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말 |
이 책은 플로리다 탬파에 있는 로우리 파크 동물원에서 4년 동안 취재한 자료에 아프리카, 파나마, 뉴욕 등지에서 수집한 자료를 보완해 쓴 논픽션이다. 인간과 동물의 삶 모두를 취재한 결과를 여기 기록했으며, 등장인물의 이름을 비롯한 세부사항은 조금도 꾸미지 않은 실제이다. 내용 중 대다수는 저자가 실제로 목격한 장면이고 인용한 대화 역시 직접 들은 것이지만, 인터뷰나 자료 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부분도 있음을 밝혀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은 저자가 해당 인물에게서 실제로 들었거나 수년간 저자가 이들과 함께하며 알게 된 것이다. 동물들의 내면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동물들의 성장과정 및 사연, 사육사를 비롯해 동물들과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터뷰, 저자 스스로 관찰한 내용, 동물들의 인지, 커뮤니케이션, 행동 등에 관련 연구자료를 종합해 최대한 입체적으로 동물들을 조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각 장이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출처는 후주에 기록해놓았다.
“요즘 사람들은 동물원을 탐탁지 않아해.
종교도 인기가 없긴 마찬가지지.
동물원과 종교 둘 다 자유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
· 얀 마텔, 『파이 이야기』 중에서 ·
코끼리 열한 마리. 비행기 한 대. 덜컹거리며 하늘을 가로지른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사실 대서양을 까마득히 내려다보며 날고 있었다. 어린 코끼리 열한 마리는 보잉 747기의 불룩한 뱃속에 갇혀 남아프리카에서 미국까지 마라톤 비행 중이었다. 왜 자기들이 비행기에 실려 가는지 영문도 모르는 채였다. 이 코끼리들은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갇혀 있는 데 익숙한 서커스 출연 동물이 아니었다. 모두 야생 코끼리였다.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스와질란드에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데려온 이 코끼리들은 미국 샌디에이고와 탬파에 있는 동물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2003년 8월 21일,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목요일 아침이었다. 코끼리들은 어두컴컴한 화물수송기의 동물용 화물칸에 놓인 열한 개의 철제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 이들은 비행기에 실리기 전 진정제를 맞은 상태였다. 머리가 띵한 것 같았고 배는 별로 고픈 것 같지 않았다. 몇몇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졸고 있었다. 우리마다 돌아다니며 마실 물을 채워주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어느 청년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 선 채로 코를 움직이는 코끼리도 있었다.
“진정해. 이 정도면 지낼 만한 거야.” 믹 레일리가 코끼리들에게 말했다.
옅은 갈색 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믹은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 자란 32세의 청년이었다. 여느 때처럼 카키색 사파리 점퍼 차림의 믹은 조용하면서도 당당해 보였다. 팔다리에는 아카시아 가시에 긁힌 흔적이 있었고, 낡은 장화는 남아프리카 초원의 붉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이 그가 일생 동안 허리까지 오는 테레빈 풀과 알로에 덤불과 리드우드 나무숲을 헤치며, 사자와 버펄로, 코뿔소의 흔적을 쫓아 행방을 알아내고, 이들 동물의 새끼들을 일일이 세고, AK-47 소총으로 무장한 밀렵꾼을 쫓아내며 살아왔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믹과 그의 아버지는 남아공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작은 왕국 스와질란드에서 동물보호구역 두 곳을 운영했다. 믹과 이 열한 마리의 코끼리는 동물보호구역에서 함께 자랐다. 코끼리들은 믹의 체취와 목소리, 믹이 말할 때의 리듬을 알고 있었다. 믹은 코끼리 열한 마리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떻게 자라왔으며, 어떤 놈이 흥분을 잘하고 어떤 놈이 차분한지를 알고 있었고, 무리에서 얼마나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지 꿰고 있었다.
우리에 갇혀 있는 코끼리들을 보면서 믹은 코끼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분명 코끼리들도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를 들었을 테고 고도와 기압 변화를 느꼈을 터였다. 멀리서 일어난 지진도 감지해낼 수 있는 발바닥으로 기체가 흔들리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코끼리들은 이런 무수한 감각신호에서 무엇을 해독해냈을까? 열한 마리의 코끼리는 자기들이 하늘을 날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믹이 코끼리들을 안심시켰다.
열한 마리 중 몇몇은 믹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믹은 지난 몇 달간 미국에 있는 동물원과 벌였던 길고 불쾌했던 논쟁 때문에 지쳐 있었다. 스와질란드에 발조차 들인 적 없고 동물보호구역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탄원을 제출하고 소송을 걸고 비난 성명을 쏟아내는 데 신물이 났던 것이다.
코끼리들이 보호구역에서 살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늘어가는 코끼리들을 모두 데리고 있기에는 보호구역이 비좁았고, 공간을 확보하려면 나무를 잘라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보호구역은 황폐해지고 다른 동물들의 생존이 위협받았기 때문이었다. 코끼리들 중 일부를 죽이거나, 샌디에이고와 탬파에 있는 동물원으로 보내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믹은 코끼리들을 죽이지 않으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코끼리를 죄수처럼 동물원에 가두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죽게 놔두는 편이 낫다며 믹을 비난했다.
믹은 이런 논리에 넌덜머리가 났다. 자기네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동물들이 야생에서 살면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맑고 깨끗한 강물을 마시고, 완벽한 자유를 누리며 다 같이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에나 빼곡히 건물이 들어서고 멸종위기에 처하는 생물종이 매일 늘어나는 인구과잉 상태의 지구에서 자유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른 생물종들은 점점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는데 인간 같은 특정 생물종만 마음껏 번식하고 소비할 권리가 있을까?
믹이 아는 한, 대자연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존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이 비행기에 탄 코끼리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믹의 가족이 코끼리들을 미국에 있는 동물원 두 군데에 보내기로 결정을 내리기 전, 믹은 이들 두 동물원을 직접 방문해 코끼리들이 생활할 공간을 둘러보고 담당 사육사들과 얘기를 나눴다. 믹은 두 동물원 모두 코끼리들이 좋은 대우를 받으며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믹은 코끼리들이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여전히 걱정이 됐다.
야생에 사는 코끼리는 하루에도 수마일씩 관목 숲을 헤집고 다닌다. 또한 지능이 높고 자기 자신을 인식하며 감정이 풍부한 동물일 뿐만 아니라, 다른 코끼리와 심리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분노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잘 알려져 있듯, 기억력도 좋다.
스와질란드 코끼리들이 난생처음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다시는 아프리카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될까? 이 코끼리들은 운 좋게 구출된 것이거나 노예처럼 감금된 것이다.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747기는 살아있는 화물을 싣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서쪽으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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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사바나 초원은 눈을 뜬다. 앤빌박쥐는 사위어가는 태양빛 속에서 과일을 찾아다니고, 갈라고원숭이는 나무숲 어딘가에서 울부짖는다. 스와질란드 동쪽의 모잠비크 접경지역에는 레봄보(Lebombo) 산이 검은 벨벳을 두른 듯 펼쳐져 있다.
보름달로 차오르고 있는 달이 음카야 야생동물 보호구역(Mkhaya Game Reserve)을 거닐며 얼마 남지 않은 엄브렐러 아카시아를 씹어 먹는 코끼리 떼를 비춘다. 스와질란드 중앙에 위치한 작은 초원 음카야는 747기를 탄 코끼리들을 데려온 공원 중 하나다. 음카야는 코끼리들의 고향이었다. 열한 마리의 코끼리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얘기하기 전에 코끼리들이 살던 음카야를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코끼리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면 그들이 왜 달리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인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녁 무렵의 음카야를 누비는 투어는 특히 드라마틱하다. 황금빛으로 저물어가는 오후의 끝자락에 랜드로버를 타고 구불구불한 먼지투성이 길을 덜컹이며 남아 있는 코끼리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음카야에는 새끼까지 합쳐 코끼리가 모두 열여섯 마리 있는데, 코끼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덩치 큰 육지 포유류임에도 언제나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코끼리는 놀라울 만큼 눈에 잘 띄지 않는 동물이다.
해가 저물면 또 다른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얼룩말과 누(gnu, 아프리카산 큰 영양의 일종_옮긴이)는 천둥치는 소리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저 멀리 지나간다. 아프리카 버펄로는 콧김을 뿜으며 뿔을 치켜들고 어린 버펄로들을 뒤에 거느리고 간다. 기린은 커다란 갈색 눈을 끔벅이며 나무 꼭대기를 말똥말똥 쳐다보더니 슬로우 모션으로 겅중겅중 뛰어간다. 그러나 코끼리는 보이지 않는다.
투어를 시작한 지 두세 시간쯤 지나자 관광객들은 도대체 오늘 밤 안에 코끼리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때쯤 코끼리 떼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다. 운전수가 길모퉁이를 돌자 본의 아니게 코끼리 떼 행렬의 허리가 끊어진 것이다. 차 앞뒤로 거대한 회색 코끼리들이 유령처럼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코끼리들은 나무를 쳐서 쓰러트려 가지를 툭 부러뜨린 뒤 잎을 질겅질겅 씹고 엄니로 나무껍질을 벗겨가며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랜드로버가 덜덜거리며 서자 코끼리들은 육중한 고개를 돌려 불청객들을 쳐다보았다. 새끼 두 마리가 어미와 암컷 코끼리들 쪽으로 서둘러 뛰어가고, 달빛에 희미하게 엄니를 빛내던 건장한 수컷 코끼리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불과 6미터밖에 안 떨어진 붉은 레오파드 풀숲으로 다가왔다.
“저 녀석이 제일 큰 애랍니다. 이리 와 인사하렴.” 뒷좌석에 있던 한 여성이 말했다.
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수컷 코끼리는 도로로 들어서더니 랜드로버를 향해 육중한 걸음으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화난 것 같지는 않았으나 고집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투어 가이드가 재빨리 시동을 걸더니 후진 기어를 넣었다. 그는 룸미러로 아프리카버드나무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암컷 코끼리들 중 하나를 보고 있다가 서둘러 도로 아래쪽으로 후진했다. 차가 다가가자 암컷은 도로 맞은편에 있는 나무를 구부려 인간들이 지나가려는 길을 막았다. 나무를 구부려 잡고 있는 모습이 하나도 힘들지 않아 보였다.
가이드는 후진 기어를 넣은 채 속력을 늦추지 않고 운전대를 재빨리 돌려 도로 바깥으로 차를 빼더니 암코끼리와 도로를 가로막은 나무 옆에 용케 차를 댔다. 가속페달을 밟아 언덕 비탈 아래로 내려가 말라붙은 강바닥을 가로질러 코끼리 떼가 따라올 수 없는 곳까지 갔다.
랜드로버에 타고 있던 방문객들은 방금 자기들이 본 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한다. ‘암코끼리는 왜 그런 짓을 했던 거지?’
가이드는 빙긋 웃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냥 심술을 부렸던 거예요. 코끼리는 유머 감각이 있어요.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요.”
‘심술을 부린 거라고요?’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가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암코끼리는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던 거였어요. 코끼리 떼 사이를 비집고 운전하면 안 돼요. 코끼리들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죠. 코끼리는 자기 말을 들어주길 원해요.”
캠프로 돌아가는 길에 가이드는 코끼리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짜증을 낸다고 말해주었다. 헬리콥터 조종사들이 코끼리 떼 위를 날고 있으면 코끼리들은 헬리콥터를 향해 장타를 한 방 날릴 것처럼 작은 나무들을 코로 쥐고 흔든다고도 했다.
이곳 음카야에서는 코끼리와 인간과의 만남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코끼리 떼들은 캠코더를 들고 랜드로버를 타고 접근하는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코끼리도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다. 채 1미터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와 걸으면서 코를 앞으로 가만히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코끼리 사이에는 험악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번은 공원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다가 뜻하지 않게 코끼리 무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말았다. 새끼와 함께 있던 어미 코끼리가 덜컹거리는 자전거 소리에 놀라 직원을 공격했고 도망가는 직원을 잡아 수차례 내동댕이쳤다. 그 직원은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다른 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와질란드에 있는 코끼리들은 인간을 상대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미국인들은 아프리카를 온갖 생물종들이 지평선 너머까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광활한 미개척 대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에는 사람이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대다수 동물들은 동물보호구역에 수용된다. 물론 동물보호구역은 대개 면적이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넓지만, 인간이 점점 더 많은 땅을 차지하면서 동물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
인류가 지구를 뒤덮는 통에 다른 생물종들은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는데도, 우리 인간은 아무런 제약도 없는 것이 바로 자유라는 비현실적인 환상을 품고 그 속에서 위안을 찾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안락한 곳에 머물면서 아이들과 둘러 앉아 <라이온 킹>을 보며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초원을 가로지르는 심바, 품바, 티몬이 삶의 순환을 장엄하게 찬미하는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사자를 보려면 울타리로 둘러싸인 동물보호구역에 가야만 할 지경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축소판이 미국 뉴저지 주보다 면적이 더 적은 스와질란드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때 스와질란드에는 코끼리가 넘쳐났지만 지금은 울타리가 쳐진 보호구역인 음카야 그리고 흘레인 국립공원(Hlane Royal National Park) 단 두 군데에서만 코끼리를 볼 수 있다. 이마저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인접국에 있는 거대한 동물보호구역에 비하면 협소하기 짝이 없다. 음카야와 흘레인에는 코끼리가 겨우 십여 마리씩밖에 없다.
50년 전만 해도 스와질란드에서 코끼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원래 있던 코끼리들은 하나둘 죽어갔고 밀렵꾼들에게 희생당했던 것이다. 그때 믹의 아버지인 테드 레일리가 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스와질란드에서 나고 자란 테드는 숲속에서 영양이 풀 뜯는 모습이나 킹피셔(물총새류의 새_옮긴이)가 어떻게 나무에 구멍을 뚫어 둥지를 짓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년이 되자 테드는 환경보호를 공부하기 위해 남아공과 짐바브웨의 동물보호구역에서 공원경찰로 일했다. 1960년 가족이 운영하던 농장 일을 도우러 고국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떠나 있는 동안 스와질란드의 야생동물이 거의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때 수십여 종이 북적대던 지역들을 여행하며 그는 야생동물들이 모두 멸종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레일리는 동물들을 다시 데려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우선 음릴와네(Mlilwane)에 있는 가족 농장부터 야생동물의 피난처로 탈바꿈시켰다. 나무와 사바나 풀을 심고 댐을 지어 습지를 조성한 뒤 외국에서 들여오거나 직접 포획한 동물을 데려다 놓았다. 이런 그의 노력에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칭송했다. 레일리는 자신이 제저벨(Jazebel)이라고 이름 붙인 오래된 지프차를 타고 덤불숲을 누비며 임팔라(아프리카산 영양의 일종_옮긴이)와 혹멧돼지, 밀렵꾼을 잡으러 다녔다. 그리고 스와질란드 시골을 샅샅이 뒤져 전갈, 개구리, 도마뱀을 수집했다. 런던 동물원에서 암컷 하마 한 마리를 공수해온 뒤 같은 동물원의 수컷 하마 한 마리는 배를 태워 영국 해협을 거쳐 파리로 이동시킨 다음 비행기로 데려왔다. 레일리가 고용한 어느 순찰감시원은 은코마티(Nkomati) 강둑에서 몸길이가 2.75미터나 되는 악어를 잡아 몸부림치는 녀석을 픽업트럭에 싣고 음릴와네로 돌아오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레일리는 직원 30명과 함께 흰코뿔소 한 마리에게 진정제를 투여한 뒤 바닥이 평평한 트럭에 싣고 이송 중이었다. 잠든 코뿔소를 태우고 얼마나 갔을까, 코뿔소 주위에 앉아 있던 일행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정신이 든 코뿔소가 밧줄을 끊고 일행 옆에 떡 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제 기운이 남아 있어 비틀거리기는 했어도 코뿔소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몇몇은 너무 놀라 트럭에서 뛰어내렸고, 다른 몇몇은 차를 멈추고 코뿔소를 다시 포박할 때까지 비명을 그치지 않았다.
야생동물을 부활시키려는 레일리의 노력은 국왕 소브후자 2세의 관심을 끌었다. 아프리카에 몇 남지 않은 왕족 중 하나였던 스와질란드 국왕은 아내를 50명이나 두기로 유명했다. 스와질란드에서는 매년 ‘리드 댄스’(Reed Dance)라는 성대한 부족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에서는 수천 명의 처녀들이 가슴을 드러낸 채 춤을 추며 왕과 왕의 모후께 경배를 드린다. 스와질란드 왕은 나라의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로, 많은 아내를 맞아들여 자식을 여러 명 낳을 책임이 있었다.
스와질란드가 낙후됐다고 생각하는 이웃나라 남아공 사람들은 리드 댄스나 가슴을 드러낸 처녀 무희 얘기를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무시해도 레일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골수 왕정주의자인 그는 외부의 회의적인 시각에 대해 스와질란드 전통문화를 모르는 무식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한편 사냥꾼과 밀렵꾼을 몰아내려는 레일리를 반대하는 스와질란드 정치인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때문에 레일리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면 국왕의 지지를 얻어내야 했다. 스와질란드에 야생동물이 돌아오기를 염원하던 소브후자 왕은 레일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음릴와네에 만든 야생동물 피난처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소브후자 왕과 왕위 계승자인 므스와티(Mswati) 3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레일리는 흘레인에 스와질란드 최초로 국립공원을 세우고 흑코뿔소나 응구니(Nguni) 소같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음카야 동물보호구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세 군데의 운영을 위해 비영리 신탁재단이 설립되었다. 레일리는 아들 믹을 포함해 순찰감시원을 더 많이 고용해 교육시켰고, 사자, 검은 영양, 버펄로, 치타 등 더 많은 동물들을 데려왔다.
코끼리는 믹이 아직 십대 소년이었던 1987년부터 음카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당시 코끼리를 들여올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남아공에서 두세 살 내외의 어린 코끼리 십여 마리를 트럭으로 데려왔는데, 이들 코끼리는 남아공에서 코끼리 수를 제한하고자 매년 실시하는 도태(특정 동물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줄여 없애는 것_옮긴이)에서 살아남은 코끼리들이었다. 비록 살아남기는 했지만 이들 어린 코끼리는 가족이 도살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따라서 이런 코끼리들을 스와질란드로 데려오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 어린 코끼리들이 과연 어미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테드 레일리는 이런 염려들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어린 코끼리들이 어미 옆에서 마음껏 숲을 돌아다니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는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레일리는 어미 코끼리들은 이미 죽었으니, 음카야와 흘레인에서 새출발을 하는 편이 어린 코끼리들에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어린 코끼리들은 살아남았다. 사실 살아남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와질란드에 데려온 지 불과 몇 년 만에 동물보호구역에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코끼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동물 중 하나이지만, 하루 중 최대 열여덟 시간을 먹는 데 보내는 엄청난 대식가이기도 하다. 코끼리는 호모 사피엔스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생물종보다 주변 생태계를 바꿔버리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음카야와 흘레인에 데려다 놓은 코끼리들은 수많은 나무의 껍질을 벗겼고 너무나 많은 나무를 넘어뜨려 공원 전역이 황폐화되어 갔다. 게다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사는 독수리, 올빼미, 콘도르의 생존도 위협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흑코뿔소도 초목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황폐화된 삼림은 생존에 중대한 위협을 끼쳤다.
열한 마리의 코끼리를 미국행 비행기에 싣기 몇 달 전, 일부 동물보호단체들은 음카야와 흘레인에 코끼리들이 살아갈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레일리가 코끼리를 다른 동물원에 팔아 넘기기 위해 공간이 부족하다는 루머를 퍼뜨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당장 오늘이라도 음카야나 흘레인을 방문해보면 누구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것이다. 음카야가 얼마나 황폐한지 실제로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흘레인은 정말 최악이다. 공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코끼리가 살지 않는 구역은 나무와 숲이 무성히 우거진 광활한 수목지대다. 그러나 몇 센티미터만 눈을 돌려 반대편을 쳐다보면 온통 죽은 나무들만 서 있다. 흘레인에서 코끼리들이 사는 구역인 것이다. 그곳의 나무들은 대부분 땅 쪽으로 꺾여 있고, 가지가 검게 고사되고 부러졌으며 껍질이 벗겨진 채 삐딱하게 휘어져 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불모지와 다름없는 이런 환경에서 코끼리나 다른 동물들이 용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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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토머스 프렌치 Thomas French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스>에서 30여 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1998년 조 미셸과 크리스티 로저스 살인사건을 다룬 “천사와 악마”라는 특집기사로 퓰리쳐상을 받았다. 치밀한 탐사와 자료수집, 번뜩이는 분석과 통찰 그리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천의무봉으로 엮는 글 솜씨로 ‘언어의 마술사’이자 ‘글쓰기의 표본’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4년간의 동물원 관찰과 아프리카 사바나, 파나마의 열대우림을 오가는 탐사취재를 통해 쓴 이 책은 동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동물원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 문화, 역사, 인간 행동과 심리에 대한 신선한 통찰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천국의 남쪽』『대답 없는 비명』 등이 있으며,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언론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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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진선
학부에서 심리학과 불어불문학을 공부한 뒤 대학원에서 번역학(한영 전공)을 공부하고 있다.
박경선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대학원에서 번역학(한영 전공)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슬픔 뒤에 오는 것들』『전쟁 유전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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