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04년 11월의 어느 아침,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는 낡은 검은색 자전거를 타고 암스테르담의 영화사로 가는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 시각 무함마드 부예리Muhammad Bouyeri라는 이름의 모로코 남자는 권총과 두 개의 푸주칼을 지닌 채 테오가 큰 도로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부예리는 총을 들어 리나외스트라트 거리로 막 들어서는 테오를 향해 몇 발을 연거푸 쏘았다. 넘어진 자전거를 뒤로 하고 비틀거리며 몇 발자국 걷다가 결국 쓰러진 테오는 뒤따라온 부예리에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며 사정했다. 하지만 부예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몸에 네 발의 총알을 더 박아넣었고 마지막으로 푸주칼로 그의 목을 베었다. 다른 하나의 푸주칼은 다섯 장짜리 편지와 함께 테오의 가슴에 꽂혔다.
편지의 수신인은 나였다.
두 달 전 나는 테오와 함께 알라에 대한 전적인 복종에서 벗어나 알라와 대화하기를 선택한 이슬람 여성들의 저항을 표현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언젠가는 2부를 만들 생각으로 <복종 1부 Submission Part I>라는 제목을 붙였다(테오는 차기작에 유머가 들어가지 않으면 제작에서 빠지겠다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복종 1부>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몸에 꾸란 구절을 새겼으며, 눈길을 아래로 향하는 대신 알라를 올려다보며 기도 드린다. 이들은 알라에 대한 복종이 그들을 큰 불행에 빠뜨리는데도 알라가 침묵한다면 더 이상은 복종하지 않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영화에는 간통했다는 이유로 채찍으로 맞는 여성, 지긋지긋하게 싫은 남자와 결혼한 여성, 일상적으로 폭행당하는 여성, 삼촌에게 강간당하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여성, 이렇게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가해자들은 여성들의 몸에 새겨진 꾸란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학대 행위를 알라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 네 여성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십만 이슬람 여성의 상징이다.
이런 내용을 영화로 제작하는 데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테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테오는 용감한 전사였다. 또한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더 표현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인 네덜란드 사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안전을 염려해 영화 크레딧에서 그의 이름을 빼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테오는 오히려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내가 만든 영화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면, 네덜란드는 더 이상 네덜란드가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닌 거요.”
죽을 작정으로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라고 어찌 목숨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침묵이 불의의 공범이 되는 순간이 온다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그 문제에 대해 꼭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 삶의 기록이다. 내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에 대한 이야기고 내가 지금의 나로 살게 된 사연에 대한 기록이다. 정확한 기록을 위해 가족들의 도움을 구하고 싶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상태여서 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억에 의존해 기록할 수밖에 없었음을 밝혀둔다. 책을 써나가면서 이런 작업이 필요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모든 일을 명확히 해두기 위해 정확하고 솔직하게 기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과 그곳에서의 삶의 모습을 접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소말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에티오피아, 케냐에서 자랐고 스물두 살이던 1992년 유럽으로 건너와 네덜란드 하원의원이 되었다. 테오와 함께 영화를 제작했고 덕분에 경호원과 함께 생활하고 무장차량을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네덜란드 법원은 나와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는 이웃들이 불안을 느꼈으며, 이를 법에 호소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가 임대해준 내 생활 공간을 비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미국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내 시민권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지기 전이었으니 네덜란드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그곳을 떠나게 된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이 책을 내 가족과 복종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수백만 이슬람 여성에게 바친다.
“너는 누구지?”
“내 이름은 아얀. 마간의 아들, 히르시의 딸이에요.”
하얀 모래 위로 햇빛이 내리꽂히고, 탈랄나무 가지가 그늘을 드리우는 집 앞 풀밭에 외할머니와 내가 앉아 있다. 외할머니는 매서운 눈매로 나를 노려보며 계속 해보라고 재촉한다.
“마간은 이세의 아들이에요.”
“그다음은?”
“이세는 굴라이드의 아들, 굴라이드는 알리의 아들이고, 알리는 와이에이스의 아들, 와이에이스는 무함마드의 아들, 그 위에는 알리, 우마르.”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숨을 고르고 마저 대답한다. “오스만, 마하무드요.”
“그의 엄마는 누구지? 어느 부인의 아들이냐고?”
“야쿱의 딸 가랍 사레요.” 나는 오스만 마하무드의 부인들 중 가장 강인했던 여인의 이름을 댔다. 야쿱의 딸은 꺽다리였다고 한다.
못마땅한 얼굴로 외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300여 년 전에 살았던 조상의 이름을 댈 수 있으니, 다섯 살짜리 치고는 괜찮게 해낸 셈이다. 조상의 이름을 외우는 일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아버지가 오스만 마하무드의 혈족이니 자연히 나도 그 일원이다.
내가 나이를 더 먹으면 위대한 다로드 가문이 시작된 800년 전의 부계 조상의 이름을 외우게 될 것이다. 외할머니는 어르고 달래다가 안 되면 때리면서까지 가문의 조상 이름을 외우도록 만든다. 나는 다로드이자 하르티이자 마허텐이자 오스만 마하무드다. 그리고 일명 꺽다리라 불린 오스만 마하무드의 배우자이다. 내가 곧 마간이다.
외할머니는 회초리를 들이대며 경고한다. “똑똑히 듣거라. 네가 외운 그 이름들이 너의 힘이 되어줄 거다. 그 이름들이 바로 너의 혈통이기 때문이지. 네가 그들을 존중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 그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버림받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쓸쓸히 죽게 된다. 자,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해보거라.”
소말리아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가문의 족보를 외워야 한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일단 상대방의 가문부터 따지고 보기 때문에 족보 암기는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다. 서로의 족보를 따지다 보면 어느 순간 같은 조상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면, 그 조상이 여덟 세대보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할아버지라고 해도, 두 사람은 사촌 지간이 된다. 가문을 이루는 위대한 가문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환대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기본적으로 부계의 가문에 속하지만, 어머니의 혈통도 함께 외워두면 여행을 하거나 낯선 이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등에 맺힌 땀이 흘러내리는 무덥고 기나긴 오후 내내 마하드 오빠와 나는 가문의 족보를 암송하곤 했다. 나중에는 여동생 하웨야도 암송 대열에 합류했는데, 이해력이 뛰어나고 총명한 하웨야는 진지하게 집중하지 않는데도 오빠나 나보다 먼저 자리를 뜨곤 했다.
튼튼한 지붕과 담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콘크리트 집에서 나고 자란 우리 같은 아이들이 조상의 이름을 외우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할 리 없었다. 우리는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외할머니의 회초리를 간발의 차이로 피해다니면서 놀거나, 나무에 올라가 나뭇가지로 장난치며 노는 데에만 열중했다.
제일 재미있는 일은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엄마는 화로 앞에서 요리를 하고 우리는 나무 아래에 매트를 깔고 누워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조른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가 저절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외할머니가 매트를 짜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하면, 바로 그때 이야기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옛날 옛적에 젊은 유목민과 아름다운 아내와 아들이 살았단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우리 삼남매는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야기에 푹 빠진 양 외할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약간만 흐트러져도 외할머니는 곧 흥을 잃어버려 우리를 쫓아내고는 마른 풀을 가늘게 꼬아 엮어서 크고 정교한 매트를 만드는 일로 돌아가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지 않자 유목민은 가족과 함께 정착할 만한 초원을 찾으러 사막을 건넜단다. 이윽고 푸른 초원을 만났는데 그곳에 마침 튼튼한 나무기둥을 세워 지은 오두막이 있는 거야. 새로 짠 매트가 깔려 있는 말끔한 오두막이었지. 그런 좋은 오두막에 주인도 없었단다. 아내에게 돌아온 유목민은 하루쯤 걸어가면 아주 살기 좋은 곳이 있다고 말했고, 이틀 뒤에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오두막으로 갔지. 하지만 이번에는 오두막 문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어. 큰 키는 아니었지만 다부진 체격에 새하얀 치아와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남자였지.”
하웨야는 호기심으로 전율했고, 나는 무서워서 몸을 떨었다.
“낯선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어. ‘당신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군요. 내가 이 집을 내어주리다. 행복하게 사시오.’ 젊은 유목민은 낯선 사람이 참으로 친절하다고 생각하면서 고마움을 표하고 언제라도 집에 놀러오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의 아내는 불편함을 느꼈고 아이도 그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울음을 터뜨렸단다.”
“그날 밤 짐승 한 마리가 오두막에 들어와 아이를 채갔지만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깊이 잠든 유목민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다음 날 집으로 찾아온 그 낯선 남자는 아이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움을 표했는데, 그때 유목민의 아내는 그 남자의 이빨이 조금 부러졌고 이빨 사이에 살점이 끼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단다.”
“그 낯선 남자는 부부와 함께 오두막에서 살다시피 했어. 제때 비가 내려서 일 년 내내 풀도 잘 자라주니 다른 곳으로 이사할 이유가 없었지. 시간이 흘러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예쁜 사내아이가 태어났지만 한 계절쯤 지나자 이번에도 짐승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와 아이를 데려가버렸어. 이번에는 아이 아빠가 쫓아갔지만 놓치고 말았단다.”
“세 번째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아이 아빠가 짐승을 따라잡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싸움에서 지고 말았어. 결국 그 몹쓸 짐승이 아이를 먹어버렸지. 세 번째 아이까지 짐승에게 빼앗기자 유목민의 아내는 그를 떠나버렸단다. 그 젊은 유목민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된 거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니? 말해보렴.” 외할머니가 다그쳤다. 모범 답안은 이랬다. 천성이 게으른 유목민은 수상한 기운을 눈치채지 못하고 처음 발견한 그 초원에 아무런 의심 없이 눌러앉았다. 아내와 아이는 수상한 조짐을 눈치챘지만 어리석은 유목민은 그 낯선 남자가 바로 들짐승, 즉 하이에나로 변신해 아이들을 잡아먹는 악마 같은 존재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외할머니가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멍청하고 나약한데다 용기도 부족한 사람은 그런 일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개 으스스했다. 도살자라는 이름의 못생기고 늙은 마녀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존경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해 사람들에게 접근한 다음 옷자락 사이에 숨겨온 길고 날카로운 칼로 그 사람을 난도질해 먹어치우는데, 희생자가 죽기 직전 그 면전에 대고 한바탕 비웃는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불시에 들이닥쳐 가축이나 여자를 훔쳐가고 집을 불태워버리는 도적떼에 대한 외할머니의 경험담도 있었다. 외할머니는 자신과 (우리에게는 증조부모가 되는) 부모님이 살면서 겪었던 기록되지 않은 불행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를테면 전염병과 말라리아의 유행, 가뭄으로 황폐해진 땅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외할머니의 인생에도 비가 적절히 내려 마른 강바닥을 적시고 주변이 푸르러 고기와 우유를 마음껏 얻을 수 있는 호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풀이 잘 자라봤자 목동들은 게을러지고 아이들은 뚱뚱해질 뿐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그런 좋은 시절이 온다 해도 사람의 성품만 망쳐놓을 뿐 별다른 소득은 없다는 말이었다. 외할머니는 남녀가 서로 뒤섞이고 고성방가에 취해 경계심을 늦추면 결국 경쟁, 갈등, 재앙만이 찾아올 뿐이라고 수시로 경고했다.
가끔이지만,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위험에서 지키기 위해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는 용감한 여인의 이야기도 있었다. 괴물이 나타나도 용감하고 현명한 엄마와 외할머니가 나를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도감이 들었다.
소말리아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율배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을 배운다. 겉과 속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아주 가벼운 실수도 치명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외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온통 명예에 관한 것뿐이었다. 우리는 강하고 현명해야 하며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더불어 가문의 규율에 복종해야만 한다.
여자에게 의심이란 좋은 것이다. 여자아이의 경우 납치되면 임신할 가능성이 있고, 여자가 처녀성을 상실하게 되면 본인의 명예뿐 아니라 아버지, 삼촌, 남자 형제, 남자 사촌의 명예까지 더불어 실추시키게 된다. 때문에 여자아이에게는 의심이 더욱 중요하다. 가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우리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해서 외할머니를 존경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할머니는 염소를 나무에 매어두듯 우리를 통제하려고 했지만 우리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재잘거리고 사소한 일로 다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여덟 살이 되도록 인형 근처에도 가볼 수 없다거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괴롭히며 시간을 보냈다. 하웨야와 마하드 오빠가 짝을 짓거나 내가 하웨야와 마음을 합쳐서 오빠를 괴롭히곤 했다. 하지만 오빠와 나는 서로를 미워했기 때문에 한번도 짝을 지어 논 적이 없다. 외할머니는 나와 오빠가 1년 터울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오빠를 엄마 품에서 밀어내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빠는 감옥에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다.
내가 아는 어른 대부분은 소말리아의 사막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소말리아는 인도양을 면한 아프리카 동쪽 끝 돌출부에 자리한 나라다. 동쪽 해안선은 남쪽으로 흘러 케냐의 해안선으로 이어지고 북쪽 해안선은 마치 손처럼 아라비아반도를 감싸안아 보호하는 모양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내 조상들은 가축을 몰고 북부 사막과 북동부 사막을 오가며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유목 생활을 했는데, 한두 계절 정도 정착해서 살다가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 마르고 초지가 사라지면 천막과 매트를 낙타 등에 싣고 살기 적합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외할머니는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물을 길어올 수 있는 촘촘한 망태기를 엮을 수 있었다. 구부린 나뭇가지와 매트를 이용해 거처로 삼을 작은 집을 지을 줄도 알았고 때가 되면 집을 손수 해체해서 성깔 있는 낙타 등에 싣고 떠날 줄도 알았다.
외할머니가 열 살되던 해에 이사크 가문의 목동이었던 외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외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의 삼촌과 재혼했다(남편이 죽으면 보통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데, 지참금 유출을 막고 분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열세 살 되던 해에 아탄이라는 부유한 유목민이 외할머니에게 청혼했다. 당시 40대였던 아탄은 둘바한테`Dhulbahante 가문, 즉 다로드 가문의 훌륭한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가축을 다루는 솜씨가 출중했던 아탄은 빼어난 길잡이라는 점에서 더욱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아탄은 주변 환경을 민감하게 포착해 이동할 시기와 비가 많이 내리는 장소를 잘 찾아냈다. 가문 사람들은 분쟁이 생기면 아탄에게 찾아가 중재를 부탁했다.
아탄은 이미 결혼한 몸이었지만 슬하에 외할머니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어린 딸 하나만을 두었다. 그래서 부인을 하나 더 들이기로 마음먹고 먼저 신붓감의 부친부터 선택했다. 신붓감의 부친은 좋은 가문에 속한 평판 좋은 사람이어야 했고, 신붓감은 고된 일을 감당할 만큼 젊고 강인하며 순결한 사람이라야 했다. 외할머니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적합한 신붓감이었다. 아탄은 곧 신부값을 보냈다.
외할머니는 아탄과 결혼해 그 집으로 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그곳을 뛰쳐나왔다. 외할머니는 용케 아탄에게 붙들리지 않고 집에 도착했다. 아탄은 외할머니가 진정될 때까지 며칠간 친정에서 지내도록 허락했다. 일주일 뒤 외할머니의 의붓아버지는 “이게 네 운명이니 받아들이렴” 하며 외할머니를 아탄의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 뒤로 외할머니는 나무랄 데 없는 인생을 살았다. 자신이 낳은 여덟 명의 딸과 아들 하나를 키워낸 외할머니의 덕행이나 일처리에 대한 험담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결단, 복종, 명예를 철저히 가르쳤고 가축을 건사하고 땔감을 모르고 가시나무로 엮은 말뚝으로 울타리를 짓는 등의 집안일도 척척 해냈다. 가문의 중재자인 아탄이 가문회의를 주재할 때에도 외할머니는 굳은 손과 야무진 정신으로 여덟 명의 딸을 남자와 음주가무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냈다. 시낭송대회가 열리거나 남자들이 물건을 거래하고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설 때면 여자아이들은 먼 발치에서 구경할 뿐이었다. 아탄의 첫 번째 부인이 외할머니와 마주칠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외할머니는 자신보다 손위인 첫 번째 부인에 대해 질투하지 않았다. 그녀가 죽은 뒤에는 그 딸인 오만한 카디자까지 돌봤다. 카디자는 외할머니 또래였다.
이렇게 아탄은 모두 아홉 명의 딸과 젊은 아내를 거느렸다. 자신이 거느린 여자의 명예를 지키는 일은 지극히 중요하다. 아탄은 딸과 아내가 다른 유목민과 섞이지 않도록 주변에 젊은 남자가 살지 않는 초지를 찾아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자면 끊임없이 사막을 떠도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와 동생이 모가디슈(인도양에 면한 항구도시로 소말리아의 수도`―`옮긴이)의 집 앞 풀밭에 있는 탈랄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외할머니는 손수 지은 오두막 앞으로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공간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느꼈던 비어 있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외할머니가 살았던 시대는 철기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목민 사이에는 통용되는 문자가 없었다. 금속으로 만든 물건은 귀했고 그래서 값도 비쌌다. 정치적으로는 영국과 이탈리아가 서로 자신들이 소말리아를 통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지만 외할머니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외할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가문뿐이었다. 소말리아의 가문은 크게 보아 위대한 유목민의 가문 이사크와 다로드, 그보다 지위가 낮은 농민의 가문 하위에, 천한 신분인 삽으로 나뉘었다. 30대가 되어서야 백인을 처음 접한 외할머니는 그들의 피부가 벗겨져서 없어진 줄 알았다고 한다.
엄마와 엄마의 일란성쌍둥이 언니인 할리모 이모는 외할머니가 열여덟 살 되던 1940년대 초반의 어느 날에 태어났다. 초원에서 양과 염소를 치다가 진통을 느낀 외할머니는 홀로 나무 아래에 누워서 셋째와 넷째인 엄마와 이모를 낳았고 지니고 있던 칼로 직접 탯줄을 잘랐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외할머니는 양과 염소를 모아 갓 태어난 쌍둥이와 함께 날이 저물기 전에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사람들은 외할머니의 고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젖먹이 여자아이 두 명이 새로 생겼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외할머니는 감정을 어리석은 자기탐닉으로 치부했다. 외할머니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일처리나 일처리 능력에 대한 자긍심과 자립심이었다. 외할머니는 나약한 사람은 험담을 듣게 마련이고, 집 앞 가시울타리를 튼튼하게 치지 못했으니 사자나 여우가 가축을 물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런 못난 여자의 남편은 후처에게 가버리고 말 것이며, 그 딸은 처녀성을 잃고, 그 아들은 가치도 없는 인간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외할머니의 눈에 우리 삼남매가 흡족할 리 없었다. 외할머니에게 우리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존재였다. 튼튼한 지붕을 얹은 시멘트 벽돌집에서 자란 우리에게 외할머니가 생각하는 쓸모 있는 기술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 포장되지 않은 길바닥에서 놀다가 옷이나 더럽힐 뿐이었다.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 물 귀한 줄도 몰랐고, 가축을 몰고 사막을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개척하는 방법도 몰랐다. 염소에게 차이지 않으면서 염소젖을 짜는 방법 따위는 알 턱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우리 셋 중에서도 특히 나를 싫어했다. 외할머니가 볼 때 나라는 아이는 벌레를 보고 기겁이나 하는 한심한 아이였다. 외할머니가 길렀던 아이들은 모두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 되기 전에 생존에 필요한 웬만한 기술을 다 익혔다는데, 그중에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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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아얀 히르시 알리 Ayaan Hirsi Ali
야얀 하르시 알리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이슬람교도로 교육받았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리카에서 보낸 히르시 알리는 1992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먼 사촌과의 강요된 결혼을 피해 난민 신분으로 네덜란드에 왔다. 그곳 홀란트에서 아얀은 임신중절수술센터와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에서 통역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네덜란드 노동당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자유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활동하였다. 9·11사태를 계기로 이슬람교를 떠났으며 지금은 유럽 내 이슬람 여성들의 권리 쟁취, 이슬람의 계몽, 서구 사회의 안전 확보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아얀 히르시 알리는 <타임 Time> '2005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글래머 Glamour> '2005년의 영웅',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 '올해의 유럽인'에 선정되었으며, 그 밖에도 각종 인권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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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추선영
카피레프트 모임http://copyle.jinbo.net <읽을꺼리> 4~6호 제작에 참여하면서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번역한 책으로는 『자본의 세계화, 어떻게 헤쳐나갈까』,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세계사,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녹색 성장의 유혹』들이 있으며, 『녹색사상사』, 『환경정의』, 『자연과 타협하기』, 『학교급식혁명』을 공동 번역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언어의 장벽 없이 좋은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어로 된 글을 번역해 무료로 제공하는 진보저널읽기모임http://www.jinbojournal.net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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