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
「고린도전서」 4장 7절
서론
과거의 선물
기술 진보는… 경제학자들이 ‘공짜 점심’이라 부르는 것, 즉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력과
비용 증가에 걸맞지 않은 생산량 증가를 사회에 제공해 주었다.
― 조엘 모커, 『부의 지렛대: 기술 창조와 경제 진보』(1990)
미국에서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인 워런 버핏의 자산 가치는 600억 달러가 넘는다. 그가 이 돈을 모두 가질 ‘자격’이 있는가? 왜 그런가? 그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는가? 그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을 창조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버핏 자신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번 것 중에 아주 많은 부분은 사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옳다면 버핏의 재산 중 아주 많은 부분을 가질 자격은 사회에 있지 않을까?
버핏이 알지 모르겠지만, 그는 대중적 관심의 표면 바로 아래서 움직이고 있는 가장 폭발적인 이슈를 꼬집었다. 최근 몇십 년간 경제와 기술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사회’는 ‘부’의 창조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했으며 이에 따라 누구든 자신이 벌었으니 “당연히 내가 가질 자격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예전보다 얼마나 작아졌는가 하는 문제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밝혔다. 또한 연구자들은 개인의 부에 관한 논의가 도덕적 문제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문제까지 야기하는 일도 점차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혁명적인 접근 방식의 한복판에는 오늘날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데 지식의 역할이 엄청나다는 점, 그리고 세대 간에 걸친 지식의 계속적 증가와 축적이 어떻게 모든 부 창조의 중심이 되었는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부와 소득은 1920년대 이후 어느 때보다도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우리 연구는, 한 국가의 엄청난 불평등이 오로지 개인적 노력, 숙련 기술과 재능의 차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믿음에 근본적으로 회의를 품는다. 물론 금융가의 황제 샌포드 웨일은 <뉴욕 타임스>의 머리기사 「새로운 도금 시대」에서 “이만큼 세우기까지 우리는 어느 누구한테도 의존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최고경영자(CEO)도 고집스레 강변한다. “저는 자신의 독창적 재능만으로 시장에서 최대 가치로 보상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연구는 이런 견해들이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보여 주며, 나아가 버핏의 일반적 견해는 물론 최근까지 관련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유했을 이해의 폭까지도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내놓았다.
역사에서 중요한 극적 사건들은 종종 학자들의 조용한 작업을 통해 일어나곤 하는데, 대중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주 훗날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1905년 최초로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방정식 E=mc²은 당시 사람들에게 별 의미도 없었으나, 1945년에 원자탄이 폭발했을 때 세계를 경악시켰다. 1940년대에 완성된 클로드 섀넌의 고도 수학은 오늘날 국내는 물론 지구 곳곳의 생활 속에 파고드는 디지털 통신의 이론적 근간을 제공해 주었다. 디엔에이(DNA)의 구조는 1953년에 과학자들이 해독했으나, 대중들은 요즈음에야 유전공학이 어떻게 의료, 식량 생산 등 여러 중요한 분야에서 급격히 혁명을 일으키는가를 깨달았다.
『독식 비판』은 이렇게 놀라운 과학 발달만큼이나 경이로운 일들이 지금 부의 원천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정착만 된다면 이는 사회 전체에 걸쳐 소득, 부, 그리고 권력에도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더구나 새로운 이해 방식, 그리고 사회 경제적 고통을 증가시키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배경으로도 작용하는 지식 경제의 지속적 진화가, 이제 21세기가 열린 시점에서 잠재적으로 거대한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은 진실을 생각해 보자. 현대의 노동자는 1800년도의 노동자와 동일한 시간 동안 열심히(더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 일할 경우 분명히 수십 배 많은 경제 산출물을 생산할 수 있다. 최근의 추정치를 봐도 1인당 국민생산은 1800년 이후 20배가 넘게 증가했다. 노동시간당 생산량은 1870년 이후만 해도 15배 정도가 늘어났다. 현대인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열정적이지도, 더 많은 위험을 감당하지도 않고 더 많은 지능을 갖지도 못한 것 같은데, 어째서 오늘날에는 생산량이 그토록 증가했나를 좀 더 생각해 보자.
개인들이 실제로는 ‘뭔가 더 향상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거대한 이득을 거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당연히 과거보다 더 높아진 생산성, 즉 동일한 투입량에 비해 더 많은 산출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 자체가 더욱 생산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개인적 노력과 지능은 과거에 비해 변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사회는 한층 생산적일 수가 있을까? 주된 이유는 확실히 이렇다. 전체적으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과학, 기술, 문화적 지식에다 이런 지식들을 저장하고 불러내는 수단의 효율성이 규모와 속도 면에서 국가적 경제 성취에 필요한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훨씬 앞질러 성장했기 때문이다. 경제사가 조엘 모커의 설명처럼 “현대에서 가장 눈에 띠는 현상은 한마디로 말해 총체적 지식의 증가이다.” 반세기 전인 1957년,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는 20세기 상반기(1909년에서 1949년까지) 생산성 성장에서 90퍼센트 정도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순전히 “기술 변화” 덕분이라고 계산했다. 노동과 자본의 공급, 즉 노동자와 자본가가 기여한 것은 대량의 기술 발전이라는 “잔차(殘差, residual)”에 비하면 거의 부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솔로에게 자극받은 후속 연구 역시 경제성장의 주요 원천으로서 ‘지식의 진보’에 계속해서 초점을 맞췄다. 대단히 존경받는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도 주장한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90퍼센트는 1870년 이후부터 실행된 혁신의 기여로 이뤄진 것이다.” 보몰은 자신이 평가한 추정치는 실제로 과거 진보의 누적적 영향에다 “아직도 오늘날의 GDP에 부가되고 있는 증기기관, 철도 그리고 초창기의 수많은 발명 요인들을 생각한다면” 과소평가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오늘날 고소득자들이 전형적으로 고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그들의 부는 그들이 남들보다 더 지적이거나 더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일부의 주장처럼 주로 ‘출생 추첨’에서 행운을 얻어 좋은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달성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그들은 획득할 지식이 많고 지식 획득의 기회도 많기 때문에 고도로 교육받게 된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경제학자 폴 로머는 지금이나 100년 전이나 대졸 엔지니어의 인적 자본은 동일하다고 파악한다. 하지만 현대의 엔지니어 노동자가 훨씬 더 생산적이다. “그들은 지난 100년 동안 디자인 문제들이 해결됨에 따라서 그동안 축적된 추가적 지식을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의 ‘지식 축적’과 ‘기술적 상태’는 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주제이다. 이들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진실 또한 자명하며 후속 연구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모든 부의 압도적 원천인 지식은 우리 자신의 노력을 하나도 거치지 않은 채 우리에게 그냥 다가온 것들이다. 이들은 과거의 너그럽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불로(不勞) 선물이다. 모커의 말대로 “공짜 점심”이다.
우리가 오늘날 가진 대부분의 것이 공동 유산으로 물려받은 진보 덕택이며, 경제사가 네이선 로젠버그의 말대로 “무한하게 솟은 기술 유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왜 공동 역사가 가져다준 선물은 사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관대하고 폭넓은 혜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우리가 접근하고자 하는 이해 관점이 제대로 정착만 된다면 현재와 같은 불평등한 분배 현실은 더는 무시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미국의 상위 1퍼센트가 미국 전체의 하위 1억 2000만 명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는다. 최고 부자 가구 1퍼센트가 모든 개인들이 소유한 투자 자산(주식과 뮤추얼 펀드, 재무 증권, 기업 투자 펀드, 트러스트, 비주거용 부동산)의 거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하위 인구의 90퍼센트가 15퍼센트 미만을, 하위 인구 50퍼센트인 1억 5000만 명이 1퍼센트 미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에 미국의 거대한 부가 대개 과거가 가져다준 공동의 선물이라면, 어떤 까닭으로 그러한 불균형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지식과 경제성장에 관해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고 이와 관련된 도덕적 성찰도 수많은 저술 작업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지만, 아직도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을 공동의 유산이라는 입장에서 제기하여 평등 문제로 다룬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이해에 놓인 거대한 심연을 메우고자 애쓸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는 또한 지식 경제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분배 정책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길 희망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현대적 연구가 근본적으로 함의하는 것은 오늘날 경제에서 과거의 진보가 현재의 활동보다도 훨씬 많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솔로에 따르면,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총체적 효과들을 일반적으로 기술적 “잔차”라고 한다. 여기서 잔차는 경제적 계산에서 계상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진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시간 경과에 따라 일반적으로 증가하는 성질도 보인다. 현대 경제학이 20세기 중반까지 지식과 기술의 중심 역할을 대체로 무시했다는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잔차의 발견은 진짜 ‘확실한 것의 발견’이었다. 철학자, 역사가, 사회 사상가 들은 경제학자들이 1950년대에 진지하게 다루기 훨씬 이전부터 지식의 경제적 중요성을 토론하고 이해했다.
솔로가 잔차를 ‘발견했다’고까지 말하는 연유는, 1950년대에 그가 연구 성과를 내놓기 이전까지 경제성장이란 애덤 스미스에 기원을 둔 ‘고전적’ 생산 모델 위에서 주로 노동과 자본의 공급이 변화되는 내용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잔차의 정확한 규모와 추정 방법은 학계에서 토론의 단골 메뉴이지만, 기술적 잔차라는 의미심장한 존재는 오늘날 주류 경제학계에 널리 인식되어 있다. 경제학자 대부분은 지난 수세기에 걸친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어느 영향력 있는 전문가가 제시하는 비율은 대략 80퍼센트)이 노동자와 고용주의 노동과 자본 투입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기술 진보 때문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과학, 기술, 문화적 발전이 세대와 세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많은 경제사가들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지식이 현대의 부에 더욱 많이 기여했을 것이라고 본다.
1부에서는 과거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지식이 현대 경제성장에 기여한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한 여러 연구 성과들을 검토한다. 1장은 우선 솔로, 에드워드 데니슨, 모지스 애브라모비츠의 선구적 작업을 개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경제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성장 과정을 보다 잘 이해하게 해 주는 ‘성장 회계’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이 작업들을 검토하면서 지식의 역할과 사회적 의미를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견하고 현대 이전부터 기초가 다져진 장기적 발전 궤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커의 연구는 18세기 ‘산업 계몽’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시기는 제각기 발견된 원리들이 이해되고 다시 광범위하게 응용되었던 중대한 전환기였다. 여러 구체적 역사 연구들은 농업과 의류 생산에서부터 철강과 조선에 이르기까지 지식이 어떻게 생산성과 질적 수준을 높였는가를 논증했다. 네이선 로젠버그, 데이비드 노블 등의 연구는 정부와 여타 기관들이 어떻게 기술혁신을 현실 세계에 경제적으로 응용되게 만들었나를 보여 주었다. 여기에 지식의 성장을 알파벳, 쓰기, 수학, 과학적 방법 같은 기본적 인지 도구의 진화로 추적해 보는 한층 광범위한 문화적 연구가 보완되었다.
1부의 나머지 장들에서는 지식의 진화와 성장, 그리고 발명 과정에 관련한 다른 분야의 학자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심리적, 사회적, 역사적 연구들을 잔차에 관한 전문적 연구로 수렴하면 경제성장에서 지식의 중심적 역할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장에서 개괄한 개념은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다. 간단히 말해 현실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별도로 학습하는 것만으로 지식의 발달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식의 발달 과정은 단순하고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누적적이며 사회 전체에서 서로 연결되는 네트워크의 성질을 띤다. 이는 다층적 역사 변화와 더불어 뜻밖의 창조적 통찰력을 생산하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진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학습한 것을 공유하고 보존하는 방법의 점차적인 형성도 포함된다. 노벨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는 누적적 지식을 경제성장의 비계(건축에서 건물을 보수하거나 지을 때 세우는 보조대)로 특징화했다. 과학사가 데릭 프라이스가 지적했듯이, 역사적으로 수많은 기여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한군데로 모여 “밑바닥의 기초”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식의 연구 경계선을 상한선으로 계속 끌어올리는 거대한 지적 구조물”을 형성한다. 더욱이 거대한 지적 구조물은 단순히 바람결에 흩날려 사라지지도 않는다. 지식은 어떻게 계승되는가, 즉 어떤 방법으로 세대에 걸쳐 축적되고 일반적 유산으로 자리 잡는가라는 문제 역시 심층 연구의 주제가 된다.
2장에서는 지식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회 공동체 전체로 확산, 계승, 증가되도록 해 주는 과정, 장치, 시스템을 탐구하는 인지 심리학에 대한 연구를 살핀 것이다. 예를 들어, 멀린 도널드는 사회적 지식 축적물이 인간 지능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무수한 방식을 보여 준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이 도널드의 표현처럼 “생물적 기억의 외부”, 즉 책, 잡지, 도서관, 그리고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될 때까지 인류의 번영은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징적 저장 장치”는 17세기 이후에야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650년 이전 서구에서 간행된 과학 저널은 10종이 채 못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대략 5만 종의 과학 저널이 창간되고 거의 600만 편의 과학 논문이 지난 3세기 동안 출판되었다. 2000년에 미국의 모든 대학 도서관이 9억 개 이상의 서지 항목을 보유했다. 여기에 덧붙여 공공 도서관 시스템, 대학, 그리고 인터넷으로 용이해진 지식의 전달과 순환, 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지식을 이어 주는 특정한 전달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3장에서는 발명과 기술 변화의 역사, 1차 세계대전 이후 표면화되었던 연구비 분야를 탐색한다. 기술사가들은 처음으로 다윈의 관점을 인간 발달에 적용했다. 여기서는 진보를 ‘위대한 사람들’과 ‘위대한 발명’이 이뤄 낸 뛰어난 공헌의 연속으로 규정하는 전통적 기술 ‘영웅’관에 강력하게 도전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기술사가들은,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대부분의 기술이 실제로는 점증적이고 누적적으로 발전하는 현실을 세심하게 그려 냈다. 일반적으로 지식이라는 특수 영역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기여분이 쌓이면서 천천히 자라나다가 그것이 충분히 정착되었다고 보이는 특별한 순간에 다음 단계로서 이른바 ‘비약적 발전’이 거의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수많은 지식인들은 모두가 서로 동일한 개발 정보와 연구 기반에서 작업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실제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지점에 도달하곤 한다. 다음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약적 발전은 대개 확실하다.(확실하지 않다 해도 몇 달이나 몇 년 정도 내에서 일어날 공산이 매우 크다.) 첫 번째 사람이나 아니면 첫 번째로 대중의 관심을 얻은 사람이 인정받는 경향이 있는데, 알고 보면 ‘진짜’ 첫 번째 사람은, 맨 앞줄로 점프하고도 자기가 인정받기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달리 대중과의 관계에 능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로 기억하지만, 사실 엘리샤 그레이와 안토니오 메우치도 벨과 동시에, 심지어는 그보다 먼저 그 지점에 도달했다. 여기서 누구를 처음으로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비약적 발전’은 천재 한 사람의 엄청난 공헌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지식의 역사적 전개에서 일어난다는 단순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4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공동 지식은 역시 공공 부문의 노력을 통해 창조되곤 한다. 1990년대 하이테크 경제를 일으켰던 수많은 진보물들은 연구 프로그램과 기술 시스템, 그리고 대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은 공동 개발에서 직접적으로 성장했다. 가장 확실한 사례를 들어 보면, 인터넷은 1960년대 초반 미국 정부의 방위 프로젝트인 아르파넷(ARPANET)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컴퓨터 네트워크 개발에서 민간 부문은 투자는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현재의 거대한 소프트웨어 산업도 대개 공공 지원으로 개발된 컴퓨터 언어와 하드웨어 운용 체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오늘날 ‘신(新)경제’의 미디어 영웅들인 세계의 빌 게이츠들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 정부가 창조했거나 재정 지원했던 결정적 연구와 프로그램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진공관과 펀치카드를 가지고 일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제트기와 레이더에서부터 수많은 제약 산업의 진보를 뒷받침해 준 기초연구 재정 지원까지 다양하게 걸쳐 있다. 이는 최근의 현상만이 아니다. 1862년의 모릴법(Morrill Act)은 각 주마다 농업 대학을 지원했으며, 1987년의 해치법(Hatch Act)은 농업 연구의 연방 정부 기금을 제도화했고 미국 농민을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있게 만들었다.
종합해 보면, 1부에서 검토하는 다양한 관점들은 기술 유산의 중요한 역할, 그리고 몇백 년 전 세대부터 창조된 지식의 ‘거대한 돌출부’의 폭과 깊이가 새로운 이해 대상으로 조용히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관점은 다시 유산이라는 개념 자체에 관한 문제와 깊숙이 맞닿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2부에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기술 유산이 지닌 도덕적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부의 상당 부분이 과거의 공짜 선물이 가져다준 지식 생산물이라면 누가 그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자격이 있다면 얼마 정도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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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가 알페로비츠 Gar Alperovitz
진보적 정치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로, 메릴랜드 대학교 라이어넬 바우먼Lionel R. Bauman 석좌 교수이며 민주주의 연대Democracy Collaborative 초대 이사장이다. 주요 저서로 『원폭 투하 결정 The Decision to Use the Atomic Bomb』(1996), 『미국, 자본주의를 넘어서 America Beyond Capitalism』(2004)가 있다.
루 데일리 Lew Daly
공공정책을 연구하는 초당파적 싱크 탱크이자 활동가 조직인 데모스D?mos의 선임 연구원이다. 저서로는 『신과 복지국가 God and Welfare State』(200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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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원용찬
경제사와 경제사상을 전공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유한계급론: 문화와 소비, 진화의 경제학』『상상+ 경제학 블로그』『사회보장 발달사』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센코노믹스』『칼 폴라니의 경제사상』『죽음의 문화와 생명 보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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