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하여
“권력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책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르몽드Le Monde
2008년 11월 11일 동트기 전, 프랑스 중부 타르낙Tarnac의 산골 마을에 대테러진압 경찰부대가 경찰견을 이끌고 헬리콥터의 호위 속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잠들어 있던 주민들을 침대에서 끌어냈고 모두 20명을 연행했다. 당국은 그중 9명을 ‘테러 계획과 연관된 범죄조직’이자 최근 철도 사보타주의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들은 파리의 중산층 출신으로 부족함 없이 성장하고 대학원 이상의 교육을 받은 27~34세의 젊은이로 밝혀졌다. 곧이어 프랑스 내무부장관 알리오 마리Michèe Alliot-Marie는 이 9명이 ‘극좌 아나키스트 자치조직’이자 ‘반란의 조짐’의 저자인 ‘보이지 않는 위원회’라고 발표했고, ‘반란의 조짐’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이들은 ‘타르낙Tarnac 9’이라 불렸으며, 그중 쥘리앙 쿠파Julien Coupat는 조직의 리더이자 ‘반란의 조짐’의 핵심 저자로 지목됐다.
그러나 자급자족의 공동체 생활을 꿈꾸며 시골에 정착하여 가끔 지나가는 행인을 위한 구멍가게를 열고 이웃한 산골 마을을 위한 영화 상영을 하던 이 젊은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단죄할 증거가 없어(이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은 것도 추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경찰은 주장했다) 2009년 3월 쥘리앙 쿠파를 마지막으로 모두 풀려났다. 이와 관련된 일련의 수사와 조사는 결국 ‘반란의 조짐’이란 문건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 <르몽드>는 이 사건의 배경을 두고 “권력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책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평했다.
2007년에 ‘반란의 조짐’이 프랑스 출판사 라파브리크La Fabrique를 통해 소량 인쇄되어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만 해도 그 영향은 미미했다. 그러나 이 책은 곧 익명의 번역자들에 의해 여러 언어로 소개되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어 2009년 미국에서 정식 영문판이 나오자 뉴욕에서는 독자들의 자발적인 출간 기념식이 벌어졌으며, 이 소동을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가 보도할 정도가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 우익 논객 가운데 한 명인 글렌 벡Glenn Beck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내가 읽어본 것 중 가장 사악한evil 책이다. 하지만 피하지 말고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고 대비할 수 있다.”고 거듭 호소했다. 미국에서 ‘반란의 조짐’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으며 영어권 최대 서점인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에 묘사된 현대 사회와 그 대처법에 대한 극도로 상반된 평가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의 이집트, 중동 사태를 맞이하며 보수 논객 글렉 벡과 빌 오렐리Bill O?Reilly가 <폭스 뉴스>에서 현 상황과 이 책의 연관성 및 영향력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등 ‘반란의 조짐’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다.
서문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구가 없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박탈해버린다.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다 주장하는 자들은 조만간 환멸에 부닥치고 만다. 모든 것이 보다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것은, 지극히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원조 펑크족의 의식 수준으로까지 치달은 이 시대의 금언金言이다.
정치적 대의代議의 장은 폐쇄되었다. 좌左든 우右든, 때로는 거물인 척 때로는 깨끗한 척할 뿐인 똑같은 허섭스레기에 불과하며, 커뮤니케이션의 최신 경향에 맞춰 그때그때 표제를 갈아치우는 매장賣場 전시대 같은 존재들이다. 아직도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순전히 항의의 표시로 표를 던지다 못해 결국에는 투표함을 박살내고픈 의도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투표하는 것이 사실상 투표 자체에 대한 반감의 표출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현재 확인되는 그 무엇도 작금의 상황을 감당하기엔 한참 역부족이다. 대중은 침묵 속에서조차, 그를 지배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꼭두각시들보다 훨씬 성숙한 것 같다.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인 벨빌Belleville 지구의 그 어느 노인네도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연설보다는 현명한 이야기를 하신다. 사회라는 냄비의 뚜껑이 삼중으로 밀폐되어 있는 가운데, 내부의 압력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솟구쳤던 “죄다 물러나라!Que se vayan todos!”는 절규의 망령이 지도자들 머릿속을 심각하게 휘젓기 시작한다.
2005년 11월의 소요 사태(프랑스에서 2005년 10월에 시작되어 3개월 이상 지속된 일련의 폭동 사태. 10월 27일 파리 센생드니의 아랍과 아프리카 거주민 지역인 클리시수부아에서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십 대 소년 두 명이 감전사하면서 촉발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며 인종, 종교 차별 문제로 비화되었다. 11월 8일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는 모든 이의 의식 위에 여전히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처음 불씨는 약속으로 가득했던 지난 십 년의 세례식처럼 피어올랐다. 미디어가 조장한 ‘변두리 지역과 국가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나름 효과는 있었을지 몰라도 진실성이 결여된 것이었다. 불은 도심까지 번져갔지만 그에 관한 소식은 조직적으로 차단되었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거리가 연대連帶의 화염에 휩싸였지만, 그곳 주민들 말고는 상황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 현지 불길이 잡혔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색출된 용의자들의 온갖 프로필을 한데 묶는 것은 계층도, 인종도, 사는 지역도 아니오, 오로지 기존 사회에 대한 증오였다. ‘변두리 지역의 반란’은 1980년에도 이미 선보인 것이었다. 지금 와서 참신한 점은 그것이 기존 형식들과 단절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폭도들은 더 이상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리더들의 지시도, 사태 정상화를 주도할 지역 단체의 지침도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지친 나머지, 그리고 미디어의 왜곡과 의도적 침묵에 의해서만 종결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당시의 사태 속에서는 설사 ‘SOS Racisme’(프랑스 반反인종차별 단체) 같은 집요한 단체라 해도 좀처럼 터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야간 기습과 익명의 공격들, 사설辭說 하나 없는 파괴 공작들은 정치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틈을 최대한 벌려놓는 역할을 했다. 아무런 요구도 메시지도 없이 위협 자체만을 염두에 둔, 따라서 정치엔 무관심한 이 같은 도발 행위의 분명한 중요성을 대놓고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치를 이처럼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 속에 포함된 순전히 정치적인 요소를 보지 못한다면 아예 장님이거나, 지난 삼십 년 간 진행되어온 젊은 세대의 ‘자율 운동’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 ‘피의 주간’(1871년 파리코뮌의 붕괴로 끝이 난 일주일에 걸친 진압 기간)이 끝날 무렵의 파리 기념물들보다도 존중할 가치가 없어진 사회의 잡동사니들을 우리는 막돼먹은 아이들처럼 닥치는 대로 불태워버린 것이다.
현재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우선은 반어적으로 ‘사회’라 불리는 환경과 제도, 개별적 세포들의 모호한 집합체에 구체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고, 나아가 공통의 경험을 위한 언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부富 또한 나눌 수 없는 법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가능성을 녹여내기 위해 계몽주의와 결부된 반세기 동안의 싸움이 필요했고, 가공할 ‘복지국가’를 잉태하기 위해 노동을 둘러싼 한 세기 동안의 투쟁이 필요했다. 이른바 새로운 질서를 담아낼 언어를 창출하는 투쟁이었다.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일이 전무하다. 지금 유럽은 너 나 할 것 없이 남 눈치 봐가며 할인 매장 리들Lidl에서 장을 보고, 같은 값으로 조금이라도 더 돌아다니기 위해 저가 항공을 이용하는 가난한 대륙이다. 사회적 언어 속에 표명되어 있는 그 어떤 문제점들도 언어 자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퇴직 문제’, ‘노동 불안정 문제’, ‘청년 문제’ 그리고 ‘청소년 폭력 문제’ 등은 그것들의 갈수록 과격해지는 행동 표출을 경찰력에만 의존해 다스리려 하는 동안 언제까지나 미해결 상태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말도 안 되는 품삯 받아가며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네들 밑이나 닦아주는 일이 근사하게 포장되기는 불가능하리라. 바닥 청소일보다 범죄의 길에서 보다 적은 굴욕감과 보다 많은 이득을 맛본 사람들은 결코 그들의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감옥은 그들에게 사회에 대한 애정을 주입시키지 못할 것이다. 삶을 향유하고자 하는 퇴직자들의 열망은 매달 받는 자신들의 연금이 삭감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상당수 청년들에게서 보이는 노동 거부 현상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의 들고일어날 지경까지 치달은 자들에게 단순히 내일의 수입을 기대하자는 식의 조치로는 새로운 ‘뉴딜 정책’도, 새로운 협정도, 새로운 평화도 기대할 수 없을 터다. 그러기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너무 많이 증발해버렸다.
결국엔 ‘현재 이상 무異常無!’를 위한 압박과 더불어 경찰력의 증강 배치만이 해결책으로 더욱 부각되어갈 것이다. 경찰 스스로도 인정했듯, 지난 7월 14일 센생드니Seine-Saint-Denis 상공을 비행한 무인 정찰기야말로 휴머니스트들의 어설프고 모호한 전망보다 훨씬 선명하게 우리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정찰기가 비무장 상태였음을 애써 해명하는 저들의 태도는 현재 우리가 어떤 길로 접어들고 있는가를 오히려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제 지역들의 분할과 고립은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 소위 ‘문제 지구地區’에 인접한 자동차 전용도로들은 그 자체로 일종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형성해 인근 주택 단지로부터 그곳을 철저히 격리하게 된다. 선의의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공동체’별로 거주 지구를 관리하는 것은 더없이 효율적인 수단으로써 그 명성이 자자하다. 대도시권역이라든가 주요 도심 지역들은 갈수록 교묘하고, 복잡하며, 현저하게 진행되는 해체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호사스런 생존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은, 날로 뻔뻔스러워지는 사법적 비호 아래 사복 체포조와 사설 경비업체, 즉 현대판 ‘자경단’이 무한정 활개 치는 사이, 자신들의 흥청망청하는 불빛들로 행성 전체를 뒤덮어버릴 기세다.
현재 상황의 총체적인 난맥상은 도처에서 인지됨과 동시에 또한 부정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 문학자가 이 문제를 나름대로 진단하고는 있지만, 매번 알아듣기 힘든 전문 용어나 주워섬기면서 결론 없는 얘기들만 뱉어낼 뿐이다. 이제 공존의 틀이 폐기되고 결단의 순간이 가까워졌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소시민 스스로 자신의 정신 상태를 해부하는 가운데 전쟁을 선포하는 마피아 K’1Fry(프랑스의 유명 랩 그룹)의 최신 유행가 가사에 잠시 귀를 빌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책은 가상의 집단 명의로 세상에 나왔다. 굳이 말하자면, 책을 쓴 사람들 말고 저자가 따로 있는 셈이다. 책을 쓴 이들은 당대에 흔히 나도는 이야기들, 술집 테이블에서 주절대는 잡담들, 침실 문 너머로 새어나가는 수군거림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나아가 보편적 억압으로 인해 정신병원에만 처박혀 있어야 했던 불가피한 진실들과 고통의 시선들을 또렷하게 부각시켰을 뿐이다. 요컨대 그들은 상황을 기록하는 리포터의 역할에 충실했다. 작금의 상황이 워낙 급진적인 만큼, 이야기가 혁명으로 귀결되는 것은 적절한 논리의 추이라 하겠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면서 결론을 회피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서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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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보이지 않는 위원회 commité invisible
이 책을 쓴 익명의 프랑스 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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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성귀수
1991년 봄, 지금은 폐간되고 없는 <문학정신>의 ‘문제작을 찾아서’라는 코너를 통해 처음 시를 발표했다. 그의 기상천외한 장시들은 극소수 동료문인들의 경악과 열광 속에서 희소하게 발표되어 왔다. ‘시인’이라는 호칭보다 ‘시 쓰는 광인’이라는 이름을 더 선호하는 그는 은둔자적인 취향에 이끌려 손을 댄 번역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전문번역가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태어나 “미련하다 보니” 불문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고, 지금은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언어조립공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집으로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이교도 회사』『일만일천번의 채찍질』『오페라의 유령』『적의 화장법』『조선기행』『신성한 똥』『천안문의 여자』『창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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