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양쪽에는 공동주택들이 얼굴을 찌푸린 거인들처럼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흐릿하게 서 있었다. 어쨌든 바람막이는 됐다.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는 쓰레기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고, 악취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냄새로 치면 소년도 하등 나을 게 없었다. 소년은 한 마리의 쥐처럼 쓰레기 더미를 파고들었다. 그 아래 숨어 있던 설치류 떼가 찍찍 소리를 내며 재빨리 흩어졌다. 제기랄! 자는 동안 쥐들에 물리지 않아야 할 텐데. 쥐에게 물리면 끔찍하게 아프다. 쓰레기 더미 속으로 파고들던 소년은 그 생각에 멈칫했지만 바깥 공기가 얼음처럼 차가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추위를 잊으려고 속으로 아버지 욕을 해댔다. 욕설은 지옥 불처럼 화끈했지만, 그걸로 추위에 시리고 아픈 손발의 감각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그는 자다가 얼어 죽은 사람들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술 취한 사람들에게 늘 일어나는 일이다.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건 천벌받을 짓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일이 생기길 바랐다. 그 짐승 같은 인간이 죽는지 사는지까지 제이크더러 건사하라고 하는 건 무리다. 그 인간이 할 줄 아는 건 때리는 것뿐이다. 죽어버리면 날 때리지도 못할 거고, 술 마시려고 내가 번 돈을 몽땅 훔쳐가지도 못할 거고, 그러고는 돈을 더 벌어오지 않는다고 또 때리지도 못할 거야.
영감에 대한 증오 덕분에 몸은 추울지언정 마음만은 뜨겁게 뒤흔들린 상태였다. 그때 가벼운 발소리가 다가오는 게 들렸다. 소년은 꼼짝하지 않았다.
발소리로 짐작할 때, 체구가 작은 사람이었고, 그가 숨어 있는 쓰레기 더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는 안 돼. 내 자리야. 내가 먼저 맡았어. 쥐도 쫓아냈다고. 내가 둥지를 튼 곳이란 말이야…소년은 투덜댔다.
“거기 누구예요?”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겁에 질린 어린 여자애 목소리였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는 쓰레기 더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한 소녀가 뒤로 펄쩍 뛰며 가냘픈 비명을 질렀다.
이건 웬 성가신 쥐새끼야.
“넌 누구니?”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가 물었다.
“여긴 내 자리야. 저리 가.”
“네 자리에 끼어들겠다는 게 아니야. 진짜야.”
여자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난, 난 그냥 그 안에서… 뭘 좀 찾아야 해.”
“여기서?”
“응, 그래.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뭘 잃어버렸는데?”
“내, 내 구두.”
소녀가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구두를 잃어버릴 수가 있냐?”
“그러니까, 숨겨놓으려던 거야.”
“어쨌다고?”
“그래, 나도 알아.”
소녀가 말했다. 그는 이제 곧 여자애가 울고불고 할 거라고 생각했다.
“멍청한 짓이었어. 난 정말 새 구두가 있어야 되는데, 엄마는 나보다는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하는 애나 언니가 더 필요하댔어. 그래서 난 혹시 구두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나도 바보 같은 짓이었다고 생각해.”
여자애는 진짜로 울기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어, 어디쯤 숨겼어?”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어깨에서 오래된 병과 깡통, 종이 따위가 와르르 떨어졌다.
긴 양말을 신은 소녀는 얼음장 같은 바닥에 발이 닿는 걸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왼발을 오른발 위에 올렸다.
“너한테서 지독한 냄새가 나.”
“입 닥쳐. 도와줘, 말아?”
“미안, 제발 도와줘.”
그들은 어둠 속을 여기저기 헤집었다. 마침내 제이크가 구두 한 짝을 먼저 찾아냈고, 이어서 여자애가 나머지 한 짝을 찾았다. 소녀는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하고는 발을 구두에 넣고 몸을 숙여 끈을 묶었다.
“찾아서 잘됐네.”
“응. 처음부터 꼭 찾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소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고마워.”
소녀는 꽤나 예의발랐다. 가죽이 성한 부분보다 뚫린 부분이 더 많은 구두를 신었어도, 분명히 학교에 다니는 애일 거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런 데서 자면 안 돼.”
소녀가 말했다.
“왜 안 돼?”
“얼어 죽을 테니까.”
왠지 모르겠지만 구두를 찾고 나자, 소녀는 더이상 겁먹은 생쥐 같지 않았다.
“한두 번인 줄 알아. 안 그러면 어디로 가라고?”
“어쩌면… 우리 집 부엌에서 자도 될지도 몰라.”
소녀는 무심결에 말을 내뱉고는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희 식구들이 눈치챌걸. 게다가 나한테서는 냄새가 엄청 나. 네가 그랬잖아.”
“냄새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소녀가 그의 팔을 잡았다.
“나 마음 바뀌기 전에 어서 가자.”
그들은 한 건물의 골목으로 나 있는 문으로 들어가 3층까지 올라갔다.
“쉿.”
문을 열기 전에 소녀가 주의를 주었다.
“다들 자고 있어.”
소녀는 맨처음 방에 놓인 침대들 사이를 지나 부엌으로 제이크를 데려갔다. 난로에는 온기가 전혀 없었지만, 쓰레기 더미보다는 따뜻했다.
“여기 누우면 돼. 우리집에는 남는 침대가 없어. 이불도 마찬가지고. 미안.”
“괜찮아.”
방이 어두워서 소녀의 생김새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자기보다 키가 작고 깡말랐으며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온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너희 아빠가 깨기 전에 일어날게.”
“아빤 죽었어. 아무도 널 내쫓지 않을 거야.”
그래도, 다음 날 아침 제이크는 뒷방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 목소리가 빽빽 울어대는 어린애를 달래고 있었다. 제이크가 듣기에 달래서 될 일이 아닌 듯했다. 배고파서 우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제이크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자 위에 상자가 놓여 있었고, 열어보니 빵 반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제이크는 빵을 한 움큼 뜯어내며, 없어진 줄 절대 모를 거야, 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천둥처럼 코를 골고 있는 앞방을 슬그머니 지나 밖으로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온 그는 언덕을 내려가며 공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가면 얼어 죽을 염려는 없다. 그곳에서는 말 그대로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니까. 이런 혹한의 겨울 아침에도 열시쯤 되면 돼지처럼 땀을 뻘뻘 흘릴 정도였다.
나중에, 그는 자기가 여자애의 이름도 모르고, 자기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제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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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캐서린 패터슨 Katherine Paterson
1932년 중국에서 영국인 선교사의 딸로 태어났다. 중국과 미국의 여러 지역을 옮겨다니며 성장한 그는 잦은 이주와 도드라지는 영국 억양으로 인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킹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잠시 일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작품을 집필해 1970년대 후반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와 『내가 사랑한 야곱』으로 ‘뉴베리 상’을 두 차례 수상하고,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로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명실공히 미국 청소년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2006년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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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우달임
영문학 박사 과정을 잠시 중단하고 번역에 몰두했다가 지금은 본격적인 서평활동과 서지 검토작업을 준비 중이다. 옮긴책으로 『아주 작은 시작이란 없다』, 『체실 비치에서』,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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