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정오, 시나이 사막
오늘은 내 마흔 번째 생일이다. 현재 기온은 섭씨 40도이다. 나는 자외선 차단 지수가 40인 선크림으로 무장한 채, 홍해의 어느 해안가 갈대 초가집의 그늘 안에서 해를 피하는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푸른 바다 저 너머에서 아른거린다. 파도는 해저를 향해 하강하는 산호 절벽에 부서진다. 내 뒤로는 탑처럼 우뚝 솟은 시나이의 바위산이 있다.
생일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은 아니지만, 수학자에게 40이라는 숫자는 중요하다. 환상적이고 신비한 수비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마흔까지는 최고의 업적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통념 때문이다. 수학은 젊은이의 유희라고들 한다. 수학의 정원을 어슬렁거리며 다닌 지 이제 40년이 되는 나도, 나라를 잃고 황량한 사막에서 40년 동안을 헤매던 유대 민족이 그랬듯, 예지의 땅인 이곳 시나이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수학자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은 40세를 넘지 않은 수학자에게만, 4년에 한 번씩 수여된다. 다가올 시상식은 내년에 있으며, 마드리드에서 수상자 명단이 발표되겠지만, 그 명단에 들어 있기를 바라기에는 이제 내 나이가 너무 많다.
어렸을 때, 나는 수학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찍부터 나는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다. 언어학은 나의 궁극적인 희망인 스파이가 되게 해 줄 비밀의 열쇠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결혼하시기 전 외교부에 근무하셨다. 1960년대의 외교부는 모성이 외교관에 부적합한 자질이라 믿었고 어머니는 외교부를 나왔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모든 외교부 직원들이 휴대해야 하는 검은색 소형 자동권총의 소지를 어머니에게도 허용하였다. ‘언제 어떤 비밀스러운 해외 임무를 맡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어머니는 수수께끼처럼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총은 우리 집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사방팔방 그 총을 찾아내기 위해 돌아다녔으나, 외교부에서 어머니가 배운 은폐의 기술은 너무나 완벽했다. 직접 외교부에 들어가서 스파이가 되는 것만이 나만의 총을 갖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스파이 일에 유능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가능한 한 모든 언어―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수업을 수강하였다. <BBC>는 텔레비전에서 러시아어 강좌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가르쳐주신 브라운 선생님은 그 강좌를 통해 러시아어 공부를 도와주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입을 움직여도 ‘안녕’―즈드라스트뷔이체zdravstvuyte―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8주간 그 강좌를 수강한 뒤에도 여전히 발음하지 못했다. 나는 절망에 빠졌다. 또한 어째서 특정 외국어 동사가 그런 식으로 변하는지, 어째서 특정 명사들이 남성이거나 여성인지에 관한 논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점점 실망하게 되었다. 라틴어에는 어느 정도 희망을 품었는데, 그 엄격한 문법은 겉보기에, 무작위적인 관계가 아닌 어떤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체계에 관해 싹트기 시작한 나의 지적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선생님이 언제나 내 이름 Marcus를 명사 2차 격변화의 예시로 사용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Marcus, Marce, Marcum, …
열두 살 때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수학 선생님이 나를 지목하며 말씀하셨다. “드 사토이, 수업 끝나고 좀 보자.” 나는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밖으로 나갔고, 수학과 건물 뒤편에 다다른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이곳에 온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교사들은 교무실에서의 흡연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은 시가에 불을 천천히 붙이더니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 너는 진짜 수학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는 편이 좋겠다.”
나는 지금도 어째서 선생님이 반의 다른 아이들을 놔두고 나를 선택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하셨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수학 신동과는 거리가 꽤 멀었으며 수학 성적은 주변 친구들 다수와 비슷했다. 그러나 내 안의 무언가가 베일슨 선생님으로 하여금 반 아이들 중 내가 산술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알아내는 일에 흥미를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끔 했음이 분명하다.
선생님은 내게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지에 실린 마틴 가드너의 특별 기고란을 읽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내가 즐겨 읽을 법한 두세 권의 책 제목을 알려주셨는데, 그중에는 프랭크 랜드가 지은 『수학의 언어』도 있었다. 선생님이 내게 개인적인 관심을 둔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과목의 무엇이 그토록 흥미로운지 알고 싶어졌다.
그 주 주말에 아버지와 나는 우리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학문의 도시인 옥스퍼드로 여행을 떠났다. 브로드 거리에 위치한 작은 상점 앞에는 ‘블랙웰스’라는 이름이 써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렇게까지 굉장해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이곳은 학술 서적의 성지라고 알려주었다. 서점 안으로 들어오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닥터후>의 타디스처럼 조그만 정문을 일단 통과하면 그 서점의 규모는 엄청나게 거대했다(<닥터 후>는 영국의 TV 시리즈로 타디스는 바깥보다 안이 훨씬 큰 타임머신이다). 누군가가 수학 서적들은 지하의 노링턴 방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거대한 동굴과도 같은 방이 우리 앞에 열려 있었다. 그때까지 출판된 모든 과학 서적들로 꽉꽉 들어찬 듯했다. 마치 과학 서적들로 가득한 알라딘의 동굴 같았다. 우리는 수학 서적이 있는 서가를 찾았다. 아버지가 선생님이 추천한 책들을 찾는 동안, 나는 서가에서 책을 꺼내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책장에는 노란색 책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노란색 표지 안의 내용이었다. 그 내용들은 범상치 않았다. 나는 짧은 기간 동안 학습했던 그리스어 문자들의 나열을 알아보았다. 작디작은 숫자들과 x, y 등으로 장식된 문자들이 그 안에 가득했다. 책의 모든 페이지에는 ‘보조정리’와 ‘증명’이라는 단어가 굵게 씌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전혀 의미가 없었다. 몇 명의 학생들이 책 선반에 기대어 그 책들을 마치 소설이라도 되는 양 읽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이 언어를 이해했다. 그것은 그저 무언가에 관한 암호일 뿐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이러한 수학적 상형문자들을 해독하는 방법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우리가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동안, 나는 노란 책들이 가득 쌓인 탁자를 보았다. “수학 전문 잡지란다”라고 점원이 설명해주었다. “출판사들은 정기 구독을 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무료로 간행물을 배포하고 있지.”
나는 ‘인벤티오네스 마테마티카’라고 씌어진 학술지를 한 부 집어 들고 우리가 방금 구입한 책들과 함께 가방에 집어넣었다. 여기서 도전이 시작되었다. 내가 이 노란 책 안의 수학적 발견들을 해독할 수 있을까? 어떤 논문들은 독일어로 쓰였고, 한 논문은 프랑스어로 적혀 있었으며 나머지는 영어였다. 그러나 내가 해독하고자 한 언어는 수학의 언어였다. ‘힐베르트 공간’이나 ‘동형 사상 문제’란 무슨 뜻일까? 시그마와 델타, 그리고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기호들로 가득한 이 문장들 안에는 어떤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까?
집에 도착해서 우리가 산책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프랭크 랜드의 『수학의 언어』는 특히 흥미를 끌었다. 옥스퍼드를 여행하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수학이 언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수학은 그저 수들로 보였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가지고 다양한 난이도의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자세히 읽다 보니 선생님께서 ‘진짜 수학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수들이 소수점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나눗셈 같은 문제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피보나치 수열과 같은 중요한 수열이 등장했다. 책에서는 꽃과 달팽이 껍질이 어떻게 이러한 수열을 따라 성장하는지를 설명하겠다고 했다. 피보나치 수열에 나오는 임의의 수는 그 앞의 두 수들을 서로 더하여 얻는다. 수열은 이렇게 시작한다. 1, 1, 2, 3, 5, 8, 13, 21, … 책은 달팽이 껍질이 자라나는 동안 이러한 수들이 마치 암호처럼 작용하여 다음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고 했다. 조그만 달팽이는 1×1의 작은 정사각형 집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 후, 달팽이는 매번 자신의 껍질보다도 빨리 자라나 또 다른 공간을 자기 집에 추가한다. 그러나 추가되는 공간의 크기가 무한정 클 수는 없으므로, 달팽이는 간단하게 이전 두 공간을 합한 만큼의 공간을 추가한다. 이러한 성장은 결과적으로 소용돌이가 된다(그림 1).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단순했다. 책에서, 이러한 수들은 자연이 생명체를 성장시키는 근본적인 방식이라고 했다.
책의 다른 장에서 나는 오각형과 삼각형들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3차원 물체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중 하나는 20면체라고 불리며 20개의 삼각형 면들을 갖는다(그림 2). 이러한 대상들(책에서는 다면체라고 부르는) 중 하나를 택하여 면과 꼭짓점의 개수를 센 다음, 모서리의 개수를 빼면 항상 2를 얻는다. 예를 들어, 정육면체는 면이 6개, 꼭짓점은 8개, 모서리는 12개이므로 6 + 8 -12 = 2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신기한 일이 모든 다면체에서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마술처럼 보였다. 나는 그 마술을 20개의 삼각형으로 만들어진 다면체에 시도해 보았다.
문제는 전체 개수를 세어 보려고 20면체 전체를 명확하게 시각화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설령 카드로 직접 그걸 만들어본다 해도, 모든 모서리가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지름길을 알려주셨다. “삼각형이 몇 개가 있지?” 책에는 20개라고 적혀 있었다. “삼각형이 20개니까 그럼 모서리가 60개이겠구나, 그렇지만 두 삼각형이 하나의 모서리를 공유하니까 총 30개의 모서리가 있겠구나.”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 20면체를 보지 않아도, 모서리의 개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같은 마술이 꼭짓점에도 적용된다. 20개 삼각형은 60개 꼭짓점들을 갖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림에서 보듯 5개의 삼각형들이 하나의 꼭짓점을 공유한다. 따라서 20면체는 20개의 면과, 12개의 꼭짓점과 30개의 모서리를 갖는다. 그리고 20 + 12 - 30 = 2이다. 그런데 이 공식은 어째서 모든 다면체에 적용되는 것일까?
다른 책에서는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다면체들의 이같은 대칭을 설명하려고 한 장 전부를 할애했다. 나는 ‘대칭’의 의미에 관해 희미한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외부에서 볼 때 자신이 대칭적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몸의 왼편에 무엇이 붙어 있건, 그 거울상이 오른편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삼각형에는 단순한 거울 대칭보다 훨씬 많은 대칭이 존재하는 듯했다. 삼각형을 일정 각도만큼 회전시키면 여전히 똑같은 모양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인가가 ‘대칭적이다’라고 할 때 그 말이 실제로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정삼각형이 6개의 대칭을 갖는다고 쓰여 있었다. 책을 계속 읽어 나가며, 나는 삼각형에 어떤 작용을 가해서 그 모양이 변하지 않았을 때 그 작용들을 가지고 이해하는 개념이 삼각형의 대칭임을 알기 시작했다. 종이 위에 삼각형 카드의 윤곽선을 그린 후, 카드를 집어 들었다가 윤곽선 안에 꼭 맞게 내려놓는 방법의 수를 세어보았다. 이러한 이동 하나하나가 책이 말하는 그 삼각형의 ‘대칭 하나’였다. 따라서 대칭이란 능동적인 무엇이지,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대칭이 결국 삼각형을 윤곽선 안에 되돌려 놓는 행위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삼각형 위에서 행할 수 있는 다양한 작용들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대칭들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삼각형은 세 가지 방식으로 뒤집을 수 있었다. 각각의 경우마다 두 꼭짓점이 서로 바뀌었다. 또한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3분의 1바퀴 회전시키는 일도 가능했다. 이렇게 해서 다섯 개의 대칭이 나왔다. 6번째는 무엇일까?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빠뜨린 대칭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았다. 서로 다른 대칭을 결합하면 새로운 대칭이 나오는지 확인해보았다. 결국 이러한 도형 이동들을 순서대로 행하는 것은, 사실상 한 번의 도형 이동과 같았다. 만약 대칭이 삼각형을 윤곽선 안으로 다시 돌려놓는 이동이라면, 아마도 나는 새로운 이동이자 새로운 대칭을 얻게 되리라. 삼각형을 뒤집은 다음 돌리면 어떨까? 안 된다. 그것은 그저 다른 방식으로 뒤집은 결과와 똑같다. 뒤집고, 회전시킨 다음 다시 뒤집으면 어떨까? 역시 안 된다. 그것은 다른 방향의 회전과 같으며, 그 방식은 이미 계산에 넣었다. 나는 다섯 개의 대칭을 알아냈으나, 이러한 대칭들을 어떤 식으로 조합해도 새로운 대칭을 얻지 못했다. 나는 다시 책을 보았다.
책에서 나는 삼각형을 그대로 놓아두는 행위도 대칭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설마… 그러나 만약 대칭이 삼각형을 윤곽 안에 돌려놓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면, 삼각형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 일―다시 말해, 삼각형을 집어들고 나서 정확히 같은 자리에 다시 놓는 일―역시 대칭에 포함되어야 할 행위임을 나는 곧 깨달았다.
나는 대칭에 관한 이러한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대상(object, 수학적 대상)의 대칭들은 마술과 어느 정도 비슷한 듯했다. 한 수학자가 삼각형을 보여준 다음, 내게 뒤돌아 있으라고 말한다. 삼각형을 보지 않을 때, 수학자는 삼각형에다가 무슨 일을 한다. 그러나 몸을 돌려 삼각형을 보면 아까의 그 삼각형과 똑같아 보인다. 어떤 대상에 대한 대칭 전체는, 수학자가 그것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모든 형태의 이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 새로운 마술을 다른 형태에도 시도해보았다. 여기에 여섯 개의 뾰족한 팔이 있는 불가사리와 같은 흥미로운 도형이 있다(그림 3). 나는 그것을 원래 형태와 똑같이 보이도록 뒤집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한 방향으로만 돌아가는 듯 보였기 때문에 거울 대칭, 곧 반사 대칭을 파괴했다. 그래도 회전은 시킬 수 있었다. 팔이 여섯 개라서 5가지 방법으로 회전시킬 수 있었고, 여기에 그대로 놓아두는 행위를 포함시켰다. 따라서 모두 6개의 대칭이 존재했다. 삼각형과 경우의 수가 같다.
삼각형과 여섯 팔 불가사리는 같은 수의 대칭을 가졌다. 그러나 책에서는 분명 ‘이 두 대상은 다른 종류의 대칭을 갖는다’고 표현하면서, 그 뜻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언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언어는 이 대상들이 대칭의 세계에서 별개의 종으로 표현되는 이유를 말해줄 것이다. 책에 의하면 이 언어는 또한 두 물체가 물리적으로는 다르게 보이더라도 사실은 같은 대칭을 가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제 막 어딘가로 향한 여정에 몸담은 셈이었다. 대칭이 진정 무엇인지 알기 위한 여정에.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가자, 도형과 그림들은 기호로 대체되었다. 또 다른 책의 제목이 언급했던 그 언어가 여기에 있었다. 그 속에는 그림을 언어로 바꾸는 방식이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아까 집어 들었던 노란색 저널에서 본 기호들 중 일부를 다시 보았다. 모든 것이 다소 추상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지만, 이 언어는 내가 삼각형의 여섯 개의 대칭들을 가지고 놀 때 발견한 내용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듯했다. 두 개의 대칭, 혹은 두 개의 마술 이동을 택하여 차례로 행하면, 예를 들어 회전 후에 반사를 하면, 제3의 대칭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묘사하는 언어에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군론group theory이다.
이 언어는 팔 여섯 개짜리 불가사리의 여섯 대칭과 삼각형의 여섯 대칭이 다른 이유를 알게 해주었다. 하나의 대칭은 여러 마술 이동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대상에 두 개의 대칭을 연속해서 행하면 제3의 대칭을 얻을 수 있었다. 불가사리의 대칭군 내에서의 상호 작용은 삼각형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삼각형의 대칭군과 팔 여섯 개짜리 불가사리의 대칭군을 구별하는 기준은 대칭군 내에서의 상호작용들이었다.
예를 들어, 불가사리에서 한 회전에 또 다른 회전을 연달아 행하면 제3의 회전을 얻게 된다. 그러나 두 회전을 어떤 순서대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불가사리를 시계 방향으로 180도 회전시킨 후 반시계 방향으로 60도 회전시키면, 처음에 반시계 방향으로 60도 회전시킨 후 시계 방향으로 180도 회전시킨 경우의 불가사리와 같은 위치에 오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삼각형의 두 대칭들을 택하여 이러한 대칭들에 대응하는 마술 이동들을 조합하면, 어떤 순서로 조합했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회전 후 반사 대칭 이동은 반사 대칭 이동 후 회전과 같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그림을 M·R≠R·M이라는 문장으로 변형시켜 놓았다. M은 거울 대칭 이동이며 R은 회전이다(그림4). 대칭의 물리적 세계는 추상적인 대수 언어로 바뀔 수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수학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셨던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교실에서 배우는 산술은 음악에서의 음계·화음과 유사했다. 선생님은 곡 주제의 기교적인 부분들을 완벽히 습득했을 때 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멋진 음악의 한 소절을 들려주셨던 것이다. 비록 읽은 내용 전부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나는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막 꽃피기 시작한 어린 음악가들이 듣는 음악과 연주가 음계와 화음뿐이라면 그들은 악기 연주를 그만둘 것이다. 음악을 갓 시작한 어린아이는 바흐가 어떻게 골드베르크 변주곡들을 작곡했는지, 혹은 블루스 릭(블루스 중간에 들어가는 즉흥 연주)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연주하는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큰 즐거움을 느낄 수는 있다. 『수학의 언어』와 같은 책들은 수학 역시 마찬가지임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군’이 실제로는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대칭의 과학을 전개해 나가는 데 쓰이는 일종의 비밀스러운 언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것은 내가 배워볼 만한 언어였다. 비록 외교부에 들어가게 해주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어쩌면 스파이가 되는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첩보 활동의 세계가 보여줄 어떤 것보다도 흥미로워 보이는 비밀스러운 암호가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어나 독일어와는 달리, 수학의 언어에는 불규칙 동사나 무의미한 예외들이 없으며 모든 것이 이치에 맞고 이상적인 듯했다.
그 책들에서 읽은 이야기 중 가장 호기심을 자아낸 부분은 군론―대칭의 언어―이었다. 그것은 그림으로 가득 찬 세계를 말로 옮겨놓은 듯했다. 착시와 신기루의 과다를 일으켜 가시적인 세계를 좀먹는 불명료함들이 이 새로운 문법의 힘으로 명료해졌다.
나는 해변의 오두막이 만든 그늘에 앉아 그 옛날 블랙웰스 서점에서 보았던 노란 책들 중 하나를 읽고 있다. 그 책들은 내게, 휴가 때 읽는 소설만큼이나 재미있게 느껴진다. 대칭의 언어의 힘을 빌려 속박을 풀고 등장한 어떤 기이한 대칭적 대상들의 이야기가 가득차 있다. 아직 채 완결되지 않은 채로. 나의 마흔 번째 생일은, 이 대칭의 세계를 더 깊이 여행하는 동안 나를 사로잡은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대칭의 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이래 나는 기나긴 길을 여행하여 오늘, 내 생일날, 여기, 시나이 해변에 앉았다. 이 길을 따라가는 나의 걸음은 더 장대한 여정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그리고 대칭이 자연의 심오한 비밀들 다수를 이해할 열쇠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 이래, 수학자들은 줄곧 이 여정에 자신을 바쳐왔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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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마커스 드 사토이 Marcus du Sautoy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 교수이며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다.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에서 '영국을 이끄는 주요 과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2001년 런던수학회가 40세 이하의 학자가 이룬 가장 뛰어난 수학 업적에 2년마다 수여하는 베릭 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국제수학자회의(ICM)에서 준우수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최고의 과학자가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180여 년 전통의 극장식 강연 <왕립학회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을 맡았으며, 2007년 한국을 방문하여 같은 내용을 『8월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으로 진행하였다. <더 타임즈>, <가디언>에 기고하며, <BBC> 라디오에 여러 번 출연하였다. 텔레비전 게임 쇼 <마인드 게임즈>의 진행자였고 <BBC> 다큐멘터리 <Story of Math>의 시나리오에 참여·출연하는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한 학문의 대중화 활동으로 유럽에서 익히 잘 알려진 스타 과학자이다. 축구 스타 베컴이 과거 등번호를 소수로 정했던 이유를 수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보는 주제의 칼럼을 쓰는 등 특유의 재치 있는 수학 설명 방식으로 연극 감독과 은행가, 외교관과 감옥 재소자를 아우르는 폭넓은 독자층의 지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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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안기연
수리과학을 전공했다. 이언 스튜어트의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승산)를 공역했고 레더먼·힐 공저의 『대칭과 아름다운 우주』(승산, 근간)를 번역했다. 취미로 라틴 댄스 살사를 즐기며, 현재 대전에서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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