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 1초마다 1,000개가 넘는 생수병이 버려진다
지금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점검해보자. 안전한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 아마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매일같이 1초마다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생수병 마개를 열며, 그 병들은 이내 쓰레기가 된다. 하루에 8,500만 병, 연간 300억 병의 생수가 소비자에게 100억 달러 가까운 지출을 요구한다. 미국 소비자가 생수 1병을 마시는 동안 전 세계적으로는 4병이 소비되는 게 현실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생수를 마시게 되었으며, 생수를 공급하는 것은 누구일까? 대체 이 생수의 정체는 뭘까? 수돗물처럼 안전할까, 아니면 누군가 말했듯이 수돗물보다 월등히 안전한 물일까? 플라스틱 병은 또 어떤가? 물을 마시고 던져버리는 병은 어디로 갈까? 온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생수를 사 마시는데 환경이나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음료 회사들은 생수를 그저 수돗물에 비해 관리가 좀더 잘되고 안전한 식품 정도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반대로 환경 단체에서는 생수의 안전성이 수돗물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필수적인 공공재를 사유화하려는 기업들의 음모라고 몰아붙인다. 과연 누가 맞을까?
필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생수 산업과 우리가 마시는 물의 미래를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책을 쓰면서 생수를 생산·판매하는 기업과 이에 반대하는 열정적인 환경 운동가들을 만났고, 작은 병에 물이 담겨 상품이 되고, 종국에는 플라스틱 폐기물 매립장으로 보내져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묻히는 상황도 탐색해보았다. 필자는 ‘생수’가 장기적 관점에서 안전한 물을 공급해오던 공공 급수 체계의 쇠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안전한 물의 불공평한 접근권, 광고와 마케팅에 쉽게 동화되는 사람들의 성향, 태어나면서부터 구매와 소비, 폐기에 길들여지는 현재의 사회현상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현상의 집합이라고 본다. 이같이 광범위한 현상을 포괄하는 관점이어야 생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필자는 지금 지구촌이 물의 제3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의 관리와 사용이 지속 가능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의 제1시대는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 인간이 물의 사용과 폐기물 처리를 변덕스런 자연의 수리 순환 과정에 의존하면서 시작되었다. 제2시대는 자연의 물 사정에 부족함을 느낀 인간이 의도적으로 수리 순환을 조작하면서 원시적인 제방, 수로, 관개수로, 하수처리 체계를 만들고, 법과 사회구조에 물 관리를 포함하면서 열린다. 물의 제2시대는 근대 수리 체계의 특징인 화학적·공학적·생물학적·제도적 기능의 복잡성을 충분히 활용한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이 시대는 대다수에게 적지 않은 혜택을 주었지만 늘어나는 물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도 없다. 수십억 인류는 여전히 안전한 물이나 위생과 거리가 먼 상태인데, 한편에서는 담수의 남용과 유용, 오염으로 수리 체계의 황폐가 계속되고 있다. 수자원을 담보로 한 다툼도 증가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변화까지 찾아와 지구의 기초적인 수리 체계는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생수의 사용 증가는 제한된 수자원을 어설프게 관리하던 구식 대책의 현대판 사례로,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하는 요구와 마주했다. 이제 우리는 물의 제3시대를 향한 전환기에 있다. 제3시대를 앞두고 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기업이 생산·판매하는 생수 때문에 안전한 수돗물을 위해 그동안 노력해온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제3시대는 무엇보다도 물에 대한 공평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둘째 수자원을 포괄적으로 보호하고, 효율적인 물 사용을 위한 동기가 부여되면서, 새로운 공급 원천도 발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수질 개선과 배급의 안정이 실현되고, 물 문제의 의사 결정 과정에 공중의 건전한 참여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물 관리와 사용이라는 최상의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해야 한다. 이 같은 제3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수돗물의 혜택을 누리고, 생수는 자연스레 불필요해질 것이다. 정부 기관이 나서면 거짓 선전이나 판촉, 노골적인 강매에서 대중을 성공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수도 체계에 접근하기 쉬워지고, 생수에 접근하기는 어려워져야 한다. 그래도 생수를 팔고 싶다면 생수를 만드는 과정에 필수적인 귀중한 지하수의 굴착 비용을 포함해서 진정한 경제적·환경적 생산에 드는 비용과 플라스틱 병의 폐기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은 채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생수를 사 마신다.
생수 이야기는 엄청난 규모의 숫자를 동반한다. 수십억 갤런의 판매량, 수십억 개나 되는 플라스틱 병의 생산과 사용, 폐기, 수십조 달러에 이르는 판매액, 수십억 톤의 이산화탄소와 오염 물질의 발생 등이 그것이다. 한편으로는 10억 가까운 인류가 여전히 마실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며, 수십억 명이 수인성 전염병을 앓고, 그중 어린이가 대다수인 수백만 인구가 죽어가는 현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생수를 사 마시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수돗물에 대한 불신, 편리성, 물맛, 생활 방식 같은 이유를 댄다.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수질오염 소식 때문에 사람들은 볼 수도, 맡을 수도 없는 오염 물질에 수돗물이 오염되었을 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있는 생수를 손에 쥐기만 하면 깨끗한 물을 찾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도 있다. 수돗물의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상표의 생수가 우리를 보다 건강하고 날씬하고 멋지게 만들어줄 것처럼 쉬지 않고 들이대는 광고에 둘러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바로 옆에 수돗물을 두고도 플라스틱 병에 개별 포장되어 결국 쓰레기로 버려지는 생수에 1,000배도 넘는 돈을 내면서까지 끌리는 것은 경제나 환경, 사회적 무지가 아닌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 책은 과연 이런 합리성이 정상인지 여러 관점에서 살필 것이다. 우리 중 상당수가 수돗물에 등을 돌린 상황이지만, 안전한 수돗물을 마실 환경이 아니고 그렇다고 생수를 살 형편도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곁에 있는 물을 마시고 병에 걸려 죽어가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 교외에 사는 소비자가 집 안에서 콸콸 나오는 수돗물을 외면하고 생수를 잔뜩 사서 카트를 끌고 돌아오는 그즈음에,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에 더러운 물을 큰 통에 담아 몇 시간이나 끌고 집에 가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여성과 소녀의 슬픈 현실을 그저 풍자의 이분법으로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도 생수 논란에 일관된 감정이나 논지를 유지하지 못함을 미리 고백한다. 나 자신조차 가끔은 생수를 사 마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수 산업의 문제점이 지극히 심각하기에 이 책에서는 확실한 주의와 개선이 필요함을 주장할 것이다. 생수가 인류의 물 문제에 원인이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설사 생수가 가게 선반에서 내일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지구의 물 문제는 여전히 미결로 남을 것이다. 생수 회사들은 사람들이 생수를 마시면서 등장한 문제에 대한 우려는 기업 탓이 아니며, 자신들은 그저 물 관리 체계의 결함이 불러온 수요에 부응할 뿐이라고 억울해한다. 물론 이런 주장을 웃어넘길 수만도 없다. 국민의 기본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부 때문에 아직도 지구상에는 수돗물이 아예 공급되지 않거나 안전한 물과 거리가 먼 지역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생수 회사들이 모두 결백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 상당수가 과거 길거리에서 만병통치약을 팔던 음흉한 약장수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들은 대놓고 수돗물을 깎아내리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공포감을 조장했다. 한편으로는 효율적이고 포괄적인 플라스틱 재활용 계획을 방해하는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들은 생수를 확산시키고 수돗물을 몰아내기 위해 성sex, 공포fear, 유행style과 상징image 등 전통적인 마케팅 도구를 이용하는 데 힘을 쏟는다.
과연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결론적으로 생수에 관한 논란과 반대 운동은 단순히 환경이나 경제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이 논의는 심리학적 기반이나 철학과 이념의 적용뿐만 아니라 공권과 사유재, 인권, 자유 시장, 정부의 역할, 미래 전망의 충돌 등이 포함된 사회적 지형도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 밖에도 반세계화 운동, 생태적 삶에 대한 관심의 증가, 지금까지 생활양식과 에너지 사용이 불러온 기후변화에 대한 각성 등의 흐름도 대항하고 나섰다. 이 모든 것들이 물의 제3시대를 향한 전환을 촉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어쩌면 불과 수십 년 뒤에는 왜 우리가 그렇게 생수에 매달렸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점증하는 물의 위기를 묵과한다면 수도꼭지에서 싸고 안전하며 믿을 수 있는 물이 흘러나오던 황금기는 추억 속에서나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피터 H. 글렉
(서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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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피터 H. 글렉 Peter H. Gleick
생수가 활보하는 세상에서 의연하게 수돗물을 들이키는, 수자원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퍼시픽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2003년 물 연구 업적으로 맥아더 펠로십을 받았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2년마다 『세계의 물 The World's Water』을 펴냈으며, 2010년 『생수, 그 치명적 유혹 Bottled and Sold』을 통해 ‘생수 열풍’을 조명했다. 이 책은 ‘공공재’였던 물이 어떻게 자본주의 시대 최고의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는지 돌아보며, 값싸고 건강한 물을 마실 우리 모두의 권리를 일깨우고 있다.
www.twitter.com/PeterGle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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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환경운동연합
전국 52개 지역조직과 6개의 전문기관, 8만 5천여 회원이 함께하는 아시아 최대의 시민단체. 특히 2002년부터는 세계 3대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 일원으로 국제적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감시와 견제의 역할에서 한 걸음 나아가 대안을 찾고자 하며, 보다 대중적인 시민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수자원 공공성 확립, 수질 개선 등 물에 대한 기본권과 하천 생태계를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지난 2009년부터는 4대강 사업 저지 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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