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뇌, 범죄행위를 명령하다
2002년 4월 26일 오전 10시 46분, 평범한 학생으로 보이는 로베르트 슈타인호이저Robert Steinhäuser가 에르푸르트의 구텐베르크 고등학교로 들어왔다. 그는 1층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 검은 마스크를 쓴 뒤 가방에서 총알 여러 개가 장전된 글록17 권총을 꺼내고 모스버그590 엽총을 둘러맸다. 그러고 나서 재킷과 지갑, 가방은 그대로 두고 화장실에서 나와 17명에게 총을 난사했다. 학생 2명과 교사 12명, 여비서 1명, 경찰관 1명이 숨졌고, 그는 자살했다.
2006년 5월 26일, 베를린 중앙역 준공식 불꽃 축제에서 16세 소년 마이크Mike P.가 주머니칼로 행인 37명을 공격했다. 그중 몇몇은 중상을 입었다. 그는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소년은 범행 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고, 경찰관은 그를 ‘아주 상냥한 소년’이라고 묘사했다.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스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은 어떻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단지 명령과 의무에 따른 행정행위였을 뿐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 당혹감을 주는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스의 대량 학살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과 ‘책상정범’(Schreibtischtäters,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이 책상에서 주도적으로 계획한 행위라는 데서 나온 개념으로, 정범 배후의 정범이라는 뜻―옮긴이)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런 개념은 악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말해주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인간은 악의 다양성과 불가해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악을 접하는 경로는 잡다한 신문뿐만이 아니며(독일에서는 해마다 21만 건 이상의 폭력행위가 일어나며 이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악은 역사적 경험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범죄의 역사는 곧 범죄를 이해하려는 행위의 역사인 셈이다.
선사시대에는 혼이나 악령이 재앙을 불러왔다. 의인화되어 신화적 위력을 갖게 된 혼이나 악령은 인간 공동체나 개인에게 다양한 위험 요인(예를 들면 거짓, 탐욕, 질투, 증오, 시기, 살인, 전염병, 기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식되었다. 악은 도처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바빌로니아의 한 문서에는 혼이나 악령이 ‘풀처럼 이 땅을 뒤덮고 있다’는 문구가 나온다. 고대인들은 다양한 범죄 사건이나 범죄의 극악함, 범죄자(예를 들면 순진한 정신병자, 성도착증자, 교활한 이기주의자, 폭군. 특히 폭군의 난폭함은 다른 종족을 겨냥할 때는 득이 되지만 자신의 종족을 다스릴 때는 해가 된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직관적으로 인식했다.
기독교에서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악’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악은 신에게 복종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죄를 짓지 않고 벌거숭이로 살던 아담과 이브는 인식의 나무, 정확히 말해 ‘선악을 인식하게 하는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원죄를 범했다. 교활한 뱀이 이브를 유혹하면서부터 악은 구체적 형상을 갖게 되었다. 악은 다양한 형태와 역할로 나타나며 이름도 다양하다. 이를테면 늙은 뱀, 사탄, 거짓의 아비, 벨리아르(Beliar, 악마나 사탄을 이르는 히브리어―옮긴이), 베엘제붑(Beelzebub, 본래 이름은 ‘바알제불’로 ‘파리의 왕’이라는 뜻이다. 후대에 유대인 사이에서 사탄을 달리 이르는 말로 사용되었다―옮긴이), 적, 유혹자, 고소자, 드루데(Drude, 독일 민담에 등장하는 마녀―옮긴이), 이 세상의 군주(마르틴 루터가 유대인을 지칭한 말―옮긴이) 등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들은 모두 악마다. 다양한 형태는 악마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다.
기독교의 견해에 따르면, 원죄 개념은 낙원에서 추방된 데만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 후대의 모든 인간과도 연관이 된다. 인류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이브는 원죄를 지음으로써 인간의 결정적인 기질 세 가지를 받게 되었다. 먼저 아담과 이브는 시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그들이 죽어야 할 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그들은 치부를 덮어서 가렸는데, 이는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창세신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악을 밝히는 것은 인간 자신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악은 인간 세상에서 분리할 수도, 분리시킬 수도 없으며, 우리 눈에서 감출 수도 없다. 달리 말해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는 결코 범죄를 이해할 수 없다.
?뇌손상과 범죄의 연관 관계?
사탄의 힘은 중세 마녀사냥 시기에 (물론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최고에 달했다. 악마와 동맹하거나 간음한 여성 대부분은 종교재판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마녀사냥에서 집단 정신병의 온갖 징후를 확인한다.
계몽주의가 시작되면서 이성이 전면에 부각되자 음흉하고 간교한 뱀은 영향력을 잃었다. 이러한 사실은 악마가 육체성을 상실하고 ‘악마’라는 단어의 성이 남성에서 중성(독일어 단어는 남성, 여성, 중성으로 나뉜다―옮긴이)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사실성과 객관성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정언명령으로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책임’을 바탕으로 모든 악의 원천을 설명했다. 그는 악의 원천이 인간 본성에 근거를 둔다고 말했다.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악용하고 사리사욕에서 자기애를 도덕률로 승화한다는 것이다.
가톨릭계에서는 아직도 퇴마의식을 하고, 이디 아민이나 폴 포트, 피노체트, 히틀러 같은 폭군과 독재자가 악의 화신으로 간주되더라도, 학계에서는 이제 악의 개념이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한다. 형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이제 악한 존재가 아니다. 기껏해야 죄가 악할 뿐이다. 그리고 사회와 학계에서는 질환이나 반사회적 행위의 원인을 뇌에서 찾는다. 프란츠 갈은 이러한 현상을 최초로 연구한 학자다. 갈은 인간의 심리적 특징을 두개골 형상으로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골상학이라고 알려진 이 황당한 이론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갈은 처음으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뇌와 연관시켰다.
1848년 미국의 철도 노동자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가 겪은 기이한 사고 역시 뇌와 관련 있다. 폭발 사고로 1미터 정도 길이의 쇠파이프가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책임감 강하고 성실해서 모두에게 인정받던 그는 자주 화를 내고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게이지의 본성 변화, 즉 좋은 성격에서 나쁜 성격으로의 변화는 의사와 심리학자 그리고 뇌 연구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오늘날 모든 심리학 개론서의 60퍼센트 정도가 게이지의 기이한 사고를 다룬다. 이 사고를 계기로 뇌의 특정 영역이 사회적 행동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명확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이지처럼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을 입게 되면 (그렇다고 바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온화한 성격이 사라진다.
전문용어로 후천성 소시오패스Sociopath 증상을 보여주는 게이지의 사례는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매우 시급하면서도 논란의 소지가 많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폭력 범죄의 근본 원인이 뇌에 있는가? 선과 악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이 신경세포 회로에 암호화되어 있는가? 신경회로망의 가벼운 오작동이 잘 유지되던 사회적 행동의 균형을 파괴하고 인간을 가볍게는 외톨이로, 최악의 경우에는 동정심을 모르는 짐승 같은 존재로 만들 수 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거나 대사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면, 이것이 정신적 증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성격 변화는 물론 심하면 연쇄살인범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아래, 뇌손상과 이상행동 간의 명백한 연결고리를 찾아내려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신기술이 개발되면서 인간의 뇌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자 단서와 증거를 찾는 과정이 수월해졌다. 몇 세기 전만 해도 이런 일은 병리학자의 몫이었다. 병리학자는 천재적 재능이나 뇌손상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기 위해 죽은 사람의 뇌를 해부해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방사선 촬영법의 도움을 받아, 살아 있는 사람의 사고 과정이나 사고장애 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시해야 할 대상은 온갖 이론적 논의에서 추상적 사례로 다루는 성범죄자나 폭력살인자가 아니다. 살인자, 성범죄자, 폭행자, 거짓말쟁이, 강도, 사기꾼 그리고 그들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 각각의 운명이 문제가 된다. 이들은 불우한 환경, 예를 들면 폭력과 학대 속에서 자라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기회가 전혀 없었다. 이 책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한 많은 사례와 더불어 범죄자들에 대한 확실한 통계 자료를 제공한다. 즉 중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나 본격적으로 범죄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서는 항상 뇌생물학적 배후관계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범죄자는 정상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다. 범죄자가 어떻게 다른지는 일반적인 개별 사례에서 아주 잘 입증된다.
그러나 범죄의 원인을 확실하게 규명하려는 행위가 끔찍한 행동에 대해 변명할 거리를 찾으려는 시도로 잘못 비춰질 수도 있다. 우리는 결코 이런 식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연구들이 과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신경범죄학neuro-criminology은 다방면에 걸쳐 사회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앞으로는 재판에서 증인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거나 범죄자의 죄를 증명하기 위해 (정교한 심리 테스트와 함께) 뇌영상 기법을 도입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신경과학은 테러 방지를 위한 미래의 핵심 과학기술로 간주되고 있다. 뇌가 군사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군인이 며칠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최고의 집중력과 체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국가 항공기관은 수많은 사람 중에서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식별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한다. 앞으로는 공항 검색대에서 승객 얼굴의 혈류량을 열화상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기술자들이 또 다른 신기술로 개발하는 것은 머리에 착용하는 적외선 감지기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은밀하게 수상한 행동을 할 경우 알람이 울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책임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범죄자에게 범행을 멈출 수 있을 정도의 자유의지가 있을까? 다시 말해 다른 식으로 결정할 수도 있는 (일반인에게는 익숙한) 감정이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몹시 제한되어 있지는 않을까? 신경과학의 모든 정황을 근거로 해서 볼 때 후자가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뇌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예술가의 특권이다. 누군가의 뇌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마도 헤르만 헤세가 소설 『클라인과 바그너 Klein und Wagner』에서 묘사한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13년 자기 가족을 살해한 슈바벤 출신의 연쇄살인자 에른스트 바그너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헤세는 이 작품에서 마지막에 자살을 하게 되는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글을 전개했다. 헤세는 화자의 입을 빌려 프리드리히 클라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상했다. 며칠 사이에 벌써 몇 번이나 그에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자기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생각이 제멋대로 두둥실 떠다닌다는 것, 아무리 막으려 해도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에 주로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뇌는 마치 그림이 수시로 바뀌는 만화경 같았다.”
범죄자의 내면세계는 이런 모습일까? 바그너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은 물론 학계에까지 알려져 있다. 2006년의 한 간행물에 따르면, 바그너는 뇌의 감정통제 영역에 심한 손상을 입었다. 1976년 5월 9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슈탐하임의 교도소에서 목을 매 자살한 독일 적군파 테러리스트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f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이 죄인을 만들지 않는다면 범죄행위마다 늘 죄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리에 가해진 일격의 사고로 뇌의 소정맥이 터져 피가 뿜어져 나온다. 아니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뇌세포가 변종된다. 또 삶이라는 이름의 복권은 태어날 때부터 사랑 대신 폭력과 학대에 노출된 아기가 태어난 가정을 의미할 수도 있다. 범죄자는 이러한 자연의 주사위놀이로 생겨난다.
이는 아주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긍정적인 메시지도 함께 들어 있다. 뇌는 학습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다. 불우하고 궁핍한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이 보호받는 환경에서 공동체의 규칙을 습득한다면 범죄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인간이 정서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려면 애정과 사회적 온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범행 장소로서 뇌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즉 뇌는 범죄를 생각하는 곳이자 범죄행위를 명령하는 곳이다. 그리고 뇌는 범죄에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곳이기도 하다.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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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한스 J. 마르코비치 Hans J. Markowitsch
1970년 독일 콘스탄츠Konstanz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1977년 심리생리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콘스탄츠대학에서 정교수를 지내고, 1989년 루르Ruhr대학 생물심리학과 교수를 거쳐, 1991년부터 빌레펠트Bielefeld대학 신경생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인간은 왜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Warum Menschen sich erinnern Können』『잘못된 기억 Falsche Erinnerungen』『뇌와 행동 Gehirn und Verhalten』 들이 있다.
베르너 지퍼 Werner Siefer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여러 매체에서 기고가로 활동하다가 1993년부터 시사지 <포쿠스 Focus>에서 연구 및 기술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전문분야는 뇌 연구다. 저서로는 『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는가? Ich: Wie wir uns selbst erfinden』『내 안의 천재: 왜 재능은 학습될 수 있는가? Das Genie in mir: Warum Talent erlernbar ist』『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 Wir und was uns zu Menschen macht』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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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현정
학부와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공부했다. 독일에 거주하며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거짓말하는 사회』『지식의 사기꾼』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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