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정말로 오늘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하루였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야 편집실의 육중한 문을 뒤로 하고 회사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실용적인 ‘나인 투 파이브(9 to 5)’ 시스템에 적응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늦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이다. 주말 스케줄도 모두 다시 짜야 할 것 같다.
모퉁이에 있는 단골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줄이 늘어서 있다. 금요일 저녁이라 더 그렇다. 배 속에서는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급한 마음에 별생각 없이 인스턴트 피자와 샐러드용 토마토, 콜라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모두 6.4유로입니다.”
“여기요. 좋은 주말 되세요.”
“네, 손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냉동 살라미(이탈리아식 소시지의 일종. 날고기에 열을 가하지 않고 소금이나 향료 따위를 쳐서 차게 말려 만든 것으로 샐러드나 샌드위치 따위에 쓴다.-옮긴이) 피자를 즐겨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오늘처럼 스트레스가 심한 날이면 요리할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고, 혀에 닿으면 녹을 만큼 스테이크를 부드럽게 굽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그래도 저녁에는 대부분 간단하게 먹는 편이다. 대신 시각적으로 그럴싸하게 차리는 데 신경을 쓴다. 인스턴트 소스를 곁들인 파스타가 어떤 맛인지는 아마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스타에 바질을 곁들이는 그런 식이다.
집에 도착해서 피자를 재빨리 오븐에 넣은 뒤, 샤워기에 몸을 맡겼다. 몇 분 후 조심스럽게 오븐을 열어보았다. 열기가 훅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포장 박스에는 “치즈가 부드럽게 녹았다면 피자가 완성된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스스로의 감각을 믿는 편이다. 내 경험상,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가 나야만 피자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토마토를 자르고,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준비해놓을 시간이 아직 있다는 말이다.
오늘은 제법 운이 좋은 날이다. 내가 사온 붉은 토마토는 신선한 자연의 맛이 난다. 겨울철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숱한 수입산 제품처럼, 무미건조하고 질기기만 한 채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내 고향 오스트리아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채소가 토마토라는 통계자료도 있다. 사실 나는 비교적 비싼 집에서 사는 편이다. 토마토 같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는 재래시장도 근처에 있다. 다만, 퇴근 후에 재래시장까지 일부러 갈 의욕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재래시장 대신에 슈퍼마켓에서 모든 것을 구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사 오기 전에는 몰랐을 뿐이다.
오븐에서 솔솔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피자를 꺼낸다. 앗, 조심! 철판이 뜨겁다. 토마토에 소금을 살짝 치고, 콜라도 따르고, 피자를 조각낸다. 참, 텔레비전도 켜야지. 자, 잘 먹겠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저녁뉴스가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 정상회담과 유가(油價), 먼 타국의 홍수에 관한 보도가 이어진다. 나는 뭐, 별로 할 말이 없다. 다음 날이면 까마득히 잊힐, 그렇고 그런 일상일 뿐이다.
잠시 ‘콰트로 스타지오니 피자[Quattro Stagioni Pizza(Quattro Stagioni는 사계절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옮긴이)]’라는 이름이 실제로 계절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러고는 피자를 모두 먹어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 마르쿠스가 아담한 바에 가서 맥주나 한잔하자며 금요일 밤 스케줄을 제안한다. 좋지! 나는 집에 들어온 지 한 시간 만에 다시 현관문을 나선다. 내가 직접 요리를 했다면 절대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토요일 오전. 그야말로 숙면을 취한 나는 침실로 쏟아지는 따가운 햇살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간신히 커피메이커에 커피를 넣고 다시 거실로 돌아온다. 구석에 있던 피자 박스가 맨발에 차인다. 참, 이 피자를 만든 회사가 어디더라? 아직 잠에 취한 채 생각해본다. ‘콰트로 스타지오니’와는 무슨 관계지? 어떤 계절에, 어떤 양념을 넣었을까?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나중에 제조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꼭 확인해봐야겠는 걸.
갓 내린 커피가 나의 이런 철학적인 질문들을 몰아낸다. 머릿속이 차츰 맑아진다. 조간신문을 읽던 중에 방금 전 떠올렸던 질문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해답은 찾게 됐다. 기사에 따르면, 닥터 외트커[Dr. Oetker(1891년 아우구스트 외트커 박사가 설립한 기업으로, 독일 빌레펠트에 본사가 있다. 베이킹파우더, 케이크 믹스, 꿀, 냉동피자, 푸딩, 아이스크림 등의 브랜드로 유명하다.-옮긴이)]가 2007년 16억 유로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했는데, 매출의 33퍼센트는 냉동피자와 냉동스낵 부문이 차지했다. 독일 빌레펠트에서 출발한 가족기업인 닥터 외트커는 유럽의 손꼽히는 식품 제조업체로서, 내가 지난밤에 먹은 살라미 피자도 바로 이 회사 제품이다.
축하할 일이군. 사실 대량생산되는 식품치고는 맛도 꽤 괜찮단 말이야. 계속해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닥터 외트커의 직원 수는 2007년에만 67명이 증가해 모두 7,301명으로 늘어났다. 식품 제조공정이 오늘날 대부분 자동화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굉장한 숫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 말에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 냉동피자의 제조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하긴, 누가 이런 과정을 봤겠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음식
요즘처럼 이렇게 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시간을 잡아먹는 식사 준비를 갈수록 식품기업의 손에 맡기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소비자들은 원료와 그 가공과정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고 있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식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는 실험실에서 나온 식품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낸다.
선사시대에는 음식을 먹는 이유가 무엇보다 생존하기 위해서였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맹수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 힘을 비축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누군가가(이 존재에게 나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음식에 어떠한 맛이 날 경우 먹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이러한 맛의 체험은 수천 년을 거치면서 학습되어왔다.
20세기, 산업화한 식품 생산공정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화학성분은 우리의 음식에도 침투하였다. 화학보존제는 음식의 대량생산과 소비자가 이를 섭취할 때까지의 장기 보존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냉장고가 가전제품으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 것도 식품산업계에 커다란 힘을 실어주었지만, 무엇보다 냉동기술 덕분에 음식물의 보관이 크게 용이해졌다. 식품 가공으로 인한 맛의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소금이나 설탕, 지방같이 음식 맛을 내기 위한 첨가물들이 아낌없이 사용되었고, 화학보조제는 그럴싸한 외양과 안정성 등을 담당하였다.
20세기 중반 들어 음식에도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두되었다. 당시의 지식 수준에 따라, 사람들은 동물성 지방을 음식에서 몰아내고 대신 식물성 지방을 사용했다. 버터 대신에 마가린이 사용되고, 식용유 사용량을 줄여주는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이 개선 행렬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오늘날 음식은 추가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섬유질과 유산균,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등 이제는 음식이 우리를 더욱 건강하게, 젊게, 아름답게, 활기차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소화를 도와주는 요구르트를,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유제품을, 포장지에 ‘비타민 C’라고 적혀 있는 것들을 집는다. 이러면서 과일과 채소는 저 멀리 내팽개치고 있다. 자연식품보다 칼로리가 더 낮다고 광고하는 인공식품들이 활개를 치면서, 사람들은 과체중과 싸우며 힘들게 몸을 움직이는 대신에 이렇게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식품들에(화학제품에) 손을 뻗치고 있다. 슈퍼마켓에도 ‘저지방, 저칼로리’라고 적힌 제품들이 이전보다 더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어, 올바른 식습관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우리는 자연스레 이런 인공식품들을 선택하게 된다.
업계는 우리의 이런 게으름에 박수를 보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업계는 미래의 음식을 연구하고 있다. 음식 제조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한스 울리히 그림(Hans-Ulrigh Grimm)의 저서 『수프는 거짓말한다 Die Suppe lugt』에도 잘 나와 있다. 이 책에서 그림은 제당공장에서 나온 가축사료용 사탕무와 감자 찌꺼기에 대해 기록하며, 학자들이 이 음식쓰레기를 활용해 과일주스나 유제품 혹은, 빵 등에 사용되는 미래의 식품첨가물을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령 프록터 앤드 갬블[Procter & Gamble(미국의 대표적인 생활용품 제조업체.-옮긴이)]은 지방 대체물질을, 유니레버(Unilever)는 과일 찌꺼기와 해초 추출물, 그리고 조미료를 혼합해 ‘감쪽같은’ 천연과일 맛을 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돼지고기로 조개를 만들고, 생선 단백질에 향신료를 첨가해 돼지고기 소시지를 만드는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무엇보다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그림은 말한다. 깊은 해저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크릴새우(자체 발광하는 갑각류의 일종이다)를 잡아서 칼로 자르고 정형화한 블록 형태로 압착시킨 후 마지막으로 먹음직스러운 향을 첨가하는 것이다. ‘날달걀 같은’ 날달걀의 제조 역시 기술적으로 이미 가능하고, 유산균으로 연질 치즈를, 지방과 단백질로 인공 베이컨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우리 소비자의 지위를 후퇴시키고 있다. 오늘날의 다양한 식품들 가운데 제대로 된 것을 선택하기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에만 가도 제품이 보통 8천 개에서 1만 개나 된다. 건강상의 이유에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 우리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각종 비교표도 넘쳐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공식품들이 사실은 같은 기본 첨가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고 있다. 산업화한 생산공정은 몇 안 되는 기본적인 원료들, 그것도 저가에 구입할 수 있는 원료들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의 저술가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은 기술적인 가공능력과 이윤 최대화에 따른 첨가물의 선택이 우리의 건강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모든 만성질환은 식품의 산업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특히 심하게 가공한 식품과 최고급 밀가루의 증가, 단작 농법에 따른 식물 재배와 동물 사육과정에서의 화학성분 사용, 현대 농업경제로 탄생한 설탕과 지방으로 된 ‘싸구려 칼로리’의 과잉 공급,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주요 곡물, 그중에서도 밀과 옥수수, 콩 등을 얻기 위해 사람의 건강까지 희생시킨 결과 나타난 생물학적 다양성의 감소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은 오늘날 식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가공식품산업의 원료를 공급해주는 농업경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을 것이다. 냉동피자를 할인가격에 구입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계인이 즐겨 먹는 피자
오늘날 식품 생산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국적 기업이다. 원료를 가공하는 일 역시 점점 더 국제적이 되어가고, 이 과정에서 저렴한 가격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음식 생산이 이렇게 세계화되어가면서, 인도나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의 식습관 서구화가 업계에 거대한 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식품 생산과 관련된 많은 문제점이 전 세계에 통용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말 그대로 세계화한 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결정했다. 피자가 바로 그것이다! 피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패스트푸드로서, 심지어 햄버거보다도 더 알려져 있다. 기자로서 출장을 가든 아니면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든, 곳곳에서 나는 이 둥근 반죽 덩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이탈리아, 독일,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이란 등 세계 어디를 가나 피자가 반드시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한편, 피자는 원래 초보자도 쉽게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달 피자와 인스턴트 피자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도시화되어가는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식습관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배가 많이 고프든 약간 허기만 지든, 근사한 레스토랑이든 패스트푸드점이든, 매점이든 가정의 냉동실 한 칸이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자는 요리할 시간이 부족할 때면 언제나 우리 곁에 나타난다.
덴버 대학 사학과의 캐롤 헬스토스키(Carol Helstosky) 교수는 자신의 저서 『피자-글로벌 히스토리 Pizza. A Global History』에서 피자가 빈곤층의 음식에서 이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패스트푸드로 지위가 격상된 과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피자는 18세기경 이탈리아 나폴리의 빈민가에서 탄생했다. 소금을 뿌린 이 얇은 빵은 당시에도 매우 사랑받는 음식이었는데, 가격이 저렴해 가난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도 먹곤 했다. 1734년 피자빵과 토마토의 ‘결혼’이 이루어졌으며, 당시 피자 가게 이름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치치치오(Zi’ciccio), 엔투오노(Ntuono), 카파소(Capasso), 다 피에트로(Da Pietro)가 바로 그것인데, 특히 다 피에트로는 훗날 그 유명한 브란디(Brandi)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피자 가게에서 1889년 이탈리아의 마르게리타(Margherita) 여왕에게 바치는 마르게리타 피자가 탄생했다.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 바질을 토핑해 초록색, 흰색, 빨간색의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피자를 만든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주민들이 북부로 이주하면서 피자가 더 많이 알려졌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군인들이 피자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다. 또 유럽과 미국으로 이탈리아인들의 이민 행렬이 이어지고,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피자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한편, 헬스포스키 교수는 이 이탈리아 음식이 세계화된 데에는 미국인들의 비즈니스 정신이 한몫 톡톡히 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1905년, 게나로 롬바르디(Gennaro Lombardi)는 뉴욕에서 미국 최초의 피자 가게를 열었는데, 나중에 이곳은 ‘작은 이탈리아’로 불리기도 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과 함께 피자는 뉴욕에서 시작해 서서히 북미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북미에서는 아예 지역민들의 기호에 맞는 개성이 추가되었다. 1943년, 아이크 수웰(Ike Sewell)은 시카고에서 우노(Uno) 피자 가게를 열었는데, 이탈리아의 정통 레시피에 각종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한 딥 디쉬 피자(Deep Dish Pizza)를 개발해 큰 인기를 끌었다.
헬스포스키 교수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미국을 휩쓴 두 가지 음식 트렌드가 있었다. 하나는 새롭고도 낯선 이국적인 음식, 이른바 ‘에스닉 푸드(Ethnic Food)’에 대한 추구였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좀 더 편리한 것에 대한 바람이었다. 편의성은 오늘날에도 소스나 기타 곁들이는 음식 등 미리 조리된 첨가물과 인스턴트식품을 생산하는 분야에서 시간 절약을 내세우며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이러한 트렌드는 냉동식품과 인스턴트 빵 반죽 생산 증가에 일조했다. 텔레비전의 보급 역시 미국인들의 음식 문화에 변화를 가져왔고, 마침내 사람들은 요리라는 중요한 일을 냉대하기에 이르렀다.
피자는 이 두 가지 흐름을 모두 만족시키며 하나로 통합했다. 1960년, 톰과 제임스 모나한(Tom and James Monaghan) 형제는 미시건 입실란티에 피자 가게를 열어, 따끈따끈한 피자를 가정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에 주력했다. 이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선풍적이었다. 이 작은 대학도시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도시들도 하나하나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도미노(Domino) 피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 시기에 캔자스 위치타에 생긴 한 피자 레스토랑도 이와 유사한 성공 가도를 걷기 시작했다. 바로 피자헛이다. 가족들이 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언제나 똑같은 맛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피자헛의 아이디어는 대성공이었다. 오늘날 피자헛 체인점은 세계적으로 1만여 곳에 이른다.
피자의 성공 배경에는 무엇보다 그것이 모든 곳에 어울린다는 점이 있다. 피자는 로맨틱한 촛불로 장식한 저녁 식탁에도 이상적일 뿐 아니라, 흥겨운 이브닝 파티 메뉴로는 물론, 시간이 없을 때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로도 손색이 없다. 피자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 어울리는 것 외에도, 모든 입맛을 충족시킨다. 이른바 ‘표준 피자’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다. 주문을 할 때 자신이 어떤 음식을 받게 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나라마다 고유의 피자 가게 브랜드가 있어, 표준 피자에서 변형된,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제시하고 있다. 베이컨 피자라든지, 아이스크림 봉지를 연상시키는 일본의 봉지 피자 등이 바로 그것이다.
피자가 진정으로 세계화의 흐름에 합류하게 된 것은 변화무쌍한 변신능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인들의 마케팅 전략 덕을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랜차이징과 마케팅 분야에 있어서 미국인들의 혁신적 능력과 진정한 요리의 자유에 대한 외침은 피자의 세계적인 성공에 커다란 동력이 되었다”라고 헬스토스키 교수는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세계적인 성공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즉 1988년부터 중국에서, 1990년부터는 러시아에서도 피자 체인점 설립이 공식 허용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최근 영국의 피자 에스프레스(Pizza Espress)나 독일의 바피아노(Vapiano)와 같은 프랜차이즈 체인점들이 ‘패스트푸드 쪼가리’라는 오명으로부터 피자를 다시 구해내려는 시도가 일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세계적인 성공과 병행해, 피자 생산비도 감소했다. 헬스토스키 교수는 “다른 많은 식품들과 마찬가지로 피자도 식품기술과 농업, 운송기술의 변화 그리고 프랜차이즈 콘셉트로 인해 가격이 저렴해졌다”고 말한다. 작가 에릭 슐로서(Eric Schlosser)는 여기에 추가로 저렴한 인건비도 지적한다. “35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패스트푸드 근로자들이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 집단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유일한 미국인들은 농장 근로자들이다”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읽게 되겠지만, 이들 근로자들이 바로 저렴한 피자가 탄생하는 데 한몫 거두고 있다(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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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파울 트룸머 Paul Trummer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간지 <쿠리어 KURIER>의 경제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경영학과 언론학을 전공했으며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 Sueddeutsche.de>과 <독일 파이낸셜 타임스 Financial Times Deutschland>에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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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세나
독일어와 통번역을 공부한 뒤 독일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에서 독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동시통역사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성공의 조건』『못 말리는 개, 바롤로 이야기』『파워쇼크』『보도 섀퍼의 부자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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