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핸드브레이크를
꽉 채워야지
새로 지은 목장 별채를 향해 슬금슬금 미끄러지며 뒷걸음질 치는 내 애마 스바루 레거시(Subaru Legacy)를 지켜보다가 불쑥 떠오른 생각은, 저런 식으로 계속 가면―못 갈 이유도 없어 보였다―최소한 기름은 덜 먹겠다는 것이었다. 펑키 뷰트 목장(Funky Butte Ranch, 목장 동쪽으로 펑키한 석회암 뷰트†가 있었고, 그곳에는 성생활이 아주 활발한 커다란 부엉이 두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이라고 직접 명명한 광활하고 다 쓰러져가는 16만 평방미터 뉴멕시코 목장에 입주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화석연료로 구동하는 낡은 해치백 승용차 ‘러브수비(LOVEsubee)’의 핸드브레이크를 마지막 찰칵 소리가 날 때까지 잡아당기는 일을 그만 깜박 잊고 말았다.
잘된 일이었다. 진심이다. 나는 자가용의 임박한 죽음이 내년의 4대 목표를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사태를 합리화했다. 4대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기름을 훨씬 더 적게 쓸 것.
2.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활의 동력을 공급할 것.
3. 최대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로 먹고 살 것.
4. 굶어죽거나, 감전사하거나, 동네 퓨마들의 밥이 되거나, 유엔을 두려워하는 이웃들의 총에 맞아 죽거나, 여타 부고기사 쓰는 사람들이 속내를 알아볼 때 창피스럽게 죽는 것은 피할 것.
남부 사막지대에서 깨달음의 순간은 은근하게 오지 않는다. 이 적나라하고 화려한 생태계에 은근한 건 거의 없다. 나는 화석연료를 근절하고 지역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하여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내 자동차는 말 그대로 내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냥 앉기만 해도 꼼짝없이 죽을 수 있다는 황야에서는 이런 식으로 교훈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경악스럽고 얼핏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패배로부터 끝내 성공을 일궈내고 말 거라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앨 고어처럼 말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명명백백하게 메시지를 강조할 필요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녹색 삶이라는 모험을 떠날 시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있었으니까. 다만 전기, 배관, 건축, 엔진에 대한 기계적 지식, 원예나 축산 기술이 전혀 없었을 뿐. 뉴욕 근교에서 도미노 피자를 먹고 자란 나는, 서른여섯 살 나이에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산 평범한 사내가 원유를 절감하는 행보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편안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이는 먹고살기 위해 가축을 치고 농사를 짓고, 휘발유가 아닌 다른 이동 수단을 생각해내며, 은행계좌가 텅텅 비도록 태양열에 자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15년 전 기자로 일하기 시작한 후 오대륙을 누비면서 혹독한 생활환경에서 살며 일을 해왔다. 하지만 알래스카에서 벌벌 떨고 타지키스탄에서 총알을 피하는 경험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재확인하게 되는 게 하나 있었다. 넷플릭스 인터넷 비디오 대여 서비스, 무선 이메일, 쿵쿵 울리는 서브우퍼가 좋다는 것. 솔직히 말해, 그런 것들 없이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태양열을 동력으로 쓰고 싶었을 뿐. 간드러지는 음악을 태양열로 들을 수 있다면, 그러고도 유엔을 두려워하는 이웃들한테서 베이스 기타 소리 때문에 힐러리 클린턴이 나오는 악몽을 꾸다가 깼다는 불평을 여전히 들을 수만 있다면, 난 이 실험을 성공으로 간주할 것이다. 거기다 안정적인 인터넷을 설치하고 덤으로 나의 녹색 세상에 영화들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면, “유레카!”에 가까운 기분일 텐데. 특히 손수 재배하고 경작한, 아니면 최소한 동네에서 산 먹거리로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말이다.
:: 태양열 전지판 제작에 사용된 에너지를 상쇄하는 데는 이후 삼사 년이 걸린다.
내가 보기에는 세계적 기상 변화, 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인권 유린 같은 문제들을 다 차치하더라도, 원유의 시대는 멋진 전성기를 다 보낸 것 같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는 미국을 농부들의 나라에서 공상과학 만화 주인공들의 국가로 바꾸어놓았다. 대체로 나는 이런 변화를 쌍수 들어 반긴다. 나는 노트북 컴퓨터가 좋아 미치는 사람이니까. 내가 어느 시대에 태어나서 클릭 세 번 만에 말리의 북소리나 비틀스의 미공개 녹음(아니면 어떤 DJ가 두 개를 믹스한 것)을 들을 수 있겠는가? 달리 어느 시대에 그 DJ가 되어보겠는가? 정말 지금은 살기에는 최적의 시대다. 서구에 태어나서 군대에 들어가지 않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한마디로, 나는 녹색으로 디지털 시대를 누리며 생활하는 것이 가능함을 입증하고 싶었고, 계획에 착수하게 된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사회적으로도 때가 무르익은 것 같았다. 아니, 예전에는 다들 그런 실험이 지독하게 전복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그냥 지독하게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았다. 2005년에 이르러 내가 뉴멕시코로 이사했을 즈음엔, 소위 미국 대통령이라는 앞뒤 안 맞는 위인까지 기조연설에서 ‘바이오 연료’를 발음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회사인 씨티 그룹은 2007년 500억 달러를 녹색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기업들은 “지속 가능한” 마스카라에서 친환경 SUV까지 별의별 물건을 마케팅하고 있다. 다음엔 뭐가 나올까? 친환경 화약? 유기농 바퀴벌레 살충제? 이 시점에서 나는 웬만해서는 놀랄 것 같지 않다.
잠비아 정부 고위관료들(최근의 기근 사태 때 유전자 조작 농산물 종자들을 거절했다)에서 러시아 첩보원들(상관의 천연가스 정책 문제로 여전히 서로 죽고 죽이고 있다)에 이르기까지,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수가 현재의 우리를 가능하게 해준 화석연료 문명이 이제 큰 위기에 봉착했음을 깨달은 것 같았다. 어쩌면 50년, 어쩌면 100년밖에 문명의 수명이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사유들과 ‘편안하면서도 친환경적인’ 동기들에 더해, 적응은 생존의 문제라는 판단이 들었다.
작금의 녹색 열풍이 그저 그런 유행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었다. 유가가 좀 내릴 때까지 잠깐 휩쓸고 지나가는 유행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가 2달러 29센트의 시대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3달러 29센트 유가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저 귀여운 변덕 정도로 시작했던 일은 머지않아 개인적으로 의미 깊은 여정이 되었다.
내게 교훈이 필요했든 아니든, 러브수비는 엄청난 가속이 붙고 있었다. 핸드브레이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 기억난다. 어쩌면 그보다 4분의 3초쯤 전에, 내 자동차와 내 집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게 시야에 잡혔을 수도 있다. 37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실버시티(Silvercity) 읍내에 일주일에 한 번, 엄청난 양의 장을 보러 갔다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때 내 차에는, 다섯 곳의 가게에서 산 잘 익은 상자 포장 유기농 토마토들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1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재배’되어 대략 450리터의 화석연료를 소비하며 실버시티의 생활협동조합으로 이송된 것이었다.
그 7월의 오후 짧은 순간 나는 목가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다. 초록색 벌새 두 마리가 내 머리 주위로 FAA(미 연방 항공우주국) 고도제한을 무시하고 날아다녔으며, 그 녀석들을 포함한 목장의 모든 게 내 소유라는 낯선 느낌에 사로잡혔다. 한동안 여기 머무를 작정이었고, 사방에 증거가 널려 있었다. 예를 들면, 벌써 할인점이 아닌 가게에서 제값 주고 침대를 샀다. 1000달러를 웃도는 값비싼 침대였는데, 하마터면 가게에서 쫓겨날 뻔한 수모까지 겪으며 매장 쇼룸에서 시험하고 또 시험해본 끝에 구입한 물건이었다. 1000달러나 줬으니, 아무리 험하게 써도 매트리스가 버텨줄 거라고 믿었다.
펑키 뷰트 목장이 내 생애 처음으로 소유하게 된 부동산이었기에, 나는 아련한 행복감과 과다한 자산 유출, 무수한 계획들 속에서 계약이 성사된 직후 팔짝팔짝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꿀맛 같은 짧은 환희를 만끽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부동산 중개사에서 겪는 그 악몽 같은 계약 성사를, 왜 끝맺는다는 의미의 ‘체결’이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열린다는 뜻의 ‘개시’라고 해야 할 텐데. 새로운 프로젝트, 사랑, 총체적인 세계관이 새로이 열리는 마당에.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벌써 경제적 보수파로 돌아서 있었다. 처음으로 부동산 보유세를 납부하게 되었으니까. 별안간 작은 정부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취득한 부동산에 혼자 있다 보니, 마음 또한 이리저리 헤매었다. 시간이 좀 남으면 건강한 성인 남자의 마음은 하릴없이 방황하기 마련이다. 딱히 매트리스 테스트 탓만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도 영적으로 충만하지 못했던 연애를 막 끝내고 다시 싱글이 된 참이었으니까. 말하자면 내 몸은 아직도 적응 중이었다. 펑키 뷰트 목장에서 보낸 처음 며칠 동안은, 계속해서 뇌하수체와 대뇌 사이에서 오가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검열해야 했다.
뇌하수체: 염소 우리 고치는 일은 잠깐 쉬고 옛 애인한테 연락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잠깐 쉬지 않을래, 하고 물어보면 어떨까?
대뇌: 옛날에 헤어진 애인은 이제 우리 삶과는 아무 상관없잖아.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맥맨션†에 살고 있다고.
뇌하수체: 알았어. 네가 알아서 다른 여자친구를 찾아오는 걸로 알고 있을게.
대뇌: 이봐, 염소 우리를 고쳐서 맹수의 습격을 막지 않으면, 염소들을 데리고 와서 시골에서 살아가겠다는 우리 계획을 착수할 수가 없단 말이야. 아까 시냇가에 있던 사슴 시체에 난 퓨마 이빨 자국도 못 봤어? 세상에는 섹스 말고도 중요한 일들이 많아.
뇌하수체: 넌 그렇게 생각하냐? 그 암소 우리인지 뭔지 고치면서 중요한 게 뭐가 더 있는지 한번 생각이나 해봐라.
대뇌: 염소 우리라니까.
뇌하수체: 뭐면 어때.
하지만 백일몽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눈앞에서 (범퍼는 가끔 갈아줬지만) 12년 된 내 차가 맹렬하게 후진하고 있었다. 이 말은 꼭 해야겠는데, 화석연료를 전혀 쓰지도 않고 말이다. 자동차는 내 붓꽃들을 즈려밟고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집필과 댄스를 위한 스튜디오로 쓰려고 계획하고 있던 아름다운 석조 건물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돌아와, 러브수비!”라고 외칠 겨를도 없이, 백 년 묵은 참나무가 긴 킥오프 런백†을 막는 최후 수비수처럼, 자동차를 막고 궤도에서 탈선시켰다. 자동차는 기적적으로 3미터 높이의 백합과 식물 유카에 막혀 정지했다. 중세 전투에서 써도 충분할 만큼 날카롭고 뾰족한 창 같은 잎사귀를 자랑하는 종(種)이었다.
멍청하게 지역 특산도 아닌 토마토 송이를 러브수비를 향해 마구 흔들던 내가 얻은 교훈은 “핸드브레이크를 꽉 채워야지”였다. “지속할 수 없는 삶에. 바로 네가 먹는 음식에 들어가는 석유와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석탄에. 욕망에 근거한 연애에. 이 모든 것에.”
미합중국 이스트코스트에서 성장한 사람으로서, 나는 지나치게 으쌰으쌰(Whoo Whoo)하는 것들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건전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뉴멕시코는 으쌰으쌰 도사들의 천국이다. 각양각색의 다이어트, 좌익 우익을 막론한 음모론들, 그리고 외계인 목격담까지 넘쳐나니까) 하지만 새로 산 목장에 자동차를 주차하는 와중에도, 온 세상이 나를 보고 “석유는 이제 그만. 더 넓은 가슴으로!”라고 외치는 소리를 끝내 들어야만 했다.
2.
뉴멕시코에서는
모두가 목말라
잎담배를 질겅질겅 씹어대고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는 뉴에이지 스타일의 뉴멕시코 토박이인 레이시가 컴얼롱 윈치†를 들고 당장 달려왔다. 내가 사고를 치면 항상 달려오는 친구였다. 우리 둘은 한 시간 동안 중력과 씨름한 끝에 간신히 러브수비를 빼냈다.
“너 여기서 하려는 일이 정확하게 뭐야?” 한참 고투하는 와중에 그가 내게 소리쳐 물었다.
“평범한 미국인이 화석연료를 대폭 줄이고도 평범한 미국인답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거야.” 나는 러브수비 차창 밖으로 고래고래 악을 썼다.
“다시 말해볼래?” 레이시는 구름 같은 화석연료 연기 속에서 다시 물었다. “엔진 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려.”
때는 늦은 7월, 빙하기 이후로 제일 긴 가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안테나에 참나무 화환을 걸고 유카 나뭇가지로 인상적인 갑옷을 만들어 입은 러브수비가 꿀럭꿀럭 간신히 목장 아래 먼지 자욱한 비포장 주차장으로 되돌아갔을 즈음, 우리는 탈수로 세상 하직하기 대략 삼보 직전이었다. 삐죽삐죽한 유카 잎 덕분에 러브수비는 꼭 스테고사우루스 같았다.
나 역시 이 지역 자생식물들과 악전고투하느라 어딘가 파충류 같은 꼬락서니가 되어 있었지만, 신경이 아작아작 흔들리는 대난리통 속에서도 얻은 게 없진 않았다. 핸드브레이크 사건 덕분에 허브 정원을 가꾸기에 기막히게 좋은 공터가 트였다는 걸 그 즉시 알아차렸으니까. 참나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던 그 땅은 집채와 가까웠고, 더구나 이제 32만 8000킬로미터 나이를 먹은 일제 사륜구동 승용차가 잘 갈아놓은 터였다.
며칠 후 그 땅에 대파, 고수, 바질, 양상추, 그리고 근대 몇 포기를 심고 나니 스바루 질주 사건을 생각해도 기분이 썩 좋았다. 벌써 결정적으로 석유를 절감하면서도 소박한 자급자족의 삶에 착수한 것이었다. 첫 새싹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무렵에는, 펑키 뷰트 목장의 삶을 시작하는 데 이보다 더 멋진 출발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지방에서 길러낸 먹거리를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무리 유기농 바나나라도 온두라스에서 뉴멕시코까지 운반하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제트기 연료가 소모된다는 걸 깨닫기 한참 전부터였다. 소위 캘리포니아에서 ‘상업적으로 경작한’ 아보카도들에 들어가는 휘발유 원료 비료들이나, 또는 그런 데서 농장 근로자들이 얼마를 (못) 받는지에 대한 생각 없이도.
신선한 지방 먹거리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신선한 지방 먹거리가 인위적인 공산품 먹거리보다 맛있기 때문이다. 이건 내 미각세포의 괴팍한 특징이다. 어릴 때 나는 ‘식성이 안 좋은’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소위 ‘스테이크’라는 딱지가 붙은 시커멓게 탄 고깃덩어리를 보고도 냉담하게 다른 사람들이 다 먹을 때까지 안 먹고 기다리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진짜 제대로 된 음식은 아주 잘 먹는다. 운 좋게도 벌새의 체질과 치타의 섭생을 닮았을 뿐이다.
:: 평균적으로 토마토는 밭에서 식탁까지 2400킬로미터의 장거리 여행을 한다.
장거리 운송되는 음식은 맛이 고약할 뿐 아니라, 모양도 엉망인 경우가 많다. 아홉 살 때쯤 뉴욕 롱아일랜드의 어느 슈퍼마켓에서 야구공만 한 토마토를 쥐어짜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땅에 던져 으깨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쇼핑 카트에다가 포물선 궤적으로 던져보기도 했으며, 심지어 팔짝팔짝 뛰며 발로 밟아보기도 했다. 엄마가 내 한쪽 귀를 잡아 끌고 가기 전까지, 나는 기껏해야 그 물체에 실선 같은 상처를 냈을 뿐이다. 그때부터 나는 찬찬히 상품의 라벨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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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토마토 바질 스낵
· 염소 치즈나 프레시 모짜렐라 치즈 한 덩어리, 얇게 썰어서.
· 텃밭에서 딴 잘 익은 유기농 토마토 2개, 썰어서.
· 텃밭에서 기른 바질 잎 5장.
· 돌절구로 간 참깨 크래커 6개.
· 소금 약간.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치즈, 토마토, 바질을 크래커 위에 올린다. 소금을 살짝 뿌려 마무리한다. 프랭크 시나트라나 빌 에번스 트리오의 음악을 스테레오 오디오에 건다. 로맨틱한 파트너와 함께 즐길 때는, 먹기 전에 적당한 피임 도구를 손닿는 곳에 준비해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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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토마토를 기른 후부터는 내가 어떻게 하든, 그러니까 거대한 남향 창가에서 일광욕을 하든, 여행을 다니느라 오랫동안 물을 못 주든, 넝쿨에 주렁주렁 열리는 토마토들은 무조건 즙 많고 굉장히 맛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바위처럼 딱딱한 토마토를 만들려면 ‘토마토’를 유전자 조작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씀이다. 이게 바로 본론이다. 매력적인 오렌지 색깔을 띠고 있지만 황당무계하게 내구성이 좋은 과일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온실에서 운송하는 동안 쉽게 뭉그러지지 않는다는 말씀. 이게 다 다국적 유전자 조작 농산물 제조업체인 몬산토 같은 회사의 주가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맛과 영양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도 맛이 먼저, 영양이 다음, 꼭 이 순서대로.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마치 석유시대의 대세에 철저하게 항거해온 것처럼 군다면 그건 위선이다. 뉴멕시코로 이사하기 전에 녹색 삶을 실천해보려 시도했던 의도는 그리 순수하다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심지어 알래스카 촌구석에서 파견 근무를 할 때, 1년을 먹어도 남을 연어를 잡아 직접 통조림을 한 자신이 대견해 어쩔 줄 모를 당시에도 몹쓸 통통배 휘발유 엔진을 부릉부릉 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연어들이 헤엄치는 맑고 투명한 물에 가솔린과 석유가 번지는 게 뻔히 보였다. 펑키 뷰트 목장에 이사 올 무렵에야 비로소 위선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진짜로 녹색의 지역적 삶을 실천하는 데 성심을 바쳤던 셈이다. 주유소와 월마트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 평균적인 미국인은 매년 식량 선택만으로 대기에 4톤의 이산화탄소를 더 방출한다.
하지만 아무리 절실히 원한다고 해도 휘발유와 중국 노예 공장 생산품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프로젝트를 가동한 후 처음 한두 해 동안은 말이다. 내 삶에 너무 깊이 파고들어와 있었다. 베이글은 어떻게 구워먹을 것인가? 그리고 미안하지만, 기자 신분으로 아무리 오지를 다녔어도, 화장실 휴지에 대한 깊은 애착은 버릴 수 없었다. 휴지는 거의 날마다 내 인생의 일부로 존재했다. 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스크림이 있다. 사회야 어떻게 돌아가건, 아이스크림 없이는 못 살았다. 이것이 바로 제멋대로 날뛰는 옹고집 염소들을 키우게 된 내밀한 진짜 이유였다.
하지만, 첫해 동안 이런저런 노력을 하면서 추진력을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가늠하고, 독립적이고 지역적이고 석유절감형 생활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현재의 글로벌 맥도널드 경제가 영원하다고 믿는 내 친지 친척들 같은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지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구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우리 대다수가 굳게 견지하는 믿음이 있다. 이전 문명과는 달리 만년설 따위, 지하드 전사 한두 명이나 석유공학자들, 베스트셀러 『핫존』†에 나오는 더러운 세균 따위가 아무리 방해를 해도 우리는 결국 슈퍼볼 경기를 관람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GPS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파티 같은 삶을 유지할 길을 끝내 찾아내고 말 거라는 믿음 말이다. 이건 우리가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의 사회적 등가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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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뷰트 : 미국 서부의 특징적 지형으로 평원에 우뚝 선 낮은 산 또는 언덕.
† 맥맨션(McMansion) : 미국 중산층의 주택을 비꼬아서 부르는 표현으로 맥도널드 패스트푸드를 찍어내는 것처럼 획일적으로 지어졌다는 뜻이다.
† 킥오프 런백(kickoff runback) : 미식축구에서 발로 찬 공을 빼앗아 잡고 달리는 일.
† 컴얼롱 윈치(come-along winch) : 중장비를 들어 올릴 때 쓰는 사슬 달린 장비.
† 『핫 존』(Hot Zone) : 1994년 리처드 프레스턴이 쓴 베스트셀러 논픽션 스릴러. 에볼라 바이러스 등에 의한 아프리카 유행성출혈열 발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1장 부분)
★ 『굿바이, 스바루』 서평 ‘독립을 위한 상상력’ㅣ손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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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덕 파인 (Doug Fine)
여행 작가이자 프리랜서 기자. 대학을 졸업한 후 배낭을 메고 세계 여행을 떠났고, 버마, 르완다, 라오스, 과테말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오지와 분쟁 지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워싱턴 포스트>, <월드 리포트> 등에 기사를 썼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National Public Radio)과 PRI(Public Radio International)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대 때 편안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진정한 행복을 깨닫기 위해 알래스카로 떠났으며, 이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 형식으로 쓴 『진짜 알래스카 산 사나이는 아니지만』(Not Really An Alaskan Mountain Man)을 발표했다.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뉴욕 토박이로, 현재 뉴멕시코 주 남쪽의 외진 골짜기에서 염소와 코요테와 더불어 살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dougf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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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김선형
1994년 아이작 아시모프의 『골드』를 첫 작품으로 번역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하여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와 『재즈』,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그리고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같은 멋진 작가들의 책을 번역하는 행운을 누렸다. 르네상스 영시를 전공했고 세종대학교 영문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최근 역서로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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