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그건 위기였다. 기억하나요? 그 위기는 옛날에, 아주 까마득히 오래전, 작년에 일어났다.
위기. 모두들 그 이야기뿐이었다. 정말로 무엇에 관한 건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늠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은, 마치 전혀 관계없다는 듯 항상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자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현실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앞서의 그 위기만이 증권가의 주식처럼 그렇게 갑자기 평가절하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익명으로 일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아주 간단한 생각이다. 미국의 백인이 흑인으로, 금발의 독일인이 터키인으로, 프랑스 청년이 노숙자로 변신하기도 하고, 중산층 여성이 빈민이 되는 등 이미 다른 기자들이 나보다 앞서 유능하게 실행했던 그런 일. 나는 이런 것들을 모두 떨쳐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맡기기로 결심했다. 내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고 또 그게 바로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이기도 했다.
캉은 이상적인 도시로 여겨졌다. 너무 북쪽도, 너무 남쪽도 아니고, 너무 거대하거나 너무 작지도 않은 그런 도시다. 또한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아, 내게 유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원, 즉 이름과 신분증을 그대로 유지한 나는, 가구가 딸린 셋방을 구하고, 바칼로레아를 소지한 실업자로 등록했다. 그리고 20여년간 살던 남자와 겨우 헤어진 참인데, 그동안 그가 나를 거의 부양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다른 직업 없이 지내왔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머리를 금발로 바꾸고, 안경을 썼다. 그리고 그 어떤 수당도 받은 적이 없는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됐다.
다소간의 확신과 끈기를 지닌, 비범한 사람들이 내 이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광고 컨설턴트, 징집소의 징병관, 청소회사 사장 등이 내 이름을 떠올렸다. 나는 기자가 아니라며, 동명이인이라고 주장했다. 일은 그쯤에서 끝났다. 그 후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내 이름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런데 딱 한 번, 구직 안내소의 젊은 여성이 나의 정체를 알아내고 말았다. 나는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했고, 그녀는 약속을 지켜줬다. 그 후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내 이름에 관해 묻지 않았다.
내 목적이 성취되는 날, 즉 내가 정규직을 얻게 되는 날, 이 일을 그만둘 계획이었다. 이 책은 2009년 2월에서 7월까지 6개월에 걸친 나의 구직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과 회사들의 이름은 임의로 바꿨다.
나는 캉의 셋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가 올 겨울에 이 책을 쓰기 위해 다시 그곳을 찾았다.
2010년 1월
파리에서
플로랑스 오브나
청소부들이 아프지 않다면
임마퀼레에서 메다르 씨는 한 구역과 거기에 투입되는 사람들을 관리한다. 모두 다 그를 좋아한다. 그는 까망베르 치즈 포장 위에 그려진 수도승들처럼 뚱뚱하면서 다정한 인상을 풍긴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여자들은 모두 청소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게 유행이에요. 그러나 그걸 하려면 단지 원하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지요. 나는 실습생들에게 그 점을 반복해 말하곤 합니다. 이른 아침, 늦은 저녁, 이런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남편과 자녀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만 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맡긴 일을 확실히 할 수 없지요. 아주 빨리 그만들 둔답니다. 믿어도 됩니다. 사람 구하기가 아주 힘들다는 걸.”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청소부 한 명이 아프단다. 그는 사람 좋아 뵈는 그 큰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는다.
“청소부들이 아프지 않다면, 인생이 참 아름다울 텐데.”
전화가 또 온다. 또 다른 청소부가 아프다고. 메다르 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회사는 전차선이 끝나는, 신 구역 내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구역의 길 이름들은 결코 기억할 수 없을 것 같고, 생생한 색깔의 도시형 건물이 옆에 있다. 회사 건물 역시 최근에 지어졌는데, 그 내부는 1950년대 영화 속 사무실을 재현해 놓은 것 같다. 메다르 씨는 바닥에 옅은 노란색 타일이 깔린 작은 카페테리아, 사무실, 흰색 도기로 된 커다란 세면대가 늘어서 있고 금속을 두른 라커로 된 탈의실, 창고, 목재 선반이 꽉 들어찬 통신물 발송실, 화장실, 먼지를 뒤집어 쓴 불멸의 스크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회의실로 차례차례 안내한다. 메다르 씨는 내게 살짝 귀띔해준다.
“부인은 아주 운이 좋은 거예요. 여기서 편하게 잘 지내실 겁니다. 사람들도 다 예의 바르고, 장소가 아주 불결하지도 않아요. 잘 이용하세요. 모든 구역이 다 똑같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는 카트 준비하는 법과 물 양동이 채우는 법을 설명해준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안 됩니다. 그러면 세제를 무용지물로 만들게 되니까”라는 주의도 잊지 않는다. 금요일에는 자동세척기를 써서 창고 청소를 해야 한다. 내가 그 기계를 사용할 줄 아느냐고? 폴 앙플로와에서 알려준 대로, 나는 약간 건방진 어조로 “물론이죠”라고 대답한다. 그가 내게 말한다.
“어쨌든, 자전거 타는 거와 마찬가지로, 한번 배우고 나면 평생 가는 거지요.”
첫 번째 지시는 사장 사무실에 관한 것인데, 그 어떤 실수도 용인되지 않는다.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해야 된다. 우리 계약을 수결하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밖에 이것저것 두서없이 얘기해줬는데, 물론 난 다 잊어버린다. 항상 휴지통을 비워야 하는데, 휴지를 쏟아낼 때, 통에 맞춰 넣어 놓은 비닐 봉투는 바꿔 끼우지 말아야 한다.
“그건 우리 비용으로 사 넣는 겁니다. 매일 모든 쓰레기통에 새 비닐 봉투를 갈아 넣는다면, 우리는 망하고 맙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비롯해 책상 위에 있는 모든 것의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데, 아무것도 흐트려 놓으면 안 됩니다. 컴퓨터에는 절대 손대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를 고장 냈다고 아주 혼이 났었어요. 제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세요.”
마지막으로 메다르 씨가 특히 강조한 규칙 중에 하나는 의자를 똑바로 놓도록 주의할 것. 책상 앞에 정중앙으로 딱 맞게. 이렇게 해놓으면, 이튿날 아침 누가 됐든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아주 청결하고 질서 정연한 인상을 주게 되는 법이란다.
바로 전의 청소 용역회사는 작업 시간을 2시간으로 약정했다. 그런데 임마퀼레가 15분을 깎으면서 그 회사 일을 낚아채 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나 혼자서, 주어진 1시간 45분에 이 모든 일을 다 해내야 한다. 메다르 씨는 내가 운이 좋은 거라고 확신시켜준다.
“한 팀에 세 사람 이상 되면, 그 즉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죠. 자, 그럼 잘 해보세요.”
사장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해괴하게 찡그린 얼굴을 하면서, 마치 특별대우라도 하는 양 “죄송하지만, 저 죄송하지만” 자기 책상은 청소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나의 일과 관련해서는 완전히 자신을 잊어 버려야 한다. 경우에 따라 잘 판단해 가면서 완전히 아니면 약간 나의 존재감을 지워버려야 한다. 사무실에서 두 직원이 멀거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녀들은 이제 나와는 딴 세상에, 어렴풋하고 아스라한, 나와 상관없는 그런 세상에 속하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작업복 안에 입은 스웨터 소매는 젖어 있고, 계속해서 눈으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고무장갑 낀 손으로 젖히려고 하면 자꾸만 장갑에 달라붙는다. 너무나 덥다. 절대로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자꾸만 시계를 보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국 45분이나 늦게 끝낸다.
이튿날 아침 6시에, 완전히 텅 빈 커다란 건물에 네 사람이 도착해 있다. 낮에 이곳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아직 출근 전인데, 우리에겐 그게 편안하다.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상습적으로 도처에 대문자로 쓴 화난 메모를 남겨놓는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투정 많은 꼬마의 길을 따라가듯, 나는 그 메모들을 따라간다.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음’, ‘가구 밑도 청소해줄 것, 부디’, ‘내 책상 밑이 더러움―진공청소기 돌릴 것’, ‘어제, 이 휴지통 비우지 않았음’, ‘벌써 두 번째인데, 커피자국 지울 것’.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하나는 일반 가정집에서 몇 시간 청소할 자리를 찾고 있는데, 혹시 내가 아는 데가 있는지 묻는다. 얼마 전 자동차 분야에서 일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난생 처음 파업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위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어.”
곧바로 그녀는 고쳐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한편에서는 또 이 모든 게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내쫓을 수 있게 하려고 자발적으로 일으켰다는 얘기들도 하거든. 그렇다면, 여전히 해고는 계속될 테고, 모든 게 다 속임수라는 거겠지.”
8시에 각자 아이들 때문에, “내일 봐” 하고 작별 인사를 하며 급히들 떠난다.
내가 채 시동을 걸기도 전에 메다르 씨가 부른다. 지금 바로 시간이 있냐고? 이사 나간 아파트에 새로 임차인이 들어오기 전에 2시간 정도 청소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사의의 표시로 나는 그 일을 맡는다. 차 안에서, 그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오브나 부인, 아주 힘든 하루가 되겠네요. 괜찮으세요?”
우리는 아파트에 도착한다. 수위가 자리에 없다. 전화를 해보는데, 그 번호는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번호다. 수위실 문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린다. 안전벨트를 매고 나란히 앉아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 동안, 차창에는 뿌옇게 김이 서린다. 침묵 속에서 계기판의 시간이 흘러간다. 기다리다 지쳐 마침내 메다르 씨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오랫동안 팔레즈 옆에 살았는데, 임마퀼레에 취직하면서 캉에 정착한 지 18개월째로 접어든다. 그는 손가락으로 돈을 나타내는 제스처를 한다.
“애들을 대학에 보내야 해서, 어쩔 수가 없었지요.”
아들 중 하나가 실업 상태였다. 그 아들은 큰 유통회사에서 차장까지 하며 아주 잘 지냈었다.
“회사에서는 마치 레몬 짜듯이 그렇게 그 애를 쥐어짰어요. 언제고 회사에서 부르면 나가야 했고, 그걸로도 충분치가 않았지요. 뒤에서 그를 채찍질해대는 부장에게 뭔가를 보여줌으로써 마음에 들어야 했지요. 사실 그들은 모두에게 다 똑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차창 앞 가득 하얗게 김이 서려 수위가 도착한 것도 못 알아볼 정도다.
인부들은빈 아파트에 온통 페인트 얼룩들을 남기고 갔다. 더운 물을 가지러 지하실까지 내려가야 하고, 전기는 아직 들어오지도 않는다. 피곤이 닥쳐오는데, 화장실 말고는 눈을 뒤집고 찾아봐도 단 1분도 앉을 만한 자리 하나 없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다. 현장에서의 2시간 작업에 대해서만 임금이 지급된다. 나는 3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어제 저녁 사무실에서 초과 시간 45분에 대해 말하지 않았듯이, 그 점에 대해 특별히 지적하고 나서지는 않는다.
온통 회색으로 젖은 하늘을 바라본다.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서문 전문, 제2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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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플로랑스 오브나 Florence Aubenas
시사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퇴르 Le Nouvel Observateur>의 대기자Grand Reporter로, 1961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984년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인 CFJ(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를 졸업했다. 1986년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리베라시옹 Liberation>에 입사한 후 이라크, 르완다, 코소보,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 취재를 도맡아 국제 문제 전문 대기자로 활약했다. 2005년 1월 5일 총선을 앞둔 이라크 현지 상황을 취재하던 중 통역을 맡았던 후세인 하눈 알 사디와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에 피랍되었다가 157일 만에 석방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전 프랑스가 오브나의 석방을 위해 애썼는데, 프랑스 사상 처음으로 40개 신문사 편집장들이 모여 매스미디어를 통해 그녀의 석방을 지원할 것을 결의하기도 했다. 2009년 7월부터 세계 감옥 감시 기구L’Observatoire International des Prison의 대표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미겔 베나사야그와 함께 쓴 『저항하는 것, 그것은 창조하는 것』과 그 외에 『오해, 우트로 사건』, 『위스트르앙 부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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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윤인숙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수학하고, 외국 정부기관과 외국계 기업에서 다년간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홍보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옮긴 책으로 『행복의 역사』, 『인덱스: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 『시끌벅적한 철학자들 죽음을 요리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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