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지식과 예술
플라톤
일찍이 앨프리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는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 1929에서 “유럽의 철학적인 전통은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기원전 347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성립한다”라고 말했다(Whitehead, 53). 과연 유럽 미학의 역사 또한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인 것일까? 어쨌든 우리의 서양미학사 고찰은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는 “이 시인〔호메로스〕이야말로 그리스를 교육해왔으며, 인사 처리와 교육을 위해서는 그를 모범으로 삼아 배우고manthanein, 이 시인에 따라 자신의 모든 생활을 정돈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Platon, R. 6063)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였다. 호메로스Hómēros, 기원전 800년경~기원전 750년경는 그리스인 교육자이자 덕의 스승, 그리고 현자였으며, 그의 시 속에는 철학과 학문이 이른바 맹아로서 포함되어 있었다. 호메로스의 시는 그리스 민족의 공공적公共的인 정신의 결정이며, 그것을 음송시인이 공공적으로 읊조림으로써 공공적인 정신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호메로스와 호메로스를 노래한 음송시인이 활약한 것은, 시가 지知의 최고 형태를 취했던 시대, 시와 학문이 분리되기 이전의 시대이다.
플라톤은 시가 곧 학문이었던 시대부터, 두 영역이 분리되는 이행기에 활약했으며 그 이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의 초기 대화편의 한 구절 『이온』Ion, 기원전 393~기원전 391년경은 그것을 증언한다.
음송시인의 탈영역성 혹은 비非기술성
『이온』은 음송시인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이온이 귀갓길에 소크라테스와 만난다는 설정으로 펼쳐지는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는 첫머리에서 음송시인의 기술을 다음과 같이 칭찬한다.
나는 그대들 음송시인을 그 기술 때문에 부럽게 생각한 적이 있다오. 왜냐하면…… 그대들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시인들, 특히 시인 중 가장 뛰어난 신과 같은 호메로스에 전념하여 시구뿐 아니라 그 생각dianoia도 전부 다 배워야ekmanthanein할 터인데, 이는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기 때문이지. 실제 시인이 읊는 내용ta legomena에 정통하지 않다면, 뛰어난 음송시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오. 왜냐하면 음송시인은 시인의 생각을 청중에게 전하는 사람hermēneus이 되어야 하는데, 시인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gignoskein 못한 이가 이것을 멋지게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네. (Ion 530b-c)
여기에서는 ‘시인-음송시인-청중’이라는 삼자관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1)시인특히 호메로스은 탁월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2)음송시인은 그 ‘기술’ 덕에 시인예컨대 호메로스의 ‘생각’을 이해하고 (3)그것을 청중에게 전달한다는 전제에서 음송시인을 칭찬한다.
소크라테스가 먼저 문제시하는 것은 (2)의 전제이다. 이온은 호메로스의 시에 관해서는 적절하게 음송할 수 있으나, 여타 시인의 시에 관해서는 적절하게 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그대는 호메로스에 관해 기술technē과 지식epistēmē에 근거하여 말할 수 없다네. 왜냐하면 만일 그대가 이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호메로스 이외의 다른 모든 시인에 관해서도 읊조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실제 작시作詩의 기술은 어떤 하나의 전체toholon라네. (532c)
소크라테스에게 ‘기술’은 명확한 영역이 있으며 그 경계 내부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다시 말해 기술에 관해서는 그것에 속하는 내용과 속하지 않는 내용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어느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그 기술의 영역에 속하는 모든 내용에 관해 바르게 알고 또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온이 호메로스에 관해 음송할 수 있는데도 다른 시인에 대해서는 음송할 수 없다는 것은, 음송에 관해서는 기술의 요건으로서 영역성 혹은 정체성이 성립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음송시인 이온은, 기술을 지니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방식으로 음송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호메로스에 관해 잘 읊조린다는 것은 기술로서 그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오. 그것은 오히려 신적인 힘theia dynamis이며 그것이 그대를 움직이고 있다네”(533d). 당초 소크라테스는 ‘음송시인’을 그 ‘기술’ 때문에 “부럽게 생각한 적이 있다오”라고 했지만, ‘부럽게 생각한다’는 동사가 아오리스트aóristos형즉 과거의 일을 지나가버린 것으로 말하는 과거형이라는 점이 보여주듯, 이 선망의 마음은 이미 과거의 것이며, 이온과의 대화가 전개될 때 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음송시인의 ‘기술’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음송시인이 호메로스의 ‘생각’을 “전부 다 배운” 적도, “실제 시인이 읊는 내용에 정통”한 적도, 또 “시인이 말하는 것을 이해”한 적도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음송시인의 특징은 ‘지知의 부재’다. 지를 결여한 음송시인은, 호메로스의 ‘생각’을 “청중에게 전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3)의 전제도 부정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소크라테스가 음송시인에게서 “신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은, 지를 결여한 음송시인의 행위를 비판적으로 지적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소크라테스는 (1)의 전제가 올바른지 여부에 의문을 던진다.
시인은 …… 신기를 받아entheos 자기를 잊고 더 이상 자기 안에 지성nous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시를 만들 수 있다네. …… 시인들이 시를 지어 온갖 아름다운 것을 읊는 것은, 마치 그대가 호메로스에 관해 그렇게 했듯,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은총으로 주어진 것theia moira에 의해서라오. (534b-c)
즉 이온이 어떤 기술도 모른 채 호메로스 시에 관해 온갖 아름다운 것을 말하듯, 호메로스와 같은 시인 또한 어떤 기술도 모른 채 많은 것에 관해 시를 짓는다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한다. 기술로 입증되지 않는 시인이 행위를 뒷받침하는 것은 ‘신적인 힘’이다.
이상에서 명확해졌듯 『이온』은 ‘기술’이나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자칭하는 시인과 음송시인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수법을 통해 시인이나 음송시인에게 기술이 부재하다는 것을 확증해갈까?
예컨대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이온에게 묻는다. “그대가 읊어준 〔호메로스의 마부 기술에 관한〕 시구의 경우, 호메로스가 멋지게 읊조리고 있는지 여부를 인식하는 것은 그대인가, 아니면 마부인가”(538b). 이 질문에 이온은 “마부”라고 답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가 그 시에서 개개의 기술에 관해 말하는 부분을 골라내어, 과연 그 부분이 올바른지 판정하는 것은 음송시인인가, 아니면 그 기술을 지닌 자인가라는 양자택일의 질문을 던진다. 즉 소크라테스는 음송시인 이온의 일을 개개의 기술 ─ 마부의 기술(538b), 의사의 기술(538c), 낚시의 기술(538d) 등 ─ 로 분해하여 이온이 기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차츰 폭로해간다.
소크라테스가 이러한 수법을 취하는 것은, 이온이 음송시인의 일을 하나의 전체이자 하나의 기술로 파악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소크라테스는 음송시인의 일을 개개의 기술로 분해한 뒤, 이온에게 “〔호메로스 시에서〕 어떠한 일이 음송시인과 음송시인의 기술에 결부되는가, 즉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오로지 음송시인이 무엇을 고찰하고 판별하는 게 적합한가”(539e)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해 이온은 “모든 것이 그렇다”(539e)라고 대답하지만, 이는 이온이 음송시인의 일을 개개의 기술로 분해하는 소크라테스의 수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일을 오히려 탈영역적인 기술로 이해하는 동시에, 이러한 탙영역적인 기술의 가능성을 전혀 의문시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온』에서 플라톤이 비판하고자 한 것은 이와 같이 탈영역적인 지知로서 타당하게 여겨져온 호메로스의 전통이었다. 앞서 말했듯 플라톤은 ‘기술’의 특징을 영역성과 정체성을 보았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결코 여타 기술과 견줄 수 있는 하나의 통합적인 기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여러 기술을 포함하며 따라서 갖가지 부분으로 분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음송시인에게 고유한 일을 부정하는 플라톤에게는 시를 시로서, 혹은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하는 시점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점은 플라톤을 비판하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기원전 322에 의해 처음 제기된 것이다(제2장 참조).
『이온』에서 시는 세 개의 과거성과 결부되어 있다. 첫째, 호메로스가 과거의 존재가 되어 음송시인이 호메로스를 전달한다는 의미에서다. 둘째, 이온이 호메로스의 음송을 끝낸 시점에 소크라테스가 이온의 지를 문제 삼는다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셋째, 이 소크라테스는 음송시인의 기술에 대한 선망의 염念을 더 이상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다. 호메로스의 권위가 과거의 것이 되었을 때, 혹은 호메로스의 권위를 과거의 것으로 함으로써 플라톤은 호메로스의 권위에서 자유로워져서 시를 철학적인 음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또한 여기에서 예술은 그 본질상 과거의 것이라고 판정하는 헤겔의 예술 종언론과의 관련성을 읽어낼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제15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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