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서문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부모의 출생부터 그들의 첫 자식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기간은 대략 30년이었다. 우리는 그 기간을 한 세대라고 부른다. 30여 년 전인 1971년 초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지금 두 번째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첫 세대가 끝나는 지금,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말은 이제 상투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갈피 속 주인공들인 옛 인디언 예언자들의 후손들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지난 세대에 몇몇 주거지역 부족은 번창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그들 부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부족 내에서도 이견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식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겪는 좌절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법률가와 의사, 대학교수, 컴퓨터 전문가, 예술가, 작가, 그밖에 거의 모든 직업이나 분야에서 인디언을 만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몇몇 인디언 부족은 여전히 살아갈 적합한 장 소가 부족하다. 미국에서 가장 궁핍한 곳은 인디언 주거지역이다.
내가 그동안 받은 편지를 보면 이 책에 삶을 불어넣은 독자들은 미국이라는 이 특이하고 경외스러운 장소에 속한 100여 인종 거의 모든 집단에 두루 걸쳐 있다. 미국 인디언들은 비교적 적은 수이지만, 다른 미국인들은 대부분 인디언의 역사와 예술, 문학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 및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에 진심으로 매혹되어 있는 듯하다. 이러한 광범위한 관심사는 미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과 문화를 가진 나라에도 존재한다. 불의와 압제의 과거를 지닌 어느 작은 나라를 하나 거명해보면 이 책은 그곳에서도 발간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씌어진 말들이 세월에 무디어지지 않고 본래 나의 의도대로 미래 세대에게도 진실되게 직접적으로 계속 전달되기를 바란다.
2000년
디 브라운
초판서문
19세기 초 루이스와 클라크가 태평양 연안을 탐험한 이래 미국 서부의 개막을 서술한 책은 수천 권에 이른다. 서부에서의 체험과 관찰을 기록한 책들은—이 책도 마찬가지지만—대개 1860년에서 1890년까지의 30년간에 집중되어 있다. 그 30년간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폭력, 탐욕, 호기豪氣, 감상感傷, 어디에 쏟아야 할지 모를 정력 등이 뒤엉켜 난무했고, 이미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은‘개인의 자유’라는 이상理想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미국 인디언의 문화와 문명이 파괴되었다. 또한 모피 교역상인이나 산사나이, 증기선 수로 안내인, 노다지꾼, 도박꾼, 총잡이, 기병대, 카우보이, 매춘부, 선교사, 여선생과 개척농에 관한 이야기 같은 서부의 위대한 신화들도 대개 이 시기에 쏟아져나왔다. 인디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들렸다 해도 대부분 백인의 손으로 기록된 것이었다. 인디언은 이러한 신화에 불길한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인디언이 영어를 알았다고 해도 그들의 글을 내줄 인쇄업자나 출판업자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과거 인디언의 목소리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서부 역사를 기술한 인디언들의 믿을 만한 이야기가 그림문자나 영어로 번역되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이름 없는 신문, 잡지에 실렸고 팸플릿이나 단행본으로도 발간되었다.
인디언 전쟁이 끝난 19세기 말, 살아남은 인디언들에 대한 백인들의 호기심이 높아지자 일부 의욕적인 기자들은 전사들이나 추장들과 자주 인터뷰를 갖고 그들에게 의견을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 인터뷰 내용은 통역자의 능력이나, 인디언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질책당할까봐 두려워 솔직한 답변을 꺼린 인디언도 있었고 허풍이나 맥 빠진 이야기로 기자들을 속이는 데 재미를 붙인 인디언도 있었다. 그러므로 인디언들의 진술은 조심스럽게 읽을 필요가 있다. 개중에는 반어적反語的인 글로서 걸작이라 할 만한 것도 있고, 시적詩的인 열정이 복받쳐오르는 것도 없지는 않지만.
인디언들의 일인칭 진술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자료로는 조약 회담 기록과 공식적인 회의 기록이 남아 있다. 아이작 피트먼이 고안한 속기술이 19세기 후반에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었고 인디언들이 회의석상에서 발언할 때면 서기가 통역 옆에 앉게 되어 있었다.
서부 끝에서 열리는 회담이라도 기록할 사람은 언제나 있었으며, 통역이 워낙 느려서 속기를 빌리지 않고도 기록이 가능했다. 통역자들은 영어로 말은 할 수 있어도 글은 모르는 혼혈인이 대부분이었다. 말만 아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통역자와 인디언들은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를 많이 썼고, 그 결과 영어로 번역된 글은 자연계의 생생한 직유와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유창한 인디언의 말을 서툰 통역자가 옮기면 평범하고 진부한 산문으로 떨어지게 마련이었고 통역을 잘만 하면 보잘것없는 발언도 시적으로 들렸다.
회의석상에서 인디언 추장들은 대부분 자유롭고 솔직하게 얘기했으며, 1870~1880년대에 이르자 이런 회의에 노련해진 추장들이 직접 통역자와 서기를 고를 권한을 요구했다. 이 시기에 모든 부족들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으며, 개중 나이 든 인디언들은 과거에 직접 본 사건들을 상술하거나 자기 부족의 역사를 요약해 구술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살던 인디언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들이 진술한 수백만 마디의 말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중 비교적 중요한 기록들은 정부 문서와 보고서로 발간되기까지 했다.
거의 관심권에서 사라졌던 구전口傳자료를 가지고, 나는 될 수 있는 한 희생자인 인디언 자신의 말을 인용해 서부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관한 다른 책을 읽을 때 언제나 서쪽을 바라보던 미국인들은 이 책을 읽을 때는 동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책은 썩 기분 좋은 책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란 언제나 현재로 스며들어오게 마련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과거의 인디언이 어떠했는지 앎으로써 현재의 인디언을 보다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의 신화에서 무자비한 야만인으로 낙인찍혀 있는 인디언들의 입에서 부드럽고 논리정연한 말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진정한 자연보호주의자였던 이 사람들로부터 대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대지와 대지의 자원은 생명과 맞먹으며, 아메리카는 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왜 동부의 침입자들이 아메리카 자체는 물론 인디언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만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의 독자들이 현재 인디언 주거지역의 빈곤, 절망, 누추함을 볼 기회가 있다면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970년 4월
디 브라운
chapter 4. 샤이엔족아! 싸움이 임박했다
부당한 일을 수없이 당했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나에게는 두 마음이 없다. 우리는 다시 화친을 맺으려 하고 있다. 나는 친구들의 충고를 따르기는 하겠지만 치욕스러운 심정은 이 땅을 덮고도 남는다. 한때 나는 끝까지 백인의 친구로 남은 유일한 인디언이라고 자부했지만 백인들이 몰려와 우리 처소를 뒤엎고 말과 모든 재산을 빼앗아갔으니 이제는 더 이상 백인을 믿기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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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샤이엔족의 모타바토(검은주전자)
1851년 샤이엔족, 아라파호족, 수우족, 크로우족과 그밖에 여러 부족 추장들은 라라미 요새에서 백인 대표와 회담하고, 백인들이 인디언 지역 내에 도로를 내고 초소를 세우는 데 동의를 해주었다. 쌍방은“상호 접촉에 있어 신의와 우정을 유지하고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화평을 이룰 것”을 서약했다. 조약에 서명한 지 첫 10년 동안 백인들은 플래트 강 계곡의 인디언 지역에 구멍을 뚫었다. 그 길 위로먼저 짐마차가 오고 요새가 세워졌으며 역마차와 전선에 이어 역마 속달우편부들이 오갔다.
1851년의 조약에서 평원 인디언들은 땅에 대한 소유권뿐만 아니라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았고,“여기에 기술된 지역 어느 곳에서든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고 돌아다닐 특권을 양도”하지 않았다. 1858년 파이크스 피크라는 곳에서 황금이 발견되자 백인 광부들은 그 노란 금붙이를 캐내 한밑천 잡아보려고 수천 명씩 떼를 지어 인디언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광부들은 여기저기 자그마한 목조 건물들을 세워 마을을 이루었고 1859년에는 덴버라는 큰 도시까지 생겨났다. 백인들의 활동에 흥미를 느낀 아라파호 추장 작은갈까마귀Little Raven가 덴버를 방문했다. 그는 여송연을 피우고 나이프와 포크로 고기 먹는 법을 배웠다. 그는 광부들에게 금을 캐가는 것은 좋지만 그 땅은 인디언 소유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노란 금붙이를 다 캐고 나면 더 이상 눌러 있지 않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수천 명의 광부들이 더 밀려들었다. 한때 들소 떼가 들끓던 플래트 강 유역은 백인 이주자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백인들은 라라미 조약에 의해 남부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에게 할당된 지역에 농장을 만들고 말뚝을 박아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조약을 맺고 나서 10년 뒤에 워싱턴의 대회의(의회)는 콜로라도령을 인가했다. 큰아버지 링컨은 주지사를 파견했고 정치가들은 인디언들에게 땅을 양도받기 위해 책략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은 화평을 지켰다. 미 관리들이 아칸소 강에 있는 와이즈 요새에서 새 조약을 논의하기 위해 추장들을 초청하자 여러 추장이 그에 응했다. 두 부족의 추장들이 나중에 한 진술을 보면, 조약에 있다고 들은 내용과 조약에 실제로 씌어진 것은 전혀 달랐다. 추장들이 이해했던 바로는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은 땅에 대한 권리와 들소 사냥을 위한 이동의 자유를 가지며, 샌드 크리크와 아칸소 강 사이의 삼각지역 내에서 산다는 것이었다. 이동의 자유는 특히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두 부족에게 할당된 주거지역은 야생동물이 거의 없었고 관개시설을 갖추지 않는 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와이즈 요새에서 맺은 조약 내용은 백인들로서는 환영할 만했다. 그 사실을 감안해 인디언 문제 담당관인 그린우드 대령은 메달과 담요, 설탕, 담배를 나눠주는 선심을 썼다. 샤이엔족 여자와 결혼한 꼬마백인(윌리엄 벤트)은 그곳에서 인디언들의 관심사를 돌보았다. 샤이엔족의 추장 마흔네 명 가운데 여섯 명만 참석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미 관리들은 다른 추장들도 나중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서명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약의 합법성은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검은주전자Black Kettle와 흰영양White Antelope과 여윈곰Lean Bear이 샤이엔족의 서명자들이었고 작은갈까마귀, 폭풍Storm 그리고 큰입Big Mouth은 아라파호족의 서명자들이었다. 서명의 증인은 두 명의 기병대 장교 존 세즈윅과 스튜어트였다(두세 달 뒤에 인디언들에게 평화로운 생업을 갖도록 권유한 세즈윅과 스튜어트는 내전에서 서로 반대편에서 싸우게 되었는데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두 사람은 윌더니스 전투에서 두세 시간 차이로 뒤를 따르듯 죽어갔다).
백인끼리의 내전이 벌어진 전쟁 초기에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 사냥대들은 회색 외투 부대를 수색하기 위해 남쪽으로 정찰을 나가는 푸른 외투 군인들의 눈길을 벗어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들은 이미 나바호족의 곤경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미네소타에서 미군의 권능에 도전하려 했던 샌티족의 처참한 운명에 대해서도 수우족 친구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추장들은 젊은이들에게 백인들이 지나는 길을 피해 들소 사냥을 하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여름이 될 때마다 푸른 외투군은 병력이 늘면서 오만함도 더해갔다. 1864년 봄이 되면서 북군은 스모키 힐 강과 리퍼블리컨 강 사이의 먼 사냥터까지 뚫고 들어와 활보하고 다녔다.
그해 풀이 무성하게 자랐을 때 매부리코Roman Nose와 그를 따르는 많은 남부 샤이엔족의 개병대 전사들은 사촌 간인 북부 샤이엔족과 함께 더 좋은 사냥터를 찾아 북파우더 강 유역으로 올라갔다. 검은주전자, 흰영양, 여윈곰 등 늙은 추장들과 아라파호족의 작은갈까마귀는 남아 있는 부족민들을 플래트 강 하류에 머물게 하고 될 수 있으면 미군의 요새와 도로 그리고 백인 정착촌에서 멀리 떨어져 미군과 백인 들소 사냥꾼들을 피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검은주전자와 여윈곰은 그해 봄 교역을 하러 라니드 요새(캔자스)로 내려갔다. 바로 그 전해에 두 추장은 초청을 받아 워싱턴에 있는 큰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을 방문했다. 그래서 라니드 요새에 있는 큰아버지의 군인들이 자신들을 정중하게 대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링컨 대통령은 그들의 가슴에 달도록 훈장을 주었다. 또 그린우드 대령은 검은주전자에게 맑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보다 더 큰 34개 주를 표시하는 흰 별이 박혀 있는 미국 국기, 즉 성조기를 선물로 주면서 그 깃발이 머리 위에서 휘날리는 한 어떤 군인도 총을 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검은주전자는 그 깃발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며 언제나 천막의 깃봉에 꽂아놓고 지냈다.
5월 중순에 검은주전자와 여윈곰은 백인 기병대가 플래트 강 남부의 샤이엔족 몇 명을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을을 강 북쪽으로 옮기기로 작정했다. 강 북쪽에 있는 부족들과 힘을 합치면 백인들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검은주전자는 부족민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하루종일 걸어가 애시 강 근처에 천막을 쳤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늘 하듯이 일찍 사냥을 나섰다가 곧 서둘러 되돌아왔다. 미군들이 대포를 끌고 그들의 숙영지로 다가오는 모습을 본 것이다.
여윈곰은 흥미진진한 일을 좋아했다. 그는 검은주전자에게 미군들을 만나서 무슨 이유로 왔는지 알아봐야겠다며 말에 올라탔다. 그는 링컨이 준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자신이 미국의 좋은 친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워싱턴에서 받은 증서까지 품에 여미고는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달려나갔다. 여윈곰은 근처 언덕으로 올라가 4개 분대로 나누어 다가오는 기병대를 지켜보았다. 두 문의 대포를 한가운데 놓고 여러 대의 마차가 뒤에 줄지어 오고 있었다.
여윈곰을 호위했던 젊은 전사, 늑대추장Wolf Chief은 미군들이 자신들을 보자마자 전투 대형을 취했다고 얘기했다.
“여윈곰은 미군들이 놀라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전사들에게 이르고는 미군 장교에게 증서를 보여주려고 말을 타고 나갔다. 추장이 미군 전열 이삼십 야드 안에 들어서자 장교가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이 우리에게 집중사격을 가했다. 순간 총에 맞은 여윈곰과 옆에 있던 별Star이라는 전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곧이어 미군들이 달려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있는 여윈곰과 별에게 마구 총질을 해댔다. 나는 한패의 젊은이들과 함께 한쪽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 앞에는 미군 중대 병력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윈곰과 그 곁에 있는 전사들에게만 사격을 해댔다. 우리가 그들을 향해 화살과 총을 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몇 사람이 우리의 화살에 맞았다. 기병대원 둘이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아주 혼잡스러워졌다. 샤이엔족이 몇 명씩 계속 몰려왔다. 미군들은 한데 뭉쳐 있었는데 아주 겁먹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대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포탄이 근처의 땅을 때렸지만 조준이 어긋났다.”
전투 중에 검은주전자가 말을 타고 나타나 전사들 사이를 오가며 소리쳤다.
“전투 중지! 전투를 그만둬.”
한참 뒤에야 전사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 “우리는 정말이지 정신이 나갔다”고 늑대 추장은 회상했다. “어쨌든 검은주전자가 전투를 중지시켰고 미군들은 도망가버렸다. 우리는 안장과 고삐 그리고 안장 포대를 매달고 있는 기병대 말 열다섯 마리를 포획했다. 미군 대여섯 명이 사망했고 여윈곰과 별, 샤이엔 전사 한 명이 죽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
샤이엔족은 미군들을 모조리 사살하고 곡사포를 노획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군은 100명이었고, 마을엔 500명의 샤이엔 전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윈곰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에 격노한 많은 젊은이들이 후퇴하는 미군들을 뒤쫓아 라니드 요새로 들어가기 전까지 추격전을 벌였다.
검은주전자는 백인들의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했다. 그는 여윈곰의 죽음을 무척 슬퍼했다. 여윈곰이야말로 거의 50년 동안이나 가까이 지내던 친구였다. 그는 여윈곰이 호기심 때문에 종종 곤란한 일을 당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추장들이 아칸소 강의 애트킨슨 요새로 친선 방문을 갔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한 장교 부인이 반짝이는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여윈곰은 충동적으로 그 반지를 보려고 여인의 손을 잡았다. 그 여자의 남편이 달려와 여윈곰을 큰 채찍으로 내리쳤다. 여윈곰은 홱 돌아서서 말에 올라타고 쏜살같이 샤이엔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얼굴에 분장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샤이엔 추장이 모욕을 당했다고 소리치면서 모두 가서 백인 요새를 쳐부수자고 전사들을 선동했다. 검은주전자를 비롯한 추장들은 그날 그를 진정시키느라고 애를 먹었다. 그러던 여윈곰도 이젠 죽었고 그의 죽음은 애트킨슨 요새의 모욕보다 훨씬 더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검은주전자는 왜 미군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평화로운 자기네 마을을 공격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사정을 알 만한 사람은 샤이엔족의 오랜 친구인 꼬마백인 윌리엄 벤트밖에 없을 것이다. 꼬마백인과 형제들은 벤트 요새를 세우고 30년 넘게 아칸소 강가에서 살아왔다. 윌리엄 벤트는 샤이엔 여자인 올빼미부인Owl Woman과 결혼해 살다가 부인이 죽자 부인의 여동생인 노랑부인Yellow Woman과 다시 결혼했다. 오랫동안 벤트 형제와 샤이엔족은 아주 친밀하게 지냈다. 꼬마백인은 아들 셋에 딸 둘을 두었는데 자식들은 대부분 외가 쪽인 샤이엔족과 함께 살았다. 그해 여름 혼혈 아들 가운데 조지와 찰리는 스모키 힐 강 유역에서 샤이엔족과 함께 들소 사냥을 하고 있었다.
(서문 전문, 제4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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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디 브라운 Dee Brown, 1908-2002
1908년 2월 28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앨버타에서 태어나 2002년 12월에 사망했다. 미국 남서부의 유전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본명은 도리스 알렉산더 브라운Dorris Alexander Brown. 1928년 아칸소 주립교대에 입학해 역사를 전공했으며, 1931년 졸업했다. 공황기에 워싱턴으로 이주,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1935년 도서관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1942년에 소설 『현수막을 높이 흔들라 Wave High The Banner』를 출간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일리노이 대학에서 도서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72년 은퇴할 때까지 같은 대학교 농대 도서관에서 사서로 재직했다. 일생 동안 25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대부분 미국 서부의 역사를 다룬 논픽션이다. 그중 여러 해에 걸쳐 수집한 회의 기록과 인디언들의 구술을 인용해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로 기록문학의 한 본보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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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최준석
전북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옮긴 책으로 『판초빌라』『제로니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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