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시골로 내려온 뒤로 농사짓는 걸 옆에서 구경한 세월만 십 년이니, 텃밭•정원 가꾸기 책을 번역하는 일이 좀 수월하겠지. 이 생각은 책을 펼치자마자 무당벌레로 뒤덮인 토마토 줄기처럼 순식간에 시들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학창 시절에 과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는 기억만 장마철 바랭이처럼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애초에 ‘구경’이라도 했다는 전제부터 그른 것이었다. 난 이 책의 주인공들을 구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과학 시간에 현미경으로 짚신벌레를 관찰해본 적도 없다.)
과학하고는 담을 쌓고 살다가, 흙에 사는 온갖 생물, 땅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화학 반응, 심지어 광물질에 대한 것까지 우리말로 옮기려니 진땀이 났다. 도서관에서 여태껏 한 번도 발걸음 해본 적 없는 서가에 가서 토양미생물학이니 토양학이니 하는 책들을 들춰보고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질소 비료만 준 작물이 금세 자라긴 해도 언제 바람에 픽 쓰러져버릴지 모르듯이 나의 벼락치기 공부도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토양 미생물을 위해 일하시는 서장선 농학 박사님이 감수를 해주시고 편집자 선생님이 꼼꼼하게 보아주셔서 크고 작은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고 독자들이 더 편안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미생물. 이놈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정원과 텃밭을 멋지게 그리고 손쉽게 가꿀 수 있다는데, 사실 농부에게 미생물은 같은 편이기보다는 적군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탄저병 든 고추가 타들어가다 못해 흰 가루를 풀풀 날리며 떨어지는 것을 보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총 공격을 해오는 것 같아 오싹해지기까지 한다. 여름 땡볕 아래서 기어 다녔던 고추밭이 그렇게 처참하게 당하고 있으면 증오심 또한 발아하여 증식을 시작한다.
인간 세상에서나 흙 속에서나 중요한 일을 묵묵히 해내는 착한 자들은 어리석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당연히 저절로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있던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착한 자들이 냉대를 받다 못해 나쁜 놈들에게 밀려 사라지면, 활개를 치는 나쁜 놈들만 눈에 띄게 된다. 그러면 그 나쁜 놈들을 없애버리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난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려가며 텃밭을 가꾸진 않았으니 토양 먹이그물의 미생물들이 모두 내 편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계로 밭을 가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경계심이 없었다. 장마철 즈음부터 풀밭이 되어버린 밭을 기계로 갈아엎고 나면, 부슬부슬하고 촉촉한 흙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잘못 쓴 답을 지우개로 싹싹 지운 것처럼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기계 경운이 우리의 파트너 미생물에 대한 대량 학살이었다니! 내년부터는 미생물들과 제대로 동업자 관계를 맺어봐야겠다. 사실 토양 먹이그물을 활용하는 재배법을 우리 사정에 맞게 응용하려면 더 많은 실천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귀농운동,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땅을 살리는 새로운 농사법이 많이 연구되고 실천되고 있으니 그 성과도 참고하면 미생물과 진정으로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탄저병이 든 고추를 보고 있으면 탄저균은 영화 <에이리언>에나 나올 법한 괴물처럼 생겼을 것 같다. ‘세균맨’의 귀염성 정도도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현미경 사진을 보니 뜻밖에도 미생물들이 참 예쁘다. 생명이 순환할 수 있게 하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존재답게 거룩할 정도로 아름답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기억에 오래 남는 몽환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뭔지 알 수 없는 갖가지 유기체가 아름답게 자라 있고 곰팡이 포자 같은 것이 날아다니는 비밀 장소에서 나우시카가 즐겁게 노니는 장면이다.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인류 문명이 거의 멸망한 곳에서 미생물과 친하게 지내는 나우시카가 지구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나는 미생물과 한편이 되어 우선 척박한 텃밭과 정원을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봐야겠다. 토마토와 고추를 구할 뿐 아니라 지구를 구할 수도 있으니 미생물과 한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2010년 8월 마지막 날
강원도 화천에서 이현정
들어가는 말
우리는 교외 주택가에서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해마다 봄이면 수용성 고농도 질소 비료를 융단 폭격하듯 잔디밭에 쏟아부었고 맹렬히 물을 뿌려댔다. 그다음에는 넓은잎 잡초만 죽이는 제초제로 맹폭격했다. 그러고 나서는 비료 한두 포대를 사와서는 텃밭과 화단을 공격하고 경운耕耘, 땅 갈기을 해서 흙을 평평하게 만든다. 흙의 색과 질감이 곱게 간 커피처럼 보일 때까지, 보네빌 소금 평원처럼 평평하고 반드르르해 보일 때까지 땅을 갈고 고른다. 우리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런 일을 종교 의식 치르듯이 매년 했다. 한 번으로 끝내지도 않았다. 우리는 과채 대회에 출품이라도 할 듯 농사철 내내 화학 비료를 뿌렸다. 가을이 끝날 무렵에는 다시 경운을 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렇게 했다.
필요할 때는(자주 필요했는데) 보호 장구를 갖추고―보호복은 물론이고 고무장갑, 마스크까지―자작나무에 진딧물이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을 뿌려댔다. 농약병의 조그만 라벨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를 다 읽으려면 시간도 한참 걸리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읽기도 힘든 말들이 그 농약의 성분이라고 나열되어 있었다. 그다음에는 전나무에다 더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을 뿌렸다. 어찌나 강한지 한 번 뿌리면 한 해가 아니라 두 해 동안 효과가 지속됐다. 보호 장구를 착용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두 가지 농약 모두 인체 유해성 때문에 이제는 시장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시기를.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환경에 대한 책임과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에 관한 한 ‘적절한’ 실천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잔디 깎은 것은 잔디밭에 남겨두어서 분해되도록 했고, 낙엽을 화단 속에 넣어주었고, 때때로 풀잠자리, 딱정벌레, 사마귀 세트도 사다가 풀었다 ―우리 나름의 통합 해충 관리였던 셈이다. 퇴비도 만들었다. 신문과 알루미늄 캔은 재활용되도록 분리 배출했다.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갖가지 야생 동물들이 정원에서 돌아다니게 했다. 우리는 꽤나 친환경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완벽한 실천을 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말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정원을 가꾸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았고,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더 편한 삶과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따르려는 생각 사이에서 적당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대개 수용성 고농도 질소 비료만 썼다. 그것이 환경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가? 물론 질소 비료를 주면 식물이 잘 자란다. 그리고 우리는 넓은잎 잡초만 죽이는 제초제 한 가지만 썼다. 아, 그렇지, 인정한다. 살충제도 가끔 뿌렸다. 하지만 단골 가게 진열장에 놓인 농약을 보면서도 환경에 해를 끼친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단지 전나무를 구하고, 자작나무를 돕고, 민들레와 별꽃이 세상을 전부 뒤덮어버리는 것을 막으려고 했을 뿐인데, 어떻게 해를 입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겠는가?
우리가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핵심 사항들은 수천만의 다른 원예가들 또한 간직했던 생각이었다. 이 책을 다 읽기 전에는 여러분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것은 유기 물질에서 나온 질소나 무기 물질에서 나온 질소나 다 똑같은 질소라는 생각이다. 식물은 질소 같은 양분이 파란색 가루가 물에 녹으면서 나왔는지, 오래 삭힌 똥에서 나왔는지, 정말로 개의치 않는다. 식물에게는 그저 다 같은 질소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가을, 텃밭 농사도 얼추 끝나갈 무렵, 겨울에 공부할 원예 자료를 찾아다니던 중에 한 친구가 놀라운 전자현미경 사진 두 장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첫 번째 사진은 고리 모양의 균사에게 사로잡힌 선충의 모습을 놀랍도록 세세하게 보여주었다. 우아! 대단한 사진이었다. 선충을 잡아먹는 곰팡이라니! 그때껏 듣도 보도 못한 것이어서 우리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 곰팡이는 어떻게 선충을 죽였을까? 그보다는, 눈이 없는 선충을 곰팡이에게로 유인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곰팡이 고리는 어떻게 작동할까?
두 번째 사진의 선충은 첫 번째 사진의 선충과 비슷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곰팡이 균사의 방해를 받지 않고 토마토 뿌리로 들어가 있었다. 이 사진도 궁금증을 일으켰다. 이 선충은 왜 공격당하지 않았을까? 첫 번째 사진의 선충을 죽인 균사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일레인 잉햄Elain Ingham 박사의 연구를 알게 됐다. 잉햄 박사는 토양 생물에 관한 연구, 특히 흙 속에서 누가 누구를 먹는가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토양미생물학자다. 생물들은 한 가지 이상의 먹이사슬에 속해서 먹고, 한 가지 이상의 포식자에게 먹힌다. 먹이사슬들이 이어져서 그물로 연결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토양 먹이그물을 이룬다. 가르치는 데에도 뛰어난 잉햄 박사는 복잡한 땅속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우리는 첫 번째 사진에서 곰팡이가 식물 뿌리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도 배웠고, 애초에 식물이 균류를 뿌리로 유인한다는 것도 배웠다. 또 두 번째 사진에서 토마토 뿌리를 공격하는 선충을 막아야 했을 곰팡이가 무엇 때문에 죽고 없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자연히 우리는 흙 속 저 아래에 살고 있는, 지금까지 눈에 안 보이던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전자현미경 같은 도구가 열어 보여준 세상이 정원, 텃밭, 잔디밭에서 식물을 키우는 방법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둘 다 아득히 멀리 있는 천체를 찍은 허블 우주망원경 사진에 감탄한 적이 있는데,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찍은 사진은 볼 기회가 없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 발아래에 있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창 같았다.
우리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으며, 또 우리는 비료를 뿌리고 기계로 땅을 갈고 있지만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런 농사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견을 연이어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십 년 전부터 다양한 학문―미생물학, 세균학, 균학균류 연구, 개미학, 화학, 농학―이 합동으로 토양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토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발견한 성과들이 천천히 상업농, 삼림 가꾸기, 포도 재배 등에 적용되고 있다. 이제 이 과학적 성과를 가정 원예와 텃밭 농사에도 적용해야 할 때다.
텃밭과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곳은 대부분 ‘전통적인’ 원예가 이어지는 곳이다. 즉 수다스런 노파들의 이야기가 오가고, 한 번 일어난 특이한 일이 과학으로 둔갑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령하는 번지르르한 광고를 피하기 어려운 곳이다. 식물 재배의 기초가 되는 과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토양이 질소•인산•칼리NPK 성분을 얼마나 함유하고 있는지와 토양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것이 전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분 자신을 위해, 또 작물을 위해 토양 생물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화학 비료는 토양 미생물을 죽이고 대형 동물들을 쫓아낸다. 그러므로 우리가 채택해야 할 시스템은 화학 비료가 필요 없는 유기질 시스템이다. 화학 비료는 식물 뿌리를 보호하는 균사를 죽여 없애버린 장본인이며, 두 번째 사진의 우리 선충 친구를 무방비 상태의 토마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토양에 대한 설명과 토양 먹이그물에 대한 설명이다. 이 부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과학을 적용하려면 그전에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적어도 이 경우에 과학은 매우 흥미로우며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교과서처럼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2부에서는 흙을 살리기 위해 또 텃밭과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자신을 위해 토양 먹이그물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를 설명한다.
이 책이 토양에 관한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은 토양 미생물과 토양 생물을 ― 곧 토양과 토양 생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을―무척이나 강조한 데 있다. 우리가 토양화학, pH, 양이온 교환, 공극률孔隙率(암석이나 토양의 입자와 입자 사이에 있는 빈틈이 차지하는 비율 - 옮긴이), 토성, 그 외 토양을 설명하는 방법들을 버리고 가는 것은 아니다. 정통 토양학을 포괄하지만, 생물들이 많은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려면 무대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배우들이 소개되고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진 다음에 그들의 상호 관계에서 생기는 결과를 다룬다. 이 책 후반부에서는 이에 기초하여 몇 가지 단순한 규칙을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텃밭과 정원에서 직접 적용했던 규칙들로, 우리가 새로운 재배법을 처음 시도했던 곳인 알래스카 주의 많은 이웃들도 폭넓게 실천했던 사항들이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를 비롯해 다른 지역에서도 이 재배법을 실천했고, 다른 나라에도 이 규칙을 따르는 지역이 있다. 토양학(특히 토양 속 다양한 생물들이 상호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곧 토양 먹이그물에 관한 연구 성과)을 배우고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작물을 더 잘 키울 수 있었다. 토양 생물 간의 아름다운 상조相助 작용을 알고 이해하면, 단지 더 훌륭한 농부, 원예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훌륭한 지구 지킴이가 될 수 있다. 텃밭이나 정원에 농약을 뿌리는 것은 스스로 길러서 먹을(가족에게 먹일) 음식에, 그리고 자신과 가족이 뛰어놀 잔디밭에 독을 뿌리는 일이다.
독자들 중에는 이 책의 후반부로 건너뛰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러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규칙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기초 지식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초 지식을 습득하려면 물론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토양학에 관한 장 하나만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가정 원예가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는 약병 라벨에 쓰인 것뿐이었고,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곤 농약을 물에 섞어서 분무기로 뿌리는 것뿐이었다. 인스턴트 요리를 하듯이 정원과 텃밭을 가꾸어온 것이다. 취미의 일종으로 말이다. 우리는 여러분이 아무 생각 없이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무엇을 하라고 하니까 그대로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농부, 생각하는 원예가가 되기를 바란다. 훌륭한 농부, 훌륭한 원예가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흙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니 공부를 시작하라. 이제 우리는 질소라고 다 같은 질소가 아니라는 것, 식물과 토양 생물이 제 할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면 일이 훨씬 더 쉬워지고 정원이나 텃밭도 훨씬 더 좋아지리라는 것을 안다. 여러분의 밭과 정원이 자연적인 번영을 누리기를 바란다. 우리의 밭과 정원이 그러하듯이.
(옮긴이의 말, 들어가는 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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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제프 로웬펠스 Jeff Lowenfels
1977년부터 미국 앵커리지 데일리 뉴스에 매주 칼럼을 써왔으며, ‘미국 원예 작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나 현재는 알래스카에서 변호사 겸 사업가로 활동하며 토양 먹이그물을 활용한 정원과 텃밭 가꾸기를 널리 알리고 있다.
웨인 루이스 Wayne Lewis
평생 미국 알래스카에서 텃밭 농사를 지어왔다. 지난 25년 동안 제프 로웬펠스와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했는데, 텃밭에서 나오는 수확물 일부를 지역사회의 자선단체에 기증하는 운동도 그중 하나다. ‘한 고랑은 빈민을 위해(Plant a Row for the Hungry)'라는 이 운동은 앵커리지에서 시작되어 현재 미국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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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현정
학부에서 불어불문학을,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책 번역하는 일을 한다. 옮긴 책으로는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거짓된 진실: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노란 샌들 한 짝』·『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갈리아의 딸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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