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과 종이책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예측한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웹사이트도 있고, 전 세계에 TV, 매체와 메시지도 물론 있다. 그러나 1962년 맥루한이 예견했던 대로, 전자시대가 인쇄술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정신세계가 인쇄기술보다 더 발달된 고도의 기술과 조화를 이루리라는 그의 비전은 이제 구식이 되어버렸다. 그의 비전이 20세기에는 수십 년 동안 상상력에 불을 지폈지만, 지금 우리가 진입한 새천년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아직도 존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은하계 주위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고 있다.
•Gutenberg galaxy: 마셜 맥루한의 책제목이기도 하며, 맥루한은 이 책에서 인류가 말 대신 글을 주로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했다.
우리는 왜 계속 ‘책의 죽음’을 예언하는가
책에 대해 생각해보자. 책의 지구력은 아주 대단하다. 그리스도의 탄생 즈음에 발명된 이래로 코덱스는 놀라운 도구임이 입증되었다. 정보를 포장하기에 좋고, 휙휙 넘겨볼 수 있고, 동그랗게 말아놓을 수도 있으며, 보관하기에도 좋고, 깨지거나 부서질 염려도 없다. 업그레이드 하거나 다운그레이드 한다든지, 접속하고 부팅할 필요도 없다. 전원을 연결하거나 웹사이트에서 발췌할 필요도 없다. 책의 디자인은 눈을 즐겁게 하고, 책의 형태는 손에 들고 다니는 재미가 있다. 그런 책의 편리성 때문에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설립하기 훨씬 전부터 수천 년 동안 책은 학습의 기본 도구가 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우리는 책의 죽음에 대한 예언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가? 맥루한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가동활자가 시류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자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텍스트를 다운로드 받아 저장한 다음, 텍스트를 스크린에 한 번에 한 쪽씩 내보낸다. 앤드류 멜론 재단이 개발한 프로젝트인 저널스토리지www.jstor.org는 학술 정기간행물을 상당히 많이 생산해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또한 원본을 살 능력이 없었던 도서관도 전자간행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 공공도서관도 컴퓨터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전 세계 독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그래서 42번가의 도서실에서는 5만 권이 대출되는 반면 매달 도서관 컴퓨터 시스템에는 1999년에 이미 1,000만 명이 넘게 접속했다고 보고되었다. 이렇듯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모두 하이퍼링크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다. 만일 미래에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은 신문, 다음 쪽으로 넘어가지 않는 저널, 벽이 없는 도서관이 생겨난다면, 이제껏 사용해온 책들은 어떻게 될까? 전자출판이 책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인가?
빌 게이츠도 종이책을 좋아한다
메멕스Memex라는 흉물덩어리 초기 전자책이 1945년에 출현한 이래로 우리는 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을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빈 책장을 보고도 위협적으로 느끼지도 않고 걱정도 하지 않는다.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서 미국인들은 인쇄하느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종이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조차도 최근의 강연에서 다독을 할 때는 컴퓨터 스크린보다 인쇄된 종이가 더 낫다고 고백했다.
스크린을 읽는 것은 종이를 읽는 것보다 아직 불편한 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비싼 스크린들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웹 라이프스타일인터넷을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생활의 개척자라고 믿고 있는 나조차도, 읽을거리가 네다섯 쪽을 넘어가면, 인쇄해서 가지고 다니며 읽고 주석도 달고 싶습니다. 과학기술이 그 정도 수준의 편리함을 이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빌 게이츠는 “오늘날 종이 위에 쓰는 일들을 모두 디지털 형식으로 옮길 수 있으려면 과학기술이 매우 급격하게 향상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낱장에 인쇄한 뒤 접어서 묶어놓은 구식 코덱스는 사이버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대체 왜 전자출판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까? 전자출판은 3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전자출판이 가져올 이상향에 열광했고, 다음으로 환멸의 시간을 거쳤으며, 지금은 실용주의라는 새로운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자 공간을 만들어 모든 것을 그 공간에 던져 넣으면, 독자들이 그것들을 잘 정리하고 선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책을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서 읽고, 잔뜩 쌓아올린 프린트 더미와 씨름을 하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제 특정한 목적과 특정 독자에게 맞추어 만들어진 전자출판물들이 기존 도서를 보완할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다.
전자책으로 만들어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는 학술출판물이다. 모든 영역의 학술출판물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기존 방식대로 출간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학술논문들이 전자책으로 나와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출판비용 상승이라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학습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출판비용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로 인해 논문은 멸종 위기에 처한 종처럼 보이게 되었다.
상업출판사들은 정기출판물의 가격을 올렸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가격 상승의 폭이 컸다. 가격이 너무 높아서 연구도서관의 예산 운영에 어려움이 생겼다. 도서관들은 정기간행물을 꾸준히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단행본 형태의 논문 구입량을 과감하게 축소했다. 출판사들은 도서관 주문이 줄어들자 실질적으로 가장 이윤이 적은 분야부터 출판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분야의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출간해줄 적절한 창구를 잃어버렸다. 학자들의 위기는 학문의 가치가 아닌 시장의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위기는 출판 가능 여부에 따라 경력이 좌우되는 다음 세대의 학자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연구논문의 3단계 위기
연구논문이 맞닥뜨린 위기의 각 측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기간행물의 가격이 정신없이 치솟기 시작했던 1970년대에 위기가 시작되었음 알 수 있다. 이제 정기간행물의 가격은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2007년까지 과학 저널의 구독료는 대부분 1년에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예를 들어, <핵물리학 Nuclear Physics A & B>이 2만 1,003달러였고, 연구도서관들의 연재물에 대한 지출경비는 지난 20년 동안 320퍼센트까지 증가했다. 가장 값비싼 저널에 논문이 발표되면 학자의 위상이 달라지고 경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더 그렇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들은 교수들에게 정기간행물 구독 취소에 동의하라고 설득할 수가 없다. 대신에 단행본 논문 구매를 삭감하면서 예산 압박에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까지 단행본 논문이 도서관 구매예산에서 적어도 5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25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위기는 대학 출판사의 예산을 위협하는 것이다. 1970년대 편집자들의 경험에 따르면 대학 출판사는 일반적으로 도서관에 단행본 논문 800부를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판매부수는 겨우 300부가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20년 전이라면 사서들이 두 팔을 벌려 반겼을 만한 책들도 이제는 얼마나 팔릴지 확신할 수 없다. 1959년에 출판된 『벤저민 프랭클린 전집 The Papers of Benjamin Franklin』 중 1권이 8,047부가 팔렸고, 1997년 33권은 753부가 팔렸다. 대학 출판사들은 학술 서적을 더 적게 출판해 수요의 하락에 대응한다. 대신 유명한 지역의 이야기, 조류, 요리, 스포츠 서적이나 어느 정도 팔릴 것 같은 책을 제작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상업출판사들이 문제집, 자기계발서적, 유명 작가의 책들과 같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책들에 전념을 다하느라 쳐다보지 않는 책들 말이다. 비평가들은 종종 교수들이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다루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글을 쓴다고 비난한다. 전문서 집필을 좋아하는 건 확실히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신비로운 전문용어로 일반 독자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지식 분야는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런 악의에 찬 고질병에 저항하고 있고, 또 어떤 학문은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소수만 즐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자, 이제 이런 질문이 남는다. 저자가 가치 있는 논문, 즉 팔리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흥미롭지 않은 책, 20년 전에 쏟아져 나왔던 것 같은 책을 쓰고, 그 논문이 출판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교수들이나 출판인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실망스러운 답이 돌아올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포소설 중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상을 세 개나 받은 최고의 걸작이지만 천으로 장정한 책이 183부, 종이표지로 된 책이 549부 팔렸다. 반면 미국 남북전쟁 같은 몇몇 분야의 이야기들은 지속적으로 잘 팔린다. 출판사들이 몇몇 분야는 출판을 포기했지만 어떤 분야도 무가치하게 취급될 수는 없다. 출판 분야는 너무 다양해서 특정 분야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우며, 학술 분야는 너무 복잡해서 각 분야를 두부 자르듯 깔끔하게 나눌 수 없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그리고 시장을 잘 검토해보면, 침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출판사가 파산하든지 아니든지, 하나의 결론은 분명한 것 같다. 단행본 논문의 운명은 위태롭다.
그 위험은 세 번째 위기의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젊은 학자들의 경력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조교수나 출판하느냐, 망하느냐의 명제를 안고 있다. 논문이 없으면 종신재직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최근에는 박사들도 일자리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진짜 어려움은 자리를 잡고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장소로 이주하고, 처음으로 강의를 준비하고, 배우자를 찾거나 가정을 일구는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일은 책을 출간하는 일이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조교수가 3-4년 내에 논문 하나를 1급 단행본 형태로 완전히 바꾸어놓았다고 하자. 그가 그 논문을 출판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대학교 출판부 사무실에 들어가보면 높이 쌓여 있는 논문 더미를 보게 될 것이다. 편집자는 한숨을 쉬며 출판사가 1년에 논문 두세 편 정도만 단행본 도서로 출간할 수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한숨을 쉬며 출판사는 독자의 리뷰가 담긴 책을 보고 싶다는 종신재직권 위원회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출판사들은 종신재직권 과정에 끌려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와 상관 없이 학자들의 승진 과정에 깔때기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출판사들은 들어온 원고들을 대부분 출판할 수 없다. 그러면 원고를 쓴 저자들의 경력은 그 자리에서 멈추게 된다. 승진을 못한 저자들은 시간 강사로 이 학교 저 학교를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아무 곳에서나 임시직을 골라 낮은 봉급을 받고,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승용차 뒷좌석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일하는 보따리장수들이 양산되고 있다.
전자책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엇갈리고 중복되는 문제들을 생각해볼 때, 전자출판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전자책에 매료되어 이상향에 열광하던 시간이 지나 비현실적인 기대를 걱정하는 때가 되었다.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업가들을 시장에서 결판이 날 때까지 싸우게 해보라. 좋은 검색엔진이 불량 메시지들을 걸러줄 것이다.’
이 논쟁은 어떤 종류의 상품에나 타당한 이야기일 테고, 아마존닷컴 같은 기업의 성공을 고려해보면 일반서를 파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나 일반적인 지적 환경에서는 그 논쟁은 공상적 낙천주의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무언가가 생겨난다니! 사실 사이버 공간은 경제처럼 규제와 조정이 필요하다. 학자들은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학자들은 학문의 세계에서 품질 관리를 해야 하고 두 지점에서 위기에 대처해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초보자들이 논문을 책으로 만드는 지점과 전문가들이 새로운 종류의 학문을 시도하는 지점에서다.
틀림없이 우리는 논문들을 무한정으로 웹사이트에 쏟아낼 수 있다. 몇 가지 프로그램들이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는 순수하게 봉사하는 것이어서 독자들이 연구결과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런 종류의 출판은 정보만 제공할 뿐, 완성된 학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최소한 대부분의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그렇다. 출판되지 않은 논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논문은 책이 아니다’고 하는 말을 이해할 것이다. 논문과 책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책이 되기 위해서는 논문이 인정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다듬어지고, 저기에서 말을 덧붙이고, 일반 독자의 요구에 맞추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써야 한다. 경험이 많은 편집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으면 더욱 바람직하다.
편집자들은 종종 이런 재작업을 ‘부가가치’라고 말하고 아주 약간의 가치만을 책에 더한다. 논문이 단행본 논문으로 바뀌려면 전문가 동료들의 감수, 디자인, 구성, 인쇄, 판매, 홍보 등 전체적인 전문기술이 더해져야 한다. 전자출판은 이 재작업 과정을 단순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전자출판을 해놓으면 가치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전자논문은 부록과 데이터베이스를 무한정으로 포함할 수 있다. 독자들이 오래된 자료들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다른 출판물에 연결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기술적인 문제들이 잘 해결되고 나면 전자논문은 상당히 경제적으로 생산되고 배포될 수 있으며, 출판인의 출판비용을 아껴주는 동시에 도서관의 서가를 차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실현까지는 엄청난 문제들이 놓여 있다. 사업 착수비용이 매우 높아서 책 가격이 낮게 책정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개개의 출판사들이 전자논문 모두를 제공할 수 있고 도서관들이 다량으로 그 논문들을 사들여 독자들이 사이트 라이선스를 통해 이용하게 될 때까지는 가격이 내려갈 수 없다. 독자들은 그 논문들을 다운로드 받고, 연구에 필요한 텍스트를 검색하고, 중요한 부분을 인쇄하고, 프린터에 붙어 있는 기계에서 제본하고, 소비자 지정 페이퍼백으로 만들어 집에 가지고 가서 읽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이런 기능들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현존하는 도서들을 페이퍼백으로 만들면 5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컴퓨터로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고품질의 원본 논문을 출판하고자 한다면 대학 출판사는 생산과 배포 과정에 필요한 시스템을 총동원해 준비해야 한다.
학술출판의 위기가 특별히 심각한 역사학의 경우, 전자책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 있다.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한 역사가라면 이해할 수 없는 기록보관소와 끝도 없는 과거를 전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역사가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내 독자가 이 상자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것도 내가 인용한 편지의 구절만이 아니라 상자 안에 있는 모든 편지들을 다 볼 수 있다면!’ ‘내가 주제에서 멀리 떨어져 상당히 곁길로 나갔을 때 내 텍스트 안에서 길을 찾아갈 수 있다면!’ ‘내 이야기의 밖에서 주제들이 얼마나 엇갈리는지, 그 주제들이 내 책의 범위를 얼마나 벗어나는지 보여줄 수 있다면!’ 책에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화제를 벗어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한 가지 사건을 종결하는 식으로 논의를 펴면서 책을 쓰지 말자는 것이다. 전자책은 역사적 자취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열어주고, 이야기에 들어 있는 원자료를 파악할 수 있게 하며, 과거 해석과 관련된 복잡성들을 새롭게 깨닫게 해줄 것이다.
나는 자료를 많이 축적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데이터뱅크에 연결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하이퍼링크는 각주처럼 자세히 설명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책의 부피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처럼 여러 층이 정렬된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위층은 주제를 간결하게 설명하고, 페이퍼백으로도 만들 수 있게 한다. 그 다음 층은 맨 위층의 논의에 대한 다른 측면들을 다각도로 잡아 풍성하게 구성한다. 이야기처럼 순차적으로 정렬하는 것이 아니라 맨 위층에 맞추어 각각 독립된 단위로 정렬한다. 세 번째 층은 가능한 한 여러 종류의 기록문서가 차지할 것이다. 네 번째 층은 과거의 학문이나 여러 논의들에서 발췌한 이론이나 역사기록이 들어갈 수 있다. 다섯 번째 층은 교육학적인 면을 담아서 학급토의, 강의요강, 강좌자료집을 위한 여러 제안들로 구성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 층은 독자의 보고서, 저자와 편집자 사이의 대화, 독자들의 편지로 담아서 점점 많은 논평을 제공할 수 있게 한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와 전자책의 공존
이런 새로운 종류의 책은 새로운 방식의 독서를 이끌어낼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최상층의 이야기를 빠르게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할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읽고 싶어할 수도 있다.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 더 깊게 내려가 주제를 뒷받침하는 에세이와 기록문서들을 계속 찾아나갈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관심거리에 맞는 연결고리를 찾아가거나 자료를 자신만 의 구조에 맞도록 재구성해나가는 것이다. 각 경우마다 적당한 텍스트를 인쇄하고 리더기의 사양에 따라 제본할 수 있다. 컴퓨터 스크린은 견본을 추출하고 검색하는 데 사용되는 반면에 집중적으로 오랜 시간 독서할 때 는 전통적인 코덱스 같은 종이책으로 읽는 것이다.
전자논문에 대한 이상을 꿈꾸지 않더라도 전자논문은 문제들이 수렴 되는 지점에서 학술 공동체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전자논문은 문제들을 따로 떼어놓고 탐색하는 도구이자, 지식을 넓혀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학습의 세계는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10년 후에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세계가 구텐베르크 은하계 내에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새로운 에너지 자원 덕분에 은하계는 팽창하겠지만, 전자책은 구텐베르크의 위대한 기계를 대체하는 역할이 아닌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5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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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로버트 단턴 Robert Darnton
1939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 필립스 아카데미를 거쳐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1년간 <뉴욕타임스> 기자로 근무한 뒤, 1965년에 하버드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7년 이후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단턴은 수많은 저서와 논문, 왕성한 학회 활동과 학술지 편집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지은 책으로 1996년에 미국비평가협회상을 받은 『책과 혁명』을 비롯해 『고양이 대학살』『앙시앵 레짐 시대의 문학적 지하세계』『조지 워싱턴의 틀니』『로버트 단턴의 문화사 읽기』 등이 있다. ‘책의 역사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미국역사협회장을 역임했으며, 전자논문 프로젝트인 ‘구텐베르크-e’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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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성동규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장이며 신문방송학부 교수다. 뉴미디어와 정책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위원과 MBC 시청자위원회 위원을 겸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BBC 미래 전략』『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상 공저),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고은주
학부에서 물리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뒤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펍헙번역그룹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EMS 연구방법론』『생활 속 수학 탐구』가 있다.
김승완
학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연극제작사에서 해외연극 분석 및 기획, 저작권 체결, 희곡 번역 등의 일을 했다. 현재 펍헙번역그룹에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왜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없는가』(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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