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방고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
트래버스 Travers
2000년 7월 어느 토요일 아침, 캔버스 천으로 된 텐트의 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잠이 깼다. 주말 아침에는 보통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지만, 오늘은 혼자 동물들 있는 곳으로 차 타고 가서 조용히 생각을 좀 하고 싶었다. 아프리카도 겨울에는 아침 날씨가 쌀쌀하기 때문에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서 부엌으로 나 있는 모랫길을 걸어갔다. 저 멀리에서 풀을 뜯는 코끼리의 모습이 보였다. 부엌이라고 해봐야 기껏 캔버스 천을 장대로 받쳐놓아 사방이 훤히 뚫려 있고 바닥에는 갈대 매트가 깔려 있는 곳이다. 부엌에 도착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밤새 습격을 당해 폭격이라도 맞은 꼴이었다. 깨진 식기 조각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쓰레기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어질러진 것을 치우다가 코코아 깡통에 난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 자국을 발견했다. 모래 위에 난 발자국으로 보아 밤새 하이에나가 다녀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여러 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이 위험한 육식동물이 우리 캠프 근처에 다시 얼씬하지 못하도록 지켜야 할 것이다. 나는 하이에나가 손대지 않은 양철 주발에다 시리얼을 부었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엉망이 된 부엌을 다시 둘러본 후 이기적이지만 다른 사람이 치우도록 내버려두고 나왔다.
초록색 랜드로버에 올라탄 나는 쌍안경이 있는지 확인한 후 캠프를 빠져나왔다. 나는 지금 열여섯 살이고 운전을 한 지는 올해로 5년째다. 운전은 엄마한테 배웠다. 2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스틴복 룹으로 가기로 했다. 그날 아침에는 동물들이 무척 많았다. 임팔라, 얼룩말, 코끼리, 그리고 기린도 몇 마리 보였다. 흰개미 집 쪽으로 가자 어린 암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사자는 벌렁 드러누워 이른 아침의 첫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이 사자를 아주 어릴 때부터 죽 봐와서 이 녀석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녀석을 무척 좋아한다. 사자가 그늘을 찾아 아카시아 숲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는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한 시간 반 정도 자리를 비웠으니 그때쯤 식구들이 내가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집에 오자 막내 동생 오클리가 나를 맞았고, 우리는 부엌까지 달리기를 했다. 오클리는 여섯 살이지만 캠프에서 가장 빨리 달린다. 나머지 가족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타이어를 고치러 나가기 전에 잠깐 식구들과 함께 앉았다. 타이어 수리는 내 전문 분야다. 어제 밖에 나갔다 온 차 두 대의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 고치려면 몇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침에 어린 암사자 프레시넷을 보았다고 이야기하자 모두 좋아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했다. 우리는, 엄마와 새아빠가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삼각주에서 사자를 연구하는 것을 돕고 있다. 여기서 잠깐, 물론 우리가 원래 이렇게 산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우리 남매는 다섯이다. 에밀리, 앵거스, 메이지, 오클리, 그리고 나 트래버스다. 에밀리 누나와 오클리는 나와는 아버지가 다르지만 그렇다고 다른 점은 하나도 없다. 1994년 우리는 영국 코츠월드에서 시끌벅적 엉켜 살았다. 우리는 유아기와 아동기 대부분을 홀리부시 코티지에서 보냈다. 300년가량 된 그 집은 전형적인 영국 전통 시골집이다. 넓은 사과밭과 자두밭, 예쁜 마당이 딸린 집으로, 판석을 깐 마루에는 커다란 벽난로가 있어 온 집 안을 시커멓게 그을리곤 했다. 부엌에 있는 거대한 난로로 집 전체를 난방했고, 아늑한 침실이 여럿 있었다. 나는 다락방을 썼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제는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이 가슴 가득 떠오른다.
그때는 우리 모두 어렸다. 갓 한 돌이 지난 오클리는 기저귀를 차고 돌아다녔다. 우리는 무척 단순하면서도 안락하고 느긋하게 생활했다. 여름이면 엄마와 같이 산책을 하다가 마을 교회 옆 벤치에 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를 들었다. 아침에는 닭장에 가 온기가 남아 있는 달걀을 줍고, 저녁에는 엄마를 도와 채마밭에서 당근이나 감자를 캐서 저녁을 준비했다.
메이지와 앵거스는 우리 집에서 바로 올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동네 초등학교에 갔고, 에밀리 누나는 치핑 캠든 종합 중등학교에 다녔다. 난독증이 있는 나는 집에서 가까운 난독증 학교인 브루언 애비에 다녔다. 오클리는 집에서 지냈는데 주로 종일 마당에서 고양이랑 놀거나 엄마 품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스플래쉬 수영장에 가거나 장날에 읍내에 가는 날은 아주 신나는 날이었다.
우리가 자라면서 아빠는 배우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집을 비울 때가 많았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배우 생활을 그만두고 생물학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 두 분은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래도 친구 사이로 계속 지내면서 홀리부시에서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아침 난로 옆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데, 엄마가 아프리카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해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빠는 로스앤젤레스에 이민할 예정이었고, 엄마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엄마는 유럽인들의 생활 방식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사회가 기술적으로 점점 복잡해지면서 아이들이 점점 무력해진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우리 가족이 어떤 도전이라도 맞서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는 법을 익히길 바랐다. 영국에 살 때는 무슨 일만 생기면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았다. 심지어 언젠가는 부엌에 나타난 쥐 한 마리 때문에 모두 집 밖으로 대피하고 쥐 잡는 사람을 불러 처리한 일도 있었다.
세계지도를 꺼내온 엄마는 보츠와나라는 나라를 짚어 보이며 오카방고 삼각주와 칼라하리 사막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날 아침까지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나만 빼고 다른 식구들은 모두 좋아했다. 나는 아프리카로 가서 산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지만 엄마가 그냥 해보는 말이겠거니 생각하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계획은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라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그로부터 2주일 후, 엄마와 여전히 엄마 가슴에 달라붙어 있는 오클리가 보츠와나에서 살 집을 구하러 보츠와나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다시 홀리부시로 돌아온 엄마는 오클리와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엄마는 어떻게 찾았는지 오카방고 삼각주 근처에 있는 마운이라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떠날 준비를 하는 데 여섯 달이 걸렸다. 출발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불안해졌고, 마침내 출발일이 되자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나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정말로 아프리카로 이사 가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짐을 싸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판에 눈물을 흘리면서 내 물건을 가방 속에 던져 넣었다. 마침내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탔고, 엄마는 1년 후에 우리 중 누구라도 아프리카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영국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다시 한 번 약속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놓였다. 새로운 삶이 과연 어떨지 사실 우리 중 아무도 몰랐으니 말이다.
지금부터 앵거스와 메이지, 그리고 내가 돌아가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책은 캠프의 부엌에서 열린 우리 학교에서 엄마가 국어 수업시간에 내준 숙제에서 비롯되었다. 책의 각 장에서 우리 여행의 여정을 나름대로 생각하고 느낀 대로 이야기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가족 중에서 변화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나니까, 특히 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그런 내용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 남은 야생의 땅, 아프리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래서 이곳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자에 대해 배운 사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사자들은 늘 우리를 놀라게 하고, 매혹시키고, 겁에 질리게 하고, 마음을 빼앗는다. 우리 삶에서 사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 책에도 자주 등장할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보츠와나가 우리 집처럼 편하고 영국이 무척이나 먼 곳처럼 느껴진다. 이곳으로 오는 것을 가장 싫어했던 내가, 지금은 아프리카를 고향처럼 느끼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첫 번째 추천의 글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준 책
선행학습과 방과 후 사교육 등으로 하루 일과가 꽉 짜인 입시 지옥에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은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역시 그런 아줌마 중 한 사람이었다. 다만 내가 꿈꾸고 떠나고 싶었던 곳이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 같은 모든 것이 잘 갖춰진 곳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을 경험할 수 있고, 태초의 원시를 느낄 수 있는 아프리카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5살, 7살의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떠난 나의 경험은 이 책 『오카방고의 숲속학교』에서 시작됐다.
그래, 이 책 속 아이들의 엄마인 케이트도 다섯 아이를 데리고, 그것도 성이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갔는데… 나는 이 책을 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기저귀를 찬 막내 오클리 같은 어린아이까지도 그곳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날 수 있겠다는 무모함을 키웠던 것이다. 비록 우리의 아프리카 생활이 케이트 가족이 겪은 것 같은 ‘와일드 라이프’는 아니었지만,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키보다 큰 흰개미 집에 감탄하고, 도마뱀과 어울려 놀고, 나무와 꽃을 살피고,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별을 세고, 전기가 일정하게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 적응하고… 트래버스와 앵거스, 메이지와 오클리가 오카방고의 숲속학교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고 배웠듯, 우리 역시 아프리카의 초원학교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외심과 배려, 관용을 배웠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검은 피부의 친구들을 차별 없이 대할 수 있는 마음은 아프리카라는 ‘학교’가 가르친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 아프리카 여행은 모든 여행의 끝이다. 인간이 만든 거창하고 화려한 문명 여행보다 강렬한 것이 아프리카 여행이다. 그것은 우리의 몸속 어딘가에, DNA 어느 구석에 아프리카의 초원을 동물들과 함께 뛰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원초적인 이끌림에 따라가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 여행이리라.
멀고 먼 아프리카를 꿈꾸는 이들,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에 『오카방고의 숲속학교』가 있기를 바란다. 당신이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 당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아프리카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이제 당신도 당신만의 아프리카를 꿈꾸고 만나게 될 것이다.
방송작가 구혜경
『아프리카 초원학교』의 저자
두 번째 추천의 글
오카방고 숲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경이로운 이야기
이 책은 놀라운 세 아이들이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제비호와 아마존호』를 떠올려보라. 다만 이 이야기가 실제 있던 일이고 영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떠올려보라. 그렇지만 이 세 아이들한테는 요술 옷장이나 가상의 신비로운 세계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는 C. S. 루이스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비스러운 곳이다. 마녀는 없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자.
트래버스, 앵거스, 메이지 가족은 막내 오클리가 기억할 수 있는 때부터 천막집에서 살아왔다. 세 아이 모두 발이 액셀러레이터에 닿을 때부터 랜드로버를 몰았고, 타이어를 들어올릴 수 있을 때부터 일상적으로 타이어를 갈았다. 나이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립심 강하고 믿음직한 아이들이다. 그렇지만 닳고 닳았다거나 약삭빠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다.
몽고메리 육군 원수는 마오쩌둥을 ‘정글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나라면, 마오쩌둥과 하이드파크를 함께 가고 싶을지 의문이지만 어른이 없어도 트래버스, 앵거스, 메이지와 함께라면 언제라도 정글에 가고 싶을 것 같다. 눈이 밝고 반사신경이 빠르고 살아온 날의 대부분을 아프리카에서 보낸 이 영리한 아이들과 함께라면 총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코끼리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 애들은 안다. 나는 살무사, 독사, 전갈이 무서운데 이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걸어다닌다. 의지할 만하고 강한 아이들이다.
한편으로 아이들 특유의 천진함과 매력 또한 넘친다. 그러나 이 천진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아끼던 사자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모습을 보고, 침착하게 무선 교신으로 이 비극을 전달하고 사후 처리까지 한다. 그들이 사는 곳은 『제비호와 아마존호』에 그려진 공간처럼 목가적인 풍경이 가득한, 많은 사람에게 꿈이나 이상화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잃어버린 대륙이지만 분명한 현실 세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이 아이들의 손에서 나온 것이지만, 아이들의 이런 상상력, 활기, 자유로운 사고, 모험심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나와 내 아내가 케이트 니콜즈를 처음 만난 것은 1992년이었는데, 코츠월드에 살고 있던 그녀는 오클리를 임신한 채로 옥스퍼드의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에 몰두했다. 그녀는 30대 후반에 배우로서 성공했으나 무대 생활에 환멸이 생기기 시작했다. 삶 자체가 열정적인 그녀는 진화생물학 공부에 열정을 불태웠다. 케이트는 뭐든 일단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미기 때문에, 진화에 관심을 갖게 되자 도서관에 묻혀서 연구 문헌 원본까지 뒤져가며 공부했다. 나는 약식 개인지도의 형태로 몇 차례 도와주었을 뿐인데 케이트는 엄청난 독서로 다윈 이론의 전문가가 되었다. 케이트는 마침내 생활의 터전을 떠나 다윈 이론을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보츠와나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보츠와나 이주는 케이트가 계속 학문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던 소망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평범한 귀결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하지만 덕분에 케이트의 아이들은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그 재능을 실현할 독특한 환경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아이들은 교육도 어머니에게서 받았다. 이 점이 아이들의 삶에서 가장 평범치 않은 부분일 것이다. 보츠와나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케이트는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수업은 전적으로 캠프 내에서 이루어졌지만 정해진 학기에 따랐고 힘든 숙제도 있었으며 국제 공인 시험에도 대비했다. 케이트는 표준교육 과정에 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부분 아이들이 십대 때 잃고 마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키우고 간직할 수 있게 아이들을 교육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라도 케이트의 비정규 숲속학교가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것이다. 그 증거가 아이들만의 힘으로 완성한 바로 이 책이다. 세 아이들 모두 글 솜씨가 뛰어나고, 섬세하고, 명석하고, 논리정연하고, 지적이며 창의적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30년간 가르친 경험으로 말하건대 이 아이들은 어느 대학에서라도 환영받을 만한 우수한 학생들이다.
케이트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 가운데 보츠와나를 택한 것도 운명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케이트는 그곳에서 피터 캣과 자연 도태 과정 속에서 살고 죽는 야생 사자들을 만나게 된다. 피터는 조심스럽지만 따뜻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강하고 과묵한 남자 중에서도 가장 괜찮은 타입으로 케이트하고 아주 잘 어울린다. 케이트도 따뜻하고 강하지만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케이트는 과묵하거나 조심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항상 열정이 넘치고 가끔 불같은 성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피터는 아이들에게 이상적인 새아버지가 되어주었고, 또 이 어린 과학도들은 피터의 사자 연구 보존 프로젝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작년에 캠프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경험한 일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 그려진 그림들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자신 있게 보증할 수 있다. 정말 그림에 있는 그대로다. 거칠다기보다는 멋지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 두 가지 느낌이 다 있다. 내 딸 줄리엣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우리보다 먼저 그곳을 방문했는데, 다들 이 가족에 완전히 반해버렸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첫날, 줄리엣은 트래버스가 운전하는 랜드로버를 타고 무선장치를 단 사자를 쫓아갔다고 한다. 이 첫 경험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 찬 줄리엣의 편지를 받고,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내 말을 가로막으셨다.
“물론 무장한 삼림 경비원이 적어도 두 명은 따라갔겠지?”
나는 줄리엣과 함께 간 사람은 트래버스뿐이고 트래버스가 직접 랜드로버를 몰았을 거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캠프에 삼림 경비원이나 총기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한테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솔직히 나도 그 편지를 받고 상당히 불안했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숲 속에서 트래버스나 앵거스, 메이지를 만나보기 전의 일이다.
줄리엣이 그곳으로 떠난 지 한 달 후에 우리도 뒤따라갔다. 그리고 바로 그런 불안감이 사라졌다. 나는 전에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사실 그곳이 내 고향이다. 하지만 전에는 그만큼 ‘야생’에 가까이 있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사자나 다른 야생동물에 그렇게 가까이 가본 적도 없었다. 캠프 생활은 신기할 정도로 훈훈함과 활기가 넘쳤다. 텐트 안은 항상 웃음과 논쟁으로 시끌벅적했고,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댔다. “열심히 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케이프터틀비둘기의 울음소리, 비비원숭이의 오만하고 소란스런 울음소리, 멀리서 또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사자들의 울부짖음 등 아프리카의 밤의 독특한 소음 속에서 잠이 들고 깨어나던 일이 떠오른다.
보름달이 떠올랐을 때 줄리엣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던 것도 기억난다. 캠프에서 멀리 떨어진 너른 벌판에 홀로 당당히 서 있던 식탁. 그 위에 촛불을 밝힌 모습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정확한 시간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자 목이 메었다. 처음에는 달빛이 얕은 재칼 웅덩이 물가에 반사되다가, 달이 점점 떠오르면서 유령 같은 떠돌이 하이에나의 모습을 비추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른 자고 있는 오클리를 깨워 랜드로버에 태워야 했다. 마지막 날 밤에는 열 마리 이상의 사자가 캠프 바로 바깥쪽에서 갓 잡은 얼룩말을 뜯어먹으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 원시적인 밤의 광경을 보고 있으니 뿌리에 대한 향수가 떠올랐다. 우리가 어떻게 자라났건 유전적으로 우리는 아프리카의 후손이라는 생각이 생생히 뇌리에 박혀 아직도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이 어린아이들의 삶에 아프리카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공정하게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지 일주일 동안 그곳에 머물렀을 뿐이고, 나는 이미 닳고 닳은 어른이 아닌가.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영민한 눈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와 그 경이를 경험해보길 바란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제1장, 추천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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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글·그림)
메이지, 앵거스, 트래버스 남매
뒤늦게 생물학 공부의 재미에 푹 빠진 엄마와 할리우드에서 배우 생활을 하는 아빠 사이에서 각각 두 살 터울로 태어났다. 영국 코츠월드에서 학교를 다니며 평범한 학생으로 지냈지만 엄마의 넘치는 학구열 덕에 졸지에 아프리카로 가서 살게 됐다. 위로 의젓한 누나이자 언니인 에밀리, 아래로 천방지축 남동생인 오클리가 있다. 참고로 에밀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의 몸으로 장기간의 세계 여행을 감행하는 듬직하고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오클리는 여섯 살의 나이에 랜드로버를 몰며 산불에 작은 부삽을 들고 맞서는 용감무쌍(!)한 아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 남매의 중심에 열혈 엄마 케이트가 있다.
케이트는 연극 무대를 누비며 배우 생활을 하다가 30대 후반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진화생물학을 공부한 만학도이다. 다섯 아이를 키우며 코츠월드의 전원주택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일상생활에서 다윈 이론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아프리카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1995년, 마침내 케이트와 아이들은 새롭게 펼쳐질 모험을 기대하며 긴장과 설렘 속에 낯선 대륙에 발을 디딘다.
영국을 떠난 지 24시간 만에 아프리카 남부의 보츠와나에 도착한 이들 가족.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달려 오카방고 삼각주의 새 집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사자를 연구 중인 ‘피터 아저씨’의 캠프에 머물게 된 일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지구에서 가장 멋진 동물’인 사자를 관찰하고 사랑하면서 엄마와 아이들은 점점 성숙해진다. 단지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는다.
특히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오카방고 숲 속, 허름한 천막 교실에서 진행된 엄마 케이트의 교육이 큰 역할을 했다. 재능과 식견, 노력이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엄마의 가르침은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다. 아이들은 야생에서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해결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을 받는다.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과 ‘선생님’의 완벽한 만남은 열악한 환경의 이 숲속학교를 행복한 성공으로 이끌었고, 그 증거가 아이들만의 힘으로 완성한 바로 이 책이다.
아프리카에서 경험한 놀라운 일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 남매의 나이는 각각 열두 살, 열네 살, 열여섯 살이었다. 스스로 그림 그리고 써 내려간 이 책에서 이 어린 저자들은 오카방고에서 경험한 많은 이야기들을 특유의 상상력과 재능을 발휘해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이들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의 글이 빼어나고 재미있다.
현재 엄마 케이트는 사자 행동에 관해 세계적으로 주요한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빠 이안 맥네이스는 <작전명 발키리> <블랙 달리아>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 <에이스 벤추라>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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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홍한별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가족표류기』『행복한 슬럼 학교』『자유방목 아이들』『밴버드의 어리석음』『피와 천둥의 시대』『문학은 자유다』『캐시 호숫가 숲속의 생활』『우울한 열정』『권력과 테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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