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제1장 l 노래 부르는 뇌가 탄생하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이보다 더 다양할 수 없는 온갖 음악 CD들이 놓여 있다. 끔찍한 외과수술 장면(비올라다감바와 류트에 내레이션이 들어간 「방광결석 절제술」)을 상세히 묘사한 18세기 작곡가 마랭 마레의 작품, 지나가는 사업가에게 동냥을 구하는 북아프리카 구전 시인 그리오griot의 노래, 지금으로부터 185년 전에 작곡된 복잡한 악보를 120명가량의 음악가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연주해야 하는 작품(베토벤 교향곡 9번)이 보인다. 그밖에 파일들도 수두룩한데, 태평양 혹등고래들이 독특하게 내지르는 소리를 녹음한 40분 분량의 파일도 있고, 전자기타와 드럼머신의 반주에 맞춰 연주하는 북인도 라가 음악, 주전자 만드는 법을 다함께 노래한 페루 안데스 지방의 음악도 있다. 집에서 기른 토마토가 얼마나 맛있는지 노래한 찬가가 있다면 믿겠는가?
봄에 심고 여름에 먹지
토마토 없는 겨울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땀 흘려 일군 노고는 어느덧 다 잊고
밖에 나갈 때마다 하나씩 들고 들어오네.
집에서 기른 토마토, 집에서 기른 토마토,
이것 없는 삶이 무슨 재미가 있으랴?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세상에 딱 두 개 있으니
진정한 사랑과 집에서 기른 토마토라.
_ 가이 클라크, ‘집에서 기른 토마토’
누군가에게는 이 모두가 당연히 음악으로 들리겠지만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반박할 사람도 분명 있다.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 가운데는 우리가 듣는 음악은 음악이라 할 수 없고 그저 소음일 뿐이라고 일축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정의에 따르자면 소음은 제멋대로 뒤죽박죽인 소리, 혹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소리의 집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적 짜임새와 구조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된다는 말일까? 음악을 ‘조직된 소리’라고 말한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의 유명한 정의가 바로 그런 뜻이었다. 누군가의 귀에 소음으로 들리는 것이 누군가의 귀에는 음악이라는 말이다. 그 반대도 참이다. 누군가에게는 모차르트가 음악이고 누군가에게는 마돈나가 음악이다. 프린스를 음악으로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퍼셀을 즐기는 이도 있다. 자신만의 입장에서 볼 때 상대방이 즐기는 음악은 영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 즉 소음일 뿐이다. 이 모든 소리 집합에 공통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류가 생겨났을 때부터 그저 소리가 아닌 음악에 그토록 몰입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어쩌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음악학자 데이빗 휴런David Huron의 말대로 음악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든 항상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과거에 존재했거나 현존하는 그 어떤 문화에도 음악이 없었던 적은 없고,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가장 오래된 인공물에는 대개 악기가 들어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늘 그래왔듯 음악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뇌와 문화를, 진화와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음악이 인간의 삶에서 행해 온 역할과 음악과 인간의 공진화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음악학자, 고고학자, 심리학자 모두 이 주제에 매달려 왔지만 지금껏 이 모든 분야의 지식을 한데 모아 음악이 우리 역사의 진행 과정에 미친 영향력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낸 사람은 없다. 이 책은 마치 가계도를 작성해 낸 것과 비슷하다. 우리 선조들의 삶?일로 분주한 낮과 잠들지 못하는 밤?에 모습을 부여해 준 음악적 주제들, 즉 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보는 작업이다.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모두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지만, 음악의 기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인들은 처방전 약이나 섹스보다 음악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하며 평균적으로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음악을 듣는다. 이제 우리는 음악이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주고 뇌에 화학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안다. 일상의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음악과 인간다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제대로 알수록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파악하여 음악을 통한 기분 조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 음악과 인간이 함께해 온 역사를 이해하면 음악이 어떻게 인간 본성의 발달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지난 1만 년 동안 여섯 대륙에서 벌어진 음악과 뇌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다. 음악은 그저 기분전환용 소일거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서 언어 같은 더 복잡한 행동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았고, 대규모 협력 작업을 용이하게 했으며, 중요한 정보를 후세에 전달하도록 도왔다. 이 책에서 나는 이 모든 노래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급진적인(보는 관점에 따라) 결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설명하려 한다. 노래의 여섯 가지 유형이란 바로 우애의 노래, 기쁨의 노래, 위로의 노래, 지식의 노래, 종교의 노래, 사랑의 노래다.
인간다움의 진화 과정과 이때 음악이 행한 역할을 이해하려면 열린 마음(과 귀)을 갖고 모든 종류의 음악 형식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과 음악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했는지 알아보려면 가사가 있는 음악을 따라가는 편이 가장 쉽다. 음악적 표현의 의미를 두고 논란을 벌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음들이 가사에 붙여지면(아니면 가사가 음들에 붙여졌다고 해야 할까?) 의미를 논의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더욱이 음악은 100년 전에야 겨우 녹음되기 시작했고 몇 백 년 전의 음악은 악보조차 정확하지 않으므로 역사적으로 기록된 음악은 사실상 가사라 해도 무방하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서는 주로 가사가 있는 음악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많은 음악이 CD나 혹은 이를 재빨리 대체하고 있는 컴퓨터 디지털사운드 파일(통칭해서 MP3라 불리는)로 나와 있다. 우리는 전례 없이 풍성한 음악의 세상에 살고 있다. 사실상 이제까지 녹음된 적이 있는 모든 노래를 인터넷의 어딘가에서 그것도 공짜로 구할 수 있다. 녹음된 음악은 이제까지 사람들이 부르고 연주하고 들은 모든 음악 가운데 미미한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추정하건대 그것만으로도 100억 곡 이상 되므로 세계의 음악에 대한 논의는 녹음된 음악으로 시작해도 무방하다. 위험을 무릅쓴 용감한 음악학자들과 인류학자들 덕분에 이제는 희귀한 토착 음악과 산업화 이전의 음악들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산업화와 서양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문화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음악을 보존해 왔고,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아 우리 조상들이 즐기던 음악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음악들과 생소한 서양 예술가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음악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아야 할 음악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물려받은 음악 유산은 실로 다양하다. ‘배드 배드 르로이 브라운’이나 ‘크루엘라 드빌’(1961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 달마시안」에 수록된 노래)처럼 사람에 관한 노래도 있고, 재판 도중 판사를 죽인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관한 캐치송(catchy song. 가사나 리듬이 귀에 잘 들어와 수비게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노래)도 있으며, 특정 육류 제품(아모르 사의 핫도그, 오스카마이어 사의 비엔나소시지)을 구입하라고 강권하는 노래도 있다. 약속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노래,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천 년 된 악기들과 최근에 막 발명된 악기들로 만든 노래, 파워툴 프로그램으로 연주하는 노래, 개구리들이 노래하는 크리스마스캐럴 앨범,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래, 그리고 영화 속 허구의 인물 보랏이 부르는, 카자흐스탄의 광업을 자랑하는 허구의 카자흐스탄 국가도 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다른 나라들은 계집애들이 다스리지
카자흐스탄은 세계 제일의 칼륨 수출국
다른 나라 칼륨은 질이 떨어진다네.
_ 영화 「보랏」 가운데 ‘오 카자흐스탄’
도시 주변의 소음 공해를 다룬 노래도 있다.
오토바이 나가신다
오토바이를 조심해.
…
지나갈 때마다 정신이 없어
땅이 울렁거리고
속이 뒤집어지고
마음을 다잡아도
영혼을 짓밟아 뭉개지.
_ 데이 마이트 비 자이언츠, ‘못된 오토바이’
이렇게 무척이나 다양한 노래들이 있지만 나는 이 모든 노래가 기본적으로 여섯 가지 유형에 다 들어간다고 믿는다. 우리가 살면서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보면 여섯 가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음악을 만들고 연구하며 거의 평생을 보냈다. 오랫동안 팝과 록 음반을 제작하는 일을 했고, 지금은 연구 실험실을 하나 맡아 음악과 진화, 뇌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혹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지는 않나 하는 우려도 했다. 내 개인 취향이나 종족 중심의 사고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문화적으로 편향되거나 성, 장르, 세대와 관련하여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편견에 빠지고 싶지 않았고, 음높이나 리듬 같은 문제에서도 가급적이면 공정한 시각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음악가와 과학자 친구들에게 모든 음악의 공통점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먼저 스탠퍼드 대학에서 인류학과 학장으로 있는 짐 퍼거슨Jim Ferguson을 만나 보았다. 나와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고 35년 동안 친하게 지내는 친구다. 인류학자는 문화가 우리의 사고와 사상과 세계관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연구하는 사람이므로 짐이라면 나도 모르게 빠질 수 있는 함정과 편견을 피하도록 도와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노래가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에서 얼마나 다양한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했고, 수천 년 동안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다방면에서 음악이 사용되어 온 용례를 검토했다.
일할 때 부르는 노래, 살인에 관한 노래, 욕정과 사랑의 노래는 세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의 위대함을 말하는 노래, 우리의 신이 당신의 신보다 낫다고 하는 노래, 어디로 가면 물을 찾을 수 있는지, 카누를 어떻게 만드는지, 사람들을 잠들게 하거나 깨어 있게 도와주는 노래도 있다. 가사가 있는 노래, 이상한 소리로 웅얼거리듯 부르는 노래, 나무토막에 구멍을 뚫거나 나무 몸통을 이용해 연주하는 노래, 바다조개와 거북이 껍질을 두드리는 노래, 바비 맥퍼린처럼 뺨과 가슴을 두드려 소리 내는 노래도 있다. 짐에게 이 모든 유형의 노래에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대답했다.
짐이 위대한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말을 인용해 말하기를, 음악의 보편성을 이해하려 할 때 제기해야 할 올바른 질문은 모든 음악의 공통점이 아니라 음악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묻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문화의 공통점을 추출하면 인간다움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야말로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편견이라는 것이다. 퍼거슨은, 그리고 기어츠도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최선의, 그리고 어쩌면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행하는 수많은 다양성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적 인간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이 개별적인 것들, 미묘한 차이들, 우리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들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잡하고 상상하기 좋아하고 적응력 강한 종이다. 얼마나 적응력이 강하냐 하면, 1만 년 전만 해도 인간과 애완동물과 가축이 지구 육지의 척추동물 가운데 0.1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8퍼센트에 이른다. 인간은 거주가 거의 불가능한 온갖 기후 지역까지 터전을 확장했다. 또한 인류는 변화무쌍한 종이기도 하다. 수천 가지 다른 언어로 말하고 서로 판이한 종교를 가지며 사회조직과 식생활, 결혼 관습도 제각각이다. 인류학 입문서를 보면 금방 알겠지만, 친족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만 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하다.
따라서 음악의 다양성을 생각했을 때 올바른 질문은 음악이 인간관계에서 행하는 기능들이 존재하는가 여부다. 그리고 음악의 이런 여러 기능은 독특한 지적?문화적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감정과 이성과 정신이 진화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음악적 뇌는 지난 5만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의 본성과 문화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음악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나는 인간의 본성을 형성한 여섯 가지 유형의 노래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지만, 뭔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유형의 노래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어떤 유형의 노래가 흥하는가 하면 다른 유형의 노래는 쇠한다. 컴퓨터와 PDA로 무장한 현대는 말할 것도 없고 문자가 생겨난 이후로 우리는 집단적인 기억을 간직하고 물려주기 위해 예전만큼 그렇게 지식의 노래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물론 지금도 대부분의 영어권 나라 아이들은 학교에서 알파벳 노래를 배우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 같은 노래를 통해 숫자 세는 법을 배우지만 말이다.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많은 문화권에서는 기억을 돕고 셈하는 노래가 지금도 일상에서 필수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알았듯이, 음악은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정보를 보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며, 이런 과정의 신경생리학적 기초가 점차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정의에 따르면 ‘노래’는 가창을 위해 만들어지거나 개작된 음악 작품이다. 여기서 누가 개작을 하는가 하는 모호한 문제가 남는다. 개작은 찰리 파커의 솔로를 가져다가 스캣(무의미한 음절)을 붙인 존 헨드릭스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선율에 가사를 붙인 존 덴버처럼 전문 작곡가나 오케스트라 편곡자의 영역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열한 살 때 친구들과 즐겨 그랬듯이) 롤링 스톤스의 ‘새티스팩션’의 인트로 기타 리프를 노래로 부르면, 내가 개작한 사람이 된다. 이 선율은 노래의 보컬 파트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존재할지라도, 그것을 부른 나와 친구들에 의해 ‘노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애즈 타임 고우즈 바이’를 원래 가사가 아니라 ‘라라라’ 하는 음절에 맞춰 노래한다면 이는 여러분에 의해 노래가 된다. 설령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지 않았어도, 그 노래에 원래 가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도 상관없다. ‘애즈 타임 고우즈 바이’의 가사를 아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선율에 맞춰 행복하게 휘파람을 불거나 라라라 하며 흥얼거려도 된다. 꼭 가사를 붙여 노래하지 않는다고 노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래’가 우리가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이와 닮은 소리의 집합까지도 포괄하는 넓은 범주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호모 무지쿠스』가 문화적으로 편협한 책이 아니기를 바란다. 아프리카 북 연주는 수백만 명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를 음악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그처럼 순수한 리듬으로 구성된(그리고 여러분이 멜 토메나 레이 스티븐스가 아니라면 쉽게 따라 부르지도 못할) 표현 형식을 무시한다면 선율을 편애하는 편견을 저도 모르게 드러내는 셈이다.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음악 형식인 록, 팝, 재즈, 힙합은 모두 아프리카 북 연주로부터 발전된 양식들이다. 앞으로 차차 설명하겠지만, 북 연주는 강력한 우애의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
편의상 노래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은 선율이 있든 없든 가사가 있든 없든 간에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음악 형식을 포괄하는 넓은 범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중에서 내가 특히 관심을 갖는 음악은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기억하고 이들 머릿속에 남는 음악, 나중에 적당한 때에 다시 반복하거나 남들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음악,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음악이다. 고백하건대 의식한 건 아니지만, 나는 최고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널리 불리기 마련이라는 편견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마도 음악업계에서 일한 내 경험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생일 축하 노래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지 않는가(심지어 「스타트렉: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보면 클링온 족族의 언어로도 불린다. ‘qoSlIj DatIvjaj’라는 노래 제목으로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피트 시거가 내게 사실을 정정해 주었다. 어떤 문화에서는 최고의 노래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불리고 연주된다고 했다! 시거는 ‘꽃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큰 망치 하나 가졌으면’, ‘턴 턴 턴’(성서의 전도서에서 가사를 가져왔다) 같은 노래들을 작곡한 위대한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청년이 아가씨를 보고 마음에 들면 갈대피리를 만들어 선율을 작곡합니다. 아가씨가 물을 길러 냇가에 올 때 청년은 숲속에 몸을 감추고 곡을 연주하죠. 곡이 마음에 들어 아가씨가 노래를 따라하면 일이 성사되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그 곡은 그녀만을 위한 특별한 노래예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용하라고 만든 노래가 아닙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노래죠. 당사자가 죽은 뒤에는 그의 노래를 불러도 되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고유한 노래가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데, 많은 소집단은 자기들 노래를 자기들만이 소유한다고 느끼며, 모든 사람의 노래로 확산될 때 불쾌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자신의 특정한 역사와 문화 때문에 어느 정도는 편향된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나만 하더라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남자로서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아서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발레와 뮤지컬을 보러 갔으며, 「호두까기인형」과 「플라워 드럼 송」 같은 작품들을 통해 일찍부터 동양의 음계와 음정을 접할 수 있었다. 신경과학자들은 다양한 조성 체계를 이른 나이에 접하는 것이 훗날 어른이 되어 자신의 문화권 밖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는다. 어릴 때 세계의 여러 나라 언어를 접하면 쉽게 배우는 것처럼, 어릴 때 세계의 음악을 접하면 우리의 뇌는 그 구조와 법칙을 쉽게 파악해 낸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나면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거나 다른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릴 때 이를 접하면 우리의 뇌가 이런 초기의 경험에 맞게 스스로를 조직화하므로 자연스럽게 이를 처리하는 방법이 개발된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 빅 밴드와 스윙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어머니를 통해서는 피아노 음악과 브로드웨이 스탠더드 넘버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쿠바와 라틴 음악, 그리고 동유럽 민속음악을 좋아하셨다. 여섯 살 때 라디오에서 조니 캐시의 음악을 접한 것을 계기로 나는 컨트리, 블루스, 블루그래스, 포크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있다. 고전음악은 다른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음악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로큰롤이라고 하는 반복적이고 요란한 쓰레기를 감히 위대한 거장들의 숭고한 음악에 갖다 댈 수 있다고 하는 거지?” 이런 입장은 위대한 거장들에게 기쁨을 주고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주요 원천이 바로 당대의 ‘흔해빠진’ 대중음악이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모차르트와 브람스, 심지어 위대한 바흐조차 방랑시인의 발라드와 유럽의 민속음악, 그리고 동요에서 많은 선율의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리듬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선율은 계급이나 교육, 환경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목록을 금방 만들어낼 수 있다. 듣고 있으면 즐겁고 편안한 노래, 영적 감흥을 주는 노래,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일깨워 주는 노래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연구실에서 사람들에게 이를 부탁했을 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목록이 얼마나 다양한지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음악의 세계는 방대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음악을 만들어내며, 청자들 또한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매일 기존의 형식에서 새로운 음악 형식이 만들어지고 발전해 간다. 그리고 새로운 노래는 수많은 세월을 이어져온 진화의 끈을 통해 앞선 노래들과 연결된다. 한 노래의 ‘유전적 구조’를 조금만 손보면 새 노래가 만들어진다.
특정한 개인을 기리는 노래가 있는데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를 갖다 쓰면 위력이 증대된다(혹은 감소되기도 한다). 1960년대에 마리아(번스타인)나 미셸(비틀스)이라는 이름을 가졌거나 1970년대에 앨리슨(엘비스 코스텔로), 샐리(에릭 클랩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노래가 말을 걸고 친구나 모르는 사람이 흥미롭다는 듯 이런 유치한 연관성을 거론하는 것을 듣는 기분이 어떤지 잘 알 것이다. 무례하게도 노래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실제로 노래를 불러 주는 사람도 있는데, 대개는 자신이 그런 일을 생각해 낸 최초의 사람이라는 착각마저 한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대니 보이’나 ‘대니얼’(엘튼 존)의 코러스 부분을 내게 계속 불러 주며 자신의 기지를 으스대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났던 기억이 난다. 스틸리 댄은 아예 노래 주인공 이름을 리키, 조시, 듀프리처럼 흔치 않은 이름으로 붙여 유행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당사자의 고통은 더 커질 수 있다. 나는 실제로 매기 메이(로드 스튜어트), 록산느(폴리스), 척 이(리키 리 존스), 존 제이콥(옛 동요)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누군가가 이들에게 이전에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이런 노래를 불러줄 때마다 이들은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남자 애들 방에서 담배 피자’과 ‘타바코 로드’ 같은 우애의 노래는 학교에서 겉돌고 삐딱하지만 폼나는 행동을 하는 수많은 고등학생들(혹은 중학생들)을 합법의 길로 이끌고 하나로 연합시킨다. 교가와 국가는 바로 이런 유대의 노래를 대규모로 확장한 것이다. 그 최종 종착지는 아마도 전 세계의 화합을 노래한 ‘위 아 더 월드’(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 작곡)일 것이다. 집단을 조직하고 강화시키는 일이 우애의 노래를 통해 표현되며, 이런 유형의 노래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증거가 있다.
사랑의 노래 역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갈구한 사랑, 마침내 찾은 사랑, 잃어버린 사랑을 묘사한다. 이런 노래에 반영된 유대감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꼭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일도 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퍼시 슬레지의 노래에도 나오지만, 남자는 여자를 사랑할 때 원하는 사랑을 붙잡기 위해 마지막 남은 한 푼까지 다 바친다.
사랑하는 그녀가 그래야만 한다고 하면
그는 기꺼이 자신의 안락을 모두 내던지고
퍼붓는 빗속에서 잠을 청할 겁니다.
_ 퍼시 슬레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음악은 왜 그토록 우리를 감동시키는 걸까? 피트 시거는 그 이유를 노래에서 매체와 의미가 결합되는 방식에서 찾는다. 노래 형식과 구조가 정서적 메시지와 딱 들어맞도록 결합된다는 것이다. “음악적 힘은 형식에서 나옵니다. 일상적인 말은 음악처럼 견고한 조직을 갖고 있지 않죠. 누구든 자신이 말하려는 바를 말할 수 있지만, 회화나 요리, 혹은 다른 예술처럼 음악에도 형식과 디자인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흥미를 자아내며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좋은 음악은 언어의 장벽, 종교와 정치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감정과 문화가 우리의 음악적 뇌에서 서로 뒤섞여 다양성과 힘을 발휘했고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여섯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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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대니얼 J. 레비틴 (Daniel J. Levitin)
뇌 과학과 진화심리를 음악과 결합해 새로운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그는 인지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일 뿐 아니라 레코드 프로듀서, 음악가이기도 하다. 현재 몬트리올 맥길 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음악 지각, 인식 및 전문지식을 위한 레비틴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전자커뮤니케이션 심리학의 벨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인지 심리학 분야에서 절대 음감과 음악의 인식과 지각에 관한 그의 논문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참여한 음반의 판매량이 3,000만 장이 넘을 정도로 탁월한 음악 프로듀서인 그는, 블루 오이스터 컬트, 크리스 아이작, 플리트우드 맥 등의 음반을 제작하고 스티비 원더, 스틸리 댄 등의 프로듀싱 자문을 맡았으며 산타나, 그레이트풀 데드 등의 음반을 엔지니어링 했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뇌의 왈츠』로 2006년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북프라이즈 올해의 책 최종 후보에, 최고의 데뷔 작가에 수여한느 퀼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미국 음반산업협회의 골드레코드와 플래티넘 레코드를 열네 차례 수상했고 영화 <승리의 건축> 사운드트랙으로 선댄스 영화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그 밖에 잡지, 방송, 라디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호모 무지쿠스』의 웹 사이트: www.sixsong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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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장호연
학부에서 미학을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음악동호회 ‘얼트바이러스’에서 음악평론 활동을 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웹진 <웨이브> 등에 음악평론을 기고했다. 『뇌의 왈츠』, 『뮤지코필리아』,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낯선 땅 이방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릭 클랩튼』 등을 번역하며, 음악과 뇌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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