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생님들에게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
대한민국 교육의 현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일 것이다. 일면으로는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일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양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을 것이다. 세계 수학 경시 대회가 열릴 때마다 구미권 출신들이 한국 아이들의 실력에 놀라는 것은, 한국 학교가 “지식 전달자” 몫을 훌륭하게 해낸다는 걸 보여 준다. 그러나 학습 강도가 외국에 비해 훨씬 높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한국 아이들의 독립적, 비판적 사고 능력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가? 자기만의 개성 있는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글로 정리하는 실력을 제대로 연마하게 하는가? 나아가서 사회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존중해 주고 자신과 남의 인권을 늘 생각하는 성숙된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과연 가질 수 있게 하는가? 학습되는 지식의 양은 많아도 획일주의적 “시험 점수 따기를 위한” 교육은 사고의 질을 낮추고 비판정신을 원천 봉쇄한다. 거기에다 동급생들과의 무한 경쟁 강요와 학교의 반인권적 행태들은 약자들을 자살과 일탈로 몰고 강자들을 양심이 없는 순응주의자, 출세주의자로 만든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완성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완전히 썩히고 있을 뿐이다.
수호믈린스키의 이 명저야말로 오늘날 한국 교육의 파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잘 밝혀 준다. 수호믈린스키의 교육이란 한마디로 “서로 만남”, “서로 사랑”, “서로 배려”하는 인격주의적, 좋은 의미의 공동체주의적 교육이다. 수호믈린스키의 사전에는 “경쟁”이라는 단어는 없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를 급우와 선생님이 늘 배려해 주고 도와주어 학생들의 학습 성과는 “상향 평준화”된다. 낙오자가 없도록 서로 배려하면서 서로를 이끌어주는, 애타주의적, 박애주의적 인격을 함양하는 교육이다. 수호믈린스키의 학습 목표란 단순한 “지식 전달”도 아니고 “시험 점수”는 더더욱 아니고 지식에 굶주린, 왕성한 지적 욕구를 가진,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것이었다. 교사가 세계 만물을 다 가르칠 수는 없어도 세계 만물에 대해 쉼 없이 궁금해하고 인격을 도야하게는 할 수는 있다. 그리고 지적 의욕이 많은 학생을 가르칠 선생도 단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지성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수호믈린스키 교육관의 배경은 이미 그의 고국에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 평등과 상부상조를 지향했던 특수한 형태의 사회이었다. 구소련과 같은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서는 위와 같은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현실과 떨어진 “달콤한 꿈”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무한 경쟁, 각개약진의 지옥인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평등과 박애의 교육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러나 비록 오늘날의 참담한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 목표라 해도 수호믈린스키 식 교육을 지향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다음 세대는 경쟁이 아닌 배려, 각개약진이 아닌 자기이타를 사상의 기초로 하는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투쟁할 의욕이라도 생길 것이다.
선생님들이 지펴야 하는 지혜의 불꽃
수호믈린스키
교사들이 학교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까?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무엇보다도 교육자로서 지성과 전문성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고 있는 청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당신을 보고 있다. 이런 문제에 해답을 주려면 교육자는 풍부한 교양과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감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세계관을 세워 두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지식에 대한 호기심, 진리를 탐구하고 갈망하는 화약이 들어 있다.
오직 교사의 사상만이 이 화약에 불을 댕길 수 있다. 학생들이 생각하며 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사가 지펴야 하는 지혜의 불꽃이다. 오직 교사만이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흥미로운 것인지를 밝혀 줄 수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를 표현하게 해야 한다.
학생들을 생각하게 하고 감탄하게 할 때 교사는 비로소 어린 정신을 이끄는 교육자, 스승이 될 수 있다.
1_ 모든 학생들은 구체적이고 독립적인 주체
학생들 중에는 저학년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고, 고학년에 가서는 희망이 없을 정도로 성적이 떨어지고, 학습 의욕도 없이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있다. 왜 이런 학생들이 생기는 걸까? 같은 시간에 공부하고 같은 교재로 공부했는데, 학교에 적응 못하는 학생이 왜 생기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교수 방법론 면에서 보면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학습 부문에서 교사가 모든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갓 학교에 들어온 일곱 살짜리 아이들에게 똑같은 신체활동, 이를테면 물 긷기를 시킨다고 하자. 어떤 아이는 물 다섯 통을 긷게 하면 맥이 빠지지만, 어떤 아이는 스무 통을 길을 수도 있다. 몸이 허약한 아이에게 물 스무 통을 긷게 하면 그 애는 지쳐서 이튿날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심지어 입원할 수도 있다. 학습에 필요한 아이의 힘도 마찬가지다. 어떤 학생은 교재를 빨리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지만, 어떤 학생은 매우 더디게 이해하고, 기억도 오래하지 못한다. 그런데 훗날 학업 성취가 더디었던 학생이 처음에 잘하던 학생보다 학습과 지적 발달에서 더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흔하다.
교수학습 방법을 포함한 교육의 모든 이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추상적인 학생’은 학교에 없다.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주체이다. 따라서 어떤 교육법을 실시했을 때 같은 결과가 공식처럼 딱딱 나오는 기계적 모형은 적용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학생에게 다 적용되는, 학습 성과의 선결 조건도 없다. 학습 성과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이다. 어느 학생에게는 100점이 기준이지만, 다른 학생에게는 50점도 대단한 성과다. 학생들마다의 능력을 확인하고 저마다 어느 수준에 도달했으며, 지적 능력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를 정확히 보는 것이 교수 방법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학생들의 자긍심을 보호하고 기르는 일은 교사가 학생의 능력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달려 있다.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교과의 교육과정은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이 있지만, 생기발랄한 학생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학생들이 일정한 수준과 범위의 지식에 도달하는 길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1학년 때 벌써 응용문제를 완전히 읽고 풀 수 있지만, 다른 아이는 2학년 말, 심지어는 3학년 말에 가서야 할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오류를 겪어서 학습 목표에 도달하는가, 모든 학생들의 학습에 교육과정의 요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시킬지 고려해 교육 내용을 재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
교수 방법의 최종 목표는 모든 학생들이 힘과 가능성을 발휘해 학습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배우는 내용과 수업 시간마다 개별적인 태도로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경륜 있는 교사는 한 시간 수업에 한 학생에게는 응용문제를 두세 개, 심지어는 네 개까지 내주지만 다른 학생에게는 한 문제만 낸다. 한 학생이 푸는 문제는 복잡한 편이지만, 다른 학생이 푸는 문제는 단순하다. 한 학생은 언어로 하는 창조적인 작업, 이를테면 작문을 하지만 다른 학생은 문예 작품 단편을 공부한다.
이처럼 모든 학생을 개별로 다르게 대해야 전체 학생들이 진보한다. 어떤 학생은 학업 성취가 빠르고, 어떤 학생은 더디다. 학생들은 평가를 통해 자기의 학습과 공부에 들인 자신의 노력을 보게 된다. 학습은 그들에게 만족과 발견의 기쁨을 준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친밀감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더 깊게 한다. 학생은 교사를 엄격한 감독자로 보지 않게 되고, 평가를 회초리로 여기지 않게 된다. 학생은 곧 “저는 이 문제를 다 해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교사에게 솔직히 말하게 된다. 학생의 양심은 아주 깨끗하다. 그들은 남이 한 과제를 베껴 내려 하지 않으며, 시험 볼 때 부정행위를 하지 않고, 자기의 존엄성을 확립하려 한다.
학습에서 이룬 성과는, 비유하자면 그 학생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희망으로 가슴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비법이다. 교사는 이 길과 불꽃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
내게는 트가첸코라는 벗이 있는데, 키로브그라드 성 보그다노프 중학교의 훌륭한 수학 교사다. 그는 자기의 교수 준비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저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신중히 고려해서 모든 학생들이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를 골라서 낸다. 만일 학생들이 지식을 얻는 길에서 작은 진보라도 가져오지 못하면, 이 수업은 쓸모없다. 보람 없는 노동은 교사와 학생에게 큰 위험이다.”
파블리슈 중학교에 계신 아리쉔코코와 류그자크 교사의 수학 수업을 보자. 응용문제 풀이(이 문제 풀이가 수업 시간의 90%를 차지한다)시간에 그들은 학급을 몇 개 모둠으로 나누었다.
제1모둠은 가장 잘하는 아이들로 짰다. 그들은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어떤 응용문제도 쉽게 풀 수 있었다. 이 모둠에서 학생 한둘은 연필 없이 암산으로 응용문제를 풀 수 있었다. 교사가 문제의 조건을 다 말하자 학생은 대답하려고 바로 손을 들었다. 이 모둠 학생들에게 더 어려운 문제를 냈다. 이 학생들에게는 풀 수는 있지만, 머리를 짜내야 하는 쉽지 않은 문제를 내야 하며, 때로 혼자서는 풀 수 없지만 교사가 작은 도움말이나 힌트를 주면 풀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한다.
제2모둠은 꾸준히 노력하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노력과 탐구의 어려움을 넘어서야 과제를 훌륭히 완수할 수 있다. 교사는 이 학생들에게 끈기 있고 부지런하면 성과를 거둔다고 도닥인다. 그들이 공부를 잘하려면 꾸준함과 끈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3모둠은 도움 없이는 보통 수준의 문제도 잘 풀지 못하고, 복잡한 문제는 거의 풀지 못하는 학생들로 짰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높은 교육학적 기술이 있어야 한다.
제4모둠은 문제를 더디게 이해하고 겨우 푸는 학생들로 짰다. 그들이 수업 과정에서 완성할 수 있는 과제는 2모둠이나 3모둠의 절반이나 3분의 1수준이다. 그렇지만 교사는 어떤 경우에도 그들을 재촉하지 않아야 한다.
제5모둠은 기본적인 연습 문제조차 풀지 못하는 학생들로 짰다. 교사는 언제나 어떤 작은 발전을 기대하면서 그들의 수준에 맞는 문제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둠의 학생들이 늘 그대로는 아니다. 성취감을 주는 수업은 언제나 학생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교사는 학생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수업 중에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자세히 봐야 한다. 여기에는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친밀한 분위기가 가득 차 있고, 지적 능력을 고무 받으려는 열정이 가득하다. 모든 학생들은 자기가 노력해서 목적을 이루려고 애쓴다. 이 학생들의 눈동자에서 당신은 긴장하고 사색하며 기쁨의 불꽃을 빛내고(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았다!), 깊이 생각하는 (이 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가 하고) 모습을 볼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교사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된다.
아주 빡빡한 시간표에서도 숨 돌릴 여유는 있어야 한다. 어떤 교사도 몇 시간씩 이어서 수업을 하면 학생들과 제대로 교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5∼7학년에서 몇 년 동안 수학을 가르쳤다. 사실 이 시간은 문학·역사 수업이었는데, 이런 수업이 나에게는 진정한 휴식이었다. 이런 휴식 속에서 교육 내용을 계획하고 교수 방법을 다시 짤 수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자기 성과를 낳아서 인격적 기쁨을 체험한다면 그 수업은 교사를 지치고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교사는 기분 나쁜 일이 생길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하릴없이 늘 장난으로 교사를 대하는, 불안정하고 부산스러운 아이들을 주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수업은 아이들의 능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만일 교사가 학생들의 능력에 맞게, 그들이 성과를 낼 만한 또는 실제로 성과를 거두는 수업으로 이끈다면, 그야말로 말썽꾸러기 장난꾼도 정신을 집중해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이 학생들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며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떻게 하면 과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나 집중하기 때문이다.
몇몇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장난치고 부정행위도 한다고 하소연한다. 나는 이런 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의문을 가진다. 교사들이 어떻게 하면 모든 학생들이 수업 중에 올바르게 공부할지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상황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2_ 하루는 24시간뿐인데 교사는 어떻게 시간을 낼 수 있나?
이 말은 크라스노야르스크 시의 한 여교사가 보낸 편지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교사에게 재난이다. 이것은 학교의 일과뿐만 아니라 교사의 가정생활까지 침해한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교사도 가정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고등학교의 많은 졸업생들이 사범대학에 가기를 꺼린다는 확실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방학이 있어도 한가한 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흥미로운 통계 수치도 있다. 대학생 자녀가 있는 교사 500여 명을 조사해 “당신의 자녀는 어느 대학, 어느 학부에서 공부하는가”라고 물었다. 그중 14명만 사범대학이나 교사를 기르는 종합대학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이어서 “왜 당신의 자녀는 교사가 되려 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여기에 486명이 “우리 아이들은 교직이 아주 힘든 일이어서 단 1분도 쉴 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사에게 한가한 시간이 나도록 할 수는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국어 교사나 수학 교사는 날마다 3∼4교시씩 수업을 하면서 수업 준비와 필기장 검사에 적어도 두 시간을 들여야 하는 형편이다. 이 시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문제도 학생의 지적 발달과 마찬가지로 학교 생활의 총괄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전적으로 학교의 모든 생활이 어떻게 배정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중요한 것은 교사의 교육 방식과 성격이다. 33년 교직에 몸담은 한 역사 교사는 ‘소련 청년의 도덕적 이상’이라는 제목으로 공개수업을 했다. 지역 사범학교 관계자들과 장학관들이 수업을 참관했고 수업은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참관인들은 수업 후에 의견을 내려고 노력했으나 수업에 사로잡혀 참관 중 기록하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그들은 학생들과 함께 숨소리를 죽여 가며 수업에 빠져들었다.
수업 후에 이웃 학교의 한 교사는 이 교사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학생들에게 모든 심혈을 다 기울였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커다란 감화력이 있습니다. 수업 준비에 몇 시간이나 들었는지요. 아마 한 시간으로는 안 되겠지요?” 역사 교사는 대답했다. “나는 평생 이 수업을 준비했고 모든 수업을 평생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이 수업 준비에 직접 들인 시간은 15분밖에 안 됩니다.”
이 대답은 수업 기술의 비밀을 탐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내가 있는 지역 안에는 이 역사 교사와 같은 분이 서른 명이 있다. 이들은 한가한 시간이 없다고 탓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자기 수업을 언제나 한평생 준비한다고 말했다.
이 준비는 어떻게 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독서다. 날마다 책을 읽으면서 한평생 책과 사귀어야 한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은 하루도 멎지 않고 흘러서 사상의 바다로 들어간다. 독서는 내일의 수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의 내면적 필요와 향학열에서 나온다. 만일 당신이 한가한 시간을 더욱 많이 가지려고 한다면, 또 질리도록 단조롭게 교과서에만 파묻혀 수업 준비를 하지 않으려면 인문사회학 서적을 읽어야 한다. 당신이 가르치는 학문 영역에서 교과서에 담겨 있는 지식은 일차적인 것이 돼야 한다. 당신이 학생에게 가르치는 교과서의 기초 지식은 당신의 학문 지식이라는 큰 바다 속에 있는 작은 물방울이 돼야 한다. 그렇게 돼야만 수업 준비로 몇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수한 교사의 강의 능력은 늘 독서하면서 쉼 없이 지식의 바다를 채움으로써 높아진다. 만일 교사가 교직에 들어온 처음 몇 해 동안 쌓은 지식과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최저한도의 지식 비례가 10 : 1이었다면 그가 15년, 나아가 20년의 교직 경력을 가질 때 이 비례는 20 : 1, 30 : 1, 50 : 1로 변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독서로 달성된다. 교과서라는 물방울은 세월이 한 해씩 지나감에 따라 교사라는 큰 바다 속에서 더욱 작아질 것이다. 여기서 이론적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양은 질로 바뀐다. 자그마한 빛발들이 모여 더 선명한 빛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교과서에 들어 있는 배경이 넓을수록 교수 능력의 기초가 되는 직업적 자질은 더욱더 뚜렷해질 것이다. 교사는 수업에서 서술하고 강의할 때, 자기의 지식을 더욱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이를테면 교사는 삼각함수를 가르치지만 교사의 주요한 사고력은 함수에 한정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두게 된다. 교사는 개별적 학생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기억하는 면에서 어떤 장애에 부딪히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될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훈련시킬 것이다.
교사의 시간 문제는 교육과정의 다른 요소나 측면들과 깊이 연관된다. 교사의 노동과 창조의 시간은 마치 시냇물이 바다에 흘러드는 것과 같다. 어떻게 이 시냇물이 언제나 생기 있게 졸졸 흘러들게 만들 것인지에 관해서는 따로 몇 가지를 제안하려 한다.
(추천글, 서문, 제1장, 2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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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바실리 알렉산드로비치 수호믈린스키
Васил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Сухомлинский,
1918-1970
1918년 러시아제국 헤르손 현 알렉산드리야 군 바실리예프카 마을 목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농촌청년학교 졸업 후 크레멘추크 의과 기술학교 입학, 1939년 폴타바 사범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키로보그라드 현 오누프리예프 구 시골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와 문학 교사로 활동하다 제2차 대전 참전했다. 1941년 7월 적군(赤軍) 입대, 청년 정치부 지도원으로 서부전선과 칼리닌 전선에서 전투, 스몰렌스키 전투와 모스크바 근교 전투에 참전했다. 1942년 1월 포탄 파편에 심장 아래 중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우랄 병원에서 퇴원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우드무르츠키 자치공화국의 시골 학교 교장으로 일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1944년부터 인민교육부 오누프리예프 지역 분과장이 되어 1948년부터 죽을 때까지 우크라이나 키로보그라드 현 오누프리예프 구 파블리시 마을 중등학교 교장으로 일했다. 1955년 「교장은 교육과정의 조직자」라는 주제로 칸디다트 학위(준박사. 한국이나 서구의 박사학위에 해당)를 수여받았다. 수호믈린스키는 휴머니즘 원칙, 아동 인격의 높은 가치를 인정하는 원칙에 바탕을 둔 독창적인 교육체계를 만들었다. 교육 과정과 교사 및 학생 집단의 창조적 활동은 이러한 가치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호믈린스키는 공산주의 교육에 대해, 당의 명령을 고분고분 수행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인격들」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수호믈린스키는 ‘즐거운 노동으로서의 교육’이라는 체계를 만들었다. 학생들의 세계관 형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교육에서 교사의 언어, 서술의 예술적 문체, 아동과 함께 옛날이야기와 예술 작품을 만드는 작업에 중요한 몫을 할당했다. 수호믈린스키는 「미 교육」을 위한 복합적인 미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런 교육체계는 권위적인 교육과 대립했으며, 공식적인 교육계로부터 「추상적 휴머니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쑤호믈린스키의 사상은 「공산주의 교육에 관한 에세이」(1967)와 다른 저서에 나타난다. 그의 사상은 많은 학교들에서 구현되었으며, V. A. 수호믈린스키 국제협회와 국제 수호믈린스키 연구협회, 수호믈린스끼 교육박물관(파블리시 학교 소재. 1975년 건립)이 만들어졌다. 수호믈린스키는 청소년 교육을 다룬 30권 가량의 저서와 500편 이상의 논문을 썼다. 그의 삶은 아동과 인격의 교육 그 자체다. 아이들에게 덕성을 가르치고 그들을 시민으로 교육시켰다. 수호믈린스키는 소련 교육학 아카데미 명예회원(1968), 교육학 아카데미 후보(1955), 우크라이나공화국 공로교사(1958), 사회주의노동영웅(1968) 이다. 1970년 우크라이나 공화국 키로보그라드 현 오누프리예프 구 파블리시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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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수호믈린스키 교육사상연구회
휴머니즘 교육사상의 영원한 보배요, 아이들의 전면적인 발달을 통한 공동체주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평생을 현장교육에 매진한 수호믈린스키의 교육사상과 실천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책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은 『수호믈린스키 선집』(전5권, 끼예프, 쏘비에트학교 출판사, 1980)과 『브 아 수호믈린스끼 선집』(전3권, 모스크바, 교육출판사, 1979)을 저본으로 하여 우리 실정에 맞도록 편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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