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가 오늘 새 부인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들은 타조 깃털을 이마에서 휘날리는 한 필의 말이 끄는, 먼 길을 달려 먼지가 자욱한 마차를 타고 달가닥달가닥 평원을 가로질러 왔다. 혹은 이마에 깃털을 단 두 필의 당나귀가 끄는 마차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가능한 일이다. 나의 아버지는 검은색 연미복에 실크 모자를 썼고, 신부는 챙이 넓은 모자에 가슴과 목이 꼭 끼는 흰 드레스를 입었다. 과장한다면 모를까, 그 이상은 묘사할 수 없다.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에 나는 내 방에서, 덧문을 닫은 컴컴해져가는 선녹색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거나, 어쩌면 편두통과 싸우느라 축축한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누워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편두통과 싸우면서 방에 처박혀 지내는 사람이다. 식민지는 그러한 여자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처럼 극단적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아버지는 생기 없는 검은색 부츠를 신고 마룻바닥을 수없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제3의 인물이 있다. 침대에 늦게까지 누워 있는 그의 새 부인. 그들이 적이다.
2. 새 부인. 새 부인은 큼지막한 입으로 천천히 미소를 짓고, 게으르고 골격이 크고 육감적이고 교활한 여자다. 그녀의 눈은 두 개의 딸기처럼, 두 개의 기민한 검은딸기처럼 검고 날카롭다. 그녀는 우아한 손목과 기다랗고 포동포동하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손가락을 가진 덩치 큰 여자다. 그녀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그녀는 먹고 자고 빈둥거린다. 그녀는 기다란 붉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달짝지근한 양고기 기름을 핥아먹는다. “아, 참 맛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웃으면서 추파를 던진다. 나는 홀린 듯 그녀의 입을 바라본다. 그녀의 미소를 머금은 큰 입과 날카로운 검은 눈이 내게로 향한다. 그녀의 미소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오붓한 가족이 아니다.
3. 그녀는 새 부인이다, 그러므로 옛 부인은 죽었다. 옛 부인은 나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에 죽어서 나는 어머니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나는 아주 어렸던 게 틀림없다. 어쩌면 갓난애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득히 먼 기억의 비밀감옥에서 희미한 회색 형상 하나를 끄집어낸다. 마룻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희미하고 창백하고 가냘프고 유순하고 정이 많은 어머니의 형상. 내 위치에 있는 어느 여자라도 자신을 위해 만들어낼 수 있을 법한 어머니의 형상.
4. 아버지의 첫번째 부인, 즉 나의 어머니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살다 죽은 가냘프고 유순하고 정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다 죽었다. 그의 무자비한 성적 요구 탓이었다. 그녀는 나의 아버지가 원하는 거칠고 버릇없는 사내아이를 낳기엔 너무 가냘프고 유순했다. 그래서 그녀는 죽었다. 의사는 너무 늦게 왔다. 자전거를 탄 심부름꾼의 기별을 받은 의사는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40마일이나 되는 길을 달려왔다. 그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고통을 참으면서 창백하고 후회스러운 얼굴로.
5. (하지만 그는 왜 말을 타고 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시대에 자전거가 있었을까?)
6. 나는 아버지가 평원을 가로질러 신부를 집으로 데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지 않았다. 어두운 서편에 있는 내 방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반기며 차를 대접할 준비를 하고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부재했다. 내가 없어도 아쉬울 건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없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나는 늘 부재였다. 나는 이 집의 한복판에 있는 여성적인 온기가 아니라 제로이고 영이며, 그것을 향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진공이고, 복도에서 소용돌이치는 싸늘한 바람처럼 숨을 죽인 희끄무레한 혼란이었다. 무시당해 복수심에 불타는.
7. 밤이 된다. 나의 아버지와 그의 새 부인은 침실에서 희희낙락한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그녀의 자궁을 어루만지며 그것이 흥분하고 꽃피기를 기다린다. 그들의 몸이 얽힌다. 그녀는 풍성한 살집으로 그를 휘감는다. 그들은 낄낄대고 낑낑거린다. 그들에게는 좋은 시간이다.
8. 운명에 따라 H자 모양으로 지어진 집에서 나는 평생을 살았다.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하인들 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수 마일에 걸친 철조망 울타리가 있는 돌과 태양의 무대에서 어두운 아버지의 험상궂은 과부-딸로 평생을 살았다. 해가 지고 또 질 때마다 우리는 따분한 사람들이 요리한 따분한 양고기, 감자, 호박 요리를 앞에 놓고 서로의 얼굴을 대했다. 우리가 얘기를 나눴을까? 아니다, 우리는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음식을 씹고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우리의 눈은, 그의 검은 눈과 그에게서 물려받은 나의 검은 눈은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떠돌았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해석하지 못하는 좌절당한 욕망의 알레고리를 꿈꾸기 위해 물러났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얼음 같은 금욕주의를 발휘해 누가 먼저 일어나서 차가운 난로에 불을 지필지 경쟁했다. 농장에서의 삶.
9. 침침한 복도에서 시계가 밤낮으로 똑딱거린다. 태엽을 감고, 해와 달력에 맞춰 매주 시간을 맞추는 건 나다. 농장의 시간은 넓은 세계의 시간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나는 흥분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한, 마음의 맹목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을 단호히 억누른다. 나의 맥박은 일 초 간격인 문명의 박자에 맞춰 고르게 뛸 것이다. 언젠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느 학자가 시계를 보고 야생을 길들였던 기계를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식민지의 딸들이 눈을 감고 숫자를 세던, 천장이 높고 서늘한 녹색 집 안에 배어 있던 낮잠시간의 쓸쓸함을 과연 알기나 할까? 이 땅은 나처럼 역사로부터 잊히고, 오래된 집에 있는 바퀴벌레처럼 푸르스름하고, 구리 식기를 반들반들 닦고, 겨울을 날 음식을 저장하는 우울한 노처녀로 가득하다. 우리는 어렸을 때 오만한 아버지에게 구애를 받아 인생을 망친 괴로운 처녀들이다. 어린 시절의 강간, 누군가 이러한 공상 속에 있는 진실의 핵심을 파헤쳐야 한다.
10. 나는 산다, 나는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 필요하다면 나는 교활함과 배신으로, 역사의 잊힌 존재 중 하나가 되는 것에 저항한다. 나는 자물쇠를 채운 일기장을 갖고 있는 노처녀다. 아니, 그 이상이다. 나는 불안한 의식이다. 아니, 그 이상이기도 하다. 모든 불이 꺼질 때 나는 어둠 속에서 미소를 짓는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의 치아가 반짝인다.
11. 그녀는 오렌지꽃 냄새와 암내를 풍기며 내 뒤로 와서 어깨를 잡는다. “나는 당신이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불안해하고 불행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어요. 우리 모두 다 같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정말 무엇이든 할 거예요. 내 말 믿을 수 있어요?”
나는 난로 안을 응시한다. 나의 코가 벌름거리며 붉어진다.
“나는 집안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녀가 빙글 돌면서 읊조린다. “우리 셋이서 같이. 나를 적이 아니라 자매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만족해하는 여자의 통통한 입술을 바라본다.
12. 옛날에 나는 이야기를 충분히 오래하면 미지의 곳 한복판에서 길길이 날뛰는 노처녀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밝혀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나는 비둘기의 냄새를 맡는 개처럼 모든 일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지만, 진정한 이중적 삶이 시작되는 걸 알려주는 ‘마치 ~처럼’으로의 무모한 확장을 전혀 찾아내지 못한다. 나를 신화와 영웅의 땅으로 바꾸어줄 말을 만들어내려고 애쓰지만, 이곳에서 나는 아직도 자신을 초월하지 못하는 맥 풀린 여름 더위 속의 촌스러운 자아일 뿐이다. 나한테 무엇이 부족한 걸까? 나는 울면서 이를 간다. 단순한 열정이 부족한 걸까? 존재의 세속성으로부터 의미의 이중성으로 나를 옮겨놓을 정도로 정열적인 제2의 실존에 대한 상상이 부족한 걸까? 나도 괴로우면 털구멍이 파르르 떨리지 않는가? 나의 열정에는 의지가 부족한 걸까? 어찌 됐든 나는 화가 나 있지만 결국 내 분노를 끌어안고 사는 자기만족적인 농가 마당의 노처녀인 걸까? 나는 정말로 스스로를 넘어서길 바라는 걸까? 나는 나의 분노와 그것의 끔찍한 결말에 관한 이야기라는 매개 속으로 기어 들어가 눈을 감고 급류 아래로 떠밀려가서는 조용한 강어귀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나게 될까? 이것은 어떤 자동현상일까, 이것은 나한테 어떤 자유를 가져다줄까? 자유가 없다면 내 이야기의 요점은 무엇일까? 나는 노처녀로서의 운명에 격분한 걸까? 내 억압의 이면에는 누가 있을까? 나는 잿더미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아버지와 계모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당신 그리고 당신. 하지만 나는 왜 그들로부터 달아나지 않았을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다른 곳이 존재하는 한, 나에게 길을 가르쳐줄 천상의 손가락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다가 이제야 알게 된 더 복잡한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화내기를 좋아하고 다른 이야기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자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의미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릴 운명일까? 하지만 거기에는 나를 위한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이웃집 둘째아들과의 결혼? 나는 행복한 촌뜨기가 아니다. 나는 불행하고 검은 처녀이며,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 설령 그것이 그것의 의미와 살아보지 못한 수많은 행복한 삶을 알지 못하는 따분하고 검고 맹목적이고 어리석고 비참한 이야기일지라도. 나는 나다. 성격은 운명이다. 역사는 신이다. 에잇, 에잇, 에잇.
13. 천사. 그녀는 때로 그렇게 알려져 있다. 갈색 아이들을 후두염과 열병에서 구해주려고 온 검은 옷의 천사라고. 병자를 간호할 때면, 가사일을 할 때의 엄격함은 한없는 동정심으로 바뀐다. 그녀는 졸음을 쫓으며 훌쩍이는 아이들이나 분만 중인 여자들과 함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그들이 눈을 빛내며 아첨을 한다. 그녀는 만족스러워한다. 그녀는 전쟁 중에 다친 사람들의 마지막 시간을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들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손을 꼭 잡고 죽어갈 것이다. 그녀의 동정심은 끝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누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당황한다. 그것이 모든 걸 설명해주지 않는가?
14. 나의 아버지가 더 약한 사람이었다면, 그의 딸은 더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걸 필요로 한 적이 없다. 나는 내가 필요한 존재였으면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달처럼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그처럼 나는 우습게 혼자서 우리의 와해된 심리 속으로 들어가본다. 설명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고, 설명되는 것은 용서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명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그러기를 바라면서 또 그걸 두려워한다. (하지만 빛으로부터 움츠리는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한테 정말 비밀이 있는 것일까? 혹은 나 자신 앞에서 이렇게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나의 더 좋은 탐색적인 반쪽을 신비화하고자 하는 방식일 뿐일까? 나는 정말로 나의 부드러운 어머니와 나의 갓난애 자아 사이의 틈에 이 검고 무료한 노처녀에 대한 열쇠가 있다고 믿는 걸까? 이야기를 늘려라, 이야기를 늘려라, 이것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속삭임이다.)
(본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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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J. M. 쿳시 John Maxwell Coetzee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났다.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수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영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고, 약 3년 동안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한 뒤 남아프리카로 돌아와 케이프타운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2년 정년퇴임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 애들레이드 대학과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1974년 『어둠의 땅』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쿳시는 1977년 두번째 소설 『나라의 심장부에서』로 남아프리카 최고의 문학상인 CNA 상을 받았고, 1980년 출간한 『야만인을 기다리며』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3년 『마이클 K』와 1999년 『추락』으로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에트랑제 페미나 상, 예루살렘 상, 아이리스 타임스 국제소설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포』(1986) 『철의 시대』(1990) 『페테르부르크의 대가』(1994) 『동물로 산다는 것』(1999)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 『슬로우 맨』(2005)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2007), 자전적 소설 3부작 『소년 시절』(1997) 『청년 시절』(2002) 『서머타임』(2009)이 있고, 그 외에 다수의 에세이와 번역서, 연구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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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다. 이어하트 재단, 케이프타운 대학, 풀브라이트 재단 등의 펠로였으며 케이프타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나딘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문화관광부 청소년권장도서), 조셉 콘래드의 『비밀요원』,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한 톨의 밀알』, 존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한국연구재단 우수번역서), 하진의 『니하오 미스터 빈』, 히샴 마타르의 『남자들의 나라에서』, 루퍼트 아이잭슨의 『호스 보이』를 비롯한 30여 권의 역서와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문학의 거장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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