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국가는 무엇인가 1―합법적 폭력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백성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입법권과 사법권, 전쟁선포권도 모두 주권자의 것이다. 주권은 분할할 수 없고 견제를 받아서도 안 된다. 주권자의 명예는 백성 전체의 명예보다 위대하다. 주권자 앞에서 백성은 태양 앞의 별빛과 같다.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남일당 빌딩에 나타난 국가
2009년 1월 19일 새벽 다섯 시, 어둠에 잠겨 있던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의 빈 건물에 철거민 32명이 들어갔다. 남일당 빌딩이다. 이 건물은 서울역과 한강 사이 총 50조 원 규모의 초대형 건설사업이 벌어진 용산 4구역에 있었다. 내로라하는 건설업체들이 모두 용산에 뛰어들었다. 용산 4구역 사업은 삼성물산이 주도하는 가운데 포스코건설과 대림건설 등 대기업들이 시공에 참여했다.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모인 4구역 상가 세입자와 그들을 지원하는 철거민단체 간부들은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인화물질을 반입해 화염병을 만들었다. 정당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 그곳에서 농성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의 용산 4구역에는 원래 890명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434명이 상가 세입자였다.
농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겨우 25시간이 지난 1월 20일 새벽 6시 반, 건설회사의 용역을 받은 철거전문회사 직원들의 협조 아래 테러진압을 임무로 하는 경찰특공대가 건물에 진입했다. 옥상 망루에도 경찰 헬기가 특공대를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불이 났다. 농성자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진압작전은 한 시간 반 만에 종료되었다. 살아남은 농성자는 모두 체포되었다. 구속된 철거민들은 모두 유죄판결과 징역형을 받았다. 정부의 행동을 비판하고 대통령의 사과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면서 남일당 빌딩 근처에서 촛불집회와 시위를 했던 인권단체 활동가들도 유죄선고를 받았다. 남일당 건물은 2년 뒤 철거되어 영원히 사라졌다. 불이 난 경위는 끝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용산참사’라고 불렀다. 이 비극을 불러들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든 간에, ‘용산참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느꼈다. 돈을 향한 욕망, 빼앗긴 권리를 찾으려는 몸부림, 로보캅을 연상시키는 경찰특공대의 복장, 타오르는 불길, 무너지는 망루, 경찰 헬리콥터가 내뿜는 소음,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 사람들. 이 참극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것, 그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도대체 국가는 무엇인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세입자들은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국가가 그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남일당 빌딩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 행위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즉각적인 무력진압이었다. 억울함을 하소연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국가는 그들을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시게릴라’로 취급했다. 그날 그곳에서 죽어간 시민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나?
용산참사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반응했다. 그 모든 반응은 크게 보아 네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국가가 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농성자들의 폭력은 불특정 다수, 무고한 시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도심 테러행위로 볼 수 있다. 경찰특공대의 임무는 시설불법점거, 난동 등 주요 범죄를 예방, 진압하는 것이다.” 범죄와 무질서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임무이니, 사람이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일당 빌딩에서 국가는 마땅히 할 일을 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둘째는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도시재개발 사업은 지주와 건물주, 시행사와 시공사 등이 도시공간을 재창조하여 토지의 수익성을 높임으로써 개발이익을 취하기 위해 벌이는 사업이다. “사업 속도를 높일수록 개발이익이 커진다. 어떤 주체도 수십 년간 거주하면서 영업을 해온 세입자의 생존권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 남일당 빌딩 농성은 개발이익의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진, 건설회사와 재개발조합을 한편으로 하고 세입자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집단적 이익분쟁이었다. 민간의 이익분쟁에 곧바로 뛰어들어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국가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런 주장이다.
셋째는 국가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견해였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으로 사랑하는 가족마저 저세상으로 보낸 철거민을 향해 거침없이 징역 8년을 구형한 검찰의 행태는, 국가란 곧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 자들의 기득권 강화와 유지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임을 거듭 일깨운다.” 경찰특공대의 모습으로 남일당 빌딩에 출현한 국가, 살아남은 농성자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하고 선고한 검사와 판사의 행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국가, 이런 국가는 기득권자만을 떠받드는 ‘계급지배의 도구’이다. 용산참사는 국가가 원래 그런 존재이며,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넷째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세권자의 재산권과 주거권을 위태롭게 하면서 재개발조합과 건설업체의 이익을 편향되게 보호하는 법률 개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전세권자에게만 법을 준수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법의 지배’가 될 수 없다.” 국가의 법은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는 모든 시민을 편벽되지 않게 대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용산참사는 국가가 불의한 법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편벽되게 집행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요컨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능력 있게 하지 않아서 용산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올바른’ 견해일까?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어떤 견해도 전적으로 터무니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저마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용산참사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는 평화로운 국가가 아니며 훌륭한 국가도 아니다. 이것만은 다툴 여지가 없다. 자기가 마땅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건물을 점거하고 인화물질을 반입한 것이 명백한 불법행위였다고 할지라도, 강제 권력을 무분별하게 행사하여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국가의 행위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남일당 빌딩에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훌륭한 국가가 할 일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이 훌륭한 국가이기를, 앞으로 더 훌륭한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가 훌륭한 국가를 상상할 수 있다면, 반대로 나쁜 국가 또는 훌륭하지 않은 국가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국가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먼저 국가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국가가 국가인 이상 모든 국가에 공통적인 그 무엇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이것이 국가와 관련하여 검토해 보려는 첫 번째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제1장에서 제3장까지, 우리는 서로 다른 대답 세 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같은 질문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 국가는 무엇을 하는,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인가? 누구나 한 번은 떠올려 보았음직한, 무척 소박하고 간단한 질문이다. 국가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지 않아도, 용산참사와 같은 사건을 보면 저절로 이 질문이 떠오른다. 이 간단한 질문을 두고 수천 년 동안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상충하는 대답을 여럿 내놓았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견해 차이에 그치지 않았다. 문명의 역사에서 국가가 생겨난 이후 벌어졌던 수많은 정변과 폭동, 대규모 살육, 혁명, 전쟁들이 이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분쟁도 그렇다. 국가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견해 차이는 때로 목숨을 건 집단 혈투를 부른다. 용산참사도 그런 일에 속한다.
국가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철학과 이론은 몇 가지 큰 흐름으로 갈래를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체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국가주의 국가론의 논리체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운 인물은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였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존 로크에서 아담 스미스를 거쳐 하이에크까지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보수적 국가론이다. 셋째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창안한 이 이론은 150여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보주의자들을 끌어당겼다. 네 번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쳤던 가장 오래된 이론이다.
리바이어던, 국가의 탄생
1651년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정치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책 가운데 하나인 『리바이어던』Leviathan을 출간했다. 홉스는 여기에서 ‘사회계약’을 국가의 기원으로 보는 이론을 세웠다. 홉스의 국가론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이다. 국가는 숭배하고 찬양해야 마땅한 그 무엇이다. 국가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다. 그로부터 무려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국가의 본질에 대한 홉스의 통찰력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유지하고 있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현대적 국가이론의 출발점이다.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홉스의 대답은 명확하다.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다. 그는 국가의 합법적 폭력에 무제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일단 홉스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보자. 그는 자연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고 보았다.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은 거의 차이가 없거나 차이가 있어도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평등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만인은 누구나 비슷한 욕망과 평등한 희망을 품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자기의 목적을 추구하면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만인이 서로 적이 되어 상대방을 파괴하고 굴복시키려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아니다. 경쟁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보존의 욕구’는 자연법이 만인에게 동등하게 부여한 정당한 권리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각자가 그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 타인에게 폭력과 책략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 또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와 같이 경쟁하는 자연상태’는 막을 길이 없다. 자연상태에서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 정의와 불의도 나눌 수 없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할 수도 없다. 따라서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비참하고 고독하며 불안하고 가혹하다.
‘자연상태’란 곧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따라서 질서도 선악의 판단기준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국가가 출현하기 전 인간의 삶이 실제로 그러했을까? 입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랬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국가 출현 이전 인간의 삶은 홉스가 묘사한 ‘자연상태’와 비슷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개인을 단독자가 아니라 작은 혈연공동체로 본다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혈연으로 맺어진 씨족집단이나 그와 비슷한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다른 작은 공동체와 적대적 경쟁을 벌이는 삶이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되었을지 모른다. 이것은 사자와 늑대, 하이에나, 침팬지처럼 혈연관계를 매개로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포유동물들의 일반적 생활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이다. 그런데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과 달리 높은 사유능력과 소통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비참하고 고독하고 불안한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며, 결국 그 욕구를 실현하는 길을 열어 나갔다.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국가를 창조하는 것뿐이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와 같이 경쟁하는 자연상태의 불안하고 고독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공동의 권력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 각자에게 부여한 권리를 모두가 똑같이 포기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허용하는 만큼의 자유를 자신도 누리는 데 만족하는 상생(相生)의 길이다. 사람들은 타고난 자연법의 권리를 공동의 권력에 양도하기로 사회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을 홉스는 신약(信約, covenant)이라 했다. 신약은 거래 당사자들이 각자의 권리를 동시에 서로 주고받는 보통의 계약과 다르다. 한 당사자인 인민은 즉각 계약을 실행하지만, 다른 당사자 즉 통치권자는 일정한 기간 뒤에 상응하는 권리를 양도한다. 인민은 이를 믿고 기다린다. 국가는 평화와 안전을 지속적으로 인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신약을 이행한다. 물론 그런 신약이 실제로 맺어진 적은 없었다. 그런 계약서에 누구도 서명하지 않았다. 사회계약은 순수하게 가상적인 관념이다.
그런데 홉스는 이 가상적 관념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것으로 현실을 설명하면서 국가에 무제한의 권능을 부여했다. 홉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자기의 자연법적 권리를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합의체에 양도함으로써 하나의 인격으로 통일되는 것이 곧 국가(commonwealth)라고 하는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의 탄생이다. 영원불멸의 하느님(Immortal God)의 가호 아래 인간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세속의 신(Mortal God), 평화와 공동방위를 위해 모든 힘과 수단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인격을 가지는 자는 주권자가 된다. 다른 모든 사람은 그의 신민(臣民), 즉 군주의 백성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주권자가 되는가? 정복을 통해 복종을 강요하거나 합의에 의해 자발적 복종을 끌어내는 사람, 그가 주권자가 된다. 현실에서 주권자는 곧 왕, 그것도 그냥 왕이 아니라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전제군주를 말한다.
전제군주제―홉스의 이상국가
국가는 ‘세속의 신’이다. 영원불멸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죽어 없어질 수 있다. 국가가 죽으면 세상은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간다. 홉스는 이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강력하고 안정된 국가를 원했다. 그래서 ‘세속의 신’을 ‘불사(不死)의 신’으로 올려 세우기 위해 주권자인 왕에게 무소불위의 전제적 권력을 부여했다. 홉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일단 신민이 된 사람은 주권자에게 저항할 수 없다. 국가가 모든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 통일한 것인 만큼, 이론적으로 주권자의 행위는 곧 신민들 자신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맺은 신약은 파기할 수 없다. 신약에 반대하는 사람도 다수의 동의를 받은 주권의 설립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백성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입법권과 사법권, 전쟁선포권도 모두 주권자의 것이다. 주권은 분할할 수도 없고 견제를 받아서도 안 된다. 주권자의 명예는 백성 전체의 명예보다 위대하다. 주권자 앞에서 백성은 태양 앞의 별빛과 같다.
홉스에게는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제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형태였다. 그의 논리는 명확하다. 국가를 탄생시킨 신약의 목적은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를 만든 유일한 목적이다. 다른 목적은 없다. 따라서 주권자 또는 통치권자가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한, 그는 신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셈이다. 누구도 여기에 대항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목적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각자 추구하는 다른 가치나 소망, 욕구, 삶의 목표는 모두 부차적이거나 국가의 목적 수행에 방해가 된다. 신민은 정부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 국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슨 일을 하든, 통치권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신민이 아니라 통치권자가 판단한다. 이런 것이 통치권의 본질이다. 국가와 정부와 군주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군주가 곧 정부이며, 정부가 곧 국가이다.
오늘날 국가와 통치권에 대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괴한 이론을 세운 것으로 보아 홉스는 어딘가 괴팍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의심할 필요는 없다. 어떤 철학자도 자기 시대를 완전히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될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다 그러하듯, 홉스의 철학도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사회적 환경에 비추어 이해하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홉스의 견해일 뿐, 정치체제와 주권에 대한 각론이 아니다.
만약 어떤 학자의 이론과 인격의 특성이 항상 일치한다면 홉스는 틀림없이 냉혹하고 무자비한 인물이었겠지만, 실제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홉스가 갈망했던 것은 ‘평화로운, 사회적인, 단란한 삶’이었다. 그는 그처럼 평범하고 세속적인 가치의 토대 위에 정치사상과 도덕법칙을 세웠다. 평화와 안전 보장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국가이론을 만든 것은, 그런 국가만이 ‘평화로운, 사회적인, 단란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홉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다. 교구 목사였던 아버지가 어느 날 돈 많은 형제에게 세 자녀를 떠맡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홉스는 숙부의 도움을 받아 옥스퍼드 대학 모들린 칼리지를 마친 다음, 영민하지만 재산이 없는 당시의 젊은 수재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귀족집안 자제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제자와 함께 유럽 각국을 여행하면서 내로라하는 철학자·과학자와 교류할 수 있었다. 17세기 중엽은 정신적·정치적 혼돈의 시대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와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가 지구의 공전과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하면서 고전철학의 세계관이 무너졌다. 왕당파와 공화파의 투쟁으로 영국은 물론 유럽 곳곳에서 심각한 사회적·정치적 혼란이 벌어졌다. 홉스는 강력하고 안정된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민중의 삶이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 극심하게 고통받는 현실을 보았다.
홉스는 원래 물질세계와 인간, 사회조직의 보편적 운동법칙을 탐구하는 방대한 철학적 저술 작업을 계획했지만, 내전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소요에 휩싸인 영국을 보면서 국가와 시민권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시작했다. 그 작업의 성과 가운데 하나가 『리바이어던』이었다. 홉스는 당시 정치가 안정되어 있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철학과 정치사상, 신학을 연구하다가 만년에야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괴팍한 지식인이 아니라 고상한 인품과 폭넓은 학식을 널리 인정받은 철학자로서, 당대 유럽의 상류사회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높은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리바이어던』에서 펼친 국가론을 권력자들은 좋아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정치적 고난을 안겨주었다. 홉스는 책의 내용이 교황의 권위에 대한 공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이단자를 색출하는 종교재판에 회부될 뻔했다. 책 말미에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는 군주를 폐위하고 새로운 군주에게 충성할 신민의 권리를 언급한 것 때문에 영국 왕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교회와 전제군주가 세상을 지배했던 그 시대의 환경에 비추어보면,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특별히 ‘반동적’이거나 ‘보수적’인 이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자연인 홉스 역시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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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유시민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란 덕분에 거리와 감옥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감옥에서 항소이유서를 쓰면서 글쓰기 재능을 처음 발견했다. 민주화가 시작된 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아내와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와 책과 칼럼을 쓰고 방송 일을 하다가 2002년부터 정치에 참여했다. 좋은 대통령, 좋은 나라를 만들겠노라며 뛰어 다녔는데, 성공한 일도 있고 실패한 것도 많았다. 2008년 총선 후 정치활동을 접고 글쓰기와 강의활동에 몰두하던 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대통령 자서전을 대신 정리하면서 슬픔을 견뎠다. 2009년 국민참여당 창당으로 정치무대에 돌아와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국가를 꿈꾸며 일하고 있다. 2009년 ‘용산참사’를 계기로 국가의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 인류의 지성들이 남긴 국가에 대한 고전을 탐독하면서 훌륭한 국가는 무엇보다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이 확고해졌다. 어떤 방법으로 그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 독자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저서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대한민국 개조론』『후불제 민주주의』『청춘의 독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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