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매트리스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있어. 나란히가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네 관자놀이를 흐르는 동맥의 맥박이 내 뺨에 느껴져. 너의 머리카락이 내 코를 스치지만 간지럽진 않고, 그저 샴푸 향과 체취만 전해질 뿐이야. 우린 몇 분, 아니 몇 시간을 거의 꼼짝 않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숨만 얕게 쉬고 있어. 네 눈은 감겨 있고, 내 눈은 열린 창을 올려다보고 있어. 창으로는 구름 하나 없는 하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늘 한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여.
이 순간 알고 싶은 거라곤 지금 아침이 밝아오는지, 아님 저녁이 어두워오는지, 단지 그뿐이야. 피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신이 맑지도 않고, 몸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먹거나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지도 않아. 너와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도 없고, 널 포옹하고 싶지도 않아. 난 자유야. 무엇을 향해 자유로운 게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거야, 그렇지만 외롭지 않아…
너와 나, 우리 두 사람을 생각하면 내 눈앞에서 바로 이런 영상 필름이 돌아가. 이 영화를 보면 영화에 출연한(연기하고 있다는 말은 맞지 않아) 내 모습도 보여. 지금의 나라는 여자가 아니라 몇 년 전의 더 젊고, 더 예쁘고, 거의 언제나 너와 함께 있던 나.
이미 약간은 빛바래고 여기저기 긁힌 이 필름은 도로 되감기지는 않아. 빨리 돌리거나, 마음에 드는 시퀀스들만 선택해 그 장면에 멈춰 있게 할 수 있을 뿐이야. 전화벨이 울리거나 우편배달부가 벨을 누르는 바람에, 이 환영이 전부 날아가버릴 때까지 말이야. 어떨 때는 무슨 방해를 받아서가 아니라, 오늘은 더 가깝고 내일은 더 먼 잠의 기슭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 환영이 사라지기도 해.
영화가 계속될수록 사건은 점점 줄어들어. 이 영상을 너무 많이 돌려 닳고 닳아 버벅거리는 옛날영화나 TV영화와 비교하기는 좀 뭣해. 내 망막 위로 연이어 깜빡이며 지나가는 이 영상들은 그리 선명하지 않아 서로 엇비슷해 보이는 슬라이드필름에 가까워. 이 필름의 순서는 돌릴 때마다 달라져. 언제, 얼마나 자주 눈을 감았다 뜨고 또 감는가에 달려 있지… 구름도 별도 없는, 어스름한 여명 속 창문만 한 하늘 한 조각, 적신호처럼 붉은 천이 덮인 매트리스가 놓인 내 방, 움직임 없는 우리의 육체, 베를린 거리의 우리, 조의 사무실에 있는 너, 낡은 잡동사니 상자 앞에 앉아 있는 나… 아니 이런 것들보다 내 상상력의 힘이 이 영상 하나하나와 그 전체를 만들어가는 거야. 네 머리카락의 체취, 네 관자놀이와 내 뺨의 끈끈한 온기, 우리의 엇박자 숨결, 그리고 자유를 기약하는 저 무욕의 상태. 이런 것들이 없다 해도 그 영상을 영화에, 또 슬라이드필름에 비유할 수 있는 건 내 상상력 덕분이야. 내가 느꼈던, 그리고 새로 느끼고 있는, 자유를 기약하는 저 무욕의 상태. 난 그걸 처음 느낀 이후부터 행복이라 부르고 있어. 사람을 현혹시키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행복, 행복에 대한 그 모든 기억을 가지고 다시 내게로 되돌아오는 행복.
우리 영상이 찍히고 있던 시간, 우리 영화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던 그때, 너하고는 좀처럼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던 너의 느낌에 대해 물어봤어야 했을까? 넌 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눈길, 표정, 몸짓, 가끔은 페니스를 이용해 육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을까? 북극곰처럼 자부심에 찬 너의 표정, 다른 데 정신이 팔린 듯한 너의 무관심, 가끔 드물게 나타나는 너의 활동성 혹은 사랑의 발작, 그런 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감히 네게 물은 적이 있었던가? 그런 걸 알고 싶을 때면, 사실 알고 싶을 때가 참 많았지만, 난 여자들이 하는 그 모든 단순한 물음 가운데 가장 전형적이라 할 “자기, 무슨 생각 하는 거야”라는 문장으로 내 속내를 감추었어. 그러면 여전히 말을 아끼던 너는 전형적인 남자의 방식대로 거의 언제나 “아무 생각도 안 해” 또는 “뭐 특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냐”라고 대답했지.
너는 확실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었어. 늘 말이 없었고,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말을 삼갔다는 거야. 기분이 좀 나을 때면 표어나 선전 문구, 요점을 콕 집어낸 문장으로 말을 대신하던 넌 아주 두꺼운 환상소설을 즐겨 읽었지. 너는 입보다는 눈과 손으로 말하는 데 더 능숙했어. 너도 나처럼 숙련 식자공이었으니까.
어제 저녁,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내 주둥이에 맛 좋은 음식을 넣었다. 자유롭다는 건 참 멋진 일이고, 태양은 아주 따뜻했다. 하지만 취미는 멀리하고 있다, 아주 철저히. 내 계획은 돈을 벌고, 가라테를 하고, 머물 데를 찾는 거다.
네가 직접 쓴 문장을 왜 너한테 다시 인용하고 있는지 궁금하겠지? 그건 우리가 함께하는 동안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날짜 없이 내용만 적힌 너의 노트가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갔기 때문이야. 그리고 내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정확히 여든아홉 문장을 네가 기억이나 하는지, 만약 기억한다면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해. 내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아니 바로 그 때문에 난 이 문장들을 꼭 시간순으로는 아니더라도 한 문장 한 문장 또박또박 우리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네게 되풀이할 생각이야.
오, 해리, 만약 누군가가 네 노트를 손에 넣어 호기심에 읽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너의 삶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네 삶이 바로 내 인생이었고, 지금도 내 인생인, 그런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었어. 아니면 뭐였을까. 아마도 운명, 뭐 그런 거겠지. 우린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우리가 각자 길을 가고 있던 그날, 넌 혼자가 아니었고, 난 내가 태어나 서른아홉 살까지 살았던 곳을 떠나온 지 채 일 년도 안 된 처지였어.
나와 관련된 1987년 4월 17일의 장면들은 언제든 기억할 수 있어. 적어도 그 처음 몇 시간은 너하고도 상관있는 장면이고. 매트리스 위 우리 둘의 목가적인 풍경과 달리 이날의 장면들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점점 더 세밀해져서 바로 지금, 거의 펼쳐놓은 그림처럼 또렷하게 눈앞에 보여. 실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마치 내가 지어낸 것처럼, 내 강력한 그리움이 불러낸 환상의 결과처럼 말이야.
지하철이 놀렌도르프 광장에 섰어. 지하철에서 내리자 케밥 노점, 카페, 만물상점, 꽃집으로 빙 둘러싸인 인적 드문 널찍한 공간이 내 앞에서 경배하듯 고개 숙였어. 그 모습에 난 다시 한번 기뻐했지. 오전에 싸구려 지갑과 잔돈을 잃어버렸지만, 마리엔펠더 수용캠프를 거쳐 서베를린에 입성한 동독 난민에게 지급되는 일 년 무료승차권은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어 다행이었거든. 봄의 태양은 하늘 높이 떠 환하게 번쩍거리는 백색 광선을 광장 위에 던져주고 있었지. 비 없는 후텁지근한 해빙기를 지난 후라서 놀렌도르프 광장 역시 천진하고도 무기력하게 느껴졌어. 형광녹색 아노락 재킷을 걸친 왜소한 소녀가 왼쪽에서 내 시야로 뛰어 들어오네. 보조가방을 등에 멘 품새로 보아 학교를 빼먹을 생각은 아닌 게 분명한데.
신문가판대 옆 진열대에서 아직 날짜가 남아 있는 잡지 <빙고-BZ>를 집어들었어. 돈 주고 산 걸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누군가가 따로 놓아둔 것 같았는데,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지. 당시 난 화끈하고 때로 아주 웃기는 제목의 가십과 귀신 이야기를 즐겨 읽곤 했거든.
나는 담배를 물고 신문을 뒤적이며 원래 목표물을 찾아 계속 걸어갔어. 그즈음 내가 좋아하던 바이에른 출신 사내의 집에 욕조를 사용하러 가는 중이었거든. 그때 너와 네 짝꿍, 두 녀석이 모퉁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너희는 행동이 이상했는데, 껄렁대는 것이, 그래, 꼭 미친 것 같았어. 마치 줄을 끊고 달아나 하룻밤 남의 집 창문 밑에서 자고 일어난, 아직은 그리 배가 고프지 않은 두 마리 개 같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동공의 번쩍거림이나 서로 장단이 척척 맞는 듯한 광기로 볼 때, 얼마 안 있어 그 자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리라는 게 내 눈에도 뻔하게 보이더군.
너희는 멋진 사내였어. 둘 다. 넌 파란 눈에 창백한 피부, 잿빛 금발이었고, 네 친구는 올리브색 피부에 갈색 곱슬머리, 그리고 선글라스와 은귀고리를 하고 있었지. 너희의 널찍한 어깨 위에 팽팽하게 걸린 스웨터가 노동자복지협회 헌옷센터 출신이라는 걸 알아볼 눈이 당시 나에겐 없었어.
난 화장도 안 했고, 튼실한 몸에 행거라고 불리는 넉넉하니 허리끈도 없는 통자루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너희가 나한테 그랬듯 내 꼴 역시 너희 눈에 띄었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너희도 멈춰 섰겠지, 넌 내 왼쪽에, 네 친구는 오른쪽에.
“어이, 예쁜이, 어디 가는 거야?” 느릿느릿 또렷한 발음으로 말하던 너, 난 한순간 네가 맥주 서너 병은 벌써 해치웠나보다 싶었어. 그렇지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너의 숨결에서는 시큼한 술내 대신 뭔가 다른 냄새가 풍겼고, 그게 웬걸, 나한테 코코아 생각을 간절하게 불러일으키더라구. 네 말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예쁜이라는 말이 효과가 없진 않았을 테고, 게다가 너의 그 아리송하게 느릿하면서 굳이 발음을 더 잘해보려는 어설픈 말투에서, 어쨌든 네가 틀림없이 베를린 사람이라는 것, 동독에서 말문이 트인 놈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 그날 난데없이 너희 품속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그때까지 베를린장벽 이쪽의 서베를린에서 너희처럼 젊고, 베를린 남자에 대한 상투적인 기대에 딱 들어맞는 재미있는 도시 사내를 만난 적이 없었어. 마리엔펠더 캠프를 떠난 뒤 몇 달 동안 좀 알게 된 몇 안 되는 사람들은―욕조를 사용하게 해주기로 한 바이에른 사내처럼―모두 남독 출신이었는데, 이들은 서베를린이라는 ‘독자적인 정치체’를 일종의 중간 캠프 정도로 생각하더라구.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는 ‘건너편’ 우리 동독에서 말하듯 ‘연방제 구호’나 ‘깃발로’라는 말 따위는 아예 합법적으로 무시해도 되는 것 같았어. 이 남독 사람들이 나 같은 ‘외국인’과 자신들을 본질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 역시 뭔가로부터 도망쳐왔다는 것, 그리고 서베를린 주민의 절반은 북독민, 남독민, 서독민, 동독민과 터키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중국인, 프랑스인,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내가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뒤였어.
서베를린에서 처음 산 책은 화폐개혁 이후 손에 쥔 새 돈으로 어느 술집에서 구입한 해적판이었는데, 책 표지에 ‘1986년 12월 초’라고 적어놓았더랬지.
기억 속에 동베를린의 지형도를 담은 채 베를린 서부를 가로질러 달리고 난 다음에야, 나는 이 도시가 진짜로 하나의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쪽에 남아 있는 집들은 전후에 들어선 집들과 닮았다. 동서 베를린은 ‘별수 없이 골라든 선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 내용물이 별로 입맛을 당기지(서독 사람이라면 ‘맛있지’라고 표현하겠지) 않아 집어드는 사람 없이 몇 주나 그대로 굴러다니는 슈퍼마켓 자체 브랜드의 과자상자 같다. 플라스틱 과자상자 속에 쪼그리고 앉은 초콜릿, 오래되어 잿빛 피막이 생겼거나 한번 깨물었다가 “에이” 하며 도로 내려놓은 초콜릿, 오른쪽에는 속을 넣은 초콜릿, 왼쪽에는 금박으로 돌돌 말아놓았지만 껍질을 까면 다른 초콜릿이랑 털 한 올까지―초콜릿에 털이 있다면―완전히 똑같은 그런 초콜릿 말이다.
그런데 그 책에 책갈피로 꽂아둔 1987년 3월 14일자 달력에 내가 이렇게 메모해놓았더라.
나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남자, 저 여자, 그리고 저 남자, 저 여자… 언젠가 그들도 나처럼 이곳으로 온 거겠지. 계속 가기 위해 혹은 다시 가기 위해. 늦어도 막차는 타야겠다고 하면서. 하지만 기차는 이미 오래전에 끊겼고, 다시는 출발하지 않았지. 그때부터 우린 정거장에서 여행 중이지, 그 이름 서베를린 ‘동물원역’.
“난 해리, 여긴 벤노.” 꾸벅 인사가 아니라 무릎만 살짝 굽히면서 넌 말했어. 난 마지못해 “난 조야”라고 답했어. 여기 서쪽에서 매번 내 소개를 할 때마다 바로 터져나오던 킥킥 웃음소리가 나올까봐 두려워하면서. 사람들 대부분이 “조야? 아, 그래. 그다음은? 성은 콩이야 소스야?”라고 했거든. 그럴 때면 나는 내 이름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책임이 있는 건 우리 엄마라고 대거리했지. 엄마가 ‘첫 출산’의 그 ‘힘든 순간’에도 독일 파시스트에게 처형당한 자신의 아이돌인 빨치산 여전사 조야 코스모뎀얀스카야를 떠올리며 내 ‘인생길을 밝게 비춰줄 별’로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그러면 더 재미있어하며 난리도 아니었어. 그다음부터는 두 번 다시 그런 설명을 하지 않았지.
그런데 너희는 웃어대지 않았어. 대신 이렇게 말했지. “그래, 조야, 어때? 우리 코코아 한잔 마시러 갈까?”
네 눈길에 응수하던 나의 눈길에서 넌 알아차렸을 거야. 속내를 들킨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네 숨 냄새가 내 마음속에 일으킨 생각을 넌 어떻게 알아냈을까? 너희의 등장이 날 불안하게 만든 데다 그중 한 명이 내 생각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진짜 섬뜩했지만, 한편으로는 흥분되기도 했어. 왜냐하면 그 한 명이 바로 너였으니까. 난 팔을 내저었어. 마치 그렇게 해서 지구를 떠날 수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런 수줍은 방법으로라도 내가 그렇게 골볐니 하고 말해주려고 말이야.
무언가가 날 네게로 끌어당겼고, 그와 동시에 또다른 무언가가 끌려가지 말라고 경고했어. 경험에 바탕을 둔 편협한 마음의 관성이 보내는 경고였지. 언젠가 할머니가 말씀하셨듯, 대부분의 모험이란 결국에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하룻밤에 불과하다는 그 오랜 경험! 게다가 크리스토프의 욕조가 날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날 사로잡아 네 목에 얼씨구나 매달리게 할 그 막연한 욕구를 따르기에는 기분이 그리 산뜻하지가 않았어. 아님 그 욕구는 배꼽을 통해 내 몸속으로 기어들었던 걸까, 횡격막 뒤에 모였다가 확 퍼지면서 내 기분을 올려주는 가스처럼?
안 돼, 하고 난 대답했어. 약속이 있다고.
“오케이.” 지금껏 아무 말도 없던 네 동행이 다행이라는 티를 팍팍 내며 네 소매를 어찌나 거칠게 잡아끌던지, 네 트리코 천*으로 된 옷에서 무슨 찌지직 우는 소리가 날 정도였어. 다르게 말하면, 넌 그 자리에 꿈쩍도 않고 서 있었다는 거지. 넌 그냥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난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싸움질하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했어. 네게서 눈길을 거두지 못한 채, 여전히 네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달리기 시작했던 거야. 그러곤 소리쳤어. 어쩌면 나중에 같이 갈지도 몰라.
그러자 넌 네 동료의 손길을 뿌리쳤고, 그 바람에 옷소매가 종잇조각처럼 찢어지고 말았어. 넌 쫓아와 날 따라잡았어. 그리고 단호하게, 거의 협박하듯 말했어. “좋아, 세시다. 바로 여기야.” 나는 지나가던 여자와 부딪치는 바람에 앞을 보고 달려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러자 너도 더이상은 쫓아오지 않았어.
(제1장, 2장 전문)
---------------------------------
작가 소개
카챠 랑게-뮐러 (Katja Lange-Muller)
1951년 동베를린에서 동독 지도층의 딸로 태어났다. 청소년 때부터 반사회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던 카챠 랑게-뮐러는 숙련 식자공 직업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신문과 TV 방송국 보조원으로 일한 뒤, 라이프치히 대학의 요하네스 베허 문학연구소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1984년 서독으로 이주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늦깎이 작가로 출발했지만, 식자공, 정신병원 간호조무사, 출판사 편집자, 몽골에서 양탄자공장 노동자, 베를린에서 동독 탈주민으로 겪은 파란만장한 삶의 경험을 날카로운 비평적 감식안과 독특한 표현력으로 녹여내 인간 삶의 구체성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가, 20세기 말 동베를린의 역사와 기억을 멜랑콜리하고도 유머러스하며 풍자적인 시각으로 포착해낸 작가로 주목받았다. 이후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1986), 베를린 문학상과 알프레트 되블린 문학상(1995), 마인츠 시 작가상(2002), 카셀 문학상(2005) 등 수많은 상을 휩쓸며 독일 현대문학계의 거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주요 작품으로 『고통―삶에서처럼』(1986), 『카스퍼 마우저』(1988), 『마지막에』(2000), 『프로이센의 마지막 개척단원』(2001), 『조용한 우편물』(2001), 『달콤...한 딱정벌레와 신맛 나는 딱정벌레』(2002), 『집오리, 여자와 진실』(2003), 『니카라과의 개』(2003) 등이 있다.
--------
역자 소개
배정희
학부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후 독일로 유학, 괴팅겐 대학에서 독문학, 사회학, 중세독일학으로 석사학위를, 같은 대학에서 근대성과 독일 리얼리즘문학 연구로 독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연세대, 한양대, 강원대 독문과에서 강의했으며,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Post-Doc.)을 마친 뒤 현재 해양대 유럽학과에 재직 중이다. 폰타네, 카프카, 괴테, 쥐스킨트 등에 관한 논문을 비롯해 가상현실과 문학적 픽션, 상호문화적 소통과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상호문화성 연구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바실리 칸딘스키의 『청기사』, 게오르그 짐멜의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