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은
오직 빛을 통해서만 살아 있다.
―알퐁스 도데
책을 열어 상상의 여행을 떠나며
우리 모두의 몸속에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에는 이미 정해진 궤도가 있다.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고정된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건 대통령이나 대기업의 사장이나, 선생이나 학생이나, 군인이나 상인이나, 노동자나 재소자나 다 마찬가지다. 궤도가 반복되는 질서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때로 일상의 정해진 틀을 깨고 나와 자유롭게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우리 모두의 몸속에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의무와 구속, 억압과 권태, 압박과 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문득문득 ‘자기통제’의 수면 위로 불쑥불쑥 머리를 내민다. 그럴 때면 지금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여행이 시작된다. 일상을 탈출하여 모험과 발견, 만남과 감동이 시작된다. 삶의 자리를 바꿈으로써 눈에 보이는 풍경과 귀에 들리는 소리와 코끝으로 느끼는 향기와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감촉과 입속으로 들어오는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온몸으로 세상을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생각하며 평소에 소홀히 방치해두었던 자신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참다운 여행은 장소의 변화에서 시작하여 나 자신의 변화로 나아간다. 장소의 변화는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려주고 미래의 새로운 일을 구상하게 한다. 지난날들의 삶에 대한 반추와 성찰이 일어나면서 다가올 날들에 대한 새로운 계획들이 떠오른다. 그러기에 수많은 작가와 사상가 들이 유랑의 길을 떠났고 수많은 종교인과 성직자 들이 순례의 길에 올랐다. 그들은 붙박이 생활을 통해서 굳어진 타성적 사고의 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활기를 얻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떤 사람이나 장소와 만나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설명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힘에 의해 누군가를 만나고 어느 곳에 이르러 이야기가 시작될 때 우리는 ‘우연’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나의 의도가 전혀 개입되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데 가슴을 울리는 풍경이 나타나기도 하고, 영혼을 흔들어 그 이전과는 다른 정신 상태로 이끌어가는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들 각자는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자신의 취향과 취미에 따라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내적 요구에 부응하는 어느 장소에서 무언가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특정 사람이나 장소와 만나 받게 되는 특별한 인상은 그와 나 사이에 ‘선택적 친화성’이 작동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선택적 친화성은 우연도, 필연도 아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끌어 잡아당기는 힘이다. 어떤 선택적 친화성에 이끌려 1980년대에 프랑스 파리Paris에서 유학 시절을 보냈고 1990년대에는 프랑스의 남쪽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매혹되어 그곳을 여러 차례 여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의 순위를 매기자면 서울과 파리에 뒤이어 곧바로 프로방스가 온다. 그러나 서울과 파리가 나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면 프로방스는 나에게 언제나 새로운 탈출과 발견의 공간이다.
여행 체험은 언제나 직접적이고 일차적이며 구체적이다. 체험으로서의 여행은 구체적 장소, 구체적 사람, 구체적 음식, 구체적 풍경과의 직접적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현장이 없는 체험은 없다. 이 책의 현장은 프랑스의 남쪽 지방 프로방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프로방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알퐁스 도데가 쓴 양치기 소년 이야기 「별Les étoiles」에서 시작한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그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프로방스 뤼베롱Luberon 산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나의 가슴 깊숙한 곳에 각인되었다. 청소년 시절 나는 반 고흐가 아를Arles과 생-레미-드-프로방스Saint-Rémy-de-Provence에서 그린 그림들 속에 나오는 프로방스의 작열하는 태양볕에 감명을 받았으며 오페라 <카르멘>을 작곡한 비제의 모음곡 <아를의 여인>을 통해 프로방스의 정열을 느끼기도 했다. 대학 시절 읽은 김화영과 곽광수의 프로방스 체험기들은 햇빛과 더불어 미스트랄mistral이라는 바람의 존재를 알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프로방스라는 장소는 일찍부터 내 감수성의 한 뿌리를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꿈을 오래 꾸면 언젠가는 현실이 된다. 드디어 1980년대 유학 시절과 2002년 이후 두번째 파리 체류 기간 동안 열 차례 가까이 뤼베롱 산과 방투Ventoux 산이 펼쳐지고 론Rhône 강이 유유하게 흐르는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면서 아를과 루르마랭Lourmarin과 퐁텐-드-보클뤼즈Fontaine-de-Vaucluse라는 세 도시를 깊이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기회를 누렸다. 그래서 이 책은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내가 프로방스를 만나 발견하고 느끼고 사귀어온 개인적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경험한 느낌과 인상을 다룬 글로 시작한다.
이 책은 내가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에서 지낸 여름 한 달 동안 쓴 일기이다. 여행 안내서는 아니지만 일종의 ‘여행기’이니만큼 이야기는 프로방스의 자연 풍경과 오래된 도시의 역사 유적 등을 보고 듣고 느낀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일기’이기도 하다. 일기는 바쁜 일정 속에서 등한시했던 나 자신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한 글쓰기 형식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여행은 낯선 자연과 도시뿐만 아니라 모르던 사람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이 책에도 내가 프로방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이런저런 경우에 만난 프로방스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영혼과 만나 세상 사는 방식과 삶의 의미에 대해 나눈 대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가운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반 고흐다. 그래서 그와 나눈 대화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내가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반 고흐와 나눈 대화의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한 글을 덧붙였다.
여행을 하다보면 꼭 계획대로만 되지 않듯이 책의 출판도 계획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행이나 책 출판이나 상황과 심경의 변화에 따라 일의 순서나 내용이 뒤바뀌기도 한다. 이 책의 출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당초의 생각과 달라졌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애초에는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쓴 글이었다. 2005년 여름 새로 산 가벼운 휴대용 소형 컴퓨터에 익숙해지기 위해 프로방스에 와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들을 일기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의 프로방스 체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방스 일기’는 나만을 위한 일기에서 독자들과 함께 읽는 일기가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책에 앞서 2002년 초 파리에 도착한 이후 2004년 말까지 새로운 삶을 모색하던 시기에 쓴 ‘파리 일기’를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어떤 연속성이 있지만 ‘파리 일기’가 파리의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프로방스 일기’는 햇볕 내리쪼이는 남불의 여름 분위기에서 쓴 글이다. 어떻게 보면 2005년 여름에 쓴 ‘프로방스 일기’는 그 전에 썼던 ‘파리 일기’의 후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후편이 전편보다 먼저 출간된 셈이다.
나는 인생의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젊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나와 함께 프로방스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프로방스의 땅을 밟으며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프로방스에서
정수복
분주함에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한국인,
당신은 지금 프로방스로 가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고속 경제성장을 계속해온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은 ‘빨리빨리’병이다. 그것은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애쓰다가 걸린 병이다. 한국 사람들은 느리고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조급증에 걸려 삶을, 시간을, 풍경을, 음식을, 포도주를, 사람을, 햇빛을, 바람을, 정적을 음미하지 못하게 되었다. 프로방스는 그런 조급증을 치료하는 요양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곳에서 일정 기간을 지내다보면 무엇이든 깊이 느끼고 음미하고 교감할 줄 아는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프로방스는 결코 능률과 실질과 효율을 숭상하는 바쁜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며 무언가를 배우고 견문을 넓히려는 사람들이 찾아갈 곳도 아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소유 그리고 안락함을 꿈꾸는 사람은 크고 화려한 도시로 갈 일이다. 돈을 쓰고 싶어 안달난 사람들은 결코 프로방스가 지닌 아름다움과 비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세속의 허영을 뒤로하고 느리게 살려는 사람들이라야 숨어 있는 프로방스의 진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방스는 소유한 것이 많지 않아도 이 땅 위에 사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다. 프로방스 사람들은 한가롭고 여유 있게 즐기며 사는 방법savoir-vivre을 안다. 프로방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분주함과 부산함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주관하며 느린 속도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프로방스로 가야 한다.
시간은 빠르게 달아나기도 하고 천천히 흐르기도 한다. 그런데 프로방스에 가면 뜻하지 않게 아주 느리게 가는 시간을 체험하게 된다. 1984년 유학 시절 가을 어느 날 나는 멀리 푸른 지중해의 물결이 내려다보이는 생-폴-드-방스 부근의 언덕에 앉아 있었다.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은 다른 구경거리들을 찾아 다 떠나고 난 다음이라 그 언덕은 고요했다. 처음에는 눈을 뜨고 멀리 지중해 쪽을 바라보다가 언제부터인가 온몸에 햇빛을 받으며 눈을 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눈을 감았지만 지중해의 물결은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고 붉은 태양빛은 더욱 밝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머릿속이 서서히 환해지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장이 떠올랐다. 한참 뒤에 눈을 떴을 때야 나는 비로소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때 그곳에서 경험한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는 질이 다른 것이었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명상체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언가 영원한 것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그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로부터 14년 뒤 1998년 여름 아를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나는 돌로 만든 석관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로마 시대의 유적 알리스캉의 바윗돌 위에 앉아 있었다. 오후 3시경이라 기온은 30도를 웃돌았을 것이다. 더운 날이라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알리스캉의 끝자락에 위치한 생-토노레St. Honoré 성당 앞에 발굴 현장처럼 여러 크기의 돌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선, 움푹 파인 사각형 가장자리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는데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이 미스트랄 바람에 유유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불의 흰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과 나무가 주고받는 들리지 않는 대화가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간간이 푸른 하늘에 희고 긴 꼬리를 남기며 비행기가 지나가기도 했다. 큰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작은 가지도 흔들리고 나뭇잎까지 전해지는 그 바람의 파동을 바라보면서 나는 점차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가끔 나무와 바람이 나누는 대화를 호기심을 가지고 엿듣곤 한다.
1998년 여름 아비뇽에서 버스를 타고 루르마랭으로 갈 때도 특별한 시간 체험을 했다. 가랑비는 계속 내렸고 안개가 무럭무럭 피어올랐고 버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사방은 고요했다. 차창 왼쪽에는 뤼베롱 산맥이 계속 따라왔다. 모든 정거장마다 다 서는 완행버스 안에서 나는 미지의 세계 속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발에서 시작해서 발목 정강이 무릎 배 가슴에 이르도록 부드럽게 천천히 내 몸이 모래 속도 아니고 물속도 아닌 뭔가 신비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평화를 느꼈고, 어딘지 모를 고요 속으로 푹 침잠하는 느낌을 가졌으며,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나비의 꿈’에서 깨어났다.
속세에 살면서 속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프로방스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그런 순간들은 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 고르드의 세낭크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때나 루르마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실바칸느Silvacane 수도원의 회랑을 천천히 돌 때나, 아비뇽에서 론 강을 건너 빌뇌브-레-자비뇽Villeneuve-lès-Avignon에 있는 샤르트뢰즈에 가서 수도사들이 살던 작고 정결한 방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속세를 떠나 수도원에서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아직도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는
프로방스의 장소들
내가 체험한 프로방스는 프로방스 전체가 아니다. 프로방스 동쪽에는 니스, 칸, 생-트로페로 대표되는 해안가가 있고 동북쪽으로 난 나폴레옹 도로를 따라 그라스Grasse, 디뉴Digne, 시스테롱Sisteron, 안시Annecy로 이어지는 산악도시나 호반도시도 있다. 그러나 나의 프로방스는 그쪽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나의 프로방스는 뤼베롱과 알피유 산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아를과 아비뇽, 서쪽으로는 마노스크, 남쪽으로는 엑상-프로방스와 마르세유Marseille로 이어지는 프로방스의 서쪽 지역이다. 거기에 지중해에 떠 있는 코르시카 섬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프로방스가 수많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그곳의 동쪽 부분에서 몇 개의 점을 발견했을 따름이다. 아직도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는 프로방스의 구석구석은 무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발견한, 아니 내가 체험한 ‘나의 프로방스’를 사랑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나의 프로방스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를의 반 고흐 센터, 퐁텐-드-보클뤼즈에 있는 미셸의 작은 별장, 카드네에 있는 드 콜롱그 가문의 영지와 저택, 루르마랭의 라셰즈 가족의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보냈던 여름 바캉스의 기억은 언제 떠올려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앞으로 프로방스의 또 다른 곳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한 번에 아주 조금씩만 발견하고 싶다. 천천히 결코 서두르지 않고. 새로운 발견도 좋지만 나는 이미 아는 구석들을 더욱 그윽한 눈빛으로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진정한 발견의 길은 새로운 땅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고 보는 데 있다.” 나는 거기에다가 “사랑이 있어야 보인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제 나의 사랑스러운 프로방스로 떠날 시간이다.
(서문 전문, 본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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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정수복
현재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정수복은 사회학자이자 작가이며 ‘전문적인’ 산책자이다.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 파리에 유학하여 1988년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다가 1993년 이후에는 대학 강의를 중단하고 비판적 지식인의 입장에서 환경운동을 중심으로 시민운동 현장에 참여하며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 과정에서 『의미세계와 사회운동』『녹색 대안을 찾는 생태학적 상상력』『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단체의 역할과 정책과제』『시민의식과 시민참여』『바다로 간 게으름뱅이』(공저)『한국인의 일상문화』(공저) 등의 저서를 남겼고, 『현대 프랑스 사회학』『새로운 사회운동과 참여민주주의』『현대성 비판』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1999년에서 2001년 사이에 KBS TV <정수복의 세상 읽기>, CBS 라디오 <시사자키> 등의 진행을 맡았다. 2002년 초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사회학적 분석 및 개입 연구소CADIS’ 초청연구원으로 있었고 같은 학교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했다. 그가 파리에서 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는 2007년 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고, 2009년 파리 산책 체험을 바탕으로 쓴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은 문화체육관광부 권장도서, KBS <책 읽는 밤>이 선정한 ‘2009년의 재미있는 책’, YES24 선정 2009년 추천도서로 꼽혔다. 2010년에는 파리 산책기 3부작의 두번째 책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을 펴냈다. 그는 ‘과학적 사회학’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인문학, 예술, 종교에 두루 관심을 기울이는 ‘예술로서의 사회학’을 추구하면서 문학적 향기가 나는 글을 쓰려고 한다. 객관적 사실과 지식의 제시에 만족하지 않고 삶의 체험 속에서 얻은 감흥과 의미, 감동과 미적 체험을 함께 나누는 투명하면서도 따뜻한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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