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서문 l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 자체
진화의 증거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요즘만큼 강력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얄궂게도 무지에 기반한 반대 역시, 내가 기억하는 한, 요즘만큼 강력했던 적이 없다. 이 책은 진화‘이론’이 정말 사실이라는 증거들, 다른 과학적 사실들처럼 논박의 여지 없는 사실이라는 증거들을 개인적으로 간추려본 것이다.
내가 진화에 관한 책을 쓴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므로, 이 책은 어디가 특별한지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이 책은 나의 잃어버린 고리다.『이기적 유전자』와『확장된 표현형』은‘자연선택’이라는 친숙한 이론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안한 책들로, 진화의 증거 자체를 논하지는 않았다.
다음 세 권의 책은 진화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눈먼 시계공』, 『에덴의 강』,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Climbing Mount Improbable)』(셋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를 통해서는, 가령‘절반의 눈이 무슨 소용일까’, ‘ 절반의 날개가 무슨 소용일까’,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어떻게 자연선택이 작동할까’같은 질문들에 대답했다. 나는 이 세 책을 통해 거치적거리는 장애물들을 치워냈으나, 이번에도 진화가 사실이라는 실제 증거를 소개하지는 않았다.
가장 두꺼운 책인『조상 이야기』는 마치 초서(Chaucer) 풍의 성지순례처럼, 우리 선조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가며 생명의 역사 전 과정을 펼쳐 보였지만, 역시나 진화가 사실이라는 점은 전제로 깔고 이야기했다.
내가 내 책들을 돌이켜보니, 진화의 증거 자체를 명확하게 제공한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심각한 빈틈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은 마침 알맞은 시기인 듯했다. 다윈 탄생 200주년인 데다가『종의 기원』출간 150주년이니 말이다.
혜안과 불굴의 정신을 소유한 나의 출판대리인 존 브록만이 이 책 『지상 최대의 쇼』를 출판사들에 소개할 때는, 가제가 ‘그저 하나의 이론(Only a Theory)’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케니스 밀러(Kenneth Miller, 미국의 생물학자로 브라운 대학 교수)가 그 제목을 선점해서, 과학교육의 교과 내용을 법정에서 결정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책 한 권 분량의 반박을 제기해놓았다(그런 재판들 중 한 사례에서 밀러가 영웅적인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어차피 나는 그 제목이 정말 내 책에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러잖아도 도로 선반에 얹어두려던 차였다.
그때, 다른 선반에 더 완벽한 제목이 줄곧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몇 년 전, 한 익명의 지지자가 내게 바넘(Barnum, 1870년대 미국에서 서커스를 대유행시킨 흥행사로, 바넘 서커스단의 선전 문구가‘지상 최대의 쇼’였다) 식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보내주었다.‘ 진화, 지상 최대의 쇼, 마을 유일의 게임’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였다. 나는 바로 그 제목으로 이따금 강연을 할 때 그 티셔츠를 꺼내 입고는했다. 그런데 이 문구야말로 이 책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다만 전체를 다 쓰면 너무 길어서,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로 줄였다.‘그저 하나의 이론’이라는 문구는 창조론자들의 잘못된 인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의미에서 끝에 주의 깊은 물음표를 덧붙인 뒤, 1장의 제목으로 삼았다.
많은 분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마이클 유드킨, 리처드 렌스키, 조지 오스터, 캐롤라인 폰드, 헨리 D. 그리시노-마이어, 조너선 호지킨, 매트 리들리, 피터 홀런드, 월터 조이스, 얀 웡, 윌 앳킨슨, 라사 메논, 크리스토퍼 그레이엄, 폴라 커비, 리사 바우어, 오언 셀리, 빅터 플린, 캐런 오언스, 존 엔들러, 이언 더글러스-해밀턴, 쉴라 리, 필 로드, 크리스틴 드블라스, 랜드 러셀 등이 그분들이다.
샐리 가미나라와 영국의 출판팀, 힐러리 레드먼과 미국의 출판팀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늘 흔쾌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책이 최종 제작 단계를 거치는 동안 세 번이나 흥미로운 새 과학적 발견이 등장했다. 그때마다 나는 질서정연하고 복잡한 출간 과정을 어떻게든 융통해 새 내용을 끼워넣을 수 없겠느냐고 사뭇 소심하게 요청했다. 여느 정상적인 출판사라면 그런 막판의 변수에 툴툴대기 마련이겠지만, 샐리와 힐러리는 세 번 다 기꺼이 내 제안을 환영했고, 엄청나게 고생하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문학적인 지성과 세심함으로 교정교열을 담당한 질리언 서머스케일스도 그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도와주었다.
아내 랠러 워드는 이번에도 한결같은 격려와 적재적소의 세련된 비평과 함께 그녀만의 독특한 제안들로 나를 지원했다. 나는 이 책을 찰스 시모니(Charles Simonyi, 헝가리 출신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CEO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워드와 액셀을 개발했다_옮긴이)의 이름을 딴 교수직에 있던 마지막 몇 달 동안 구상하고 쓰기 시작해서, 은퇴한 뒤 완성했다. 시모니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마당에, 찰스와 내가 처음 만난 후로 14년이 흘렀고 그간 일곱 권의 책이 나왔음을 돌이키며, 다시 한 번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 부부는 우리의 우정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나는 이 책을 조시 티모넨에게 바친다. 조시는 물론이고, 처음에 조시와 함께 RichardDawkins.net을 구축한 소수정예 대원들에게 감사한다. 인터넷에서 조시는 출중한 웹사이트 디자이너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조시의 창의력은 훨씬 깊이가 있다. 조시가 우리 공통의 사업에 얼마나 팔방미인으로 기여를 하는지, 얼마나 따스하고 유쾌한 웃음으로 일을 해내는지는 빙산으로도 결코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l 제1장 l 그저 하나의 이론?
당신이 로마사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고대에 대한 당신의 열정을 전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오비디우스의 애가(愛歌)와 호라티우스의 서정시를, 키케로의 웅변에 드러난 라틴어 문법의 박력과 간결미를, 포에니 전쟁의 정묘한 전략들을,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통솔력을, 후대 황제들의 방탕과 무절제를 말하고 싶다. 실로 간단치 않은 일이고, 시간과 집중력과 헌신을 요하는 일이다.
그런데 자꾸만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갉아먹고, 학생들의 주의를 흩뜨리는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특히 경제적으로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일군의 무식한 자들이 늑대 떼처럼 당신을 몰아세우며, 가엾은 당신의 제자들에게‘로마인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설득시키려고 끈질기게 노력한다. 그들에 따르면, 로마제국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현재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카탈루냐어, 프로방스어, 로망슈어…… 이 모든 언어와 그 방언들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생겨났을 뿐, 라틴어 같은 선조 언어에 빚진 바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고전학자이자 선생이라는 고결한 소명에 온전히 몰입하는 대신, 로마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명제를 방어하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한다. 그들과 싸우느라고, 바쁘지만 않다면 주저앉아 울고 싶을 정도로 무지하게 느껴지는 그 편견에 맞서느라고. 라틴어 교사를 상상하는 것이 너무 먼 일이라면,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근세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상상해보라. 당신이 20세기 유럽사를 가르치려는데, 튼튼한 조직에 탄탄한 자금에 정치적 완력까지 갖춘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 집단이 수업을 보이콧하거나 야유를 퍼부어 이야기를 중단시킨다.
‘로마 부인주의자’라는 존재는 내 상상이었지만,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는 실제로 존재한다. 목소리가 크고, 겉은 번드르르하며, 학자연하는 데 도통한 사람들이다. 현재의 강대국들 중에서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들을 지지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 중에서 적어도 한 명이 그 집단에 속해 있다. 상상해보라. 그들은 유럽사 선생인 당신에게‘논란’에 대해서도 가르치라는 둥, 홀로코스트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일군의 시온주의자들이 날조해낸 이야기라는‘대안 이론’에도‘동등한 시간’을 할애하라는 둥, 호전적인 요구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상대주의라는 유행을 좇는 지식인들도 이에 영합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말한다. 홀로코스트가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개인적 신념의 문제라고 말한다. 모든 관점이 똑같이 유효하므로 똑같이‘존중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많은 과학 교사가 겪는 곤란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다. 교사가 생물학의 핵심이자 길잡이가 되는 원리를 설명할라치면, 교사가 현재의 세상을 역사적 맥락(진화)에 놓아보는 성실한 시도를 할라치면, 교사가 생명의 근본적인 속성을 탐구하고 해설할라치면, 사람들은 그들을 괴롭히거나 가로막고, 들볶거나 따돌리며, 실업자가 되게 만들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상황이 이보다는 낫다고 해도, 번번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부모들에게 협박 편지를 받고, 세뇌당한 아이들의 빈정대는 비웃음이나 단단하게 팔짱 낀 모습을 대면한다.
교사에게 주어지는 정부 승인 교과서들을 보면 ‘진화’라는 단어가 체계적으로 삭제되었거나, ‘시간에 따른 변화’라는 표현으로 수정되었다. 한때 우리는 그것을 미국에서나 있을 법한 현상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영국과 유럽의 교사들도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교실에 이슬람 학생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다문화주의’입장을 취해야 하고, 혹여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도 되기 때문이다.
고위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진화에 이견이 없다. 많은 경우에 그들이 과학자들을 활발하게 돕고 나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지금은 ‘해리스 경’이 된 옥스퍼드 주교와 두 차례 아주 유쾌한 협동 작업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진화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잘 안다. 우리 둘은 2004년에 <선데이 타임스>에 공동으로 기사를 기고했는데, 그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날에는 전혀 논쟁할 것이 없다. 진화는 사실이고, 기독교적 시각에서 볼 때,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다.” 맨 마지막 문장은 리처드 해리스(Richard Harries)가 쓴 것이지만, 기사의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 둘 다 동의했다. 그 2년 전에는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에게 보내는 서한도 함께 작성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총리 귀하
우리 과학자들과 주교들은 게이츠헤드에 있는 이매뉴얼 시티 과학대학의 과학 교육에 관하여 저희의 우려를 표하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진화는 대단한 설명력을 지닌 과학 이론으로서, 수많은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현상들을 해설해줍니다. 진화론은 개량될 수 있고, 확증될 수 있고, 증거에 기반하는 한 극단적으로 변형될 수도 있습니다. 그 대학의 대변인들은 진화론이 성경적 창조론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신념의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전혀 다른 기능과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한 대학의 교육 내용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른바 신앙 학교라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들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사람들의 우려가 점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매뉴얼 시티 과학대학을 비롯한 그런 학교들의 교과과정을 엄격하게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과학과 종교라는 두 분야를 각자 적절하게 존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_옥스퍼드 주교 리처드 해리스, 왕립학회 회원 데이비드 아텐보로 경, 세인트 알반스 주교 크리스토퍼 허버트, 왕립학회 회장 옥스퍼드의 메이 경, 왕립학회 물리학 간사이자 왕립학회 회원 존 엔더비 교수, 헤리퍼드 주교 존 올리버, 버밍엄 주교 마크 산터, 국립 역사박물관장 닐 찰머스 경, 서더크 주교 토머스 버틀러, 왕실 천문학자이자 왕립학회 회원 마틴 리스, 포츠머스 주교 케니스 스티븐슨, 왕립학회 생물학 간사이자 왕립학회 회원 패트릭 베이트슨, 로마 가톨릭 교회 포츠머스 주교 크리스피언 홀리스, 왕립학회 회원 리처드 사우스우드 경, 전 왕립학회 물리학 간사이자 왕립학회 회원 프랜시스 그레이엄-스미스 경, 왕립학회 회원 리처드 도킨스 교수 드림.
해리스 주교와 나는 이 탄원서를 급하게 조직했다. 내 기억이 옳다면, 우리가 접촉한 사람들 가운데 100퍼센트가 기꺼이 편지에 서명했다. 과학자들이나 주교들이나 이의가 없었다. 캔터베리 대주교도 진화에 대해 아무런 이의가 없고, 교황도 그러하며(고생물학적으로 정확히 언제 인간의 영혼이 육체에 주입되었는가 하는 기묘한 문제를 놓고 의견차가 좀 있긴 하지만), 학식 있는 사제나 신학 교수라면 다들 마찬가지다.
이 책은 진화가 사실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에 관한 책이다. 종교에 반대하려는 책이 아니다. 그 일은 내가 다른 곳에서 이미 했다. 그것은 다른 티셔츠고, 지금 다시 꺼내 입을 계제는 아니다. 진화에 대한 증거들을 주의 깊게 살펴본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이미 맞서 싸우기를 포기했다. 마지못해 포기한 사람도 있고, 리처드 해리스처럼 열성적으로 포기한 사람도 있지만. 한심하리만치 무지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내키지 않더라도 진화가 사실임을 받아들였다. 신의 손길이 진화 과정을 개시했으나 이후의 발전에 대해서는 손을 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초에 신이 우주에 시동을 걸었고, 모종의 심원한 목적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물리 법칙들과 상수들을 조화롭게 부여함으로써 우주의 탄생을 경건하게 하였으며, 결국 우리 인간이 그 목적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툴툴거리면서 인정하든, 행복한 마음으로 인정하든, 사려 깊고 합리적인 종교계 인사들은 모두 진화의 증거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는 주교들과 박식한 성직자들이 진화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신도들도 그러하리라고 어수룩하게 믿어버려서는 안 된다. 내가 이 책의 부록에 정리해두었듯,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오히려 그 반대라는 증거가 넘친다. 미국인 가운데 40퍼센트 이상은 인간이 다른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하느님이 지난 1만 년 안짝에 우리를(의미상 모든 생명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영국에서 그렇게 믿는 사람들의 비율은 미국만큼 높지는 않지만 충분히 걱정스러운 정도다. 이것은 비단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교회로서도 걱정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이 책은 꼭 필요하다. 나는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을‘역사 부인주의자’라고 부르겠다. 세상의 나이가 몇십억 년이 아니라 몇천 년 단위라고 믿는 사람들, 인간이 공룡과 함께 살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반복하건대, 그런 사람들이 미국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수치가 그보다 높은 나라도 있고 낮은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 40퍼센트를 평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때때로 역사 부인주의자들을‘40퍼센트의 사람들’이라고도 부를 것이다.
계몽된 주교들과 신학자들로 돌아와서, 그들이 스스로도 개탄해 마지않는 반과학적인 난센스와 싸우는 일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주면 좋겠다. 진화는 진실이고 아담과 이브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면서도, 설교단에 설 때는 아담과 이브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들을 거론하면서 도덕적 또는 신학적 교훈을 강론하는 무분별한 설교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지적을 하면, 그들은 순전히‘상징적인’의미에서 언급한 것뿐이라고, 아마도‘원죄’나 순결의 미덕 등을 설명하려 한 것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외려 자기들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어리석은 청중이 있겠느냐며 난감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도들도 그 사실을 알까? 신자석에 앉았거나 예배용 깔개에 무릎 꿇은 사람들이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은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신자들도 쉽게 짐작할 만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많은 경우에 대답은‘절대 그렇지 않다’일 것이다. 충분히 헷갈릴 만하다. 내 말이 미덥지 못하다면 부록을 보라.
주교들이여, 생각해보시라. 목사들이여, 조심하시라. 당신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몰이해의 다이너마이트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거의 반드시 터져버릴 다이너마이트인지도 모른다. 청중 앞에서 “여러분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야고보서> 5장 12절_옮긴이)”라고 말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엄청나게 널리 퍼진 대중적 몰이해를 바로잡고, 과학자들과 과학 교사들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일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해 물론 역사 부인주의자들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는, 본인이 역사 부인주의자는 아니지만 아마도 가족이나 교회의 지인들 중에서 그런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진화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치기에는 스스로 아는 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런 독자들을 무장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화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의혹을 넘어서는 사실, 심각한 의혹을 넘어서는 사실, 정보에 기반하여 제정신으로 주장하는 지적인 의혹을 넘어서는 사실, 그 어떤 의혹도 넘어서는 사실이다. 홀로코스트는 목격자 증언까지 있지만, 진화의 증거는 홀로코스트의 증거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 우리가 침팬지의 친척이라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우리는 원숭이의 먼 친척이고, 땅돼지와 매너티의 더 먼 친척이고, 바나나와 순무의 아주 먼 친척이고……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꼭 진실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것은 자명하고, 동어반복적이고, 누가 봐도 뻔한 진실은 아니다. 교양인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꼭 진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실이다. 진화를 지지하는 증거들이 물 밀듯 차오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다는 사실을 안다. 진화는 사실이고, 이 책은 그 점을 입증할 것이다. 제대로 된 과학자라면 누구도 이 사실을 반박하지 않을 것이고, 편견이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누구도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다윈의 진화 이론’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이론’이라는 단어를 일종의 유보로 간주하는 창조론 유파들(역사 부인주의자들, 4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그릇된 위안을 주고, 모종의 선물이나 승리를 안긴 것 같은 꼴이 되지 않는가?
이론이란 무엇인가? 사실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이론’이라는 말의 뜻을 살펴보자. 『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이론’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실제로는 더 많지만, 지금은 아래 두 가지만 관련이 있다).
이론, 정의 1 모종의 설명으로 제공된 어떤 사상들이나 진술들의 체계, 또는 일군의 사실들과 현상들에 대한 해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확인 또는 입증되었으며, 알려진 사실들을 잘 설명한다고 제안 또는 인정된 가설. 일반법칙, 원리, 알려지거나 관찰된 사실에 대한 원인으로 주장된 진술.
이론, 정의 2 모종의 설명으로 제안된 가설. 즉 가정, 추론, 추정. 무언가에 대한 하나의 사상 혹은 사상들의 집합. 개인적인 의견이나 견해.
주지하다시피 두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진화 이론에 대한 문제에 한마디로 답하자면, 과학자들은 ‘정의1’의 뜻으로 이 단어를 쓰는 반면에, 창조론자들은 ‘정의2’의 뜻으로 쓴다(일부러 그럴 수도 있고 진심일 수도 있다).
‘정의1’의 좋은 사례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태양중심설이다. 진화도 ‘정의1’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다윈의 진화론은 정말로 “어떤 사상들이나 진술들의 체계”다. 아주 방대한 “일군의 사실들과 현상들”을 해설한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확인 또는 입증된” 가설이고, 보편적인 지적 합의에 따라 “일반법칙, 원리, 알려지거나 관찰된 사실에 대한 원인으로 주장된 진술”로 여겨진다. 단순한 “가정, 추론, 추정”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과학자들과 창조론자들은 ‘이론’이라는 단어를 각각 몹시 상이한 두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진화는 태양중심설과 같은 의미에서 하나의 이론이다. 두 사례를 ‘그저 하나의 이론’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저’라는 말을 빼야 한다.
진화가 결코 ‘증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관해서 말하자면, 근래 들어 과학자들에게 증명이라는 개념을 믿지 말라고 겁을 주는 경향이 있었다. 과학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유력한 철학자들이 말했다. 수학자들은 뭔가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오직 수학자들만이 증명을 주장할 수 있다는 엄격한 견해가 있다), 다른 과학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뭔가를 반증하는 데 실패할 수 있을 뿐이고, 자신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달이 태양보다 작다는 반박 불가능한 이론조차도, 가령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는 수준으로 충분히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이론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증거가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에, 그것에 ‘사실’의 지위를 주지 않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공론에 불과하다. 진화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파리가 북반구에 있는 것이 사실이듯, 진화도 사실이다. 비록 논리론자들이 마을을 지배하여도(예이츠의 시구들 중에서 내가 그리 좋아하는 구절은 아니지만(<톰 오루그리>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_옮긴이), 이 대목에는 어울리는 듯하다), 어떤 이론은 분명히 합리적인 의혹을 뛰어넘으며,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부른다. 이론에 대해 반증하려는 노력이 열성적이고 철저할수록, 그 공격을 감내해내는 이론은 일상적으로 충분히 사실이라고 부를 만한 지위에 바짝 다가선다.
‘정의1의 이론’과 ‘정의2의 이론’이라고 계속 말할 수도 있지만, 숫자는 기억하기 어렵다. 대체할 단어가 필요하다. ‘정의2의 이론’에 대해서는 이미‘가설’이라는 좋은 단어가 있다. 가설은 확증(또는 반증)을 기다리는 임시적 발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진화론도 다윈의 시절에는 그런 임시성을 짊어지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다 떨쳐버린 것이다.
한편 ‘정의1의 이론’은 더 엄격하다. ‘이론’이라는 단어를 계속 쓰면서 ‘정의2’는 없는 듯 취급하는 게 아마 제일 좋을 것이다. 사실 ‘가설’이라는 단어가 이미 존재하는 마당이니, 혼란스럽고 불필요한 ‘정의2’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의2가 흔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명령으로써 사용을 금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상당히 멋대로이긴 하지만 용서될 만한 편법을 쓸까한다. 수학에서‘정리’라는 단어를 빌려와서 정의1의 뜻으로 쓰는 것이다(도킨스는 자신의 차용 용법에 대해서는 ‘theorem’ 대신 ‘theorum’이라는 철자를 써서 구분했는데, 우리말에서는 그런 식의 구분이 어려우므로 ‘수학적 정리’와 ‘과학적 정리’라고 대응해 옮겼다_옮긴이). 꽤 무리한 차용이라는 것은 잠시 뒤 나도 이야기하겠지만, 그래도 혼란의 위험보다는 편익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정리’의 엄격한 수학적 용례를 보자. 앞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수학자들만이 뭔가를 증명한다고 자처할 권리가 있다(변호사들도 그런 권리를 주장해 풍족한 보수를 받지만, 그것은 거짓된 주장이다)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도 함께 밝혀질 것이다.
수학자에게 ‘증명’이란 사실로 가정된 공리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나오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두 평행선은 결코 만나지 않는다” 등의 유클리드 기하학 공리들을 사실로 가정하는 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참일 수밖에 없다. 직각삼각형 수천 개를 측정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한 반증 사례를 찾아보았자 시간낭비일 뿐이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이미‘증명’을 했고, 누구나 그 증명을 뒤쫓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가타부타 더 말할 것도 없는 진실이다.
수학자들은 증명을 기준으로 삼아 ‘추측’과 ‘정리’를 구별하는데, 이것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이론’의 두 정의와도 조금 비슷하다. 추측은 참인 듯하나 아직 증명되지 않은 명제를 말한다. 증명이 되는 날, 그것은 정리가 될 것이다. 유명한 예로 골드바흐의 추측이 있다. “모든 짝수 자연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명제인데, 수학자들이 3×1023까지의 모든 수에 대해서는 이 명제를 반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골드바흐의 사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증명되지 않은 명제다. 이 문제의 해결에 쏠쏠한 상금까지 걸려 있다. 수학자들은 이것을 아직 ‘정리’의 대좌에 올려놓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증명을 해내야만 골드바흐의 추측은 골드바흐의 정리로 격상될 것이다. 증명을 해내는 똑똑한 수학자의 이름을 따서 ‘아무개의 정리’가 될 수도 있겠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자신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며 반격할 때, 골드바흐의 추측을 이용하곤 했다.
이따금 외계 생명체와 ‘접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 나더러 ‘무엇이든 그들에게 물어볼’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는 짤막한 질문 목록을 갖추게 되었다. 외계 생명체들은 몹시 발전한 문명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래서 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짧은 증명을 알려주십시오’같은 요구를 한다. 아니면 골드바흐의 추측이나…… 나는 한 번도 답을 듣지 못했다. 반면에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따위의 질문을 하면, 거의 대부분 답이 나온다. 모호한 문제라면, 특히 관습적인 도덕적 판단에 관한 문제라면, 외계인들은 지극히 기꺼운 마음으로 대답을 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제라면, 그리고 그들이 인간보다 더 지적이라면 아마도 답을 알 것이라고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오로지 침묵뿐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골드바흐의 추측과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예외도 발견되지 않은 정수론의 명제다. 1637년에 피에르 드 페르마가 낡은 수학책의 여백에 “나는 정말로 경이로운 증명을 발견했지만 여백이 너무 좁아 적지 않는다”라고 써둔 이래, 수학자들은 마치 성배처럼 그 증명을 찾아헤맸고, 마침내 1995년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가 증명해냈다. 그전에는 페르마의 ‘정리’가 아니라 페르마의 ‘추측’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학자도 있었다. 와일스의 성공적인 증명이 몹시 길고 복잡하며 20세기의 발전된 수학기법과 지식에 의존했음을 볼 때, 그것을 증명했노라 하는 페르마의 주장은 (솔직한) 착각이었으리라는 게 수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물론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추측과 정리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수학자들의 용어인‘정리’를 빌려와서 ‘이론’대신 ‘과학적 정리’라고 말하겠다. 진화론이나 태양중심설 같은 과학적 정리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1’을 충족시키는 의미의 이론이다.
(그것은)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확인 또는 입증되었으며, 알려진 사실들을 잘 설명한다고 제안 또는 인정된 가설이다. (그것은) 일반법칙, 원리, 알려지거나 관찰된 사실에 대한 원인으로서 주장된 진술이다.
과학적 정리는 수학적 정리가 증명되는 방식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이론’이 사실이고, 초록식물들이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는 이론이 사실이듯이, 우리는 상식적으로 그것을 ‘사실’로 취급한다. 이들은 방대한 양의 증거로 뒷받침되고, 모든 학식 있는 관찰자에게 동의를 얻고, 일상적인 의미에서 반박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모두 과학적 정리다.
공론을 펼치기로 작정한다면야, 어떤 사실에 대해서든 우리의 측정 도구들이나 도구를 읽는 감각기관들이 거대한 사기극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것도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가 불과 5분 전에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조작된 기억과, 구멍 난 양말과, 자를 때가 된 머리카락까지 갖춘 채로.” 현재 주어진 증거들을 볼 때, 진화를 사실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말하려면 이런 창조주의 사기극으로나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유신론자들이라도 신을 사기극의 작가로 보고 싶진 않을 것이다.
이제 ‘사실’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볼 차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는 이렇다(역시 더 많은 정의가 있지만, 지금 적합한 것은 다음 한 가지다).
사실 실제로 일어났거나 정말 그 주장대로인 것. 분명히 그런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진 것. 즉, 실제 관찰이나 진짜 증언을 통해서 알려진 어떤 진실로, 그저 추론된 내용이나 추측이나 허구와는 반대되는 것. 경험적 데이터로서, 그에 기초해 끌어낸 결론과는 구분되는 것.
(머리말 전문,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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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옥스퍼드 대학의 석좌 교수(‘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교수직’에서 2008년 은퇴)를 거쳐, 현재는 옥스퍼드 대학 뉴 칼리지에 소속되어 있다. 왕립학회 회원이자 왕립문학원 회원이다. 왕립문학원상(1987), 왕립학회 마이클 패러데이 상(1990), 키슬러 상(2001), 셰익스피어 상(2005), 루이스 토머스 과학저술상(2006), 갤럭시 브리티시 도서상 올해의 작가상(2007), 일본의 국제 코스모스 상 등 많은 상과 명예학위를 받았다. 동물행동학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 등 과학 전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영국 <프로스펙트>지의 여론 조사 결과 노엄 촘스키, 움베르트 에코에 이어 세계 최고 지성으로 뽑힐 정도로 영향력 있는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 출간 이후 30년 동안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세기의 문제작이며,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 양상을 밝힌 『눈먼 시계공』(1993)은 영국 ‘왕립학회 문학상’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문학상’을 받았다. 특히 그는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다수의 명저들을 통해 종교의 비합리성과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피해를 역설해왔다. 출간과 동시에 과학계와 종교계에 충격을 몰고 온 『만들어진 신』(2006)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 논증을 통해 증명하면서, 그동안 종교의 잘못된 논리가 세계사에 남긴 수많은 폐단을 지적하는 화제의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확장된 표현형』(1982), 『에덴의 강』(1995),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1996), 『무지개를 풀며』(1999), 『조상 이야기』, 『악마의 사도』(2003)가 있다.
웹사이트 www.richarddawki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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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명남
학부에서 화학을 대학원에서 환경 정책을 공부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장을 지냈고,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내 안의 물고기』, 『시크릿 하우스』, 『이보디보』, 『불편한 진실』, 『특이점이 온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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