무기사찰단장 한스 블릭스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21세기에는 기후 변화가 테러리즘보다 훨씬 큰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하게 알 방법이 없다. 컴퓨터로 지구 기후시스템 모델 작업을 하는 과학자들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수준이 산업혁명 초기의 두 배에 이르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상태로 현상 유지를 하면 21세기 중반쯤에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우리 ‘인간의 활동’뿐만 아니라‘지구의 반응 양식’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 몇 년간 발표된 새로운 과학적 연구 작업들에 따르면, 지구의 반응은 현재의 기후 모델이 예측하는 것보다 (영국의 한 정책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면) ‘더 빠르고 고약해질’ 것이다. 유엔의 지원으로 편찬된 합의형 과학평가서에서 개괄하는 ‘가능한’ 미래는 좋게 보아도 심하게 파괴적이고, 최악의 경우 위험하고 파국적이기까지 할 수 있다.
이런 행성 수준의 위기 상황을 손쉽게 막고, 이미 진행 중인 급격한 변화를 중단시키며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세계를 구할 수 있는 ‘해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진실이다. 현저한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무시했을 때 우리는 이미 첫 번째 운명의 관문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다른 관문들이 놓여 있다. 단호한 의지와 준비성이 있으면 불안정이 증대되는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복원력을 되살릴 수 있다. 발 빠르고 확고한 행동이 운과 함께 따라주기만 한다면 급격한 해수면 상승이라는 완전한 재난과, 문명을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갑작스런 기후 이변, 그리고 지구 대부분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어놓을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의 흐름은 우리를 훨씬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왔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최선을 다해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동시에,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된 변화를 헤쳐나갈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이다음 몇십 년간 기후가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는 기온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만큼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마치 부드럽게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처럼 북쪽 지방의 날씨를 온화하게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오래된 상식과는 다르게, 초기 지구의 기후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한 세기 미만, 심지어는 단 10년 만에도 날씨가 아주 빠르고 강하게 변했던 증거를 찾아냈다. 온난화의 속도가 더 빠르고 기온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변화의 충격 때문에 사회·경제 시스템이 붕괴할 위험은 더 커진다. 갑작스런 오존층의 상실이 바로 이런 급격한 변화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한 많은 언론 보도와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빙붕(氷棚)의 융해와 해수면 상승, 그리고 저지대와 해안 도시의 유실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부각되었다. 이런 일들이 파국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혼란과 고통을 참고 이겨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적응해볼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점진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시스템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겪을 위험은 공적인 논의의 장에서는 거의 부각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12만 년 동안 유럽과 미국의 주요한 세계적 금융 중심지들을 포괄하고 있는 북대서양 지역의 기후는 극단적일 정도로 갑작스러운 온난화 사건과 한랭 사건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이런 반전을 몇 차례 겪은 후 이 지역의 기후는 10년도 못 미쳐 마치 스위치를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또한 ‘평균’ 기온은 화씨 18도(섭씨 약7.8도)까지 올라갔다.
또 다른 우려는 현재의 변화가 기후 변동의 폭을 더 넓혀서 기온과 강수량이 더 난폭하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역사상 대부분의 날씨는 최근 1만 2000년 동안보다 더 심하게 10년을 주기로 변화했다. 그리고 긴 여름을 지나는 동안 날씨는 역사상 인류가 겪었던 혼란스러운 기후와는 아주 달랐다. 날씨가 극단적일 정도로 변동이 컸던 과거의 패턴으로 돌아가면 지난 6000년간 복잡한 문명에 기초를 제공해주었던 농업이 큰 해를 입을 것이다.
중요한 갈림길
만일 놀라운 격변과 가중되는 기후 변동성으로 인한 도전이 미래에 있을 법한 일이라면 우리는 이제껏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목표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바로 인간의 시스템이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적인 생활 방식이 일으키는 혼란과 불안에 취약하다. 상호 의존과 세계화로 치닫는 오늘날의 경향은 인간의 취약성을 증대시킬 뿐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화 과정은 정말로 위험한 전략이다. 만일 우리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에 살고 있고 내일이 오늘과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이 정도 강도의 통합은 도박이긴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를 마주해야 할 때 이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전 지구적인 통합을 추구하다가는 중요한 기관들이 해체되거나, 아니면 상대적으로 사소한 기후 단절 때문에 생겨난 붕괴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적인 위험이 닥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기후 재난이 발생하기도 전에 사회·경제적인 혼란의 한 가운데 서 있을 수도 있다. 전 지구적 경제시스템이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후 변화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심각한 도전 과제가 곧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에 맞닥뜨린 우리는 인간 사회를 더욱 튼튼하게 재구조화해서 지구의 생명들이 그동안 파국을 견딜 수 있게 해준 특성들을 다시 인간 시스템에 도입해야 한다. 지구 시스템이 그동안 상당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기능의 중복, 모듈구조, 구획 같은 몇 가지 구조적인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능의 중복은 수많은 다양한 종들이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하고, 모듈구조는 상대적으로 자족적인 더 작은 단위들로 구성된 전체를 말하며, 구획은 시스템의 부분들이 전체에 제한적으로만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세계화에서 다함께 후퇴하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는 이제 행성 차원의 충격 때문에 같은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전 지구적 규모에서 검토해야 하며, 아마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전 지구적 기구를 통해 관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처한 상황이 점점 더 불안하고 불확실해지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 미래에 대한 선택을 할 때 단순히 효율성과 비용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자립 증강에 기초한 새로운 안보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식품과 에너지 시스템을 지역화하고 분권화하면 우리는 수송이 불가능해진 긴급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다음 몇십 년 안에 값싼 석유 공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고 중동이 꾸준한 정치적 불안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전 지구적인 변화의 도전에 맞닥뜨린다 하더라고 지역화와 분권화를 이뤄내기만 한다면 문제없을 것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우리는 이른바 사회 자본, 즉 선조들이 과거 재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 신뢰와 협력 능력을 강화할 방법 또한 찾아야 한다. 오늘날의 전 지구적인 하부구조가 일시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붕괴했을 경우에도 여전히 작동하면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예를 들어 물을 정화한다든가 전기를 만들어낸다든가 음식을 조리해주는 단순하면서도 품위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만일 복잡한 전 지구적 문명이 다음 세기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져갈 것이 명백한 극단적인 경우라면, 우리는 핵심적인 문화유산들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해서 재건하도록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의 목표는 ‘생존 가능성’이다. 이것은 건조해진 기후나 홍수의 위험에 ‘적응’하고, 오늘날의 관행들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 이상의 도전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사회·경제 시스템을 보완하고 재조직해서 붕괴와 충격을 더 잘 견뎌내고 변화된 환경에 맞게 탈바꿈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존 가능성과 생존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생존주의는 사회에서 이탈해 개인의 생존에만 초점을 맞추는 충동을 말한다. 하지만 생존 가능성은 우리가 상상력과 유연성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해주는 인간의 지식과 제도들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가장 무시무시한 장애물은 우리의 상상인지도 모른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이미 심오한 변화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인간의 문명이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암담한 미래’를 예견하는 메시지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관점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일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의 출발점에 서 있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는 현재와는 아주 다른 미래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공포의 시나리오에서 창조적인 대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미래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 상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 경관 속으로 어떻게 걸어 들어갈 것인가다. 지금의 아이들은 완전하게 탈바꿈해 알아볼 수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전에 맞닥뜨릴 공산이 크다. 아이들이 무사안일한 현상 유지 상태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행동일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생존 게임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킬 수 있을까?
이런 전환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의 소용돌이 속에 몇 세기에 걸쳐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인류는 이전부터 급진적인 변화를 잘 견뎌왔다. 우리 선조들은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선사 시대 에덴동산의 평온한 안정 상태에서가 아니라, 불규칙하고 불균일한 지구상에서 진화했다. 인간의 진화 유산 덕에 우리는 갖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과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창조성을 손에 넣었다. 우리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격변하는 변화의 시기에도 살아남았던 선조들 덕분이다.
이제 수년 뒤 우리 아이들과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 그리고 그다음 세대들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격랑을 뚫고 위험한 길을 가야 한다. 우리가 의지했던 안락하고 친숙한 세계의 문은 이미 우리 뒤에서 쾅 하고 닫혀버렸다.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거나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거대한 힘이 인류 역사의 궤적을 바꾸지 못하게 막기에도 너무 늦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불길한 문턱을 넘어섰다고 해서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은 용기와 냉철한 현실주의가 필요한 역사적 순간이다. 성서식의 종말이든 인간 종의 멸종이든 세상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체념할 수도 없고, 최후의 심판에서 구제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기술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유지할 수도 없다. 공포, 절망, 부정 따위는 우리에게 걸맞지 않은 사치다. 이제 고개를 들고 눈앞의 미래를 바로 볼 때가 왔다.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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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다이엔 듀마노스키 Dianne Dumanoski
1970년 처음으로 개최된 ‘지구의 날’ 행사를 통해 인간활동이 자연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도를 시작한 이후 40여 년 동안 텔레비전과 인쇄 매체를 오가며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 오늘날의 전 행성적 위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보도해온 언론인이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보스턴글로브>의 환경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오존층 감소, 지구온난화, 생물종 다양성 감소 같은 전 지구적 환경문제를 선구적으로 보도했다. 듀마노스키는 정책결정의 정치적 과정에 대한 깊은 관심을 과학적 문제에 대한 전문지식과 결합하는 보도방식을 취한다. 과학자인 테오 콜본, 존 피터슨 마이어와 함께 저술한 『도둑맞은 미래』는 한국어를 포함해 1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듀마노스키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들이 민감한 호르몬계를 교란시키고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과학적 주장을 펼친 바 있다. www.diannedumanos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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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황성원
대학에서 영문학과 지리학을 전공하고, 한때는 기후변화 국제 거버넌스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내 환경정치에 눈을 돌려 지역주의와 개발주의, 국가주의라는 문제를 환경문제와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 잡학에 가까운 범사회과학을 하면서도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꾸준히 곁눈질을 하는 중이다. 옮긴 책으로 『혁명을 표절하라』『음식의 종말』『불경한 삼위일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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