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 지구는 지금
“인위적인 온난화는 기후변화의 속도와 규모에 따라 지구에 돌발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복구 불가능한 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 『IPCC 4차 종합보고서』 중에서
인류가 큰 사고를 쳤다. 지구의 온도를 지난 100년(1906~ 2005)간 0.74℃나 올려놓은 것이다. 체온이 1~2℃만 올라도 인간이 몸져눕는 것과 같이 0.74℃의 온도 상승은 지구의 기상체계를 뒤죽박죽 만들어 버렸다. 유럽의 폭염, 미국의 대형 허리케인, 아프리카 최악의 가뭄, 잦은 태풍과 폭우, 폭설 등 지구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이 예사롭지 않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우리는 매일 기후변화 소식을 듣는다. 남극에 전에 없던 풀이 돋아나고 북극곰이 100년 안에 멸종하며, 따뜻해진 기온에 지반이 약해져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집이 기울고 있다는 숨 가쁜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질문을 한다. “기후변화가 왜 일어나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구온난화를 멈출 수 있는 거야?”라고. 만약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기후변화를 진짜 위기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위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위기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이렇다. 북극곰의 발밑에서 얼음이 깨지고 있다. 북극곰은 더 이상 헤엄칠 기력이 없는데 내딛는 얼음 덩어리마다 산산조각 부서지고 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헤엄을 포기한 북극곰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같은 시간 나는 난방이 잘된 방 안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지구가 말을 한다. “당신의 일상생활이 북극곰을 죽였다. 북극곰을 죽인 도구는 지금 당신이 배출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다.”라고.
인간이 편안한 일상생활을 누리기 위해 사용한 화석연료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대기 중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일으켜 지구의 온도를 올리고 지구 저편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는 무기로 돌변하고 있다. 죽어 가는 생명은 비단 북극곰만은 아니다. 북극에서 사냥을 나갔다 얼음이 깨져익사하는 이뉴잇과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은 이미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기후변화로 생명의 위기에 처한, 지구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다.
“미국 로키 산맥에 서식하는 에디스의 체커스폿이라는 나비는 기온보다는 적설량을 기준으로 번데기에서 나오는 시간과 짝짓기 시기가 결정된다. 이 나비는 5~6월에 번데기에서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로키 산맥에 눈이 내리지 않으면서 4월에 일찍 번데기에서 나왔다. 예정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나비는 꽃을 찾아 헤매다가 굶어 죽었다. 나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부드러운 날개로 온 산은 오렌지 빛깔 카펫으로 뒤덮였고, 몇 번의 때 이른 짝짓기가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로키 산맥 주위에서는 이 나비를 볼 수 없게 됐다.”
- 『핫 토픽: 기후변화, 생존과 대응전략』 중에서
나비의 오렌지 빛깔 날개로 무수히 덮인 로키 산맥을 상상하면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그림이 떠오른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화려한 색감이 처연한 멸종을 더욱 강조한다. 체커스폿 나비 다음은 누구인가.
이 책은 기후변화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라는 이슈에 대한 안내서이다. 글은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다루었다. 기후변화 현상과 영향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했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내용은 보수적인 전망을 담은 IPCC 보고서를 기본으로 최신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2장에서는 기후변화를 둘러싼 정치경제를 중심으로 우리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다뤘다. 국제사회는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이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할 때 “서서히 끓는 물속에서 개구리는 서서히 삶아져 죽고 만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지금 상황은 모두가 개구리처럼 서서히 끓고 있는 지구라는 솥단지 속에 앉아 걱정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3장에서는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맞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올라가는 지구의 온도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다루고 있다.
21세기 핵심 키워드는 ‘기후변화’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넘치는 정보와 막연한 공포감 속에 대중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일을 제대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포기’하거나 ‘환경피곤증’에 빠지는 일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일을 포기하지 않고 무엇인가 실천에 옮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에게 아직 변화를 이끌어 낼 시간이 남아 있다.
지구는 점점 더워지는가?
기후변화는 명백한 ‘사실’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이하 IPCC)’는 2007년 「4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통해 “기후 시스템의 온난화는 지구 평균기온과 해수 온도 상승, 광범위한 눈과 얼음의 융해, 평균해수면 상승 등의 관측 자료를 통해 명백히 나타난다.”라고 밝혔다. 또한 ‘지구온난화’ 진행속도는 2001년 발표된 3차 보고서의 예측치를 넘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지구의 세계기후 또는 지역기후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말한다. 10년에서부터 수백만 년 기간 동안 대기의 평균상태 변화를 의미하는데,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가리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구의 기온 상승은 지구 전체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북반구 고위도로 갈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지난 100년(1906~2005) 동안 지구 표면 온도는 0.74℃ 상승했다. 지난 100년간 가장 더웠던 열두 번의 해는 모두 1983년 이후에 나타났다. 1℃도 채 안 되는 온도 상승에 지구는 마치 ‘독감’에 걸린 아이처럼 이상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3년 유럽에선 여름철 이상고온으로 35,000여 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는 1월 최저기온이 평년보다 10℃ 낮은 이상저온 현상이 발생해 1,000여 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6월에는 인도에서 40℃가 넘는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해 탈수증과 열사병으로 15,000여 명이 사망했다.
기온이 높아지면 대기 중 수분 함유량이 높아지고 강수량이 증가한다. 반면 특정 지역에서는 기온이 높아지면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가뭄이 심해지기도 한다. 태풍 발생이 증가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잦은 태풍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지역은 장기간 가뭄으로 사막화 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05년을 열파, 가뭄, 홍수, 허리케인 등 ‘극한기후 현상으로 점철된 해’로 규정했다. 2005년 유럽 대륙과 북아프리카에 몰아친 강력한 열파,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괴롭힌 최악의 가뭄, 러시아와 동유럽,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체코에서 발생한 홍수, 미국 동남부 일대에 발생한 사상 최다 빈도의 허리케인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해수면 상승으로 홍수 위험이 높아지는 지역에서 폭풍우 피해가 추가되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심해지자 사람들은 0.74℃의 지구 온도 상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지구의 온도는 왜 올라가는 것일까?
태양은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에너지원이다. 태양에너지는 빛의 형태로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데, 대기층을 통과한 에너지는 지구의 온도를 높인 뒤 적외선 형태로 다시 지구 밖으로 방출된다. 지구에 이렇게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태양과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태양과 너무 가깝거나 멀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지구는 생명체가 살아가기엔 태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지구에 대기권이 존재하지 않고,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 평균기온은 영하 18℃로 생명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히 지구에는 대기권이 있고, 그 속에 온실가스가 있다. 온실가스는 우주로 방출되는 복사에너지의 일부를 흡수해 지구 평균기온을 15℃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렇게 고마운 역할을 하는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너무 많이 방출되면서 발생한다. 온실가스가 많아지면서 대기를 탈출해 지구 밖으로 나가야 할 적외선 복사에너지가 대기 중에 갇히는 것이다. 이불을 한 겹 덮고 있을 때에는 따뜻하지만 두 겹 세 겹 덮으면 갑갑하고 덥듯이, 지구도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면서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지구온난화는 대기 중 온실가스(GHGs: Greenhouse Gases) 농도 증가로 온실효과가 발생하여 지구 표면의 온도가 점차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6대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이다. IPCC 보고서에 따르면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연소와 토지 이용 변화를 포함한 인간 활동 때문에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급증하고 있다.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기체가 화석에너지 연소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이다. 이산화탄소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77퍼센트(화석연료사용 57퍼센트, 산림 벌채·벌목 및 토탄지 감소 17퍼센트, 기타 3퍼센트)를 차지한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거나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석유와 석탄, 자동차와 비행기 및 건물 냉난방에 쓰이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 연소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배출을 증가시켰다. 한편으로 탄소흡수원 역할을 하는 산림과 열대밀림이 빠른 속도로 파괴됐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IPCC 실무그룹1의 기후변화과학 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 280피피엠에서 2005년 379피피엠으로 증가했다. 연간 배출량은 1970년부터 2004년까지 80퍼센트나 증가했다. 지난 40만 년 동안 변화해 온 지구의 평균온도 변화와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추이는 놀랍도록 일치한다. IPCC 4차 보고서는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2030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0년 대비 최고 110퍼센트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실가스 | 지구온난화지수 | 주요 발생원 | 배출량 |
이산화탄소(CO₂) | 1 | 에너지 사용, 산림 벌채 | 77% |
메탄(CH₄) | 21 | 화석연료, 폐기물, 농업, 축산 | 14% |
이산화질소(N₂O) | 310 | 산업공정, 비료 사용, 소각 | 8% |
수소불화탄소(HFCs) | 140~11,700 | 에어컨 냉매, 스프레이 분사제 | 1% |
과불화탄소(PFCs) | 6,500~9,200 | 반도체 세정용 | |
육불화황(SF6) | 23,900 | 전기 절연용 | |
CO₂를 기준으로 한 온실가스별 지구온난화지수와 주요 발생원(IPCC 4차 보고서, 2007) |
온실가스가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지수로 나타낸 것을 ‘지구온난화지수’라고 하는데, 온난화지수가 높을수록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산화탄소의 온난화지수가 1이라면 메탄은 무려 21이나 된다. 메탄은 농축산업 분야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소의 트림이나 방귀, 가축 분뇨에서 나온다. 메탄은 산업혁명 이전 715피피비에서 2005년 1,774피피비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아산화질소도 비료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대기 중에 쌓이고 있다. 아산화질소의 온난화지수는 310이다.
온난화지수가 매우 높으면서도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지 않는 인공적인 온실가스도 있다. 냉매, 스프레이 분사제 등 산업공정에서 사용되는 수소불화탄소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이 그것이다.
온실가스 중에서 온난화지수가 가장 낮은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다른 온실가스보다 양이 월등히 많고, 산업화와 더불어 대기 중 농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장, 2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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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 정책위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가이드북』, 『바이오에너지 희망을 찾아서: 현황과 전망』, 『한미행정협정 연구 Ⅰ,Ⅱ』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남북한 기후변화 대응 협력방안 모색」, 「남북에너지 협력방안 연구: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역서로는 『생태발자국』(공역), 『자연과 타협하기』(공역), 『탄소중립 신화』(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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