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자유주의의 역사
오랜 시간에 걸쳐 자유주의는 사회 변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익숙해졌다. 오랫동안 자유주의는 현상 유지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공격은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현존하는 제도의 폭력적 전복이 변화를 이룩하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비난에 비하면 오히려 부드러운 편이다. 현재의 비난 가운데 두 가지를 전형으로 꼽을 수 있다. ‘자유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는 늘 자본주의의 지배자 편에 서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자는 ‘사적으로는 급진적 의견을 표명하지만 권력자와 존경받는 이들의 집단에 들어갈 기회를 잃을 것이 두려워 결코 행동은 하지 않는 자들’로 정의된다. 이와 같은 표현은 일일이 인용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람들에게 자유주의가 이도 저도 아니며 현재의 사회 갈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피난처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는 이른바 표현은 그럴듯하나 맥없는 원칙으로 간주된다.
대중의 정서는 급격한 시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미국에서 그렇다. 얼마 전까지도 자유주의는 칭송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유주의자는 진보적이며 미래 지향적이고 편견에서 자유로운, 온갖 경탄할 만한 속성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러나 이 특정한 변화를 단순히 지적 유행의 동요로 간주할 수만은 없다. 유럽 강대국 중 세 나라(이탈리아, 독일, 소련―옮긴이)는 자유주의가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갈망했던 시민적 자유를 간단하게 제압했는데, 세 나라 중 어느 한 곳도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 이상에 오랜 기간 헌신하지 않았다. 단지 유럽 대륙의 몇몇 나라에서만 자유주의가 활발하게 유지되었다. 자유주의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낡은 제도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관심사라고 천명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자유주의가 대변하는 모든 가치들은 전시(戰時)에 위태로워진다. 마찬가지로 세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유주의적 이상과 방식들은 도전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는 사회적 상황이 순조로울 때에만 번창한다는 생각이 확산된다.
여기서 자유주의가 진정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가 영구적으로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 가치의 요소는 무엇이고 그것이 현재 세계가 직면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유지·발전될 것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나 스스로 제기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한 개인이 정직하고도 이성적으로 자유주의자로 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그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오늘날 자유주의적 신념 중 강조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 해답을 밝혀낼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그러한 질문을 제기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문제를 검토하면서 이끌어낸 결론에서 이 글을 시작할 것이다. 한편에 비겁함과 회피의 위험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역사적 관점의 감각을 잃을 위험, 그리고 현재의 단기적 흐름에 관심을 빼앗김으로써 지속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안들을 당혹스럽게도 포기할 위험이 있다.
자유주의의 기원이 무엇이며 자유주의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가를 고찰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가 그것이다. 간략한 개관을 통해 자유주의가 매우 기복이 심하며 실제로는 상반될 정도로 서로 다른 의미들을 내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겠지만, 그것은 과거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 없이도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전력에 따라붙는 그러한 모호함을 정확히 기술하고 위치 짓는 일은 자유주의가 현 시점과 다가올 미래에 어떤 중요성을 지니는가를 규명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1810년에 들어와서야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이라는 개념이 특정한 사회 철학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적용된 실체는 훨씬 오래되었다. 그 유래는 그리스 철학으로 소급된다. 그리스 철학의 특정한 사상, 특히 지성의 자유로운 발현의 중요성은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연설이다. 아테네 군 총사령관이며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전쟁 이듬해인 기원전 431년에 전사자에 대한 추모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표현했다―옮긴이). 그러나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는 1688년 ‘명예혁명’의 철학자였던 존 로크John Locke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로크의 관점에서 빼어난 점은 정부가 사회적 관계의 정치 조직보다 개인에 속한 권리를 우선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수립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는 백 년 뒤에 미국 독립 선언서에 요약된 생존권, 자유권, 행복 추구권을 포함한다. ‘자연권’ 가운데 로크는 특히 소유권을 강조했다. 로크에 따르면 소유권은 개인이 노동을 통해 아직 점유되지 않은 자연적 대상과 그 자신을 ‘혼합’시킨다는 점에서 자연권에 속한다. 이 견해는 국민 대표의 인가 없이 지배자들이 사유 재산에 부과한 세금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 이론은 혁명권에 대한 정당화로 절정에 달했다. 정부는 개인의 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립되었으므로, 정부가 자연권을 보호하는 대신에 그것을 공격하고 파괴할 때는 국민에게 복종을 요구할 권한을 잃게 된다. 이 이론은 미국의 조상들이 대영제국의 지배에 맞서 봉기할 때 보시(普施)alms가 되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초기 자유주의가 가져온 충격은 명백히 정치적이었다. 그러나 로크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불관용이 만연하던 시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법칙이 되어 있던 시대, 내전과 국가 간 전쟁이 종교적 색채를 띠었던 시대에 관용을 고양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직접적 요구를, 그리고 이후에는 자의적(恣意的) 정부를 대의 정부로 대치하기 원하는 다른 많은 국가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이 초기 자유주의는 사회 조직으로부터 독립된, 개인에게 내재된 자연권의 견고한 원칙을 후대 사회사상에 물려주었다. 그것은 자연법을 실정법의 우위에 놓는 과거의 준신학적·준형이상학적 개념에 직접적으로 실질적 의미를 부여했고, 자연법을 인간이 부여받은 자연의 빛에 의해 드러나는 이성의 대응물로 여기는 과거의 사상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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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존 듀이 John Dewey, 1859-1952
1859년 미국 버몬트 주 벌링턴에서 태어나 1952년 사망했다. 버몬트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미시건대학·시카고대학·컬럼비아대학에서 재직했다. 사상가이자 교육자, 사회적 실천가였으며 당대의 사회·정치 문제에 직접 관여한 ‘공공 지식인’이었던 듀이는 과학철학과 인식론, 미학과 형이상학 등 철학의 전 분야에 공헌했다. ‘형식주의에 대한 반란’으로 일컬어지는 프래그머티즘은 존 듀이를 통해 실천과 접목되었다.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은 과학적 지식과 다른 인식 방식의 간극을 좁힘으로써 미국의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조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듀이에게 진리는 참된 언명이나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탐구의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주창자로서 원자화된 자유의 개념을 부정하고 자유주의적 경제 없는 자유주의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혁신주의 개혁가로서 혁신주의 운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뉴딜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으나 현실 정치로 나타난 뉴딜에 대한 비판자였다. 주요 저작으로 『민주주의의 윤리』『어떻게 생각하는가』『민주주의와 교육』『경험적 논리』『창조적 지성』『철학의 재구성』『신·구 개인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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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진희
뉴욕주립대학교에서 노동사가 멜빈 듀밥스키 교수의 지도 아래 미국 노동사를 연구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자유와 권리, 민주주의를 확대하려는 개인과 공동체의 노력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뉴딜 노동법과 노동 정책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이후로도 학문적 관심은 개인/공동체의 노력과 구조 변화의 상관관계에 있다. 미국 노동사와 개혁 운동의 역사가 성공보다 실패와 왜곡에 가깝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 과정과 원인, 순간들을 규명하려고 한다. 주요 논문으로 「뉴딜 단체협상법의 생성과 변형 : 와그너 법에서 태프트-하틀리 법까지」「노동금지명령, 그 관행과 의미」「대공황기 미국인의 정체성과 문화형성 : 인민전선문화와 뉴딜연합을 중심으로」「미국 노동과 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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