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지건 간에 욕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비도 포함된다.
무엇이 쏟아지더라도, 폭우가 아무리 심하게 내리고 진눈깨비가 아무리 차갑더라도, 하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둔 것에 거스르는 신성모독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 다들 이건 알았다. 여기에는 젤리하도 포함된다.
하지만 칠월의 첫 금요일인 바로 오늘, 젤리하는 옴짝달싹 못하고 막혀 있는 차량행렬 바로 옆의 보도를 걸으면서, 이미 늦은 약속에 서둘러 대어가면서, 마치 말을 탄 군인처럼 욕설을 중얼댔다. 망가진 보도 사이로 튀어나온 돌에게, 자신의 하이힐에게, 자기를 따라오는 스토커 남자에게 욕을 했다. 경적을 울려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도시의 꽉 막힌 교통 현실 속에서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려대는 모든 운전사에게, 옛날 옛적에 콘스탄티노플 시를 정복했으며 여전히 그 실수에 충실한 오스만 왕조에게도, 아, 그리고 비에게… 이 망할 여름비에게 욕을 해댔다.
이곳에서 비는 고통이다.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거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축복처럼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농사에 좋고, 동물과 식물에게도 좋으며, 낭만주의를 조금 더 가미한다면 연인들에게도 좋다. 하지만 이스탄불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비란 젖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다. 비는 화에 대한 것이다. 비는 우리에게 진흙과 혼란과 분노가 충분하지 못한 것처럼 진흙과 혼란과 분노를 가져온다. 더욱이 비는 투쟁이다. 비는 언제나 투쟁의 문제이다. 물 양동이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새끼고양이처럼, 천만 명의 시민이 빗방울과 쓸모없는 투쟁을 벌인다. 이 난투에 우리만 관여했다고는 할 수 없다. 도로들과 주석 판에 스텐실로 찍혀 있는 대홍수 이전의 이름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성인들의 묘비석도 관련되었다. 또한 거의 모든 모퉁이마다 버티고 있는 쓰레기더미와 곧 화려한 현대식 건물로 변모할 가증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공사용 구덩이, 갈매기 떼까지도… 하늘이 열리고 머리 위로 비가 후두둑 내리면 우리 모두는 화가 난다.
그러나 마지막 빗방울이 땅에 닿고, 더 많은 빗방울들이 지금은 먼지 하나 없는 나뭇잎에 머무르고 있는 그 무방비의 순간이 찾아온다. 과연 비가 그쳤을지 당신이 확신하지 못하고 비 역시 확신하지 못하는 바로 그 틈새에서 모든 것이 고요해진다. 길게 느껴지는 그 일 분 동안 어수선함만 안겨주었다며 하늘이 우리에게 사과하는 것 같다. 그래서 머리칼에 아직 빗방울이 맺혀 있고 소맷부리가 척척해진 우리가 처량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빛이 그 어느 때보다 연하고 맑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우리는 하늘을 용서한다. 늘 그런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비가 다시 퍼부었고 젤리하의 마음에는 용서해주겠다는 마음이 거의 사라졌다. 그녀는 우산도 없었다. 또다시 우산을 사려고 길거리 행상에게 돈을 버리는 바보가 되지 않겠노라고 스스로와 약속했었다. 그래도 해가 또다시 나오면 우산을 어딘가에서 또다시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지금 뼛속까지 젖어도 할 말이 없었다. 어쨌거나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서 비가 슬픔에 비유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신중하고 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실패하면 그 문제를 빗방울의 문제가 아니라 쉬지 않고 분출되는 문제로 보게 되고, 결국 젖는 편이 낫다고 여기게 된다.
비는 그녀의 검은 곱슬머리를 타고 넓은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카잔지 가문의 모든 여인처럼 젤리하 역시 까마귀처럼 검은 곱슬머리였다. 하지만 집안의 모든 여인과 달리 그녀는 머리를 그 상태 그대로 두는 편을 좋아했다. 그녀는 평상시에는 비취 같은 녹색 눈에 불같은 지성을 담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은 세 부류(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한 부류,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외곬인 부류, 그리고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희망이 넘치는 부류)에게만 고유한, 때 묻지 않은 무심함으로 실눈을 뜨기도 했다. 그녀의 무심함이 아무리 일시적이긴 해도 그녀가 이 세 부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해하게 보였다. 그 무심함은 마약에 취한 듯한 무감각으로 그녀의 영혼을 덮어주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 그녀의 몸뚱아리 안에 그녀만 남겨둔 채 사라졌다.
칠월의 첫 금요일에 젤리하는 마취된 듯 감각이 무디어졌고, 그녀처럼 열정이 넘치는 사람에게 이런 무감각은 감각을 좀먹는 것만큼이나 강력했다. 그래서 오늘 그녀가 이 도시와 싸우는 일에, 아니면 비와 싸우는 일에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무심함은 요요처럼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고, 그녀의 기분도 얼어붙을 정도의 차가움에서 연기가 날 정도의 뜨거움 사이를 왔다 갔다했다.
젤리하가 서둘러 걸음을 옮길 때 화려한 우산과 우비, 비닐 스카프를 파는 행상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를 힐끔거렸다. 그녀는 굶주린 눈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뭇 사내의 시선을 무시하듯이 행상들의 시선도 무시했다. 행상들은 그녀의 반짝이는 코걸이도 못마땅해 하며 쳐다보았다. 코걸이 안에 그녀가 정숙함에서 이탈했다는 증거, 다시 말해서 색기의 징후가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녀는 자기가 직접 피어싱을 했기 때문에 특히나 피어싱을 자랑스러워했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피어싱은 이미 저지른 일이었으며 그것이 바로 그녀만의 스타일이었다. 남자들이 괴롭히고 여자들이 책망하더라도, 깨진 보도블록을 걷거나 페리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심지어 어머니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더라도… 이 도시의 대부분의 여자보다 키가 큰 젤리하가 원색의 미니스커트에 터질 듯한 가슴을 강조하는 꽉 끼는 블라우스와 반짝이는 나일론 스타킹에, 그 아찔한 하이힐까지 신는 것을 막을 자는 지구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그녀는 헐거워진 보도블록 사이를 밟았고, 사이에 낀 진흙이 라벤더빛 스커트에 검은 얼룩으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참이나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모든 터키 여인 중에서 극히 드물게 상스러운 욕을 전혀 막힘없이 큰 소리로 해박하게 할 수 있었다. 욕을 했다 하면 다른 사람들의 욕까지 모두 보상하듯이 쉬지 않고 해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보도블록이 정비되거나 수선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의 시 행정부와 현재의 시 행정부 모두에게 욕을 했다. 그녀는 욕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누가 자기 이름을 불렀나 보는 것처럼 턱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아는 사람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안개 낀 하늘을 향해 입만 비죽 내밀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갈등하듯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욕을 해댔는데 이번에는 비에만 욕을 했다. 할머니 프티트마의 어길 수 없는 불문법에 따르면 그야말로 순전한 신성모독이었다. 비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사실 구태여 좋아할 필요도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향해 욕을 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 위와 그 배후에는 전능하신 알라가 계시기 때문이다.
젤리하는 프티트마의 어길 수 없는 불문법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칠월의 이 첫 번째 금요일만큼은 기분이 워낙 엉망이라 신경을 쓰지 못했다. 더군다나 인생에서 무엇이 행해졌건 간에 그것은 이미 행해지고 사라진 것이듯, 이미 말해진 것은 이미 말해진 것이다.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산부인과의 약속시간에 이미 늦었던 것이었다. 산부인과의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깨달은 순간 아예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지만.
범퍼에 더덕더덕 스티커를 붙인 노란 택시가 갑자기 섰다. 거친 인상에 피부가 거무스레한 기사는 사파타 수염(멕시코 혁명가 사파타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양쪽 입가가 갑자기 처지는 수염임-역자)과 누런 황금 앞니가 반짝였고 비번일 때는 치한처럼 보일 것 같았다. 택시 창문이 열려 있어서 지역 록 방송국에서 선곡한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이 최고음량으로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대단히 전통적인 기사의 외모와 전혀 전통적이지 않은 음악적 선호도가 부조화를 이루었다. 기사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고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더니 젤리하에게 휘파람을 불며 소리쳤다.
“내가 좀 가져야겠는데!”
그러나 젤리하의 말에 눌려 그의 다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변태자식 같으니! 이 도시에서 여자는 평화롭게 걸을 수도 없어?”
택시기사가 되물었다.
“당신을 태워주겠다는데 왜 걸어가겠다는 거야? 그 섹시한 몸매가 온통 젖는 건 바라지 않을 텐데?”
뒤쪽에서 마돈나가 ‘나의 두려움은 빠르게 사라지고 당신을 위해 모두 남겨두었어요’라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를 때 젤리하는 다시 욕하기 시작했고, 깨서는 안되는 또 다른 불문법을 어기고 말았다. 이번에는 프티트마의 불문법이 아니라 정숙한 여성에 대한 법이었다. 당신을 괴롭히는 자에게 절대로 욕하지 말라.
이스탄불의 정숙한 여성의 황금 법칙:
길거리에서 누가 괴롭히더라도 절대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괴롭히는 자에게 반응을 보이거나 심지어 욕하는 여성은 상대의 감정을 더욱 북돋을 따름이다!
젤리하도 이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 법을 어길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으나 칠월의 이 첫 번째 금요일은 달랐다. 무책임하고 건방지며 두려울 정도로 격한 새로운 자아가 그녀의 내면에서부터 풀려나왔다. 주로 그녀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가 이제 주도권을 획득한 또 다른 젤리하는 두 젤리하의 이름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녀는 목청껏 욕을 해댔다. 그녀가 마돈나의 노랫소리보다 더 크게 욕을 퍼붓자 행인과 우산 행상들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그녀를 따라오던 스토커가 미친 여자와 상대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정숙하지도 않고 겁쟁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씩 웃으면서 이 소란을 즐겼다. 젤리하는 남자의 이가 하얗고 충치 하나 없는 것을 보고 놀라서 혹시 치아에 도기를 씌운 건 아닌지 궁금한 마음까지 들었다. 뱃속에서 점점 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위장을 뒤흔들고 맥박을 빨리 뛰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는 가족의 어느 여자보다 먼저 남자를 죽이게 될 거라는 예감까지 느꼈다.
젤리하에게는 다행히도, 택시 뒤의 토요타 운전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경적을 울렸다.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녀는 제 감각을 되찾고는 이 침울한 상황에 몸서리를 쳤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폭력적인 성향이 두려웠다. 그녀는 곧 평정을 되찾고 옆으로 물러서서 군중 사이를 뚫고 조금씩 나가보려고 했다. 서두르다가 그만 오른쪽 구두 뒷굽이 보도의 느슨해진 돌 사이에 끼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돌 아래의 물웅덩이에서 힘껏 구두를 들어올렸다. 그러다 그만 구두 굽이 부러지자 그녀는 절대로 떠올리지 말았어야 했을 법을 떠올렸다.
이스탄불의 정숙한 여성의 은의 법칙:
거리에서 누가 괴롭힐 때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괴롭힘을 당하고 겁을 먹어서 과도하게 반응했다가는 스스로 문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택시기사가 큰 소리로 웃고 뒤의 토요타가 다시 경적을 울리고 비는 빠르게 내렸다. 행인 몇 명이 혀를 찼지만, 그들이 정확히 무엇에 대해 책망하는지는 분별하기 어려웠다. 그 소란 한가운데에서 젤리하는 택시 뒤꽁무니에서 반짝이는 무지개빛 범퍼 스티커를 보았다. 스티커는 다음처럼 선언하고 있었다. ‘나를 지독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지독한 사람에게도 마음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녀는 멍하니 글귀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피곤해졌다. 너무 피곤하면서도 허가 찔린 나머지 자신이 대면한 이 문제가 이스탄불인이라면 일상적으로 접하는 그런 문제와는 다르다고 여겨졌다. 이 문제는 일종의 비밀 암호이며, 먼 곳의 한 영혼이 특별히 그녀를 지목해서 해독해보라고 했건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도 밝혀내지 못할 것 같았다. 곧 택시와 토요타가 사라지고 행인들도 각자의 길을 갔다. 젤리하만 거기 남아 죽은 새를 안듯이 낙담하면서도 따사롭게 부러진 구두 굽을 움켜쥐었다.
젤리하의 혼란스러운 우주에 죽은 새가 포함되어 있을지 몰라도 좌절이나 따사로움은 없었다. 그런 것들은 절대로 갖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등을 쭉 펴고 어설프게나마 한 발로 걸어보았다. 곧 그녀는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군중 사이에서 매혹적인 다리를 드러내며 음정이 맞지 않는 노래처럼 절뚝거리며 빠르게 걸어갔다. 그녀는 갈색과 회색에 또다시 갈색과 회색으로 짜인 태피스트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라벤더 빛 실가닥이었다. 그녀의 색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는데도 군중은 공간을 만들어주며 조화롭지 못한 그녀를 흡수해서 자신들의 리듬 안에 넣어주었다. 군중은 호흡하고 땀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수천의 몸들의 결합이 아니라, 비를 맞으며 호흡하고 땀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한 덩어리였다. 사실 비가 내리든 해가 내리쬐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스탄불에서 걷는다는 것은 군중과 보조를 맞춘다는 뜻이었다.
젤리하는 낡은 갈라타 다리에서 한 손에 우산을, 다른 손에는 낚싯대를 들고 아무 말 없이 일렬로 서 있는 거친 인상의 낚시꾼 수십 명 앞을 지나쳤다. 그들의 정지 능력이 부러웠다. 존재하지도 않는 물고기를,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너무 자그마해서 결국은 절대로 잡을 수 없는 또 다른 물고기의 미끼로밖에 사용되지 못할 물고기를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능력이라니! 거의 얻는 게 없으면서도 많은 것을 얻는 능력은, 하루해가 질 때면 빈손이면서도 아주 만족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능력은 대단했다! 이 세계에서 평온함은 행운을 가져오고 행운은 더없는 행복을 가져오는 것 같다고 젤리하는 추측해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자신은 그런 평온함을 맛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분명 오늘은 아니야.
그녀는 갈 길이 바빴는데도 그랜드바자르의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들어와서는 점차 걸음을 늦추었다. 가게 앞의 진열장들을 훑어보면서 사지는 않아도 잠깐 보고만 가자고 생각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서부터 연기가 말려 올라가자 기분이 나아지고 긴장이 풀렸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는 이스탄불에서 거의 존경받지 못했지만 그게 어떻다고? 젤리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사회에 맞서 이미 한바탕 전투를 벌이지 않았던가?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바자르에서도 오래된 구역 쪽으로 걸어갔다.
이 구역의 보석상 중에 그녀의 이름을 아는 상인들이 몇 있었다. 젤리하는 반짝이는 장신구라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크리스털 머리핀, 모조 다이아몬드 브로치, 화려한 귀걸이, 진주 단추, 얼룩무늬 스카프, 공단가방, 시폰 숄, 실크 폼폼 장식, 굽이 높은 구두 등이었다. 바자르를 지나칠 때면 최소한 몇몇 가게에 들러 상인과 흥정하고 결국에는 구입할 생각이 없었던 물건을 제시된 가격보다 싸게 샀다. 그러나 오늘은 노점 몇 군데와 진열창만 휙 살펴볼 것이다. 그게 전부다.
젤리하는 갖가지 색깔과 종류의 허브와 향신료가 들어 있는 항아리와 단지, 병들이 빼곡하게 진열된 매대 앞을 서성였다. 아침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세 언니 중 하나가 계피를 사오라고 부탁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서로 어느 것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언제나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갖고 있으며, 서로에게서 배울 건 없지만 가르칠 건 많다고 믿고 있는 네 자매중 막내였다. 숫자 하나 때문에 아깝게 복권 상금을 놓친 것처럼 기분이 찜찜했다. 어떤 방법으로 상황을 고려하려고 해봐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의에 복종한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쨌거나 젤리하는 계피를 조금 구입했는데, 잘 빻은 가루 대신 계피 스틱이었다. 상인이 제안한 차와 담배와 수다를 그녀는 전부 받아들였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의 눈이 무감각하게 선반을 훑다가 유리찻잔 세트에 멈추었다. 그 세트 역시 그녀가 사지 않고서는 못 배길 품목이었다. 금박의 별이 그려진 유리찻잔과 가느다랗고 섬세한 스푼, 가운데에 금박으로 테를 두른 깨지기 쉬운 접시까지. 집에는 전부 다 그녀가 사들인 유리찻잔 세트가 최소한 삼십 개는 있었다. 그러니 한 세트 더 사봤자 문제될 건 없을 터이며, 어차피 잘 깨지는 물건 아니던가.
“염병하게 잘 깨져서…”
젤리하가 남이 듣지 못할 정도로 나지막하게 중얼댔다. 그녀는 유리찻잔이 깨질 때 카잔지 여성들 중에서 유일하게 분노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 한편 일흔일곱 살의 프티트마는 그녀와는 전혀 다르게 대응하곤 했다. 프티트마는 찻잔이 금이 가고 깨질 때마다 외쳤다.
“또 악의 눈이 왔어! 저 불길한 소리 들었어? 쨍그랑! 아, 내 마음속까지 메아리치는데! 아주 질투심이 많고 사악한 사람의 악의 눈이야. 알라께서 우리 모두를 보호해주시길!”
프티트마는 유리가 깨지거나 거울에 금이 갈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이 지구에서 사악한 사람들을 완전히 근절시킬 수 없다면 그들의 악의 눈이 신의 순결한 영혼 속까지 파고들어서 우리의 삶을 망가트리느니 차라리 유리라는 변경에 부딪치는 편이 나았다.
20분 후에 젤리하는 시에서도 가장 부유한 구역의 한 세련된 사무실 안으로 급하게 들어섰다. 한 손에는 부러진 구두 굽이, 그리고 다른 손에는 방금 전에 구입한 유리찻잔 세트가 들려있었다. 그녀는 안에 들어간 후에야 포장까지 해둔 계피스틱을 그랜드바자르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낙담했다.
대기실에는 머리스타일이 엉망인 여자 셋과 머리카락이라고는 거의 없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젤리하는 그들이 앉아 있는 자세를 보자마자 가장 젊은 여자가 걱정도 가장 없는 편이라고 추측했다. 나른한 자세로 여성지에서 기사는 읽지 않고 그림만 대충 보는 것으로 보아 피임약 처방을 갱신하려고 온 것이 분명했다. 창가에 앉은 통통한 금발여인은 삼십대 초반 정도였고, 검은 모근이 올라오고 있어서 당장 염색을 해야 할 듯 싶었다. 신경질적으로 발을 흔들면서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는 폼이 정기적인 부인과검사와 일 년에 한 번 하는 자궁암검사를 하러 온 것 같았다. 남편과 함께 온 두건을 쓴 세 번째 여자는 입가가 축 처지고 눈살을 찌푸린 모양이 그중에서 가장 불안해 보였다. 젤리하는 그녀가 불임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젤리하는 관점에 따라서는 불임이 성가신 문제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은 불임이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비서가 멍청하고 가짜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으나, 연습을 많이 해둔 탓인지 전혀 멍청하지도 가짜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세 시 약속이었죠?”
비서는 ‘ㅅ’ 발음이 힘들었는지 특별히 길게 늘여서 보완하려는 것 같았다. 그 불길한 발음에 혀가 닿을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특별히 미소를 지었다. 젤리하는 비서의 짐을 덜어줄 요량으로 곧장 고개를 끄덕였으나, 지나치게 진지하게 끄덕인 듯했다.
“세 시 약속이신 환자분, 오늘은 정확히 무슨 일로 오셨죠?”
젤리하는 그 질문의 불합리성을 무시했다.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여성들의 쾌활함이 자신의 삶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어떤 여성들은 미소 짓는 일에만 전념해서, 의무감을 갖고 스파르타식으로 미소를 지었다. 젤리하는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도 마음 한 귀퉁이에서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 질문을 무시하며 대답했다.
“낙태요.”
그 단어가 공중에서 맴돌자 다들 그 단어가 아래로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비서의 눈이 작아졌다가 다시 커졌고 얼굴의 미소도 사라졌다. 젤리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쾌활한 여성 때문에 자신의 내면에서 보복성이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예약을 했는데…”
젤리하는 귀 뒤쪽의 작은 귀걸이를 잡아당기면서 머리칼을 검고 두툼한 부르카(이슬람 여성의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는 베일-역자)처럼 얼굴과 어깨에 둘렀다. 턱을 쳐들자 매부리코가 강조되었다. 그녀는 한 번 더 말할 필요를 느끼고 이번에는 의도했던 것보다(아닐 수도 있지만) 한 단계 높게 말했다.
“낙태 때문에요.”
비서는 이 신규 환자를 공평하게 등록하는 일과 이 뻔뻔스러운 환자를 책망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가죽장정의 공책을 펼쳐놓은 채 마냥 서 있었다. 몇 초가 흐른 후에야 비서가 드디어 끼적대기 시작했다. 젤리하가 중얼댔다.
“늦어서 미안해요.”
벽시계로는 이미 46분이 늦은 시간이었고, 젤리하는 자신이 멀리 떠간다는 느낌으로 잠시 시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비 때문에요…”
비 때문에 늦었다고 하는 건 그다지 공정하지 못했다. 교통 혼잡과 망가진 보도의 돌, 시 행정부, 스토커, 택시기사, 더군다나 쇼핑하느라 지체한 것까지 모두 지각에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젤리하는 그중 어느 이유도 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스탄불의 정숙한 여성의 황금 법칙을 어겼을지도, 또한 이스탄불의 정숙한 여성의 은의 법칙을 어겼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동의 규칙은 고수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의 정숙한 여성의 동(銅)의 규칙:
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하면 그 일은 잊어버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좋다.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하다가는 신경이 망가지기만 할 것이다!
(제1장 「계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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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엘리프 샤팍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스페인과 요르단에서 10대 시절을 보냈고, 터키로 이주해 앙카라에 있는 미들 이스트 테크니컬 대학을 졸업했다. 터키에서 터키 메블라나 문학상과 터키 소설상을 수상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타임>, <월스트릿 저널> 등에 기고했으며 미국공영라디오(NPR)에도 출연했다. 현재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Saint of Incipient Insanities』, 『The Flea Palace』, 『The Gaz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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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한은경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선임연구원. 옮긴책으로 『긍정의 힘 축복편』, 『긍정의 힘 for Moms 』, 『온가족이 함께 읽는 구약성서 이야기』, 『온가족이 함께 읽는 신약성서 이야기』, 『사랑의 역사』, 『메디치가 이야기 』, 『피츠제럴드 단편선 2』, 『아틀란티스로 가는 길』, 『거울아 거울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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