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에서 규정한 은퇴 연령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았을 무렵, 시 소속 농기계 수리제작창에서 사십삼 년간 일한 딩스커우(丁十口)는 그만 강제 퇴직을 당했다. ‘열 십(十)’ 자를 ‘입 구(口)’ 자 안에 놓으면 ‘밭 전(田)’ 자가 되고, ‘정(丁)’ 자 역시 힘세고 튼튼한 장정이란 뜻이다. 힘세고 튼튼한 장정이 논밭을 가지면 풍족한 의식에 좋은 세월 보내기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거야말로 농민 출신인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품은 가장 아름다운 꿈이었으며 둘도 없는 소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딩스커우의 운명은 논밭을 소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로 고되게 일하며 농민의 행복한 생활과 동떨어져 사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누리는 행복한 생활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 걸고 일해야만 했다. 지난 몇십 년 이래, 과도한 체력노동으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허리뼈가 구부정해져, 나이가 육십도 안 되었는데 얼핏 보면 칠십 고개를 넘나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 그는 날마다 그래왔듯 1960년대에 생산된 ‘다궈팡(大國防)’ 상표가 붙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시꺼멓고 견고한 자전거, 멋없이 무겁기만 한 구식 고물 자전거는 멋들어진 최신형 승용차들이 냇물처럼 흐르는 차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자가용을 탄 청춘남녀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쏘아보다가 마치 자기네 화려한 고급 승용차가 우왕좌왕 치닫는 구식 탱크와 충돌이라도 할까봐 그의 자전거를 멀찌감치 피해 나갔다. 공장 대문에 들어선 그는 홍보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고함 소리와 함께, 몇몇 여공의 목소리가 마치 닭장 안의 암탉이 알을 낳기 직전 꼬꼬댁하고 비명 지르듯 아주 높게 울려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는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가장 우려하던 사태가 기어코 벌어진 것이다.
그는 자전거를 버텨 세워놓고 앞뒤좌우를 빙 둘러보다가, 정문을 지키는 친(秦) 영감과 눈짓을 교환하고, 두어 번 한숨을 내쉰 끝에 어슬렁어슬렁 군중 쪽으로 걸어갔다. 서글픈 생각이 다소 들었으나 결코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 전 공장 측이 노동자를 대규모로 감원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나서, 그는 공장장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다. 풍격이 소탈하고 시원스런 이 중년사내는 그를 깔끔한 청색 양가죽 소파에 모셔 앉힌 다음, 여비서를 시켜 차 한 잔을 따라 올리게 했다. 그는 손바닥이 데일 듯이 뜨거운 찻잔을 받쳐 들고 코끝으로 재스민의 짙은 향기를 맡아보면서 마음속 가득히 감격스런 정을 느낀 나머지, 얘기하려던 말이 입언저리에 맴돌기만 할 뿐 나오지 못했다. 공장장이 멋있게 차려입은 양복을 조심스런 손길로 쓸어내리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맞은편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딩 사부님, 당신께서 무슨 의도로 찾아오셨는지 압니다. 공장이 해를 거듭해 손실을 보는 형편이니 감원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당신은 성급(省級) 노동자의 모범 원로이므로 설사 이 공장에 한 사람만 남게 되더라도, 그것은 바로 당신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밀치락달치락 북적대면서 홍보게시판 앞으로 몰려들었다. 딩스커우는 사람들의 뒤통수 틈새로 게시판에 붙은 종잇장을 보았다. 커다란 붉은 종이 석 장에는 새까만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그의 이름은 해마다 몇 차례나 이렇게 붉은 종잇장에 큼지막하게 적혀 왔지만, 그것은 그가 ‘앞서가는 선구적 노동자’라든가 모범노동자로서 영예로운 칭호를 얻을 때의 일이었다.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그의 몸뚱이는 한창 젊은 노동자들에게 떠밀리고 이끌리는 바람에 자꾸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여인 하나가 느닷없이 목을 놓아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완제품 창고보관원 왕다란(王大蘭)의 울음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원래 펀치프레스 분야의 전문기술자였는데, 작업 도중 천공기에 한쪽 손을 다친 데다 나중에 괴저 증세까지 겹쳐 부득이 팔뚝 하나를 절단하고 나서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공장 측은 ‘공무 중 부상’으로 불구가 된 노동자를 돌본다는 규정에 따라 그녀를 창고 직원으로 전환 배치했던 것이다.
2
흰색 체로키 한 대가 클랙슨을 울리며 공장 대문에 들어섰다. 게시판 앞에 웅기중기 둘러서서 감원대상자 명단을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지프는 아득히 머나먼 만 리 길을 혼자 달려온 것처럼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와글와글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소리가 뚝 그치고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멍청한 기색을 띠었다. 체로키 지프도 멍한 기색으로 클랙슨 소리를 뚝 그치고 숨차게 달려온 엔진 소리만 헐떡헐떡하더니, 차 꽁무니 배기관에서 연기만 풀풀 내뿜었다. 마치 위험을 예감한 들짐승처럼 헤드라이트의 커다란 회백색 두 눈알을 부릅뜬 채 놀라 두려운 기색으로 군중을 바라보더니, 곧장 대문 쪽으로 후진해 나갔다. 노동자들이 거의 동시에 으르렁대며 때맞춰 발걸음을 옮기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체로키를 에워쌌다. 차는 앞뒤좌우로 몇 차례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면서 포위망에 부딪쳐보았으나 이내 꼼짝달싹 못하게 되고 말았다. 키가 훤칠하고 몸집이 우람하며 얼굴이 검붉은 젊은 녀석이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차 문을 거칠게 당겨 열었다. 딩스커우는 그가 자기 도제인 뤼샤오후(呂小胡)라는 것을 당장 알아보았는데, 아무튼 그는 왁살스런 손길로 판매책임자인 부공장장을 차 안에서 끌어냈다. 욕설이 와르르 일더니 침방울이 아침 햇빛 아래 반짝거리며 빗발처럼 부공장장의 얼굴에 떨어져 내렸다. 하얗게 질린 부공장장은 자그만 얼굴에 반들거리는 머리카락을 콧마루까지 늘어뜨린 채 양손을 맞잡고 허리를 구부려 우선 뤼샤오후에게, 그다음에는 주변을 에워싼 군중에게 차례차례 돌아가며 읍례를 했다. 입술을 연신 달싹거려 뭐라고 얘기하는 모양이었으나, 그 말은 노동자들의 시끄러운 함성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딩스커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그 얼굴에 떠오른 가련하다고밖에 형용할 수 없는 기색만 볼 수 있었다. 그 표정이야말로 남의 물건을 훔치다 현장에서 붙잡힌 좀도둑의 표정과 다를 바 없었다. 이어서 딩스커우는 자신의 도제 뤼샤오후가 부공장장의 목에 걸린 넥타이,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쓰는 베일처럼 빛깔이 산뜻하고 아름다운 넥타이를 비틀어 잡고 땅바닥에 사납게 메다꽂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부공장장의 모습은 동굴 속에 들어간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분노한 군중의 인파에 파묻혀버린 것이다.
지프차 두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막무가내로 들이닥쳤다. 딩스커우는 그 바람에 놀라 심장이 북을 두드리듯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얼른 뺑소니를 치려고 했으나 두 다리가 얼어붙었는지 단 한 발짝도 옮겨 뗄 수가 없었다. 경찰차는 대문에 들어서지 않고 공장 바깥 대로변에 멈춰 섰다. 곧이어 경찰차에서 경찰이 한 사람에 이어 또 한 사람씩 빠져나왔다. 넷은 뚱뚱보, 셋은 말라깽이, 모두 일곱 명이었다. 경찰관 일곱 명은 진압봉, 수갑, 휴대용 무전기, 전동메가폰 장비를 갖추고 차분하게 몇 걸음 나서더니 일제히 멈춰 섰다. 그것으로 공장 대문 밖에 대충 가지런한 일자 형태로 하나의 전선을 이룬 셈이다. 보아하니 대문을 봉쇄한 모양인데, 자세히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나이 지긋한 경찰이 전동메가폰을 들고 노동자들에게 해산하라고 몇 마디 고함치자, 노동자들도 순순히 흩어졌다. 찍어 넘어뜨린 수수밭에서 늑대 한 마리가 뛰쳐나오듯, 노동자들이 흩어지기 무섭게 그 자리에 판매책임자 부공장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땅바닥에 납죽 엎드린 채 양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쥐고 있었다. 엎드린 자세 그대로 펑퍼짐한 궁둥이를 번쩍 치켜든 품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듯 위험에 맞닥뜨린 타조가 머리통만 덤불에 파묻고 제 궁둥이는 돌아보지 않는 격이었다. 메가폰으로 경고한 경찰이 곁에 있는 동료에게 메가폰을 넘겨주더니 앞으로 걸어 나와 세 손가락으로 부공장장의 양복 깃을 잡았다. 일으켜 세우려는 시늉이었다. 그러나 부공장장의 몸뚱어리는 필사적으로 땅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렸다. 손가락으로 잡은 양복 깃과 몸뚱어리 사이에 텐트같이 생긴 공간이 생겨났다. 딩스커우의 귀에 부공장장이 외쳐대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들, 나를 원망하지 말아요. 난 지금 하이난(海南) 성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라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번 일로 날 원망할 수는 없다니까요…”
경찰은 옷깃을 잡은 손을 풀어주지 않고 가볍게 그의 넓적다리를 툭 걷어찼다.
“어서 일어나지 못해!”
그 한마디에 부공장장이 발딱 일어섰다. 그리고 자기 양복 깃을 붙잡은 경찰의 어깨너머로 군중을 보더니 온통 가래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돌연 길바닥의 황톳빛으로 바뀌고 말았다. 두 다리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저절로 맥이 풀려 스르르 주저앉았으나, 경찰이 옷깃을 부여잡은 덕분에 그는 또다시 앉은뱅이 노릇만큼은 면할 수 있었다.
나중에 공장장이 붉은 싼타나를 타고 왔다. 시 정부 공업을 관리하는 마(馬) 부시장도 검정색 아우디를 타고 왔다. 공장장의 얼굴에 진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눈빛으로 노동자들을 향해 깊숙이 허리 굽혀 세 번이나 큰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허리를 곧게 펴고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먼저 판매시장의 비정함부터 원망한 다음, 이어서 자신의 무능함을 솔직히 털어놓았으며, 영광스러운 역사를 지닌 공장 전체가 해를 거듭하여 손실을 보고 있다는 점, 이제 조업을 일시 중단하지 않으면 그 손실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장 문을 닫게 되었다는 점을 피력했다. 마지막에 가서 그는 감정이 충만한 어조로 ‘라오* 딩’, 곧 딩스커우 동지를 거론했다. 그는 라오 딩의 영예로운 업적을 낱낱이 열거하고, 특히 라오 딩은 앞으로 한 달만 지나면 정년으로 은퇴할 나이이긴 하나 그 역시 해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라오 딩은 그제야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홍보게시판에 큼지막하게 붙은 붉은 방문(榜文)을 보았다. 그리고 성씨의 필획 순으로 나열된 퇴직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 석 자가 가장 앞머리에 놓인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어린애가 엄마를 찾듯 여러 사람들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하나같이 잿빛으로 뿌옇게 흐려진 애매모호한 표정의 얼굴뿐이었다. 그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고 땅바닥에 쭈그려 앉았다가 너무 피로해서 아예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몇 분쯤 앉아 있다가는 실룩거리던 입을 쩍 벌리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 울음은 여공들의 울음소리보다 감염력이 더 커서, 침통한 기색으로 눈물만 글썽거리던 노동자들이 모두 덩달아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부시장이 손을 내밀어 진흙투성이가 된 그의 한쪽 손을 부여잡았다. 그는 남은 손 하나를 재빨리 내뻗어 부시장의 손을 맞잡았다. 부시장도 하릴없이 비어 있던 손을 즉시 내뻗어 그 손까지 잡아주었다. 그들 두 사람의 네 손이 하나로 단단히 뭉쳤다. 그는 부시장이 친근하게 건네는 말을 들었다.
“라오 딩 동지, 내가 시 위원회와 시 정부를 대표해 당신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바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지더니, 또 한 차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 부시장이 말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시 정부로 날 찾아오세요.”
시 농기계 수리제작창의 전신은 악질자본가가 소유했던 룽창(隆昌) 철공소로, 당시 주요생산품은 부엌칼과 낫이었다. 공사합영(公私合營) 조치가 취해진 후, 그것은 훙싱(紅星) 철공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1950년대에 떠들썩하게 명성을 드날린 ‘붉은 별’ 상표의 두 바퀴짜리 쌍날 보습을 생산했으며, 1960년대에도 역시 ‘붉은 별’ 상표가 붙은 면화 파종기를 생산했고, 1970년대에는 농사용 분무기와 소형 콤바인을 생산했는가 하면, 1990년대에는 독일에서 최신 기계 설비를 한 세트 들여와 양철 깡통까지 생산하면서 공장 이름도 실라쓰(西拉斯) 농기계생산그룹으로 바뀌었으나, 사람들이 여전히 습관적으로 부르던 명칭은 역시 농기계 수리제작창이었다. 그날 마 부시장과 악수를 열렬히 주고받고 나서부터 라오 딩은 행복하면서도 심한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한창 젊은 시절 마누라의 배 위에서 일을 끝내고 내려올 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경찰, 시장, 공장장 일행과 맞서는 동안 초조와 불안감에 들떴던 노동자들도 점차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부지불식간에 동료 노동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의 휘황찬란한 모범으로 내세워졌다. 그는 공장장이 노동자들에게 연설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자질로 보나 경력으로 따져보나, 당신들 가운데 어느 누가 라오 딩보다 노련하겠는가? 공헌도로 따져보더라도 당신들 가운데 어느 누가 라오 딩보다 더 공이 크겠는가? 이런 라오 딩도 소동을 부리지 않고 공장 측의 배려에 순순히 복종하는데, 당신들은 뭐가 더 잘났다고 떠들썩하게 소동을 부린단 말인가?” 마 부시장 역시 끼어들어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했다. “동지들, 나는 당신들이 딩 사부에게 배우기를 희망하오.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시 정부 측에 쓸데없는 골칫거리를 더 늘려주지 말았으면 좋겠소. 시 정부는 적극적으로 취업 기회를 만들어 모두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할 것이오. 그러나 취업 기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모두 스스로 살아갈 방도를 강구하시오. 자력갱생은 꾀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도움받기를 기다리거나 국가에 의존하거나 요구하지 말아야 하오!*” 부시장의 말씨
가 격앙되었다. “동지들, 우리 노동자계급은 맨손으로 하늘과 땅의 자리를 바꿔놓을 수 있는데, 설마 하루 먹을거리로 그까짓 만두 서너 개쯤 벌어들이지 못한단 말이오?”
부시장은 검정색 아우디를 타고 떠나갔다. 공장장은 붉은색 싼타나를 타고 떠나갔다. 옷매무새가 헝클어진 부공장장 역시 흰색 체로키를 타고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한바탕 떠들고 나서 제각기 앞으로 살아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뤼샤오후는 홍보게시판에 오줌을 흠뻑 갈겨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직도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멍청하니 서 있는 사부 라오 딩에게 한마디 던졌다.
“사부님, 갑시다. 이런 데서 멍하니 기다려봤자 밥 먹여줄 사람도 없잖습니까. 아버지가 죽으면 어머니는 딴사람한테 시집가는 법, 저마다 제 한 몸 돌보면서 살아가야지요!”
딩스커우는 대문 곁에 있는 친 영감에게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려 보이고 나서 자신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다궈팡 자전거를 밀고 공장 문을 나섰다. 잠시 후 그는 등 뒤에서 친 영감이 크게 외쳐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딩 사부,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대문 밖 한 곁에 서서, 중학 중퇴 이후 이 공장에 들어와 줄곧 정문 수위직을 맡고 있는 친 영감이 달음박질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두 알다시피 친 영감은 막강한 연줄을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퇴 후에 정문 수위 노릇을 한다든가 신문을 돌린다든가 하는 수월한 일감을 도맡아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가 라오 딩 앞에 섰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명함 한 장을 끄집어냈다.
“딩 사부, 우리 둘째사위가 성 직할 신문사 기자인데, 이게 그 명함이오. 당신이 직접 찾아가면, 그가 신문지상에 호소하여 일자리를 찾게 도와줄 수 있을 거요.”
딩스커우는 잠깐 망설였으나, 역시 손을 내밀어 그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는 친 영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페달을 반 바퀴쯤 돌렸을 때, 다리가 견딜 수 없이 쑤셔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몸뚱이는 묵직한 다궈팡 고물 자전거에 짓눌려 꼼짝달싹 못했다. 친 영감이 달려와 자전거를 옮겨놓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소, 딩 사부?” 친 영감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는 다시 한번 친 영감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자전거 핸들을 밀어가며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4월의 따사로운 산들바람이 실낱처럼 불어와 얼굴을 간질이자 마음은 텅 비고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독한 배갈을 넉 잔쯤 들이켠 듯 어딘가 모르게 머리통이 무거워지면서 두 다리가 허전해지기까지 했다. 눈처럼 하얀 버들꽃이 덩어리로 뭉쳐져 길바닥에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비둘기 한 떼가 맑디맑은 하늘을 맴돌면서 한가롭게 비상하는데, 구구대는 소리가 처량하면서도 해말갛게 귓속으로 또렷이 파고들었다. 그는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눈물만큼은 실개천처럼 두 눈에서 좔좔 쏟아져 나와 주름진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집 근처의 길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공원을 지나쳐갈 때, 공을 쫓던 사내아이가 느닷없이 그의 넓적다리에 부딪혔다. 다리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급작스레 쑤셔대고 마비되는 느낌이 들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길바닥 가장자리 턱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린 사내아이가 고개를 쳐들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왜 울어요?”
그는 소매 깃을 들고 얼굴을 훔쳤다.
“얘야, 할아버지는 울지 않았단다. 눈에 모래흙이 들어가서 그런 게지…”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넓적다리의 통증은 그치지 않아, 마누라더러 고약 두 장을 사오라고 해서 붙였다. 그래도 통증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극심해져 의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식을 두지 못한 터라, 마누라가 도제 샤오후를 찾아 데려왔다. 샤오후는 삼륜자전거로 사부를 의원까지 모셔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골절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제1장, 제2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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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모옌 (莫言)
본명은 관모예(管謨業). 글로만 뜻을 표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莫言)’이라는 필명을 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학명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수년간 농촌 생활을 하다 열여덟 살에 면화가공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로 일했다. 1976년에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했고, 해방군 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창작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단편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등단한 그는 1985년 발표한 「투명한 홍당무」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발표한 장편 『홍까오량 가족』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작품의 일부를 장이모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중국 다자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홍콩 아시아 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달빛을 베다』, 『열세 걸음』,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술의 나라』, 『풍유비둔』, 『탄샹싱』, 『사십일포』, 『인생은 고달파』, 『풀 먹는 가족』이 있으며, 많은 희곡과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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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임홍빈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후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 중국의 군사역사, 전쟁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작품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달빛을 베다』, 『손자병법 교양강의』, 『중국역대명화가선』, 『수호별전』, 『소설 공자』, 『서유기』, 『현실+꿈+유머: 린위탕 일대기』, 『의천도룡기』, 『백록원』(공역) 등이 있으며, 한국 고전군사문헌을 현대어로 국역한 『무경칠서』, 『백전기법』 등이 있다. 저서로는 『현대중국어교본』, 『독학중국어회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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