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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을 품다
나는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소유한 적이 거의 없다. 대학을 중퇴한 뒤 약 10년 동안 싸구려 운동화와 낡은 청바지 차림으로 아시아 오지를 돌아다녔다. 돈은 한 푼도 없고 시간은 한없이 많던 시절이었다. 중세의 향취에 흠뻑 젖은 도시들은 내 손바닥 안에 들어 있다고 자부할 정도였다. 내가 돌아다닌 지역들은 고대 농경 사회의 전통에 속해 있었다. 내 손에 닿는 물건은 거의 대부분 나무, 섬유, 돌로 만든 것이었다. 나는 손으로 음식을 먹고, 산골짜기를 하염없이 두 발로 걷고, 아무 데서나 잠을 잤다. 짐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침낭 하나, 갈아입을 옷 한 벌, 주머니칼 하나, 사진기 몇 대가 전부였다. 맨땅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기술이라는 완충제가 사라졌을 때 피부에 와 닿는 것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추위를 느끼는 날도, 무더위를 느끼는 날도 많아졌고, 폭우에 흠뻑 젖고 곤충에게 물리는 일도 잦아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점점 더 빠르게 하루와 계절의 리듬에 발을 맞추었다. 시간은 풍족해 보였다.
그렇게 아시아에서 8년을 보낸 뒤 미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얼마 안 되는 물건들을 팔아서 값싼 자전거를 한 대 샀다. 그것을 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미 대륙 약 8000킬로미터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가로질렀다. 펜실베이니아 주 동부 아미시파 공동체의 잘 정돈된 경작지를 지날 때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미시파 공동체를 통해 나는 아시아에서 겪었던 최소 기술 상태에 가장 가까운 것을 이 대륙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선택적 소유 개념에 탄복했다. 그들의 꾸미지 않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매혹적인 첨단 기술을 벗어던진 내 자신의 삶이 그들의 삶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느꼈고, 그때 내 삶에서 최소한의 기술만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달랑 자전거 하나만 지닌 채 동부 해안에 도착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뉴저지 주 교외에서 자랄 때 나는 기술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내가 10세 때까지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고, 막상 텔레비전이 집 안에 놓였을 때에도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텔레비전이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았다. 텔레비전이라는 기술은 특정한 시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몇 시간 동안 온 정신을 사로잡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텔레비전의 창의적인 상업 광고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술을 습득하라고 말했다. 그들은 복종했다. 나는 자동차 같은 여타 거만한 기술들도 사람들을 복종시켜서 더욱더 많은 기술(고속도로, 자동차 극장, 패스트푸드)을 획득하고 사용하라고 부추길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나는 내 삶에서 기술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십 대 소년으로서 나는 내 자신의 목소리를 듣느라 힘겨워하고 있었고, 내 친구들의 진짜 목소리는 기술 자체가 떠드는 시끄러운 대화에 눌려 들리지 않는 듯했다. 기술의 순환 논법에 점점 덜 참여하게 되면서 내 삶은 점점 더 낯선 궤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대륙 횡단 자전거 여행을 끝냈을 때 내 나이는 27세였다. 나는 숲이 우거지고 건축 법규와 얽힐 일 없는 뉴욕 북부의 땅값 싼 벽촌에 틀어박혔다. 한 친구와 함께 나는 참나무를 베어 목재로 다듬어서, 그 목재로 직접 집을 지었다. 우리는 삼나무 지붕널을 하나씩 올려서 못을 박았다. 무거운 돌 수백 개를 들어 올려서 축대 벽을 쌓았다가, 계곡물이 넘쳐서 한 번 이상 무너졌던 일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양손으로 낑낑거리며 수없이 돌을 옮기던 일도. 우리는 집 안으로도 돌을 옮겨서 거실에 거대한 난로도 만들었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그 돌과 참나무 목재 덕에 나는 아미시파 사람들이 느낄 법한 흡족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아미시파가 아니었다. 나는 거대한 나무를 베고자 한다면, 사슬톱을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사슬톱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숲속 부족민이라면 다 동의할 것이다. 기술에 관한 자신의 목소리를 일단 갖추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욱 확신하게 되면, 어떤 기술이 다른 기술보다 더 우수하다는 점을 한눈에 간파한다. 구세계 여행에서 내가 터득한 것이 있다면, 아스피린, 면직물, 금속 그릇, 전화가 환상적인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좋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그것들을 손에 넣는다. 완벽하게 고안된 손 도구를 쥐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비행기는 내 지평선을 넓혔다. 책은 내 정신을 일깨웠다. 항생제는 내 목숨을 구했다. 사진술은 내 시적 영감에 불을 지폈다. 손도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단단한 옹이를 매끄럽게 잘라내는 사슬톱마저 나무의 아름다움과 강함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의 다른 어떤 도구도 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 정신을 고양시킬 만한 몇 가지 도구를 손에 넣는 일에 푹 빠져들었다. 1980년에 나는 손수 제작하는 일에 쓰이는 온갖 도구들의 바다에서 적절한 도구를 고르는 데 도움을 주는 『전 지구 카탈로그 Whole Earth Catalog』라는 간행물에 자유 기고가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값싼 신문 용지만 사용한 『전 지구 카탈로그』는 본질적으로 1970~1980년대에 웹과 컴퓨터 이전 시대의 사용자 생성 웹사이트였다. 즉 독자가 바로 저자였다. 나는 잘 고른 단순한 도구가 사람들의 생활에 야기할 수 있는 변화를 상상하면서 한껏 흥분했다.
28세 때는 우리가 사는 행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술적으로 단순한 세계로 들어가는 법에 관한 정보를 염가에 제공하는 저비용 여행 안내서의 우편 주문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내가 지닌 중요한 소유물이라고는 자전거 한 대와 침낭 하나밖에 없었기에, 나는 갓 시작한 올빼미처럼 밤에 글 쓰는 일을 자동화하기 위해 한 친구의 컴퓨터(초기 애플 II)를 빌렸고, 글을 출판사로 전송하는 값싼 전화 모뎀도 구했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전 지구 카탈로그』의 한 편집자가 몰래 손님 계정을 하나 구해 주어서 나는 뉴저지공과대학의 한 교수가 운영하는 실험적인 원격 회의 시스템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나는 곧 내가 더 크고 더 모험적인 세계에 발을 디뎠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라인 공동체의 최전선에 말이다. 그곳은 내게 아시아보다 더 이질적인 새로운 대륙이었고, 나는 마치 그곳이 이국적인 여행 목적지인 양 그곳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 첨단 컴퓨터망이 나 같은 초보 사용자의 영혼을 기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람과 통신선으로 이루어진 이 생태계에는 뜻밖에도 유기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완전한 무(無)에서 시작하여 우리는 가상 국가를 세우는 단계에 이르렀다. 몇 년 뒤 마침내 인터넷이 출현했을 때, 그것은 내게 거의 아미시파 공동체처럼 느껴졌다.
컴퓨터가 우리 삶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기술의 특성을 발견했다. 기술은 욕망을 충족시키고(그리고 창조하고) 이따금 노동력을 절약해 주는 것 말고도 또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다. 나는 온라인망이 사람들을, 다른 식으로는 결코 접하지 못했을 생각, 개념, 타인과 연결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온라인망은 열정의 고삐를 풀고, 창의성을 장려하고 관용을 부추겼다. 박식한 사람들이 글쓰기가 죽었다고 문화적 선언을 하던 바로 그 순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류가 썼던 것보다 더 많은 글을 온라인에서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외톨이로 살아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선언한 바로 그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더 큰 무리를 지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예기치 못한 수많은 방식으로 협력하고, 협조하고 공유하며 창조했다. 이것은 내게 새로웠다. 차가운 실리콘 칩, 긴 금속 통신선, 복잡한 고압 장비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북돋아 주고 있었다. 온라인 컴퓨터가 시적 영감을 자극하고 가능성을 증폭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나는 자동차, 사슬톱, 생화학, 그리고 맞다, 텔레비전 같은 여타 기술들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내게 기술의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다.
나는 초기 원격 회의 시스템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이 온라인상의 가상 존재를 토대로 1984년 『전 지구 카탈로그』에 고용되어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최초의 소비자 출판물을 편찬하는 일을 도왔다.(온라인상에서 고용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나일 것이라고 믿는다.) 몇 년 뒤 나는 새로 등장한 인터넷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대중 출입구를 만드는 일에 관여했다. 웰(Well)이라는 온라인 포털이었다. 1992년에는 디지털 문화의 공식 확성기인 <와이어드 Wired> 잡지 창설을 도왔고, 처음 7년 동안 편집을 총괄했다. 그 뒤로도 계속 기술 채택의 최전선에 머물러 왔다. 현재 내 친구들은 슈퍼컴퓨터, 유전자 표적 약물, 검색 엔진, 나노 기술, 광섬유 통신 등 새로운 모든 것을 창안하는 부류다. 나는 어디에서든 변화를 일으키는 기술의 힘을 본다. 하지만 나는 PDA, 스마트폰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며 블루투스 기술도 전혀 쓰지 않는다. 트위터도 하지 않는다. 내 세 아이는 텔레비전 없이 자랐고, 우리 집은 지금도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을 보지 않는다. 나는 노트북도 없고 여행할 때 컴퓨터를 갖고 가지도 않으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첨단 기기를 지인들 사이에서 가장 나중에 구입하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는 요즘도 자동차를 몰기보다는 자전거를 더 많이 몬다. 나는 친구들이 진동하는 휴대용 기기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온갖 기술의 산물과 계속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런 한편으로 쿨툴스(Cool Tools)라는 인기 웹사이트를 매일 갱신하며 운영하고 있다. 그것은 오래전 내가 『전 지구 카탈로그』에서 했던, 개인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기술을 평가하는 일의 연장이다. 내 작업실에는 일종의 승인을 받고 싶어 판매자들이 보내온 온갖 제품들이 강처럼 흘러든다. 그중 꽤 많은 제품은 결코 떠나는 법이 없다. 나는 사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손이 닿는 범위 내에 최대한 많은 수의 기술적 대안을 유지하자는 입장을 일부러 택해 왔다.
기술과 나의 관계가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독자들도 같은 모순을 안고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오늘날 우리 삶은 기술이 많을수록 좋다는 관점과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관점, 두 가치관 사이의 심각하고도 끊임없는 긴장에 사로잡혀 있다. 내 아이에게 이 기기를 사 줘야 할까? 수고를 줄여 줄 이 장치를 사용하는 법을 터득할 시간을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심오한 의문이 있다. 내 삶을 좌우하는 이 기술이란 대체 뭘까? 우리의 애정과 증오를 둘 다 불러일으키는 이 세계적인 압력은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신기술은 하나하나 다 불가피한 것일까? 산사태처럼 가차 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것들은 내 지원 혹은 회의적인 시선을 받아 마땅한 것일까? 그리고 내 선택이 중요하기는 한 것일까?
나는 이런 기술적 딜레마를 헤치고 나아가도록 안내해 줄 답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직면한 첫 질문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 나는 기술이 정말로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내가 전혀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술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기술의 근본 특성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매번 기술의 새로운 산물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얼마나 약하게 또는 세게 껴안아야 할지 판단할 기준틀을 지니지 못할 터였다.
기술의 본질을 잘 모른다는 점과 기술과 모순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자각한 나는 그 문제를 7년에 걸쳐 탐구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조사를 하다 보니 시간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고 먼 미래로 나아가기도 했다. 나는 기술의 역사를 깊이 파헤쳤고, 내가 사는 실리콘밸리의 미래학자들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관해 펼치는 상상력 풍부한 시나리오에도 귀를 기울였다. 기술의 가장 혹독한 비판자들과 가장 열렬한 팬들과도 인터뷰를 했다. 펜실베이니아 주 시골로 돌아가서 아미시파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물품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듣기 위해 라오스, 부탄, 중국 서부의 산골 마을에도 갔고, 앞으로 몇 년 내에 모든 이가 필수품이라고 여길 제품을 개발하려 애쓰는 부유한 기업가들의 연구실도 방문했다.
기술의 상충되는 경향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이런 문제들은 더욱 커져만 갔다. 기술을 둘러싼 우리의 혼란은 대개 아주 구체적인 걱정으로 시작한다. 인간 복제를 허용해야 할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일에 몰두하다가 우리 아이들이 바보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자동차가 알아서 주차하기를 원하나? 하지만 탐구가 진전을 이루면서 나는 이런 질문들의 흡족한 답을 찾고 싶다면, 먼저 기술을 하나의 전체로서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기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의 경향과 편향을 간파하고, 그것의 현재 방향을 추적해야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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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케빈 켈리 Kevin Kelly
세계 최고의 과학 기술 문화 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처음 7년 동안 그 잡지의 편집장을 맡았다. <뉴욕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사이언스> <타임>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글을 발표했으며, 네트워크에 기반한 사회와 문화를 예리하게 분석한 통찰력 넘치는 글들로 <뉴욕 타임스>로부터 ‘위대한 사상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해커 회의, ‘웰Well’과 같은 인터넷 공동체를 통해 사회와 문화의 혁신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인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는 10가지 법칙』과 『통제 불능』 등의 저서가 있으며, 『통제 불능』은 <포춘>에서 ‘경영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캘리포니아 패시피카에 살고 있다. www.k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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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한음
학부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분에 당선되었으며, 현재 과학 전문 번역가이자 과학평론 및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에드워드 윌슨, 제임스 왓슨, 리처드 도킨스 등 현대 과학자들의 대표작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앞장서 왔다. 『만들어진 신』으로 2007년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과학소설집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인간 본성에 대하여』『DNA를 향한 열정』『복제양 돌리』『복제양 돌리 그 후』『거의 모든 것의 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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