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945년, 독일 그리고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면서 나는 병역을 마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왔다. 대학에서는 이미 학기가 시작되었고 학생들은 서로 어울리며 새 친구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내 경우 킬 운하의 포병 연대 생활에서 케임브리지의 대학 생활로 돌아온 것은 예상 밖의 극적인 변화였다. 대학을 떠난 지 4년 반밖에 안 되었지만, 전쟁의 와중에 나는 교우들과 연락이 모두 끊겨 버렸다. 당연히 대학 생활에 다시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날이 오래 지속되던 가운데 겨우 이야기가 되는 사람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전쟁 초 1년간 병역을 함께한 친구였다. 그 또한 병역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처지였고, 당시는 여전히 1930년대의 군사 체제가 유지되던 시대였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과거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 압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두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기실 저들은 우리와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라고.
이는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으로서, 앞뒤 세대 간에 자주 쓰이곤 했으며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러했다. 나 또한 6년 전, 그러니까 웨일스의 노동자계급 집안 출신으로 케임브리지에 왔을 때 그 같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물론 언어가 쓰이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나라에서든 공동의 언어를 사용할 때 사회적 혹은 연령상 차이를 의식하는 경우는 있어도 일상생활이나 활동의 대부분에서는 대체로 같은 언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마다 리듬이나 억양, 어조가 다양한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사람마다 용법이 다른 낱말 가운데에는 ‘런치(lunch)’, ‘서퍼(supper)’, ‘디너(dinner)’와 같이 차이가 두드러지는 말도 있는데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사뭇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라고 할 때, 이는 좀 더 포괄적인 어떤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사물에 대한 가치관이나 평가 방법이 다르거나, 힘을 쏟거나 관심을 보이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각각의 집단은 같은 모국어로 이야기하는데도 언어 용법이 현저하게 다르다. 특히 강렬한 감정이나 중요한 관념에 대해 논란이 일면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일시적으로 특정의 지배적인 집단이 자신의 언어 용법만을 ‘올바르다’고 우길 수는 있겠지만 언어학적 기준으로 보면 어떤 집단도 단순히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이처럼 비상한 국면에서는 모종의 대립이 상당히 강하게 의식되는가 하면, 단순히 뭔가 이상하다거나 친숙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여기에는 언어의 발전 단계에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 수반되는데, 이를테면 단어, 어조, 리듬에 따라 의미들이 제시, 탐구, 음미, 확인되며, 단정, 한정, 변경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는 속도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경우는 진행 과정이 실로 지지부진하며 구체적으로 표면화되기까지는 몇 세기도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때도 있는데, 특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부 영역에서는 그렇다. 연구 활동이 활발한 대규모 대학에서나 전쟁과 같은 중대한 변동기에는 그러한 변화가 급속하고 의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과 사오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실로 그만큼 바뀌었을 수가 있나 하고 우리 두 사람은 줄곧 되뇌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몇 가지 예를 찾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정치와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 태도가 다소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또한 그것을 중요하게 보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하나의 단어, 즉 ‘문화(culture)’ 생각뿐이었다. 이 말을 이전보다 분명 자주 접하고 있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저간의 포병 연대 생활이나 내 가족과의 대화와 비교해서도 그렇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대학 내에서의 대화에서 그 같은 변화가 확인되었던 것이다. 이전에 접했던 사례에서는 이 ‘문화’라는 단어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찻집(티숍)과 같은 학교 주변 장소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지식과 학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재산이나 지위는 물론이요 품행과 관련한 다소 추상적인 영역에서 사회적 우월함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선호된 것 같다. 또 다른 의미는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시나 소설의 창작, 영화나 회화 작업, 연극 활동 등을 일컬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새로 귀 기울이게 된 ‘문화’ 용어에는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있었는데, 당시에 나는 이것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없었다. 첫 번째는 문학 연구에서의 용법으로, 어떤 주요한 가치관의 형성 과정을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이 경우에는 문학이라는 말 자체도 똑같은 방식으로 강조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대개 일반적인 논의에서의 용법으로, 내가 보기엔 사뭇 다른 의미를 품고 있지만 ‘사회’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던 것이다. 즉 특정 ‘생활양식’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미국 문화’, ‘일본 문화’와 같은 용법이 그러했다.
이제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겠다. 그 무렵 영국에서는 두 가지의 중요한 지적 전통이 형성되고 있었다. 먼저 문학 연구에서는 매슈 아널드에서 F. R. 리비스에 이르기까지 ‘문화’를 주요 용어로 삼는 비평 개념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또한 사회 관련 논의에서는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어의가 일반적인 대화에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이 인류학적 어의는 그간 전문 용어로서의 의미였음이 분명하지만 미국 영향력의 강세와 더불어 칼 만하임과 같은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이제 막 일반에 수용되어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아 사회적 우월성과 예술 활동을 지칭하던 이전의 두 가지 의미는 분명 약해졌다. 통상 커피숍 같은 데서 사용되던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기는 하지만 갈수록 희미해지고 한갓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고 있었다. 예술 활동을 일컫는 의미 역시 그 전통적 기반은 유지하면서도, 앞서 언급했듯 ‘문화’를 주요 용어로 삼는 비평의 위상이 도드라짐과 동시에 ‘문화’가 보다 광범위하게 생활양식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기 때문에,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나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문화’란 나에게 하나의 어려운 단어였을 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하고자 애쓰는 변화의 한 가지 사례로 여겨졌던 것이다.
1) 1873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은 처음으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개방 강좌를 개설하였고, 이것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이른바 대학 확장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대학이 일반 대중의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으킨 일대 변혁이었다. 이와 더불어 성인교육과 고등교육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1971년 개방 대학의 설립이 꼽힌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성인 교육 제도의 발달, 교육방송 체제의 성장, 교육 분야에 확산된 평등주의를 지지하는 노동당의 정책 등 세 가지 교육 관련 흐름의 영향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성인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2) 엘리엇의 문화 개념은 대체로 비(非)개성주의, 유기체주의, 전통주의라는 특징을 갖는데, 이는 미국 인류학자 앨프레드 크로버의 문화 개념, 즉 초유기체적 실체(a superorganic entity)라는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
3) 영어 단어의 역사적 변천을 정밀하게 기술한 중요한 사전. 첫 판은 12권과 1권의 보유편으로 이루어졌다. 이 사전은 1884년 2월부터 1928년 4월까지 10권으로 간행된 『역사적 원칙에 따른 새로운 영어 사전 A New English Dictionary on Historical Principles』(NED)의 개정판이다. NED는 12세기 중엽(또는 그 이전)부터 영어권에서 사용되어 온 단어의 총목록을 담고 있었는데, 1933년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으로 재발행된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어의(語義)를 역사적인 발생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용례로서 영어 문헌과 기록에서 약 500만 개의 시기별 인용문을 뽑았다.
이러한 연구를 특정 학문 분야에 견주어 설명하는 일이 당시에는 용이하지 않았고 사정은 지금도 변함없다. 『문화와 사회』는 문화사, 역사 의미론, 사상사, 사회 비평, 문학사, 사회학 등등의 다양한 타이틀로 분류되어 왔다. 이런 탓에 때로는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학문 분야란 것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범주라고도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나는 어떤 일반적인 의문을 특정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학문 분야 간의) 관련성과 내가 설명하고자 하던 관심 영역에 대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흥미를 갖고 연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관심 영역에서 하나의 주요한 특징이 바로 어휘(vocabulary)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전문 분야의 어휘가 아니고, 물론 몇몇 전문 분야와 겹치는 때도 종종 있지만 대개는 일반적인 어휘라는 점이다. 한데 일반적인 어휘일지라도 일상에서 까다로우면서도 영향력 있게 사용되는 단어들이 있는가 하면, 원래는 특정의 전문적인 문맥에서 비롯했지만 보다 폭넓은 사상과 경험을 일컫는 쪽으로 널리 통용되기에 이른 단어들도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의 중심적인 과정을 온전히 검토하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있을지라도 일반적인 어휘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어휘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연구의 계기가 된 ‘문화’라는 어려운 단어가 그러한 예이다. 이 단어에는 특정 분야에서 활용되는 몇몇 전문적인 의미가 있고, 그러한 의미를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연구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이 단어가 다양한 의미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의 중요성이었다. 그것도 별개의 학문 분야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영역에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단어가 별개로 여겨지던 ‘예술’과 ‘사회’ 두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종류의 관련성을 암시한다는 점이다. 연구를 진행해 가는 가운데 나는 (이 책에서 선별한) ‘미적(aesthetic)’으로부터 ‘작업(work)’에 이르는 일련의 주요 단어들이 이 연구에 꼭 들어맞을 것 같다고 보았고, 그래서 그런 단어를 수집하면서 이해해 보고자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어의 선택이었다. 어떤 단어를 넣고 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다른 사람의 눈에 얼마나 자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주 일반적인 논의에서 실제 쓰이고 있는 것을 보거나 들은 것 가운데 나 자신이 흥미롭게 여기거나 어렵다고 생각한 용법을 중심으로 우선 200개의 단어를 선발, 그 가운데서 다시 60개를 골라내어 주를 달고 간단한 해설을 써서 『문화와 사회』의 부록에 붙이고자 했다. 『문화와 사회』의 본문에서는 특정 작가나 사상가를 많이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이 완성되자 출판사 측에서 책의 분량을 줄여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이에 생략 가능한 부분이 이 부록 항목이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기에 결국 나의 의지와 달리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원래 부록 자료는 다른 논문에서 발표하겠다고 책 가운데 짧게 언급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부록 자료는 오랫동안 책꽂이 위에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20년 이상에 걸쳐 더욱더 많은 용례를 수집했으며, 새로운 분석 시점을 찾아내거나 다른 단어를 삽입하기도 하면서 자료를 축적해 갔다. 그러는 가운데 분량이 한 권의 책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료 전체를 검토하고 주와 해설을 모두 수정해 몇몇 단어를 빼거나 첨가하면서 하나씩 고쳐 나갔다. 그 성과가 이 책인 것이다.
이상에서 이 책의 집필 과정을 강조한 것은 그 자체로 책의 범위와 목적을 제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특정 학문 분야의 사전이나 용어 설명 책자가 아니다. 또한 사전 편찬의 역사에 대한 일련의 보충 설명이 아닐뿐더러 다수의 낱말을 풀이한 사전도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휘에 대한 탐구의 기록, 즉 어휘집이다. 우리가 영어에서 ‘문화’와 ‘사회’라고 분류하는 여러 실천과 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가운데 공유하고 있는 단어와 의미의 집합체인 것이다. 이 책에 수록한 표제어는 저마다 언젠가 어떤 논의 와중에 실제로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해당 단어의 의미가 내포하는 문제들은 바로 그 단어를 사용해 논의된 주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단어의 주해를 작성하면서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단어를 다시 접했을 때 중요하다는 정도만 거듭 느낄 뿐 의미 파악은 여전히 어려웠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논의나 논쟁이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일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나는 두 가지 의미에서 ‘어휘의 문제’로 다루기로 했다. 하나는 잘 알려진 단어의 현재 의미 혹은 발달 중인 의미로서, 기록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의미 사이의 관계 맺기이다. 이것은 때때로 명시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흔히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내가 보기엔 이를 통해 특정한 의미가 형성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많은 주요한 경험에 대해 논의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그것을 새로운 차원에서 해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수행해야 했던 작업은, 단어의 용례를 수집하고 특정한 용법의 기록을 조사하거나 수정하는 일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개별 단어든 관례적으로 사용되는 어군(語群)이든 해당 어휘의 내부에 숨어 있는 몇몇 쟁점이나 문제를 가능한 한 분석하고자 했다. 나는 이들 단어에 두 가지 연관된 의미에서 ‘키워드’라고 이름 붙였다. 하나는 이들 단어가 어떤 종류의 활동과 그 활동의 해석을 연결하는 중요한 단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어떤 사상 형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라는 의미이다. 용법에 따라서는 문화와 사회에 대한 특정한 견해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는데 무엇보다 ‘문화’와 ‘사회’라고 하는 가장 일반적인 두 개의 단어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또한, 이와 같은 일반적인 영역에서도 우리들이 좀 더 의식해서 다루어야 할 쟁점이나 문제를 분명히 나타내는 듯한 용법도 있다. 일련의 단어에 관한 주해, 특정한 의미의 형성 과정에 대한 분석 등은 실제로 ‘사용가능어휘(active vocabulary)’의 기본 요소였다. 다시 말해, ‘문화’와 ‘사회’의 다양한 의미가 형성된 영역에서 의미에 관한 문제를 기록하고, 조사하며, 제시하는 방법인 것이다.
언어를 분석해 보는 것으로 이상에서 제시한 문제나 쟁점 모두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와 달리, 조금씩 진전해 가는 문제든 뚜렷한 갈등을 수반하는 쟁점이든 사회적이고 지적인 문제의 대부분은 언어적 분석의 안팎에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 기본 요소가 사실상 단어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참된 의미에서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문제의 초점조차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 상당히 널리 인정되고 있다. ‘문화’의 여러 용법에 대해 처음 몇 가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려 깊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 문제는 주로 교육이 불완전했기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분명 이런 진단은 참일 수 있는데(기실 이 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게 볼 경우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오히려 모호해지기만 할 뿐이다. 어떤 집단 가운데 또는 어느 시기에 어떤 단어의 특정한 사용법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는 경우, 그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에 18세기에 작성된 한 통의 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상류사회에서 ‘센티멘털(sentimental)’이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슬기롭거나 심성이 너그럽다면 무엇이든 이 말로 표현됩니다… ‘누구누구는 센티멘털한 사람이다’라거나, ‘우리는 센티멘털한 한패이다’ ‘나는 센티멘털한 산책에 심취해 있다’라는 표현을 접할 때 저는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센티멘털’의 유행은 이미 지난 일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변했다. 과거의 긍정적 의미에서 부정적 의미로 그 의미 가치가 하락했다. 오늘날 누군가 이 단어의 의미를 묻는다면 (과거의 의미 그대로)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조금은 냉랭하고 공손한 눈길을 마주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의 특정한 역사란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느긋하게 관찰될 수 있다. 하지만 ‘문학(literature)’, ‘미학적(aesthetic)’, ‘표상(representation)’, ‘경험주의적(empirical)’, ‘무의식적(unconscious)’, ‘자유주의적(liberal)’ 등과 더불어 내가 보기에 여러 문제를 제기하는 듯싶은 많은 단어들도 바른 교육을 받은 집단에서라면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이 단어들의 정확한 사용 여부는 오로지 교육의 문제인 것이다. 반면에 ‘계급(class)’, ‘민주주의(democracy)’, ‘평등(equality)’, ‘진화(evolution)’, ‘유물론(materialism)’ 같은 경우 각기 의미에 관해서는 더 논의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단어의 특정 용법은 어느 학문 분파에 특유한 것이며 자신 이외의 분파들은 모두 ‘분파주의적(sectarian)’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언어란 이러한 신념 위에 성립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주요 언어라도 각별히 급격한 변동기에는 해당 단어와 연관된 복잡한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언어를 지탱해 주는 굳은 신념이나 그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해두고자 하는 관심이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
물론 문제가 의미에 관한 것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의미의 문제가 불가피하다. 일부에서는 단어를 보면 우선 정의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전을 만들고, 장소나 시대를 상당히 좁게 한정 짓는 것으로 자신만만하게 권위를 부리면서 이른바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신문 투고란이나 공론의 장으로부터 “나의 『웹스터 사전』을 보면”이나 “나의 『옥스퍼드 사전』에 의하면” 같은 표현의 여러 변형태를 수집한 적이 있다. 대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논의에 등장하는 어려운 용어였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표현들의 어조는 (“나의 『웹스터 사전』”같이) 사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냄으로써 그 논의에 꼭 맞는 의미를 홀로 사유화하는 동시에, 논의에는 맞지 않지만 교양 없는 사람들이 아둔하게나마 사용하던 의미를 배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예를 들어 ‘B’로 시작되는 ‘뱅스링(banxring)’, ‘바오밥(baobab)’, ‘버릴러(barilla)’같이 친숙하지 않은 단어, ‘바벌(barbel)’, ‘바실리카(basilica)’, ‘바틱(batik)’ 같은 외래어, 또 비근한 예로 ‘바버(barber)’, ‘바를리(barley)’, ‘반(barn)’처럼 영어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경우, 이들의 사전적 정의는 아주 유용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단어와는 다른, 특히 개념이나 가치관을 포함하는 단어의 경우는 사전에서도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부적절한 절차일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는 사전은 단어를 정의하는 사전이며, 이와 같이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는 경우에 사전으로서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현재 사용되는 일련의 의미를 폭넓게 기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단어 의미의 범위이다. 그런 까닭에 이처럼 당대의 의미만을 취급한 사전의 범위를 넘어서는 역사 관련 사전, 그리고 역사적 의미론이나 현대의 의미론에 관한 논문을 읽고자 할 때 우리는 ‘고유한 의미’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것은 다양한 의미의 역사와 복잡함이다. 즉 우리는 의식적인 변화, 바꿔 말해 의식적으로 다양한 사용법을 발견하게 된다. 의미의 쇄신, 전문화, 확대, 중복 등을 말이다. 또는 어형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단어가 있다. 이를테면 몇 세기에 걸쳐 하나의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의미와 함축에 있어서 전혀 다르거나 상당히 쉽게 변형될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산업’, ‘가족’, ‘자연’이 그러한 사례일 수 있고, 이러한 이유로 ‘계급’, ‘합리적’, ‘주관적’은 몇 년 동안 문헌을 읽고 연구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이들 모든 경우에 의미의 문제가 나를 사로잡았고 어떤 식으로든 정의내리기 어렵다고 통감하게 된 것은 내가 앞서 기술한 방식으로 시작된 관심 영역 안에서 마주하게 된 그러한 단어들 때문이었다.
이 책에 기록된 연구는 몇몇의 학문 분야가 수렴되지만 통상 만날 수 없는 영역에 자리한다. 이 연구는 몇몇 분야의 전문 지식을 기초로 하고 있으나, 이 책을 쓴 목적은 선발된 단어의 용례 가운데 새겨져 있는 이 분야들의 지식을 모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지만 실제 사용하고자 할 때 일부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 복잡한 문제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정보의 문제’와 ‘이론의 문제’이다.
정보의 문제는 상당히 난감했다. 하지만 영어 단어의 의미 구조와 발달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옥스퍼드 사전』이라는 아주 유리한 이점이 있다. 이 사전은 편찬자인 제임스 머레이와 헨리 브래들리, 그리고 그 후계자들이 지닌 스칼라십의 기념비일 뿐만 아니라 영국 언어학회(The Philological Society)의 창설 작업으로부터 이후 수백 명의 기고자를 아우르는 거대한 공동 작업의 기록이기도 하다. 특정 단어를 연구할 경우 이 위대한 사전의 설명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사전이 없었다면 자신감 있게 시작하는 연구들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윌리엄 엠프슨은 『복잡한 단어의 구조 The Structure of Complex Words』에서 『옥스퍼드 사전』의 결점을 수두룩하게 찾아내고 있는데도 “그간 내가 해온 개별 단어에 관한 연구는 이 장대한 『옥스퍼드 사전』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 그의 의견에 동감한다. 마땅한 찬사이다. 그러면서 그 사전을 연구하는 가운데 내가 발견한 사항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서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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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레이먼드 윌리엄스
(Raymond Williams, 1921-88)
영국의 대표적인 문학 연구자이자 현대 문화 연구의 아버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는 ‘신좌파의 문화유물론’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웨일스 변경 지방의 한 철도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서 그래머스쿨을 마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진학, 재학 중에는 에릭 홉스봄과 함께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하자 군대에 징집되었다가, 1946년 복학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1961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부설 성인교육 기관에서 일했는데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 『문화와 사회 1780~1950』, 『기나긴 혁명』을 비롯해 『키워드』의 초고가 작성되었다.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온 후 오랜 펠로 생활을 거쳐 1974년에 ‘현대연극’ 전공 교수직을 맡는다. 대학에서는 영문학과 현대연극을 다루었지만 그의 관심사는 이미 ‘문화 비평’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었다. <가디언>이나 <뉴레프트 리뷰> 같은 저널을 통해 루카치, 조지 오웰, 에드워드 톰슨, 루시앙 골드만, 피에르 부르디외 등의 작업에 대한 중요한 리뷰를 발표하는 한편, 당대의 반전 반핵 운동을 비롯한 여러 운동과 논쟁에 열정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 1983년 케임브리지에서 은퇴한 이후 웨일스 지방의 소도시 새프런 월든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두 편의 소설 『충성심』과 『검은 산』을 집필한다. 전자가 1930년대 공산주의에 매료된 상류층 급진 세력의 겉과 속을 그렸다면, 후자는 웨일스의 산악 주변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적 궤적을 촘촘히 파헤치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1988년 그가 타계한 후 출간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와 사회 1780~1950』, 『기나긴 혁명』(1961), 『현대의 비극』(1966), 『도시와 농촌』(1973), 『텔레비전론』(1974), 『마르크스주의와 문학』(1977), 그리고 인터뷰집 『정치와 문학』(197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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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성기
사회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문화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 사회과학』, 『패스트푸드점에 갇힌 문화 비평』, 『모더니티란 무엇인가』(편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뉴미디어의 철학』(마크 포스터), 『카오스의 아이들』(더글러스 러시코프) 등이 있다.
유리
학부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 문화이론과 문화연구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사회갈등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논문으로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 전쟁」(2009)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대학 교수 되는 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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