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베어 물고
버린 사과는
알 레 고 리
원죄를
의미한다고?
알레고리란 드러나 보이는 것을 통해 숨은 속뜻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영화 「하이 눈」에서 보안관인 주인공이 주민들의 비겁한 외면 속에서 고독하게 악당과 싸우는 내용은, 이른바 매카시 선풍(미국 정치가 매카시가 일으킨 극단적 반공 선풍)으로 집단 공포가 만연하던 1950년대 초 미국의 정신적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자체는 보안관과 악당의 원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부극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의 모순과 이에 맞서는 개인의 용기에 대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알레고리는 그리스어 알레고리아allegoria로부터 왔다. 알로스allos(다르다)와 아고레위에인agoreuein(공중 앞에서 말하다)의 합성어로 ‘다른 이야기’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어원으로부터 우리는 알레고리가 겉으로 전해주는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야기에 관한 것이므로, 알레고리는 기본적으로 서사 구조에 의지하는 표현 형식이다. 문학이나 영화, 연극 같은 예술에서 알레고리의 다양하고 풍성한 표현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레고리가 꼭 언어적인 방법으로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적인 서술의 형식을 빌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미술 또한 나름의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는 까닭에 알레고리 형식을 발달시켜왔다.
미술의 알레고리는 일반적으로 정지된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 미술은 보통 정지된 시간, 곧 시간의 한 단면을 표현하는 예술로 이해된다. 한 화면 안에 여러 단계의 시간적 장면이 나열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예외적인 때에도 그 장면들은 몇 개의 정지된 이미지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자연히 감상자는 정지된 이미지로부터 메시지를 찾게 되고, 알레고리 역시 이런 정지된 이미지에 의지해 그 꼴을 갖추게 된다.
이 같은 특징은 미술의 알레고리가 문학이나 영화의 알레고리와 달리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것을 드러내는 데 큰 제약이 되었다. 그래서 미술의 알레고리는 그런 것보다 자선이나 아름다움, 미덕, 사랑, 젊음, 음악 등 주로 추상적인 개념이나 가치와 관련된 것을 드러내는 형식으로 발달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브론치노가 그린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를 통해 미술의 알레고리가 지닌 그 같은 특징을 이해해보자.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ㅣ브론치노ㅣ1540~50년경ㅣ유화ㅣ런던 내셔널갤러리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는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다. 가운데 서로 껴안고 키스하는 두 남녀가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다. 이들이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라는 사실은 황금사과와 화살로 알 수 있다. 아프로디테의 왼손에 들린 황금사과는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의 심판 때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받아 획득한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오른손에는 화살이 들려 있는데, 그것은 소년이 메고 있는 화살 통에서 뽑은 것이다. 그의 어깨에는 날개도 붙어 있다. 이로써 우리는 이 소년이 에로스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아프로디테의 곁에 그녀 쪽으로 장미꽃을 던지려는 아이가 보인다. 불행하게도 그의 오른발은 장미 가시에 찔려 있다. 어리석은 쾌락의 상징이다. 아이 뒤에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파충류의 몸통을 갖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변덕을 의미한다. 소녀의 꼬리 아래는 기만을 상징하는 가면이 있다.
에로스 왼편을 보면, 갈색 피부의 노파가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질투 혹은 성병을 나타낸다. 그 위로는 뒷머리가 깨진 여인이 푸른 천으로 앞쪽 사람들을 덮으려 하고 있고, 한 노인이 화를 내며 이를 막아서고 있다. 각각 망각과 시간의 상징이다. 망각은 여인의 뒷머리가 깨져 없는 것으로, 시간은 노인의 어깨에 모래시계가 얹혀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은 젊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그 뒤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법석대며 소동을 벌이는 모습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각의 인물이 나름의 상징으로 동원된 것이라는 사실이 파악되는 순간, 그림은 전혀 새로운 의미 구조를 열어 보인다. 곧 아름다움과 사랑은 그 자체로 소망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쾌락으로 추구되면 어리석음과 변덕, 기만, 질투(혹은 성병)의 노예가 되고, 이를 잊으려 해도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미술의 알레고리는 이렇듯 추상적인 개념이나 가치와 관련된 것을 드러내는 데 적합한 구조를 지녔다. 복잡한 사건이나 인물의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극단적으로 함축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 함축성만큼 풍성한 해석의 여지와 뉘앙스를 감상자에게 제공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미술의 알레고리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미술의 알레고리는 함축적인 표현으로 추상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카테리나 여제-정의의 여신의 신전에 선 입법자ㅣ레비츠키ㅣ1783ㅣ유화ㅣ러시아 미술관
18세기 러시아 화가 레비츠키가 그린 「예카테리나 여제-정의의 여신의 신전에 선 입법자」를 보자. 이런 초상화를 알레고리적 초상화라고 부르는데, 그려진 인물이 그 사람 자신이기 때문에 인물의 이미지 자체는 알레고리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지만, 주위에 여러 상징들이 동원돼 그 사람의 덕이나 위대성 등을 알레고리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제는 지금 밝은 색 옷을 입고 있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각상이 보인다.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의의 여신상임을 알 수 있다. 조각상 앞 제단에서는 잠의 신의 꽃인 양귀비가 타고 있는데, 이를 통해 평화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다. 여제 곁에 서 있는 새는 제우스의 독수리로, 발에 바게트 빵 모양의 번개를 쥐고 있다. 여제 왼편 뒤로 보이는 범선은 튀르크와 벌인 전쟁에서의 승리와 러시아의 흑해 진출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이런 상징들을 통해 우리는 예카테리나가 제우스에 버금가는 위대한 통치자이자 평화의 수호자, 정의로운 입법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관점은 당시 러시아의 진보적인 귀족들이 기대한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그들의 염원을 화가가 대신해 표현한 그림이라 하겠다.
서양미술사에서 알레고리를 활용한 미술작품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가장 활발히 제작됐다. 현대 들어 알레고리 회화가 많이 제작되지 않는 것은 화가들이 그때만큼 상징으로서의 이미지 표현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알레고리는 교훈적이거나 도덕적인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권선징악’적 표현은 종교와 전통의 도그마로부터 이탈하려는 현대미술가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추상회화의 등장은 화면에서 구체적인 이미지 자체를 아예 사라지게 해 알레고리의 표현을 위한 원천을 제거해버렸다. 미술의 상징이란 기본적으로 이미지고, 이런 구체적인 상징 이미지 없이 알레고리 회화를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포스트모던 시대에 들어 회화에서 이미지가 되살아나고 현실 비판이나 이성에 대한 회의 등이 미술의 중요한 주제가 되면서 과거와 같은 형식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알레고리적 접근이 새로이 시도되고 있다. 풍성한 이야기 그림의 시대가 다시 움트고 있는 것이다.
ANOTHER WORD
상 징
상징은 연상이나 유사성, 인습 등의 상관관계를 통해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데 동원된 사물이나 그림, 단어, 기호 등을 말한다. 주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 따위를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 또는 그 대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런 뜻풀이에서 알 수 있듯 의미가 되는 개념이나 사물을 영혼이라고 할 때 상징은 그것들을 위한 몸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성령을 직접적으로 나타낼 방도는 없지만 이를 온유한 비둘기 형상으로 그려 성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비둘기라는 ‘몸’을 통해 성령이라는 ‘영혼’이 드러나고 십자가라는 ‘몸’을 통해 속죄와 구원이라는 ‘영혼’이 드러난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폰태너는 “미술의 역사는 인류의 가장 감동적이고 의미로운 상징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미술이라는 예술은 그야말로 상징의 보고다. 의미는 전달해야겠고, 말과 글에 의존할 수만은 없는 까닭에 숱한 이미지들이 상징으로 기능했다.
고대 문명의 조상彫像 숭배에서 보듯 상징을 시각적으로 체험하는 일은 때로 우상화에까지 이르는 힘을 갖고 있다. 상징 이미지의 호소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옛날 사람들은 자연에 직관적으로 반응했던 까닭에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만물은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상징을 통해 그것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런 범자연적 의식뿐만 아니라 정의와 사랑 같은 추상적 가치에 반응하고 말을 걸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시각적·조형적 상징을 만들고 발달시켰다.
미술에서 알레고리는 주로 이런 상징을 통해 어떠한 현상이나 상황,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화 기법이다. 그런 점에서 상징은 의미를 위한 것이고 알레고리는 메시지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알레고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야기의 이중 메시지 구조를 갖게 된다. 하나를 말하면서 다른 것을 의미하는 형식인 것이다. 이때 이야기하고자 하는 속뜻은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대체로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경우가 많다.
레몬과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ㅣ수르바란ㅣ1633ㅣ패서디나 노턴 시몬 미술관
산뜻하고 깔끔하게 그려진 정물화다. 그러나 단순히 대상이 예뻐 한데 모아 그린 그림은 아니다. 화가가 그린 정물은 모두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화가는 성모마리아를 표현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 오른쪽 한 잔의 물은 순결을 상징한다. 쟁반에는 장미가 함께 놓여 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께 바치는 공경으로 묵주기도를 드리는데, 묵주가 ‘로사리오’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장미는 성모를 나타낸다. 가운데 바구니의 오렌지는 처녀성을, 그 위의 나뭇가지에 핀 여러 송이의 꽃은 풍요를 나타낸다. 맨 왼편의 레몬은 믿음의 상징이다. 잘 정돈된 정물의 인상은 테이블을 거룩한 제단처럼 느껴지게 한다. 성모의 신앙처럼 정갈한 제단이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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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이주헌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한겨레신문> 문화부 미술 담당 기자를 거쳐 학고재 아트스페이스 서울 관장을 지냈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 이야기꾼으로 활동해온 이주헌은 미술을 통해 삶과 세상을 보고, 독자들이 좀 더 쉽고 폭넓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저서로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2』, 『내 마음속의 그림』, 『이주헌의 아트 카페』, 『20세기 한국의 인물화』, 『클림트』, 『현대 미술의 심장 뉴욕』 등이 있고, 한국교육방송(EBS)에서 <이주헌의 미술기행>, <청소년 미술감상>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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