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냐 정부냐 ― 우리를 죽인 사람들
현수막에 비친 지역주민의 마음
기름 유출 사고가 난 지 20여 일이 지난 12월 말, 태안군 경내에 들어섰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소복하게 쌓인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도로를 따라 여기저기 내걸린 현수막이었다.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진입하는 도로에는 눈밭을 등지고 현수막이 촘촘하게 내걸렸다. 태안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요구와 주장을 현수막을 통해 표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개미목 마을 주민이 내걸은 ‘삼성인지 정부인지 우리 생계터전 다 죽였다. 정부는 신속하게 선보상하라!!’ 그리고 천리포 주민이 내건 ‘시커먼 기름 재앙으로 우리 삶의 터전이 없어졌다. 삼성/정부는 왜 말이 없는가? 정부는 선보상하라!!’였다.
재난사고 20여 일이 지나면서 자원봉사자의 지역별 할당과 기름 제거 작업의 틀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주민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태안 사람들은 기름 유출 사고를 ‘청정바다 대학살’이라고 규정하고 그 주범으로 ‘삼성’과 ‘정부’를 지목했다. 소원연합영어조합의 한 영세어민은 ‘삼성호와 유조선의 사고는 의문덩어리이다. 진실을 밝혀라’고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자원봉사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태안군민은 여러분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자원봉사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문구는 이후 각 마을과 지역직능단체에서 내건 감사 현수막의 전주곡이었다.
기름 유출 사고가 있고 나흘이 지난 12월 11일, 소원면 모항항과 만리포 입구의 길목에 처음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역주민들이 내건 문구는 ‘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였다. 여기에는 기름 제거 작업에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태안지역 주민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만리포 횟집들 앞에는 ‘기름 유출 사고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고 열흘째 되는 16일, 자원봉사자 수가 12만 명을 넘어서고 사고 직후에 비해 해수욕장의 기름덩어리가 많이 제거되는 등 사정이 훨씬 나아지자 주민과 지역 사회단체는 읍내에서 만리포로 가는 길에 ‘태안군민은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등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14일부터 근흥면 주민피해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보상 문제에 대한 주민의 관심이 고조되자 이것을 반영하듯 환경운동연합에서는 18일 ‘추방! 단일선체 유조선!’과 ‘단일선체 유조선, 현대오일뱅크는 환경참사 책임져라!’ 등 재난사고의 책임 귀속을 따지는 문구를 내걸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와 현대오일뱅크에 단일선체 유조선의 통제를 소홀히 한 책임과, 당장의 이익을 좇아 재난 위험이 높은 유조선을 몰고 다닌 책임을 물었다. 재난사고의 일차적 책임을 정부와 석유회사에 물은 것은 사건 자체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불확실한 상황이라 관리 책임과 수익자부담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12월 말이 되면서 환경 쓰나미의 가해자가 삼성으로 구체화되어 거론되기 시작했고, 현수막 문구도 ‘은빛 모래밭을 삼성은 원상 복구하라’, ‘삼성 이건희는 대통령 위에 군림하냐! 대통령도 다녀갔다!’ 등으로 표출되었다. 많은 태안군민은 비록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막연히 삼성그룹 음모설을 믿었다. 11월 말경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미술품 구입 등 불법비자금 문제를 폭로해 정부에서 특검법을 실시하는 등 삼성을 향해 여론이 집중되자, 삼성이 국민의 시선을 딴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고의로 기름 유출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삼성 측이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자 음모설은 더 빠르게 번져갔다. 현수막에도 ‘기름 피해 진짜 주범 삼성그룹 무한책임’, ‘무한책임 무한보상 삼성그룹 약속하라’, ‘삼성타도! 삼성불매! 태안군민 통곡한다’, ‘태안군민 다 죽이는 삼성그룹 박살내자’, ‘삼성 미술품 팔아 태안 굴밭 매입하라’ 등 삼성을 비난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났다.
현수막을 내건 주민피해대책위만도 전 피해민 손해보상대책위원회, 만리포특별재난주민대책위원회, 파도리번영회비상대책위원회, 학암포대책위원회, 태안군해안기름유출비상대책연합위원회, 서산수협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피해대책위원회 등 10여 개가 넘게 늘어났다. 기름 오염으로 수입원이 상실된 상황에서 납득할 수 없는 긴급 생계지원비 지급 지연, 근거 자료 부족으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사고 책임자인 삼성중공업의 책임 회피와 검찰의 모호한 태도는 주민들의 분노와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2008년 정월 벽두부터 어민은 삶의 터전인 바다를 잃은 시름과 생계에 대한 막막함을 ‘태안지원특별법의 제정 요구’라는 형태로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한 달간 생업에 공백이 생겨 삶의 곤궁함에 다급해진 주민은 ‘초동 대처 안 한 정부는 특별법 제정해 영세어민 살려 주십시요!’(파도리 어민회), ‘정부는 선보상 지급하고, 국민 여러분 살려 주십시요!’(모항 어민회) 등 읍소형 문구를 내걸었다. 그래도 일부 어촌계와 어민회는 ‘원유 유출 사고회사는 진실하게 사죄하라!’, ‘검게 물든 삶의 터전 생존권을 보장하라’(근소만 송현어촌계), ‘특별법 제정해 맨손어권 보상하라!’(근소만 법산어촌계), ‘터전 잃은 영세어민에게 하루 속히 보상하라’(근소만 신덕어촌계) 등 보상 요구에 자존심을 담아냈다.
첫 자살자 나타나다
급기야 무허가 굴 양식업을 크게 하던 개미목 마을의 이영권(66) 씨가 1월 10일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12월 28일 당시 해수부가 개최한 피해보상 설명회에 참석해서 “무허가 양식장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을 듣고 좌절에 빠진 그는 “이젠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며 신세를 비관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자살 소식을 들은 개미목 마을 주민은 남의 일 같지 않은 현실 앞에 망연자실하였다. 주민 이성규(49) 씨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자살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며 “많은 주민이 사실상 죽지 못해 산다고 보면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거리에는 11일부터 장례날인 14일까지 정부가 피해보상에 나서기를 촉구하는 어민의 애절함이 담긴 ‘어민이 죽고 있습니다. 정부는 특별법 제정해 어업인 살려달라!’(채석포어민회), ‘초동 대처 안 한 정부는 선보상을 해주십시요! 영세어민을 살려 주십시요!’(모항4리 어민회), ‘정부는 신속하게 선보상하라!! 아~! 어찌 살란 말인가’(천리포어민회) 등 문구가 내걸렸다. 태안군청 안마당 영결식과 태안해양경찰서 광장 노제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만장과 삼성그룹의 무책임한 태도를 규탄하는 만장들이 펄럭였다. 기름 유출의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한마디 사과조차 없는 삼성중공업에 대한 비난과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추모객은 이씨의 영정을 에워싼 ‘기름 피해 진짜 주범 삼성그룹 무한책임’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들을 바라보며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기름 유출 대재앙을 일으키고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초일류 기업을 표방하는 삼성의 진짜 모습이냐’는 원색적인 비난도 잇따랐다.
동병상련의 물결은 개미목 마을을 넘어 태안지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나도 백번 죽고 싶지만 자식들이 있어서…” 한숨과 함께 말끝을 흐렸다던 한 어부의 고통은 곧 연쇄 자살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맨손어업을 하던 근흥면 마금리의 김용진(73) 씨가 바다 오염으로 바지락 채취가 불가능해져 생활비 마련은 물론 몸이 불편한 부인의 치료비 조달이 어렵게 되자 1월 15일에 농약을 음독, 16일 세상을 떠났다. 어민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무기력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지 41일이 되도록 생계비를 한 푼도 못 벌었으니 그 어려움이 어땠는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 18일 태안군청 안마당에서 거행된 장례식장에서는 배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삼성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어 나타났다. ‘원통하다 어민원혼 가해자는 어디 있나’, ‘사람 죽인 삼성그룹 참회하라 배상하라’, ‘타살된 태안바다 삼성그룹 살려내라’, ‘죽음으로 항거한 고인의 뜻 이어받아 태안을 살려내자’, ‘어민원혼 살려내라 태안군민 살려내라’ 등 60여 개의 만장으로 넘쳐났다.
장례식이 끝난 뒤 ‘특별법 제정 촉구 대정부 결의대회’가 시외버스터미널 뒤 공터에서 지역별 피해 대책위들을 통합시킨 ‘태안유류피해투쟁위원회’의 주최로 열렸다. 붉은 바탕의 대형 걸개그림에는 불끈 쥔 주먹이 ‘우리가 끝이면 너희도 끝이다! 완전복구 완전보상 가해자 무한책임’을 외치고 있었다. 태안군 어민회장 문제빈 씨는 결의대회에서 “기름배가 터진 뒤 40여 일이 지나 주민들은 돈 한 푼 없이 빈 쌀독을 바라보며 방제하는데, 사고를 낸 삼성은 잘못했다는 사과 한마디 안 한다”며 “태안군민이 총궐기해야 살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태안유류피해투쟁위원회는 이날 “정부는 유류 사고 특별법을 제정해 주민들의 피해를 먼저 보상하고 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의 중과실을 밝혀 무한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투쟁위는 또 “해양환경복원특별법을 만들어 해양환경이 완전 복원될 때까지 삼성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 유조선사에 복원 책임을 묻고 지역경제 회생 대책을 시행해 주민이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결의대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삼성은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나무로 만든 삼성중공업 예인선단, 유조선 모형과 삼성제품 모형을 때려 부쉈다.
궐기대회 자리에서 고통받던 또 한 영혼이 자살을 선택했다. 태안읍내 조석시장에서 횟집 겸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던 지창환(56) 씨가 농약을 마신 상태에서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분신을 시도했다. 의항리 가창노(70) 씨는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비참하게 사는데, 주지도 않는 생계지원금과 성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며칠 새 두 명이 자살하더니 오늘은 분신까지 해, 살기 좋던 태안이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지씨는 이튿날 끝내 마지막 숨을 거뒀다.
열흘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세 사람이 자살했다는 것은 당시 지역주민들이 얼마나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다. 생계를 비관한 어민들의 자살이 연이어 일어나자 긴급 생계지원비 지급을 미룬 채 배분 방법을 놓고 싸우던 충청남도 시·군들은 당황했다. 곧 긴급 생계지원비가 설을 앞둔 1월 말부터 2월 초 사이에 전격적으로 지급되었다. 구정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바닷가로 향하는 길가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수막의 물결 속에서 고향 사람들의 고통과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당시 태안 주민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있었는지, 그리고 정부와 삼성의 처사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었는지를 현수막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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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개
희망제작소
지역과 현장 중심의 연구를 통해 살아 있는 대안을 만들고 농촌과 지방을 살기 좋은 마을로 가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며 소기업과 사회적기업을 지원, 육성하여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공공리더와 시니어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우리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애쓰는 희망제작소는 시민의 번뜩이는 작은 아이디어를 사회변화의 원동력삼아 1만 명 시민의 힘으로 움직이는 시민참여형 연구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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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노진철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환경사회학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부회장, 한국NGO학회 부회장, 국가위기관리학회 부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환경과 사회: 환경문제에 대한 현대사회의 적응』(2001), 『녹색전망: 21세기 환경사상과 생태정치』(공저, 2002), 『현대 환경문제의 재인식』(공저, 2003), 『우리 눈으로 보는 환경사회학』(공저, 2004), 『한국의 도시와 지역』(공저, 2008), 『5?18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공저, 2008), 『대한민국 60년의 사회변동』(공저, 2009), 『불확실성 시대의 위험 사회학』(2010) 등이 있다.
공동 저자(게재순)
박진섭(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위평량(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이재은(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박동균(대구한의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양기근(원광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박태순(사회갈등연구소 소장)
유현정(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김혜선(강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겸훈(한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평주(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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