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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이 딱 떠오른 건 새 틀니를 하던 날이었다. 그날 아침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7시 45분쯤, 나는 깨자마자 욕실로 달려가 가까스로 아이들보다 먼저 욕실을 차지할 수 있었다. 징글맞은 1월의 어느 아침, 하늘은 누리끼리한 잿빛이었다. 욕실 작은 창 밖으로 우리가 뒤뜰이라 부르는, 가로 10야드 세로 5야드의 풀밭이 보였다. 둘레엔 쥐똥나무 울타리가 있고 가운데엔 맨땅이 있다. 엘즈미어로드(Ellesmere Road)에 있는 어느 집 뒤편에서나 볼 수 있는 똑같은 뒤뜰과 울타리와 풀밭이다. 차이가 있다면 아이들이 없는 집에는 뜰 가운데에 맨땅이 없다는 점뿐이다.
나는 무딘 면도날로 수염을 밀어보려 애쓰며 욕조에 물을 받고 있었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나를, 그리고 세면기 위 작은 선반에 놓인 물 가득한 컵에 든 틀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의 일부인 이 틀니는 담당 치과의사인 워너가 새 틀니를 만드는 동안 하고 다니라고 준 임시용이었다. 내 얼굴은 딱히 못난 편은 아니다. 불그레한 낯빛이, 버터빛 머리카락이며 창백한 푸른 눈과 제법 어울리는 그런 얼굴인 것이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머리가 세거나 벗어지지 않아서, 틀니를 하고 있으면 마흔다섯 내 나이로 안 보일지도 모른다.
면도날을 꼭 사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욕조에 들어가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팔에 비누칠을 한 다음(통통하고 팔꿈치까지 주근깨가 있는 그런 팔이다) 등밀이솔로 어깨 끝 부분에 비누를 묻혔다. 웬만하면 손이 닿지 않는 데기 때문이다. 불편한 노릇이지만 요즘 내 몸엔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다. 약간 비만인 편인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장날 구경판의 뚱뚱보 같다는 건 아니다. 내 체중은 14스톤1을 크게 넘지 않고, 마지막으로 잰 허리둘레는 48인치 아니면 49인치였다. 나는 흔히 말하듯 “징그럽게” 뚱뚱하지도 않고, 뱃살이 반쯤 아래로 처지는 것도 아니다. 엉덩이 둘레가 좀 불룩해서 술통 같아 보이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뚱뚱하면서 활달하고 발랄한, 패티(Fatty)나 터비(Tubby)2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어딜 가나 자리 분위기를 주도하는 유형을 아시는지? 내가 바로 그런 타입이다. 사람들은 주로 나를 “패티”라 부른다. 패티 볼링. 내 본명은 조지 볼링(George Bowling)이다.
1 1스톤(stone)은 6.35킬로그램이므로 14스톤은 약 89킬로그램. 체중 90킬로그램에 허리가 48인치 이상인 것은 불가능해 보이므로, 오웰이 체중이나 허리 치수를 잘못 썼을 가능성이 있다(오웰은 장신에 마른 체형이었다).
2 둘 다 뚱보라는 뜻.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자리 분위기를 주도하는 유형다운 기분이 아니었다. 요즘엔 이른 아침이면 거의 항상 시무룩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을 잘 자고 소화가 잘되더라도 말이다. 왜 그런지는 물론 알고 있다. 빌어먹을 틀니 때문이었다. 물 가득한 컵에 담겨 있어 확대되어 보이는 틀니가, 해골 이빨처럼 싱긋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잇몸이 맞닿는 듯 불쾌한 기분이 든다. 시큼한 사과를 깨물었을 때처럼 꼬집혀서 움찔하는 기분도 든다. 게다가 누가 뭐라고 하든, 틀니는 하나의 경계표다. 마지막 자연치아가 빠지고 나면, 자신을 할리우드의 매력남으로 착각할 수 있는 시절도 확실히 끝나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마흔다섯 살인 데다 뚱뚱하기까지 했다. 가랑이에 비누칠을 하려고 일어섰다가 내 몸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뚱뚱해서 자기 발이 안 보인다는 건 참 딱한 노릇인데, 나 자신 서 있으면 발이 반밖에 안 보이는 처지다. 나는 불룩한 배에 비누칠을 하면서 생각했다. 어떤 여자도 나를 두 번 쳐다보지는 않을 거라고. 돈 주고 산 여자가 아닌 한 말이다. 그렇다고 그 순간 어떤 여자든 나를 두 번 쳐다봐주길 딱히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엔 기분이 더 좋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선 그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담당 지역을 ‘커버’하는 데 필요한 자동차가 잠시 수리에 들어갔고(여기서 내가 보험업계에 몸담고 있으며, 생명·화재·상해·난파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취급하는‘플라잉 살라만더’3라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걸 밝힐 필요가 있겠다), 서류를 좀 가져다주러 런던 본사에 잠깐 들러야 하긴 했지만 틀니를 찾으러 가야 하기에 사실상 하루 휴무였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얼마 전부터 내 마음을 자꾸 설레게 하던 일도 있었다. 나 말고 아무도 모르는(가족들 중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돈 17파운드가 생겼던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우리 회사의 멜러스라는 친구가『점성술을 응용한 경마』라는 책을 입수했는데, 기수가 입은 옷 색깔에 별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모든 승부가 갈린다는 걸 증명한 책이었다. 그런데 어떤 경주엔가 ‘코세어스 브라이드’4라는 암말이 출전하게 되었는데, 완전 무명이지만 기수의 옷이 녹색이었고, 녹색은 마침 상승세인 별들의 색이다 싶었던 것이다. 점성술 경마에 푹 빠져 있던 멜러스는 그 말에 몇 파운드를 걸고는 나한테도 그러라며 무릎 꿇고 빌다시피 했다. 나는 도박을 잘 안 하는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그 친구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결국 10파운드를 걸고 말았다. 과연 ‘코세어스 브라이드’는 가볍게 경주를 마쳤고, 배당률이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몫으로 17파운드가 떨어졌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이게 내 인생에서 또하나의 경계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 돈을 조용히 은행에 넣어두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처리해본 건 처음이었다.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면 그 돈으로 힐다(내 아내다)에겐 옷을 사주고 아이들에겐 부츠를 사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다가, 싫증이 나기 시작하던 터였다.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나자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욕조에 누워 17파운드와 그 용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여자와 주말을 함께 보내는 데, 아니면 시가나 위스키 큰 잔술 같은 자잘한 것들을 야금야금 소비하는 데, 둘 중 하나일 듯했다. 뜨거운 물을 좀더 틀고서 여자와 시가 생각을 하던 찰나, 들소 떼 몰려오듯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욕실로 이어진 계단을 울렸다. 물론 아이들이 내는 소리였다. 우리집만 한 공간에 아이 둘을 기른다는 건 파인트(pint) 머그잔에 맥주 한 쿼터(quart)를 담는 격이다.5 욕실 문 밖에서 다급히 발 구르는 소리에 이어 고통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
3 Flying Salamander.‘ 날아다니는 도롱뇽’이란 뜻.
4 Corsair’s Bride. ‘해적의 새색시’라는 뜻.
5 1파인트는0.57리터 정도이고, 1쿼터는2파인트 분량이다.
“아빠! 나 들어가야 돼!”
“어, 안 돼. 이따가 와.”
“안 돼, 아빠! 나 어디 가야 해!”
“그럼 어디 가. 가버리면 되잖아. 아빠 지금 목욕하고 있다.”
“아∼빠∼! 나 지금 어디∼가야∼ 한다니까!”
소용없는 일! 나는 그게 어떤 위험신호인지 알았다. 우리집 같은 곳이 다 그렇듯, 변기가 욕실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하기야 우리집처럼 좁으면 그럴 수밖에). 나는 욕조 물마개를 뽑아낸 뒤 황급히 물기를 대충 닦아냈다. 문을 열자 빌리 녀석이(일곱 살 먹은 작은 놈이다) 한대 쥐어박으려는 내 손을 잽싸게 피하며 휙 지나갔다. 내 목에 비누가 아직 묻어 있다는 걸 안 것은 옷을 거의 다 입고서 넥타이를 찾을 때였다.
목에 비누가 묻어 있으면 참으로 불쾌하다. 끈적끈적 역겨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묘한 것은, 목에 비누자국이 남은 것을 나중에 발견하고서 아무리 잘 닦아낸다 해도, 그 끈적끈적한 느낌이 하루 종일 간다는 점이다. 기분이 상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간 나는 이미 까다롭게 굴 태세가 되어 있었다.
우리집 주방은 엘즈미어로드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가로세로가 10피트 남짓한 좁은 공간이다. 일본산 참나무로 만든 찬장까지 있으니(위에는 포도주 담는 빈 유리병 두 개와 힐다의 어머니가 우리 결혼 선물로 준 은제 계란 받침대가 있다) 더 비좁다. 친애하는 힐다는 찻주전자 뒤에서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개 그랬듯, <뉴스 크로니클>6에서 버터값인지 뭔지가 올랐다고 해서 낙담하고 있는 상태였다. 힐다가 난로를 켜놓지 않아 창문이 다 닫혀 있는데도 지독하게 추웠다. 나는 몸을 숙여 성냥불을 댕겼다. 콧숨소리를 좀 크게 낸 것은(몸을 숙이면 언제나 헐떡이게 된다) 힐다에게 보내는 은근한 신호였다. 그녀는 내가 무얼 낭비한다고 여길 때마다 보내는 곁눈질을 슬쩍 했다.
올해 서른아홉인 힐다는, 나와 처음 알았을 때는 꼭 산토끼 같은 인상이었다. 지금도 그렇긴 한데 많이 여위었고 좀 시들었으며, 언제나 걱정근심 많은 눈빛을 하고 있다. 평소보다 언짢을 때는 어깨를 굽히며 팔짱을 끼는데, 그 모습이 흡사 불을 쬐는 늙은 집시 여인 같다. 그녀는 주로 재앙을 내다보는 것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타입이다. 그 재앙이란 물론 시시한 것들이다. 전쟁이나 지진, 전염병, 기근, 혁명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버터값이 오른다거나 가스 요금이 엄청나게 나오는 것, 아이들 부츠가 많이 닳았다거나 라디오 할부금이 한 번 더 남았다는 것. 이런 게 힐다의 연도(連禱)7 주제인 것이다. 그녀는 팔짱 낀 몸을 앞뒤로 흔들어가며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말하곤 한다(그걸 그녀가 확실히 즐긴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6 1930년에 <데일리 뉴스>와 <데일리 크로니클>이 통합되어 창간된 진보 성향의 일간신문으로, 1960년에 보수지인 <데일리 메일>에 흡수되었다.
7 litany. 성공회에서 인도자가 읊는 기원기도에 회중이 간단하게 응답하는 형식의 기도. 가톨릭 에서는 호칭기도라 부른다.
“조지, 이건 아주 심각한 일이야! 앞으로 우리 식구는 어쩌란 말이야! 돈이 어디서 나오냐구! 당신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아!”
뭐 그런 식이다. 그녀는 우리가 결국 구빈원 신세를 지고 말 것이라 믿고 있다. 재밌는 건 우리가 정말 구빈원으로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힐다는 나의 4분의 1만큼도 개의치 않으리라는 점이다. 거기선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된 걸 제법 즐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번개처럼 씻고 옷을 입은 다음 벌써 아래층에 내려와 있었다. 누군가를 욕실 밖으로 몰아낼 기회가 더이상 없을 때는 언제나 그렇게 빠르다. 아침이 차려진 식탁으로 가보니 두 녀석은 오전 내내 계속될 듯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니가 그랬잖아!” “아냐, 난 안 그랬어!” “니가 그랬어!” “아냐, 내가 안 그랬다니까!” 내가 관두라고 해서야 겨우 끝이 났다. 아이는 일곱 살 된 아들 빌리와 열한 살 난 딸 로나 둘뿐이다. 아이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참 묘한 것이다. 꼴도 보기 싫을 때가 많고, 둘이 주고받는 소리는 도저히 못 참아줄 정도다. 우리 아이들은 자나 연필통, 누가 프랑스어 최고 점수를 받았나 따위의 지겹고 실용적인 것들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다른 때, 특히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의 내 감정은 사뭇 다르다. 아직 밝은 여름날 저녁 같은 때엔 작은 침대 앞에 서서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아이들의 보동보동한 얼굴과 나보다 훨씬 옅은 금발을 보고 있노라면, “애틋한 정이 복받친다”8는 성경 구절의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단 두 푼의 가치도 없는 말라비틀어진 콩깍지가 된 기분이며, 나라는 존재의 유일한 의의는 이 어린 것들을 이 세상에 오게 하여 자라는 동안 먹여주는 것뿐이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개인으로서의 나라는 존재가 꽤 중요해 보이는 대부분의 순간, 나는 늙은 개에게도 아직 누릴 생이 있으며 좋은 때가 많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산다. 여자와 아이들이 늘 쫓아다니는 온순한 젖소로서의 내 이미지는 나로서는 달가운 게 아니다.
그날 아침 식탁에서 우린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힐다는 예의 “앞으로 우리 식구는 어쩌란 말야!” 분위기였다. 버터값 때문이기도 했고, 크리스마스 방학이 거의 끝나 마지막 학기 수업료가 아직 5파운드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삶은 계란을 먹고 식빵에다 ‘골든 크라운’ 마멀레이드9를 발랐다. 힐다는 이따위 식품을 계속해서 사려고 할 것이다. 값은 한 파운드에 5페니 반이고, 라벨에는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가장 작은 글자로 “일정 분량의 중성 과일주스”를 함유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이 표현 때문에 나는 종종 그랬듯 좀 짜증스러운 투로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 중성(neutral) 과일나무란 게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 나라에서 기르는지 모르겠다는 식이었고, 결국 힐다를 화나게 만들고 말았다. 그녀가 화난 건 내가 빈정거려서가 아니라, 그저 돈 아끼자는 얘기를 조롱하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문을 봤는데 별 뉴스는 없었다. 멀리 스페인과 중국에서는 전처럼 서로들 죽이고 있었고, 어느 기차역 대합실에서는 어떤 여자의 다리가 발견되었고, 조그 왕10의 결혼이 갈팡질팡하는 상태였다. 마침내 생각보다 좀 빠른 10시쯤, 나는 런던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아이 들은 공원에 놀러 나간 뒤였다. 몹시도 으슬으슬한 아침이었다. 현관문을 막 나서는데 작은 돌풍이 일어 비누자국이 남아 있던 목을 때렸다. 갑자기 옷이 맞지 않으며 온몸이 끈적끈적하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8 bowels did yearn. 창세기의 ‘요셉과 열두 형제’ 이야기(37∼50장) 중 형들의 손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다가 고생 끝에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이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동생 베냐민을 보고 울컥해져 황급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우는 극적인 장면에 나오는 구절(창세기43:30).
9 marmalade. 주로 감귤류의 과육과 껍질로 만든 잼.
10 King Zog(1895∼1961). 그리스 서북부에 있는 알바니아의 국왕(재위 1928∼1939). 총리 및 대통령을 지내다 국왕이 된 인물로, 1938년에 헝가리 출신의 젊은 귀족 여성과 결혼했다. 1939년에 무솔리니가 알바니아를 침공하자 망명하여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2
내가 사는 곳, 웨스트블레츨리(West Bletchley)의 엘즈미어로드를 아시는지? 그곳을 모른다 해도, 매한가지인 다른 곳을 오십 군데는 아실 것이다.
교외주택단지 어디나 이런 길들이 얼마나 흉물스럽게 뻗어 있는지도 아실 것이다. 어디나 똑같다. 반쯤 붙어 있다시피 한 작은 주택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고(엘즈미어로드에는 212호까지 있으며 우리집은 191호다) 집 모양은 공영주택 비슷하면서도 대체로 더 흉하다. 치장 벽토로 마감한 외벽, 방부 기름을 칠한 현관문, 쥐똥나무 울타리, 녹색 현관문. 단지 이름은 로럴, 머틀, 호손, 몽 아브리, 몽 레포, 벨르 뷔 등등이다. 오십 채 중 한 채꼴로, 결국엔 구빈원 신세를 질 만한 반사회적 타입의 주인이 현관문을 녹색 대신 파랑으로 칠해놓았다.
목이 끈적끈적한 느낌 때문에 나는 풀이 좀 죽었다. 그런 끈적한 느낌 때문에 기분이 그토록 가라앉을 수 있다니 모를 일이었다. 생기발랄함이 확 빠져나가는 듯한 게, 마치 공공장소에서 갑자기 구두 밑창이 쑥 빠져나가는 꼴을 당할 때와 같았다. 그런 아침이니 자신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 없었다. 걸어오는 내 모습을 좀 떨어진 데서 보고 있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퉁퉁하고 붉은 얼굴에 틀니를 하고 세련되지 못한 옷차림을 한 내 모습 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신사처럼 보일 리가 없다. 당신은 200야드 떨어진 곳에서도 나를 당장 알아볼 것이다.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아닌 듯하고, 무슨 외판원일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입은 옷은 사실상 그런 부류의 유니폼이라 할 만했다. 청어가시 무늬의 회색 신사복은 닳아서 더 딱해 보이고, 50실링짜리 파란 오버코트에 중산모를 쓰고, 장갑은 안 낀 차림 말이다. 더구나 내 용모는 커미션을 받고 물건 파는 사람들 특유의, 세련미 없고 낯 두꺼워 뵈는 그런 모습이었다. 제일 나아 보일 때, 이를테면 새옷을 입었거나 시가를 피울 때면 마권업자나 주점 주인으로 통할지도 모르고, 최악일 때는 진공청소기 외판원으로 보일지도 모르는데, 보통 때는 아마 정확히 판단될 것이다. 누구든 나를 보자마자 ‘한 주에 5에서 10파운드 벌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나는 엘즈미어로드의 평균 수준 남자인 셈이다.
11 순서대로 월계수(the Laurels), 은매화(the Myrtles), 산사나무(the Hawthorns), 내 보금자리(Mon Abri), 내 안식처(Mon Repos), 좋은 전망(Belle Vue)이란 뜻.
12 이 소설을 집필한 1938년과 지금의 파운드(약 2000원) 시세를 비교해보면 소비자물가 기준으로 47.3배쯤이라고 한다(http://www.measuringworth.com/ukcompare/ 참조). 따라서 이 계층의 평균 주 수입을 7.5파운드로 잡을 경우, 지금(2009년 기준) 우리 돈으로 71만 원 정도라 할 수 있다(월급으로 환산하면 300만 원, 연봉은 3600만원인 셈이다).
길에는 거의 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다들 8시 21분 기차를 허겁지겁 타고 가버린 뒤였고, 여자들은 가스레인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터였다.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있고 어쩌다 그럴 만한 기분이 될 경우, 교외주택단지의 길을 걸으며 이런 곳에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실소(失笑)를 하게 된다. 엘즈미어로드 같은 곳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곳은 감방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감옥일 뿐이다. 한 주에 5에서 10파운드 벌이인 가련한 인생들이 덜덜 떨며 지내는,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고문실들이 줄지어 있는 감옥 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못되게 구는 상사가 있고, 악몽처럼 괴롭히는 마누라가 있고, 거머리처럼 피를 빠는 아이들이 있는 가장이다. 노동계급의 고통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헛소리들이 많았다. 나는 프롤레타리아를 그리 딱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잠자리에 누워 해고 걱정을 하는 막일꾼을 본 적이 있는가? 프롤레타리아는 몸은 고생을 해도 일하지 않는 동안엔 자유인이다. 그에 비해 치장 벽토를 바른, 획일적이고 작은 교외주택에는 집집마다 ‘언제나’ 자유롭지 못한 가련한 가장이 있다. 예외적인 순간이라곤 깊이 잠들어 있거나, 상사를 우물에 처박고 석탄 덩어리를 마구 던져 넣어 메워버리는 꿈을 꿀 때뿐이다.
물론 우리 같은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같이 잃을 게 있다고 상상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엘즈미어로드 주민의 9할은 자신들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엘즈미어로드와 그 주변 단지 전체(하이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의 구역)는 사실상 ‘헤스페리데스13 주택단지’라는 거대한 사기판의 일부이며, 이 단지는 ‘명랑 신용 주택금융조합’의 소유다. 주택금융조합은 아마 현대의 가장 영악한 사기 집단일 것이다. 내가 종사하는 보험업도 협잡이긴 하지만, 그건 그래도 테이블에 카드를 펼쳐놓고 벌이는 공개 협잡이다. 그런데 주택금융조합의 협잡이 놀라운 것은, 당하는 사람들이 협잡꾼이 자기들한테 무얼 베푼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다. 사기꾼한테 한대 얻어맞고도 그의 손을 핥는 격이다. 나는 ‘헤스페리데스 주택단지’둘레에다 주택금융조합들의 신을 모시는 거대한 신상(神像)을 세우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은 좀 독특한 신상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양성(兩性)인 신일 것이다. 상반신은 최고경영자고 하반신은 임신한 아내인 형상 말이다. 그리고 한 손에는 거대한 열쇠(물론 구빈원 열쇠다)를, 다른 손에는 풍요의 뿔(과일이나 꽃이나 곡식 같은 게 아니라 휴대용 라디오나 생명보험 증서, 틀니, 아스피린, 콘돔, 잔디밭 다지는 콘크리트 롤러 같은 게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 말이다)을 쥐고 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엘즈미어로드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집값을 다 치렀다 해도 사실상 집을 소유한 게 아니다. 부동산 소유권이 자유보유권(freehold) 아닌 임차권(leasehold)이기 때문이다.14 16년에 걸쳐 총 550파운드를 불입하면 소유권을 얻게 되는데, 같은 수준의 주택을 일시불로 산다면 380파운드 정도가 들 것이다. 이 말은 ‘명랑 신용’이 집 한 채에 170파운드의 이익을 남긴다는 뜻인데, 말할 것도 없이 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올린다. 380파운드에는 건축업자의 이익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조합은 ‘윌슨 앤 블룸’이라는 이름의 자회사를 통해 집을 직접 지으며, 그만큼 건축업자 몫의 이익을 거두는 것이다. 따라서 이 조합이 지불해야 할 것은 건자재값뿐인데, 조합은 건자재로 벌 수 있는 이익까지 거둔다. ‘브룩스 앤 스캐터비’라는 자회사를 통해 직접 벽돌과 타일, 문과 창틀, 모래와 시멘트, 그리고 아마도 유리까지 직접 팔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름의 자회사를 통해 문과 창틀을 만드는 목재까지 직접 판다는 걸 알게 되어도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명랑 신용 주택금융조합’은 약속을 항상 지키는 것도 아니다(사실 예견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실제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우리 모두 충격을 받았다). 엘즈미어로드 단지가 건설될 당시 바로 곁에는 ‘플래츠 메도우스(Platt’s Meadows)’라고 하는 너른 공터가 있었다. 별로 훌륭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좋았던 이 공터는 명시된 바는 없어도, 다들 건물이 들어서지 않을 것으로 여기던 땅이었다. 하지만 웨스트블레츨리는 팽창중인 교외였다. 1928년에는 로스웰 잼 공장이 문을 열었고, 1933년에는 ‘앵글로-아메리칸 올-스틸 자전거’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으며, 인구는 자꾸 늘어나고 집세는 마냥 오르고 있었다. 나는 휴버트 크럼 경이나 ‘명랑 신용’의 다른 고위 인사들을 면전에서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의 입에서 군침이 흐르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갑자기 건축업자들이 나타나더니 ‘플래츠 메도우스’에 집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헤스페리데스’ 단지에서는 고통의 아우성이 들리더니 주민대책모임이 결성되었다. 소용없는 일! 크럼의 변호사들은 5분 만에 우리를 무장해제해버렸고, ‘플래츠 메도우스’엔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의 사기술이 정말 교묘한 것은(친애하는 크럼이 준남작 작위를 받을 만하다 싶게 만드는 실력이다) 심리적인 데 있었다. 단지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조국에 대한 지분”이란 것을 갖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헤스페리데스’나 비슷한 다른 모든 곳의 가련한 백치 같은 우리는 영영 크럼의 헌신적인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존경받아 마땅한 주택보유자들이니, 곧 보수주의자이자 예스맨이자 남의 밑이나 핥아주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황금알 낳는 거위를 감히 어찌 죽이랴! 그리고 우리가 실은 소유주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 모두 집값을 지불하고 있는 중인데 마지막 할부금을 내기 전에 무슨 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 이 두 가지는 그런 심리를 더욱 부채질한다. 우리는 모두 매수된 것이며, 더 딱한 점은 우리 자신의 돈으로 매수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련하고 짓눌리는 작자들 모두가, ‘벨르 뷔’라 불리는(전망도 없고 벨도 울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부른다) 조그만 벽돌집15의 값을 적정가의 두 배나 치르느라 뼈 빠지게 일하는 저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들 모두가, 억압받는 자들의 혁명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울 사람이라는 것이다.
13 Hesperides. 그리스 신화에서 황금사과가 열리는 복된 정원을 지키는 요정들.
14 자유보유권은 단독주택의 일반적인 소유권으로서 주택 및 토지 등을 무기한 소유하는 권리, 임차권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주된 소유권으로서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권리다.
15 ‘Belle Vue’는 불어로‘좋은 전망’이란 뜻인데, 전망(view)도 벨(bell)도 엉망이라고 오웰이 살짝 비튼 것이다.
나는 월폴로드를 따라 걷다가 하이스트리트로 접어들었다. 런던행 기차는 10시 14분에 있었다.‘ 식스페니 바자(Sixpenny Bazaar)’를 막 지나치려다 아침에 면도날 한 상자를 사리라 다짐했던 게 생각났다. 비누 계산대로 갔더니 플로어 매니저인지 뭐인지 하는 사람이 그곳 담당인 아가씨에게 한바탕 퍼붓고 있었다. 아침 그 무렵에는 ‘식스데니’에 손님이 많지 않은 게 보통이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개점 직후에 가보면 종업원 아가씨들을 모두 일렬로 세워놓고 아침 욕지거리를 퍼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침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란 것이다. 이런 대형 체인점에는 빈정대고 모욕 주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지점마다 다니며 어린 여종업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내들이 있다고 한다. 플로어 매니저는 못생기고 작달막한 몸집에, 어깨가 딱 벌어지고 반백의 콧수염을 뾰족하게 기른 자였다. 그는 방금 막 그 여종업원에게 달려들어 무언가에 대해 퍼붓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녀가 잔돈을 잘못 내어준 것인지, 기계톱 소리 같은 음성으로 마구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 원! 계산도 못 한단 말이지! 단순 계산도 못 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닌걸. 나 원!”
나는 제어할 겨를도 없이 여종업원의 시선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로서는 욕을 먹는 동안 불그레한 얼굴의 뚱뚱한 중년 남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게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옆 계산대에 있는 커튼 고리 같은 물건에 관심을 두는 척했다. 그는 다시 그녀를 들볶기 시작했다. 그는 잠자리처럼, 갈 듯하다 갑자기 돌아서 다시 달려드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었다.
“단순 계산도 못 한단 말이지! 2실링쯤 더 내줘도 너한텐 상관없겠지. 아무 상관도 없을 거야. 까짓 2실링쯤이야 싶겠지. 그런 너한테 계산 똑바로 하란 소리는 실례인지 모르겠다. 나 원! 너 편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겠지. 남 생각 같은 건 할 줄 모르지, 그렇지?”
매장 반대편에서도 들릴 만한 목소리로 이런 식의 질타가 5분쯤 계속되었다. 할 만큼 했나보다 싶기 무섭게 돌아섰다가는 되돌아와 퍼붓기를 반복했다. 나는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그들을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어린 여종업원은 열여덟 살쯤 됐을까 한 좀 뚱뚱하고 멍해 보이는,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잔돈 교환을 제대로 못 할 유형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 말 그대로 괴로움에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의 잔소리는 채찍으로 그녀의 살갗을 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계산대에 있는 아가씨들은 못 들은 체했다. 못생기고 작달막하고 자세 꼿꼿한 그는, 가슴을 쑥 내밀고 손을 저고리 뒷자락 밑에 대고서 따지는 모습이 꼭 참새 수컷 같았다. 키가 너무 작지만 않았더라면 주임상사가 되었을 타입이었다. 이런 못된 임무를 맡기기 위해 키 작은 남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아시는지. 그는 더 악을 쓰기 위해 그녀에게 얼굴을(콧수염이고 뭐고 다 포함해서) 파묻다시피 했다. 여종업원은 계속해서 얼굴이 빨개진 채 몸을 뒤틀었다. 마침내 그는 할 만큼 했다고 판단했는지 뒷갑판을 활보하는 제독처럼 으쓱대며 걸었고, 나는 면도날이 있는 계산대로 갔다. 그는 내가 다 들었다는 걸 알았고, 그 사실을 그녀도 알았고, 내가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이 다 알았다. 그런데 더 고약한 것은, 그녀가 나에 대한 배려로 아무 일도 없던 체해야 하며, 가게 여점원이 남성 고객에게 지키는 게 원칙인, 적당히 거리를 두는 절제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녀처럼 욕먹는 꼴을 보인 지 30초밖에 안 되어 어엿한 젊은 숙녀처럼 처신해야 하다니! 그녀는 얼굴이 여전히 빨갰고 손도 계속 떨고 있었다. 내가 면도날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3페니짜리 물건이 담긴 함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작은 플로어 매니저 녀석이 우리 쪽을 바라보았고, 순간 우리는 그가 돌아와 또 시작하려나 싶었다. 그녀는 채찍을 본 개처럼 움찔하더니 곁눈질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녀가 욕먹는 꼴을 내게 보였기 때문에 나를 지독히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나는 면도날값을 치르고 바로 나와버렸다. 왜 그런 꼴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물론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라도 대꾸를 했다간 당장 해고당하고 말 테니까. 어디나 마찬가지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식품 체인점에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청년 생각을 해보았다. 스무 살쯤 되며 볼이 장밋빛이고 팔뚝이 우람한 이 육중한 청년은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어야 마땅해 보인다. 그런 그가 새하얀 저고리를 입은 채 계산대 너머로 납작 엎드리고 손바닥을 비비며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 “예예, 손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손님! 날씨가 이렇게 좋을 수가 있습니까, 손님! 오늘은 무얼 드리면 좋을까요, 손님?”제 엉덩이를 걷어차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일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고 하니 말이다.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을 건방지게 본 고객이 위에다 일러바치면 해고당할지도 모른다며 몹시 불안해하는 마음이다. 더구나 그의 입장에서, 내가 본사에서 보낸 끄나풀이 아니라고 어떻게 안심할 수 있으랴? 불안! 우리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불안은 인간 존재의 기본 요소와도 같다.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전쟁이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것 때문에 시달릴 것이다. 히틀러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나는 유대인들처럼 말이다. 그러자 문득, 뾰족 콧수염을 기른 그 쪼끄만 작자가 느끼는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여종업원보다 훨씬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그에겐 부양할 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가정에서 그는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뒤뜰에서 오이를 기르고, 처자식이 무릎에 앉아 콧수염을 잡아당기도록 해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악명 높았던 스페인 종교재판관이나 러시아 비밀경찰 고위간부에 대해 읽다보면, 그들이 사생활에선 집에서 기르는 카나리아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유형의 이상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였다는 얘기가 반드시 나온다.
비누 계산대의 그 아가씨는 가게 문을 나서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나를 살해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그 모든 것을 보았다는 이유로 나를 얼마나 미워했는가! 플로어 매니저보다 내가 훨씬 더 미웠던 것이다.
(제1장, 2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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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지 오웰 (Geroge Orwell, 1903~1950)
영국의 작가·저널리스트.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예비학교)와 이튼(사립학교)을 졸업한 뒤 대영제국의 경찰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1922~1927)한다.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 계급의 세계에 뛰어들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르포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1933)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인데,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썼고, 스페인에 프랑코의 파시즘이 발흥하자, 공화국편 민병대 소속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나간다. 오웰의 대표작은 인생 후반기에 집필한 『동물농장』(1945)과 『1984』(1948)이지만, 그 두 소설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글을 쓴 그의 저술 중에서 빙산의 일각이라 할 만큼 적다. 오웰은 생전에 11권(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의 책을 낸 것 말고도 수백 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를 썼는데(서평과 칼럼 등을 포함해서다) 그의 에세이는 예리한 통찰, 특유의 유머와 통쾌한 독설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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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한중
전문번역가. 지속가능한 삶에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 생태, 환경과 관련한 책을 주로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 『나는 왜 쓰는가』『위건 부두로 가는 길』『울지 않는 늑대』『인간 없는 세상』『글쓰기 생각쓰기』『리아의 나라』『작은 경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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