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 세계는 구글 당하는가?
“물결을 만들 수 없다면 올라타는 방법이라도 찾아라”
미디어 기업은 크게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물결을 일으키는 소수’와 ‘물결에 올라타는 다수’ 혹은 ‘가라앉는 다수’.
물결을 일으키는 엘리트 회사는 드물고, 물결을 타는 회사는 흔하다. 그러나 물결에 올라타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시스코, 델, 오라클처럼) 근본적으로 소비자나 다른 기업들의 행동을 바꾸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컴퓨터를 효과적으로 제조하겠다는 델의 방법은 ‘혁신’이지 ‘혁명’이 아니었다.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지 못한 탓이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물결을 일으키는 존재다. 델이나, 퀸시 스미스의 CBS나 어윈 고틀립의 그룹M은 물결에 올라타려는 이들이고, 신문은 물결에 부딪히는 이들이다. 애플의 물결은 애플 II, 즉 1977년에 출시된 컴퓨터로 시작된다. 그 후 1984년에 매킨토시가 등장하면서 혁신적인 그래픽 UI를 제시했다.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혁신했고, 다음으로 아이팟과 아이튠스와 아이폰이 등장했다. 인텔과 HP 역시 물결을 일으켰다고 간주해도 좋을 듯하다.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남들이 일으킨 물결에 올라탔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30년간 번성하면서 컴퓨터 세계를 바꾸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위키피디아 같은 회사들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할지 단언하기는 시기상조다.
하지만 구글이 물결을 만들어내는 회사라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다. 전 세계가 ‘구글되었고(googled)’, 구글은 래리 페이지가 말하듯 ‘마치 양치질처럼 삶의 일부’가 되었다. 구글은 우리가 정보와 지식을 찾아낼 때 부딪히는 장벽을 없애버렸다. “인터넷은 정보를 제공하고 구글은 정보를 가져다준다.”고 핼 베리언은 말했다. 구글의 물결은 업계 전체를 강타했다. 광고, 신문, 출판, 텔레비전, 전화, 영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제조업체 등.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의 관계
구글의 힘은 구글을 두려워하는 기업들과 구글을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구글은 애드센스와 애드워즈 프로그램으로 웹사이트들에 양분을 줌으로써 웹이 성장하도록 촉진했다. 애드센스와 애드워즈는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광고수입과 신규고객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안겨줬다. 먼저 무료로 제공해 사용자를 모은 다음 수익모델을 찾는 구글의 사업 방식은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닝에 이르는 신생 웹 기업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구글은 매년 수차례 검색엔진전략(SES) 컨퍼런스를 개최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검색 마케터나 검색 최적화 담당자(optimizer) 수천 명과 새로운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기업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구글 알고리즘을 능가해 검색이나 광고 결과에서 상위에 올라갈 수 있는지 제안한다. 구글은 혁신적 기업문화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구글의 검색 결과는 우리 시대상을 반영하여, 우리가 어떤 주제에 사로잡혀 있는지 보여준다.
경제학자들은 구글 트렌즈(Google Trends)의 검색 데이터를 조사함으로써 트렌드를 찾아내고 소비자 행동을 더 잘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구글은 정보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정치 참여도 촉진했다. 이는 유튜브가 2008년 미국 대선 기간에 증명한 바 있다. 구글은 정부에서 기업에 이르는 단체들이 더 투명해지도록 이끌었다. 오픈소스 안드로이드 전화와 클라우드 컴퓨팅, 유튜브와 더블클릭으로 그 광대한 폭을 더 넓히려 한다.
“15년에서 20년 전이라면 기업가들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차세대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되고 싶어.’ 요즘 사람들의 포부는 차세대 구글이 되는 것이죠. 구글은 고작 400주(week) 만에 수입이 0에서 200억 달러로 치솟았어요. 구글은 수많은 사람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문, 그러니까 정보를 찾으러 가는 곳이 되었어요. 아마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눈에 띄는 서비스일 겁니다. 1925년 당시의 헨리 포드가 이들보다 더 유명했을까요? 인터넷 덕분에 구글은 지리적 한계도 뛰어넘었죠.’ 마이클 모리츠가 말했다. 그가 추측하기에 현재 구글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유일한 기업은 코카콜라뿐이다.
브린은 자기가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을 묘사했다.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들고, 두 사람은 맞춤으로 개조한 보잉 전용기를 즐겨 탄다. 이 전용기는 브린과 페이지가 구입한 것으로, 그들이 여러 대륙으로 이동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어느 날 잠비아에 있는데 자동차 운전기사가 컴퓨터 부품을 구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운전기사는 필요한 부품 몇 개를 구하지 못했고, 구한 것들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다섯 배나 비쌌다. “기사는 DVD롬을 구하려고 하고 있었어요. 내가 그랬죠. ‘미국에서는 30달러면 돼요.’ 그가 말했어요. ‘뭐라고요?’ 기사는 DVD롬에 200달러를 쓸 생각이었던 거예요. 그에게 정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DVD롬을 40달러면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일도 더 능률적으로 할 수 있었을 테고, 공동체 전체에도 유익했겠죠. 나는 정보가 가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고 믿어요.”
‘구글 웨이’는 진정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가?
구글 검색은 다른 회사들에도 막대한 이익을 준다. 인터넷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있는 마법의 상자’라고 말하는 마크 앤드리슨은 구글이 마법 상자를 ‘더 좋게’ 만들어주었다고 평했다. “구글은 무엇이든 찾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해주죠. 수많은 회사들이 구글에서 자기 상품이 더 잘 검색되도록 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써요. 구글은 막대한 트래픽과 수입의 원천입니다. 페이스북은 한때 구글에서 차단되어 있었어요. 페이스북에 로그인 해야만 사람들의 프로필을 볼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 후 페이스북은 공개 프로필을 만들어서 구글 검색 결과에도 페이스북의 프로필이 뜨도록 해두었죠. 그렇게 해서 추가로 트래픽이 발생하고, 그것이 페이스북에 수익으로 연결되었어요.” 웹사이트 운영자들은 구글 검색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전체 방문자의 80~90%까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구글이 인터넷의 으뜸 항해사인 현재, 니콜라스 G. 카(Nicholas G. Carr)가 2008년에 블로그에 올린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구글은 모범생인가 괴짜인가?”
이타이 탈감(Itay Talgam)은 구글의 2008년 자이트가이스트 컨퍼런스에서, 무심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탈감은 주름진 면 폴로 티셔츠에 어깨에 스웨터를 두르고 작은 반원 무대에 서 있었고, 드문드문한 머리칼은 사방팔방으로 뻗쳤다. 30분간, 지휘가 혁신적 경영의 메타포가 될 수 있다고 그가 발표하는 동안 청중석은 고요해졌다. 음악은 ‘잡음’이고, 지휘자가 하는 일은 ‘여러 사람이 조화롭게 일하게 하는 것’이라며 그가 말을 시작했다.
한 세기의 지휘자들을 거론하던 그는 그중 5명을 언급했다. 그는 모두 뛰어나지만 두 명만 혁신적이었다고 말했다. 조명이 약해지고 커다란 화면에 전제군주 같은 외모의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의 동영상이 보였다. 그의 굳은 얼굴과 로봇 같은 지휘봉 움직임에 오케스트라는 아무런 ‘환희’도 발산하지 못했고, 솔로이스트들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무티의 표정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모두에게 어떻게 하라고 세세하게 명령한다. 마이크로매니저다.’ 탈감이 말했다. 두 번째 지휘자는 리처드 스트로스(Richard Strauss)였다. 그는 기계적으로 팔을 흔들지만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는 듯하고, 오케스트라에 자유를 주는 듯하지만 아무런 권위도 없고 영감도 주지 못한다. 세 번째 지휘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그는 오케스트라를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영감을 주지 못했다. 네 번째는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그는 연주하는 내내,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탈감은 그가 ‘프로세스와 자유로운 느낌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권위’도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클라이버가 솔로 연주자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주는 것을 보라고 지적한다.
탈감은 자기가 좋아하는 지휘자를 마지막까지 감춰두었다. 마지막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었고, 영상은 그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을 연주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고등학생 오케스트라를 맞이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연습 첫 날, 임시로 조직한 오케스트라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지휘봉을 ‘권위’의 상징으로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음악을 멈추고 스트라빈스키가 일깨우려 한 느낌을, 봄의 잔디에서 나는 향기를,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동물들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합니다. 사람들의 세계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말해주는 거죠.” 일주일 뒤로 화면이 바뀌고, 고등학생 오케스트라가 번스타인 앞에 주의를 기울이며 앉아 있다. 번스타인은 서로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지휘봉도 없이 팔짱을 낀 채로, 번스타인은 오직 얼굴 표정만으로 지휘한다. 베이스 연주자에게 입술을 씰룩이며 고개를 숙이고, 작은 현악기 연주자들에게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호른 연주자에게는 고개를 끄덕이고, 피날레에는 환한 웃음을 보이고… 탈감은 청중에게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특별한 지도자가 어떻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지 보여주는 절묘한 경영 세미나였다. 번스타인은 우두머리였으나, 전제군주는 아니었다. 그는 오케스트라로부터 최대치를 끌어냈고, 그들이 전체의 일부가 되게 했다.
구글이 탈감을 초청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렇게 더 큰 무엇인가에 연결된 느낌은 구글 문화의 핵이다. 직원들은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다. 구글은 직원들이 네트워크의 일부라고 느끼게 하려고 노력한다. 패트릭 퍼셰트(Patrick Pichette)는 CFO가 되었을 때 비용 절감 문제를 군중의 지혜에 기대어 풀려고 했다. 그는 웹페이지를 개설하여 직원들에게 낭비를 줄이기 위한 제안을 하라고 했고, 거기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여럿 캐냈다. 구글은 이런 네트워크 방식을 변형하여, 사용자가 파랑과 노랑 중 무엇을 좋아할지 시험하거나 베타 상품 중 무엇이 나은지 시험할 때 활용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정량화를 신봉하는 분위기 때문에 몇몇 디자이너가 구글을 떠나고 블로그에 좌절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프린스턴에 있는 대중/국제관계 우드로 윌슨 스쿨의 전직 학장이었던 앤-마리 슬로터(Anne-Marie Slaughter)가 언급한 바, 구글이 견인차 역할을 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의 특징이다. 외교는 ‘공공과 민간의 관계자들로 구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를 동원해야’ 하고, CEO들은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네트워크 형태의 수평세계로 이동’하는 현상을 절감하고 있으며, 미디어는 점점 ‘거대한 대화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온라인 블로그와 참여적 미디어’로 구성된다. 사회 자체가 네트워크로 묶이면서, 마이스페이스의 세상은 ‘아워스페이스(OurSpace)’라는 전 지구적 세상을 형성하며 대륙과 대륙 사이의 수백만 명을 연결해준다. 분명 더 개방된 국가, 더 개방된 회사가 유리해지는 세계다.
구글은 직원을 자유롭게 하는 경영시스템을 창안했다. 인력운용 부사장 래즐로 복(Laszlo Bock)은 ‘구글 웨이(Google Way)’란 한마디로 직원을 더 잘 대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글은 ‘동료들을 믿어도 좋다’고 말하는 하나의 플랫폼이죠. 우리는 다른 회사에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그 열쇠는 무료식사가 아니라 20% 자유시간이죠. 여기에는 지적인 자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2008년, 보육시설 이용료가 인상되고 피닉스 사무실이 폐쇄되는 등 구글러들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으나, 그들 대부분은 직장생활이 매력적이라고 인정했다. 쓸모없어진 스톡옵션을 대체하도록 새로운 스톡옵션을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회사가 몇이나 될까?
구글의 직원 정책이 다른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고 묻자 페이지는 겸손하게 말했다. “저로서는 알기 힘들죠. 다른 데서 일해본 적이 없잖아요. 하지만 충격을 주기는 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구글이 직원들에게 하는 일들 때문에 주목을 많이 받기는 하는데, 좋은 일이죠.”
성공한 것에 대해서도 ‘왜?’라고 반문하는 문화
머리서 메이어는 구글 상품의 절반이 20% 자유시간에 창출된다고 말했다. 20% 자유시간은 구글의 혁신에 불을 지폈고, 기존 미디어 회사에는 재앙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회사의 지원도 받고 격려도 듣기 위해 메이어를 찾아오는 엔지니어들 대부분은 페이지와 브린이 창립 당시 품었던 바로 그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미 검증된 방법은 이젠 낡은 것’이라는 발상이다.
휴대전화 서비스인 구글 보이스(Google Voice)는 구글 엔지니어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다. 엔지니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질문부터 던진다. “왜?” ‘어차피 인터넷으로 전화를 거는데, 전화기들을 하나의 번호에 통합하면 왜 안 되지?’, ‘왜 자동응답기를 여러 대 둬야 하지?’, ‘왜 이사할 때마다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지?’, ‘왜 음성 메시지를 들으려면 기다려야 하지?’, ‘그걸 문자 메시지로 바꾸면 안 되는 이유가 뭐지?’, ‘상대방이 동의한다면, 통화내용을 녹음하지 못할 이유가 뭐지?’, ‘왜 텔레마케팅 전화나, 받기 싫은 전화를 확실하게 차단하지 못하지?’, ‘왜 무료전화가 안 되지?’…
2007년에 구글 보이스 베타 테스트를 위해, 구글은 소규모 그룹에 서비스를 선보였다. 당시 서비스는 구글이 몇 년 전 인수한 신생회사 이름을 따서 그랜드센트럴(GrandCentral)이라고 불렀다. 초기 그랜드센트럴 시험 프로젝트에서, 사용자들이 일반 전화기로 음성메일 서비스에 전화를 건 뒤 버튼을 누르면 신호음이 들린다. 그러면 인터넷에 연결된다. 이것은 무료에다 편리했다. 사용자들은 좋아했지만 구글은 그것이 ‘애매한’ 상품이라 판단해 사업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구글이 실패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퍼그(David Pogue) 같은 이들의 키득거림은 조소로 바뀌었다.
2009년 3월, 구글 보이스가 발표되자 조소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전화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걱정할 만한 상황이었다. 구글은 우선 전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장거리 전화에만 미미한 금액을 부과했고, 언젠가는 기업들에도 이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려고 했다. 소비자들에게는 전진이었던 일이, 이 회사들에는 잠재적인 퇴보였다. 그들은 ‘구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구글 엔지니어들은 총명함을 입증했다. 그들은 가장 단순하고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방법을 고안해냈다. 구글 보이스가 전화업계나 지역 커뮤니티 종사자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프라이버시 문제도 그랬다. 구글이 소비자들의 통화패턴에서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기 때문에, 사생활 문제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들은 구글 보이스가 성공하여 구글이 검색, 온라인 광고, 유튜브, 디지털 도서처럼 전화 서비스에서 주도적인 자리에 올라서면 사회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묻지 않았다. 이런 질문들은 엔지니어들의 연봉에 포함되지 않은 문제였다.
여러 실리콘밸리 회사들과 기타 기업들은 크리스 앤더슨이 ‘무상 제공을 사업 기반으로 하는, 역사상 가장 큰 회사’라고 한 기업(구글)을 본받았다. 『프리(Free)』라는 책에서, 앤더슨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을 언급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야후의 플리커, 이메일 서비스, 위키피디아, 크레이그스리스트, 디그(Digg) 같은 뉴스 수집기, 온라인 신발매장 자포스(Zappos)의 무료 배송과 반품에 이르기까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구글은 기존 미디어들이 저지하려고 하는 개념(디지털 정보와 컨텐트는 무료여야 한다)을 도리어 강화했다. 앤더슨은 이렇게 썼다. “이들은 구글 세대고, 디지털이라면 원래 전부 무료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많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구글의 20% 자유시간, 영감을 주는 코치 빌 캠벨와 같은 멘토 시스템을 따라 했다. 페이스북은 직원들에게 커피, 무료식사, 주차, 헬스클럽 멤버십, 세탁 서비스 등 많은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기숙사를 제공했다. “구글은 실리콘밸리의 떠오르는 새로운 기준입니다.” 빌 캠벨은 말했다. “‘유능한 엔지니어를 구글보다 먼저 채용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글은 리드하기도 했지만 따라가기도 했다. 스탠퍼드 총장이자 구글 이사인 존 헤네시(John Hennessy)는 한때 컴퓨터공학 학과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구글 아이디어 중 몇몇, 이를테면 20% 자유시간과 같은 개념이 스탠퍼드와 ‘학계’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 역시, 스탠퍼드의 컴퓨터 연구실에서 야후를 구상했다. 애완동물을 회사에 데려올 수 있게 하고 야외공간과 수의사를 지원하는 서비스는, 래리 페이지가 넷스케이프에서 모방한 것이다.
구글은 유일무이하지도 않다. 넷플릭스(Netflix)는 직원들을 죄어치는 것으로 악명 높지만 처우는 아주 훌륭하고 그중엔 무한휴가라는 것도 있다.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자포스(Zappos)는 회사에 풀타임으로 ‘라이프 코치’를 두고 직원들의 고충도 듣게 하고 심리 상담도 맡긴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구글은 최고의 회사들만이 달성하는 일을 해냈다. 고객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구글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브랜드에 자주 꼽힌다. 어떤 회사든지 브랜드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쉴 새 없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회사는 드물다. 이들이 실패하는 까닭은 브랜드와 회사 인지도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브랜드가 신뢰의 동의어이며, 예산 따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대부분 〈뉴욕타임스〉에 실린 정보나,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나, 코카콜라의 맛이나, 볼보의 안전성이나, 월마트나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저렴한 가격을 신뢰한다. 〈와이어드〉 창립자 중 한 사람인 케빈 켈리가 블로그에 썼듯이 우리가 ‘인터넷을 무료정보 복사기’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 무료 복사본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켈리의 답은 이렇다. “복사본이 무료라면, 복사할 수 없는 것을 팔아야 한다.” 그중 첫째는 ‘신뢰’다. 신뢰는 복제가 안 된다. “신용은 반드시 시간이 지나야만 쌓이는 것이다.”
신뢰를 쌓는 한 가지 토대는 회사가 고귀한 목적을 위해 일하고 주주들에게 부를 안겨준다는 믿음이다. 2004년 구글의 기업공개 때 페이지와 브린이 발표한 ‘창립자들의 편지’를 상기해보자. 편지에서 두 사람은 선언했다. “구글은 통상적인 회사가 아니다. 우리는 그런 회사가 될 생각이 없다. 구글은 투자자의 이익이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을 목표로 움직이며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기별 시장 기대치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구글 투자설명서의 일부로 발표된 질의응답 부분에서, 브린은 구글의 목표가 ‘그저 최대한으로 커지는 것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나는 크고 성공한 기업들이 … 자원의 일부를 투입하여 세계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려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에릭 슈미트가 말했듯 ‘도덕 집단’으로서 봉사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광고를 허락하지 않거나 사용자들을 구글에 묶어두지 않고 곧바로 목적지로 가게 하려는 고집 등 원칙 있는 태도와 무료 서비스가 결합하여, 구글은 그 목표들이 진실하다고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2004년 12월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덮쳤을 때, 구글은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개설하여 사용자들이 참여할 만한 다양한 국제 구호활동을 알렸다. 2008년, 구글 플루 트렌즈는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질병관리본부가 경보를 발동하기 한참 전에 플루 발생을 예측했다. 한 벤처 캐피털의 경영 파트너인 스티븐 래트너(Steven Rattner)는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 괴짜 집단이 21세기 최고의 마케터로 밝혀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니 2009년 구글이 또 다시 〈포춘〉 선정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50대 기업’에 꼽힌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결은 생존을 보장해주던 모든 것을 쓸어갈 수도 있다
물결이 일면 막대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구글은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파괴하기도 한다. 이것은 기존 기업들에게 생사의 문제를 야기한다.
로이터의 CEO 톰 글로서에게 물었다. “구글이 로이터에게 도움이 되나요 해가 되나요?” 글로서는 마치 영원히 대답하지 않을 것처럼 침묵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단기와 장기로 좀 구분하느라고 시간이 걸렸네요. 오늘날까지 구글은 중립이거나 긍정적이었어요.”
단기적으로 구글은 자극제가 되어, 기존 기업들이 ‘게임의 수준을 높이도록’ 압박했다. 예를 들어 월가의 브로커들은 온라인 증권거래 서비스나 온라인 정보 사이트와 경쟁하기 위해 서비스와 정보를 개선해야 했다. 장기적으로 그는 이렇게 본다. “누구라도 ‘사악하게 굴지 마라’라는 말이 구글의 진정한 신조이자 실제 가치관인지, 아니면 단지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고 나중에 엄청난 개인행동 데이터를 구축하고 나면 ‘근데 말이지, 이제부턴 돈을 내셔야겠어.’ 하고 등을 치려는 건지 모릅니다. … 구글은 소프트웨어를 응용해서 좁은 해협을 만들고는, 우리가 웹에서 뭔가를 할 때마다 그곳을 지나가야 하게 만들었죠. … 사용자들의 눈길을 끌려면 구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운 거죠. 어떤 시점이 되면 구글은 공익사업가가 아니라 입장료를 받는 문지기로 바뀔 수도 있어요.”
구글의 힘은 다른 기업들에 끝없이 압박을 가한다. 전자결재 시스템 페이팰의 공동창립자 겸 CEO였던 피터 실(Peter Thiel)은 이렇게 말한다. “1940년대에 당신은 철도회사를 운영하는데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그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1940년대의 철도회사란 곧 지금의 기존 미디어 회사를 상징한다. 그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 과감히 조직을 통폐합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둘째, 급격한 혁신을 시작하는 것. 이론상으로는 급진적인 방안 쪽이 더 끌린다. 한 가지 문제는 ‘어떻게?’다.
신문사라면 기존 것은 파괴하지 않고 무료 웹 신문을 발행하는 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혁신은 엔지니어에 좌우될 때가 많고, 이미 살펴보았듯 미디어와 엔지니어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산다. 실이 말했다. “그건 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1998년 무렵 페이팰을 시작했을 때, 우리 역시 ‘왜 은행은 이걸 못하지?’하고 물었어요. 은행들은 실제로 우리를 모방하려고 했죠. 하지만 그러자면 유능한 엔지니어가 필요한데 거대 금융회사들은 그들을 확보하지 못했죠. 그런 기업들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당신이 정말 재능 있는 엔지니어라면 무엇 때문에 시티그룹에 들어가겠어요? 조직이 당신의 공로를 높이 사주지 않는 곳에서 무엇 때문에 일하려고 하겠어요? 정치가라면 워싱턴에서 일하고 싶을 거고, 금융가라면 뉴욕에서 일하고 싶을 겁니다. 재능 있는 배우라면 LA에서 일하고 싶겠죠. 엔지니어라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을 겁니다.”
구글과 비교적 관계가 좋은 곳들을 비롯하여, 대다수 기존 미디어 회사들은 자기들이 구글 당하지 않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불안한 데는 더 큰 맥락이 있다. 그들은 기술 혁신이 자신의 사업을 급속도로 뒤엎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걱정하고, 파트너 기업이 경쟁사도 되는 세계에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자신의 사업을 얼마나 유연하고 빠르고 바꿔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사방으로 퍼져 있는 블로고스피어(bloggosphere, 블로그 세계) 때문에 곤란해질까 걱정한다.
마이클 아이스너는 디즈니 CEO 자리를 내준 지 얼마 안 돼, 젯블루(JetBlue) 항공을 이용해 버뱅크에서 뉴욕으로 날아갔다. “착륙해서 블랙베리를 열어보았더니 젯블루에 타고 있던 내 사진이 올라가 있더군요. 이럴 수가! 한 블로그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마이클 아이스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기에 전용기나 최고급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은 것일까?’ 그는 웃어넘겼으나, 이 일은 휴대전화 카메라와 블로거들이 어떻게 사적인 일을 공적인 일로 바꿔버리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무대는 넓어졌다.
인터넷과 구글은 기업들에게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NCB/유니버설의 CEO 제프 주커는 디지털 시대에 CEO가 된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흥분되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 이해한다. 왕(Wang), 게이트웨이(Gateway), 컴팩 컴퓨터가 그랬고, 모토로라나 선이나 야후 같은 회사들의 부침도 있었다. 그는 너무 성급하게 일시적인 유행을 받아들이지는 않을지 조심스럽다. CBS가 주스트(Joost)라는, 정식 계약한 TV 프로를 무삭제로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투자했을 때가 그러했다. 2007년에 출시되어 누구나 탐내는 혁신상을 수상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이목을 집중시킨 후, 주스트는 비척대다가 2009년 중반 동영상 소비시장에서 탈락했다. 주커는 반대로 좋은 사업을 배 밖으로 내던지는 것은 아닌지도 주의하려 한다. 한때 NBC가 소유했던 회사 RCA가 1970년대 초반에 가전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을 때가 그러했다. 가전제품 시장에서 더 이상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 RCA는 애플과 MS가 치고나가는 동안 제자리에 머물렀다.
“우리 모두가 걱정하는 것은 혁신하다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는 겁니다. 그리고 혁신 때문에 전신마비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압박이죠. 무서운 건 기회를 놓치면 어쩌나가 아니라, 우리가 혁신하는 동안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이 파괴되면 어쩌나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노베이터의 딜레마’다.
미디어 기업은 모두 ‘디지털 물결이 어디로 향하며’, ‘어떻게 거기에 올라타야 할지’ 예측하려 한다. 구글에 관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식욕이 왕성하다는 점. 샌프란시스코의 힐튼 호텔에 모인 1,500명의 막강한 구글 판매직원을 지켜본 후, 나는 호텔 회의실에서 에릭 슈미트를 만났다. 구글의 성장 전략을 말해보라고 하자, 그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솔직하게 말했다. “대규모 미디어 회사는 하나같이 유통 회사 겸 컨텐트 회사에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들과 유통 면에서 경쟁하고 있죠.”
구글은 인쇄든, 텔레비전이든, 라디오든, 인터넷이든 어떤 유통 플랫폼에서나 광고를 판매하는 대행사가 되려고 한다. 광고주들에게 그는 ‘우리를 활용하라’고 권유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거대 기업들의 내부 판매직원들을 일부 대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 사람들은 하는 일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요. 자동화되지 않았을 뿐이죠. 그래서 궁극적인 목표는 다시 말하지만, 이 판매 기능의 일부를 자동화로 대체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구글은 이런 기존 미디어 회사들의 기능을 ‘탈중개화’할 것인가? 슈미트는 이 단어를 반박하면서도, 결과는 인정했다. “탈중개라는 말은 적절한 단어가 아닙니다. 더 나은 판매 기술이라고 해야겠죠.”
그는 휴대전화가 ‘그리 크지 않은 목표물’이라고 생각했다. 휴대전화 플랫폼에 진입하려면 막대한 이용료를 지불해야 할 뿐 아니라 전화 회사에 통제권을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구글에게 다가올 최대의 기회는 유튜브였다. 유뷰트가 컨텐트 회사가 되려고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는 “그것(유튜브 광고 모델)이 통한다면 1950년대 CBS가 했던 것과 비슷한 규모의 사업이 될 겁니다. 컨텐트와 수익모델을 둘 다 만들어내는 거죠.”
세르게이 브린은 이 대담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구글이 ‘실험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혁신하려는’ 의지가 있기에, 계속해서 남다른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식욕이 넘치는 회사는 비대해질 소지가 있다. 마크 앤드리슨은 구글이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며,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앤드리슨은 또 디지털 시대에는 기술이 전투 환경을 바꾼다고 믿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다. 뉴욕 대학 교수 클레이 셔키(Clay Shirky)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라는 도발적인 책에서 지적하듯, 1940년에 독일은 ‘대중들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것만큼 불패의 세력이 아니었다. 독일은 파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프랑스보다 군대도 작고 탱크도 열악했다. 그런데 어떻게 독일의 기습이 성공했는가? 독일 탱크에는 프랑스 탱크에 없던 기술, 즉 ‘무선통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라디오 덕분에 전차부대 사령관들은 기밀을 공유하면서 빠르게 결정했고, 프랑스 사령관들이 가만히 서서 추측하는 동안 조화롭게 움직였다. 셔키에 따르면, 만약 프랑스에 무선통신이 있었다 하더라도 독일에는 또 다른 강점이 있었다.
“프랑스는 탱크를 보병과 동행하는 이동 플랫폼으로 보았다. 반면 독일은 탱크가 새로운 전투 방식, 급습에 적절하다는 점을 이해했다. …” 독일은 기술 때문에 우위를 점했지만, 우월한 전략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제13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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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켄 올레타 (Ken Auletta)
뉴요커 수석 칼럼니스트. ‘20세기 100명의 기자’로 뽑힌 가장 존경받는 칼럼니스트이자, 빌 게이츠, 루퍼트 머독, 테드 터너, 빌 클린턴 등 정재계 거물들을 직접 독대해 적나라한 심층 분석 기사를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저널리스트 중 하나다. 2001년 테드 터너에 대한 기사로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를 수상. 1992년 이후 를 통해 '통신의 역사'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는 총 13주에 걸쳐 뉴욕과 팰러앨토를 오가며, 구글의 경영회의와 미팅, 컨퍼런스 등에 동석해 경영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에릭 슈미트를 비롯한 150여 명의 구글 내부 임직원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리고 지금도 구글플렉스를 드나들며 협력과 경쟁의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쟁사와 재계 주요인사 150여 명을 추적해 심층 인터뷰했다. 그렇듯 3년여에 걸친 취재 끝에 『구글드』란 저서를 썼다. 지은 책으로는 『세 마리의 눈먼 쥐(Three Blind Mice)』, 『세계전쟁 3.0(World War 3.0)』, 『하이웨이 맨(The Highwayma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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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우열
영어 전문 번역가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평이하게 취직하여 생활하다가 뒤늦게 번역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번역가 지망생을 위한 사이트 ‘주간번역가’ 카페지기, 번역 전문 편지 ‘주간번역’의 발행인, 독자와 번역가가 함께하는 책 이야기 ‘왓북’ 공동 운영진 등 번역에 관련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시크릿』을 비롯해 『몰입의 재발견』, 『기분 좋게 살아라』, 『평전 마키아벨리』, 『위대한 발견의 숨겨진 역사』, 『시크릿 다이어리』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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