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책을 펴내며 l
어린이책을 통해 본 옛이야기 전승의 현주소
이 책은 주로 2008년 한 해 동안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발행하는 『도서관 이야기』에 연재했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각주1) 도서관 측으로부터 어린이용 옛이야기 책들의 매력과 가치를 평가해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그림책 중심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린이 독자를 겨냥한 옛이야기 책들이 대부분 그림책이어서 주요 분석 대상이 그림책이 되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옛이야기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글을 쓰기 전에는 작업이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옛이야기 그림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분석 대상으로 삼을 자료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옛이야기 그림책은 시중 서점에서 낱권으로 판매되는 것보다 전집으로 판매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고 비평을 위해 전집류 그림책을 여러 질 구입해서 비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있다면 낱권으로 판매되는 책이어야 독자들이 쉽게 구해서 볼 수 있을 터라 단행본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다 단행본 가운데 마땅한 책이 눈에 띄지 않으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가서 전집류 그림책들을 빌려 보았다. 이 도서관에서는 모든 책이 관외 대출이 되지 않는 데다 절반 정도는 폐가식 서고에 보관돼 있어서 전집류 책을 살펴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중요한 책들은 복사를 해서 집으로 가져와 흑백 자료를 보면서 낮에 본 빛깔을 떠올려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전집류 그림책에 대한 분석은 어쩔 수 없이 글 중심이 되어버렸다.
우리 어린이들이 보는 옛이야기 그림책은 대개 ‘세계 명작동화’와 ‘한국 전래동화’로 나뉘어 출간되고 있다. ‘세계 명작동화’라는 표제를 내건 그림책들은 주로 샤를 뻬로, 그림 형제, 조지프 제이콥스, 오스카 와일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을 원작자로 내세운 책들이다. ‘한국 전래동화’로 일컬어지는 그림책들은 구전설화, 무속신화, 고전소설 따위를 어린이에게 읽히기 쉬운 옛이야기로 바꾸어 담은 책들이다.
이 두 갈래의 옛이야기 그림책 가운데서 평가하기 쉬웠던 것은 ‘세계 명작동화’에 속하는 책들이다. 요정담을 쓴 유명한 서양 작가들의 전집은 거의 모두 우리말로 완역되어 있고, 영어 완역본은 ‘인터넷 아카이브’(www.archive.org)나 ‘프로젝트 구텐베르그’(www.gutenberg.org)와 같은 인터넷 싸이트에서 쉽사리 찾아 볼 수 있다. 서양 옛이야기를 담은 국내 그림책들을 완역본과 대조해보니 많은 책이 이야기의 여줄가리뿐 아니라 서사의 뼈대와 인물 설정까지 손질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원작자 이름을 잘못 표기한 책이 무척 많았다. 작가 또는 편집자가 원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빨간 모자」는 뻬로 본과 그림 형제 본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듯하다. 또 제이콥스의 옛이야기 모음집에 들어 있는 「아기 돼지 삼 형제」와 월트 디즈니 영화사의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줄거리가 다른데, 원작자는 제이콥스로 표기하고 디즈니의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소개한 책도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 특히 유아들이 많이 볼 그림책에서 원작의 줄거리를 마음대로 바꾸고 원작자 이름을 제멋대로 붙인다면 어린이가 서양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해독력’(cultural literacy)을 기르기란 요원할 것이다.
‘한국 전래동화’로 일컬어지는 그림책들을 분석하는 데는 ‘세계 명작동화’ 책들을 분석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많이 들었다. 작가들이 옛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매력과 가치를 제대로 되살렸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전으로 삼은 설화 자료를 알아야 한다. 구전설화, 무속신화, 고전소설에는 수없이 많은 각편과 이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자신이 참조한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이상 다시쓰기나 고쳐쓰기(각주2)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거의 모든 국내 작가가 자신들이 참조한 자료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무속신화 「바리공주」는 2004년까지 수집된 각편이 88편이 넘고, 구전민담 「나무꾼과 선녀」는 채록된 각편의 수가 100편이 넘으며, 「구렁덩덩 신선비」도 십 년 전까지 채록된 각편 수만 60편이 넘는다. 무속신화와 구전설화만 각편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심청전」은 지금까지 발굴된 이본의 수가 무려 230여 종이나 된다. 심청 이야기는 고전소설 본, 판소리 창본, 무가 본 등의 멋과 맛이 서로 달라서 그 방대한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년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책에서 일러두기나 후기 형식으로라도 작가가 어떠한 각편이나 이본을 참조했는지 밝혀야 그 완성도가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옛이야기 그림책에 옛사람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제대로 표현되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각편과 이본 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전공자들의 연구서와 논문을 찾아 읽었지만 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국내 작가 대부분이 원전을 밝히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폴 젤린스키라는 미국 그림책 작가는 『룸펠슈틸츠헨』(1986; 이지연 옮김, 베틀북 2001)이나 『라푼쩰』(1997) 같은 그림책에서 이야기를 그림 형제 본과는 다르게 구성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림 형제 본을 왜 변형했고 어떠한 설화 자료를 참조했는지 독자와 평자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그 출처를 상세히 밝혀놓았다. 19세기 작가 그림 형제와 제이콥스도 자신들의 옛이야기 책 말미에 주(註) 형식으로 이야기들의 출처를 상세히 밝혀놓았을 뿐만 아니라 독자가 개작 양상을 알 수 있게 부연 설명까지 해놓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어린이용 옛이야기 책에는 그림책뿐만 아니라 이야기책에도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다. 이 점이 안타까워 몇몇 어린이책 작가에게 그 까닭을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떤 작가는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이 관행이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느 한 각편이나 이본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에서 화소를 다양하게 뽑아 재구성한 것이어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옛이야기에는 고정된 원형이나 정본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이야기를 바꿀 권리가 있다고, 구태여 원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사람이 구연한 이야기일지라도 각편마다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하늘 아래 똑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는 주장이다.
옛이야기 책을 만든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겠지만, 과연 그들 가운데 각편 또는 이본을 찾아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용이 엇비슷한 책들이 꽤 여럿인 걸 보면 많은 어린이책 작가와 편집자 들이 각편이나 이본을 공들여 찾아 읽지 않고 다른 출판사에서 앞서 출간한 책들에서 줄거리를 따오고 여줄가리를 조금씩 변형하는 손쉬운 전략을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든다. 옛이야기 책 제작의 주요 목적이 옛사람들이 남긴 이야기의 매력과 가치를 어린이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라면 작가와 편집자는 당연히 옛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들을 두루 찾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옛사람들이 들려주고 싶어한 이야기의 형상이 그려진다. 완성도가 뛰어난 각편 하나가 뚜렷하게 우리 마음속에 울림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여러 각편의 보편적인 화소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옛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한 울림이나 떠오름에 충실한 다시쓰기나 고쳐쓰기만이 옛사람들의 삶과 꿈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줄 수 있다.
옛이야기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은 자신이 고른 책의 작가가 옛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줄거리와 인물 설정을 충실하게 따왔을 거라고 믿기 마련이다. 작가들이 옛이야기 전복을 시도한 패러디동화나 창작옛이야기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면 옛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옛이야기 책이 대부분 취학 전 유아(4~7세)를 겨냥한 그림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여러 민족의 심층심리에 내재된 문화 코드를 연구한 끌로떼르 라빠이유도 “우리는 대부분 7세까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물의 의미를 각인”(각주3)하며, “어린 나이에 잠재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강력한 각인은 그들이 어떤 문화에서 성장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각주4)고 말한다. 취학 전 유아가 ‘변형된 옛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읽고 자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을 ‘옛사람들의 이야기’로 착각할 위험이 크다. 우리 이야기들이 일그러진 형태로 후손에게 전승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편, 「나무꾼과 선녀」 「구렁덩덩 신선비」 「흥부전」 「심청전」에 대해 글을 쓸 때 평가 대상에 전집류 그림책을 대폭 포함한 것은 우리 옛이야기 전승에서 그림책 전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어린이책은 절반 이상이 전집류이고, 어린 자녀를 둔 가정집에도 전집류 ‘한국 전래동화’나 ‘세계 명작동화’가 한 질 이상은 갖춰져 있기 마련이다. 2007년에 아동학자들이 서울·경기도 지역 어머니 2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 가구가 소유한 유아용 전집이 평균 여섯 질이 넘는다고 한다. 권수로 따져도 각 가정이 소유한 유아용 전집류 책이 단행본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하니, 어린이책에서 전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이나 크다.(각주5) 그런데 거의 모든 부모가 전집에 대한 전문가들의 서평을 본 적이 없어서 이웃의 추천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에 의지해 전집을 구입한다고 한다.
전집에 대한 추천 평이나 정보는 전집에 속한 책 한 권 한 권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 질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쓸모있는 지침이 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권마다 작가가 다르기 때문에 한 전집에 속한 책들이라도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다. 또 인지도가 높은 출판사가 만든 책일지라도 편집자가 한꺼번에 수십 종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 쓰기 힘들기 때문에 전집에는 수준이 떨어지는 책이 상당수 끼여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집류 책은 단행본과는 달리 비평가들이 일일이 구입해서 볼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독자에게 쉽사리 알려지지 않는 비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전집류 그림책이 초등학교 교과서와 더불어 우리 옛이야기 전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요 매체라는 사실은 우리 전통문화의 앞날을 걱정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창작 그림책 두 권을 소개한 까닭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하나는 정승각이 쓰고 그린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통나무 1994; 초방책방 2001)이고, 다른 하나는 앤서니 브라운이 쓰고 그린 『터널』(1989; 장미란 옮김, 논장 2002)이다. 이 두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까닭은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바탕이 된 그림책이기는 해도 ‘옛이야기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지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는 ‘일식과 월식’이라는 민간신화와 아기장수 전설에 담긴 비극성을 민담적인 상상력으로 극복한 책이다. 옛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들, 특히 신화나 전설 가운데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내용,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주기에는 꺼림칙한 내용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책 작가들이 신화, 전설, 고전소설을 함부로 고쳐쓰면 아이들이 옛사람들의 삶과 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딜레마의 해법을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은 ‘세계 명작동화’의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 하는 「빨간 모자」와 「잭과 콩나무」에 담긴 성차별주의를 드러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 책이다. 샤를 뻬로, 그림 형제, 안데르센의 요정담은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기는 하지만 모든 면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가부장제 가치관, 지나친 기독교주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성차별주의, 엘리뜨의식과 같이 ‘정치적 올바름’ 차원에서 문제 삼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제법 있다. 똑같이 그림 형제의 작품일지라도 「빨간 모자」와 「헨젤과 그레텔」이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은 꽤 다르다. 브라운은 『터널』에서 「빨간 모자」가 지닌 문제점을 누이가 오빠의 구원자로 등장하는 다른 옛이야기를 통해 보완하고자 하였다.
서양이든 우리나라든, 옛이야기의 독자 또는 청자인 우리가 사는 시대와 옛이야기를 남긴 사람들이 산 시대는 서로 다르다. 옛이야기에서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내용이 눈에 띄면 작가나 편집자가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고쳐쓰거나 새로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옛것을 고쳐쓰거나 새로써서 ‘옛것보다 더 나은 새것’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옛것의 미덕과 한계를 충분히 알 정도로 옛것을 사랑한 사람만이 그러한 도전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작가가 옛것에 대한 사랑 없이 새것을 갈망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옛사람들과 이야기 겨루기를 해서 번번이 지고 만다. 이 책이 옛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지닌 독자들, 옛것보다 나은 옛이야기를 쓰려는 바람을 지닌 작가들에게 조그마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2009년 10월
김환희
l 제1부 l 우리 옛이야기
l 제1장 l 「신데렐라」와 닮은꼴이 된 그림책 『콩쥐팥쥐』
1. 「콩쥐팥쥐전」과 「신데렐라」가 그림책에 끼친 영향
「콩쥐팥쥐」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우리 대표 설화다. 또한 서양의 「신데렐라」와 같은 민담 유형에 속하는 세계 광포(廣布) 설화다. 이 두 설화의 유사성에 일찌감치 주목한 최남선(崔南善)은 1929년에 이미 「조선의 콩쥐팥쥐는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콩쥐팥쥐」는 옛사람들이 입말로 전승해온 민담과 같다고 보기 어렵다. 「콩쥐팥쥐」가 20세기 초에 고전소설 「콩쥐팥쥐전」으로 변용되어 널리 읽혔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학자들이 발굴한 「콩쥐팥쥐전」의 최초 이본은 1919년에 대창서원에서 출간한 활자본(작자 미상)이다. 하지만 구전민담의 경우 그보다 한 해 앞서 임석재(任晳宰)가 전북에서 채록한 자료가 있다. 또 1911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옛 한국의 요정담 Fairy Tales of Old Korea』이라는 책에 ‘콩쥐팥쥐형’ 설화가 실려 있다. 이렇듯 기록상으로 구전민담 「콩쥐팥쥐」가 「콩쥐팥쥐전」보다 앞선다.(각주1) 이 밖에도 구전 현장에서 채록된 각편들이 우리 무속신화의 흔적을 지니고 있고 동종 민담이 동아시아의 여러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콩쥐팥쥐」는 아주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오늘날 아이들이 보고 있는 그림책 『콩쥐팥쥐』는 구전민담보다 고전소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던 설화가 고전소설이나 전래동화와 같은 글문학으로 변용되어 널리 읽히게 되면 글로 쓰인 이야기가 막강한 힘으로 옛이야기 전승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린이책이나 초등학교 교과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구비전승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콩쥐팥쥐」 전승의 경우 구전 현장에서 채록된 각편들이 대부분 1980년대 이후에 책에 담겨 나왔기 때문에 그 전에 출간된 어린이책은 대부분 고전소설 「콩쥐팥쥐전」을 원본으로 삼았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그림책 『콩쥐팥쥐』는 「콩쥐팥쥐전」뿐만 아니라 서양 요정담인 「신데렐라」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샤를 뻬로(Charles Perrault)의 「신데렐라」(1697)는 방정환(方定煥)이 1920년대 초엽에 『사랑의 선물』(개벽사)에 실어서 일찌감치 소개되었고, 월트 디즈니(Walt Disney) 영화사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1950)도 소개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아이들이 보는 많은 『콩쥐팥쥐』에서 콩쥐는 디즈니의 「신데렐라」처럼 잃어버린 작은 신발 덕분에 높은 신분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런데 이러한 결말은 구전민담이나 고전소설이 펼쳐 보여주는 콩쥐의 삶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과연 그림책 『콩쥐팥쥐』가 우리 옛사람들이 남겨준 이야기의 매력과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지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2. 구전민담 본과 고전소설 본의 차이
지금까지 발굴된 구전민담 「콩쥐팥쥐」 가운데 최초의 각편은 1918년에 전북 정읍에서 채록된 것(각주2)이다. 고전소설 「콩쥐팥쥐전」의 공간적인 배경이 전주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콩쥐팥쥐」는 전북 지역에서 일찍부터 전승되었던 듯하다. 전북 민담 본과 「콩쥐팥쥐전」을 비교해보면 전반적인 서사구조는 매우 비슷하다.(각주3) 계모의 학대를 받던 콩쥐가 평양감사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두 판본 모두 결혼 이후의 이야기(결혼 후일담)를 담고 있다. 감사와 결혼한 콩쥐는 팥쥐 모녀의 계략에 넘어가 물에 빠져 죽고 팥쥐가 자신이 콩쥐인 것처럼 감사를 속여 아내 노릇을 한다. 죽은 콩쥐는 연꽃과 오색 구슬로 변신했다가 사람으로 환생해서, 아내가 뒤바뀐 사실을 몰랐던 어리석은 남편을 꾸짖고 팥쥐 모녀를 단죄한다. 이러한 결혼 후일담은 다른 구전민담 본에서도 대부분 발견된다.
그런데 세부적인 설정과 사건 전개에서는 전북 민담 본과 「콩쥐팥쥐전」이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첫째, 전북 민담 본에서는 등장인물의 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배다른 자매의 이름만 ‘콩쥐와 퐅쥐’로 되어 있고 다른 인물의 성이나 이름은 알 수 없는 반면 「콩쥐팥쥐전」에서는 콩쥐 어머니 이름이 조 씨, 아버지 이름이 최만춘, 계모 이름이 배 씨, 감사 이름이 김 씨로 명시돼 있다. 둘째, 전북 민담 본에는 콩쥐가 암소한테서 음식을 얻어오기 위해 한 행동을 팥쥐가 그대로 따라 하다가 욕심을 너무 부려 피투성이가 되는 일화가 들어 있다. 셋째, 전북 민담 본에는 계모가 콩쥐하고 팥쥐한테 누가 베를 많이 짜는지 내기를 하라고 하는 대목이 들어 있다. 볶은 콩과 새 북을 가진 콩쥐가 찰밥과 질이 난 헌 북을 가진 팥쥐보다 베를 더 잘 짜자 계모가 바꿔서 내기를 하라고 한다. 결국 두 번째 베 짜기 내기에서도 콩쥐가 이기자 계모는 콩쥐를 더욱 미워한다. 넷째, 전북 민담 본에는 선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계모가 시킨 일을 콩쥐가 다 해놓고 잔칫집에 가려고 할 때 입고 갈 옷이 없어 울고 있자 하늘에서 암소가 내려와 옷과 예쁜 갓신을 준다. 이 암소는 콩쥐의 죽은 어머니 영혼이다. 하지만 「콩쥐팥쥐전」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직녀(織女)가 베 짜는 일도 도와주고, 새로 지은 옷 한 벌과 댕기와 새 신발을 준다.
이 밖에도 「콩쥐팥쥐전」에는 감사가 전라감사로 되어 있고, 전북 민담 본에는 평양감사로 되어 있다. 또 민담 본에서는 감사가 계모와 팥쥐를 들이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팥쥐가 뜨거운 팥죽을 가져오는 바람에 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 판본의 차이는 결말에서 뚜렷이 엿볼 수 있다. 민담 본에서 콩쥐는 구슬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저절로 변신하지만, 「콩쥐팥쥐전」에서 콩쥐는 혼령으로 있다가 감사가 시신을 연못에서 건져내주자 비로소 소생한다. 또 민담 본에는 팥쥐 모녀가 죽은 뒤에 콩쥐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콩쥐팥쥐전」에는 최만춘이 또다시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살았다는 후일담이 들어 있다.
전북 민담 본에 들어 있는 거의 모든 화소는 평북 민담 본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팥쥐가 암소한테서 맛있는 음식을 얻기 위해 암소 밑구멍에다 손을 넣었다가 빼지를 못해 피투성이가 되는 것, 콩쥐와 팥쥐가 길쌈 내기를 하는 것, 콩쥐가 잔치에 갈 때 입을 새 옷과 갓신을 주는 조력자가 선녀가 아니라 암소라는 것, 콩쥐가 감사의 도움 없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콩쥐 아버지의 세 번째 결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등이 1930년대에 채록된 평북 민담 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 평북 민담 본은 임석재가 당시에 전승되던 열다섯 편의 각편을 종합한 것(각주4)이어서 구전민담 「콩쥐팥쥐」의 본디 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초기에 채록된 구전민담 「콩쥐팥쥐」가 지닌 문화적·교육적 가치는 고전소설 「콩쥐팥쥐전」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구전민담에는 「콩쥐팥쥐전」에서는 맛보기 힘든 옛이야기의 특성, 옛사람들의 지혜와 슬기가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선 ‘팥쥐의 콩쥐 따라 하기’라는 모티프는 세계 곳곳의 옛이야기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혹부리 영감」이나 「흥부와 놀부」에서처럼 남의 행복을 시기해서 그 행동을 따라 한 인물이 벌을 받는 이야기는 다른 나라 옛이야기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콩쥐와 팥쥐의 길쌈 내기’란 모티프도 여성의 삶을 반영하고 문화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어서 중요하다. 구전민담은 글을 모르던 민중이 전승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일하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의 고된 삶이 잘 투영되어 있다. 또 길쌈은 여성의 경제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상고시대부터 옛사람들은 여성의 길쌈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1285)에 등장하는, 여신의 이미지를 지닌 성모산 성모와 세오녀는 모두 직녀였다. 그리고 많은 구전민담 본에서 콩쥐에게 새 옷과 갓신을 준 조력자가 선녀가 아니라 죽은 어머니의 영혼이 들어 있는 암소라는 점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원이 오래된 설화에는 대부분 조력자로 사람 형상을 한 인물이 아니라 동물이 등장하는만큼, 이로서도 「콩쥐팥쥐」가 상고시대부터 전승되었을 가능성은 커진다.
전북과 평북에서 1920년대와 30년대에 채록된 구전민담 본이 고전소설 본보다 나은 또다른 까닭은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이 진취적이기 때문이다. 두 판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구전민담 본에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고전소설 본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민담 본에서 ‘구슬 콩쥐’는 저절로 온전한 사람으로 돌아오지만, 고전소설 본에서는 감사 남편이 팥쥐를 문초해서 시신을 연못에서 건져낸 뒤에야 소생한다. 또 고전소설 본에서 팥쥐는 젓갈로 담겨져 계모에게 보내지고 계모는 그 충격으로 참담하게 죽는데, 딸의 고통에 무심했던 콩쥐 아버지는 어떠한 벌도 받지 않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낸다. 하지만 두 민담 본에는 젓갈 화소도 등장하지 않고 콩쥐 아버지의 세 번째 결혼에 대한 언급도 없다.
(머리말 전문, 제1장 부분)
주(註)
l 책을 펴내며 l
1 다른 매체에 실었던 글의 출처는 각 글 맨 앞에 따로 밝혔다. 2부에 실린 「페미니즘 시대에 다시 읽는 「헨젤과 그레텔」」은 새로 쓴 글이다.
2 옛이야기 재화나 개작, 활용을 나타내는 ‘다시쓰기’ ‘고쳐쓰기’ ‘새로쓰기’라는 용어에 대한 자세한 이해는 서정오가 쓴 『옛이야기 들려주기』(보리 1995)의 27~55면 참조.
3 끌로떼르 라빠이유 『컬처코드』, 김상철·김정수 옮김, 리더스북 2007, 42면. 그가 말하는 ‘각인’(imprint)이란 “경험과 그에 따르는 감정이 결합되면”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 잠재의식 속에 일단 각인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우리의 사고 과정을 강하게 규정하고 미래의 행동을 만들어낸다”고 한다(19면).
4 같은 책, 43면. 라빠이유는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가 말한 ‘각인’ 개념을 활용해, 각 민족의 심층심리에 숨어 있는 문화 코드를 읽어내거나 주어진 상품을 소비할 민족의 무의식에 마케팅에 필요한 내용을 각인시킴으로써 구매력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기업가들에게 보여주었다.
5 조은숙·오정옥·윤현민 「유아용 전집류의 출판 현황과 소비행태에 관한 연구」, 『유아교육연구』 제28권 1호, 한국유아교육학회 2008, 211~34면 참조.
l 제1장 l 「신데렐라」와 닮은꼴이 된 그림책 『콩쥐팥쥐』
1 김환희 「비교문학 시각에서 본 「콩쥐팥쥐」의 기원과 특성」, 『옛이야기의 발견』, 우리교육 2007, 204~10면 참조.
2 『임석재전집 7-한국구전설화: 전라북도편 I』, 평민사 1990, 264~70면. 임석재는 1918년 전북 정읍에서 채록한 각편과 1923년 전북 순창에서 채록한 각편을 하나로 통합해 이 책에 실었다.
3 대창서원 본을 구하기 어려워 참조한 고전소설 「콩쥐팥쥐전」은 태화서관에서 1928년에 출간한 『콩쥐팟쥐젼』이다. 고전문학 전공자들이 쓴 「콩쥐팥쥐전」의 줄거리가 태화서관 본과 거의 같은 것을 볼 때 두 활자본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본다. 『인천대학민족문화연구자료총서①-구활자본 고소설전집 16』(은하출판사 1983)의 3~20면과, 태화서관 본을 현대어로 옮겨 수록한 『한국고전문학 3』(장덕순 감수, 명문당 2002)의 83~107면을 참조하였다.
4 『임석재전집 1-한국구전설화: 평안북도편 I』, 평민사 1987, 133~39면. 임석재가 소개한 평북 민담 본은 1935, 1936, 1938년에 채록한 각편 열다섯 편을 하나로 종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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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김환희
옛이야기 연구자, 어린이책 평론가. 1991년 단편소설의 본질과 서구 단편소설 이론의 한계를 분석한 「단편소설의 수사학」이란 논문으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여러 대학에서 아동문학, 전승문학, 비교문학에 관한 강의를 해왔다. 어린이와 어른,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문학을 공부해왔으며, '옛이야기'를 화두로 삼아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를 비교하면서 우리 옛이야기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살펴보고 있다. 더불어 옛이야기의 현대적 변용에 대해 공부하면서 『어린이문학』, 『창비어린이』, 『어린이와 문학』 등에 여러 평론을 발표해왔고, 『열린어린이』와 『도서관 이야기』에 옛이야기와 어린이책 관련 비평을 연재한 바 있다. 저서로 『국화꽃의 비밀』, 『옛이야기의 발견』,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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