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08년 11월 28일,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전날 밤
시간을 계획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그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오후 6시를 5분 넘기고 있었다. 이제 적어도 나에게만은 모든 가게들이 1년 동안 문을 닫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상치 않게 정말로 긴 하루였다. 언론 매체들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년을 살겠다는 나의 계획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 탓에 나는 밀려드는 인터뷰에 응하느라 코앞으로 다가온 중대한 실험을 위하여 막바지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똑같은 질문에 반복해서 대답하다 보니 약간 지겹다는 느낌도 들었다.
BBC에서 마지막 인터뷰를 끝내고 집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흥청거리는 분위기에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깨어진 유리가 흩어져 있기도 한 브리스톨(런던에서 서쪽으로 1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45만 명인 도시) 도심을 가로질러 지름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자전거의 뒤쪽이 비틀거린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한낱 펑크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다가올 12개월 동안 매일 직면하게 될 도전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다. 이동주택까지는 30km나 남아 있었다. 바보같이 자전거 수리 장비를 거기 두고 올 게 뭐야. 하지만 나는 여자친구 클레어의 집에 들르면 튜브를 때울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우선 당장은 쓸모없게 되어버린 자전거를 5km 이상 끌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등에는 무거운 짐 꾸러미를 2개나 짊어진 채 말이다. 단 5분 늦은 관계로 새 자전거 바퀴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남은 바퀴 하나마저 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나는 친구 퍼거스 드레난을 소리쳐 불렀다. 퍼거스는 산과 들을 뒤지며 먹을거리를 찾는 데는 선수지만 불행하게도 기계 만지는 일에는 아주 서툴렀다. 그럼에도 그는 열정만은 넘쳤는데,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바로 그런 열정이었다. 다가올 1년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한 가운데 시간까지 쫓기게 되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 둘은 클레어의 집까지 자전거를 끌고 갔다. 거기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뒷바퀴로 짐작되는 것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도 친구는 버섯으로 종이와 잉크를 만드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도 그의 설명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바퀴를 떼 내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는 듯했다. 뭘 먹지 않고는 내가 죽든지 아니면 퍼거스의 목구멍으로 광대버섯(독버섯)을 쑤셔 넣게 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드는 순간, 뻥!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아주 중요해 보이는 어떤 부속이 방 저 편으로 날아갔다. 뒷바퀴를 푼다는 것이 그만 극도로 피곤했던 나머지 변속장치를 풀고 말았던 것이다.
이거야말로 정말로 좋지 않은 징조였다. 내 육체를 제외하고는 이 자전거야말로 이제 곧 시작될 실험에 가장 중요한 소유물이었다. 실은 단순히 중요한 것만이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이었다. 앞으로 내가 식량과 땔감을 구하게 될 산과 들까지는 왕복 60km 거리였다. 친구들 대부분이 사는 곳도 30km 떨어져 있었다. 자전거가 없다는 것은 곧 회의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앞으로 1년 동안 불가피하게 필요로 할 자잘한 것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닐 수 있다는 희망도 접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도 자전거에 대해 조금은 안다. 하지만 변속장치 같이 복잡한 부품은 나의 능력 밖이다. 조금 전까지 살아온, 돈의 지배를 받는 그 존재방식에서라면 문제될 게 하나도 없었다. 자전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자전거포로 끌고 가 부품을 사서 그곳 종업원에게 돈을 주면 금방 고쳐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 방법은 나의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기자들을 만나 1년 동안 돈 없이 사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끌고가기 위해 6개월 동안 어떤 식으로 준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던 내가 그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4시간 전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망가진 자전거 옆에 이렇게 드러누워 있단 말인가. 나의 계획의 운명이 걸린 그 자전거 옆에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튿날엔 15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3가지 코스의 식사를 무료로 대접하는 행사가 잡혀 있었다. 산과 들, 혹은 도시에서 구한 재료로 요리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아직 그 재료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나로서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를 불안하게 만든 것이 자전거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1년 동안 봉착하게 될 수많은 문제들의 작은 예일 뿐이었다. 다른 점은 과거에는 문제가 언제 어디서 일어나든 돈만 주면 다 해결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까지 거의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나 자신이 참으로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생 처음으로 나 자신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조차도, 말하자면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조차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해도 극도로 어려운 것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 실험은 출발부터 실패할 운명에 처했는가? 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계획을 취소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어쨌든 나의 계획에 대해 들은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그런 사실 또한 나에게 상당한 압박을 가해왔다.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시커먼 기름을 묻힌 모습으로 거기 누워 천장을 응시할 때, 수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도대체 어쩌다 내가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되었으며,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이 임무에 대해 그렇게 널리 공표하고 나선 이유는 뭐야?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돈은 사랑과 비슷한 면이 있다. 평생 돈을 쫓아 살지만 돈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여러 면에서 돈은 공상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아득히 먼 옛날에는 사람들은 돈이 아닌 물건을 이용하여 거래의 대부분을 처리했다. 장날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물건 무엇이든 들고 시장으로 나갔다. 빵을 굽는 사람은 빵을 갖고 나왔고, 옹기장이는 토기를 갖고 나왔고, 술을 빚는 사람은 술을 갖고 나왔고, 목수는 나무 숟가락과 의자를 갖고 나왔다.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들고 나온 사람들과 흥정을 벌였다. 그런 식의 거래가 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는 아주 훌륭했지만 그렇게 효율적이지는 못했다.
빵을 굽는 베이커 씨가 술을 원할 경우에는 술을 빚는 브류어 부인을 찾았다. 베이커 씨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브류어 부인에게 맛난 술을 조금 주면 빵을 몇 조각 주겠노라고 제의했다.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이런 거래는 완벽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교환에 동의했다. 그러다 언젠가 문제가 시작되었다. 브류어 부인이 빵을 원하지 않을 때도 간혹 있었고, 또 이웃들이 맥주를 가져가면서 자기네들의 물건을 충분히 내놓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브류어 부인이 빵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 베이커 씨로서는 그녀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쌍방의 필요가 일치하여 물물교환이 이뤄지는 것은 ‘욕망의 상호일치double coincidence of wants’로 알려지게 되었다. 각 거래 당사자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때 아마 브류어 부인은 자기 남편이 글루텐(밀, 보리 등에 들어 있는 단백질 혼합물)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녀가 빵보다는 카펜터 부인이 만든 새 숟가락과 파머 부인이 경작한 신선한 채소를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로 줄 무늬의 정장에 멋진 중산모를 쓴 신사가 작은 마을에 나타났다. 그곳 사람들이 본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 새로운 인물은 자신을 뱅커 씨라고 소개한 뒤 장터로 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엉켜서 한 주일 동안 필요한 것들을 찾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파머 부인이 자신의 채소와 사과를 바꾸려다 실패하는 현장을 지켜본 뱅커 씨는 그녀를 옆으로 슬쩍 잡아당기고는 그날 밤 사람들을 공회당으로 좀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만 하면 삶을 훨씬 더 편하게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중산모에 멋진 의상을 걸친 데다 카리스마까지 넘치는 그 이방인의 말을 들으려고 모두가 아우성이었다. 뱅커 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별보배고둥 껍질 1만 개를 보여주었다. 모두 그의 사인이 찍혀 있었다. 그 사람은 마을 사람 100명 모두에게 그 고둥 껍질을 100개 씩 나눠주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맥주 통이나 빵, 단지와 의자를 거추장스럽게 가지고 다닐 게 아니라 그 별보배고둥 껍질을 이용하여 각자의 물건들을 거래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이제 주민들이 할 일이라곤 자신의 물건이나 채소들이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모두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그 별보배고둥 껍질을 이용하여 교환만 하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정말 말 되네.”라고 입을 모았다.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었어!”
뱅커 씨는 1년 후에 돌아오겠다면서, 그때 마을 주민들이 그에게 별보배고둥 껍질을 110개로 갚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주민들이 추가로 갚는 조개껍질 10개는 그가 주민들의 시간을 아끼게 해 주고 삶을 편하게 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설명이 따랐다. 그 사람이 마차에 오를 때, 아주 똑똑한 쿡 부인이 “그럴 듯하게 들리기는 한다만 그 조개껍질 10개를 어디서 가져온담?”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조개껍질 10개를 추가로 돌려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자 뱅커 씨는 다음 마을로 향하면서 “그런 걱정은 말아요. 어쨌든 여러분들도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단순화했지만, 어떻든 돈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과정은 바로 이런 식이었다. 돈이 진화를 거듭한 지금은 초라하게 시작했던 초기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오늘날 금융시스템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해졌다. 사람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지폐나 동전만 돈인 것은 아니다. 은행 예금도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선물(先物)과 파생상품, 정부와 회사와 자치단체의 채권, 중앙은행 준비금이 있고, 또 2008년 신용경색 위기 때 전 세계에 걸쳐 금융기관의 붕괴를 야기했던 그 유명한 주택저당증권도 있다. 오늘날에는 증서와 지수와 시장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조차도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작용하는지를 정확히 꿰뚫기가 불가능하다.
돈은 더 이상 우리를 위하지 않는다. 우리가 돈을 위해 일한다. 돈이 이 세상을 접수하고 말았다. 하나의 사회로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것을 팽개치면서 고유의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한 대상을 숭배하고 경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화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불평등과 환경파괴와 인간에 대한 경멸을 촉진하는 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 소비자와 제품 사이 그 분리의 심각성
2007년까지 나는 거의 10년 동안 어떤 식으로든 상업과 관련을 맺으며 살았다. 아일랜드에서 4년 동안 경영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 뒤에는 6년 동안 영국에서 유기농식품 회사들을 관리했다. 내가 유기농식품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학위 마지막 학기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에 관한 책을 읽은 뒤의 일이다. 이 유명한 인물이 인생을 살아온 길에 감명을 받아 나도 나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사회에 유익한 쪽으로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가능한 한 빨리, 또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겠다던 당초의 계획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간디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간디가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서 나의 심금을 울린 것은 이 한 마디였다. “이 세상이 변하기를 원하거든 당신 자신이 그 변화가 되도록 하여라. 당신 혼자만이라도 좋고 수백 만 명이라도 좋다.” 문제는 나 자신이 그 변화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유기농식품이 윤리적인 산업으로 보였으며, 많은 점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렇기에 그 산업이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분야로 괜찮아 보였다.
유기농식품 산업에 6년 동안 깊이 관여한 뒤, 나는 그 산업을 생태학적으로 더욱 건전한 삶을 추구하는 훌륭한 발판으로 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식품 산업에는 문제가 많았다. 식품이 전 세계를 무대로 이동했고, 일용 식품 포장에 지나치게 많은 플라스틱이 쓰였으며, 대기업들이 작은 규모의 독립 사업장을 매입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기후변화와 자원고갈과 같은 이슈에 관심이 많은 전 세계 사람들의 운동에 동참할 길을 모색했다. 그 사람들은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기를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훌륭한 친구 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세계가 직면한 중요한 이슈들 몇 가지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노동착취공장과 환경파괴, 공장식 농장, 자원전쟁 같은 이슈들이었다. 나와 그 친구는 어느 문제의 퇴치에 우리의 삶을 바칠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우리 두 사람이 세상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심각하게 오염된 바다에 사는 작은 고기 두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지구가 병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이런 징후들이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며, 또 그 징후들을 두루 일으키는 거대한 원인이 하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소비하는 물건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원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식량을 직접 가꿔야 된다고 가정해 보라. 그러면 식량의 3분의 1을 허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국의 통계를 보면 현재 식량의 3분의 1이 허비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탁자와 의자를 당신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럴 경우 실내 장식을 바꿀 때마다 탁자와 의자를 새로 장만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급 쇼핑가에 진열된 의류의 천을 무장 군인의 감시 아래 짜는 어린이들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있다면, 아마 우리는 그런 의류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기는 힘들 것이다. 돼지가 도살되는 환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베이컨 샌드위치로 쉽게 손을 뻗기 어려울 것이다. 또 식수를 직접 정수해서 마셔야 한다면, 식수원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좀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파괴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는 고통을 야기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쇼핑 습관이 매우 파괴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지낸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이런 무서운 과정들을 결코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소비재들을 직접 만들기는커녕, 그런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우리는 뉴스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하여 일부 증거를 본다. 하지만 그런 증거는 사람들에게 별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증거의 효과는 광섬유케이블의 정서적 여과 ‘역할’ 때문에 크게 완화된다.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 나는 우리 현대인들이 소비재와 이처럼 심하게 분리되도록 만든 요인들을 찾아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돈’이라 불리는 도구가 존재를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돈은 아주 위대한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세계 인구의 99.9%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문제는 돈이 지금처럼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돈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소비하는 물건으로부터, 또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로부터 완전한 단절을 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소비자와 소비재 사이의 단절 현상도 엄청나게 깊어졌다. 오늘날에는 금융시스템의 복잡성 때문에 그 단절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업들의 마케팅 때문에 그런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 수십 억 달러를 쏟아 붓는 마케팅은 우리가 그 현실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 ● 돈은 곧 빚이다
현대의 금융 시스템에서는 대부분의 돈은 은행들이 만들어내는 빚이다. 이 세상에 은행이 하나뿐이라고 상상해보자. 지금까지 조개껍질을 자기 침대 밑에 보관해두었던 스미스 씨가 평생 모은 100개를 이 은행에 맡기기로 결정한다. 자연히 그 은행은 이익을 남기기를 원할 것이며, 따라서 스미스 씨가 맡긴 조개껍질 중 일정 비율을 대출하기로 결정한다. 그 조개껍질의 90%를 대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은행은 스미스 씨가 일부 인출할 것에 대비하여 조개껍질 10개를 금고에 보관한다.
또 다른 신사인 존스 씨는 조개껍질을 빌리길 원한다. 그는 그 은행으로 가서 스미스 씨의 조개껍질 90개를 받고 기뻐하지만 나중에 이자를 쳐서 갚아야 한다. 존스 씨는 그 조개껍질을 받아 빵을 사기로 결정하고 베이커 부인으로부터 빵을 산다. 날이 저물 즈음, 베이커 부인은 새로 번 조개껍질 90개를 은행에 맡긴다. 당신은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를 챘는가? 원래 스미스 씨가 은행에 맡긴 조개껍질은 100개였다. 이제 스미스 씨의 조개껍질 100개 외에도 은행은 베이커 부인의 조개껍질 90개를 맡았다. 100개의 조개껍질이 190개로 늘어났다. 어느 새 돈이 창조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은행이 이제는 베이커 씨의 예금 중 일정 비율까지 대출해 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말한 돈의 창조 과정이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물론 조개껍질의 물리적 숫자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스미스 씨와 베이커 부인이 자신들이 맡긴 조개껍질을 동시에 찾기를 원한다면, 그 은행은 곤경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은행은 다른 예금자들이 맡겨 놓은 조개껍질을 이용하면 된다. 그 은행이 모든 예금자들의 조개껍질의 90%를 다 빌려주게 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 이 허구의 세계의 모든 은행 구좌에 있는 조개껍질 중에서 겨우 10%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예금주들이 전체 조개껍질 중 10% 이상을 동시에 원한다면, 그 은행은 붕괴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뱅크런bank run이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은행이 상상의 돈을 ‘창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시스템이 터무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매일,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시스템이다. 한 은행이 아니고 무수히 많은 은행이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또 조개껍질 대신에 수없이 많은 통화가 오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원칙은 똑같다. 화폐의 대부분은 은행들의 대출에 의해 창조된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바로 그 돈이 별다른 가치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신의 은행 구좌의 숫자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빚이다. 그 다른 사람들의 빚 또한 다른 사람들의 빚에 의해 마련된다. 오늘날의 금융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
뱅크런도 허구가 아니다. 영국의 노던 록Northern Rock에서부터 미국의 패니 메이Fannie Mae까지 최근의 은행위기들은 가상의 자원을 바탕으로 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2009년에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났던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 시스템이 붕괴하자, 당시 납세자들은 그 누각을 계속 지키기 위해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은행에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빚을 강요하는 경쟁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서는 만약에 예금이 은행 안에서 잠을 잘 경우 은행들은 이자를 한 푼도 받지 못하며, 따라서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은행들의 입장에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차용자를 찾아 나설 엄청난 동기를 갖고 있다. 광고를 통해서 낮은 금리를 제공하거나 소비주의를 부추기면서까지 은행들이 예금의 거의 모두를 대출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의 의견에는 지구 환경파괴의 상당 부분이 이런 식으로 창조되는 신용 때문에 일어난다고 본다. 이유는 그 신용 탓에 우리가 각자 가진 수단 그 이상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크레디트 카드 결제를 한 건 할 때마다, 이 지구와 미래 세대들은 그만큼 빚을 떠안게 된다.
크레디트 카드를 사용하는 행태를 보면 우리 인간은 적어도 거기에서만은 결코 만족을 모르는 것 같다. 2010년 발표된 크레디트 액션Credit Action 보고에 따르면, 영국에서 쓰이고 있는 크레디트 카드는 7,000만 장에 이른다. 영국인들은 인간보다 더 ‘나긋나긋한 친구들’을 두고 있다. 가구당 평균 부채(저당권 설정 주택 대부 제외)는 1만 8,000파운드(약 3,350만원)가 넘는다.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영국의 국가부채가 초당 4,385 파운드(약 816만원)씩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회수 시기가 경제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나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돈을 창조하는 것이 경제에 대단히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경제가 원래 돌보게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다. 영국의 자선단체인 시티즌스 어드바이스Citizens’ Advice는 채무와 관련하여 전문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매일 9,300명 이상 돕고 있다. 또 4분마다 한 사람씩 파산이나 지불 불능을 선언하며, 11분 30초마다 주택 한 채가 차압당하고 있다.
종국적으로 보면 돈의 창조 과정은 불가피하게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을 의미한다. 은행들은 처음에 갖고 있지 않던 돈을 대출해주고 있으며, 또한 매 단계에서 이자를 챙기고 대출이 제때 상환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 부동산을 차압할 권리를 갖는다. 이 세상에 이런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여기서 자그마한 마을로 돌아가 보자. 옛날에는 가을걷이 같은 때가 되면 서로를 돕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더 많은 일을 협동으로 처리했다. 이 협동이 그 사람들에게 안전감을 안겨주었다. 아직도 돈이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에서는 협동의 문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끝 모르게 이어지면서 서로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경쟁하게 되었다. 그 작은 마을에도 한때 팽배했던 협동정신 대신에 경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추수철이 되어도 이웃을 공짜로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경쟁심이 마을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소외감에서부터, 자살과 정신질환과 반사회적 행동의 증가까지 실로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그 경쟁심은 또한 자원고갈과 기후변화 같은 환경문제도 낳았다. 현재의 환경문제들은 무분별한 경제성장과 관계가 깊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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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마크 보일 (Mark Boyle)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돈의 사용을 가급적 줄이자는 취지에서 ‘프리코노미freeconomy’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뒤 유기농 분야에 종사했다. 그의 웹사이트www.justfortheloveofit.org는 ‘프리코노미’ 운동의 센터로 자리잡았다. <가디언>과 <에시컨 컨수머>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Sky News>와 <BBC> 라디오, <데일리 미러>, <데일리 메일>, <텔레그래프>와 <더 타임스> 등에 특집으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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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정명진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내가 낯설다』(티모시 윌슨),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남자, 여자를 해석하다』(허브 골드버그), 『성격의 재발견』(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심리학, 생활의 지혜를 발견하다)(찰스 I. 브룩스), 『여자의 적은 여자다』(필리스 체슬러), 『김대중 신화』(도널드 커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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