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 ‘망각’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가끔 실수로 얼굴이 화끈거리게 부끄럽고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문제였지만 이튿날엔 언제 그랬냐 싶게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망각으로 인해, 우리는 한때 실수를 저질러도 이를 잊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일상의 행복을 다시 누릴 수 있다. 만약 모든 것을 기억하는, 망각이 없는 세상이 닥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망각 없는 세상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2000년대 초 신문사에서 인터넷 뉴스 부문을 맡아 일할 때 한 독자의 전화를 받았다. “포털에서 내 이름을 검색했더니 과거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기사가 검색결과에 나왔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보게 될까봐 걱정됩니다. 제발 과거 기사를 지워주세요. 이미 사면 복권을 다 받아 정부 기록에서도 삭제된 일입니다.”
비슷한 요청이 드물지 않게 이어졌다. 기업 이름을 검색하면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사고가 맨 위에 노출되는데 이를 경쟁업체가 마케팅에 쓰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해오는 기업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보도가 되었고 사실인 기사를 나중에 당사자 요구로 삭제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였다. 보도로 알려졌고 도서관이나 연구소에서 스크랩이나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누구나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과거의 기록물인데, 이를 요청에 따라 지우거나 특정 부분을 가릴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변호사를 비롯한 회사 외부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렸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다수는 공적 기록물로 발간된, 당대의 역사인 신문을 나중에 당사자의 요청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바꿔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과거 신문이나 기록물에 대해 사후에 수정을 요청할 수 있는 방법을 허용하면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권리구제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포털 네이버는 근래에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1920년부터 발간된 옛날 신문을 PDF 문서로 복원해, 과거지면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점점 더 오래된 기록들이 이처럼 디지털 정보로 바뀌어서, 검색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던 과거 정보와 달리 오래된 기록들도 디지털화되어 검색에 포함되고 검색엔진의 성능도 갈수록 개선돼 못 찾던 것을 찾아내 보여준다. 과거에 인쇄된 책들을 디지털화하는 유럽의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나 구글북스가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검색엔진은 문자만이 아니라 이미지도 찾아줄 수 있게 진화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등장해, 개인적 잡담까지도 전 세계에 시차 없이 유통시키고 있으며 그 내용이 실시간으로 검색된다.
인터넷을 통한 검색이 편리한 것인 줄만 알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준 것이다. 지난날 한 때의 일로 지속적인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당사자들의 호소가 이해는 되지만, 요청에 따라 함부로 지워줄 수 없는 고민이 있었다. 2007년 인터넷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사로 인해 벌어지는 고민스러운 현상에 대해 기획기사로 보도하자, 한국언론재단은 이를 계기로 ‘묵은 기사의 인터넷 유통과 언론피해 구제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옮긴이가 발제를 맡은 이 세미나에서는 언론인, 법률가,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전문가가 모여 언론과 법률의 영역에서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처음으로 고민하는 자리였다. 해결책이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한 번 보도되고 생성된 정보가 영원히 존속하는 정보사회에서는 ‘잊혀질 권리’라는 새로운 권리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
흥미롭게도 당시 국내 언론 현장에서 부닥친 고민스런 문제를 기획기사로 보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 <뉴욕타임스>에서도 같은 문제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제기된 ‘인터넷 시대에 지워지지 않는 기록의 문제’에 대한 아카데미즘의 고민도 시작되었다. 이 책은 디지털 환경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록’의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첫 책이다.
저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오래된 과거 기록이 손쉽게 유통되어 생겨나는 문제를 넘어 정보화 시대에 일어난 혁명적 변화를 논의의 마당으로 끌어내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유사 이래로 시간과 더불어 망각되는 게 기본값이던 인류의 집단 인지적 구조가 디지털 시대에는 ‘기억’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의 구성 단위가 물리적 원자(atom)에서 전자적 정보인 ‘0’과 ‘1’(bit)로 달라진 데서 생겨난 불가피한 변화다. 이제 특별히 ‘삭제’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대부분의 정보가 디지털 장치에 기록된다. 저자가 책에서 말한 대로 값이 싼 디지털 저장 장치, 손쉬운 검색, 글로벌 네트워크 환경을 통해 정보의 속성은 기본값이 망각에서 기억으로 바뀌었다. 이는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언어나 문자의 발명, 인쇄술처럼 인류가 정보를 다루는 근본적 방식과 인지 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다.
대부분의 것이 기록되고 기억되는 세상에서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망각되지 않는 전자적 두뇌를 보조장치로 휴대하게 되는 인간은 더욱 현명해지는 것일까, 어리석어지는 것일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에 올라간 뒤 사라지지 않는 개인정보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는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답변이 쉽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게 된 디지털화의 도전이다. 망각이 사라진 사회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탁월하지만,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방법은 저자의 말대로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그러하다. 진단이 명확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극복 수단과 답안이 확실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정보화 사회와 그로 인해 근본적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된 프라이버시, 판단과 사고력 등에 대한 쉽지 않은 문제를 던진다. 빠르게 진행되어온 정보화가 우리에게 편리함이라는 빛을 던져주었다면, 이제 피할 수 없이 거대하면서도 생활 깊숙이 지배하는 흐름이 된 그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인류의 오랜 삶의 방식이 디지털 기술에 압도될 것 같은 디스토피아의 두려움이 느껴지지만, 당장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비관할 것만도 아니다. 물리적 세계의 구조를 파악하게 된 뒤 인류의 삶이 개선된 것처럼, 디지털 세계에 대한 통찰이 우리에게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인식이 해결책의 첫걸음이다.
옮긴이 구본권
제1장 | 완벽한 기억은 축복인가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는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다.
그렇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균형이 역전되었다.
스테이시 스나이더(Stacy Snyder)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2006년 봄만 해도 25살 싱글맘이었던 스나이더는 대학 과정을 마치고 교사가 될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꿈이 끝장나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대학 당국의 호출을 받은 자리에서 “교사가 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스나이더는 교사 자격에 필요한 모든 학점을 이수하고 시험을 통과했으며 교생 실습도 마치고 상도 여러 차례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행실이 교사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므로 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행실’이라니? 해적 모자를 쓴 복장을 하고 플라스틱 컵으로 술을 마시는 인터넷 사진 한 장이 문제였다. 스테이시 스나이더는 이 사진을 그녀의 마이스페이스(Myspace.com) 웹페이지에 올려놓고,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술 취한 해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스테이시가 교생 실습을 나갔던 학교에 근무하던 지나치게 열성적인 어떤 교사가 이 인터넷 사진은 학생들에게 교사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드러내 직업 윤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스테이시를 대학 당국에 신고했다. 스테이시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내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녀의 마이스페이스 웹페이지는 검색엔진에 의해 이미 인덱싱(indexing)되었고 사진은 웹 크롤러가 긁어가 보관 중이었다. 스테이시가 잊고 싶던 일을 인터넷은 기억하고 있었다.
스테이시는 나중에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그녀는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새내기 교사로서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진에서 플라스틱 컵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고, 혹 알 수 있다 해도 두 아이를 둔 싱글맘인 스테이시는 사적인 파티에서 충분히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였다.
이 사건은 스테이시의 교사 자격을 부인하는 대학 당국 결정의 타당성이나 어리석음에 관한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망각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는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다. 그렇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균형이 역전되었다. 오늘날 널리 확산된 기술의 도움으로 인해 망각은 예외가 되어가고 있으며 기억이 일반적인 게 되어가고 있다.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또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잠재적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스테이시 스나이더의 사례는 예외적인 사안으로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이후로도 수십 건의 복잡하고 난감한 사례나 법적 소송이 일어났다. 10여 년 전 학교신문에 났던 기사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변호사부터 페이스북(Facebook)에 “일이 따분해”라는 글을 올린 것 때문에 실직한 젊은 영국 여성에 이르기까지 사례는 다양하다. 2008년 현재 1억 1,000만 명 넘는 사람이 스테이시 스나이더처럼 마이스페이스에 개인 페이지를 갖고 있다. 마이스페이스의 경쟁자인 페이스북에서는 2009년 초 현재 1억 7,500만 개의 개인별 페이지가 만들어져 있다. 페이스북과 마이스페이스는 기본적으로 미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지만(상황은 변화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글(Google)의 오르컷(Orkut)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는 주로 브라질과 인도 등에서 1억 명 넘는 사용자가 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수십여 개의 다른 사이트들도 있어 이용자가 최소한 2억 명을 넘는다. 이런 숫자는 좀 더 일반적인 트렌드를 반영한다. 닷컴 거품과 붕괴로 막을 내린 인터넷 열풍의 초기 시절엔 정보에 접근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게 전부이다시피 했다. (‘웹1.0’이라 부를 수 있다.) 2001년경에는 사용자들이 인터넷이 단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네트워크가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생산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주로 ‘웹2.0’이라고 불린다.) 특히 젊은 층이 웹2.0의 잠재력을 적극 받아들였다. 2007년 말 미국의 트렌드 조사기관인 퓨 리서치(Pew Research)는 10대 3명 중 2명이 “1종류 이상의 인터넷 콘텐츠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남자보다 여자가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평일 기준으로 페이스북은 전 세계 이용자들로부터 1초당 1,000만 페이지뷰를 기록한다. 존 팰프리(John Palfry)와 어스 개서(Urs Gasser) 교수는 개인정보를 드러내는 행위가 세계적으로 청년문화 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의 자기소개, 블로그 형태를 띠고 있는 개인적 일기와 비평, 사진, 우정, 교류관계, 인터넷 사진이나 태그와 같은 콘텐츠 선호나 식별 수단, 지오태깅(geotagging)이나 도플러(Dopplr) 사이트 등을 통한 개인의 지리적 위치, 트위터 같은 단문 게시 등이 그 사례다. 이들 젊은 층이 나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성인들이 유사한 습성을 수용할 것이고 스테이시 스나이더의 경우는 단지 한 세대에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통용되는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웹2.0은 이런 추세를 가속화했지만 인터넷의 위력과 짝을 이루는 기존의 출판물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결과를 낳았다.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60대 후반의 심리치료사 앤드류 펠드마(Andrew Feldmar)의 사례를 보자. 2006년 그는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친구를 마중하러 가기 위해 그동안 100번도 넘게 오갔던 미국-캐나다 국경을 넘으려 했다. 이때 국경 경비대원이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펠드마를 검색해봤다. 펠드마가 2001년 ‘학제간 연구’ 논문집에 쓴 논문이 검색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펠드마는 그가 1960년대에 환각물질 LSD를 흡입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논문의 한 구절 때문에 펠드마는 4시간 동안 억류되었고 지문을 찍고 40여 년 전에 마약을 한 적이 있다는 진술서에 서명을 한 뒤, 추후 미국 입국 금지라는 통보를 받았다.
앤드류 펠드마는 범죄 기록이 없는 성공한 직업인으로, 1960년대에 LSD를 흡입하는 위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1974년 이후로는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경 경비대가 펠드마를 제지한 때로부터는 30년도 더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펠드마에게 이 일은 오래전 과거의 한 시절에 있었던 일일 뿐이고 이미 오랫동안 사회에서 잊혀 있던 일이어서, 이를 현재의 자신에게 관련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로 인해 사회가 망각하는 능력은 유예되었고, 완벽한 기억으로 대치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스테이시 스나이더의 수난은 상당 부분 자초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기 사진을 자신의 웹페이지에 올렸고, 모호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녀는 아마도 온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웹페이지를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그 사진이 그녀가 인터넷에서 삭제한 한참 뒤에도 인터넷 아카이브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세대인 그녀는 인터넷에 사진을 노출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신중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앤드류 펠드마는 이와 다르다. 70살 가까운 그는 인터넷에 빠진 10대도 아니고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논문집에 실린 자신의 논문이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에서 그렇게 손쉽게 접근 가능하리란 것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디지털 기억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그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기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나이더와 펠드마가 알았더라도, 스스로 정보를 노출한 사람들은 그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영원히 잃어버려야만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인터넷이 이 정보를 언제 망각할지와 그 여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우리는 잊히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미래를 원하는가? 교사학부모협회(PTA) 공동대표인 캐서린 데이비스(Catherine Davis)는 “이제 청소년기의 어리석은 실수가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청소년들의 인생 전체에 남는 기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들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우리 인생보다 더 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사소한 가십에 대한 견해를 밝히거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다양한 정치적 발언을 하는 행위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검열을 할 것인가? 완벽한 기억으로 인한 냉각효과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스나이더와 펠드마 모두 뒤늦게 사태를 알고 난 뒤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는 “인터넷에 뭔가를 올릴 때는 조심하시오”라고 말했고, 펠드마는 “인터넷에 남기는 전자적 자취가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 발자국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는 통찰을 덧붙였다. 하지만 망각의 소멸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쌓아오고 유지해온 평판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훨씬 광범하고 골치 아픈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가 과거에 했던 모든 행동이, 그것이 위법이든 합법이든 간에 항상 현재 상태로 존재한다면 사고와 판단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과거의 행동들에서 분리할 수 있을 것인가? 완벽한 기억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 것인가?
어쨌든 스나이더와 펠드마는 자발적으로 자기 정보를 노출했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자신들의 정보 노출에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종종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노출되기도 한다.
독일 도시 아이제나흐(Eisenach) 외곽엔 4천 명이 들어가는 거대한 디스코텍 MAD가 있다. 손님은 MAD에 입장할 때 여권이나 정부 발행 신원증명(ID) 카드를 보여줘야 하는데, 디지털 얼굴 사진과 함께 신분증의 내용이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된다. 손님들은 MAD 안의 수많은 식당과 바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사고 지불할 때 써야 하는 별도의 충전카드를 지급받는다. 모든 거래는 고객의 영구적인 디지털 기록에 추가된다. TV 보도에 따르면 2007년 말 MAD의 데이터베이스에는 1만 3,000명이 넘는 개인정보와 수백만 건의 거래정보가 담겨 있다. 60개의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끊임없이 디스코텍과 주위 모든 곳을 캡처하고 있으며, 그 장면은 8,000기가바이트(GB)의 하드디스크에 기록되어 저장된다. 손님들에 관한 실시간 정보, 거래 행위, 선호하는 소비 유형이 007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특별한 컨트롤센터의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다. 경영진은 MAD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고객 정보를 지방 경찰이 일주일 내내 24시간 온라인으로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디스코텍 손님들 중 그들의 모든 모습이 기록되어 수년 동안 보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심지어 용의점이 거의 없는 수천 명의 손님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정보의 그림자를 만들어 제3자에게도 제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훨씬 더 일반적인 사례는 인터넷 검색엔진이다. 구글, 야후(Yahoo!),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애스크닷컴(Ask.com) 그리고 수많은 업체들은 웹페이지 단위로 긁어와 월드와이드웹을 분류하고, 누구나 검색창에 손쉽게 한 두 단어만 입력하면 이에 접근하게 해준다. 우리는 검색엔진이 인터넷의 웹페이지에서 이용 가능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여긴다. 그동안 편리하고 강력한 검색은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성공적으로 제공해왔다. 그렇지만 검색엔진은 단지 웹페이지에 포스트된 것 이상의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2007년 봄 구글은 그때까지 이용자들이 입력한 모든 검색 질의(search query)와 검색결과 중에 이용자가 클릭해서 접근한 모든 결과에 대한 기록을 보관해왔다고 인정했다. 구글은 매달 300억 개에 이르는 방대한 검색어를 보관하면서 깔끔하게 조직화해서 사용자 통계에 연결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검색 질의 추이를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보여줄 수 있다. 구글은 ‘이라크’가 2006년 가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얼마나 많이 검색되었는지, 애틀랜타 중산층이 2007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구글이 로그인 정보, 쿠키(cookie), 인터넷 접속(IP) 주소를 지능적으로 결합시켜 시간이 흘러도 검색 질의를 특정한 개인과 상당히 정밀하게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구글은 우리들 각각이 무엇을 언제 검색해 보았으며, 그리고 어떤 검색결과가 우리가 클릭해 들어가 볼 만큼 유용해 보였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 당신이 결혼한 뒤 2000년에 집을 샀으며, 2003년엔 건강에 대해 불안해했으며, 1년 뒤에는 아기를 출산했다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중대한 변화에 대해서도 구글은 알고 있다. 구글은 우리들에 관해 사소한 부분까지도 알고 있다. 우리가 오래 전에 망각하고 마음에 편하지 않아 지워버린 사소한 일들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과거를 들추어낸다. 한때 전 직장의 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고려하면서 노무전문 변호사를 물색했거나, 정신 질환 문제를 검색했거나, 선정적인 소설을 찾거나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의 데이트를 위해 외딴 곳의 모텔을 예약한 것과 같은 기록이다. 우리들은 이런 정보를 머릿속에서 없애버렸지만, 구글은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구글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구글은 더 이상 개인화된 기록을 영구히 보관하지 않겠다며, 포괄적인 기록의 일부를 지우고 9개월이 지난 뒤 그 정보를 익명화하겠다고 밝혔다. 개인화된 검색 기록을 수개월 동안 보관하는 것은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정보를 구글이 갖게 하는 것이다. 구글은 보유 기간 한계에 도달하면 실제 검색어나 검색어가 저장된 맥락 정보를 삭제하는 게 아니라, 검색 질의의 개인적 식별 요소만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구글은 내가 5년 전에 어떤 단어를 검색해서 그중에 어떤 검색결과를 클릭했는지를 말해줄 수는 없게 되었지만, 구글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작은 인구 분포 집단(특정 소득 범위에 들며 내 거주지 주변에 주택을 소유한 중년 남자들)이 5년 전 4월 10일 저녁에 무엇을 찾았는지는 말해줄 수 있다. 집단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나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다. 스테이시 스나이더와 앤드류 펠드마의 사례와 대조적으로 구글이 이처럼 정밀하게 사용자들의 검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용자들은 거의 없다.
구글이 검색 기록을 기억하는 유일한 검색엔진은 아니다. 두 번째로 큰 검색회사로 매달 약 100억 개 검색 쿼리가 발생하는 야후도 비슷한 방식으로 검색 질의에 대한 개인 기록을 보유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마찬가지다.
검색엔진은 사용자들이 어떻게 검색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거의 완벽한 기억을 갖고 있는 조직의 강력한 사례이며, 검색엔진은 이런 정보력을 활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다른 조직들도 우리들에 관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모으고 보유한다. 전 세계 수십만 개에 이르는 전통적인 여행대행사들이나 익스페디아(Expedia), 오르비츠(Orbitz) 같은 온라인 여행사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거대한 국제 여행 예약시스템은 우리가 오래 전에 이미 잊어버린 것들을 유사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 모든 비행편 예약이나 실제로 예약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까지도 장기간 이들 회사 컴퓨터에 보관된다. 이 기록은 반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가 지난 휴가 때 어떤 목적지와 비행 옵션을 선호했는지, 누구와 함께 여행하려고 했는지(그 대상자가 전혀 예약을 하지 않거나, 대상자로 자기가 고려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모르더라도) 알려줄 수 있다. 이 회사들은 우리가 오래 전에 잊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신용 당국은 수억 명의 미국인에 관한 대규모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큰 마케팅 정보 공급회사는 데이터베이스에 2억 1,500만 명 각각에 대해 1,000데이터 포인트에 이르는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서도 애초엔 서로 다른 데이터가 결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라이버시 전문가인 대니얼 솔로브(Daniel Solove)는 특정 개인에 관해 전 세계 2만 개의 각기 다른 출처의 정보를 통합한 평가 결과를 제공하는 회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회사는 당사자들이 그 정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도 그 정보를 보유한다. 의사들은 의무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데, 매우 개인적인 정보를 디지털 기록으로 바꾸라는 경제적, 규제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 이는 완벽한 기억을 목표로 하는 민간 부문 때문만이 아니다. 법률 집행기구들은 전혀 범죄 혐의가 없는 수천만 명의 생물학적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검색이 가능한 이 민감 정보의 대부분은 전혀 삭제되지 않는다.
미국만 우리의 집단적 인간 정신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는 디지털 기록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다. 영국 안에서만 420만 개 비디오카메라가 공공장소를 감시하고 시민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현재 저장 용량의 한계와 얼굴 인식기술 한계가 접근성을 제한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기술은 개인을 실시간으로 식별해낼 것이다. (BBC가 보도한 것처럼 이 기술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먼저 사용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정책 입안자들은 시민들을 과다한 감시와 기록에서 보호하는 대신, 민간 부문의 데이터 수집가들에게 우리 모두에 대한 디지털 기록을 완벽하게 수집해서 이를 정보기관이나 법률 집행기구 같은 공공기관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관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이미 많은 휴대전화기가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해 사용자 위치를 알려주고 있어 이동 궤적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 많은 회사는 10대 자녀의 활동을 추적하고 싶은 걱정 많은 부모들이나, 의심이 가는 남편이나 아내의 움직임을 알고픈 배우자들을 상대로 GPS 추적장치를 마케팅하고 있다. GPS 칩을 장착한 디지털카메라가 처음으로 출시되어, 촬영 사진과 비디오마다 촬영 일자와 시각만이 아니라 위치정보를 추가함으로써, 장소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디지털 기록에 새겨 넣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 주위의 물건들에는 크기가 작고 값도 비싸지 않은 센서가 부착되어 소재를 기록할 수 있고, 우리의 위치에 대한 포괄적인 디지털 정보만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의 물체들과 언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관한 정보까지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한층 포괄적인 추적이 집적될 것이고 디지털 기억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비용이 높지 않으면서 종합적인 기록은 개인적으로나 사회 전체적으로 유용하다. 이런 기록은 훗날 과거를 회상하면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게 해줄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하거나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약속 등을 알려줘 사람들이 망각 때문에 난처해지는 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 기업들이 상품 생산과 판매에 관한 정보를 종업원들의 기억 속에서 흘러 다니게 하는 대신에 좀 더 내구성 있는 형태의 정보로 저장하고 있으면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전통적인 공책의 메모에서 디지털 지식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이런 내구성 있는 정보는 현재와 미래의 동료들과 공유될 수 있다. 생산자들이 고객의 과거 선호도를 이용해 미래 수요를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시장은 한결 더 경제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기억은 실수로 인한 비용과 위험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결국 사회에 유익하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역사의 교훈은 사회적 기억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여전히 스테이시 스나이더와 앤드류 펠드마의 사례를 들었을 때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구글의 디지털 기록이나 신용 당국, 여행 예약 시스템, 전화회사 오퍼레이터, 법률 집행기구 등이 얼마나 강력하고 포괄적인가를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망연자실해진다. 우리 두뇌가 잊어버린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디지털 캠코더에 이르기까지, 카메라 메모리카드나 디지털 음악재생기 등 우리 스스로 모은 모든 디지털 정보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우리는 망각이 사라지고 기억이 기본적 상태가 되는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억은 논쟁할 필요 없이 분명한 혜택을 베풀었지만, 너무 지나친 기억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프라이버시 전문가들은 여러 해 동안 이런 결과들에 대해 경고해왔다. 실제로 미국에서 최근의 프라이버시 논쟁은 포괄적인 디지털 기록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했다.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유명한 1971년 작품 『프라이버시에 대한 습격(The Assult on Privacy)』은 연방정부가 국가적 데이터은행을 만들려는 계획에 의해 촉발되었다. 독일 헤센(Hessen) 주에서는 정보 프라이버시 법이 세계 최초로 통과되었는데, 독일 정부의 이런 유사한 계획에 직접 대응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인간 행동을 추적하려는 감시기술의 이용 확대에 대해, 수감자들이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 채 간수들이 감시할 수 있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원형감옥(판옵티콘)’ 개념의 디지털화라고 경고하는 유려한 비판을 제공한 이들도 있었다. 벤담은 이러한 감옥 건축이 수감자들로 하여금 사회에 최소한의 비용을 발생시켜 “정신에 대한 정신의 힘을 소유하는 새로운 형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벤담의 개념을 받아들여 원형감옥 구조가 감옥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벤담의 생각을 한참 넘어서서 현재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행사의 도구로 더 추상화되어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오스카 갠디(Oscar Gandy)는 원형감옥을 우리 시대에 늘어나고 있는 대중에 대한 감시 트렌드와 연결시켰다. 원형감옥은 ‘내가 감시당하고 있지 않을 때도 감시당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하는’ 현재의 태도를 만들어냈다.
포괄적인 디지털 기록은 디지털 원형감옥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모든 언행이 디지털 기록을 통해 저장되고 접근 가능해지는 한, 우리의 말과 행동은 현재 동료만이 아니라 미래의 사람들에 의해서도 판단되게 된다. 스나이더와 펠드마 같은 사례로 시작되어 구글과 다른 사업자들이 우리에 대해 방대한 디지털 기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말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주의를 기울이게 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미래는 우리의 현재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디지털 기록을 통해, 원형감옥은 우리를 구석진 장소에서만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뛰며 살핀다.
개인들의 프라이버시가 침식당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주로 프라이버시에 관한 게 아니다. 책의 초점은 프라이버시보다 좁기도 하고, 프라이버시보다 더 넓기도 하다. 대중 감시의 위험에 관한 것도 아니고, 개인들의 말이나 행동의 추적이나 자기 노출의 부상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망각과 기억의 역할에 관한 것, 그리고 그 역할의 변화를 다룬다. 이런 변화가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효과,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망각은 인간의 의사결정에 중심적 역할을 한다. 망각은 과거의 일을 알고 있으면서 이 때문에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해서, 우리가 제때 행동하도록 한다. 완벽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현재에 살고 행동하는, 근본적인 인간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Funes, the Memorius")」는 논쟁거리를 던진다. 승마 사고로 인해 청년 푸네스는 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맹렬한 독서로 그는 고전적인 문학작품들에 대한 방대한 기억을 축적하지만, 단어 너머를 보는 데 실패한다. 보르헤스는 우리가 완벽한 기억을 갖게 되면 더 이상 일반화하고 추상화할 수 없게 되고, 과거의 사소한 부분에 빠져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르헤스가 소설로 상상해본 것을 우리는 지금 알고 있다. 몇몇 연구자들은 최근 캘리포니아(California)에 사는 41살 여성 AJ에 대한 논문을 출판했는데, 그녀에게는 망각하는 생물학적 능력이 없다. 그녀는 11살 때 이후로 실제로 거의 모든 나날을 기억한다. 지나간 날에 대한 대략의 느낌이 아니라 놀라우면서도 고민스러운 사소함까지 기억한다. 그녀는 30년 전 어느 날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AJ는 누가 언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1980년대에 시청한 텔레비전 쇼의 매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회상할 수 있다. 이를 떠올리기 위해 애써 수고할 필요도 없다. 그녀의 기억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 영화처럼 “통제 불가능하고 자동적이어서”, 기억해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기억은 AJ에게 탁월한 재능을 부여하는 대신에, 결정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제한한다.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상당 부분 저장(store)하고 회상(recall)하는 능력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기억(remember)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속되는 현재적 과거가 족쇄로 작용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기억을 덜 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능력만큼 지나치게 완벽한 기억은 의사결정 능력을 제한해 일상적 생활에 제약을 가져온다. 이런 효과는 좀 더 포괄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외부의 디지털 기록에 의해서 훨씬 강력해질 수 있다. 지나치게 완벽한 회상은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좋은 의도로 쓰일 때마저 우리 자신을 곧바로 과거 기억에 사로잡히게 한다. 보르헤스의 푸네스처럼 추상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한다. 기억이 주는 충격스러운 저주다.
망각이 개인적 차원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 전체로도 망각한다. 이러한 사회적 망각은 실패한 개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에 행복하지 않은 관계였더라도 당사자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사업하다 파산을 한 것도 여러 해가 지나면 잊힌다. 어떤 경우엔 범죄를 저질렀어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기록에서 유죄판결이 삭제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회적 망각과 외부 기록 삭제가 이루어지고 사회는 구성원들이 시간과 함께 진화할 수 있도록 허용해, 인간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게 되고 스스로 행동을 고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망각의 핵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기념비적인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망각이 기본이었으나 기억이 기본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현상이 별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이미 1998년에 라시카(J.D. Lasica)는 온라인 잡지 <살롱(Salon)>에 “인터넷은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The Net Never Forgets)”는 주목할 만한 글을 실어 “우리의 과거는 우리 디지털 피부에 문신처럼 아로새겨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근에 리암 배넌은 장-프랑스와 블랑세트, 데보라 존슨(Deborah Johnson)과 함께 망각의 상실이 가져오는 어두운 측면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나는 인류 역사와 디지털 시대에서 기억과 망각을 탐구하면서 무엇이 위험에 처했는지를 점검하고 가능한 예방책을 평가하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 책이 망각을 비롯해 망각이 인간의 개성, 존엄, 선택과 관계 맺는 방식과 시간에 따라 진화하는 인간의 능력 등을 모두 다룰 수는 없으며, 문제 해결의 묘책을 제공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망각에서 기억으로의 전환은 기념비적이어서, 이 문제가 답변 없이 방치되면 우리 모두에게와 사회 전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논증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이런 미래를 피할 수는 없다. 기억하도록 우리를 강요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물론 기술이 망각의 상실을 가능하게 하지만 인간이 그걸 원하고 있다. 진실은 우리가 망각의 상실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뒤집는 것 또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제2장은 인류 수천 년 역사에서 망각이 기능해온 역할을 제시한다. 외부 기록이 어떻게 세대와 시간을 뛰어넘어 기억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그러면서도 망각이 기본이라는 질서를 한 번도 흐트러뜨리지 않아온 것을 살핀다. 제3장은 디지털화, 값싼 저장 공간, 손쉬운 검색, 전지구적 도달(global reach)처럼 기억의 경제학을 바꾸고 망각의 소멸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발전을 들여다본다. 제4장은 이러한 종합적인 디지털 기록이 개인과 사회에 대해 가져올 잠재적 결과를 상세하게 그려본다. 제5장에서는 제안된 대응 방안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러한 제안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별도로 나의 해결책을 제6장에서 덧붙일 것이다. 내 제안은 정보에 유효기간을 정해서 기록의 유한성을 제시하고, 정보 또한 수명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목표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잊어버리는 방법을 잊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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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Viktor Mayer-Schönberger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를 거쳐,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인터넷연구소(Oxford Internet Institution, OII) 교수로 있다. 인터넷 관리체제와 규제(internet governance and regulation) 분야를 담당하며, 최근에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정보의 역할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viktor.ms@oii.ox.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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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구본권
1990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 『인터넷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나』(2005)가 있다. 정보기술이 사회에 일으킨 다양한 현상에 주목하면서, 인터넷이 가져온 프라이버시와 표현 자유,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starry9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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