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돈 잘 썼다?
내가 1980년에 산 프로판 그릴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고장 나기 시작했다. 맨 처음 고장 난 건, 조잡한 기계식 불꽃 발전기로 가스에 불을 붙이는 점화 버튼이었다. 그릴에 불을 붙이는 일은 이제 섬세한 작업이 되었다. 먼저 가스를 켜고, 몇 초간 기다린 후에, 성냥을 안으로 던진다. 너무 빨리 던지면 버너 아래에 닿기 전에 꺼져버린다. 가스를 켠 후 너무 오래 기다리면 작은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두 번째 문제점은 버너 위의 금속판이 중간부터 녹이 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요리가 놓인 중심부인 그 조그만 영역에는 엄청난 양의 열이 집중되지만 다른 부분에는 열이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그 뜨거운 부분에 골고루 닿도록 재빨리 뒤집고 돌리는 수고를 하면 꽤 훌륭한 치킨과 작은 스테이크 정도는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생선을 굽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내 그릴이 가진 여러 문제점들은 분명히 수리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나는 수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수리 비용이 내가 처음에 그릴을 샀던 가격인 89.95달러를 초과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키진 않았지만 새 그릴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나갔다.
여러분이 시장을 최근에 둘러보았다면 선택 가능한 상품의 종류가 10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음을 알 것이다. 10년 전 내 희미한 기억으로는 붙박이 물품 보관용 캐비닛과 확장 칸이 양쪽에 붙은 제품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장식물들이 달려 있어도 그 가격은 최대 수백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오늘날의 바이킹 프론트게이트 프로페셔널 그릴 같은 것은 정말이지 아예 있지도 않았다.
이 그릴은 천연가스나 프로판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며, 적외선 감지 회전식 고기구이 기구가 장착되어 있어, 40명의 손님을 위하여 0.53제곱미터 불판 표면에 9킬로그램 무게의 칠면조를 천천히 완벽하게 불에 굽는다. 또한 “1.5킬로와트 화력의 버너와, 풍부한 숲의 향미로 음식을 숙성시키는 방수 목재 서랍장을 활용하는 훈제 시스템을 내장하고 있다. 불판 표면 옆에는 보조 가스레인지가 있다. 2.25킬로와트 화력만 내는 주방에 있는 보통의 가스레인지와는 달리, 이 가스레인지는 4.5킬로와트 화력을 낸다. 이 능력은 주로, 짧은 시간 동안 고열을 가하는 요리법을 사용하는 민족의 요리를 만들거나, 물을 넣은 가마솥을 빨리 끓게 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쓰촨식 돼지고기 요리를 뒤뜰의 식사에 간절히 올리고 싶었다면, 손님들은 막 들이닥치려 하는데 요리를 너무 늦게 시작한 감이 있고 요리해야 할 옥수수가 40이삭이나 남아 있다면, 바이킹 프론트게이트는 당신에게 필요한 추가적인 힘을 준다. 장비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데다 에나멜과 놋쇠 빛깔 광택이 나고, 너비는 2.1미터에 달한다.
바이킹 프론트게이트 프로페셔널 그릴의 카탈로그를 보면, 운송 비용과 수수료를 제외한 가격이 5,000달러다. 그만큼 돈을 낼 용의가 없다면, 그보다 싼 모델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제작사가, <포브스 Forbes>와 <베너티 페어 Vanity Fair>에서 4쪽에 걸쳐 광고를 한, 스테인리스로만 되어 있는 베버스테픈 서밋 그릴은 3,000달러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로 0.45미터, 세로 0.6미터 크기의 불판 보조 가스레인지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구매자들을 위해 프론트게이트는 “멋진 가격에 프로의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모델을 1,140달러에 제공한다.
프론트게이트 제품은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남긴 모델이라도 우리 대부분이 단지 10년 전에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한다. 그리고 정말로, 매년 팔리는 1,200만 개의 숯불과 가스 그릴은, 아마 내가 새로 살 그릴까지 포함해서, 아직 700달러 미만인 제품들이다. 그러나 2,000달러가 넘는 그릴은 지금 시장에서 결코 드문 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정도 가격의 그릴은 “연 매출이 12억 달러인 이 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부문”이다.
가스 그릴 산업의 소비 패턴spending pattern 진화는, 최근 수십 년 동안 벌어진 광범위한 변화의 일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대중이 받은 인상은, 오직 가장 구경거리가 되는 사례들만 매체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오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최근의 한 전형적인 기사에서 <뉴욕 타임스 New York Times>는 서른두 살의 저지시티(미국 뉴저지 주 북동부에 있는 뉴욕과 가까운 항구 도시) 은행가인 앨런 윌직이, 자신과 동생이 막 햄프턴스에 지은 사치스러운 중세풍의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실었다.
Q: 이 성을 짓는 데 거의 1,000만 달러가량 들었지요. 왜 그토록 화려한 걸 지었습니까?
A: 짓고 싶었으니까요. 그건 마치 세계에서 가장 큰 이렉터 세트(Erector set, 어린이용 조립 완구 상표)를 갖는 것과 같죠. 2억 달러짜리 은행을 사나, 200억 달러짜리 은행을 사나 드는 노력은 같습니다. 집도 마찬가지죠. 책임 있게 건사할 수 있는 수준에서라면 가장 큰 집을 사는 게 낫지요. 우린 14달 동안 1,300제곱미터짜리 집을 지은 겁니다. 우리가 많은 재밌는 것들이 딸린 750제곱미터짜리 집을 지었다고 해서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Q: 당신의 수영장에는 수중 음악 감상 시스템이 있고, 실내에도 실외에도 온수 욕조가 설치되어 있고, 테니스코트, 금빛 테두리의 거울에, 갑옷상도 6개나 있군요. 당신의 성에 장난감이나 볼거리를 하나 더한다면 뭘 넣고 싶으세요?
A: (잠시 생각하다) 아무것도 추가할 게 없습니다. 우리가 더 넣고 싶은 게 있었다면, 이미 넣었겠죠.
윌직 같은 사람들의 소비 습관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험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독자들의 삶과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슈퍼리치(superrich, 순 자산이 3,000만 달러(약 280억) 이사인 사람, 부자 중의 부자)의 소비는 사실, 수십 년 전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전체 소비에서는 여전히 작은 부분만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들의 구매 행태는 처음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중위 소득 가구, 심지어 하위 소득 가구의 소비 패턴에 침투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선도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상층의 폭주적인 소비 패턴은 바이러스가 되어,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를 사로잡은 사치 열병을 낳았다.
따라서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슈퍼리치의 맨션이기는 하지만, 그 보다 더 뉴스 가치가 있는 사실은 오늘날 미국에서 지어지는 집은 1950년대 집에 비해 평균 2배가 넓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25만 달러나 되는 12기통 람보르기니 디아블로(Lamborghini Diablo)의 표시 가격sticker price이 사회 비평가들의 손가락질을 받지만,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오늘날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평균 가격 자체가 22,000달러를 넘어섰고 이는 10년 전보다 75퍼센트나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소득 등급 중 어디에 속하든,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는 거의 영향 받지 않는다고 얼마나 생각하건, 소비 환경에서 일어난 최근 변화의 효과로부터 당신은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당신이 결혼식이나 생일날 줘야 하는 선물의 종류나, 기념일 저녁 만찬에 써야 하는 돈의 액수, 좋은 학교가 있는 동네의 집을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집값, 가족이 부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길 원할 경우 몰아야 하는 차의 크기, 아이들이 조르게 될 스니커즈의 종류, 자녀가 졸업 후 장래가 보장되려면 다녀야 하는 대학, 특별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와인의 종류, 구직 면접에 갈 때 입어야 하는 옷의 종류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입장에서는, 우리가 구매하는 물품들이 최근 업그레이드된 것은 우리가 좀 더 생산적이고, 따라서 더 부유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징표라고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는 차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고 더 호화로운 장비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더 안전하고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비록 사회 비평가들이 현대 기기에 붙어 있는 가외의 장식을 풍자할지라도, 그들 중 누가 현재 가지고 있는 기기를 20년 전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바꾸겠는가? 비록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고 하여도, 우리 중 대부분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사람들에게 삶의 질을 가장 높여줄 한 가지 요소를 뽑아보라고 했을 때, 가장 많은 답변은 “더 많은 돈”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소비 패턴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경제적 서열에서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살림살이가 극적으로 좋아졌지만, 미국의 중위 소득 가구는 지난 20년 동안 사실상 아무것도 나아진 바가 없고, 아래의 절반은 실질 임금이 10퍼센트 이상이나 감소하는 고통을 겪었다. 영국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런 패턴은 다른 나라에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위나 하위 소득 가구는, 소득은 그대로이거나 감소하는데 더 높은 소비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서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급격히 늘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꾸준히 떨어졌으며 이제는 다른 주요 산업 국가 어디보다도 훨씬 더 낮은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 파산 신청은 어느 때보다 많다.
오늘날 사치스러운 물품들을 쉽게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있다. 우리 모두─부유하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해당되지만 특히 부유한 사람들─는 예전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휴가는 더 짧아졌다. 가족, 친구들과 더 적은 시간만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자고, 운동하고, 여행하고, 독서하는 등 심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많은 활동들에 쓸 시간이 더 적어졌다. 저축률은 계속 하락해 우리의 경제 성장률이 낮아졌으며, 점점 더 많은 수의 가정이 은퇴 후 지금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염려하게 되었다. 전체 소비에 비해 사치품 소비가 4배나 더 빨리 증가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의 고속도로, 다리, 물 공급 시스템과 그 밖의 다른 공공 기반 시설은 악화되어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공원과 거리는 점점 더러워지고 있으며 더 혼잡해지고 있다. 가난과 마약 중독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폭력 범죄율은 몇몇 시에서는 사상史上 최고점에서 최근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비율의 중위 소득과 상위 소득 가구들은 철벽으로 둘러쳐진 지역 공동체 뒤에서 은신처를 찾고 있다.
이런 경향에 대해 염려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거나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사회 비평가들의 투덜거림을 듣는 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내용인즉슨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돈을 쓸 수만 있다면 사회 전반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적어도 슈퍼리치들이 쓰는 돈을 더 나은 용도에 쓸 수 있다는 건 상식인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 그리스의 선박왕)의 요트인 크리스티나호에 있는 높고 둥근 의자는 버터처럼 부드럽고 충격적으로 비싼 향유고래의 음경 포피로 만든 커버가 씌워져 있다. 그 배의 수도꼭지는 순금으로 만들어졌으며, 수영장에 있는 스위치를 올리면 모자이크 타일로 된 무도장이 수영장 위로 깔리고 스위치를 내리면 다시 접혀 들어간다. 크리스티나호는 오나시스가 라이벌인 또 다른 선박왕인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Stavros Niarchos를 능가하기 위해 값비싼 전투에서 사용한 일제 사격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니아르코스의 요트는 114.3미터의 아틀란티스호였는데, 이 배를 설계한 조선造船 전문가는 오나시스의 배보다는 최소한 15미터는 더 길어야 한다는 명시적인 지시를 받았다. 두 사람의 보트를 좀 더 작게 만들어서 아낀 돈으로 배고픈 아이들에게 학교 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는 점에 진심으로 의문을 가지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오직 극단적인 사람들만이, 돈이 현명하지 않게 쓰이고 있다고 관료가 생각하면 그 돈을 몰수할 권한을 정부에게 주고자 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올바르게 상기시켜주었듯이, 오나시스나 니아르코스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해준 바로 그 인센티브가 새로운 수백만의 고용을 창출하고 전반적인 번영의 수준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계속해서 기꺼이 열심히 일하고 위험을 감수하도록 해야만 우리의 생활 수준이 계속 높아질 수 있다면, 때때로 그들이 바보 같은 일에 돈을 쓴다고 해서 정말로 문제가 될 게 무언가?
사회 비평가들이 현재 우리의 소비 패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논지를 제대로 짚는 데 계속 실패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흥미로운 주장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상황을 낫게 만들 실용적인 방법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 주장의 중심 전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한 “예”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패턴보다 더 강하게 선호할, 시간과 돈을 쓰는 대안적인 방법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태에 이르는 단순하고도 실용적인 방법도 존재한다.
이 주장의 첫 번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많이 개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회 비평가들은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최선인가에 관한 자신들의 직관과 개인적인 편견에 주로 의존했다. 반면에 나의 접근은 인간 복지human well-being의 결정 요인에 관한 광범위한 과학 문헌에서 나온 증거들을 검토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다수의 주의 깊은 연구들이, 물질적인 재화의 전반적인 증가는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복지에 측정할 수 있는 아무런 이득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더 큰 집과 더 빠른 차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연구들은 추가적인 소비가 더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는 다양한 범주들을 규명해준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돈과 시간을 교통 혼잡을 완화하는 일이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데나, 도시의 공기와 물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쓴다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내 주장의 더 참신하고 도발적인 부분은, 다른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서도 그러한 변화를 실제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료적인 위원회에 어떤 구체적인 소비 유형이 낭비적인가 판단할 권한을 줄 필요가 없다. 개인과 기업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자세히 지시하는 규제를 할 필요도 없다. 자기를 부인하는 고통스러운 행위를 할 필요도 없다. 재능 있고 근면한 사람들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도록 이끄는 인센티브를 불구로 만들 위험을 떠안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향유하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자유 중 어느 것도 축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그런 위험을 안는 조치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소비 인센티브를 간단히 수정해서, 좋은 삶에 대한 우리 각자의 비전이 합당하기만 하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그것을 더욱 온전하고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조치다.
언뜻 보면 터무니없는 주장 같다. 즉각 떠오르는 질문은, ‘더 나은 생활 조건을 그토록 쉽게 달성할 수 있다면 왜 이미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이다. 더 짧은 시간만 일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더 행복해진다면, 비록 그러한 선택이 더 작은 집에 살며 덜 비싼 차를 모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왜 당장 그렇게 하지 않나? 주당 노동 시간이 30시간이면서도 흥미로운 직업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쉬운 대답은 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고용주들이 현재의 주당 노동 시간에 만족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 중 많은 수가 그런 직업을 원한다면 그에 맞추어 직장의 일을 조직할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노동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노동 공급자, 즉 노동자가 임금 대신에 여가를 선호한다면 임금을 줄어들고 여가 시간은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소위 자발적 검약 운동(voluntary simplicity movement, 단지 물질적 생활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긴박한 삶의 리듬과 구조를 단순하고 느긋하게 바꾸자는 취지의 운동. ‘자발적 단순성 운동’이라고도 한다)은 좀 더 소박하고 덜 서두르는 생활 양식lifestyle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면서 소비 수준을 낮추라고 촉구하는, 자조自助법에 관한 인기 있는 책 십여 권을 출간시켰다. 이런 책들이 빠른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저자들이 상당한 수의 독자들에게서 공감을 얻어냈음을 시사한다. 그들의 낙관적인 메시지는, 더 편안하고 스트레스도 없는 생활 양식은 결심하기만 하면 우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필요한 일은 우리의 욕구appetite를 통제하는 일이 전부라고.
그러나 이 주장들이 순진할 만큼 낙관적인 견해임을 알게 된다면, 회의주의자들을 용서하게 될 것이다. 뭐라 해도 사람들은 항상 그들의 상황을 개선할 길을 찾아 헤매왔다. 더 소박한 생활 양식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정말로 더 행복해진다면, 그 점을 알기 위해 자조 매뉴얼을 들출 필요는 분명히 없어 보인다. 만약 그랬다면 그 교훈은 우리 문화의 공유된 지혜로 늘 내려왔을 것이다.
우리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 일하고 더 많은 물품을 산다는 사실은, 현 상태를 옹호하는 이들이 현재의 소비 패턴은 그 모든 외관상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바를 보여줌이 분명하다고 결론짓게 한다. 물론 더 큰 집에 살면서도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멋진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큰 집을 압도적으로 선택하는 것 같다. 이것은 강력한 반박이며, 사회 개혁가들은 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기 전에는 계속 현 상태의 옹호자들과의 토론에서 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가장 열성적인 자유 시장주의자free-marketeer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듯이, 합리적이고 정보에 밝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선택을 합산한 것이, 그들이 전체의 관점에서 승인할 상태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가장 명확한 사례는 환경 오염을 초래하는 행위다. 수백만의 자동차 운전자들이 로스앤젤레스에 자발적으로 차를 몰고 일하러 간다는 사실이, 그로 인해 생기는 도시를 뒤덮는 스모그를 승인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카풀이나 버스를 타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개인도 차를 몰았을 경우와 같은 정도로 더러운 공기를 결국 마시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많은 도시에서 스모그 현상이 과도하게 발생한다. 그 불편함은, 만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카풀을 하거나 버스를 타도록 만들 수 있다면, 감수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우리는 상당히 더 깨끗해진 공기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은 오직 자신의 선택만을 통제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선택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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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로버트 H. 프랭크 Robert H. Frank
미국 코넬대학교 존슨경영대학원 경제학 교수로, 맨큐, 테일러, 크루그먼, 버냉키 등과 함께 가장 유명한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이다. 조지아공과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주는 저명한 경제학상인 레온티에프 경제학상을 받았고, 미국동부경제학회장을 역임했다. <뉴욕타임스>에 연재하는 칼럼 ‘경제의 현장 Economic Scene’을 통해 날카로운 분석력과 유머러스한 필치로 복잡한 경제 현상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어 전 세계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같이 쓴 『버냉키 프랭크 경제학』(2010)을 비롯하여 『이코노믹 씽킹』(2007), 『승자 독식 사회』(2008), 『부자 아빠의 몰락』(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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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한
시민교육센터(www.civiledu.org)의 공동 대표를 맡아 대안 민주주의와 정치철학 담론 형성을 위해 애쓰는 한편, 변호사로서 노동자들을 위한 소송 대리 및 변론을 하고 있다.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어떻게 하면 그런 사회를 이룰 수 있는지를 화두로 시민교육센터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치 열병』에서 제시하는 ‘누진 소비세’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저서로는 『너의 의무를 묻는다』(2010), 『학교를 넘어서』(2010), 『콜버그의 호프집』(2005), 『탈학교의 상상력』(2000)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이반 일리히의 유언』(2010), 『포스트민주주의』(2008), 『계급론』(2005),『성장을 멈춰라』(200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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