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화폐의 수수께끼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은 1844년과 1945년의 필 은행법(Sir Robert Peel’s Bank Act)을 놓고 벌어진 의회의 논쟁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랑에 빠져 바보가 된 사람보다 화폐의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가 바보가 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마르크스(Marx, 1970: p.64)
화폐를 정말로 이해한 사람을 나는 딱 세 명 알고 있다. 다른 대학의 교수 한 사람, 내 학생 중 한 사람, 영란 은행의 하급 직원 한 사람.
―케인스의 말로 알려짐(Lietaer, 2001: p.33에서 재인용)
화폐는 없어서는 아니 될 우리의 사회적 기술 가운데 하나이다. 화폐는 기원전 20세기 무렵의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서 쓰기, 숫자와 함께 세계 최초의 대규모 사회를 일구어 낸 기반이었으며, 지구화된 오늘날도 세상은 그야말로 화폐 덕분에 ‘돌아가고 있다.’ 화폐가 이렇게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떠맡게 되는 까닭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익숙한 기능들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 수단이며, 가치의 저장 수단이며, 일방적 지불(지급 결제) 수단이며, 가치 척도(계산 단위) 라는 것이다. 이런 기능은 저마다 현대 세계가 일상적으로 작동해 가는 데 기초를 이루고 있다.
우선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분명히 밝혔듯이, 교환 매개 수단인 화폐는 ‘여러 나라의 부’(wealth of nations)를 창출하는 노동 분업과 생산물 교환을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여러 거래자가 서로 간접적으로 교환하는 일이야말로 “농부의 노동을 이발사의 노동과 서로 통할 수 있도록 통역해 주는 행위이다. …[화폐는] 원격 작동이다”(McLuhan, 1964: p.10). 둘째, 화폐는 순수한 구매력으로서 어떤 특정 교환 행위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추상적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가장 괄목할 만한 기능일 것이다. 현대 세계의 특징이라 할 탄력성과 자유는 화폐의 이러한 속성 덕분에 구체성을 띠게 된다. 지멜(Georg Simmel)이 설명한 바 있듯이, 봉건 영주는 농노들에게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꿀과 닭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농노들의 노동을 직접 결정한다. “하지만 영주가 그냥 돈 얼마로 내놓으라고 말하게 되면 그 순간 농부는 벌을 기를지 소나 그 밖의 무엇을 기를지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게 되며, 그런 의미에서 자유로워진다”(Simmel, 1978[1907]: pp.285-6). 화폐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이런 저런 결정들을 미룰 수도 있고 수정할 수도 있고 다시 효력을 발효시킬 수도 또 취소할 수도 있으니, 결국 화폐는 ‘욕망을 냉동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Buchan, 1997). 그런데 “이 모든 결과들은 화폐적 계산이 원리상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는데, 이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Weber, 1978: pp.80-1). 이 가치 척도(계산화폐)라는 세 번째 속성이야말로 비용, 편익, 이윤, 손실, 부채, 가격을 현실에서 또 잠재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화폐는 사회적 삶이 점점 합리화되어 가는 과정의 기초를 이룬다. 앞으로 보겠으나, 이렇게 화폐를 통한 합리화 과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에서 이미 시작된 바 있다.
하지만 화폐를 단순히 유용한 도구로만 보아서는 아니 된다. 이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화폐에는 그저 여러 기능들만을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과 사회·경제 체제에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마이클 만(Michael Mann, 1986)이 쓴 용어로 말하자면, 화폐는 사회의 ‘기간 구조적’(infrastructural) 권력일 뿐 아니라 ‘전제적’(despotic) 권력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화폐는 인간 사회가 여러 가지를 성취할 수 있도록 능력을 확장해 주기도 하지만, 그 힘을 특정한 이해 집단이 자기들만의 것으로 전유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느 만큼의 화폐를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고 있는가의 문제, 즉 부의 문제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보겠으나, 여러 다른 모습을 지닌화폐를 생산하는 현실의 과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권력의 원천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근대 자본주의의 화폐는 은행이 발행하는 신용화폐이다. 그런데 이 화폐는 다양한 이들의 신용 등급을 기초로 하여 생산되며, 그 과정에서 신용 등급에 따라 차별적인 이자율을 매김으로써 현존하는 불평등 수준을 강화하고 더 증가시키게 된다. 아주 일반적인 용어를 써서 말하자면 베버(Max Weber)가 주장한 바 있듯이 화폐는 경제적 존속을 위한 투쟁에 쓰이는 무기인 것이다. 게다가 특정 이해 집단에게 유리한 것이 결국 공공의 이익을 잠식할 수도 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화폐의 본성에 내포되어 있는 기능적 성격 및 권력적 성격이라는 두 요소는 서로 모순을 일으킬 수 있다. 극단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정부가 부채를 발행하여 지출을 확대하는 행태를 비판할 때 늘 나오는 이야기도 바로 이 모순에 관한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그런 짓이 계속 허용될 경우 정부는 자신이 갚아야 할 부채의 실질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려 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이 책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아주 잘 알려진 것들이다. 그런데 그 표면 아래로 조금만 깊게 들어가 보면 아주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과 역설들이 튀어나온다. 화폐만큼 일상적이면서 낯익은 물건 때문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그렇게 많은 논쟁과 그렇게 많은 오류들이 양산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마 가장 황당한 역설일지도 모르겠다. 이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세기 경제학 역사에 있어서 개념 형성에 관한 한 실로 최고의 천재였다고 할 만한 경제학자조차도, 자신의 ‘화폐 책’을 완성하기 위해 40년이나 몸부림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가까운 하버드대학 동료 교수에 따르면, 슘페터(Joseph Schumpeter)조차도 “화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만족할 만큼 명쾌하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Earley, 1994: p.342에서 재인용).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화폐라는 수수께끼의 한복판에서 한창 헤매고 있을 당시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얼마나 심한 좌절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친근한 화폐라는 놈 뒤에 어떤 수수께끼들이 숨어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 먼저 교과서에 나오는 화폐 기능의 목록을 잘 들여다보자. 이런 기능들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화폐의 존재와 성격을 설명하고 있는 척하는 경제학의 거짓말은 잠시 잊어도 좋다. 우선, 목록에 나온 대로 이렇게 많은 속성들이 어떻게 단 하나의 존재에 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것이며, 여기에서 다시 두 가지 의문이 생겨날 것이다. 어떤 것이 ‘화폐성’(moneyness)을 분명하게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능을 모두 다 수행할 수 있어야만 하나? 그게 아니라면, 과연 그 가운데 어떤 기능이 화폐를 화폐로서 규정해 주는 것인가? 요컨대, 화폐를 다른 것과 구별짓는 정의는 무엇인가? 지난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화폐는 그 네 가지 기능을 주화(나중에는 주화를 직접 대표하는 지폐)의 모습으로 합쳐 놓은 것이다라고 정의되었다. 즉 19세기 말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자들이 쓴 용어로 ‘본래 화폐’(money proper)라는 것이 이를 일컫는다. 주화(또는 지폐)란 어떤 상품의 가치를 체현 또는 표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보겠거니와, 이렇게 화폐를 무언가 만질 수 있는 물건인 양 묘사하는 통념은 오래도록 남아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으며, 그 결과 가지가지의 혼동을 낳고 말았다. 전자화폐야말로 ‘화폐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라고 하는 주장도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주화를 사용하던 시대 전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면 이 기나긴 기간의 대부분 동안 주화에는 숫자로 가치가 찍혀있거나 새겨져 있었던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 주화들은 어떤 계산 단위도 담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결국 이는 이 주화들의 명목 ‘화폐’ 가치가 거기에 담긴 귀금속 자체의 가치와 심하게 괴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며, 또 실제로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일정한 계산화폐를 선포하고 여기에 여러 주화들의 명목 가치를 맞추어서 새롭게 정하는 것이 대개 군주가 맡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에서는 화폐 가치가 변동하게 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는 주로 군주가 ‘상상 속의’(imaginary) 가치 표준과 명목적인 계산 단위의 관계를 바꾸어 버린 결과였다. 즉 주화를 주조하면서 그 주화가 계산 단위 화폐에 해당하는 숫자를 올리거나 내리도록 명령한 결과였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주화의 실제 귀금속 함유량을 바꾸었던 것이 아니다. 게다가 계산화폐 단위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를테면 파운드, 실링, 펜스에서 ‘파운드’)은 한 번도 주화로 주조된 적이 없었다(Einaudi, 1953[1936]). 마찬가지로 기니(guinea)는 기니 주화가 유통을 멈춘 뒤에도 몇 세기 동안 계속해서 계산화폐로서 남아서 계약을 체결할 때 여러 재화와 채무의 가격을 합의하여 매기는 용도로 쓰인 바 있다.
‘현금’(cash, 우리가 화폐로서 받아들이는 운반 가능한 사물)은 지금도 모든 일상 거래의 8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지만, 화폐 거래 총액의 비중으로는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The Guardian, 17 April, 2000). 달리 말해서, 실제의 교환 매개 수단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화폐경제에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화폐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이러한 일상적 소규모 거래의 경험에서 상당 부분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로가 지폐나 주화의 형태로 도입된 것은 2002년부터이지만, 이렇게 교환의 매개체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이미 1년 넘도록 지불수단으로서 또 가격을 매기고 채무 계약을 산정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했다. 그렇다면 화폐의 본성이 교환의 매개 수단에 있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가르침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앞으로 보겠으나 이런 예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화폐의 여러 속성들 기능들의 목록에서 나오는 논리적 개념적 문제들은 이 밖에도 허다하다. 요컨대 문제는, 도대체 ‘화폐성’이 담겨 있는 것은 그 허다한 속성과 기능들 중 무엇이냐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 질문에는 두 개의 다른 대답이 있다. 슘페터가 말한 대로, “이름을 붙일 만한 화폐 이론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 상품화폐론(commodity theory of money)과 청구권 이론(claim theory of money)이다. 이 두 이론은 본성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가 없다”(Schumpeter; Ellis, 1934: p.3에서 재인용). 대부분의 정통 경제 이론은 본질적으로 교환의 매개 수단이라는 화폐 개념에 초점을 둔다. 이 개념에는 세 가지의 다른 뜻이 담겨 있건만 조심스럽게 구별하지 않고 쓰이는 경우가 많다. 화폐는 그 자체가 교환 가능한 상품(예를 들어 금화)일 수도 있고, 그러한 상품의 직접적인 상징물(예를 들어 금으로 태환되는 지폐)일 수도 있고, 아니면 황소, 기름통, 여러 상품의 ‘바스켓’ 가치와 같은 상품 본위를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뉘메레르’(numéraire)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화폐는 다른 모든 상품들과 교환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보편적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화폐 개념에서 ‘화폐성’이란 바로 ‘교환 가능성’(exchangeability), 즉 가장 ‘유동적인’ 상품에서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환논법이 아닐 수 없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흔히 목록에 나오는 화폐의 여러 기능과 속성들(계산화폐, 지불수단, 가치 저장 수단)이 교환의 매개 수단이라는 기능으로부터 도출되거나 그 아래로 종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적어도 강력하게 암시한다. 이와는 날카롭게 대조되는 것이 이단적 경제학의 ‘명목주의’(nominalist)이다. 이들은 화폐란 “오로지 계산화폐와 관련 속에서만 비로소 화폐라는 말에 담겨 있는 기능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Keynes, 1930: p.3). (앞으로 보겠으나, 이러한 명목주의는 화폐가 단순히 교역 가능한 물체 또는 그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청구권’이며 ‘신용/채권’이라는 생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그 어떤 추상적 계산화폐라 할 만한 것이 여러 형태의 화폐와 그 기능들보다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화폐가 가져다주는 혜택이라고 이야기하는 여러 중요한 것들, 특히 교환의 매개체로서 지닌 혜택까지도 이 계산화폐의 기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된다. 계산화폐 덕분에 가격과 채무 계약의 가치 산정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광범위한 다자간 교환이 벌어지게 되어 있으니 결국 계산화폐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실제의 ‘화폐 물질’(인류학자들의 용어이다)이 있든 없든, 이발사의 노동을 농부의 노동과 서로 통하게 해주고 그리하여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들의 행위를 연결해 주는 것은 바로 계산화폐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화폐란 모종의 추상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다시 문제가 나오게 된다. 화폐가 그렇게 추상적으로 표상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앞으로 보겠으나, 이 두 가지 화폐론 사이에 논쟁의 핵심은 추상적 척도(계산화폐)가 미리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환 매개체에 획일적으로 고정된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주류 경제학의 설명에 따르자면, 가치 측량의 척도(계산화폐)는 애덤 스미스가 태초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교환, 교역, 물물교환’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상품들 중 가장 교환 가능성이 높은 상품이 화폐가 되며, 그렇게 되면 그 상품에 매겨져 있는 숫자가 바로 가치 척도, 즉 계산화폐가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가 나오게 된다(이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물물교환은 당사자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그런데 그 개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제각각의 주관적 선호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어서, 똑같은 상품이라고 해도 물물교환에서 나타나는 교환 비율은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들쭉날쭉 다른 교환 비율로 벌어지는 무수한 물물교환 속에서 과연 모두가 합의하는 가치 척도가 나올 수 있을까? 19세기 후반의 경제학자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의 유명한 주장처럼 물물교환의 ‘불편함’에 대해 모든 이들이 개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만 하면 과연 화폐(즉 가치 척도)가 저절로 나오게 될까? 이런 과정 속에서는 화폐라는 ‘생각’ 자체가 나올 수 없는 게 아닐까?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개개인마다 서로 다른 무수한 주관적 선호 체계로부터 만인이 공유하는 상호 주관적 가치의 단일한 상품 위계 서열이 생겨난다는 말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해 보면, 화폐의 문제는 결국 사회학과 경제학 이론 모두의 근본에 있는 문제임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놀라운 역설이 있다. 사실 이것이 내가 애초에 이 책을 쓰려고 마음먹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주류 또는 정통 현대 경제학의 전통에서 화폐에 별다른 이론적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이 그것이다(이러한 주류 전통의 개괄로는 Smithin, 2003). 경제학자들이 이렇게 우리의 직관과 크게 어긋나는 행태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통 경제학에 초석이 되고 있는 두 가지 가정(둘 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앞에서 보았듯이 경제학자들은 화폐가 상품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물론 오늘날은 귀금속을 가치 본위로 쓰는 것도 아니며 또 귀금속 주화의 유통 또한 사라진 판이니, 이들도 화폐가 반드시 스스로 교환가치를 담고 있는 물질이라고 고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화폐 또한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 ‘한계효용’ 따위 같은 정통 미시경제학의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화폐 또한 상품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화폐를 분석하는 현대 정통 경제학의 분석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저 옛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상품화폐론, 즉 화폐는 일종의 ‘사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환 매개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에서 파생된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론에 관해서는 1장을 보라).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 비록 ‘현금’의 중요성은 줄어들었지만. 다양한 ‘유통 속도’를 보이면서 ‘유통’ 또는 ‘흘러가는’ ‘사물들’의 ‘수량’ 또는 ‘스톡’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입증하겠으나 이러한 생각은 그릇된 비유에 근거한 것이며, 그 비유의 근간이 되는 이론들도 마찬가지로 그릇된 것이다. 화폐의 유통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심지어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슘페터가 날카롭게 비꼰 바 있다(Schumpeter, 1994[1954]: p.320). 또 이러한 정통 경제학의 관점에 입각하여 보더라도, 화폐는 최소한 예사 상품이 아닌 아주 특별한 상품일 수밖에 없다. 다른 문제를 다 제쳐놓고 화폐의 공급 과정만 생각해 보자. 화폐의 생산은 항상 엄격한 통제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요에 맞추어 자유롭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화폐 위조범들에 대한 엄한 처벌이 화폐의 생산 통제가 엄격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화폐의 희소성이란 항상 사회적·정치적 장치들에 의해 아주 조심스럽게 만들어지는 구성물인 것이다. 19세기 미국에서 금본위제에 대한 논쟁이 붙었을 때 인민주의(popluism) 진영의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설명한 것처럼, “더 많은 밀을 원한다면 들판에 나가서 밀을 기르면 된다. … 하지만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원한다고 해서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이다”(The First Battle, 1897; Jackson, 1995: p.18에서 재인용).
두 번째로 정통 경제학 이론이 붙잡고 있는 또 하나의 알쏭달쏭한 신앙이 있으니, 바로 화폐의 ‘중립성’이다. 1장에서 살펴보겠지만, 화폐란 ‘실물’ 경제의 작동 위에 씌어 있는 ‘중립적 베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장기적으로 화폐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중립적인 이유는 통화량의 변화란 오로지 가격의 변화에만 영향을 줄 뿐 경제성장이나 총생산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장 유명하고 수학적으로 세련된 경제 모델(애로-드브뢰Arrow-Debreu 일반 균형 모델처럼)들 가운데 화폐가 아무런 분석적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주류 경제학은 화폐의 존재와 기능에 대해서 만족스런 설명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정통 경제학은 화폐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서론 부분)
---------------------------
저자 소개
제프리 잉햄 Geoffrey Ingham
케임브리지대학 사회학과 교수. 레스터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을 아우르는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와 화폐 문제를 연구해 왔다. 지은 책으로 Capitalism Divided? The City and Industry in British Social Development(1984), Money: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s from Economics, Sociology and Political Science(2005), Capitalism(2008) 등이 있다.
---------------------
역자 소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학부에서 경제학을, 대학원에서 외교학을 공부한 뒤 캐나다 요크대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책세상, 2001), 『투자자 - 국가 직접 소송제: 한미 FTA의 지구정치경제학』(녹색평론사, 2006),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미지북스, 2010),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ㆍ경제적 기원』(도서출판 길, 2009) 등이 있다.
--------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