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subtitles" 클릭 후 한국어 자막 선택
서문 | 마음에서 마음으로, 뇌에서 뇌로
모든 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뇌가 겪은 사연을 담고 있다.
10년 전 나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6년 12월 10일, 나 자신이 뜻하지 않은 수업을 받게 되었다. 왼쪽 뇌에 희귀 유형의 뇌졸중이 발생한 것이다. 머릿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선천적인 혈관 기형이있었는데 이날 아침 갑자기 이곳이 터지면서 대출혈이 일어났다. 4시간 동안 나는 호기심 많은 뇌신경해부학자의 시선으로 나의 뇌가 정보 처리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점심때가 되자 걷거나 말할 수 없었고, 읽고 쓰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내 삶의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몸을 작게 움츠린 나는 정신이 죽음에 굴복하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 회복해서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긍정의 뇌』는 내 존재가 침묵 속에서 마음의 깊은 평화를 얻기까지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자로서 내가 받은 교육과 개인적 경험,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통찰이 녹아 있다. 내가 알기로 신경해부학자가 직접 중증 뇌출혈을 겪었다가 나은 사연을 기록한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흥분된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살아남아 지금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나를 돌봐줬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을 견딜 수 있었다. 수년 동안 이 책을 묵묵히 쓸 수 있었던 것은,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가 왜 응급 전화를 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내게 연락해온 젊은 여성 덕분이었다. 그리고 자기 아내가 죽기 전의 혼수상태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며 가슴 아파하던 노신사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도움과 희망을 구하고자 내게 연락을 보내왔다. 그런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 나는 (충실한 반려견 니아를 무릎에 앉히고)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기로 마음먹었다. 한 해에 뇌졸중으로 고통 받는 70만 명의 미국인들과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위해 이 작업에 매달렸다. ‘뇌졸중이 찾아온 아침’을 읽고 단 한 명이라도 뇌졸중의 징후를 미리 알아채고 제때 도움을 청한다면, 지난 10년 동안 내가 쏟았던 노력은 충분히 보상되고도 남을 것이다.
‘뇌졸중 이전의 나의 모습’에서는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의 생활을 다뤘다. 어떻게 해서 뇌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학문적 삶은 어떠했는지, 내 관심사와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간략히 소개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뇌과학을 전공했고, NAMI(National Alliance on Mental Illness, 전미 정신질환자협회) 위원이었으며, ‘노래하는 과학자’로서 전국을 여행했다.
뇌졸중을 겪을 때의 느낌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뇌졸중이 찾아온 아침’을 읽기 바란다. 여기서 나는 인지능력이 단계적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과학자의 눈으로 추적했다. 출혈이 심해지면서 내 인지능력이 어떻게 그 기능을 상실해갔는지 생물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해보았다. 뇌해부학자로서 하는 말인데 나는 뇌졸중을 겪으면서 뇌와 그 작용에 대해 대학에서 배운 것만큼이나 많이 배웠다. 그날 아침, 나는 내가 우주와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인간이 어떻게 ‘신비한’ 혹은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는지를 뇌의 해부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이나 친지 중에 뇌졸중이나 머리 쪽에 외상을 입은 사람이 있다면, 회복을 다룬 부분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회복 과정을 시간순으로 소상하게 공개했다. ‘회복에 가장 필요한 40가지’는 책의 맨 뒤에 목록을 만들어 첨부했다. 누구든 이 내용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나누어주기 바란다.
‘뇌에 관해 알게 된 진실’에서는 뇌졸중 경험이 나의 뇌에 대해 가르쳐준 것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이 부분에서 여러분은 이 책이 실제로 담고 있는 이야기가 뇌졸중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뇌졸중은 내게 지혜와 통찰을 안겨준 하나의 외상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하고 기
능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뇌의 아름다움과 회복력에 대한 책이다. 즉, 내가 우뇌의 의식 속으로 여행을 떠나서 마음의 깊은 평화에 둘러싸이게 된 과정을 담은 것이다. 내가 좌뇌의 의식을 되살린 것도, 다른 사람들이 뇌졸중을 겪지 않고도 나와 같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질 볼트 테일러
제1장 | 뇌졸중 이전의 나의 모습
우리 가족은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에서 살았다. 나보다 18개월 먼저 태어난 오빠는 뇌 장애로 인한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았다. 공식적인 진단은 31세 때 나왔는데, 미 오래전부터 명백한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지켜본 오빠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방식이 나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인간의 뇌에 흥미를 가졌다. 오빠와 내가 같은 경험을 하는데도 그 상황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의아했다. 내가 뇌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건 바로 나와 오빠의 차이, 세상에 대한 인식과 정보 처리 방식,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행동의 차이 때문이었다.
1970년대 말 나는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에 있는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학부 과정을 밟았다. 오빠를 옆에서 보고 자라면서 신경 차원에서의 ‘정상’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말 궁금했다. 당시는 신경과학이라는 학문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인디애나 대학교에 정식으로 개설된 전문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리심리학과 인체생물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뇌에 대해 닥치는 대로 배워야 했다.
처음으로 얻은 일자리는 내 삶에서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캠퍼스에 위치한 의과대학 부설기관인 테러호트 의학교육센터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거기서 의료용 인체육안해부 실험실과 신경해부 실험실을 오가며 일했다. 2년 동안 의학 공부에 푹 빠져 지냈고, 로버트 머피 박사의 지도로 인체해부학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석사학위 없이 곧바로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의 생명과학부 박사과정에 입학해 6년 동안 공부했다. 의과대 1학년 커리큘럼을 이수했고, 윌리엄 앤더슨 교수의 지도 아래 신경해부학을 전공했다. 1991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나니 인체육안해부학, 인체신경해부학, 생물조직학을 의과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1988년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 오빠가 공식적으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오빠는 우주를 통틀어 생물학적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나는 내 꿈을 현실과 연결시켜 한 단계씩 이뤄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의 뇌는 대체 나와 어떻게 다르기에 꿈을 현실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그냥 망상으로 그치고 마는 걸까? 나는 정신분열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어졌다.
인디애나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내게 하버드 의과대학 신경과학부에서 박사후 연구원 자리를 제의해왔다. 그래서 2년 동안 로저 투텔 교수와 함께 뇌의 시각피질에서 움직임을 감지하는 부위인 MT 영역의 위치를 연구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움직이는 사물을 관찰할 때 비정상적인 안구의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투텔 교수를 도와 MT 영역의 뇌 속 위치를 해부학적으로 확인한 나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의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맥린 병원의 프랜신 베네스 교수 연구실에서 일하는 것은 뇌과학을 연구하면서 갖게 된 목표였다. 그녀는 정신분열증과 관련한 인간 뇌의 해부 연구 부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권위자로, 나는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것이 뇌질환으로 고통 받는 오빠 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1993년 맥린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NAMI 전미 정신질환자협회 에서 주최하는 연례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마이애미로 날아갔다. 아버지는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갖고 계시고, 성공회 목사로 일하다가 은퇴하신 후, 평생을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셨던 분이다. 우리는 이 단체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아보고 가능하다면 돕고 싶었다. 전미 정신질환자협회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시민단체로, 규모가 가장 크다. 당시에는 정신병 진단을 받은 사람이 가족 중에 있는 4만 가족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회원 수가 22만 가족으로 늘어났다. 각 주마다 이 단체 산하의 하위 조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지역사회에서 가족들에게 각종 지원, 교육과 홍보 기회를 제공하는 1,100개가 넘는 지부들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마이애미 여행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중증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 자녀들 등 1,50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다른 가족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오빠의 병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깨달았다. 오빠를 정신분열증으로 잃었을 때의 슬픔을 마음으로 아는 사람들이었고, 우리 가족이 오빠에게 양질의 치료를 받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해했다. 그들은 정신병을 따라다니는 사회적 편견과 오명에 맞서 한목소리를 냈다.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특징을 설명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부하고 아울러 일반인들에게 알렸다. 물론 치료법을 찾기 위해 뇌 연구자들과 접촉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가 딱 필요한 때에 있어야 할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정신병을 앓는 가족이 있었다. 또한 나는 이런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성적인 과학자였다. 드디어 내가 몸 바쳐 일할 만한 대의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가족을 얻었음을 느꼈다.
마이애미 학술대회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주, 일을 시작하려고 들뜬 마음으로 베네스 교수가 연구소장으로 있는 맥린 병원 구조신경과학 연구소를 찾아갔다. 해부 검시를 통해 정신분열증의 생물학적 원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자 어찌나 흥분이 되던지. 내가 애정을 담아 ‘정신분열증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베네스 교수는 진정 놀라운 과학자였다. 그녀가 생각하고 탐구하고 자료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녀가 창의적으로 실험을 설계하고, 끈질기고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실험실을 운영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바야흐로 내 꿈의 실현이 멀지 않아 보였다.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뇌를 연구하면서 나의 목적의식이 분명해진 것이다.
연구소 근무 첫날, 베네스 교수는 정신병 환자의 가족들이 갈수록 뇌를 기증하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연구에 쓸 뇌조직이 모자라게 될 것이라며 걱정했다.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마이애미에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가족들 수백 명을 만나고 온 터였다. 그 가족들이 뇌 연구 성과를 함께 나누고 배우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온 터라 뇌조직 기증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뜻밖이었다. 나는 대중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연구에 쓸 뇌조직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단체내에서 기증이 활성화되면서 문제가 해결될 게 분명했다.
이듬해인 1994년, 나는 NAMI 본부의 임원이 되었다. 나로서는 대단한 영광이자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에 앉게 된 셈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뇌 기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과학자들의 원활한 연구를 위해 정신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뇌조직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것을 ‘조직 문제Tissue Issue’라고 불렀다. 당시 회원들의 평균 연령이 67세였는데 나는 겨우 35세였다. 가장 어린 나이로 임원에 선출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애정과 의욕이 넘치던 때였다.
NAMI 본부에서 새 자리를 맡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국각지에서 열리는 NAMI 지부의 연례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베네스 연구소 바로 옆에 있는 하버드 뇌조직 자원센터 에 기증되는 정신병 진단 환자의 뇌는 1년에 3개를 넘지 못했다. 베네스 연구소에서 겨우 연구를 할 수 있을 정도였고, 뇌조직을 요청하는 다른 연구소들까지 제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몇 달 동안 전국을 돌며 환자 가족들에게 ‘조직 문제’에 대해 설명하자 기증되는 뇌의 수가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정신병 진단을 받은 사람의 뇌가 매년 25개에서 35개 정도 기증된다. 과학계의 활발한 연구 활동을 위해서는 100개 정도의 뇌가 기증되어야 한다.
‘조직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면서 뇌를 기증해달라는 요청을 몇몇 회원들이 몹시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회원들이 “맙소사! 내 뇌를 달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맞아요, 사실이에요. 하지만 급한 건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나는 <1-800-뇌 은행!> 이라는 짧은 노래를 만들었고, ‘노래하는 과학자’ 가 되어 기타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뇌 기증 문제를 꺼낼 때가 되어 장내의 긴장감이 높아지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열게 만들어 메시지를 부담 없이 전달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NAMI에서 일하면서 삶의 커다란 의미를 찾았고 연구소 일도 술술 풀렸다. 베네스 연구소에서 내가 맡은 일은 동일한 뇌조직에서 세 개의 신경전달물질이 활동하는 시스템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프로토콜화 시키는 작업이었다. 신경전달물질은 뇌세포가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최근 들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영향을 주는 항정신병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이 연구가 부쩍 중요해졌다. 동일한 뇌조직에서 세 개의 다른 체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이들 체계의 섬세한 상호작용을 그만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뇌의 세부 회로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표였다. 우리는 뇌의 어느 부위의 어느 세포들이 교류할 때 어떤 화학물질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중증 정신병 진단을 받은 사람의 뇌와 정상적인 상태의 뇌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세포 차원의 차이에 대해 이해가 깊을수록 의학계는 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1995년 봄, 우리의 연구가 「바이오테크닉 저널」에 표지 기사로 실렸고, 이듬해 나는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부이 수여하는 영예로운 마이셀 상을 수상했다. 나는 연구소 일을 사랑했고 NAMI 가족들과 함께 연구 성과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당시 나는 30대 중반으로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추락하고 말았다. 장밋빛 삶과 전도유망한 미래가 날아가버렸다. 1996년 12월 10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나 자신이 뇌질환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뇌졸중이었다. 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뇌가 정보 처리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았다. 감각기관이 느껴야 할 어떤 자극도 느껴지지 않았다. 뇌 속에서 일어난 출혈 때문에 나는 걷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쓰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서문, 제1장 전문)
------------------------------------
저자 소개
질 볼트 테일러 Jill Bolte Taylor, Ph.D.
인대애나 의과대에서 신경해부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1996년, 37세의 나이로 뇌졸중에 걸린다. 뇌 기능이 하나둘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관찰한 최초의 뇌과학자로 개두 수술과 8년간의 회복기를 거치며 우리 뇌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자각을 얻게 된다. 논리적이고 언어적인 왼쪽 뇌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른쪽 뇌로만 세상을 느낀 그는 좌우 뇌의 기능적인 차이와 함께 뇌가 스스로 진화하면서 회복하고자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TED 2008년 컨퍼런스에서 뇌졸중 경험으로 얻은 통찰을 주제로 강연하여 조회 수 500만 건에 달하는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타임>에서 뽑은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다. 『긍정의 뇌』는 그가 경험한 뇌졸중과 회복 과정을 뇌과학자의 시선으로 서술한 사실적인 기록으로, 왼쪽 뇌가 담당하는 ‘뇌의 재잘거림’을 잠재우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삶이 주는 풍요를 누릴 것을 제안하고 있다.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하버드대 뇌조직 자원센터의 대변인이자 미드웨스트 방사선치료 연구소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역자 소개
장호연
학부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했다. 음악동호회 ‘얼트바이러스’에서 활동하며 글쓰기를 시작해 웹진 <웨이브>에 음악 평론을 기고했다. 음악과 뇌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들며 번역 작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뇌의 왈츠』,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맛에 빠진 록스타』 등이 있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