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열 명에 한 명꼴로 죽인다는 뜻의 ‘decimat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1994년 봄과 초여름을 거치는 동안 르완다 공화국 인구의 10퍼센트가 희생되는(decimated)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 살인 도구는 원시적이었지만(풀과 나무를 베는 데 쓰는 마체테 칼이 주를 이루었다) 살해 속도는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약 750만 정도였던 전체 인구 가운데 최소한 80만 명이 겨우 100일 만에 무참히 살육되었다. 르완다 사람들은 종종 100만 명이 죽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르완다에서 사람들이 살해당한 속도는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들이 살해당한 속도의 세 배에 달한다. 르완다 학살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의 가장 ‘효율적인’ 대량 학살 사례이다.
남부의 산악 도시 기콩고로에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여섯 개의 촛불이 게스트하우스 바의 어둠을 밝혔다. 나에게 술을 같이 마시자고 청한 군인 세 명의 눈은 시뻘건 오렌지 빛으로 이글댔다. 우리는 맥주 한 잔을 서로 돌려가며 마셨다. 맨 마지막에 맥주를 마신 사람은 나였다. 그런 식으로 군인들은 술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군인들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무리 가운데 한 민간인은 술에 취하지 않기로 작심한 듯 보였다. 그 남자는 번들거리는 검정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꼿꼿이 앉아 있었다. 초연한 태도로 주위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는 마치 로봇처럼 영어 음절을 하나씩 정확히 끊어 발음하면서 불쑥 나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필립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 손을 와락 움켜쥐며 말했다. “아하,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과 같군요.”
“그 사람은 핍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위대한 유산』”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문 채 덤덤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밀림에서 온 피그미족입니다. 하지만 성공회 주교에게서 영어를 배웠지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내 옆에서 상체를 쑥 내민 채 총구가 위로 향해 있는 자동 소총 총신에 기대어 있던 군인이 느닷없이 자신의 무릎 위에 머리를 처박고 곯아떨어졌다. 그러다 잠시 뒤 벌떡 일어나 앉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술을 조금 더 마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그미족 남자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내겐 원칙이 있습니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원칙을 믿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의 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되물었다. “인간은 결국 모두 같다는 말인가요?”
“그것이 바로 나의 이론이자 원칙이지요. 하지만 내겐 문제가 있어요. 나는 반드시 백인 여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하나라면 누가 선생 아내의 피부색을 따지고 들겠습니까?”
“나의 아내는 반드시 백인 여성이어야 합니다. 오로지 백인 여성만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나의 보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니그로와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장래에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반드시 백인 여성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의 동의를 구하기라도 하듯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며 ‘니그로’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것이 나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댁은 얼마든지 기회가 있지만 나는 없습니다.” 그는 거의 텅 비어 있는 어두운 바 안을 둘러보며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백인 여성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백인 아내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는 그저 빈말을 던지는 게 아니라 사뭇 진지했다. 바에 들어올 때 나는 한 네덜란드 여성과 함께였었다. 잠시 후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자러 간 모양이었다. 한데 그 사이 피그미족 남자에게 뭔가 깊은 인상을 남겼었나 보다. 그는 내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네덜란드입니다. 나의 스승이었던 성공회 주교는 온 세상을 두루 여행했지요. 나에게 네덜란드는 그저 상상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내가 서두에서 하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책이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다루기 때문이다. 내가 그 피그미족 남자를 만나기 일 년 전, 르완다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채택했다. 다름 아니라 다수족인 후투족의 손으로 소수족인 투치족을 말살하는 정책이었다. 르완다 정부와 그 나라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은 투치족을 근절시키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
그저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줄 알았던 일이 돌연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그런 현실을 지금도 그저 어렴풋이 추측할 따름이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실은 현실인 그 일을 비록 추측을 통해서라도 최대한 밝혀내야 한다는 점이다. 1994년에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나는 르완다 소식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리고 나중에 유엔이 기구 설립 후 처음으로 ‘제노사이드’(genocide, 한 민족이나 특정 집단을 말살하려는 의도로 자행되는 대량 학살―옮긴이)라는 말을 사용해 르완다 사태를 규정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접하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 중 하나가 자꾸 떠올랐다. 작중 화자인 말로가 유럽에 돌아왔을 때 그의 숙모가 비쩍 야윈 조카의 모습을 보고 몹시 걱정하자 말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병간호가 필요한 곳은 나의 육체가 아닙니다. 돌봐야 할 곳은 바로 나의 상상력입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말로의 상태를 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나는 르완다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지, 또 그 뒤의 삶을 어떻게 감당해나갈지 궁금했다. ‘제노사이드’라는 말과 이름 없는 무수한 죽음은 나의 상상력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나는 1995년부터 르완다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기콩고로에서 그 피그미족 남자를 만났다. 나는 그가 피그미족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키가 못 돼도 165센티미터는 넘었기 때문이다. 그가 굳이 자신의 출신을 밝힌 이유는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후투족이나 투치족의 문제와 아무 상관 없는 외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그는 제노사이드에 관해서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와 나눈 대화의 진정한 주제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다른 주제를 놓고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테지만 나의 경우에는 적어도 암묵리에라도 제노사이드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뜻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르완다에서 그 문제는 온갖 이해와 오해가 생겨나는 대화의 축이었기 때문이다.
그 피그미족 남자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말했고, 나는 거기에 숨어 있는 뜻을 읽었다. 피그미족은 르완다 최초의 거주자들이었다. 숲에서 살아가는 피그미족은 후투족과 투치족으로부터 한물간 부족이라는 이유로 천대받았다. 식민 통치 이전의 왕정 시대에 피그미족은 궁정 광대로 일했다. 당시 르완다의 왕은 투치족이었다. 그 때문에 조상 대대로 궁정에서 일했던 피그미족은 제노사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투치족 왕족의 끄나풀이라는 이유로 살해되는가 하면, 후투족이 투치족을 조롱할 목적으로 투치족 여자들을 욕보일 때면 강간범이라는 오명을 대신 뒤집어써야 했다.
아마도 내가 게스트하우스 바에서 만난 피그미족 남자를 가르친 성공회 주교는 미개한 원주민을 교화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기독교 교리를 입증해 보이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피그미족 남자는 그런 교리의 맹점을 간파했던 듯하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경험에 따르면 인간은 결국 모두 같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이자 원리, 즉 백인 사제의 가설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 가설을 마음에 아로새겼지만 결국 그 안에는 넘어서는 안 될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보편주의라는 이름 아래 그는 자신의 동족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밀림을 경멸하는 법뿐만 아니라 그런 유산을 업신여기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법을 배웠다. 결국 그는 백인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만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줄 고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그가 자신의 신념을 입증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면 그런 짝을 만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심지어 백인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는 백인 남성도, 다시 말해 네덜란드에서조차도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찾기가 몹시 힘들다는 말로 그의 좌절감을 달래주려 애썼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아프리카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병이 들었어요.” 그러고는 처음으로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책이지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나의 좀 더 큰 이론입니다. 댁의 피부색이 하얗든, 노랗든, 푸르스름하든 또는 아프리카 흑인처럼 까맣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핵심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개념입니다. 유럽인들은 진보된 기술 문명을 이루었지만 아프리카인들의 기술 문명은 여전히 원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지요. 하지만 모든 인간은 자연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폭풍의 언덕』의 원리이자 ‘호모 사피엔스’의 사명입니다. 제 말에 동의하십니까?”
“듣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피그미족 남자는 살갑게 다시 말을 이었다. “자연에 맞서려는 인간의 노력,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지요. 온 인류가 하나가 되어 자연과 싸우는 것, 그것만이 평화와 화해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는 침묵을 지켰다. 한참 뒤 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인간도 자연의 일부지요.”
“맞아요. 바로 그게 문젭니다.” 그가 말했다.
(서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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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필립 고레비치 Philip Gourevitch
1964년 필라델피아 출생. 코넬 대학을 졸업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요커>의 필진이자 <포워드> 객원 편집자인 그는 <그랜타> <뉴욕 북 리뷰> <하퍼스> 등의 잡지사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취재 활동을 해왔고,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다룬 자신의 이 첫 책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이 책은 1998년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 선정되었으며, 전미 도서 비평가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외국 취재 부문 조지 포크상, 뉴욕공립도서관 헬렌 번스타인 도서상을 받는 등 비평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최근 저서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을 다룬 『아부 그라이브 발라드』(200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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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강미경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역사 잡학사전』『프로파간다―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치팅 컬처』『몽상과 매혹의 고고학』『고대 세계의 위대한 발명 70』『나침반, 항해와 탐험의 역사』『악마의 끈―철조망의 문화사』『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권력과 탐욕의 역사』『유혹의 기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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